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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어휘사전 - 264. 적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64. 적

건방진방랑자 2020. 5. 3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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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적갑산(赤甲山)

사천(四川) 봉절현(奉節縣)에 있는 산 이름이다.

 

적갑천거(赤甲遷居)

딴 곳으로 이사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적갑은 산명인데, 두보(杜甫)가 적갑산으로 거주를 옮기고 지은 시에 적갑산에 집 잡아 옮겨 삶이 새로우니, 무산과 초수의 봄을 두 번 보도다[卜居赤甲遷居新 兩見巫山楚水春].” 한 데서 온 말이다. 두시비해(杜詩批解)卷二十

 

적거(謫居)

귀양살이.

 

적거(赤車)

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타는 수레를 말한다.

 

적거진수연(適去儘隨緣)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마침 그때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부자가 나올 인연이 도래했기 때문이요, 마침 이때에 이 세상을 마치게 된 것도 그렇게 될 인연 때문이니 부자로서는 마땅히 이에 순응해야 했을 것이다[適來 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라는 말이 나온다.

 

적겸모(狄兼暮)

() 나라 적인걸(狄仁傑)의 족증손(族曾孫)으로 어사중승(御史中丞)과 동경 유수(東京留守)를 지낸 강직한 인물이다. 치사(致仕)한 뒤에 백거이(白居易)의 그 유명한 구로회(九老會)의 일원이 되었는데, 이때 적겸모와 노정(盧貞)만이 나이 70세가 안 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백락천시집(白樂天詩集)20 칠노회시(七老會詩)

 

적경(赤瓊)

곶감을 말한다.

 

적경(籍耕)

적전(籍田)은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지어 종묘에 제사지낼 쌀을 수확하고 백성에게 농사를 권하는 것인데, 임금이 몸소 따비로 세 번 밀어서 갈아 보는 것이다.

 

적고전장문(吊古戰場文)

옛 전쟁터를 조상하는 글. () 나라 문인 이화(李華)가 지은 것으로 내용은 옛날의 전쟁터에서 전쟁의 참상(慘狀)을 생각하고, 전쟁은 백성의 생활을 파탄에 몰아넣는다는 것을 강조하여 위정자(爲政者)를 반성케 하고, 전사자의 혼령을 위로한 글이다.

 

적공(狄公)

() 나라 적인걸(狄仁傑)이다. 그의 부모가 하양(河陽)에 살고 있었는데, 태항산(太行山)에 올라 흰구름 한 덩이가 떠가는 것을 보고 옆사람에게 우리 부모가 저 아래에 살고 계신다.” 하고 한동안 슬프게 바라보다가 그 구름이 가버린 뒤에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신당서(新唐書)卷一百一十五 적인걸전(狄仁傑傳)

()의 적청(狄靑)을 말한 것으로 소순(蘇洵)의 상한추필서(上韓樞密書), “지난번 적공(狄公)이 추부(樞府)에 있을 때는 그가 너그럽고 온후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사졸(士卒)들과도 가까이 지내 그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고 하였는데…….” 하였다.

 

적공비(翟公扉)

적공(翟公)은 서한(西漢) 때 사람으로, 정위(廷尉) 벼슬을 할 때에는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파직당하자 참새 그물을 쳐 놓을 정도로 문간이 한산하기만 하였는데, 다시 복직됨에 빈객들이 찾아가려 하자, 그 문에 큰 글씨로 써서 내걸기를(大署其門曰) “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이라 하고 일체 거절하였다 한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공빈부(翟公貧富)

적공(翟公)춘추시대(春秋時代) 사람. 그가 귀할 때는 친구가 많았으나 천할 때는 친구가 없었다 한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공지문가라작(翟公之門可羅雀)

()나라 적공(翟公)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에, 손님을 좋아하여 손님들이 문에 가득하더니, 정위에서 파면되고 나자 오는 손님이 없어서 문전에 참새만이 모여들어 새그물을 칠 만하였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공파관빈객절(翟公罷官賓客絶)

서한(西漢) 때 적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적에는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더니, 벼슬을 그만둔 뒤에는 참새 그물을 쳐 놓을 정도로 대문 밖이 한산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공한구객(翟公恨舊客)() 나라 적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 빈객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는데, 그 관직을 그만두자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정위의 임명을 받자 빈객들이 또 몰려들었는데, 이에 적공이 분개하여 그 집 대문 앞에 一死一生乃知交情 一貧一富乃知交態 一貴一賤交情乃見이라고 써서 붙였다 한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구루(幘溝婁)

고구려 때 현도군(玄兎郡)에 설치한 성. 지금의 함경북도에 있다.

