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고, 너는 나다”
1800년 정조가 죽으면서 한 시대가 막을 내린다. 영조, 정조가 이끌었던 18세기는 조선사의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새로운 기운이 만개했었다. 그것이 두 왕의 영도력 때문인지는 따져봐야 할 터이지만, 어쨌든 18세기는 천재들이 각축하는 ‘기운생동(氣運生動)’의 장이었다.
19세기는 그와 달라서 모순과 갈등은 폭발하였지만 한없이 메마르고 노쇠한 징후가 두드러진다. 안동김씨 세력이 세도를 잡으면서 시파(時派)에 대한 벽파(僻派)의 공격이 시작되고, 천주교도에 대한 일대 탄압이 벌어지면서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18세기를 특이한 연대로 만드는 데 있어 연암은 독보적 위상을 점한다. 연암이 없는 18세기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래서인가. 19세기가 되면서 연암도 생의 종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순조 즉위 후 강원도 양양부사로 승진했지만, 신흥사 중들과의 갈등 뒤에 노병을 핑계로 사직한다. 그후 서울 북촌 가회방 재동의 ‘계산초당(桂山草堂)’에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던 연암은 풍비(중풍)가 위중해지자, 약을 물리치고 친구들을 불러 조촐한 술상을 차려 서로 담소하게 한 다음 그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임종을 준비한다. 연암은 1805년 69세의 나이로 마침내 생을 마감한다. 유언은 ‘깨끗이 목욕시켜 달라’는 것뿐.
처남 이재성이 쓴 제문이 『과정록(過庭錄)』 3권에 실려 있는데 그 제문에는 “아아, 우리 공은 / 명성은 어찌 그리 성대하며 / 비방은 어찌 그리 많이 받으셨나요? / 공의 명성을 떠받들던 자라 해서 / 공의 속을 안 건 아니며 / 공을 비방하던 자들이 / 공의 ‘겉’을 제대로 본 건 아니지요[嗚呼我公! 名一何盛, 謗一何競? 噪名者, 未必得其情; 吠謗者, 未必見其形]”라고 했다. 그렇다. 누가 그를 제대로 알았으랴. 언젠가 연암은 크게 취해 자신을 찬미하여 「소완정의 하야방우기에 화답하다[수소완정하야방우기, 酬素玩亭夏夜訪友記]」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나를 위하는 것은 양주(楊朱)와 같고, 만인을 고루 사랑하는 것은 묵적과 같고 양식이 자주 떨어짐은 안회와 같고, 꼼짝하지 않는 것은 노자(老子)와 같고 활달한 것은 장자(莊子)와 같고, 참선하는 것은 석가와 같고 공손하지 않은 것은 유하혜(柳下惠)와 같고, 술을 마셔대는 것은 유령과 같고 밥을 얻어먹는 것은 한신(韓信)과 같고, 잠을 잘 자는 것은 진단(陳搏)과 같고 거문고를 타는 것은 자상(子桑)과 같고 글을 저술하는 것은 양웅(揚雄)과 같고 자신을 옛 인물과 비교함은 공명(孔明)과 같으니, 나는 거의 성인에 가까울 것이로다. 다만 키가 조교(曹交)보다 모자라고 청렴함은 오릉(於陵)에 못 미치니 부끄럽기 짝이 없도다.
吾爲我似楊氏, 兼愛似墨氏, 屢空似顔氏, 尸居似老氏, 曠達似莊氏, 參禪似釋氏, 不恭似柳下惠, 飮酒似劉伶, 寄食似韓信, 善睡似陳搏, 鼓琴似子桑戶, 著書似揚雄, 自比似孔明, 吾殆其聖矣乎? 但長遜曹交, 廉讓於陵, 慚愧慚愧.
약간은 장난기어린 이 취중언사는 연암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과연 그는 그렇게 살았다. 사랑하고, 가난하고, 고요히 머무르고, 술을 마시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서, 양주도 되었다가, 안연도 되었다가 유령도 되었다가 양웅도 되었다. 그 무엇도 될 수 있었지만, 그 무엇도 아닌 존재.
연암의 바로 뒷세대 문장가인 홍길주(洪吉周)는 「독연암집(讀燕巖集)」에서 『연암집』을 읽은 소감을 이렇게 피력한 바 있다.
수십 년 전에 한 사람이 있어, 기운은 족히 육합(六合)을 가로지를 만하고, 재주는 천고를 능가할 만하며, 글은 온갖 부류를 거꾸러뜨릴 만하였다. 그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 내가 이미 인사를 통하였으나 미처 만나보지는 못하였고, 미처 더불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못하였다. 그런데도 내가 한스럽게 생각하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중략)
數十歲之前有人焉, 氣足以橫六合, 才足以駕千古, 文足以顚倒萬類. 其在世也, 余已通人事, 然而未及見也, 然而未及與之言也. 然而吾不爲恨, 何也? (中略)
이제 내가 거울을 꺼내 지금의 나를 살펴보다가 책을 들춰 그 사람의 글을 읽으니, 그의 글은 바로 지금의 나였다. 이튿날 또 거울을 가져다 보다가 책을 펼쳐 읽어보니, 그 글은 다름아닌 이튿날의 나였다. 내 얼굴은 늙어가면서 자꾸 변해가고 변하여도 그 까닭을 잊었건만, 그 글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더 기이하니, 내 얼굴을 따라 닮았을 뿐이다.
今余取鏡而觀今之吾, 披卷而讀其人之文, 其人之文, 卽今之吾也. 明日又取鏡而觀之, 披卷而讀之, 其文卽明日之吾也; 明年又取鏡而觀之, 披卷而讀之, 其文卽明年之吾也. 吾之容老而益變, 變而忘其故, 其文則不變. 然亦愈讀而愈異, 隨吾之容而肖焉已矣.
연암이라는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연암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그리고 풍부하게 말해주는 글이다. 육합을 가로지를 만한 기운, 천고를 능가할 만한 재주, 온갖 부류를 거꾸러뜨릴 만한 글. 그에게 연암은 거대한 봉우리였을 터,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자신과 닮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변하는 만큼 따라서 변해가고 닮아가는 텍스트,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게 바로 연암이다. 연암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으리라.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열하일기』 「곡정필담(鵠汀筆談)」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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