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 서설, 3. 붓다와 깨달음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 서설, 3. 붓다와 깨달음

건방진방랑자 2022. 3. 10. 05:24
728x90
반응형

붓다의 세가지 의미

 

 

우리가 보통 ’(cow)라고 하면 그 소는 대강 대별하여 다음의 세 가지 뜻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는 첫째 갑돌이네 집에 있는 그 소, 즉 특정한 역사적 시공에 살아 움직이는 개체로서의 소를 특칭하여 일컫는 말일 것이다(a particular cow). 둘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소,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모든 소를 전칭하여 부르는 말일 것이다(all Cow). 그리고 셋째로는 모든 소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소됨, 그러니까 소의 모든 속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cowness).

 

a particular cow 특정한 역사적 시공에 살아 움직이는 개체로서의 소를 특칭하여 일컫는 말
all Cow 모든 소를 전칭하여 부르는 말
cowness 소의 모든 속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

 

 

지금 우리가 붓다라는 말을 쓸 때, 이 붓다라는 말 또한 이와 같이 우리의 일상언어가 뜻하는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부처라는 우리말은 붓다에서 받침이 탈락되면서 자연스러운 발음으로 변화한 형태이다.) 첫째, 붓다는 한 시대, 한 공간에서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한 인간, 고타마 싯달타(산스크리트어로는 Gautama Siddhārtha, 팔리어로는 Gotama Siddhatha)를 가리킨다. 석가모니, 즉 사카무니(Śākya-muni)사캬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석가족에서 배출된 성자라는 의미에서 추앙된 이름이다. 그러니까 석가(Śākya, 팔리어 Sākiya)는 종족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석가종족은 또 다시 여러 씨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싯달타가 속해 있는 씨족의 이름이 바로 고타마이다. 그러니까 고타마란 것은 우리말의 성씨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광산김씨정도에 해당되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가 탄생했을 때 정반왕 부친이 지어준 이름 즉 명()에 해당되는 것이 싯달타였다. 싯달타란 그 목적을 성취한 사람’(he whose aims are fulfilled.)이란 뜻이다. 이미 싯달타라는 이름 속엔 그의 보리수하의 성도에 대한 예언이 담겨져 있다. 수행본기경에는 그가 룸비니에서 탄생하여 카필라궁전으로 교룡거를 타고 돌아왔을 때 왕이 궁전 문밖으로 마중을 나왔는데, 그때 모여든 범지(梵志, Brannacārin)와 상사(相師, 관상쟁이)들이 그의 탄생을 경하하며 만세를 부르고, 이름을 지어 싯달타라 소리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於時集至梵志相師, 普稱萬歲. 卽名太子, 號爲志達. 修行本起經卷上, 菩薩降身品第二, 大正3-463.. 싯달타의 음역을 보통 실달’(悉達)이라 하는데 이것 역시 모두 이루었다.’라는 뜻을 교묘하게 내포하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 위서 한 마지막 말과도 상통하는 표현이다.(‘다 이루었다.’ 요한복음19:30.)

 

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싯달타, 카필라성에서 태어나 결혼해서 잘 살다가,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성도하고, 45년간 종교활동을 하다가 80세에 죽었다는 한 사나이, 그가 이 땅에서 시공을 점유한 하나의 존재인 한에 있어서는 분명 나, 도올 김용옥과 똑같은 호모사피엔스에 속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가 응신(應身)이든, 화신(化身)이든, 보신(報身)이든, 응화신(應化身)이든지를 막론하고 그는 나와 같은 색신(色身, rūpa-kāya)을 보유한 한 인간일 뿐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색신(色身)의 붓다를 우리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와 같은 용법의 맥락에 따라, 역사적 붓다(historical Buddha)라고 하자!

 

우리가 근본불교나 원시불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 역사적 붓다를 전제로 함에 있어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다. 역사적 붓다가 애초에 실존하지 않았던 픽션이라고 한다면 근본불교니 원시불교니 하는 논의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가 삼장의 비나야나 니까야ㆍ아가마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료들이 그 역사적 붓다의 실상에 후대의 대승경전보다 더 접근하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색신과 법신

 

 

우리말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속담이 하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붓다는 죽기 전에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평생 설하고 가르친 법()과 율()이 있으니, 이것이 내가 죽은 후에는 그대들의 스승이 되리라.”

 

그리고 또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서품(序品)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스승 석가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세월은 극히 짧은 것이었다. 육체(肉體)는 비록 갔지만 그 법신(法身)은 살아 있다. 마땅히 그 법이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하리…… 여래의 법신(法身)은 썩는 법이 없으니 영원히 이 세상에 남아 끊어지지 않으리.

釋師出世壽極短, 肉體雖逝法身在, 當令法本不斷絕…… 如來法身不敗壞, 永存於世不斷絕. 增壹阿含經卷第一, 序品第一, 大正2-549~550.

 

 

본시 삼신(三身)이니, 사신(四身)이니, 십신(十身)이니 하는 애매모호하고 번쇄한 이론들이 다 후대에 생겨난 것이요, 초기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세친(世親, Vasubandhu)이 활약하던 AD 45세기, 그러니까 대승불교 중기에나 성립한 것이다. 초기불교에는 색신(色身, rūpa-kāya)과 법신(法身, dharma-kāya), 이 두 가지 구분밖에는 없었다. 그것도 정형화된 개념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에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소박한 말들이었다.