 

적궤(弔詭)

매우 괴이한 일을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나 네가 다 꿈이다. 내가 너더러 꿈이라 하는 것도 또한 꿈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적궤(弔詭)라 한다.” 하였다.

 

적규(赤虯)

신선이 몰고 다닌다는 붉은 용.

 

적금대(吊金臺)

천하의 현사(賢士)를 위해서 천금(千金)을 들여 황금대(黃金臺)를 세웠던 연 소왕(燕昭王)에 대한 그리움을 표시하며 그렇지 못한 현실을 슬퍼하는 말이다.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에 燕昭延郭隗 遂築黃金臺라는 구절과 攬涕黃金臺 呼天哭昭王이라는 구절이 있다.

 

적대(的對)

적절한 대우를 말한다.

 

적덕앙고문(積德仰高門)

선조의 음덕(陰德)에 힘입어 앞으로 자손 중에 크게 출세할 자가 나올 집이라는 뜻이다. () 나라 우공(于公)옥사를 다스리면서 음덕을 많이 쌓았으니 필시 크게 될 자손이 나올 것이다. 문을 조금 크게 만들어 고관의 수레가 통과하도록 하라.” 하였는데, 과연 아들 정국(定國)이 뒤에 승상이 된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우정국전(于定國傳)

 

적로(狄盧)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 가운데 맨 끝의 적겸모(狄兼謨)와 노정(盧貞)을 합칭한 말이다.

 

적로()

붉은 태양이 작열하는 흑수(黑水)

 

적로(磧鹵)

염분(鹽分)이 섞인 사막을 이른다.

 

적룡(赤龍)

신선은 적용(赤龍)을 탄다.

 

적리(赤吏)

노루의 별칭이다.

 

적막(適莫)

()은 어느 사물에 열중하는 것을 말하고, ()은 그 반대로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이르기를, “군자는 적하지도 않고 막하지도 않아서 의리를 따를 뿐이다[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

 

적만부(敵萬夫)

육기(陸機)오도부(吳都賦)죽림의 밖과 속은 마치 십만 장부의 갑옷과 칼날 같네.(竹林外裏兮 十萬丈夫甲刃)”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적묘(籍畝)

적전(籍田)으로, 왕이 농사하여 제사의 자성(粢盛)을 바치는 밭인데 그 부근 거민을 시켜 농사짓게 한다. 대전회통(大典會通)』 「호전(戶典)

 

적문(翟門)

벼슬을 그만둔 적공(翟公)의 문이라는 뜻이다. 한대(漢代) 적공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는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다가, 파직된 뒤로는 그 집의 문 앞에 참새 그물을 쳐 놓을 정도로 한산해졌는데 적공이 다시 정위로 복귀함에 사람들이 예전처럼 몰려오자 적공이 대문에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친구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에 친구의 태도를 알고, 한 번 천하고 한 번 귀해짐에 친구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써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문라가설(翟門羅可設)

문호가 쇠락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처음에 적공(翟公)이 정위(廷尉)가 되었을 적에는 문정에 빈객이 그득하였는데, 관직을 잃음에 미쳐서는 문정이 쓸쓸하여 새 그물을 펼 만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복직되자 빈객들이 찾아오려고 하니, 적공이 대문에다 한 번 죽고 한 번 사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을 알겠고, 한 번 가난해지고 한 번 부자되는 데에서 교제하는 태도를 알겠으며, 한 번 귀해지고 한 번 천해지는 데에서 교제하는 정이 드러난다.’고 크게 써 붙였다.” 하였다.

