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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357. 풍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357. 풍

건방진방랑자 2020. 6. 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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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풍각(風角)

고대의 기후를 점치는 법인데 궁ㆍ상ㆍ각ㆍ치ㆍ우 오음(五音)으로써 바람을 점쳐 길흉을 정하는 것이다. 당 나라 유효공(劉孝恭)이 풍각(風角) 10권을 저술하였다.

 

풍각타(風脚駝)

우전(于闐)에 조그만 사슴이 있으니, 뿔이 가늘고 길다. 낙타와 교접하여 낳은 새끼를 풍각타라 이르는데, 하루에 7백 리를 가고 그 빠름이 바람과 같다.” 흡문기(洽聞記)

 

풍간(豊干)

() 나라 때 중의 이른다. 봉간(封干)이라고도 하는데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화신이라고 전한다.

 

풍간요설(豐干饒舌)

한산(寒山)과 습득(拾得) 두 중이 미친 것처럼 행세를 하여 절에서 천대를 받았는데, 풍간(豐干)이란 중이 말하기를, “한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이요, 습득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이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이가 한산과 습득에게 가서 절하니, 한산과 습득은 말하기를, “풍간이 입이 싸구나(饒舌).” 하였다. 풍간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화신(化身)이라 한다.

 

풍계공(楓溪公)

풍계(楓溪)는 계곡의 장인인 김상용(金尙容)의 호이다.

 

풍공백수초(馮公白首招)

한 무제(漢武帝) 때 풍당(馮唐)90세의 나이에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었던 고사가 전해 온다. 사기(史記)102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풍교반야종(楓橋半夜鍾)

당 나라 장계(張繼)라는 사람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란 시에, “고소성 밖에 한산사(姑蘇城外寒山寺)에서, 밤중에 치는 종소리 나그네 배에 들려 오네[夜半鐘聲到客船].”라는 말이 있으므로, 그것을 인용한 것이다.

 

풍구(風甌)

풍경의 일종. 흙으로 만든 작은 방울인데, 흔히 탑의 네 귀에 단다.

 

풍군(馮君)

세상의 존경을 받는 형제 중의 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 나라 풍야왕(馮野王)과 풍립(馮立) 형제가 훌륭한 공직 생활로 세인(世人)으로부터 대풍군(大馮君), 소풍군(小馮君)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마침 도사가 풍씨이기 때문에 이 고사를 차용한 것이다. 한서(漢書)』 『풍봉세전(馮奉世傳)

 

풍궁(馮弓)

가득히 당기다. 만궁(滿弓).

 

풍근(風斤)

옛날 초() 나라 영() 땅 사람이 자기 코 끝에다 흰 흙을 마치 파리 날개만큼 얇게 발라 놓고, 장석(匠石)을 불러 그 흙을 닦아 내게 했더니, 장석이 바람이 휙휙 나도록 도끼를 휘둘러 그 흙을 완전히 닦아 냈으나, 그 사람의 코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곧 문장의 솜씨가 아주 정교함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풍근망질(風斤亡質)

친구의 죽음을 슬퍼한 말이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에 의하면, () 나라 영() 사람이 흰 흙을 파리 날개처럼 얇게 바르고 장석(匠石)을 시켜 그 흙을 닦아내게 하자, 장석은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자귀를 휙휙 놀려 그 흙을 닦아내는데, 흙만 다 닦아지고 코는 상하지 않았으며, 영 사람 역시 조금도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송() 나라 임금이 이 말을 듣고 장석을 불러 이르기를 시험삼아 과인(寡人)에게도 해보라.” 하니, 장석이 말하기를 ()이 그전에는 그것을 깎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의 질()이 죽은 지 오래이기에 할 수가 없습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 말한 질은 곧 자기와 잘 통하는 상대, 즉 지기(知己)의 뜻이 된다.

 

풍근사영질(風斤思郢質)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서울인 영() 땅의 사람이 백토를 그 코 끝에 매미 날개만큼 엷게 바르고 대목더러 깎으라 하니, 대목이 도끼를 휘둘러 바람을 내며 깎되, 백토만을 깎고 코는 상하지 않았으며, 영 사람은 선 채로 얼굴빛도 변치 않았다. 여기의 바탕은 도끼질을 받는 나무 바탕이란 뜻이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풍기일개혼돈망(風氣一開混沌亡)

혼돈(混沌)은 천지가 아직 개벽하기 이전인 불분명(不分明)한 상태를 말하는데, 이 말은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과 홀()이 혼돈에게 날마다 한 구멍씩 뚫으니, 7일 만에 혼돈이 죽었다.” 한 데서 온 말로, 즉 인간의 지교(智巧)가 천진(天眞)을 잃게 됨을 비유한 것이다.

 

풍년(豐年)

신농씨의 악가로서, 그 뜻은 대체로 신농씨가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 공로를 칭송한 것이다.

 

풍녕군(豐寧君)

홍보(洪寶)의 봉호(封號)이다.

 

풍노(馮怒)

크게 노하다는 뜻이다.