 

죽은 호랑이는 바로 그 호랑이의 육신(肉身)이다. 그 육신이 곧 색신(色身)이다. 그런데 그 호랑이가 남긴 가죽(상징적 의미체계 속에서)은 곧 호랑이의 법신(法身)이다. 여기 인용된 대로 붓다의 법신은 붓다가 남긴 법()이요 율()이다. 법은 경장에 수록되었고, 율은 율장에 수록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신도 어떠한 대단한 이론으로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인간 붓다가 죽어가면서 그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주변의 친구들이나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한 말이다. 정말 붓다가 대단히 신통력이 뛰어나고 시공을 초월하는 불멸의 영력의 소유자라 했다면, 붓다의 죽음은 신비화되었을 것이다. 예수처럼 죽었다 곧 부활하여 애통해하는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났든지, 무드셀라처럼 몇 백년을 살았든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그 위대한 붓다는 45년간 주변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냥 보통사람처럼, 아주 평범한 보통사람처럼, 파바(波婆, 현 파질나가르Fazilnagar)마을의 대장장이 아들 춘다(純陀, Chunda)가 공양한 수끄라하 맛따빠(sūkraha mattapah)라는 상한 돼지고기 요리를 잘못 먹고 심한 이질설사를 일으키며, 쿠시나가르(拘尸那羅, Kuśīnagar)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를 떠나지 않고 곁에서 25년간이나 시봉했던 제자 아난(阿難, 阿難陀, Ānanda)은 육신이 쇠진하여 죽어가는 붓다를 향해 애통해하며 울부짖는다.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빨리도 가시려 하오니이까? 큰 법이 가리우고 세간은 눈이 멀어 버리지 않겠사오니이까? 선생님의 법력으로 열반에 드시지 마옵소서! 세존께서는 부디 1겁 동안 이 세상에 머무소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을 연민하시와 인간들과 신들의 복리와 안락을 위해.”

 

그리고 세존이 설법하시는 동안에도 슬픔을 못 이기고 슬며시 정사 뒷켠에서 몸을 숨기고 흐느낀다.

! 나는 배워야 할 것, 이루어야 할 것이 아직도 많다. 그런데 저 자애로움이 깊으신 큰 스승님께서 나를 두고 가시려 하다니!”

 

라고 문고리를 부여잡고 숨소리를 죽여가며 절규한다.

 

이러한 아난에게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난다여! 나의 죽음을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아난다여! 내가 항상 말하지 않았더냐? 아무리 사랑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일지라도 마침내는 달라지는 상태, 별리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아난다여!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무너지는 것, 그 무너져 가는 것에 대하여 아무리 무너지지 말라고 만류해도, 그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당부한다.

제자들이여!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할 것이며 타인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또 진리를 의지처로 하고 진리에 귀의할 것이며,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그리고는 다시 흐느끼는 아난을 위로한다.

아난다여! 명심하여라. 나 여래의 수명은 너무도 길다. 왜 그런 줄 아느냐? 나의 육신(肉身)은 썩어 없어질지, 내 법신(法身)은 여기 이 땅에 살아남아 너희들과 항상 같이 다. 이 뜻을 잘 새기어 봉행하거라[是故阿難, 當建此意. 我釋迦文佛壽命極長. 所以然者, 肉身雖取滅度, 法身存在. 此是其義, 當念奉行. 增壹阿含經卷第四十四, 十不善品第四十八, 大正2-787.].”

 

내 육신은 썩어 없어질지라도 내가 너에게 전하다 진리는 영원하리, 여기 육신(肉身)과 법신(法身)이라는 개념이 이미 아가마에 등장하고 있지만 본래는 세상을 하직하는 붓다가 주변의 작별을 서러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던진 매우 상식적인 말이었다.

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있으리라고 한 양명문 시 속의 명태의 고백처럼 던진 이 한마디가, 후대 불교사에 엄청난 문제를 던지는 이론적 과제상황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와불(臥佛)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모로 누운 부처는 반드시 열반에 드는 싯달타의 죽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말에 와불은 드러누워 잠자는 부처로 오해될 수가 있다. 모든 와불은 열반상일 뿐이다. 붓다의 열반지인 쿠시나가르에는 AD 417년 꾸마라굽타 1 (Kumaragupta I) 때 조성된 열반상이 장중한 모습을 드리우고 있다. 내가 목격한 와불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리얼한 걸품이었다. 보통 옷을 입혀 놓았는데 옷을 벗기고 사진 찍느라고 100루피를 주어야 했다.

 

 

부록 2. 소승과 대승의 대반열반경

 

 

이상의 대화는 팔리어삼장 중 장부(長部, Dighanikāya)의 제16번째에 속하는 경전인 대반열반경(Mahāparinibbāna-Suttanta)의 내용 중에서 발췌하여 그 순서를 바꾸어 윤색한 것이다. 독자들이 받는 느낌의 강화를 위하여 원전의 의미맥락이 손상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드라마타이즈시킨 것이다. 이 팔리 니까야의 대반열반경에 해당되는 한역장경으로는 장아함경(長阿含經)卷二~에 수록되어 있는 유행경(遊行經)을 들 수 있다(大正1-11~30). 후주(後奏)의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측불염(竺佛念)이 함께 번역했다.

 

열반경은 소승계열과 대승계열의 전승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계열의 편집 의도는 매우 다르다. 남방 상좌부의 전승인 이 팔리어 대반열반경은 죽음을 향해 가는 부처님의 만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고 자세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인 싯달타 그 인간의 모습이 사건 중심으로 소조하게 그려져 있다. 낙엽이 진 쓸쓸한 거리의 영상을 찍어가는 하나의 로드무비를 연상케 한다. 따라서 소승경전은 스토리 텔링이 그 주요형식이다. 이에 반하여 대승계열의 열반경은 몹시 추상적이고 번쇄하며 구구한 논설이 엄청난 분량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것이 소기하는 것은 입멸과정의 역사적 사실의 서술이 아니라, 붓다의 열반과 관련된 추상적 논의들을 설파하기 위한 것이다. 즉 부처의 열반의 종교적 의미를 극대화시킨 것이다. 나는 대승계열의 대반열반경보다는 소승계열의 대반열반경이 보다 감동적이고 보다 소박하며 보다 가치있는 문헌이라고 확신한다. 대승 대반열반경(40권본)은 최봉수역으로 동국역경원의 한글대장경속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소승 대반열반경은 강기희역으로 민족사의 불교경전 시리이즈12권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민족사의 대반열반경의 일독을 나는 독자들에게 강권하고 싶다. 한우충동하는 불교의 문헌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위대한 문학작품의 하나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단지 이러한 소승경전조차도 후대의 구전일 뿐이며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즉 다큐멘타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 또한 부처님의 열반의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하기 위한 문학적 구성이며, 여러 이야기 전승들의 조합일 뿐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치밀한 문헌비평을 통하여 사실에 접근하는 태도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언해둔다.

