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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3장 우발적인 마주침 열하 - 소문의 회오리 본문

문집/열하일기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3장 우발적인 마주침 열하 - 소문의 회오리

건방진방랑자 2021. 7. 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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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의 회오리

 

 

연암은 연행을 마치고 돌아와 3년여에 걸쳐 열하일기를 퇴고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초고가 나돌아 문인들 사이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여기 열하일기를 말할 때면 언제나 따라다니는 유명한 장면이 하나 있다. 뛰어난 문인이자 고위관료였던 남공철(南公轍)이 지은 박산여묘지명(朴山如墓誌銘)에 실린 삽화.

 

 

내 일찍이 연암과 함께 산여(山如)의 벽오동관에 모였을 적에, 이덕무와 박제가(朴齊家)가 모두 자리에 있었다. 마침 달빛이 밝았다. 연암이 긴 목소리로 자기가 지은 열하일기를 읽는다. 무관(懋官, 이덕무(李德懋)과 차수(次修) 박제가는 둘러앉아서 들을 뿐이었으나, 산여는 연암에게, “선생의 문장이 비록 잘 되었지마는, 패관기서(稗官奇書)를 좋아하였으니 이제부터 고문이 진흥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한다. 연암이 취한 어조로, “네가 무엇을 안단 말이야하고는, 다시금 계속했다. 산여 역시 취한 기분에 촛불을 잡고 그 초고를 불살라버리려 하였다. 나는 급히 만류하였다.

余嘗從燕巖朴美仲, 會山如碧梧桐亭館, 靑莊李懋官貞蕤朴次修皆在. 時夜月明, 燕巖曼聲讀其所自著熱河記, 懋官次修環坐聽之. 山如謂燕巖曰: “先生文章雖工好, 稗官奇書, 恐自此古文不興.” 燕巖醉曰: “汝何知?” 復讀如故. 山如時亦醉, 欲執座傍燭焚其藁. 余急挽而止.

 

 

이것이 그 유명한 촛불사건의 전모다. 보시다시피 열하일기가 불태워질뻔한 건 국가제도나 정적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연암 주변인물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권력은 늘 인접한 곳에서 작동한다고 한 미셸 푸코(Michael Foucault)의 말이 환기되는 대목이다.

 

더 재미있는 건 그 다음 대목이다. 연암은 짐짓 삐친척 몸을 돌이킨 채 일어나지 않는다. 이덕무(李德懋)가 거미 그림을 그리고, 박제가(朴齊家)가 병풍에 초서로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쓰자, 남공철이 연암에게 이 글씨와 그림이 극히 묘하니, 연암이 마땅히 그 밑에 발을 써서 삼절(三絶)이 되게 하시라며 달래주었으나, 연암은 끝내 못 들은 체한다. 날이 새자, 연암이 술이 깨어서 옷을 정리하고 꿇어앉고서는 산여야, 이 앞으로 오라. 내 이 세상에 불우한 지 오래라, 문장을 빌려 불평을 토로해서 제멋대로 노니는 것이지, 내 어찌 이를 기뻐서 하겠느냐. 산여와 원평(元年, 남공철) 같은 이는 모두 나이가 젊고 자질이 아름다우니, 문장을 공부하더라도 아예 나를 본받지 말고 정학(正學)을 진흥시킴으로써 임무를 삼아, 다른 날 국가에 쓸 수 있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네. 내 이제 마땅히 제군을 위해서 벌을 받으련다[山如來前. 吾窮於世久矣, 欲借文章, 一瀉出傀儡不平之氣, 恣其游戲爾. 豈樂爲哉? 山如元平, 俱少年美姿質, 爲文愼勿學吾, 以興起正學爲己任. 爲他日, 王朝黼黻之臣也. 吾當爲諸君受罰]’하고는 커다란 술잔을 기울여 마신 뒤, 다른 이들에게도 마시게 하여 호탕하게 풀어버린다.

 

아랫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문장을 내려놓아버리는 이 장면은 분위기가 사뭇 비감하다. 그것은 언표 그대로의 진실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 나는 아예 외부자로 살아가겠노라는 단호한 선언이기도 하다. 가까운 친지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데 대한 원망과 억울함이 어찌 없었을까마는 연암은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그들처럼,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남는 건 가는 길이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지 않는가. 아마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지.