 

풍노(風爐)

차나 술을 달일 때 쓰는 조그마한 화로를 말한다.

 

풍뇌상(風雷象)

주역(周易)에서 익괘(益卦)의 효상(爻象)이 풍뢰(風雷)이다.

 

풍당(馮唐)

한 문제(漢文帝) 때에 중랑서장(中郞署長)을 지냈는데, 무제(武帝) 때에는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었으나 나이가 90여 세가 되어 벼슬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의 아들에게 대신 벼슬을 내리었다.

() 나라 안릉인(安陵人)으로 문제(文帝) 때 중랑서장(中郞署長)에 발탁되었다. 때마침 흉노가 국경의 근심거리로 등장하게 되자 문제가 풍당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염파(廉頗)와 이목(李牧) 같은 장수를 얻을까?” 하니, 풍당은 한 나라의 법이 상은 가볍고 죄는 무거우니 비록 염파나 이목을 얻는다 해도 쓸 수 없다.” 하면서 운중수(雲中守)인 위상(魏尙)이 흉노를 물리치고도 오히려 죄에 걸려 있는 것을 얘기했다. 그러자 문제는 위상을 복직시키고 풍당을 거기도위(車騎都尉)에 제수하였다. 사기(史記)卷一百二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풍대(豐臺)

중국 북경 우안문(右安門) 밖 완평현(宛平縣)에 있는 대의 이른다.

 

풍대특(豐大特)

풍수(豐水)에 살았다는 큰 소. 진 문공(秦文公) 때 옹남산(雍南山)에 있는 큰 가래나무를 베었는데 벤 나무 속에서 한 마리의 청우(靑牛)가 나와서 풍수로 들어갔는데 가끔 발작하곤 했다. 그 뒤에 노특사(怒特祠)를 세워주었다. 녹이전(錄異傳)

 

풍도중규명(風饕衆竅鳴)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거대한 흙덩어리가 기운을 내뿜나니, 그 이름을 바람이라 한다. 이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일단 일어났다 하면 일만 개의 빈 구멍들이 성내어 울부짖기 시작한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呺].”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풍두(豊頭)

연산군이 처용가면(處容假面)을 풍두(豊頭)라 고쳐 부르고 거기에 금은 주옥(金銀珠玉)을 장식하였다.

 

풍등(馮鄧)

광무제(光武帝)를 도와 후한(後漢)의 중흥을 이룩한 공신(功臣)인 풍이(馮異)와 등우(鄧禹)를 지칭한다.

 

풍랑(馮郞)

한 문제(漢文帝) 때에 중랑서장(中郞署長)을 지낸 풍당(馮唐)을 가리킨다. 무제(武帝) 때에는 현량(賢良)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풍랑출무거(馮郞出無車)

예전 제 나라의 정승인 맹상군(孟嘗君)이라는 사람이 손()을 좋아하여 집에서 먹고 자는 손이 3천여 명이었다. 그때에 풍완(馮湲)이라는 사람이 와서 손노릇하는데 저녁에 가위()를 두드리며, “나가는데 수레가 없다.” 하고, 노래하여서 수레를 주었다. 그 후에 맹상군이 나라에서 정승이 면직되었을 적에 풍완의 힘으로 복직된 일이 있다.

 

풍뢰(風雷)

폭풍이 불고 우레가 진동하는 것처럼 임금이 노여워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풍류(風流)

()으로 제왕이 백성을 다스리는 예()ㆍ악()ㆍ형( )ㆍ정()의 하나, 최고의 악은 소리가 신묘하고 아름다운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중후하고 여운이 있어 덕의 기상이 있다한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예로써 인심을 유도하고 악으로써 사람의 소리를 조화시키고 정()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을 통일시키고 형()으로써 사회의 부정을 방지한다. 예악형정의 궁극 목적은 모두 같으니, 인심을 한 곳에 모아 천하를 다스리는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였고, 같은 책에 청묘(淸廟)의 악장을 연주할 때 쓰는 비파는 그 줄이 붉은색 실을 꼬은 것으로 박자가 드물어 중후한 소리가 난다.” 하였다.

 

풍류진(風流陣)

당현종(唐玄宗)이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술에 취하여 놀 때, 현종과 귀비가 각각 백여 명의 궁녀를 거느리고 양편으로 늘어서서, 풍류진이라 부르고 서로 공격하는 희롱을 하되 붉은 속치마를 입고 비단천으로 깃발을 만들었으며, 진 편은 큰 술잔으로 벌주를 마시게 했었다.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 「풍류진(風流陣)

② 『천보유사(天寶遺事)명황(明皇)이 귀비와 함께 주연(酒宴)이 한창 벌어질 무렵에 이르면 귀비에게는 궁비(宮妃) 1백여 명을 거느리게 하고 임금은 중소귀(中小貴) 1백여 명을 거느려 두편으로 나누어 액정(掖庭) 가운데 배치하고 이름을 풍류진이라 하는 한편 하피(霞被)와 금주(錦袾)를 벌여 표기(標旗)를 만들고 쌍방이 서로 겨루게 하여, 패한 자에게는 큰 잔에 술을 따라 벌()하는 것으로 웃음거리를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상서롭지 못한 조짐이라 하였는데, 그 뒤에 과연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다.” 하였다.