 

적문잠(翟門箴)

세력이 있으면 빌붙고 권세가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염량 세태(炎涼世態)를 가리키는 말이다. 적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는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다가 관직을 그만두자 대문 앞에 새 잡는 그물을 칠 정도가 되었는데, 다시 정위로 복귀함에 사람들이 예전처럼 몰려오자 적공이 대문에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친구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에 친구의 태도를 알고, 한 번 천하고 한 번 귀해짐에 친구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써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반하장(賊反荷杖)

도적이 도리어 뭉둥이를 든다는 것으로, 죄를 범한 사람이 도리어 성을 내는 것이다.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고 시비나 트집을 거는 것을 말한다.

 

적백낭(赤白囊)

위급한 사태를 조정에 보고하기 위하여 급히 올려보내는 변방의 행낭(行囊)을 말한다.

 

적백환(赤白丸)

한 성제(漢成帝) 때에 장안(長安)의 소년들이 암살단(暗殺團)을 조직하여 적()ㆍ백()ㆍ흑() 삼색(三色)의 탄환(彈丸)을 만들어 놓고 서로 더듬어서 적환(赤丸)을 취한 자는 무리(武吏)를 죽이고, 백환(白丸)을 취한 자는 문리(文吏)를 죽이고, 흑환(黑丸)을 취한 자는 장사(葬事)를 주관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卷九十

 

적벽(赤壁)

삼국시대 위()조조(曹操)와 오()의 주유(周瑜)가 교전했던 곳으로 중국 호북(湖北) 기어현(奇魚縣)의 동북쪽 장강(長江)가에 있는 절벽이고, 송 나라 소식(蘇軾)이 원풍(元豐) 5(1082)716일 밤에 양세창(楊世昌)과 함께 적벽강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그 유명한 전적벽부(前赤壁賦)를 지었다.

 

적벽대전(赤壁大戰)

일찍이 조조(曹操)와 주유가 적벽(赤壁)에서 대전(大戰)이 붙었을 때, 조조는 북쪽 언덕에 있었고 주유는 남쪽 언덕에 있었는데, 주유의 진영에서 배에다 섶()을 가득 싣고 가서 조조 진영의 배를 불지를 적에 때마침 동남풍이 급히 불어와 조조의 배를 모조리 불태움으로써 조조가 크게 패했던 고사가 있다.

 

적벽몽중유(赤壁夢中遊)

소동파(蘇東坡)후적벽부(後赤壁賦)에 나오는 이야기. 소동파가 적벽에서 놀 때 큰 학이 한 마리 날아와 뱃전을 스치고 지나갔었는데, 그날 밤 꿈에 한 도사가 찾아와 읍을 하며 인사하기에 그의 이름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으며, 이윽고 소동파가 정체를 알아차리고 어젯밤의 그 학이 아니냐고 하니 도사가 돌아보며 웃었다 한다.

 

적벽소년(赤壁少年)

삼국(三國) 시대 오()나라 손권(孫權)의 장수였던 주유(周瑜)를 가리킨다. 조조(曹操)가 일찍이 남으로 형주(荊州)의 유표(劉表)를 치고, 이어 강릉(江陵)으로부터 장강(長江)을 따라 동으로 내려갈 때, ()과 오가 군대를 연합하여 항거하였다. 이때 주유가 조조의 대군(大軍)과 적벽에서 대전(大戰)을 벌이게 되어, 조조는 북쪽 언덕에 진을 치고, 주유는 남쪽 언덕에 진을 쳤는데, 주유의 막하장(幕下將) 황개(黃蓋)의 책략에 따라 배에 가득 섶을 싣고 가서 조조의 전함에 화공을 쓴 결과, 때마침 동남풍이 거세게 불어와서 조조의 전함들을 모두 불태움으로써 끝내 조조의 대군을 크게 격파했던 데서 온 말이다. 그때 주유는 겨우 30여 세였다. 삼국지(三國志)54 오서(吳書) 주유전(周瑜傳)/ 인용: 李忠武公龜船歌(황현)

 

적벽유(赤壁遊)

() 나라 때 문장가 소식(蘇軾)이 적벽에서 노닌 것을 말한다. 전적벽부(前赤壁賦)후적벽부(後赤壁賦)

 

적복부(赤伏符)

