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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새롭고도 예롭게 - 7. 해답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본문

책/한문(漢文)

새롭고도 예롭게 - 7. 해답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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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해답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 되었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 되었어도 그 광휘는 날마다 새롭다. 책에 실려 있는 것이 비록 방대하지만 가리키는 뜻은 제각금 다르다. 때문에 날고 잠기고 달리고 뛰는 온갖 생물 중에는 간혹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고,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비밀스런 이 있게 마련이다. 썩은 흙에서 지초芝草가 나오고, 썩은 풀이 반딧불로 화한다. 에는 송사訟事가 있고 악에는 의논이 있으며,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각주:1]. 어진 이가 이를 보면 인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가 이를 보면 지라고 한다[각주:2]. 그런 까닭에 백세 뒤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혹하지 않는다는 것은 앞선 성인의 뜻이고, 순임금과 우임금이 다시 살아나 일어나신다 해도 내 말은 고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뒷 어진이의 말이다[각주:3]. 우직禹稷과 안회顔回가 그 법도가 한가지이나[각주:4], 소견이 좁아 융통성 없는 것과 제멋대로 공손치 않음은 군자가 말미암지 않는다[각주:5].

由是觀之, 天地雖久, 不斷生生; 日月雖久, 光輝日新; 載籍雖博, 旨意各殊. 故飛潛走躍, 或未著名; 山川草木, 必有秘靈. 朽壤蒸芝, 腐草化螢, 禮有訟, 樂有議, 書不盡言, 圖不盡意. 仁者見之謂之仁, 智者見之謂之智, 故俟百世聖人而不惑者, 前聖志也; 舜禹復起, 不易吾言者, 後賢述也. 禹稷顔回, 其揆一也, 隘與不恭, 君子不由也.

다시 연암의 도도한 변설은 이어진다. 하늘과 땅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끊임없이 새 생명을 낸다. 해와 달은 오래 되었어도 그 빛이 날로 새롭다. 인간의 삶도 돌고 도는 것이지만 똑같이 반복되는 법이 없다.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이 제 아무리 방대하다 해도 담긴 뜻은 제각금이다. 일정한 것은 없다. 고정불변의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아직도 미지로 덮혀 있다. 기지旣知의 바탕 위에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내는 것이야말로 문학하는 사람의 사명이 아닌가? 어제의 태양이 오늘의 태양일 수 없듯이, 어제의 옛글이 오늘의 지금 글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썩은 흙이 영지버섯을 쪄내고,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로 화한다. 낡아 해묵은 것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옛것을 무조건 버릴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는 후대에 오게 되면 그 해석과 적용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도 시대가 바뀌면 그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이런 저런 논란이 생겨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새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역에서도 이미 말하고 있지 않은가?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고. 옛사람이 남긴 글은 옛 사람의 쭉정이일 뿐이다. 그것이 그대로 금과옥조가 될 수는 없다. 그것에 현혹되지 말아라.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같은 사물도 어진이가 이를 보면 인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가 이를 보면 지라고 한다. 옛것에 대한 해석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왜 한 가지로만 보아야 한다고 우겨대는가? 공자가 백세 뒤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혹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맹자가 옛 성인이 다시 일어나신다 해도 내 말에 찬성하리다고 한 것과 그 뜻이 같다. 두 분 다 자신의 말에 대한 투철한 확신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표현은 달라도 담긴 뜻은 같다.

어지러운 시대를 만나 안연단사표음簞食瓢飮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누리다 이룬 것 없이 세상을 떳고, 태평한 시절을 만나 우직禹稷은 천하를 위해 일하느라 제집을 세 번씩 지나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들이 처지를 바꿔 태어났더라면 마땅히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것은 맹자의 말이다. 지금 내가 쓰는 글과, 그때 연암이 썼던 글은 비록 다르지만, 연암이 지금 태어났더라면 마땅히 이렇게 글을 썼으리라. 이것은 나의 말이다. 백이는 한 임금을 섬기려고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었지만, 유하혜는 여러 임금을 섬기면서도 제 어짊을 다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두 사람의 행적은 정반대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켜 지극함을 이룬 것은 같다. 그렇지만 군자는 백이의 융통성 없는 지나친 결벽과 유하혜의 지조 없어 보이는 굴신을 기뻐하지 않는다. 백이의 길만을 고집하면 法古에서 병통이 생기고, 유하혜의 길을 기꺼워하면 창신에서 문제가 생긴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8A11

고문이란 무엇인가?

연암체와 연암에 대한 숱한 오해

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2. 새 것을 만든다는 건 기이한 걸 만드는 게 아니다

3.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하라

4. 옛 것을 본받되 변할 줄 아는 예

5.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한 예

6. 法古而知變刱新而能典의 또 다른 예

7. 해답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8. 연암은 고문가일까?

8-1. 총평

 

 

 

  1. 『주역』「계사繫辭」상에 나온다. 언어는 유한한 도구이므로, 원래의 의도를 십분 전달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하의 각 구절은 모두 경전의 구절들을 패러디하여 작가의 뜻으로 전달하고 있다. 법고이지변의 예를 다른 방법으로 보인 것이다. [본문으로]
  2. 역시 『주역』「계사상」에 나온다. 같은 현상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말했다. [본문으로]
  3. 앞의 말은 『중용』에서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고, 뒤의 것은 『맹자』 「등문공」하에서 맹자가 한 말이다. 두 말의 뜻은 대개 같다. 요컨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말에 대한 굳건한 확신을 이렇게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의도는 같은데 표현은 다르다. [본문으로]
  4. 『맹자』「이루離婁」하에서 태평한 세상에서 나라일을 우선하느라 세 번 제 집 문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던 우직과,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누항陋巷에 살며 단사표음簞食瓢飮으로도 불개기락不改其樂한 안회顔回를 공자께서 어질게 여기신 일을 적은 뒤, ‘禹稷顔回同道’라 하였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처지를 바꾸었더라면 서로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루」하 앞에서도 순舜과 문왕文王이 시대가 다르고 행적이 상이하나 그 도는 약합부절若合符節하여 ‘其揆一也’라 하였다. 또한 겉으로 드러난 것은 같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정신이 한 가지임을 천명한 것이다. [본문으로]
  5. 또한 『맹자』 「공손추公孫丑」상의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제 몸을 결백히 지니기 위해 목숨까지 버렸던 백이와 여러번 다른 임금을 섬기면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그 도리를 다 했던 유하혜를 견주면서, “백이는 너무 좁고 유하혜는 불공不恭하니 좁은 것과 불공한 것을 군자는 말미암지 않는다”고 하였다. 두 사람의 행실이 모두 지극하다 하겠으나 너무 지나쳐서는 안됨을 경계한 것이니, 여기서는 법고와 창신 두 방면 가운데 어느 하나에 너무 과도하게 흘러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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