 

풍륜(風輪)

귀한 사람이 타는 수레. 유효작시(劉孝綽詩)월전(月殿)에 붉은 깃발 빛나고, 풍륜(風輪)에 보배로운 방울이 울린다.” 하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바 이 세계를 받치고 있는 땅속의 3() 가운데 가장 밑에 있다는 수레바퀴로, 밑바닥으로 전락한 말세의 양상을 뜻하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위로는 비상의 끝 역시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 아래로는 땅의 끝 풍륜과 함께 일개 치상(癡想)[上窮非想亦非非 下與風輪共一癡].”이라는 표현이 있다.

 

풍륭(豐隆)

구름을 맡은 귀신 말한다. 뇌사(雷師)라고도 한다. 광아(廣雅)』 「석천(釋天)

 

풍림옥로(楓林玉露)

가을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추흥팔수시(秋興八首詩)玉露凋傷楓樹林에서 기인된 것이다.

 

풍마우(風馬牛)

암내난 말과 소의 암컷과 수컷이 서로 찾아도 만날 수 없다는 말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4년 조(), “그대는 북해(北海)에 있고 과인은 남해(南海)에 있으니, 이는 암내난 말과 소가 미칠 수 없는 것과 같네[風馬牛不相及]”하였다.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관계가 없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풍모원난측(豐耗元難測)

정월 8일에는 곡식 농사를 점치는데, 날씨가 청명하고 온화하면 풍년이 들고 음산하고 싸늘하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사물기원(事物紀原)正朔曆數部 人日

 

풍문(風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말한다.

 

풍박(風搏)

붕새()가 남쪽 바다로 갈 적에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나 올라간다는 데서 온 말로, 큰 기세를 얻은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풍발(豊綍)

장례식을 통칭하는 말로 인산을 말한다. ()은 하관(下棺) 때의 녹로 장치인 풍비(豊碑)를 말하며, ()은 상엿줄을 말한다.

 

풍백(風伯)

전설 속에 나오는 바람을 맡은 신(風神)이다.

 

풍부선박(馮婦善搏)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풍부(馮婦)라는 사람이 범을 잘 때려잡았는데, 뒤에 얌전한 선비(善士)가 되었다. 뒷날 들에 나가니 뭇사람들이 범을 쫓는데, 범이 바위를 등지고 있어 감히 칠 자가 없는지라, 풍부를 바라보고 달려가 맞으니, 풍부가 팔을 내두르며 수레에서 내려왔다. 뭇 사람이 다 기뻐했으나 선비 된 사람들은 웃었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풍부양비(馮婦攘臂)

일의 가부곡직은 불고하고 인기 편승에만 관심을 둠. ()의 풍부라는 자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잘 잡았는데, 뒤에 그 일을 그만두고 선사(善士)가 되었다. 어느 날 들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를 쫓다가 풍부가 오는 것을 보고는 모두 달려가서 반갑게 맞았다. 이에 풍부가 다시 팔을 걷고 수레에서 내리자 많은 사람들은 좋아했고 식견 있는 사람은 그 일을 비웃었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풍부하거(馮婦下車)

맹자(孟子)가 일찍이 제 나라에 등용되었을 때, 마침 흉년이 들자 제왕(齊王)에게 권하여 당읍의 창고를 열어서 빈민(貧民)을 구제하게 한 적이 있었는데, 뒤에 맹자가 조정에서 물러난 이후에 또 흉년이 들자, 진진(陳瑧)이 맹자에게 말하기를, “국인(國人)들이 부자(夫子)께서 장차 다시 당읍의 창고를 열게 할 것이라고 여기나, 다시 그렇게 할 수 없을 듯합니다.” 하니, 맹자가 이르기를 그렇게 하다면 바로 풍부(馮婦)와 같은 사람이다. () 나라에 풍부란 사람이 있어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곤 하다가 끝내 착한 선비가 되었었다. 그 후 들판을 지나는데, 뭇 사람이 호랑이를 쫓으니, 호랑이가 산기슭을 등지고 있어 아무도 감히 덤비지 못하고 풍부에게 가서 그를 맞이하였다. 그러자 풍부가 팔뚝을 뽐내고 수레에서 내리니, 뭇 사람들은 기뻐하고, 선비는 그를 비웃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풍비(豐碑)

공적을 기록한 거대한 석비(石碑)를 말한다.

 

풍비박산(風飛雹散)

우박이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날아가 산산히 깨지고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일이나 사물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망가지고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흔히 풍지박산으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풍비환수사어총(豐碑還樹史魚塚)

고구려의 정벌을 중지하라고 간언을 올린 사람의 무덤에 비석을 세웠다는 뜻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위() 나라의 대부인 사어(史魚)가 죽음에 임해서도 임금에게 간언을 올리기를 잊지 않아, 그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살아서는 어진 거백옥(蘧伯玉)을 진출시키지 못하였고 불초한 미자하(彌子瑕)를 물러나게 하지 못하였는바, 죽은 뒤에 정당(正堂)에서 치상(治喪)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러니 실()에다가 빈소를 마련하라.” 하였는데, 위군(衛君)이 그 사실을 알고는 거백옥을 불러들이고 미자하를 내쳤다. 한시외전(漢詩外傳)7

 

풍산(酆山)

안동(安東)의 속현(屬縣)이다.