참문(讖文)을 말한다. 광무제(光武帝)가 먼저 장안(長安)에 있을 때 동사생(同舍生) 강화(彊華)가 관중(關中)으로부터 적복부를 받들고 왔는데 거기에 유수(劉秀)가 군사를 일으켜 무도한 자를 토벌하니, 사이(四夷)가 구름처럼 모여들고 용()이 들판에서 싸우다가 228년째 되는 해에 화덕(火德)으로 임금이 되리라.” 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후한서(後漢書)』 「광무기(光武紀)

 

적불(翟茀)

부인이 타는 수레인데 꿩 깃으로 문을 꾸몄다 한다. 시경(詩經)위풍(衛風) 석인(碩人)

 

적불(翟紼)

귀부인이 타는 수레에 가리개로 쓰기 위해 꿩깃으로 만든 물건이다.

 

적불(赤紱)

대부가 차는 붉은 인끈을 말한다.

 

적사한장건적(跡似漢張騫跡)

탐험가적 정신으로 중국에 가는 바닷길을 개척하며 사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리라는 뜻이다. 장건(張騫)은 한 무제(漢武帝) 때 사신으로 서역(西域)의 길을 개척하여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 통할 수 있게 하였다. 사기(史記)111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騎列傳)

 

적상산(赤裳山)

전라도 무주(茂朱)에 있는 산 이름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저장했던 곳으로, 이외에도 태백산ㆍ정족산ㆍ오대산 4곳의 사고(史庫)에서 20세기 초까지 분산ㆍ보관돼 왔다. / 인용: 朱溪謠(황상)

 

적상환긍저약롱(狄相還肯貯藥籠)

당로자(當路者)도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음. ()의 정원준(貞元濬)이 당시 재상인 적인걸(狄仁傑)에게 말하기를, “신하가 임금 섬기는 일이 마치 부잣집에서 많은 물건들을 골고루 쌓아두고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꺼내서 쓰는 것과 같이 해야 할 것이므로 맛있는 반찬을 위해서는 고기포 같은 것이 필요할 것이며, 질병에 대비하려면 인삼ㆍ백출 등 약재도 필요할 터인데⋯⋯이 소인이 문하(門下)에 들어가 일개 약석(藥石) 노릇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인걸이 웃으며 대답하기를, “그대야말로 우리 약상자 속에 꼭 있어야 할 물건으로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일세.” 하였다. 당서(唐書)』 「정원준전(貞元濬傳)

 

적석(赤舃)

옛날 천자와 제후가 신던 붉은 색의 신발로 시경(詩經)빈풍(豳風) 낭발(狼跋)公孫碩膚 赤舃几几라 하였고, 시경 대아(大雅) 한혁(韓奕)王錫韓侯 玄袞赤舃이라 하였다.

한 명제(漢明帝) 때 상서랑(尙書郞) 왕교(王喬)가 섭현(葉縣)의 수령으로 내려갔다가, 조정에 올라올 적마다 물오리를 타고 오곤 하였는데, 그 오리를 잡고 보니 상서랑 재직시에 하사받았던 신발이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열전(方術列傳)」 「왕교전(王喬傳)

 

적석하표준(赤石霞標峻)

() 나라 때의 문장가인 손작(孫綽)의 유천태산(遊天台山) 부에 적성산엔 놀이 일어나 표지를 세웠다[赤城霞起而建標].” 한 데서 온 말이다.

 

적선(謫仙)

인간 세상에 귀양온 신선이란 뜻으로 시인(詩人) 이백(李白)을 말한다. 당서(唐書)이백전(李白傳)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의 글을 보고 감탄하며 그대는 인간 세상에 귀양온 신선이오.’ 하고 현종(玄宗)에게 말하니 현종이 금란전(金鑾殿)에서 만나보았다.” 하였다.

 

적선(謫仙)

적선은 천상(天上)에서 죄를 얻어 일시 인간에 내려온 신선을 말하는데, 문재(文才)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당 현종 때 이백(李白)이 장안(長安)에 이르러 하지장을 찾아보았을 적에 하지장이 이백의 글을 보고 감탄하기를 그대는 적선인(謫仙人)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적선인(謫仙人)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온 사람. () 나라 하지장이 일찍이 이백을 추어올려 적선인(謫仙人)이라 불렀다.

