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다른 처지 속 같은 취지
4b-29. 요ㆍ순시절의 명신하로서 치수를 담당한 우(禹)와 농경을 담당한 후직(后稷)은 태평한 치세를 살았지만【여기 ‘평세(平世)’라는 단어선택은 아래의 안회의 난세(亂世)에 대비하여 좀 과장되게 표현된 것이다. 홍수가 범람하고 문명의 질서가 잡히지 않은 난세였으나, 그 재앙을 바로잡아가는 충신들이 활약한 시대였다】, 자신의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여 일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아내와 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자기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치게 되었지만 결코 대문을 열고 들어가질 않았다【이 이야기는 보통 우(禹)에 해당되는 것으로 거론되었다. 3a-4 참조】. 공자는 이들을 현(賢)하다고 평가하였다. 안자(顔子)【공자의 수제자 안회】는 난세 속에서 살면서 누추한 동네에 살았고 한 소쿠리의 밥, 한 표주박의 물로써 만족하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내하기 어려운 고로(苦勞)를 안자는 오히려 변함없이 낙으로 삼았다【『논어(論語)』 6-9】. 그래서 공자는 그를 현(賢)하다고 평가하였다. 4b-29. 禹ㆍ稷當平世, 三過其門而不入, 孔子賢之. 顔子當亂世, 居於陋巷. 一簞食, 一瓢飮. 人不堪其憂, 顔子不改其樂, 孔子賢之. 맹자께서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평론하시었다: “우와 후직과 안회는 얼핏 보면 각기 자기의 다른 삶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길을 같이 걸어가고 있다[同道]. 우는 직책상치수를 담당했기 때문에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물에 빠지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느꼈다. 후직은 직책상 농경을 담당했기 때문에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끼니를 굶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끼니를 굶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이 두 사람은 그들이 담당한 직무가 긴급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하여 안회의 상황은 그렇게 긴급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도를 걸어가는 마음은 같았다. 만약에 우ㆍ직과 안회의 상황을 바꾸어서 생각해본다면, 안회 또한 우ㆍ직처럼 긴급하게 이 세상을 구원하는 데 분주하게 살았을 것이고 우ㆍ직 또한 안회처럼 안빈낙도하면서 느긋하게 살았을 것이다. 孟子曰: “禹ㆍ稷ㆍ顔回同道. 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飢者, 由己飢之也, 是以如是其急也. 禹ㆍ稷ㆍ顔子易地則皆然. 여기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금 한 방에 같이 앉아있는 옆 사람들이 코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면 당연히 말려야 한다. 흩어진 머리를 빗어 상투를 틀고 갓끈을 맬 여유도 없이 달려가 말려야만 마땅하다. 이것은 우직의 상황이다. 그런데 동네자락 저 끝 언저리 집에서 누가 싸우고 있는데 흩어진 머리를 빗어 상투를 틀고 갓끈을 맬 여유도 없이 달려가 말린다는 것은 괜한 참견이다. 그것은 미혹이다. 그때는 창문을 닫고 드러눕는 것이 옳다. 이것이 안회의 상황이었다.’ 今有同室之人鬪者, 救之, 雖被髮纓冠而救之, 可也. 鄕鄰有鬪者, 被髮纓冠而往救之, 則惑也, 雖閉戶可也.” |
맹자의 위대한 커먼센스의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명프라그먼트라할 것이다. 여기 맹자의 커먼센스를 지배하는 것은 ‘권(權)의 철학’이다. 역사적 상황, 그리고 개인적 직분에 따라 사회정의(social justice)의 감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뒤에 5b-5에도 비슷한 논의가 있다. 『중용(中庸)』 제14장의 ‘군자는 그 자리에 처하여 그 자리에 합당한 행동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자리를 벗어난 환상적 그 무엇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도 맹자의 메시지의 컨텍스트에 따라 해석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맹자가 이러한 자사의 사상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켰을 것이다. 『논어(論語)』에도 ‘정확한 직책의 명분을 얻지 않은 이상, 정사를 도모하지 않는다[不在其位, 不謀其政].’(8–14, 14-27)라는 공자의 말씀이 있고, 증자의 말로서 ‘군자의 생각은 그 위를 넘어가지 않는다[君子思不出其位]’(14-28)라는 파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에서는 방유도(邦有道)하면 세상에 나가 활동을 해야 마땅하지만 방무도(邦無道)하면 물러나 일신(一身)을 깨끗이 하는 것이 장땡이라는 생각이 있는데(5-1B, 5-20, 8-13, 14-1, 14-4, 15-6), 이런 생각도 여기서 말하는 평세(平世)와 난세(亂世)의 맥락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쓰는 ‘역지사지(易地思之)’(출전 없음)라는 말도 이 장의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4b-31에도 동일한 표현이 있다】. 중국사람들은 ‘역지사지’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보통 ‘역지개연(易地皆然)’이라고만 말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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