 

소승ㆍ대승 열반경에 관하여 폭넓은 지식을 제공하는 책으로 석지명스님의 하기서를 들 수 있다. 석지명, 큰 죽음의 法身, 서울 : 불교시대사, 1995.

 

 

 

 

붓다인 싯달타

 

 

둘째, 붓다(Buddha)란 인도사상사에서 매우 넓은 함의를 지니는 일반명사로 쓰여진 말이었으며, 고타마 싯달타라는 역사적 개인이 독점한 칭호는 아니었다. 붓다란 표현은 예를 들면 쟈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Mahāvīra)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실 붓다의 사후 초기교단에 있어서는 싯달타를 부르는 칭호로서 붓다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1차ㆍ제2차 결집 때까지만 해도 가장 넓게 쓰인 말은 복스러운 성자라는 의미의 바가바트(bhagavat, bhagavan)나 평범한 선생님이라는 의미의 샤스뜨리(śāstṛ)였다Frank E. Reynolds and Charles Hallisey, ‘Buddha,’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New York : Macmillan, 1987), Vol.2, p.320.. 바가바트는 이 세상에서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이라는 의미맥락에서 세존(世尊)으로 한역되었는데, 이것은 특별한 칭호가 아니고 당시 인도사회에서 옛부터 선생님을 부를 때 가장 많이 쓰던 칭호였다.

 

우리나라 동학의 예만 들더라도, 최수운을 생전에 따르는 사람들이 부르던 말은 그냥 선생님,’ ‘큰 선생님일 뿐이었다. 후대에 천도교가 조직되면서, 대신사(大神師)니 하는 등등의 말들이 만들어지고 조장되었던 것이다. 붓다 또한 팔순 노인 싯달타의 사후 한참 후에서부터 채용된 말이었지만, 그 말이 일단 사용되고부터는 역사적 싯달타를 가리키는 가장 유력한 칭호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불교의 근본사상의 심층구조를 형성하는 핵심적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붓다는 싯달타 일인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니었다. 붓다 이전에도 수없는 붓다가 있었으며 붓다의 사후에도 수없는 붓다가 있을 것이다. 싯달타 개인의 기나긴 과거 윤회의 과정에서 현현되었던 캐릭터들은 본생담(本生譚, the Jātaka literature)을 형성하는 보살(bodhisattva)들이다. 보살이라는 개념이 대승불교에서 처음으로 조어된 것은 아니다. 소승불교에서도 보살이라는 말은 쓰였다. 그러나 대승의 보살이 모든 중생들의 성불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개방적 개념임에 반하여, 소승의 보살은 앞으로 부처가 될 사람’(a Buddha-to-be)이라는 의미로만 쓰인 말이었으며, 그것은 싯달타 전생의 인물들(Śākyamuni's previous existences)에게 국한된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 보살 중의 한 사람인 능인(能仁)보살이 싯달타로 태어나 성도하리라는 것을 인증하는 부처로서의 디팜카라(Dīpaṃkara, 燃燈佛, 錠光佛)와 같은 캐릭터도 같이 등장하고 있다디팜카라는 싯달타가 전생에서 섬긴 부처님이다. 그 이야기는 수행본기경에 나오고 있다. 고익진 편역, 한글아함경(서울 :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0), pp.11~19. 大正3-461~3..

 

싯달타가 붓다가 되어 반열반에 들어 해탈하였다는 뜻은, 그가 또 다시 윤회의 굴레 속에 끼어 들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이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해탈했기 때문에 또 다시 인간세에 우리와 같은 형상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붓다는 환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불은 싯달타의 화신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또 다시 싯달타와 같은 인물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무미건조하고 섭섭한 일이다. 따라서 미래불에 대한 논리적 가능성은 싯달타가 생전에 성취한 것과 같은 동류의 대각이나 열반을 성취할 수 있는 캐릭터가 미래세에도 또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가능성은 싯달타의 화신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싯달타와는 다른 윤회계보의 어떤 과거의 보살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과거의 보살이 미래에 붓다로서 다시 인간세에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우리는 미래불(Future Buddhas) 신앙이라고 부른다. 이 미래불의 신화적 형태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륵불(Maitreya)이요, 아미타불(Amitābha)이다. 미륵불은 미륵신앙, 아미타불은 정토신앙을 형성했으며 동아시아역사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미륵신앙은 민중반란이나 천년왕국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조선반도에서 크게 융성했다. 아미타불의 정토신앙은 일본에서 크게 융성하였던 것이다.

 

 

 

 

모두 붓다가 될 수 있다의 붓다

 

 

셋째로 우리가 붓다라는 말을 쓸 때, 붓다는 이 모든 부처님들을 묶는 통일된 개념으로서의 추상적 속성, 즉 우리가 붓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불성(佛性, Buddha Nature, Buddhahood)을 의미할 수 있다. 즉 모든 붓다들은 불성의 측면에서 보면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불성에 대한 논의는 특히 소승과 대승이 대립적으로 이해되면서 주로 대승계열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점점 우주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어갔다. 그리고 이 불성에 대한 논의는 법신(法身, dharma-kāya)이라든가 여래장(如來藏, thatāgata-garbha)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증폭되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선종(禪宗)도 바로 이 불성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적 논의는 너무도 복잡한 많은 문제를 제기하므로 일반독자들을 위하여 일단 접어두려 한다. 우리나라의 원효스님 같은 사람도 바로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탁월한 견해를 제시한 대 사상가였다는 것만 암시해둔다.