 

적선지가(積善之家)

선을 쌓아온 집에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주역(周易)의 말이 있다.

 

적선천상인(謫仙天上人)

하늘에서 유배당해 땅으로 내려온 신선이라는 뜻으로, 하지장(賀知章)이태백(李太白)의 시에 탄복하여 붙여준 이름인데, 여기서는 기암의 부친인 송강(松江) 정철(鄭澈)을 높여 부른 말이다.

 

적성(赤城)

단양(丹陽)에 있는 성 이름이다.

도교(道敎)의 전설 속에 나오는 삼십육 동천(三十六洞天)의 하나로, 가야산(伽倻山)의 선경(仙境)을 비유한 말이다.

순창의 옛 이름이다.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의 남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토석의 색깔이 붉고 모양이 성첩과 같이 생겼다. 문선(文選)손작(孫綽)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 “적성의 노을을 들어서 표지를 세운다.[赤城霞擧而建標]”하였다.

 

적성산(赤城山)

천태산(天台山) 부근에 있는 산 이름인데, 흙이 온통 놀()빛처럼 붉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적성표(赤城標)

적성(赤城)은 중국 천태산(天台山) 북쪽 6리 지점에서 천태산의 남문(南門) 역할을 하는 산 이름으로, 손작(孫綽)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적성의 노을을 일으켜서 표지를 세운다[赤城霞擧而建標]”는 표현이 있는데, 이를 이백(李白)이 받아 시 천태효망(天台曉望)’에서 산문엔 적성의 노을이 표지로 내걸리고, 누대엔 창주(滄洲)의 달빛이 여전히 머물렀네[門標赤城霞 樓棲滄島月].”라고 노래하였다. 이태백집(李太白集)20

 

적성하(赤城霞)

적성은 신선이 산다는 산인데, 땅은 붉은색이고 형태는 구름과 놀이 일어 성첩(城堞)과 같다 한다. 즉 아름다운 경치를 말한다.

적성은 절강성(浙江省) 천태현(天台縣)에 있는 산 이름인데 흙 색깔이 놀()과 같이 붉으므로 일컬어진 말이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浙江 天台山

 

적성하색(赤城霞色)

적성산은 중국 절강(浙江) 천태현(天台縣) 북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흙빛깔이 노을빛처럼 붉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선(文選)11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노을이 피어나는 적성산에 표지를 세우고[赤城霞起而建標]”에서 나온 것으로, 변방의 풍경을 말한다.

 

적소(積蘇)

땔나무를 쌓은 것으로 보잘것없는 사물을 비유한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그 궁궐과 정자가 흙덩이를 쌓고 땔나무를 쌓음과 같다[其宮榭若累塊積蘇].”하였다. 목재로 지은 높은 누각을 형용하는 말이다.

 

적소성다(積小成多)

적은 것도 모으면 많아진다는 뜻이다. 유의어: 티끌 모아 태산.

 

적송(赤松)

적송자. 신농시(神農時)의 우사. 수옥(水玉)을 입었다 한다.

 

적송반(赤松飯)

신선이 먹는 붉은 소나무의 솔씨를 말한다. 유향(劉向)열선전(列仙傳)옛날 악전(偓佺)이란 사람은 약을 캐는 사람이었는데 솔씨를 즐겨 먹었더니 몸에 털이 나고 날아다녔으며, 그에게서 솔씨를 얻어먹은 사람들도 모두 3백 살을 살았다.” 하였다.

 

적송유(赤松遊)

신선인데 한() 나라 장량(張良), “인간 일을 버리고 적송자를 좇아 놀고자 한다.” 하였다. 한서(漢書)』 「장량전(張良傳)

 

적송자(赤松子)

상고 시대의 신선 이름으로, 여러 서책에 나오는 사적(事蹟)이 서로 다르다. 적송자(赤誦子), 적자여(赤子輿)라고도 한다.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장량(張良)이제 세 치의 혀로써 제왕의 스승이 되어 만호(萬戶)를 봉받고 지위가 열후에 올랐으니, 이는 포의(布衣)의 영광이 극에 이르렀다. 나는 이에 만족할 뿐이고, 다만 원하는 바는 인간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는 것이다.’하였다.” 하였다.