 

풍상(風霜)

바람과 서리처럼 엄숙하고 맹렬함을 상징하는 뜻에서 불법(不法)을 규탄하는 준열(峻烈)한 법관(法官)의 풍도를 이른다.

 

풍상(馮相)

주대(周代)의 관직을 맡은 풍상씨(馮相氏). 춘관(春官)에 소속되어 천체(天體)의 운행을 관측하여 인간의 길흉(吉凶)을 미연에 알아내는 직책을 맡았음. 주례(周禮)春官 保章氏馮相氏

 

풍생(馮生)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사람 풍환(馮驩)을 가리킨다. 풍환이 맹상군(孟嘗君)의 문객(門客)이 되어 맹상군의 지시로 () 땅에 가서 빚을 받아오게 되었는데, 설 땅에 도착해서 빚을 받는 대신 빚진 사람들의 문서를 모두 모아서 불태운 다음 잔치를 베풀어 주자,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그 뒤에 맹상군이 쫓겨나서 설 땅으로 가자 설 땅 사람들이 모두 나와 맞이하였으며, 맹상군은 이를 기반으로 하여 다시 실권을 장악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사기(史記)卷七十五 맹상군전(孟嘗君傳)

 

풍생진일탄장협(馮生盡日彈長鋏)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며 보다 나은 생활을 바라는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풍훤(馮諼)맹상군(孟嘗君)의 식객으로 있으면서 보다 나은 대우를 요구하며 장검의 노래를 불렀던 고사가 있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4, 사기(史記)卷七十五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풍성검(豐城劍)

풍성(豐城)은 진() 나라 때 있었던 현()으로 현재의 강서성(江西省) 남창현(南昌縣) 남쪽에 있었다. 진서(晋書)』 「장화전(張華傳)장화가 붉은 기운이 언제나 북두성에 뻗쳐있으니 이것이 무슨 기운인가?’ 하고 묻자, 천문에 밝은 뇌환(雷煥)보검(寶劍)의 기운이 하늘에 비쳐서입니다.’ 하였다. 몇 해 뒤에 장화는 풍성 원이 되어 옥() 터를 파다가 두 자루의 칼을 얻었는데, 하나는 용천(龍泉), 하나는 태아(太阿)라 새겨진 보검이었다. 이 보검을 발굴한 뒤로는 북두성 사이의 붉은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하였다.

 

풍성기(豐城氣)

서기(瑞氣)가 하늘로 뻗친 것을 말한다. ()의 풍성령(豐城令) 뇌환(雷煥)이 두우성(斗牛星) 사이에 뻗친 검기(劍氣)를 발견하고 나서, 풍성의 옥()터를 발굴하여 용천(龍泉)ㆍ태아(太阿) 두 자루의 명검(名劍)을 획득했다고 한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풍성망두우(豐城望斗牛)

중국 예장군(豫章郡) 풍성현(豐城縣)에 보검(寶劍)이 땅에 묻혀 밤마다 자기(紫氣)를 두우(斗牛) 사이에 쏘아서 비췄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진서(晉書)36 장화열전(張華列傳)

 

풍성양신검(豊城兩神劒)

걸출한 인재 또는 걸출한 인재가 알아주는 사람을 기다려서 뜻을 폄을 비유. ()나라가 멸망하지 않았을 때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사이에 항상 붉은 기운이 있으므로 혹자는 오나라가 바야흐로 강성한 소치다.” 하였는데, 급기야 오 나라가 망하자 붉은 기운은 더욱 뚜렷했다. 그래서 장화(張華)는 뇌환(雷煥)이 위상(偉象)을 통달했다는 말을 듣고 초청하여 함께 천문(天文)을 보니 뇌환은 말하기를 두성ㆍ우성의 사이에 이상한 기운이 있는 것은 바로 보검(寶劒)의 정기가 위로 하늘에 통하기 때문이다.” 하므로 장화가 어느 고을에 있겠는가하고 물으니 뇌환은 풍성에 있다.”고 했다. 장화는 곧 뇌환에게 부탁하여 비밀리에 찾기 위해 풍성령(豊城令)으로 보직되게 하니, 뇌환은 풍성현에 도임하여 옥옥(獄屋)의 기지를 파서 하나의 석함(石函)을 얻었었다. 그 속에 쌍검(雙劒)이 들어 있고 아울러 제각(題刻)이 있는데, 하나는 용천(龍泉)’ 하나는 태아(太阿)’라 하였다. 그날 저녁부터 두성ㆍ우성의 사이에 기운이 다시 나타나지 아니했다. 진서(晋書)』 「장화전(張華傳)

 

풍성학려(風聲鶴唳)

바람 소리와 울음소리란 뜻으로, 겁을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이나 작은 소리에도 몹시 놀람.

