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새롭고도 예롭게 - 6. ‘法古而知變’과 ‘刱新而能典’의 또 다른 예 본문

책/한문(漢文)

새롭고도 예롭게 - 6. ‘法古而知變’과 ‘刱新而能典’의 또 다른 예

건방진방랑자 2020. 4. 1. 18:09
728x90
반응형

6. ‘法古而知變刱新而能典의 또 다른 예

 

 

그런 까닭에 배우지 않음을 잘 배우는 것으로 여긴 것은 노남자魯男子의 홀로 지냄이고[각주:1], 부뚜막 숫자를 늘이는 것을 부뚜막 숫자를 줄이는 것에서 본떠온 것은 우승경虞升卿의 변화를 앎이다[각주:2].

故不學以爲善學, 魯男子之獨居也; 增竈述於减竈, 虞升卿之知變也.

이렇게 법고이지변창신이능전의 예를 하나씩 든 연암은 다시 노남자와 우승경의 이야기로 논지를 더 다진다. 옆집 노총각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이웃의 과부가 밤중 비에 제 집 담이 무너지자, 노총각의 집 문을 두드리며 하루 밤 재워줄 것을 청했다. 그러자 이 고지식한 청년은 예에 남녀는 60 이전에는 한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했으니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과부는 현인 유하혜는 예전에 곤경에 처한 여인을 재워 주었어도 사람들이 난행亂行이라고 일컫지 않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노총각은 유하혜라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겠지요. 그는 현인이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유하혜처럼 할 수가 없어요. 유하혜가 여인을 재워주고 제 이름을 보전한 것이나, 내가 당신을 재워주지 않고 내 절개를 지키는 것이나 결과는 같습니다. 그러니 나는 유하혜를 배우지 않는 것으로 유하혜를 따르고자 합니다.” 이것은 다시 창신이능전의 좋은 예가 된다. 유하혜는 이렇게 했는데 그는 저렇게 했으니 새롭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한가지이다. 옛것을 본뜨지 말아라. 새것을 추구해라. 그렇지만 그 추구는 마땅히 변치 않을 정신에 토대를 둔 것이라야 하리라.

옛 동문 방연龐涓의 술책에 빠져 뒷꿈치를 베이는 월형刖刑을 당한 손빈이 절망 끝에 제나라로 탈출한 후, 방연은 군대를 일으켜 한나라를 공격했다. 한나라는 제나라에게 구원을 청했고, 제나라는 회맹의 약속을 지켜 손빈을 군사軍師로 삼아 군대를 위나라 본토로 진격시켰다. 한나라로 쳐들어갔던 방연이 이 소식을 듣고 군대를 돌려 위나라로 되돌아오니, 이미 위나라 지경으로 들어섰던 손빈의 제나라 군대는 결과적으로 앞뒤로 위나라 군대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손빈은 평소 제나라 사람들을 겁쟁이라고 얕잡아보는 습관이 있던 위나라 사람들의 기질을 거꾸로 이용키로 했다. 주둔지에 밥 짓는 부뚜막 자국을 첫날 10만개로, 이튿날은 5만개로, 그 이튿날은 다시 2만개로 줄여 나갔다. 추격하던 방연은 사흘 만에 제나라 군대의 5분의 4가 겁먹고 달아난 것으로 여겨 보병을 버리고 기병만으로 추격했다. 그러다 손빈의 복병에 걸려 막다른 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런데 후한 때 우후虞詡는 오랑캐를 치러 갔다가 그들의 공격을 받아 부득이 후퇴할 수밖에 없는 형국에 놓이게 되었다. 후방에서 원군이 올 리도 만무한 상황이었으나, 그냥 무작정 후퇴하다가는 오랑캐의 전면적인 공격을 받아 전군이 궤멸될 상황이었다. 이때 우후는 손빈의 부뚜막 작전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손빈과는 반대로 부뚜막의 숫자를 매일 늘여 나갔다. 추격해오던 오랑캐는 부뚜막의 숫자가 날마다 늘어나는데도 그 부대의 이동이 신속한 것을 보고 후방에서 속속 원군이 도착하는 것으로 알고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이것은 법고이지변의 예이다.