 

적수공권(赤手空拳)

손에 힘을 주어 보지만, 주먹에 아무 힘이 없다. 맨손과 맨주먹, 즉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적수성연(積水成淵)

물을 모아서 연못을 이룬다는 뜻이다.

 

적수주(赤水珠)

적수현주(赤水玄珠)라는 책을 말한다. 이 책은 명 나라 손일규(孫一奎)가 지었는데 모두 30권이며, ()ㆍ열()ㆍ허()ㆍ실()ㆍ표()ㆍ리()ㆍ기()ㆍ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적수현주(赤水玄珠)라고 한 것은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에서 놀다가 현주를 잃었다.”장자(莊子)』 「천지(天地)에서 취한 것이라 한다. 사고제요(四庫提要)子 醫家類

 

적수주(赤水珠)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에서 현주(玄珠)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도 찾지 못하고 무심(無心)을 뜻하는 상망(象罔)이 찾아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적시강담구(迹是江潭舊)

조정에서 방축(放逐)되었다는 말이다. () 나라 굴원(屈原)이 일단 쫓겨난 다음에 강담에서 노닐고 택반에서 읊조렸다[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초사(楚辭)』 「어부사(漁父辭)의 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적신(積薪)

나무를 쌓는 데 있어 나중에 쌓는 것을 위에 올려놓듯이, 나중에 벼슬한 자가 먼저 벼슬한 사람보다 중용되어 먼저 벼슬한 사람은 항상 미관 말직에 있음을 한탄한 것인데, () 나라 때 급암(汲黯)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폐하께서 뭇 신하들을 쓰는 것은 마치 나무를 쌓는 것과 같아서 나중에 벼슬한 자가 윗자리에 있게 됩니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급정열전(汲鄭列傳),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신중(積薪中)

벼슬하다. 한 무제(漢武帝)가 사람을 쓰는데 먼저 벼슬한 사람보다 뒤에 벼슬한 사람을 높여서 쓰니 급암(汲黯), “폐하의 사람 쓰는 것은 장작을 쌓는 것과 같아서 뒤에 온 자가 위에 올라갑니다.” 하였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신탄(積薪歎)

장작을 쌓는 데 있어 나중에 쌓는 것을 위에 올려놓듯이, 나중에 벼슬한 자가 전임자(前任者)보다 중용되고, 전임자는 항상 미관말직에 있게 되어 중용되지 못함을 한탄하는 일을 말한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적안(赤岸)

전설상의 지명으로, 매승(枚乘)이 지은 칠발(七發)’적안을 뛰어넘어 부상을 청소한다[凌赤岸篲扶桑]”라는 말이 나오는데, 두보(杜甫)의 시에 적안의 물은 은하와 통하고, 그림 속의 구름 기운 용을 따르네[赤岸水與銀河通 中有雲氣隨飛龍].”라는 구절이 보인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9 戱題王宰 山水圖歌

 

적야랑(太白飄然謫夜郞)

이백(李白)이 역적(逆賊) 영왕(永王) ()의 부하로 있었으므로, 인이 패한 뒤에 야랑(夜郞)으로 귀양갔다.

 

적여구산(積如丘山)

산과 같이 많이 쌓이다.

 

적연부동(寂然不動)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상에 생각도 없이 함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일단 감응하면 천하의 모든 일에 두루 통한다[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라는 말이 있다.

 

적외민(籍外民)

호적에 누락된 백성. 곧 조세를 내지 않는 백성을 말한다.

 

적우침주(積羽沈舟)

새털 같은 가벼운 물건도 많이 쌓이면 배를 침몰시킨다는 뜻으로, 뭇사람의 참소가 대단히 무서움을 의미한 것이다.