 

자아! 우리는 붓다에 관한 세간의 논의를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적 개념에 대한 일반고찰에 따라, 세 가닥으로 정리하여 한번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논의를 지금 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보드가야의 저 나이란쟈나강 건너편에 있는 핍팔라나무 때문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싯달타는 저 핍팔라나무 아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를 얻고 붓다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앉은 자리는 금강보좌(金剛寶座, Vajrasana)가 되었고, 핍팔라나무는 보리수(菩提樹, Bodhi Tree: 깨달음의 나무)가 되었다. 그는 과연 핍팔라나무 아래서 그것을 했길래 붓다가 되었나? 나도 싯달타처럼 핍팔라나무 아래서 가부좌 틀고 7주 정도만 앉아있으면 붓다가 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지금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스투파(Mahabodhi Stupa)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불자들은 너무도 쉽게 일상적으로 성불’(成佛)이라는 말을 쓴다. 만나거나 헤어질 때, 인사말로도 성불하십시요하기도 하고, 절깐 이름도 성불사가 많고, 또 유명한 가곡도 있다. 그런데 이 성불이란 말은, ‘부처님이 된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과연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불이라는 말을 그렇게 일상적으로 쓰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불교문화가 선종(禪宗)을 적통으로 하고 있는 특이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선종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매우 특이한 이론을 그 캣치프레이즈로 가지고 있다.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라! 그리고 너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라! 그리하면 너는 곧 부처가 될 것이다. 여기 견성성불’(見性成佛)에서 성()은 앞서 말한 불성(佛性)을 말한다. 불성을 견()한다는 것은, 곧 우리 존재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아주 쉽게 말하면 나는 원래 부처였는데, 내가 곧 부처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곧 부처라고 하는 나의 본성을 견하면 곧 나는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성불이란 곧 부처가 된다’(to become a Buddha)이다. 이러한 논의는 앞서 말한 여래장론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존재에 대하여 존재론적으로 불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성불에 대한 그러한 쉬운 해결은 곧 나 속에 있는 불성의 건재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불교의 최고 법인(法印)이라고 할 수 있는 무아론’(無我論)과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다. 불성을 전제로 할 수 있는 아()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본래적 아와 오염된 아의 이원적 구분이 과연 가능할까? 물론 선은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하여 매우 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질문을 지배하는 분별적 사유, 그것이 곧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매우 교묘한 이론이 또 등장한다.

 

 

 

 

35세 청년이 붓다가 되다

 

 

자아! 내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논의를 계속하면 갑론을박은 한없이 길어질 것이다.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이 곧 부처님이다[此心卽佛]라는 선의 주장은 원시불교에는 해당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견성성불이니 차심즉불이니 하는 말은 곧 불성에 대한 논의들이 정립된 이후에 생겨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싯달타가 부처가 되기 전의, 즉 불성이라는 개념조차 성립하기 이전의 사유를 소급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선종의 모든 주장은 그 나름대로 충분한 역사적 이유’(historical reasons)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어디까지나 역사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대승의 번쇄한 논의들이 또 다시 불교의 본의를 가을 정도로 난립한 상태에서 생겨난 명쾌한 면도날이었다는 것, 선종은 대승의 종국이자, 거대한 불교사상사의 말류이다. 우리는 말류를 가지고써 원류를 함부로 추측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발한 공안(公案)이나 몇 개 휘두른다고 싯달타의 고민이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핍팔라나무 아래 가부좌 틀고 앉아있는 사람은 35세의 인도청년이다. 그는 부처도 아니요,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마술사도 아니다. 그는 아주 평범한 보통사람이다. 이 보통사람이 핍팔라나무 아래서 과연 무엇을 했길래 그다지도 위대한 사람이 되었나? 과연 무엇을 했길래 보통 사람이었던 그가 붓다가 되었나?

 

우리는 보통 보리수나무 아래서 득도했다, 대각을 이루었다는 싯달타를 생각할 때, 우선 그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몰입했으며, 기나긴 마라(魔王) 즉 사탄과의 싸움에서 종국적인 승리를 거두고 드디어 대각,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루었다는 막연한 그림을 머리에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처님의 이미지에는 도무지 혈관이 없고 따스한 살결이 없다. 우리의 부처님은 생명없는 금동부처 아니면 차가운 돌부처일 뿐이다. 뛰어나게 선정에 몰입하고 마라의 유혹만 물리치면 어느 새벽녘엔가 홀연히 정각의 천지가 열릴 것인가? 여기에 바로 우리가 부처를 생각하는 방식의 오류가 있다. 여기에 바로 선종적인 불교의 이해방식의 한계가 있다. 불교를 이렇게 이해하면 싯달타는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예수와 하등의 차별이 없다.

 

 

 내가 인도에서 체험한 가장 거대한 충격은 올드 델리(Old Delhi)에서 랄 낄라(Lal Qila)라고 불리는 적성(赤城) 레드 포트(Red Fort)를 바라보는 순간에 다가왔다. 이것은 무굴제국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다. 무굴제국은 중국의 청제국에 비교될 수 있는 정복왕조다. 청은 여진의 후예였고 무굴의 주인공들은 징기스칸의 후예였다. 이군을 따라 무심하게 델리의 거리를 거닐다가 만난 이 광경은 북경의 자금성이나 빠리의 베르사유궁전을 바라볼 때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붉은 사암의 장대한 느낌은 단순했기 때문에 강렬했다. 33m 높이의 성벽이 8각형 형태로 2km나 뻗어있다. 샤 자한이 1638년에 착공, 불과 10년만에 완성했다. 아우랑제브만이 이궁에서 다스렸다. 뒷쪽에는 야무나 강(Yamuna River)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싯달타와 예수의 유혹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원작소설을 기초로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감독이 연출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이라는 영화가 있다. 원작자 카잔차키스는 그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의 이중적 실체성, 인성과 초인성의 갈등, 인간이면서 신이 되고자 했던 그 갈망, 그러한 것들은 항상 나에겐 풀 수 없는 심오한 신비였다. 어릴 때부터 카톨릭신도였던 나에게 다가온 모든 기쁨과 슬픔의 근원과 원천적 고뇌는 영혼과 육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그리고 잔인한 싸움이었다. 나의 영혼은 이 두 개의 적진이 충돌하여 싸우는 각축장이었다.

The dual substance of Christ the yearning, so human, so superhuman, of man to attain God …… has always been a deep inscrutable mystery to me. My principle anguish and source of all my joys and sorrows from my youth onward has been the incessant, merciless battle between the spirit and the flesh …… and my soul is the arena where these two armies have clashed and met.

