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문명과 똥
‘똥과 문명의 함수’ 아니면 ‘똥의 역사’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웬 ‘개똥’ 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이건 정말 진지한 담론적 이슈다. 똥이야말로 문명의 배치를 바꾸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였던바, 어찌 보면 똥의 역사야말로 태초 이래 인류의 궤적을 한눈에 집약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요즘 사람들의 똥에는 파리가 들끓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독성이 강해서 파리떼도 기피한다는 것이다. 이러다간 ‘똥파리’라는 종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똥파리 없는 똥’,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바로 이 사실만큼 인류가 현재 처한 상황을 잘 말해주는 것도 없지 않은가? 생태계의 파괴, 이성의 경계, 타자성 등, 지금 소위 ‘포스트 모던’ 철학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들이 모두 그 안에 있다.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을 기억하는지. 연암의 초기작인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속한 작품이다. 그 글의 주인공 엄항수(嚴行首)는 똥을 져다 나르는 분뇨장수다. 그는 사람똥은 말할 것도 없고, 말똥, 쇠똥, 닭ㆍ개. 거위 똥까지 알뜰히 취하되 마치 주옥처럼 귀중히 여겼다고 한다. 연암은 그의 고결한 인품에 매료되어 ‘스승이라 이를지언정 감히 벗이라 이르지 못’하겠노라며 ‘예덕선생’이란 호를 지어 바친다. 이처럼 똥에 대한 연암의 애정(?)은 젊은 날부터 남다른 바가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연암이 세계제국 청문명의 정수를 본 것도 바로 ‘똥’에서였다. “청문명의 핵심은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瓦礫糞壤 都是壯觀]”. 이 명제만큼 연암의 사유가 농축되어 있는 문장도 드물다. 대개는 이 명제를 그저 이용후생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말지만, 그건 너무 싱거운 해석이다. 이 명제 안에는 연암 특유의 패러독스 그 전복적 여정이 생생하게 농축되어 있는 까닭이다.
「일신수필(馹汛隨筆)」에서 그는 우리나라 선비들의 북경 유람을 이렇게 분류한다. 소위 일류 선비(上士, 상등으로 인정받는 선비)는 황제 이하 모두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되놈이고 되놈은 곧 짐승이라 볼 것이 없다고 하고, 소위 이류 선비(中士, 중등으로 인정받는 선비)는 장성의 시설 및 무장 상태를 눈여겨보고서는, “진실로 10만 대군을 얻어 산해관으로 쳐들어 가서, 만주족 오랑캐들을 소탕한 뒤라야 비로소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誠得十萬之衆 長驅入關 掃淸凾夏 然後壯觀可論].”라고 한다. 그에 대해 연암은 “이는 『춘추』를 제대로 읽은 사람의 말[此善讀春秋者也]”이라며 조선이 명나라를 섬기는 연유에 대한 충분한 공감을 표명한다. 그러나 그는 이 중화주의적 영토 위에서 탈영토화하는 선분을 중첩시킨다.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만 한다. 더구나 삼대(三代) 이후의 성스럽고 현명한 제왕들과 한ㆍ당ㆍ송ㆍ명 등 여러 왕조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한 원칙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성인이 『춘추』를 지으실 제, 물론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려고 하셨으나, 그렇다고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히는 데 분개하여 중화의 훌륭한 문물제도까지 물리치셨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일신수필(馹汛隨筆)」
而况三代以降聖帝明王漢唐宋明固有之故常哉 聖人之作春秋 固爲尊華而攘夷 然未聞憤夷狄之猾夏 並與中華可尊之實而攘之也
천하의 이로움, 성인의 뜻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서두를 열고 있다. 누가 이런 논지에 반대를 표하겠는가.
다음,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이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전해오는 법을 모조리 배워서 먼저 우리나라의 유치한 습속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밭갈기, 누에치기, 그릇굽기, 풀무불기부터 공업, 상업 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이 열을 배우면 우리는 백을 배워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 우리 백성들이 몽둥이를 만들어두었다가 저들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두들길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故今之人誠欲攘夷也 莫如盡學中華之遺法 先變我俗之椎魯 自耕蠶陶冶 以至通工惠商 莫不學焉 人十己百 先利吾民 使吾民制梃 而足以撻彼之堅甲利兵 然後謂中國無可觀可也]”. 오랑캐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인민을 이롭게 하는 일을 두루 마스터하는 일이 급선무고, 그 이후에야 무력으로써 오랑캐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중화주의의 명분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은 채, 슬그머니 논점을 ‘이용후생’으로 옮겨놓았다.
