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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새롭고도 예롭게 - 8. 연암은 고문가일까? 본문

책/한문(漢文)

새롭고도 예롭게 - 8. 연암은 고문가일까?

건방진방랑자 2020. 4. 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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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연암은 고문가일까?

 

 

박씨의 아들 제운齊雲은 나이가 스물 셋인데 문장에 능하여 호를 초정楚亭이라 하며 나를 좇아 배운 것이 여러 해가 되었다. 그 글을 지음은 선진양한先秦兩漢의 글을 사모하였으나 그 자취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부한 말을 제거하기에 힘쓰다 보니 간혹 근거 없는데서 잃고, 논의를 세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간혹 법도에 어긋남에 가까웠다. 이는 명나라의 여러 작가들이 법고와 창신에 있어 서로서로를 헐뜯으면서도 함께 바름을 얻지 못하고 나란히 말세의 자질구레함으로 떨어져서, 도를 지키는데 보탬이 없이 한갖 풍속을 병들게 하고 교화를 손상시키는 데로 돌아간 것이니, 나는 이것을 염려한다. 새것을 만들어 교묘하기 보다는 차라리 옛것을 본받아 보잘 것 없는 것이 더 나으리라.

朴氏子齊雲, 年二十三, 能文章, 號曰楚亭, 從余學有年矣. 其爲文, 慕先秦兩漢之作, 而不泥於跡. 然陳言之務祛, 則或失于無稽; 立論之過高, 則或近乎不經, 此有明諸家於法古創新, 互相訾謷, 而俱不得其正, 同之幷墮于季世之瑣屑, 無裨乎翼道, 而徒歸于病俗而傷化也. 吾是之懼焉. 與其創新而巧也, 無寧法古而陋也.

 

내 이제 그의 초정집을 읽고, 공명선과 노남자의 독실한 배움을 나란히 논하고서 회음후 한신과 우후의 기이한 계책을 냄이 예전의 법을 배워 잘 변화하지 않음이 없음을 보였다. 밤에 초정과 더불어 이와 같이 말하고, 드디어 그 책머리에 써서 권면하노라.

吾今讀其楚亭集, 而幷論公明宣魯男子之篤學, 以見夫淮陰虞詡之出奇, 無不學古之法而善變者也. 夜與楚亭, 言如此, 遂書其卷首而勉之.

마지막 단락에서는 초정집을 지은 박제가의 이야기로 마무리 하였다. “여보게, 초정! 내가 자네의 글을 보니 선진양한先秦兩漢의 옛글을 배웠으되 그대로 묵수하지는 않았군 그래. 그렇지만 진부한 말을 제거한다면서 간혹 황당한 말을 끌어다 쓰고, 제 주장을 너무 높이려다 보니 법도에서 어긋난 곳이 많아졌네 그려. 글이란 이래서는 안되는 게야. 자네는 가 승한 사람이니, 내 보기에 새것을 교묘히 만드는 창신創新보다는 옛것을 충실히 본받는 法古에 힘쓰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보네. 어떤가, 내 말이.”

 

다시 논의를 처음으로 돌려야겠다. 연암은 고문가인가? 연암은 고문가이다. 그렇다면 정조는 왜 문체반정의 과정에서 문체 변화의 책임을 물어 그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을까? 연암이 생각했던 고문이 죽은 고문이 아니라, 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산 고문이었기 때문이다. 정조가 두려워 한 것은 그 산 고문이 지닌 잠재적 폭발력이었다. 당나라 때 한유가 옛글 배울 것을 주장했을 때, 제자 중의 하나가 이렇게 물은 일이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늘 옛 글을 본받으라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 옛글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옛글을 배워야 합니까?”

한유의 대답은 이렇다. “바로 그 하나도 같지 않은 그것을 배워야지. 내가 배우라는 것은 옛 사람의 말투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야. 바로 옛 사람의 정신을 배우라는 것일세.”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사기의師其意 불사기사不師其辭의 공안公案이다. 뜻을 본받을 뿐 그 말과 형식은 본받지 않는다. 그 말과 형식은 오히려 제거하기에 힘써야할 대상일 뿐이다. 그의 무거진언務去陳言’, 즉 진부한 말을 제거하기에 힘쓴다는 말과 사필기출詞必己出’, 곧 표현은 자기만의 것이어야 한다는 화두가 그래서 나왔다. 한유의 사기의 불사기사와 연암의 법고이지변, 창신이능전은 그 표현은 다르지만 담은 뜻이 같다.

당나라 때 한유가 변려문에 찌든 문학의 폐단을 미워하여 고문운동을 제창했던 일, 그렇지만 정작 그 자신은 선진양한 고문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자기 시대의 문체를 개발하여 후대 당송고문의 선하先河를 열었던 것이나, 연암이 당대 과문科文에 절은 속투俗套를 혐오하여 새로운 고문 운동을 제창하고, 그 결과 한 시대의 진정을 담은 살아 숨 쉬는 글을 써낸 것은 동공이곡同工異曲의 합창이었다. 그럴진대 한유가 옛것을 표방하면서 정작 자기 시대의 글을 쓴 것은 후대 고문가의 찬양을 받아 마땅하고, 연암이 새것과 옛것의 조화를 추구하며 자기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은 패관소품으로 지탄을 받아야 하는가? 한유도 그 당대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버림받은 이름이었을 뿐이다.

연암은 고문가인가 아닌가? 결론적으로 말해 연암은 고문가가 아니었기에 진정한 의미의 고문가일수 있었다. 그는 껍데기만의 고문은 가짜일 뿐이라고 했다. 변할 수 있는 것만이 진정으로 변치 않는 가치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문학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함을, 그렇지만 그 새로움은 언제나 예로움에 바탕 해야 함을 그는 주장하였다. 그는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이치를, 불변의 옛것이란 어디에도 없음을, 새로울 때만이 예로울 수 있으며 새것과 옛것은 결코 별개일 수 없음을 문학적 실천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그는 고문가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8A11

고문이란 무엇인가?

연암체와 연암에 대한 숱한 오해

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2. 새 것을 만든다는 건 기이한 걸 만드는 게 아니다

3.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하라

4. 옛 것을 본받되 변할 줄 아는 예

5.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한 예

6. 法古而知變刱新而能典의 또 다른 예

7. 해답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8. 연암은 고문가일까?

8-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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