 

 

예수는 40일간의 광야의 시험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기적의 손길을 얻는다.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며 전진하고 또 전진한다. 그리고 호산나를 부르는 군중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럽히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뒤엎는다. 그리곤 정치적 혁명을 꿈꾸었던 가장 친했던 친구 가롯 유다에게 자신을 배반해줄 것을 간청한다. 그는 로마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만들던 목수였다. 이제 그는 그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어 인류의 죄를 대속해야만 한다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롯 유다가 데리고 온 로마병정에게 끌려가기 전, 겟세마네동산에서 울부짖는다. 꼭 제가 죽어야만 합니까? 딴 길은 없습니까? 하고, 드디어 그는 골고다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다. 그리고 육신의 엄마 마리아, 사랑하는 여인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의 두 자매, 네 여인을 내려다본다. 극심한 고통 속에 그는 잠깐 혼미 속에 빠진다. 이때 수호천사가 나타난다. 수호천사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나는 이삭을 죽이지 않았다. 단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했을 뿐이다. 나는 너의 피를 원치 않는다. 너의 고통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수호천사는 예수의 몸에서 십자가의 못을 뽑는다. 그리고 예수는 수호천사와 함께 걸어간다.

그리곤 사랑했던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 뒤 마리아는 예수의 아기를 낳다가 죽는다. 그 뒤로 예수는 또 나사로의 누이와 결혼한다. 그리고 또 그 언니와 관계를 맺는다. 예수는 많은 아기를 낳고 관계한 모든 여자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늙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었다. 때는 AD 70! 예루살렘성전이 티투스황제의 명으로 무너지고 전 도시가 약탈되는 시점이었다. 이때 가족에 둘러싸인 예수의 평온한 죽음의 침상에 충직했던 제자 베드로가 나타난다. 그리고 예수를 긍휼히 쳐다본다. 그리고 가롯 유다가 나타난다. 가롯 유다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탄하면서 예수에게 너는 배신자라고 절규한다.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야! 나를 제발 배신해주게, 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해주게! 형제여.”라는 그대의 속삭임 때문에, 그대를 사랑했기에 그대를 배반했거늘, 그 배신으로 인해서 자기는 끊임없이 배신당했고 또 혁명의 기회를 놓쳤다고 절규하는 것이다. 예수는 저 수호천사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직하게 따랐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때 가롯 유다는 저 수호천사는 사탄이라고 소리친다. 그 순간, 수호천사는 예수를 광야에서 시험했던 사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수는 행복한 죽음의 침상에서 비로소 자기가 사탄에게 유혹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때 예수는 발버둥치면서 죽음의 침상을 벗어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호소한다. “아버지!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다시 저에게 십자가를 돌려주십시오. 당신 분부대로 싸웠으나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인 자기에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십자가에 매달리고 싶습니다. 다시 메시아가 되고 싶습니다. 주여! 이 탕자를 위한 잔치를 다시 베푸소서!”

 

이때 골고다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제 정신이 든다. 잠깐의 꿈이었던 것이다. 인간 예수에게 다가왔던 마지막 구운몽(九雲夢)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통에 잠겨있는 네 여인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에 소리친다.

 

"이제 다 이루었다! 모두 다 이루었다!“

 

이 순간이 예수의 열반이요, 대각이요, 해탈이었을까? 이것이 카잔차키스가 그리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다. 핍팔라나무 밑에 앉아있는 싯달타에게 마왕 파피야스(Pāpīyas, 波旬)의 마군들의 맹렬한 침공이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싯달타의 마지막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Siddhārtha)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외로운 자기와의 투쟁이다. 모든 신화나 설화들이 인간 내부의 투쟁을 객관화시켜 드러내 보여주기 위하여, 의식내적 상태를 실체화시키고 인격화시킴으로써 대결구도의 드라마를 구성하는 것이 통례이다. 싯달타의 마라와의 투쟁도 그러한 드라마적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은 누구든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모든 역정도 결국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투쟁일 뿐이다. 예수는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기 위하여 싸웠고, 싯달타는 붓다(깨달은 자)가 되기 위하여 싸웠다. 물론 이 양자간에 가치적 우열을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예수의 씨움이 카잔차키스의 말대로,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잔인한 싸움이었다면 예수의 마지막 유혹은 매우 저차원적인 것이다. 그러한 잔인한 싸움은, 이미 싯달타는 중도행을 깨닫는 순간, 시타림의 쓰레기통에 버리고 떠났던 것이다. 싯달타의 싸움은 결코 마라와의 싸움은 아니었다. 싯달타의 대각을 묘사하는 말로서 항마성도’(降魔成道: 마귀를 항복 받고 도를 이루었다)라는 말은 심히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매우 저급스러운 표현인 것이다. 그것은 원시불교의 본의를 크게 왜곡하는 것이다. 항마촉지인의 무드라(mudrā, 印相)조차 큰 의미가 없다.

 

 

 비슈누(Vishnu)신에게 봉헌된 카주라호의 락슈마나 사원(Lakshmana Temple), 기단부에 있는 미투나상 조각

 

 

욕망이여! 마라여!

 

 

물론 인간은 욕망의 주체이다. 인간세의 모든 죄악이 이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생겨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욕계(欲界)의 주인인 마라(Mara)와 우리는 끊임없는 투쟁 속에 있다. 따라서 욕망의 주체인 마라의 항복은 대단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과연 마라의 항복만으로 인간에게 대각이 찾아오는 것일까?

 

핍팔라나무 밑의 싯달타에게 있어서 선정’(禪定)이라든가 항마’(降魔)와 같은 사태는 매우 부차적인 것이다. 그것은 이미 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고행과 선정을 통하여 몸에 충분히 익숙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수행자로서는 최고도의 달통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던 그였다. 그가 우선 새로운 선정에 필요한 충분한 영양을 우루벨라 마을에서 보급 받고 떠났다고 하는 것은 이미 선정 그 자체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32호상을 회복한 그에게는 강건한 체력과, 선정과 고행으로 단련된 무서운 정신력이 완벽하게 무장되어 있었다. 그러한 그가 이제 겨우 막달라 마리아나 나사로의 자매들의 유혹에 빠질 그러한 수준이 아니었다. 달타에게는 인간과 초인간, 즉 인성과 신성의 갈등이 애초에 부재했다. 싯달타는 지금 예수처럼 신이 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왕 파피야스는 꿈쩍도 하지 않는 싯달타에게 자기의 요염하고 교태로운 딸들을 파견한다. 어느 경에서는 그 세 딸의 이름이 염욕(染欲)이요, 능열인(能悅人)이요, 가애락(可愛樂)이라 했고, 또 다른 경에서는 그 네 딸의 이름이 욕비(欲妃), 열피(悅彼), 쾌관(快觀), 견종(見從)이라 했다. 그들이 싯달타의 안전에 등장하는 모습을 경들은 변사또에게 대령하는 기녀들의 자태보다도 더 교태롭게 묘사하고 있다.

