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자들의 지엽적인 학문풍토와 은둔지향성을 비판하다
오학론 일(五學論 一)
정약용(丁若鏞)
성리학의 본령
性理之學, 所以知道, 認己以自勉, 其所以踐形之義也.
『易』 「大傳」曰: “窮理盡性, 以至於命.” 『中庸』曰: “能盡己之性, 能盡人之性, 能盡物之性.” 『孟子』曰: “盡其心者知其性, 知其性則知天矣.” 性理之學, 有所本也.
然古之爲學者, 知性之本乎天, 知理之出乎天, 知人倫之爲達道, 以孝弟忠信爲事天之本, 以禮樂刑政爲治人之具, 以誠意ㆍ正心, 爲天人之樞紐.
其名曰: “仁.” 其所以行之曰: “恕.” 其所以施之曰: “敬.” 其所以自秉曰: “中和之庸.”如斯而已, 無多言也. 雖多言, 是重言複言, 無異言也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지금 성리학자의 폐해
今之爲性理之學者, 曰理曰氣曰性曰情曰體曰用, 曰本然氣質, 理發氣發, 已發未發, 單指兼指, 理同氣異, 氣同理異, 心善無惡, 心善有惡, 三幹五椏, 千條萬葉.
毫分縷析, 交嗔互嚷, 冥心默研. 盛氣赤頸, 自以爲極天下之高妙. 而東掁西觸, 捉尾脫頭. 門立一幟, 家築一壘, 畢世而不能決其訟, 傳世而不能解其怨. 入者主之, 出者奴之, 同者戴之, 殊者伐之, 竊自以爲所據者極正, 豈不疎哉.
예(禮)와 악(樂)과 형정(刑政), 위의(威儀)의 본뜻조차 모르는 유자들
禮者所以節文乎孝弟忠信之行者也, 則勿知焉, 曰: “名物度數, 於道末也.” 曰: “籩豆之事則有司存.”
樂者所以悅樂乎孝弟忠信之行者也, 則勿知焉, 曰: “詠歌舞蹈, 於今外也.” 曰: “樂云樂云, 鍾鼓云乎.”
刑政者所以輔成乎孝弟忠信之行者也, 則勿知焉, 曰: “刑名功利之學, 聖門之所棄也.”
威儀者所以維持乎孝弟忠信之行者也, 祭祀賓客朝廷軍旅燕居喪紀, 其容各殊, 布在「容經」, 不可相用. 則勿知焉, 槪之以一字之禮曰跪. 三百三千, 其終以一跪字槪之乎.
사(士)의 본질과 은자(隱者)의 성향 비판
古者學道之人, 名之曰士, 士也者仕也. 上焉者仕於公, 下焉者仕於大夫, 以之事君, 以之澤民, 以之爲天下國家者謂之士. 其遭人倫之變, 如伯夷ㆍ叔齊ㆍ虞仲ㆍ夷逸之等隱之, 餘無隱也.
故素隱行怪, 聖人戒之, 今爲性理之學者, 自命曰隱, 雖弈世卿相, 義共休戚, 則勿仕焉; 雖三徵七辟, 禮無虧欠, 則勿仕焉.
生長輦轂之下者, 爲此學則入山, 故名之曰山林. 其爲官也, 唯經筵講說及春坊輔導之職, 是注是擬.
若責之以錢穀甲兵訟獄擯相之事, 則羣起而病之, 以爲待儒賢不然
推是義也, 將周公不得爲太宰, 孔子不得爲司寇, 子路不得折獄, 公西華不得與賓客言. 聖人敎斯人, 將安授之; 國君致斯人, 將安用之. 乃其所自倚以文之, 則曰: “我尊尙朱子.”