 

적위(赤尉)

한성부(漢城府)에 소속된 관리를 뜻하는 말이다. 참고로 한퇴지(韓退之)의 시에 조정에도 못 가는 법관이라고 속상해하지 마오, 부윤 쫓아다니는 적위보단 낫지 않소[勿嫌法官未登朝 猶勝赤尉長趨尹].”라는 구절이 있다. 한창려집(韓昌黎集)4 贈崔立之評事

 

적인(適人)

사서인(士庶人)에게 시집가는 것을 말한다.. 대부(大夫) 이상에게 시집가는 것을 가()라고 한다. 의례(儀禮)』 「상복(喪服)/ 인용: 薌娘謠(이광정)

 

적인걸(狄仁傑)

산서성(山西省) 사람. 당나라 고종(高宗) 때 강남 순무사(江南巡撫使)가 되어 치적을 쌓은 뒤 위주 자사(魏州刺史)로 있을 때 거란()의 침략군을 물리쳐 공을 세움. 재상으로 있을 때 즉천무후(則天武后)에게 직간하여 그녀의 친조카인 무삼사(武三思)로 하여금 황통(皇統)을 잇게 하려는 대역(大逆)을 막고 당황실을 회복, 수호하는 데 힘쓴다. 이후 국로(國老)로 예우 받음. 예종(睿宗) 때 양국공(梁國公)에 추봉됨.

 

적일비홍(迹一飛鴻)

소식(蘇軾)떠도는 우리 인생 무엇과 같다 할까, 눈 쌓인 갯벌에 내려앉는 기러기와 흡사하네. 눈 위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겨 놓고, 날아가면 또다시 동쪽 서쪽 따지리요[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라는 시구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3 和子由澠池懷舊

 

적잉함(籍仍咸)

완적과 완함을 말한다. () 나라 때 죽림 칠현(竹林七賢) 중 두 사람인데 숙질(叔姪) 간이다.

 

적자(摘髭)

아주 쉽게 과거 급제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가 최립지(崔立之)에게 부친 시에 해마다 과거 급제를 따내되 턱 밑의 수염을 뽑듯 하누나[連年收科第 若摘頷底髭].”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卷五

 

적자(赤子)

어린아이를 뜻하는 말이지만, 어린 자식처럼 사랑한다는 뜻으로 온순한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 인용: 寺奴婢(권헌)

 

적자생존(適者生存)

주변 환경에 알맞은 것이 살아 남음. 생존 경쟁의 결과,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도태되어 사라짐

 

적자용사(赤子龍蛇)

무지한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가 운조복절도관찰등사(鄆曹濮節度觀察等使) 마공(馬公)을 칭송한 운주계당시서(鄆州谿堂詩序)()이 고을에 처음 이르렀을 적에는 백성들이 교화가 되지 못하여 무()로 다스리면 분개하여 원망을 품고, 은혜로 다스리면 방자해지므로 한편으로는 적자(赤子)로 취급하고, 한편으로는 용사(龍蛇)로 취급하여 오랜 세월 동안 노심 초사를 거듭하고 나서 교화가 크게 행해진 다음에는 백성들이 모두 공을 친부모처럼 떠받들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補遺

 

적자지비(翟子之悲)

묵적(墨翟)은 흰 실이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사람의 심성(心性)도 본래는 선하지만 악에 물들기 쉽다고 생각하고 슬퍼했다. 묵자(墨子)』 「소염(所染)/ 인용: 北山移文(공치규)

 

적재적소(適材適所)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쓴다.

 

적적(浟浟)

이익을 탐내는 모양.

 

적적(滴滴)

물방울이 계속하여 떨어지는 모양, 흘러 움직이는 모양,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윤이 나고 아름다운 모양

 

적적(寂寂)

외롭고 쓸쓸한 모양

 

적전(赤箭)

수자해좆의 어린 뿌리. 한방(漢方)에서 강장제로 사용한다.

 

적전(籍田)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지어 종묘에 제사지낼 쌀을 수확하고 백성에게 농사를 권하는 것인데, 임금이 몸소 따비로 세 번 밀어서 갈아 보는 것이다.

 

적전청지(赤箭靑芝)

적전은 지초(芝草)의 유로 영약인데 줄기가 화살대처럼 생기고 적색이다. 청지도 영약이다. 한유(韓愈)진학해(進學解)赤箭靑芝牛溲馬勃敗鼓之皮 俱收竝蓄 待用無遺者 醫師之良也라 하였다.