 

揚眉不語
양미불어
눈썹을 치켜들고 말이 없으며
褰裳前進
건상전진
치마를 걷어올리며 사르르 나아간다
低顔含笑
저안함소
얼굴을 숙이고 웃음을 머금었네
更相戱弄
경상희롱
서로를 희롱하며 아양을 떠는구나
如有戀慕
여유연모
연모하여 그리워하는듯
互相瞻視
호상첨시
뚫어지게 쳐다보며
掩斂脣口
엄렴순구
얼굴과 입술을 살짝 가리웠네
媚眼斜眄
미안사면
아양부리는 눈으로 곁눈질 흘깃흘깃
嫈嫇細視
앵명세시
새색시처럼 가늘게 뜨고 보네
更相謁拜
경상알배
공경하여 절하는 듯
以衣覆頭
이의복두
아롱거리는 샤리로 머리를 가리우며
遞相拈搯
체상념도
번갈아 꼬집고 또 꼬집는구나
側耳佯聽
측이양청
귀를 기우려 거짓 듣는 척하며
迎前躞蝶
영전섭접
맞이하여 종종걸음을 걷다가
露現髀膝
노현비슬
무릎과 넓적다리를 드러내며
或現胸臆
혹현흉억
~ 젖가슴을 드러내는구나

 

 

그러면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부른다.

 

 

初春和暖好時節 이른 봄 화창하고 따스한 호시절에,
衆草林木盡敫榮 못 풀과 숲과 나무 모두 피어 무성하네.
丈夫爲樂宣乃時 장부로서 즐기는 마땅한 때가 있는 법이니,
一棄盛年難可再 한창 때를 한 번 버리고 나며 다시 오기 어려워라.

 

 

이에 싯달타는 애민(哀愍)한 마음으로 그 요혹(妖感)한 마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는다方廣大莊嚴經卷第九, 降魔品第二十一, 大正3-592~3에 있는 게송을 내가 보다 문학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케 하고

오욕에 물들음은 신통을 흐리는 도다.

내 모든 번뇌를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거늘,

어찌 다시 독궤의 불구덩이로 뛰어들까 보냐.

세간의 오욕이 중생을 불태움이,

~ 세찬 불이 마른 풀을 태우는 것 같도다.

너희들의 몸뚱이는 허환이요. 실체가 없으니

파도의 거품과도 같이 오래 머물 수가 없구나.

너희들의 엉킨 핏줄과 근골은,

사대와 오온의 가합일 뿐.

어찌 내 범부들과 같이 욕심을 내리오?

채색한 항아리 속의 독사들이여!

똥찌꺼기 가득 찬 가죽주머니에 불과한 그대들이여!

어찌 세간을 벗어난 나를 잡으려 하느뇨?

나는 공중을 자유로히 나는 바람과 같으니

그대들의 애욕으로는 영원히 날 묶어두지 못하리.

 

 

이 시를 들은 요염한 여인들은 순간 할미들이 되어 머리가 희어지고 이가 빠졌으며 눈이 멀고 등이 구부러져서 지팡이를 짚고 서로를 의지하며 사라졌다[菩薩一言, 便成老母. 頭白齒落, 眼冥脊傴, 柱杖相扶而還. 修行本起經卷下, 出家品第五, 大正3-471].

 

 

 카주라호 락슈마나 사원 기단부에 있는 조각, 미투나상 이외로도 당대의 삶의 이야기들(설화)이 표현되고 있다. 기실 미투나상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사문유관과 출가

 

 

자아! 이제 마라의 패배로 과연 싯달타는 붓다가 된 것일까? 여기 우리는 또 다시 싯달타가 과연 무엇을 위하여 선정(禪定)을 했으며, 고행(苦行)을 했는가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카필라성의 왕자로 태어나, 부모의 철저한 보호 속에 세상의 고뇌를 한번도 경험치 못하고 성장하였다가 소위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하는 충격적 사건에 접하게 된다. 사문유관이란 그가 어느날 우연히 동문으로 나갔다가 백발에 등이 굽은 초라한 노인을 만났고, 또 어느날 남문 밖에서 두 사람에게 부축되어 가는 병자를 보았으며, 또 어느날 서문 밖에서 장례식을 목격했던 사건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의 ()ㆍ병()ㆍ사()’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최초로 충격적으로 직면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느날 북문에서 한 사문(沙門)을 만나 출가수행의 가능성을 탐색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사소한 이야기 같이 들리지만, 보통 인간들에게는 너무도 흔한 현실이 싯달타라는 소년에게 충격적으로 다가갔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경이감, 타우마제인(taumazein, 놀람, 경탄)을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의 순수성이 소년 싯달타에게는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평범한 현실을 범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ㆍ병()ㆍ사(), 삼법(三法)이 없었더라면 나는 출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싯달타는 회고하여 하고 있다.

 

싯달타는 신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아니요, 신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도 아니요, 육체와 정신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던 사람도 아니다. 신과 인간, 육체와 정신의 분열이 싯달타에게는 중요했던 것은 아니다. 싯달타는 본시 총명하였으며, 매우 감수성이 예민했으며, 사색에 깊이 빠지는 사람이었으며, 조용히 명상을 즐기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었던 것으로 부파불교의 경전들은, 그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고 있다. 싯달타에게 일차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현실이었으며, 그의 과제 상황은 어떻게 하면 이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카필라성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미인이었다. 내 카메라에 담긴 갈매기 눈썹의 이 동네 새악씨도 내 눈에는 쥴리아 로버츠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웠고 천연의 싱싱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이 소녀를 싯달타의 부인 야쇼다라(Yaśodhara, 耶輸陀羅) 공주라고 이름지었다.

