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신판을 내며
초판을 낸 지 꼭 10년이 흘렀다. 초판이 나오던 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는 바람에 몹시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난 4월 하순, 연구실 후배 몇 명과 연암이 갔던 길을 따라 요동벌판에서 북경을 거쳐 열하로 이어지는 코스를 다녀왔다. 요동에선 천지를 뒤흔드는 모래바람을 만났고, 북경에선 아시아의 지축을 뒤흔든 ‘사스와의 전쟁’을 목격했다. 그 체험을 『문화일보』에 연재했는데, 그 여행기가 부록으로 첨가되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2012년 여름, 이번엔 OBS팀과 함께 ‘신열하일기’ 다큐 촬영을 위해 다시 한번 연암의 여정을 고스란히 되밟게 되었다. 사스도, 황사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배를 타고 단동에서 출발했다. 덕분에 전혀 다른 중국, 아주 낯선 열하를 체험하게 되었다. 결국 그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누구도 같은 길을 두 번 지나갈 수 없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여행기와 사진들이 역시 부록으로 덧붙여졌다.
연암은 서재에 앉아 머리로 사유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길이 곧 글이고, 삶이 곧 여행이었다. 연암이 지나갈 때마다 중원천지에서 침묵하고 있던 단어들이, 문장들이, 그리고 이야기들이 잠에서 깨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연암은 그것들을 무심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절단, 채취했다. 걸으면서 쓰고, 쓰기 위해서 다시 걸었던 연암, 그리고 그의 분신이기도 한 『열하일기』, 나는 두 번의 여행을 통해 책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열하일기』를 만난 셈이다. 그런 까닭에 내게 있어 『열하일기』는 여전히 가슴 벅찬 설레임의 대상이다.
책을 내고 참으로 많은 선물을 받았다. 가장 큰 선물은 아마도 독자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 그리고 함께 길을 갈 수 있는 친구들과의 만남일 것이다. ‘인복’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가기 힘든 나 같은 존재에게 이보다 더 큰 행운은 없으리라.
이 개정신판을 읽는 독자들에게 지난 10년간 내가 『열하일기』로 인해 마주친 기쁨과 행운이 생생하게 전해졌으면, 참 좋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다. 나 역시 그 사이에 무수한 생의 변곡점들을 맞이했다. 그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이 책의 출판사인 북드라망과 내 공부와 일상의 거처인 ‘인문의역학연구소(감이당)’의 탄생이 될 것이다.
아울러 가장 기쁜 일은 초판의 부록에서 했던, 연암과 다산(茶山)의 차이를 탐색하겠다는 약속이 드디어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로 나오게 된 것이다. 지난 10년간 이 책을 아껴준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2013년 7월
남산 아래 <감이당> Tg스쿨 2층에서
고미숙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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