 

 

 

풍소소역수한(風蕭蕭易水寒)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도다라는 뜻의 시의 한 구절로써, 장부가 큰 뜻을 품고 먼 길을 떠나는 마음을 표현한 고사성어다.

 

풍속통(風俗通)

풍속통의(風俗通議)의 약칭. 후한 응소(應劭)의 찬. 풍속의 과류(過謬)를 논한 것으로 본래 30권이었으나, 뒤에 산일되고 현존 10권 부족, 1권은 후인의 집록(輯錄)이라 한다.

 

풍수(風樹)

부모가 이미 돌아가셔 효도를 다하지 못한 통한(痛恨)을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가 길을 가는데 고어(皐魚)란 사람이 슬피 울고 있기에 까닭을 물었더니,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 싶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하였다 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

 

풍수부대(風樹不待)

부모를 오래도록 모시지 못함을 슬퍼한 말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오래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한 데서 온 말이다.

 

풍수불포고어정(風樹不抱皐魚情)

풍수는 바람이 이는 나무이고, 고어(皐魚)는 옛날 효자의 이름으로, 곧 아직은 부모가 살아 계셔서 봉양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9권에, “나무는 고요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고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也].”하였다.

 

풍수비(風樹悲)

풍수지통(風樹之痛)과 같은 말인데 부모가 죽어 봉양하지 못하여 슬퍼한다는 뜻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나무는 고요히 있고 싶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 싶지만 어버이가 계시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也].”고 하였는데, 후세에 이를 인용해 부모를 오래 봉양하지 못한 슬픔에 비유하였다.

 

풍수여애(風樹餘哀)

이미 세상 떠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한 슬픔을 말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아들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였다.

 

풍수지탄(風樹之嘆)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의 탄식.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효도할 기회를 잃은 것을 탄식한다.

 

풍수통(風樹痛)

나무가 잠잠해지려 하나 바람이 자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시지 않는도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자식이 어버이를 여읜 슬픔을 말한다. 한시외전(漢詩外傳)9

 

풍시(風詩)

시경(詩經)국풍(國風) 15편으로 즉 주남(周南)ㆍ소남(召南)ㆍ패()ㆍ용()ㆍ위()ㆍ왕()ㆍ정()ㆍ제()ㆍ위()ㆍ당()ㆍ진()ㆍ진()ㆍ회()ㆍ조()ㆍ빈()을 이른다.

 

풍신(楓宸)

제왕의 궁전을 말한다. ()은 북신(北辰)이 있는 곳으로 임금의 궁궐을 뜻하는데, () 나라 때 그곳에 단풍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풍씨당웅(馮氏當熊)

() 나라 성제(成帝)가 동물원에서 노는데, 갑자기 곰이 뛰어나와 임금 있는 쪽으로 달려오니, 모시고 있는 풍원(馮媛)이 급히 나서서 곰의 앞에 막아서며, “맹수(猛獸)는 사람을 얻으면 그치는 것이다.” 하였다.

 

풍아(風雅)

시경(詩經)의 국풍(國風)과 대아(大雅)ㆍ소아(小雅)를 말하는데, 전하여 바르고 고상한 시문(詩文)의 비유로 쓰인다. 시경(詩經)(), “()에는 육의(六義)가 있으니 1은 풍(), 2는 아()하였고, 그 주에, ‘한 나라의 일은 풍()이 되고 천하의 일은 아()가 된다.’ 하였다.

 

풍앙(渢泱)

춘추시대(春秋時代) 때에 오() 나라 계찰(季札)이 주() 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가서 각국의 음악을 듣고 ()의 음악은 풍풍하고 제()의 음악은 앙앙하구나.” 하였다.

 

풍어(風馭)

전설 속에 나오는 수레로, 바람을 타고 몰아가는 신선의 수레를 말한다.

 

풍어초상(風於草上)

공자(孔子)의 말에, “윗사람의 덕은 바람이요, 아랫사람은 풀과 같아서 반드시 바람을 따른다.” 하였다. 논어(論語)』 「안연(顔淵)

 

풍연(風煙)

멀리 보이는 공중에 서린 흐릿한 기운. 바람과 안개의 합칭이다.

 

풍연(馮衍)

후한 때의 고결한 선비로, 처음 왕망(王莽) 밑에서 벼슬을 하다가 그만두고 뒤에 광무제(光武帝)를 섬겼는데, 광무제가 외척을 처벌할 때 풍연 또한 죄를 얻었다가, 풀려난 뒤로는 고향에 돌아가 평생을 두문불출하였다. 그래서 풍연은 불우하고 강직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후한서(後漢書)卷二十八

 

풍영(風詠)

바람을 쐬고 시를 읊조림. 공자(孔子)가 제자들 취향을 물었을 때 증점(曾點)이 대답했던 것. 논어(論語)』 「선진(先進)

 

풍영정(風詠亭)

상주(尙州)에 있다.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이색(李穡)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의 기문(記文) 이숭인(李崇仁)의 시() 등이 있다.