 

적제(狄鞮鞮)

통역(通譯)이라는 뜻이다. 상고 때 서쪽 외국의 통역을 맡은 통역관의 칭호이다. 곧 외국을 말한다. / 유의어: 상기제역(象寄鞮譯), 상서(象胥), 상역(象譯), 제상기역(鞮象寄譯),

 

적제자(赤帝子)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말한다. 적제는 남방(南方)의 신()인데 한()은 화덕(火德)으로 왕 노릇하여 적색(赤色)을 숭상하였으므로 말한다. 유방이 술이 취하여 밤에 택중(澤中)을 지나다가 칼을 뽑아 뱀을 베었는데 뒤에 온 사람이 그곳에 이르니 노구(老嫗)가 울면서 내 아들은 백제(白帝)의 아들인데 뱀이 되어 길에 나왔다가 적제(赤帝)의 아들에게 베어졌다[, 白帝子也, 化爲蛇, 當道, 今爲赤帝子斬之].” 하였다.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

 

적제적룡(赤帝赤龍)

더위를 말한다. 적색(赤色)은 여름의 색깔이므로 여름을 맡은 신을 적제라 하며, 적룡(赤龍)은 적색의 용으로서 불()을 말한다.

 

적조(寂照)

불교에서 참()된 이()의 본체가 적()이라 하고 그 참의 쓰임()을 조()라 한다.

 

적지(赤墀)

황제가 거처하는 궁전의 섬돌 바닥은 붉은칠을 한다 하여 대궐을 말한다.

 

적진성산(積塵成山)

티끌 모아 태산이란 뜻이다.

 

적천신(積千薪)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에 한() 나라 급암(汲黯)이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후배들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늦게 쌓는 장작이 위에 올라감을 비유로 들어 한 무제(漢武帝)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던 고사가 전한다. 소식(蘇軾)의 시 송정육표제(送程六表弟)청삼이여 말단 관직 싫어하질랑 마오, 백발의 이 몸 위에도 장작이 천 층 쌓였으니[靑衫莫厭百僚底 白髮上有千薪積].”라는 표현이 있다.

 

적초어(赤梢魚)

문어를 말한다

 

적취헌(積翠軒)

정자 이름이다. 동래 객관(客館) 뒤에 있었다.

 

적치(赤幟)

사수(泗水)의 정장(亭長)으로 있던 유방(劉邦)이 붉은 깃발을 들고일어나 후에 한() 나라를 세운 것을 말한다. ()은 적색(赤色)을 숭상했기 때문에 붉은 깃발을 썼다.

 

적토성산(積土成山)

흙이 쌓여 산을 이룸. 작은 것을 힘써 모아서 큰 것을 이룸을 뜻하는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

 

적토청룡(赤兎靑龍)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관우(關羽)가 사용했던 말과 칼이다.

 

적표(赤豹)

붉은 털에 검은 무늬가 있는 표범.

 

적하편(擿瑕編)

왕발(王勃)은 당 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안(子安). 어릴 때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나 9세에 안사고(顔師古)가 주()를 단 한서(漢書)를 읽고 적하편을 지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였다. 신당서(新唐書)王勃傳

 

적홀일상(積笏一床)

당 현종(唐玄宗) 때 최신경(崔神慶)의 가문에서 무려 80여 인의 고관(高官)이 나왔으므로, 집안에서 잔치를 벌일 때에는 상 위에 쌓아 놓은 홀들이 수북했다[一榻置笏重疊于其上]는 고사가 있다. 구당서(舊唐書)77 최의현전(崔義玄傳)

 

적환(謫宦)

관리(官吏)가 죄에 걸려 폄척(貶斥)받아서 좌천(左遷)되는 것을 말한다.

 

적환공(赤鯶公)

붉은 빛의 잉어를 말한다. 옛날에 선인(仙人) 금고(琴高)가 붉은 잉어를 타고 탕수(碭水)로 들어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소식(蘇軾)의 개선수옥정시(開先漱玉亭詩)원컨대 금고생을 따라서 적완공을 타보고 싶네[願隨琴高生 脚踏赤鯶鯶公]”하였다. 소동파집(蘇東坡集)卷二十三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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