주자의 행동을 통해 본 사(士)의 모범
嗚呼! 朱子何嘗然哉. 研磨六經, 辨別眞僞; 表章四書, 開示蘊奧. 入而爲館閣則危言激論, 不顧死生, 以攻人主之隱過, 犯權臣之忌諱, 談天下之大勢, 滔滔乎軍旅之機, 而復讎雪恥, 要以伸大義於千秋. 出而爲州郡, 則仁規慈範, 察隱察微, 以之平賦徭, 以之振凶扎,其宏綱細目, 有足以措諸邦國. 而其出處之正也, 召之則來, 捨之則藏, 拳拳乎君父之愛而莫之敢忘, 朱子何嘗然哉.
沈淪乎今俗之學, 而援朱子以自衛者, 皆誣朱子也. 朱子何嘗然哉.
雖其修飾邊幅, 制行辛苦, 有勝乎樂放縱邪淫者, 而空腹高心, 傲然自是, 終不可以携手同歸於堯舜周孔之門者, 今之性理之學也. 『與猶堂全書』
해석
성리학의 본령
性理之學, 所以知道,
성리학은 도를 알고
認己以自勉, 其所以踐形之義也.
자기를 알아 스스로 힘써 타고난 자취를 따르는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역경』의 「설괘전(說卦傳)」에서 말했다. “이치와 본성을 다해 천명에 이르다.”
『中庸』曰: “能盡己之性, 能盡人之性, 能盡物之性.”
『중용』에서 말했다. “본성을 다하면 타인의 성을 다할 수 있고 만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다.”
『孟子』曰: “盡其心者知其性, 知其性則知天矣.”
『맹자』에서 말했다.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성(性)을 알고, 성(性)을 알면 하늘을 안다.”
性理之學, 有所本也.
성리학은 근본인 것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然古之爲學者, 知性之本乎天,
그러나 옛날에 배우는 사람들은 본성이 하늘에 근본했음을 알았고
知理之出乎天, 知人倫之爲達道,
이치가 하늘에서 나왔음을 알았으며 인륜이 달도가 됨을 알아,
以孝弟忠信爲事天之本, 以禮樂刑政爲治人之具,
효제와 충신으로 하늘을 섬기는 근본으로 삼고 예악과 형벌하는 정치로 사람을 다스리는 도구를 삼고
뜻을 성실히 하는 것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하늘과 사람의 중추로 삼았다.
其名曰: “仁.” 其所以行之曰: “恕.”
이것을 ‘인(仁)’이라 이름 짓고 그것을 행하게 하는 까닭을 ‘서(恕)’라 하며,
其所以施之曰: “敬.” 其所以自秉曰: “中和之庸.”
그것을 시행하게 하는 까닭을 ‘경(敬)’이라 하고 스스로 잡는 까닭을 ‘중화의 평정심’이라 하니,
如斯而已, 無多言也.
이와 같을 뿐, 많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雖多言, 是重言複言,
비록 말이 많다는 건 이것은 중언부언이니,
無異言也
이론이 없다는 것이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지금 성리학자의 폐해
今之爲性理之學者, 曰理曰氣曰性曰情曰體曰用,
지금 성리학을 하려는 사람은 理ㆍ氣ㆍ性ㆍ情ㆍ體ㆍ用이라고들 하며,
曰本然氣質, 理發氣發, 已發未發, 單指兼指,
본연(本然)이니 기질(氣質)이니 이발(理發)이니 기발(氣發)이니 이발(已發)이니 미발(未發)이니 단지(單指)니 겸지(兼指)【單指兼指: 단지는 ‘氣質은 제외하고 理만을 가리켜 말한다〔捨氣質而單指其理〕’는 뜻이고, 겸지는 ‘기질도 포함해서 理와 함께 가리켜 말한다〔兼氣質而幷指其理〕’는 뜻이다. 단지는 本然之性과 未發의 대칭으로, 겸지는 氣質之性과 已發의 대칭으로 쓰이기도 한다.】라느니
理同氣異, 氣同理異,
리(理)는 같지만 기(氣)는 다르다느니, 기(氣)는 같지만 리(理)는 다르다느니,
마음은 착해 악은 없다느니, 마음은 선한데도 악은 있다느니라 말하며,
三幹五椏, 千條萬葉.