 

풍예(豊豫)

풍괘와 예괘(豫卦). 풍형예대(豊亨豫大). 풍괘는 성대함을, 예괘(豫卦)는 기쁨을 상징하는 괘인데, 풍성하고 안락하여 태평함을 말한다.

 

풍옥(豐玉)

풍년옥(豐年玉)을 말한다. 세설상예(世說賞譽)세상에서 유량(庾亮)을 칭하여 풍년옥이라 하고 유익(庾翼)을 황년곡(荒年穀)이라 한다.” 하였다.

 

풍옥토홍(豐獄吐虹)

관직이 승진되는 것을 말한다.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사이에 항상 자기(紫氣)가 있으므로, 장화(張華)가 당시 천문에 정통했던 뇌환(雷煥)을 초청하여 그 사실을 묻자, 뇌환이 말하기를 보검(寶劍)의 정기가 하늘에 닿아서 그런 것이다.”고 하므로, 장화가 내가 젊었을 때 상보는 사람이 나에게, 60세가 넘으면 직위가 삼사(三事)에 오르고 틀림없이 보검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그 말이 사실일는지 모르겠다.” 하며, 그 보검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뇌환이 예장(豫章)의 풍성(豐城)에 있다.”고 하므로, 장화가 크게 기뻐하면서 이내 뇌환을 풍성령(豐城令)으로 임명하여, 그 곳에 함께 가서 옥옥(獄屋)의 기지(基址)를 판 결과, 용천(龍泉)ㆍ태아(太阿) 두 보검을 얻었다고 한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풍우갱슬본비광(風雩鏗瑟本非狂)

갱슬은 공자(孔子)가 증점(曾點)에게 자기 뜻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증점이 대답하기 위해 타던 비파를 땅에 놓는 것[鏗爾舍瑟]을 가리킨 말이고, 풍우는 증점의 대답 가운데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風乎舞雩)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 한 데서 온 말이며, 미치광이란 곧 뜻이 워낙 커서 행동이 뜻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데, 증점이 바로 거기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한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풍우경(風雨驚)

바람비를 놀랬다는 것은 두보(杜甫)시의 筆落驚風雨에서 따온 것으로 훌륭한 필치를 말한다.

 

풍우계명(風雨鷄鳴)

시경(詩經)정풍(鄭風) 풍우(風雨)風雨瀟瀟 雞鳴膠膠라고 하였는데, 그 서문(序文)난세(亂世)를 당하여 그 풍도(風度)를 변치 않는 군자를 생각하고 지은 시라고 하였다.

 

풍우대상(風雨對床)

() 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시원진형제(示元眞兄弟)시에 어찌 알았으랴 눈보라치는 이 밤, 다시금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잠들 줄을[寧知風雪夜 復此對床眠].”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후 여기에 근거하여 형제나 붕우와 어울려서 즐겁게 노니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풍우분상한(風雨分床恨)

형제나 혹은 친구간에 오랫동안 헤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위응물(韋應物)의 시 시전진원상(示全眞元常)’, “내 어찌 알았으랴 눈보라가 치는 밤에, 이처럼 침상 마주 대하고서 잠잘 줄을[寧知風雪夜 復此對牀眠].” 한 데서 온 말이다.

 

풍우불이(風雨不已)

시경(詩經)정풍(鄭風) 풍우(風雨), “비바람은 그믐같이 캄캄하온데 닭은 울어 그치지 않네. 아아, 그대를 만나뵈오니 그립던 이 마음이 안 기쁘리까.” 하였다.

 

풍운(風雲)

주역(周易)』 「건괘(乾卦)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니,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바라본다.”에서 나온 말로, 군신간에 뜻이 잘 맞는 것을 가리킨다. / 인용: 會盟後頒敎錫物賜宴兩功臣謝箋(장유)

 

풍운용호(風雲龍虎)

임금과 신하 사이를 말한 것으로, 바람은 호랑이, 구름은 용에 해당하고 용은 임금, 호랑이는 신하를 상징한다.

 

풍운제회(風雲際會)

주역(周易)』 「건괘(乾卦)문언전(文言傳)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 風從虎)”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명군(明君)과 양신(良臣)이 서로 만난 것을 말한다.

 

풍운지회(風雲之會)

주역(周易)』 「건괘(乾卦)문언(文言)바람이 범을 따르고 구름이 용을 따르듯 성인이 나오시면 만물이 그 덕을 보게 된다[風從虎 雲從龍 聖人作而萬物覩].”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훌륭한 임금과 신하가 만나게 된 것을 말한다.

 

풍운표도(風雲豹韜)

바람과 구름은 주역(周易)』 「건괘(乾卦)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에서 나온 것으로 군사들을 뜻하고, 표도는 용병(用兵)의 도략인데 곧 유능한 장수를 말한다.