 

 

해탈과 열반

 

 

이 고통스러움으로부터의 벗어남이라는 그 벗어남이라는 말을 해탈이라는 말로 바꾸어보자! 해탈이라는 말은 인도사상(베다/우파니샤드)에 있어서는 분명 윤회의 굴레로부터의 벗어남이라는 우주론적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지만, 초기불교경전들에서 이 해탈이라는 용어는 반드시 그러한 엄밀한 의미맥락에서만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해탈은 우리를 묶고 있는 속박으로부터의 벗어남이라는 의미며, 그것은 번뇌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심경, 즉 심적 상태를 의미한다. 해탈은 우주론적인 맥락에서 보다도 그러한 소박한 심리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맥락에서 흔히 쓰였음을 초기경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물론 해탈의 본래적 뜻은 이 윤회의 세계로 다시 진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체(一切)가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때로 부처는 일체(一切)가 불타고 있다라고 표현할 때가 있다. 부처는 대각 후 어느날 천여 명의 비구들과 함께 가야지방에 있는 가야시사산에 오른 적이 있다. 이때 건너편에 있는 산에 산불이 났다. 제자들은 산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저 산이 불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불타고 있는 것은 저기 저 산만이 아니다. 그것을 쳐다보고 있는 그대들의 눈이 불타고 있다. 일체가 불타고 있다.”

 

마하박가에는 다음과 같은 설법이 기록되어 있다최봉수 옮김, 마하박가1, pp.103~5..

 

 

비구들아,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비구들아, 무엇이 불타고 있는가?

눈이 불타고 색들이 불타고, 안식이 불타고 안촉이 불타고, 안촉에 기대어 발생한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는 느낌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는가? 탐욕의 불로 타고 노여움의 불로 타고 어리석음의 불로 타고, 출생ㆍ늙음ㆍ죽음ㆍ슬픔ㆍ눈물ㆍ괴로움ㆍ근심ㆍ갈등으로 불탄다.

귀가 불타고 소리들이 불타고……

코가 불타고 냄새들이 불타고……

혀가 불타고 맛들이 불타고……

몸이 불타고 촉감들이 불타고……

의지가 불타고 법들이 불타고……

탐욕의 불로 타고 노여움의 불로 타고

어리석음의 불로 타고,

출생ㆍ늙음ㆍ죽음ㆍ슬픔ㆍ눈물ㆍ괴로움ㆍ근심ㆍ갈등으로 불탄다.

 

 

바로 우리가 열반(涅槃, nirvāṇa)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이 꺼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열반, 즉 니르바나는 니로다(nirodha, : )와 같은 어근의 말이다. 우리의 눈이 타고, 귀가 타고, 코가 타고, 혀가 타고, 몸이 타고, 의지가 타는 것은 바로 탐욕(貪欲)과 진에(瞋恚), 우치(愚癡), 즉 탐ㆍ진ㆍ치의 삼독(三毒)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삼독(三毒)ㆍ삼화(三火)가 지멸(止滅)한 상태를 우리는 열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열반이란 본래 심리적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존재론적인 완벽한 멸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열반이라는 개념을 그러한 존재론적 개념으로 심화시킬 때 존재의 멸절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므로 유여열반(有餘涅槃)이니 무여열반(無餘涅槃)이니 하는 따위의 구분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원시경전에는 열반이라고 하는 이상향, 그 자체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논의가 희소하다. 그리고 물론 유여열반이니 무여열반이니 하는 이원적 설법도 부파불교의 말류에서 생겨난 것이며, 전혀 싯달타 자신의 논의가 아니다. 총체적으로 조감하여 본다면 후대의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야말로 원시불교의 정통사상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水野弘元, 原始佛敎(京都 : 平樂寺書店, 1981), p.187. 마쯔모토 시로오(松本史朗)씨는 여래장론을 비판한 문제의 작, 연기와 공에 실린 해탈과 열반이라는 논문 속에서 열반의 뜻이 전통적인 불을 끔,’ ‘소멸이라는 뜻 이외로 덮임을 제거하다.’ ‘풀어지게 하다.’ ‘이탈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nibbuta, parinibbuta). 후자의 의미맥락으로 열반의 뜻을 풀어야만 원문들이 소기하는 의미가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쓰모토씨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까닭은 열반의 이러한 의미 배경에는 아론(我論)이 깔려있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다. 즉 실체적으로 아트만(ātman)이 전제되어 있고, 그 아트만을 가린 덮임을 제거하고, 그 아트만을 비아트만에서 이탈시키는 것이 열반이요, 해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열반과 해탈을 긍정하기 위하여 벌리는 논점이 아니다. 열반과 해탈이라는 말 속에 숨겨져 있는 왜곡적인 요소, 불교와 대립한 인도전통철학이나 쟈이나교 등의 아론이 초기승단내부로 침투하여 원시불전에 반영되어 있는 지극히 비불교적인 요소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열반과 해탈을 비불교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쯔모토씨의 논지가 과격하여,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주장의 본의는 매우 명쾌한 것이며 내가 생각하는 근본불교의 모습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松本史朗의 문제작, 연기와 공慧謜교수에 의하여 번역되었다(서울 운주사, 1998). 원작은 松本史朗, 緣起, 如來藏思想批判(東京 : 大藏出版, 1998), p.198..

 

 

 바나라시 간지스 강의 화장터로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고 있는 마니카르니카 가트(Manikarnika Ghat). 시체들이 불타고 있다. 죽음과 삶이 항시 공존하고 있다. 접근촬영이 허용되질 않았다.