세 가지 줄기와 다섯 가장귀가 천 가지로 갈라지고 만 가지로 잎사귀로 되었다.
毫分縷析, 交嗔互嚷,
터럭까지 실까지 낱낱이 분석하며 서로 목청 높여 따지기도 하고
冥心默研.
마음을 비우고 묵묵히 연구하기도 하다가
盛氣赤頸, 自以爲極天下之高妙.
기를 펼치고 목을 붉히면서 스스로 천하의 높다란 오묘함을 얻었다고 말한다.
而東掁西觸, 捉尾脫頭.
동쪽으로 닿다가 서쪽에 닿으며 꼬리를 잡으면 머리가 벗겨진다.
門立一幟, 家築一壘,
문하마다 하나의 기치를 세우고 일가마다 하나의 보루를 구축하니
畢世而不能決其訟, 傳世而不能解其怨.
세상이 끝나도록 결론지을 수 없고 후세에 전하도록 원망을 풀 수가 없다.
入者主之, 出者奴之,
수용하는 사람은 그를 주인으로 삼고 내치는 사람은 그를 종으로 여기며
同者戴之, 殊者伐之,
동의하는 사람은 그를 떠받들고 이견을 내는 사람은 그를 쳐내니,
竊自以爲所據者極正, 豈不疎哉.
자기가 스스로 근거하는 게 있어 지극히 바르다고 여기니 어찌 서툰 게 아니리오.
예(禮)와 악(樂)과 형정(刑政), 위의(威儀)의 본뜻조차 모르는 유자들
禮者所以節文乎孝弟忠信之行者也,
예라는 것은 효제와 충신을 행하게 하여 문채 나도록 하는 까닭인데,
則勿知焉, 曰: “名物度數, 於道末也.”
알지 못하면서 “명물과 도수【名物과 度數: 명목(名目)ㆍ사물(事物)ㆍ법식(法式)ㆍ수량(數量)을 말한다. 즉 등급이 나뉜 예법(禮法)과 정해진 법규(法規)이다.】는 도에 있어서 말단이다.”라고 말하고,
曰: “籩豆之事則有司存.”
“제기 놓는 일은 맡은 사람이 있다.”라고 말한다.
樂者所以悅樂乎孝弟忠信之行者也,
악(樂)이라는 것은 효제와 충신을 행하게 하여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까닭인데,
則勿知焉, 曰: “詠歌舞蹈, 於今外也.”
알지 못하고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지금에 있어선 터부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曰: “樂云樂云, 鍾鼓云乎.”
“음악이라고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종과 북만을 말하는 것인가.”라고 말한다.
刑政者所以輔成乎孝弟忠信之行者也,
형벌과 정치는 효제와 충신을 행하게 하여 천지와 백성을 돕고 이루는 까닭인데,
則勿知焉, 曰: “刑名功利之學, 聖門之所棄也.”
알지 못하고서 “형명학【刑名學: 명칭(名稱)과 실상(實相)이 부합(符合)하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명실론(名實論)을 법(法)의 적용에 응용하려는 학문으로, 중국의 전국 시대에 신불해(申不害)ㆍ상앙(商鞅)ㆍ한비자(韓非子) 등이 제창하였다.】과 공리학은 성인의 문하에서 버린 것이다.”라고 말한다.
威儀者所以維持乎孝弟忠信之行者也,
위의는 효제충신을 행하게 하여 유지하게 하는 까닭인데,
祭祀賓客朝廷軍旅燕居喪紀,
제사(祭祀)ㆍ빈객(賓客)ㆍ조정(朝廷)ㆍ군려(軍旅)ㆍ연거(燕居)ㆍ상기(喪紀)함에
其容各殊, 布在「容經」, 不可相用.