 

풍운환기조어옹(風雲喚起釣魚翁)

풍운은 용호(龍虎)가 풍운을 만나 득세(得勢)하듯이 명군(明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남을 이른다. 고기 낚는 노인이란 바로 주 문왕(周文王)이 사냥하러 나갔다가 서로 만나게 된,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하던 강태공(姜太公)을 가리키는데, 이때부터 그가 문왕(文王)무왕(武王)을 차례로 보필하여 끝내 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풍운회(風雲會)

용호(龍虎)가 풍운을 만나 득세하듯이 명군(明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남을 말한다. 주역(周易)』 「건괘(乾卦)문언(文言)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니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이 우러러보는 것이다[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睹].” 하였다.

 

풍월(風月)

바람과 달로서 자연을 말한다. 풍월을 읊는다[음풍농월(吟風弄月)] 라고 하면, 바람을 읊조리고 달은 노래한다는 뜻으로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소재로 시를 짓는 것이다. 풍월은 사람들의 입에 배어 흔히 ()’를 뜻함

 

풍월주인(風月主人)

맑은 바람, 밝은 달 따위 자연을 즐기는 사람. 소동파(蘇東坡)가 적벽(赤壁)이란 곳에서 뱃놀이를 하며, 유랑인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신세를 탄식하고, 인간이 덧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명월과 청풍을 벗삼아 시름을 잊었다고 한다. 전적벽부(前赤壁賦)

 

풍융(豐隆)

고대의 전설 속에 나오는 뇌신(雷神)의 이름이다.

비를 내리는 일을 맡고 있다는 바람의 신.

 

풍이(馮夷)

물을 맡은 신()의 이름이다. 곧 하백(河伯)을 이른다. 사기(史記)』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使靈媧鼓瑟而舞馮夷라고 보인다.

하백(河伯)으로 수신(水神)의 이름인데 빙이(氷夷)ㆍ풍수(馮修)라고도 한다.

 

풍이굴(馮夷窟)

수궁(水宮)을 말한다. 풍이는 전설 속에 나오는 황하(黃河)의 신인 하백(河伯)으로, 수신(水神)이다.

 

풍이등롱(馮異登隴)

()나라 장수 풍이(馮異)가 농서(隴西)의 외호(隗囂)를 치러 갔다.

 

풍익(風鷁)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나는 물새.

 

풍익(馮翼)

너훌너훌, 펄렁펄렁(馮馮翼翼)의 뜻이다.

형체가 없이 어렴풋한 상태. 천지(天地)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의 상황. 원기(元氣). 음양지동(陰陽之動). 회남자(淮南子)주에 풍익은 무형한 모양이라 하였다.

 

풍인(楓人)

오래된 단풍나무에서 생긴 혹(瘤贅). 이것이 사람같이 생겼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폭풍우(暴風雨)를 만나면 3~5() 정도가 자란다고 한다.

 

풍자(風子)

광인(狂人), 또는 기인(奇人)의 뜻으로 쓰인다. / 인용: 처용(處容)

 

풍자(風姿)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습을 말한다. / 인용: 驅詩魔文(이규보)

 

풍전(豐篆)

비석을 말한다.

 

풍전등화(風前燈火)

바람 앞에 켠 등불. 매우 위급한 경우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풍전설(馮顚雪)

() 나라 풍당(馮唐)이 늙어서 흰머리가 되도록 낮은 벼슬인 낭관(郞官)으로 있었다.

 

풍정(豐呈)

진풍정(進豐呈)의 준말로, 대궐 안 잔치의 한 가지이다. 진연(進宴)보다도 규모가 크고 의식이 성대하였다.

 

풍정매지수(馮亭賣地羞)

() 나라 백기(白起)의 공격에 한() 나라 야왕(野王)이 항복을 하자, 상당(上黨)을 지키고 있던 풍정(馮亭)이 그 땅을 조() 나라에 바치고 연합 전선을 형성하여 함께 진 나라에 항거했던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5, 43

 

풍중와룡(豊中臥龍)

와룡은 촉한(蜀漢) 제갈량(諸葛亮)의 호이다. 풍중은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의 서쪽에 있는 융중산(隆中山)을 지칭하는 말인데, 일찍이 제갈량이 이 산에다 초려(草廬)를 짓고 거기에 은거했었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융중의 융자를 원문에 풍자로 쓴 것은 휘()하기 위함인 듯하다.

 

풍진(風塵)

병마(兵馬)가 치달리며 자욱하게 일으키는 먼지라는 뜻으로, 병란(兵亂)을 치른 뒤끝을 말한다.

 

풍진일임호우마(風塵一任呼牛馬)

세상의 비평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태씨는 자기가 말이 되기도, 소가 되기도 한다[泰氏 一以己爲馬 一以己爲牛].”는 말이 있다.

 

풍찬노숙(風餐露宿)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한데서 먹고 잠. 떠돌아다니며 모진 고생을 한다.

 

풍천(風泉)

시경(詩經)회풍(檜風) 비풍(匪風)장과 시경(詩經)조풍(曹風) 하천(下泉)장을 말한 것이니, 나라가 쇠약하고 말세가 됨을 한탄한 것이다.

 

풍천(風泉)

바람에 실려오는 맑은 샘물소리라는 뜻이다.