이쯤 되면, 중화주의의 명분을 뚫고 나오는 새로운 담론의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에 대해 반론을 펴기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중화주의라는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머뭇거리는 동안 완전히 판이 바뀌게 된다. “나는 비록 삼류 선비[下士]지만 감히 말하리라. ‘중국의 제일장관은 저 기왓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余下士也 曰壯觀在瓦礫 曰壯觀在糞壤].’” ―― 클라이맥스이자 대단원,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저 기왓조각은 천하에 버리는 물건이지만 이를 둘씩 포개면 물결무늬가 되고, 넷씩포개면 둥근 고리모양이 되니 천하의 아름다운 무늬가 이에서 나온다. 똥은 지극히 더러운 물건이지만 이를 밭에 내기 위해서는 아끼기를 금싸라기처럼 여기어 말똥을 줍는 자가 삼태기를 들고 말 뒤를 따라 다닌다. 이를 정성껏 주워모으되 네모반듯하게 쌓고, 혹은 여덟 모로 혹은 여섯 모로 하여 누각이나 돈대의 모양을 이루니, 이는 곧 똥무더기를 모아 모든 규모가 세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하필 성지(城池), 궁실(宮室), 누대(樓臺), 목축(牧畜) 따위만을 중국의 장관이라 할 것인가.
여기에 이르면 중화주의라는 거대담론은 흔적도 없이 실종된다. 아니, 있다 한들 무슨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기와와 똥무더기’의 관점에서 다시 저 일류 선비, 이류 선비들의 통념을 보노라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서 ‘포복절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패러독스는 이렇듯 신랄하다. 명분과 실리의 사이, 내부와 외부의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그 줄타기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덧 사뿐히 외부에 ‘착지’하게 된다. 심연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반을 뒤흔들거나 아니면 돌연 ‘지금, 여기’의 표면으로 솟구쳐 표면장력을 일으키거나.
참고로, 똥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면, 구한말 갑신정변의 풍운아 김옥균이 남긴 글 가운데 「치도약론(治道略論)」이라는 텍스트가 있다. 근대적 개혁을 위해 조선이 시급하게 시행해야할 정책으로 이 혁명가가 내세운 것은 뜻밖에도 위생(衛生)이다. 서구적 관점에서 볼 때, 조선의 미개함은 ‘사람과 짐승의 똥오줌이 길에 가득’하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었던 것이다. 이후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계몽정론지들에는 똥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가해진다. 졸지에 문명개화의 적이 되어버린 ‘똥’! 똥의 입장에서 보면, 참 신세 처랑하게 된 셈이다.
세계제국의 중심인 청문명의 토대를 ‘똥부스러기’에서 찾은 연암과 똥이야말로 개화자강의 걸림돌이라고 본 김옥균, 이 둘 사이의 담론적 배치의 차이를 규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 역사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열쇠는 어디까지나 ‘똥’이 쥐고 있다.
▲ 베이징의 자금성
명나라 때 지어진 자금성은 지금도 여전히 화려하고 장엄하다. 헌데, 연암은 특이하게도 자금성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다. 화려한 궁성이 아니라 기와나 말똥, 수레 따위에서 문명의 지혜를 찾았던 연암. 모두가 자금성의 규모에 눈 빼앗기고 압도당할 때, 그만은 거기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감지했던 것이 아닐까.
모두가 오랑캐다!
조선이 청문명을 거부하는 이유는 청이 북방의 유목민이고, 그들의 문화는 오랑캐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역시 동이, 곧 동쪽 오랑캐다. 차이가 있다면, 농경민이라는 것뿐이다. 오랑캐가 오랑캐를 타자화하는 것, 이것이 소중화(小中華) 주의의 내막인 셈이다.