동작이 각기 달라 「용경」【容經: 가의(賈誼)의 저서인『신서(新書)』의 편명인데, 내용은 곧 지(志)ㆍ용(容)ㆍ시(視)ㆍ언(言)ㆍ좌(坐)ㆍ행(行)ㆍ궤(跪)ㆍ배(排) 등에 있어 동작 절도(動作節度) 등의 법칙에 관하여 서술한 것이다.】에 펼쳐져 있으니 섞어 써선 안 되는 것인데,
則勿知焉, 槪之以一字之禮曰跪.
알지 못하고서 한 글자의 예로 개괄하여 ‘궤(跪)’라고 하니
三百三千, 其終以一跪字槪之乎.
3백 가지 예의(禮儀)와 3천 가지 위의(威儀)를 끝내 한 글자인 ‘궤(跪)’자로 포괄할 수 있겠는가.
사(士)의 본질과 은자(隱者)의 성향 비판
古者學道之人, 名之曰士, 士也者仕也.
옛날엔 도를 배우는 사람을 ‘사(士)’라 말하니, 사(士)란 벼슬한다는 것이다.
上焉者仕於公, 下焉者仕於大夫,
위로는 공에게 벼슬하고 아래로는 대부에 벼슬하여
以之事君, 以之澤民,
임금을 섬기고 백성에겐 은택을 베풀어
以之爲天下國家者謂之士.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을 사(士)라 한다.
인륜이 변화를 만났을 때 백이와 숙제와 우중과 이일 등의 경우는 은둔했지만
餘無隱也.
나머지는 은둔하지 않았다.
故素隱行怪, 聖人戒之,
그러므로 감춰진 것을 찾아 헤매고 기이한 것을 행동하는 것을 성인이 경계했지만
今爲性理之學者, 自命曰隱,
지금 성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은자라 명명하며
雖弈世卿相, 義共休戚,
비록 세상을 덮을 정도의 경상으로 의로 국가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야 하는데도
則勿仕焉;
벼슬하지 않고,
雖三徵七辟, 禮無虧欠,
비록 자주 등용하러 불러【三徵七辟: 자주 여러 차례 소명(召命)을 받음을 뜻한다. 진(晉)나라 왕부(王裒)는 자기 부친이 비명에 세상을 떠난 것을 애통하게 여겨 은거한 채 학생을 가르치면서 조정에서 세 차례 소명을 내리고〔三徵〕 주군(州郡)에서 일곱 차례 불렀으나〔七辟〕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晉書 卷88 王裒列傳』】 예의상 하자가 없음에도
則勿仕焉.
벼슬하지 않는다.
生長輦轂之下者, 爲此學則入山,
임금의 수레【輦轂: 임금이 타는 수레.】 밑에서 자랐지만 이 학문을 하면 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故名之曰山林.
산림처사라 명명한다.
其爲官也, 唯經筵講說及春坊輔導之職,
벼슬을 하면 오직 경연의 강설관(講說官)과 동궁의 보도관(輔導官) 직분으로
是注是擬.
임금께 후보자 세 명만을 올리기만 한다【注擬: 관원(官員)을 임명할 때 문관(文官)은 이조(吏曹)에서, 무관(武官)은 병조(兵曹)에서 후보자 세 사람을 정하여 임금에게 올리는 것이다.】.
若責之以錢穀甲兵訟獄擯相之事,
만약 이들에게 전곡(錢穀)ㆍ갑병(甲兵)ㆍ송옥(訟獄)ㆍ빈상(擯相)의 일을 책임지우면
則羣起而病之, 以爲待儒賢不然
함께 일어나 병으로 여기며 “선비와 현인을 대우함이 이래선 안 된다.”고 말한다.