 

풍천비향(風泉悲響)

국가가 망한 것을 슬퍼하는 시를 가리킨다. 시경(詩經)회풍(檜風) 비풍(匪風)편과 시경(詩經)조풍(曹風) 하천(下泉)편은 모두 나라가 쇠미한 것을 읊은 것이므로 각각 한 자씩 따온 것이다.

 

풍청사현도(風淸思玄度)

현도(玄度)는 청담(淸談)을 즐겼던 동진(東晉)의 명사 허순(許詢)의 자()인데, 그의 벗 유윤(劉尹)이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이면 문득 그를 떠올렸다[淸風朗月 輒思玄度]는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풍초(豐貂)

옛날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이 쓰던 관()의 장식이다.

 

풍취우익(風吹羽翼)

두보(杜甫), “이백을 꿈에 보다(夢李白)”라는 시에, “그대 지금 그물속에 갇혀 있는데 어찌 새 날개를 가졌는고.” 하는 구절이 있다.

 

풍취토낭구(風吹土囊口)

송옥(宋玉)의 풍부(風賦), “바람이 토랑의 어구에서 일어난다.” 하였다.

 

풍탄무거(馮歎無車)

맹상군(孟嘗君)의 문객 풍환이 인정을 못받자 세 번이나 칼자루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는데, 첫 번째는 긴 칼자루여, 돌아가자꾸나. 밥상에 고기가 없구나.” 하고, 두 번째는 긴 칼자루여, 돌아가자꾸나. 출입에 수레가 없구나.” 하고, 세 번째는 긴 칼자루여, 돌아가자꾸나. 몸붙일 집칸도 없구나.” 하였던 바, 맹상군이 듣고 그 원을 풀어 주었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4, 사기(史記)卷七十五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풍패(豐沛)

중국의 풍현(豐縣) 패읍(沛邑)인데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곳으로서, 후대에 제왕(帝王)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사기(史記)8 고조본기(高祖本紀)

 

풍패향(豐沛鄕)

풍패(豐沛)는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이었으므로, 전하여 제왕(帝王)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풍폐(楓陛)

단풍의 섬돌, 곧 궁전(宮殿). 한대(漢代)에 궁중에 단풍나무를 심었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풍표(風標)

두목(杜牧) 등의 시에서 백로()를 풍표공자(風標公子)라고 하였다.

 

풍표(馮豹)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는 중문(仲文). 일찍이 낭관(郞官)이 되어 일을 아룄으나 허락하지 않자, 저녁에서부터 아침까지 성()에 부복하고 있었다. 이에 숙종(肅宗)이 기문랑(期門郞)으로 하여금 비단 이불을 갖다 덮어주게 하였다.

 

풍풍(渢渢)

떠 있는 모양

 

풍향(楓香)

풍목(楓木)의 지()를 말한 것인데, 도가(道家)에서 약에 조용(調用)한다.

 

풍혈(風穴)

바람굴. 북방에 바람이 나오는 곳이 있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이다.

 

풍호(風虎)

주역(周易)』 「건괘(乾卦)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니, 성인이 일어나자 만물이 우러러본다[雲從龍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고 하였는데, 이는 명철한 임금과 현명한 신하가 서로 의기 투합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풍호(豊鎬)

()ㆍ호()는 서주(西周)의 옛 도읍지로, 풍은 문왕(文王)이 세운 곳이고 호는 무왕(武王)이 세운 곳이다.

 

풍호자(風胡子)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사람으로, 칼을 잘 감정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풍화(風花)

바람에 떨어지는 꽃이나 바람꽃으로 바람이 일어나기 전에 생기는 뿌연 안개와 같은 현상을 말한다.

() 나라 진사도(陳師道)의 시 주수응물(奏酬應物)우리 인생 마치도 바람 속의 꽃잎인 양, 높고 낮음 역시 모두가 우연일세[生世如風花 高下亦偶然].”라는 구절이 나온다.

 

풍화설월일반춘(風花雪月一般春)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변화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달관(達觀)한다는 뜻이다. 풍화설월(風花雪月)은 사계절의 경색(景色)을 말한다. () 나라 소옹(邵雍)이천격양집서(伊川擊壤集序)雖死生榮辱 轉戰於前 曾未入于胸中 則何異四時風花雪月一過乎眼也라는 글이 있다. 본문의 시구는 소옹의 ()에 관한 시 가운데 三十六宮都是春이라는 표현을 연상케 한다.

 

풍환무어(馮驩無魚)

풍환(馮驩)이 처음 맹상군(孟嘗君)을 찾아갔더니 하등(下等)의 손으로 대접하였다. 풍환이 칼을 퉁기며 노래하기를, “칼아 돌아가자, 밥상에 고기가 없구나.” 하니, 맹상군이 듣고 다시 대접을 잘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사기(史記)卷七十五 맹상군전(孟嘗君傳)

 

풍후(風后)

황제 헌원씨의 신하 이름이다. 황제가 일찍이 대풍(大風)이 불어 세상의 먼지를 날려버리는 꿈을 꾸고서 풍후(風后)를 얻어 정승으로 삼았다 한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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