그럴 수 있는 근거는 조선은 비록 종족적으로는 오랑캐지만, 정신은 더할 나위없이 순수한 중화라는 것이다. 더구나 중화문명의 수호자인 한족이 멸망했으니, 이제 문명은 중원땅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중화의 지리적, 종족적 실체가 사라진 마당에 이제 헤게모니는 누가 더 중화주의를 순수하게 보존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조선 후기 들어 주자학이 도그마화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자학이란 송나라 때 주희에 의해 완성된 유학의 한 분파다. 주희는 당시까지의 유학적 흐름을 집대성하는 한편 견고한 체계화를 꾀했다. ‘성(性)’과 ‘리(理)’란 개념이 그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성리학’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왕조는 16세기 이래 주자학을 정통으로 표방하였고, 이후 조선에선 다른 종류의 해석은 발붙일 길이 없게 되었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중화의 순결성을 오롯이 담보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맞물리면서 주자학적 체계가 유일무이한 이념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원래 추종세력이 원조보다 한술 더 뜨는 법. 주자학의 본향인 중국보다 조선의 선비들이 더 과격한 주자주의 혹은 중화문명의 수호자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연암은 이 소중화(小中華) 주의의 심층을 교묘하게 교란시킨다. 일단 그는 자신이 오랑캐의 일원임을 잊지 않는다. 중화주의라는 ‘대타자’의 눈으로 청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변방 오랑캐의 눈으로 거대제국을 이룬 유목민 오랑캐를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 일단 이것만으로도 어리석은 분별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심세편(審勢編)」에서 연암은 우리나라 선비들의 다섯 가지 허망함을 논한다. 그중 하나는 지벌(地閥)로서 뽐내는 것이다. 중국이 비록 변하여 오랑캐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천자의 칭호는 고쳐지지 않은 만큼, 그들 각부의 대신들은 곧 천자의 공경인 동시에 반드시 옛날이라 해서 더 높다든지, 또는 지금이라고 해서 더 깎이었다든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신들은 그들의 조정에서 절하고 습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피하기만을 일삼아 드디어 하나의 규례가 되고 말았다. 또 우리나라 사람은 문자를 안 뒤로부터 중국의 것을 빌려 읽지 않는 글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역대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치고 ‘꿈속의 꿈’을 점침이 아닌 것이 없음에도 이에 억지로 운치(韻致)없는 시문을 쓰면서, 별안간 ‘중국에는 문장이 없더구먼’하고 헐뜯는다.
더욱 어이없는 건 한족 출신 선비들을 만나면 “질문에 급급해서 대뜸 요즘 정세에 대해 말하거나 스스로 자기 의관을 자랑함으로써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옷차림을 부끄러워하는지 어떤지를 살핀다. 어떤 경우엔 단도직입적으로 명나라를 잊지 않았느냐고 물어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것이다. 이러니 대체 어떻게 소통이 되겠는가? 그래서 연암은 중국 선비들과 대화하는 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그들의 환심을 사려면 반드시 대국의 명성과 교화를 찬양하여 먼저 그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또 중국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어 그들의 의구심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러는 한편, 예악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그들의 고상한 취향에 맞춰주어야 하며 틈틈이 역대의 사적을 높이 띄워주되, 최근의 일은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말하자면 뜻을 공손히 하여 배우기를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마음놓고 이야기할 기회를 주라, 그런 다음에 웃고 지껄이다 보면 그 속내를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교묘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결코 얄팍한 속임수에 빠지지는 않는 팽팽한 줄타기수법, 사실 이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해도 충분히 가능하다. 중화니 오랑캐니 하는 관념의 끼풀을 벗어던지기만 해도 세상이 훤히 보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연암은 때때로 차라리 어떤 ‘트릭’도 쓰지 않고 태평한 어조로 말하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심양에 들렀을 때, 멀리 요양성 밖을 둘러보며 그는 생각한다. 이곳은 옛 영웅들이 수없이 싸우던 터구나. 천하의 안위는 늘 이 요양의 넓은 들에 달렸으니 이곳이 편안하면 천하의 풍진이 잦아들고, 이곳이 한번 시끄러워지면 천하의 싸움북이 소란히 울린다. 그런데 이제 천하가 백 년 동안이나 아무 일이 없음은 어쩐 일인가. 이 심양은 본디 청이 일어난 터전이어서 동으로 영고탑과 맞물리고, 북으로 열하를 끌어당기고, 남으론 조선을 어루만지며, 서로는 향하는 곳마다 감히 까딱하지 못하니, 그 근본을 튼튼히 다짐이 역대에 비하여 훨씬 낫기 때문일 것이다.
험준한 요새 고북구를 지날 때도 비슷한 감회를 토로한다. 전쟁터였던 이곳에 삼과 뽕나무가 빽빽이 서 있으며 개와 닭 울음이 멀리까지 들리니, 이같이 풍족한 기운이야말로 한당(漢唐) 이후로는 보지 못한 일이 아닌가. 대체 청왕조는 무슨 덕화(德化)를 베풀었기에 이런 태평천하가 가능하단 말인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런 자문자답은 이후에도 계속 변주된다.