推是義也, 將周公不得爲太宰, 孔子不得爲司寇,
이런 뜻을 미루면 장차 주공은 태재가 될 수 없고 공자는 노사구가 될 수 없으며,
자로는 판결을 내릴 수 없고 공서화는 빈객과 말할 수가 없다.
聖人敎斯人, 將安授之;
성인은 이 사람을 가르칠 적에 장차 어떤 것을 가르칠 것이며,
國君致斯人, 將安用之.
임금이 이 사람을 등용할 적에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乃其所自倚以文之, 則曰: “我尊尙朱子.”
곧 스스로 과장하며 문식하길 “나는 주자를 존숭한다.”라고 말한다.
주자의 행동을 통해 본 사(士)의 모범
嗚呼! 朱子何嘗然哉.
아! 주자가 어찌 일찍이 이런 일을 했는가.
研磨六經, 辨別眞僞;
육경을 연구하고 절차탁마하여 진위를 판별했고,
表章四書, 開示蘊奧.
사서를 드러내 숨겨진 깊은 뜻을 열어보였다.
入而爲館閣則危言激論, 不顧死生,
조정에 들어가 대신이 되어 엄격한 말과 격론한 논쟁으로 생사를 돌보지 않고
以攻人主之隱過, 犯權臣之忌諱,
임금의 감춰진 허물을 공박하고 권신의 꺼림을 범했으며,
談天下之大勢, 滔滔乎軍旅之機,
천하의 대세를 말하고 군대의 기미에 대해 자주 말하며
而復讎雪恥, 要以伸大義於千秋.
복수하고 부끄럼을 설욕하여 대의를 천추에 펼치길 구했었다【주자(朱子)는 남송(南宋) 때 사람인데, 남송이란 이름은 금(金) 나라에게 중원(中原)을 빼앗기고 양자강 남쪽으로 쫓겨오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즉 금 나라를 몰아내고 다시 본토를 회복하려 했다는 뜻이다. 부끄러움이란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이 금 나라에 잡혀간 일을 말한다.】.
出而爲州郡, 則仁規慈範,
나아가 주군이 되면 인자한 규범을 세우고
察隱察微, 以之平賦徭, 以之振凶扎,
은미한 것들을 살펴 그것으로 부역을 공평히 했고 그것으로 흉년과 역병을 바로잡았으니,
其宏綱細目, 有足以措諸邦國.
넓은 강령과 세세한 조목이 족히 나라에 조치할 만했다.
而其出處之正也, 召之則來, 捨之則藏,
그러나 출처가 분명해 부르면 나가고 파직되면 은둔하여
拳拳乎君父之愛而莫之敢忘,
임금과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끌어안고 감히 잊질 않았으니,
朱子何嘗然哉.
주자가 어찌 일찍이 지금의 학자들 같이 그런 일을 했는가.
沈淪乎今俗之學, 而援朱子以自衛者,
지금 시속의 학문은 몰락해 주자를 끌어다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사람들은
皆誣朱子也.
모두 주자를 속이는 것이다.
朱子何嘗然哉.
주자가 어찌 일찍이 지금의 학자들 같이 그런 일을 했는가.
雖其修飾邊幅, 制行辛苦,
비록 겉치레만 꾸미지만【邊幅: 겉치레로 꾸미는 것】 행실을 제재함이 고생스러워
有勝乎樂放縱邪淫者.
방종하여 음탕함을 즐기는 사람보다는 낫기는 하다.
而空腹高心, 傲然自是,
그러나 빈속에 고고한 마음으로 오만하게 스스로 옳다고 여기니
終不可以携手同歸於堯舜周孔之門者,
마침내 손을 잡고 요순과 주공과 공자의 문하에 함께 귀의할 수 없으니,
今之性理之學也. 『與猶堂全書』
이것이 지금의 성리학이라는 것이다.
인용
五學論1: 성리학 비판
五學論2: 훈고학 비판
五學論3: 문장학 비판
五學論4: 과거학 비판
五學論5: 술수학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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