 

 

 

 

한때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이 촛불사건은 사실 서곡에 불과했다. 이후 열하일기는 언제나 소문의 회오리를 몰고 다닌다. ‘오랑캐의 연호를 썼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을 유희했다’, ‘패관기서로 고문을 망쳐버렸다등등. 그 하이라이트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웬만큼 세상의 시시비비에 단련된 연암도 이렇게 한탄했을 정도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느냐? 책을 절반도 집필하기 전에 벌써 남들이 그걸 돌려가며 베껴 책이 세상에 널리 유포될 줄을. 이미 회수할 수도 없게 된 거지. 처음에는 심히 놀라고 후회하여 가슴을 치며 한탄했지만, 나중에는 어쩔 도리 없어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을 구경한 적도 없으면서 남들을 따라 이 책을 헐뜯고 비방하는 자들이야 난들 어떡하겠느냐?” 한마디로 한치의 명성이 높아지면, 비방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는 역비례 현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열하일기를 소문의 한가운데에 있게 했던 것일까?

 

분명 열하일기문제적인텍스트다. 어떤 방향에서건 사람들을 자극할 요소들을 무한히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악의적 비방이든 애정어린 비판이든 열하일기의 진면목을 본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대개 풍속이 다름에 따라 보고 듣는 게 낯설었으므로 인정물태(人情物態)를 곡진히 묘사하려다보니 부득불 우스갯소리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거나, “열하일기의 독자들은 이 책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대개 기이한 이야기나 우스갯소리를 써놓은 책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식의 평가만해도 그렇다. 상당히 우호적임에도 열하일기에센스인 유머와 해학을 서술의 곁다리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특장에 대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열하일기가 당대 지식인들을 당혹스럽게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보다 무수한 흐름이 중첩되는 유연성에 있을 것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물음을 구성할 수 있는 도저한 열정. ‘산천, 성곽, 배와 수레, 각종 생활도구, 저자와 점포, 서민들이 사는 동네, 농사, 도자기 굽는 가마, 언어, 의복 등등에서 역사, 지리, 철학 등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는 박람강기(博覽强記)’.

 

더욱이 그것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윤색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연암 자신이 도처에서 밝히고 있듯이, 모험에 찬 여정 속에서 기억과 기록이 많은 부분 사라지거나 희미해졌을 뿐 아니라, 도저히 한 사람의 관찰과 기억이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이 수두룩하게 담겨 있는 까닭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호질(虎叱)이다. 연암은 관내정사(關內程史)에서 한 점포의 벽에 붙은 기문(奇文)’을 일행인 정군과 함께 베꼈는 데, “사관에 돌아와 불을 밝히고 다시 훑어 본즉, 정군이 베낀 곳에 그릇된 곳이 수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빠뜨린 글자와 글귀가 있어서 전혀 맥이 닿지 않으므로 대략 내 뜻으로 고치고 보충해서 한 편을 만들었다[及還寓, 點燈閱視, 鄭之所謄, 無數誤書, 漏落字句, 全不成文理. 故略以己意點綴爲篇焉]”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남아 있는 텍스트 중에서 대체 어디까지가 정군이 베낀 것이며, 어디까지가 연암의 윤색이란 말인가(Nobody knows!).

 

어디 호질(虎叱)만 그럴까. 양매시화(楊梅詩話)에서는 필담했던 초고 가운데 겨우 10분의 3, 4만이 남았는데, 더러는 술취한 뒤에 이룩된 난초’, ‘저무는 햇빛에 달린 필적이었다니, 이쯤 되면 사실과 허구를 분별하기란 요원할 터, 아니 이 마당에 분별 자체가 무의미하다. 게다가 수많은 판본이 떠돌면서 윤색이 가해졌던바, 그야말로 열하일기는 미완의 텍스트인 것. 물론 이때 미완성이란 결여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완결된 체계를 계속 거부하는, 그리하여 수많은 의미들을 생성해낸다는 의미에서의 그것이다. 열하일기를 둘러싼 무성한 스캔들은 그 의미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일으킨 사소한’(!) 잡음에 불과하다.

 

 

 

 

인용

목차 / 박지원

열하일기 / 문체반정

마침내 중원으로!

웬 열하?

소문의 회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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