지금 청나라가 세상을 다스린 지 겨우 4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 통치자들은 모두 문무를 겸비하고 장수를 누렸다. 지난 백년은 태평스런 시대로서 천하가 두루 편안하고 조용했다. 이런 상황은 한ㆍ당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중략)
今淸之御宇纔四世, 而莫不文武壽考, 昇平百年, 四海寧謐, 此漢唐之所無也. (中略)
사람이 처한 위치에 따라 본다면, 중화와 오랑캐는 명확히 다르지만, 하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은나라의 우관이든 주나라의 면류관이든 다 나름의 때를 따라 마련된 것일 뿐이다. 유독 청나라 사람의 홍모(紅帽)에 대해서만 꼭 의심을 던질 이유가 없다. 「호질후지(虎叱後識)」
故自人所處而視之 則華夏夷狄, 誠有分焉. 自天所命而視之, 則殷冔周冕, 各從時制, 何必獨疑於淸人之紅帽哉?
역대 성인들의 말씀은 모두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것으로 돌아간다. 하늘의 기준으로 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은나라와 주나라, 청나라 사이에 대체 무슨 차별이 있단 말인가? 중화와 오랑캐를 나누는 것은 오직 인간들의 편협한 척도의 소산일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오랑캐 아닌 족속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은 고정된 심급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에 의해, 외부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일 터. 그러므로 오랑캐의 눈으로 오랑캐를 본다는 건 더 이상 중화와 이적의 위계적 표상 내부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모두가 오랑캐다. 아니, 오랑캐든 아니든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북벌(北伐) 프로젝트
물론 이런 정도로 중화사상이 골수에 박힌 자들이 설복당할 리가 없다. 연암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강경한 전략을 구사한다. 먼저 표적을 북벌론(北伐論)으로 잡았다.
잘 알고 있듯이 소중화(小中華)주의는 북벌론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조선이 ‘작은 중화’라면, 마땅히 청나라 오랑캐를 물리쳐 중원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북벌론의 요지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이후 인조는 북벌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운다. 복수에 눈이 먼 인조와 그 추종자들에게 청과 조선의 역학 관계 따위가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청문명의 역동적 기류에 눈뜬 소현세자가 조선에 돌아와 뜻을 펴지도 못한 채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소현세자를 이어 그 아우인 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북벌은 이제 부동의 국가적 소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의 현실적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질 수밖에 없었고, 또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신성불가침’의 이념으로 떠받들어지게 되었다. 18세기 연암 당시에 이르면 이제 아무런 내용도 없이 그저 껍데기뿐인 채로, 주로 반대파를 공격할 때 활용되는 도그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암은 이 북벌론(北伐論) 내부 깊숙이 잠입하는 수법을 쓰기로 한다. 즉 자신을 북벌론을 강경하게 고수하는 위치에 놓고서 ‘북벌론자’들에게 제안을 하는 식이 그것이다. 정 그렇다면 좋다. 그렇게 북벌이 소원이라면, 한번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보자. 반대편의 명분을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이런 테크닉 역시, 패러독스의 일종이다. 「허생전(許生傳)」이 바로 그 과격하고 대담무쌍한 전투가 벌어지는 ‘필드’다.
변부자에게 십만 냥을 빌려 온나라 경제를 뒤흔들고, 또 무인도에서 자신의 이상을 한바탕 실험해본 뒤, 허생은 다시 옛날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는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변부자의 후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유유하게 살아가던 중, 하루는 변부자가 이완대장을 그에게 데리고 온다. 이완은 당시 북벌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는 허생에게 천하를 평정할 방도를 묻는다. 처음엔 거들떠 보지도 않던 허생이 마침내 입을 연다.