우후가 본받은 것은 손빈의 전법이었지만, 그는 그대로 하지 않고 반대로 했다. 놓인 상황이 달랐던 것이다. 손빈은 적진을 향해 쳐들어가며 뒤쪽에서 추격해오는 방연의 군대를 방심하게 만들려고 부뚜막의 숫자를 줄인 것인데, 우후의 경우는 적의 추격을 피해 자신의 진영 쪽으로 후퇴하면서 추격해오는 군대를 겁먹게 하려는 상황이었으므로 부뚜막의 숫자를 늘였다. 그가 만일 손빈처럼 부뚜막의 숫자를 줄여 나갔더라면 적의 추격은 더 급박해졌고, 중도에 포기하는 일도 없었으리라. 손빈이 부뚜막을 줄여서 이겼다면, 우후는 부뚜막을 늘여서 이겼다. 방법은 반대로 했는데 이긴 것은 같았다. 옛것을 그대로 묵수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본받을 것은 원리일 뿐이다. 본받을 것은 정신일 뿐이다. 본받을 것은 형식이 아니다. 본받을 것은 껍데기가 아니다. 우후가 손빈에게서 배운 것은 부뚜막의 숫자를 조작하여 적을 현혹시킨다는 원리였다. 결코 나도 부뚜막을 줄여야지가 아니었다.

나는 원리나 정신을 본받지 않고 형식과 껍데기만을 본받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나라일을 그르친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바로 임진왜란 때의 신립이다. 앞서 한신은 배수진을 쳐서 강한 조나라를 이겼는데, 신립은 배수진을 쳐서 강한 일본에게 조선의 관군을 전멸시키고 말았다. 배수진은 아무 때 아무나 치기만 하면 이기는 것이 아니다. 문경 새재 그 천험의 요새를 마다하고 군대를 뒤로 물려 탄금대도 아닌 그 건너편 너른 벌판에 배수진을 치고 기다리니, 유효사거리 30보인 조선의 화살과, 유효사거리 100보인 일본의 조총은 애시당초 싸움의 거리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다. 왜 같은 배수진을 쳤는데 한신은 이기고, 신립은 졌는가? 신립은 지변知變을 몰랐고, 한신은 그것을 알았다. 한신은 뻗을 자리를 보고 뻗었고, 신립은 남이 뻗는 대로 뻗었다. 호리의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빚는다. 말하자면 신립은 적의 추격을 받아 후퇴하면서도 손빈이 그랬으니까 하며 부뚜막을 줄이는 전법을 선택한 장수인 셈이다. 법고만이 능사인줄 알았지, 지변이 왜 중요한지를 정작 그는 몰랐다. 그래서 그는 강물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고, 군사는 전멸했으며, 임금은 우중에 도성을 떠나 백성들의 돌팔매를 맞으며 피난길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립의 패전의 역사가 숨쉬는 충주 탄금대.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8A11

고문이란 무엇인가?

연암체와 연암에 대한 숱한 오해

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2. 새 것을 만든다는 건 기이한 걸 만드는 게 아니다

3.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하라

4. 옛 것을 본받되 변할 줄 아는 예

5.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한 예

6. 法古而知變刱新而能典의 또 다른 예

7. 해답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8. 연암은 고문가일까?

8-1. 총평

  1. 『시경』「소아小雅」「항백巷伯」의 모전毛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노魯 땅에 혼자 사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웃에 과부가 혼자 살다 밤중에 비에 집이 무너지자 남자를 찾아와 하루밤 재워 줄 것을 청하였다. 남자가 문을 굳게 닫고 그녀를 들이지 않으매 그녀가 왜 유하혜柳下惠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라자, 남자가 말하기를, “유하혜라면 진실로 괜찮겠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는 장차 나의 할 수 없음을 가지고 유하혜의 할 수 있음을 배우고자 한다”고 대답하였다. 유하혜는 학문이 높은 군자이기에 여자를 받아들여도 사람들이 그것을 난행亂行이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므로 유하혜와는 반대로 함으로써 오히려 그 바른 도를 지켜 나가겠다는 뜻이다. 방법은 반대였지만 결과는 한 가지임을 말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전국시대 제나라의 손빈孫臏이 위나라의 방연龐涓과 싸울 때 밥짓는 부뚜막의 수를 첫날 10만개로 하고, 다음날은 5만개, 그 다음날은 2만개로 줄였다. 이에 제나라 군사가 위나라 국경에 들어선지 사흘만에 대부분 달아났다고 생각한 방연은 보병을 버리고 기병만으로 추격하다가 손빈의 복병에 걸려 죽었다. 후한 때 우후虞詡가 오랑캐와 싸울 때 적군의 수가 많아 대적할 수 없게 되자 후퇴하면서, 손빈의 전략과는 반대로 부뚜막의 수효를 날마다 늘여 후방에서 구원병이 계속 도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오랑캐의 추격을 물리쳤다. 부뚜막의 숫자를 조작해서 적을 현혹시킨 것은 같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썼던 것이다.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