그가 이완에게 들려준 ‘북벌 프로젝트’는 이렇다. “무릇 천하에 대의를 외치고자 한다면 우선 천하의 호걸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고, 다른 나라를 정벌하고자 한다면 먼저 첩자를 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법[夫欲聲大義於天下而不先交結天下之豪傑者, 未之有也, 欲伐人之國而不先用諜, 未有能成者也]”이다. 전쟁을 하려면 적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 아닌가. 그러려면 당연히 스파이를 침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해준다. “나라 안의 자제들을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히고, 선비들은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평민들은 멀리 강남 땅으로 장사를 하러 가서 그들의 모든 허실을 엿보면서 그곳 호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지. 그런 후에야 모쪼록 천하의 일을 도모할 만하고 나라의 치욕을 씻을 만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네[朝鮮率先他國而服, 彼所信也. 誠能請遣子弟入學遊宦, 如唐ㆍ元故事, 商賈出入不禁, 彼必喜其見親而許之. 妙選國中之子弟, 薙髮胡服, 其君子往赴賓擧, 其小人遠商江南, 覘其虛實, 結其豪傑, 天下可圖而國恥可雪].” 정말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싶다면, 각계각층에 두루 침투하라는 것이다. 중앙정계뿐 아니라 상업의 허실을 간파하는 한편, 청에 불만을 품고 있는 호걸들을 조직하여 반란을 도모하게 한 다음 그때 쳐들어가야 삼전도의 수치를 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언뜻 과격한 북벌론(北伐論) 같지만 잘 살펴보면, 그 내부에는 북학론이 교묘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각계각층에 침투하여 동태를 파악하는 것과 청문명의 핵심을 두루 마스터하는 것 사이에는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표면적으로는 과격한 북벌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으로선 공략하기가 난감하다. 어리숙한 이완은 이렇게 답한다.
사대부들이 모두 삼가 예법을 지키고 있는 마당에 누가 선뜻 머리를 깎고 되놈 옷을 입겠습니까?
士大夫皆謹守禮法, 誰肯薙髮胡服乎?”
이렇게 되면, 이미 싸움의 승패는 판가름났다. 이거야말로 허생이 유도한 답변 아닌가. 허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내지른다.
사대부라는 것들이 대체 뭐하는 놈들이더냐? 이(彛)ㆍ맥(貊)의 땅에 태어나서 사대부로 자칭하니 어찌 미련한 게 아니더냐. 바지저고리는 순전히 하얗기만 하니 이는 상을 당한 사람의 복색이고, 머리털을 모아서 송곳처럼 찌르듯 맨 건 남쪽 오랑캐의 방망이 상투에 불과하다. 대체 뭐가 예법이라는 것이냐? (중략)
所謂士大夫, 是何等也? 產於彛貊之地, 自稱曰士大夫, 豈非騃乎? 衣袴純素, 是有喪之服, 會撮如錐, 是南蠻之椎結也, 何謂禮法? (中略)
지금 너희들은 대명을 위해서 원수를 갚고자 하면서도 머리카락 하나를 아끼고 있다. 이제 장차 말 달리기, 칼치기, 창 찌르기, 활쏘기, 돌팔매 던지기 등을 해야 하는데도 그 넓은 소매를 고치지 않으면서 스스로 예법이라고?
乃今欲爲大明復讎, 而猶惜其一髮, 乃今將馳馬擊釖刺鎗弓飛石, 而不變其廣袖, 自以爲禮法乎?
예법에 얽매여 폼만 잡고 있으면서, 입만 열면 대명을 위해 원수를 갚겠노라고 떠들어대는 꼴이란! 상투 하나를 아끼는 주제에 목숨을 건 전투를 어찌 감당하겠다고, 쯧쯧, 이 변증이 보여주는바, 북벌론(北伐論)은 속이 텅 빈 망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북벌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작업도 실행된 적이 없다. 북벌은커녕 조선의 지배 엘리트는 청의 구체적 실상조차 접할 생각이 없다. ‘청이 일어난 지 140년이 되었건만, 조선의 사대부들은 중국을 오랑캐라고 하여 사신의 내왕은 어쩔 수 없이 하면서도, 문서의 거래라든지 사정의 허실은 일체 역관에게 맡겨둔 채, 강을 건너 연경에 이르는 2천리 사이에 각 주현의 관원과 관액의 장수들은 그 얼굴을 접해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또한 그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원수에 대해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다니! 요컨대 북벌은 단지 명분으로만, 이데올로기로만 지탱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망상일수록 더더욱 견고해지는 것이 도그마들의 숙명이다. 연암은 그 숙명적 공허함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이다. 내부 깊숙이 파고들어 그 몸통을 먹어치우는 수법을 통해.
하긴 곰곰이 따져보면 북벌의 망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크게 히트한 만화 『남벌』을 기억하는가? 일본을 정벌한다는 뜻을 지닌 남벌 역시 북벌의 20세기적 변주에 다름아니다. 그뿐인가. 틈만 나면 요동벌판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공상역사소설’들이 등장하여 북벌에 대한 꿈을 부추기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버전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공허함과 맹목의 차원에선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그런 까닭에 허생, 아니 연암의 패러독스는 여전히 비수처럼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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