 

 

깨달음에 대해

 

 

그렇다면 우리가 소박한 의미맥락에서 해탈과 열반이다는 주제를 중심으로 핍팔라나무 밑에서 정진하고 있는 싯달타의 정신세계를 접근해 들어간다면, 싯달타에게 있어서 마라(魔王)의 퇴치는 곧 해탈과 열반을 달성하는 첩경을 확보한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수의 마지막 유혹처럼, 그가 일생 받을 수 있는 모든 유혹의 가능성을 압축적으로 받았고, 그 욕망의 불길을 껐다고 한다면 그는 곧 열반을 달성했을 것이고, 열반을 통하여 그는 자유로움을 획득하고 해탈(mokṣa, 解脫)을 얻었을 것이다. 이것이 보통 싯달타의 보리수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방식으로 싯달타의 득도를 이해하는 것은 불교 그 자체의 이해방식을 극도로 폄하시키는 편벽한 소치라고 생각한다. 욕망의 제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모든 수행인들이 일차적으로 정진하는 매우 기본적인 디시플린(discipline, 규율)이다. 이러한 디시플린에 싯달타가 뛰어남으로 해서 그가 불타가 되었다고 한다면 나는 굳이 그의 가르침인 불교에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Saint Francis of Assisi)만 해도 욕망의 제어라는 측면에서는 우리의 상식적 기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싯달타의 성불의 과정을 설명해들어갈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핵심적 테마는 무엇인가? 나는 이 어려운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려 한다.

 

저 보리수를 보라!

 

그가 얻으려 했던 것은 바로 보리’(菩提, Bodhi)였다. 보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다. 무상정등정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각이다. 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다. 무엇을 어떻게 안다는 것인가?

 

불교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조차도, 지금 우리가 논의해왔던, 해탈(解脫, mokṣa), 열반(涅槃, nirvāṇa),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이 세 단어는 매우 두리뭉실하게 비슷한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는 다른 표현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싯달타가 붓다가 될 수 있었던 바로 그 비결은 깨달음이라는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코 해탈이나 열반이라는 말로써는 그의 붓다됨을 설명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싯달타를 붓다로 부르는 이유는 바로 그가 깨달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핍팔라나무 밑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것은 선정(禪定)을 위한 것이 아니요, 마라(魔王)의 퇴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깨닫기 위해서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의 깨달음의 과정은 바로 마라와의 싸움이라는 프렐루드(prelude, 序幕, 서막) 이후부터 전개된 것이었다.

 

붓다(Buddha)라는 말 자체가 각자(覺者), 깨달은 자’(one who has awakened)를 의미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는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르고, 꿈 속에서 또한 꿈을 점치기도 하다가, 깨어나서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안다[方其夢也, 不知其夢也. 夢之中又占其夢焉, 覺而後知其夢也].’라고 했고, 대종사(大宗師)에는 그대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깨어있는 것인지, 꿈꾸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不識今之言者, 其覺者乎? 其夢者乎?]’라 했다. 보리(菩提, bodhi)’()으로 한역한 것은 바로 이 장자의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한문의 의미구조에서의 은 항시 꿈과 대비되는 의 맥락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의 보리는 반드시 꿈과 대비되는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 아닐 뿐 아니라 중국인들, 특히 도가계열의 사상가들이 꿈과 대비되어 쓸 때의 반주지주의적 의미맥락을 지니지 않는다. 더구나 이러한 도가적 요소가 강하게 발전하여 극치에 오른 선종(禪宗)이 강하게 표방하는 반주지주의적인, 아니 지식의 저주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그러한 분별지의 혐오감이 이 깨달음이라는 말속에는 전혀 내포되어 있지 않다. 선종의 반주지주의 (anti-intellectualism), 분별지의 거부, 즉 개념적 지식에 대한 혐오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시불교의 본의로 직입(直入)하는 길을 차단시키는 험준한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고타마 싯달타는 과연 어떤 출신의 사람이었을까? 노ㆍ병ㆍ사도 모르고 고귀하게 자라난 카필라성의 왕자였을까? 브라흐만(Brahman) 계급이었을까? 크샤트리야 계급이었을까? 아니면 수드라 천민의 혁명적 반항아였을까? 이 모든 질문에 우리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단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는 해박한 지성과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고 초기 승단을 이끌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 사실은 지금의 나와 똑같이 숨쉬고 살았던 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카필라성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이 동네청년의 얼굴에서 나는 달타를 보았다. 싯달타는 우리에게서 결코 널리 있지 않은 이런 한 인도 정년이었다.

 

 

대각은 앎이다

 

 

그런데 원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라는 것은 더 없는 최상의 바른 앎이라는 뜻이다. 붓다의 어원인 ‘buddhi’지능’(intellectual capacity)이며, ‘지성’(intelligence)이며 이성’(reason)이며, ‘식별’(discermment)이며, ‘이해’(understanding), ‘합리적 견해’(rational opinion)를 의미한다. 보리와 관련된 ‘bodha’이해한다,’ ‘안다는 뜻이다. 붓다가 말하는 깨달음의 원초적 의미는 일 뿐이다. 우주와 인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그릇된 앎이 아니라, 바른 앎이다. 그것이 곧 지혜요, 깨달음이다. 싯달타가 6년 동안의 선정주의고행주의를 떨쳐버리고 핍팔리 나무 밑으로 향했던 것은, 바로 선정도 고행도 아닌, 선정과 고행을 초월하는 새로운 지혜를 향한 발돋움이었던 것이다. 이 새로운 지혜, 우주와 인간에 대한 바른 통찰, 이것이야말로 그가 생각했던 중도(madhyamā pratipad)였다.

 

우리나라 절깐에 가면 입구에 아름알이를 가진 자 이 문을 넘어내지 말라는 등의 문구를 붙여 놓거나 돌기둥에 새겨놓은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아름알이란 말 자체도 전혀 어법적으로 잘못 구성된 족보없는 말이려니와, 이런 문구를 걸어놓고 있는 스님들이야말로 한국불교를 상식적 대중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부끄러운 구업을 쌓고 계시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자라고 한다면 아름알이, 즉 지식에 대한 하등의 공포를 가질 이유가 없다. 모든 지혜는 지식에 대하여 개방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혜와 지식의 이원적 구분이야말로 우리나라 선종을 비불교적인 말폐로 끌어가고 있는 장본인인 것이다. 인간의 지혜는 지식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농사꾼이 농사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토양의 화학적 성분에 대한 분석적 앎만이 지식은 아니다. 농부가 땅과 하늘과 씨와 배양에 관한 모든 것을 아는 것, 그 모든 것이 지식이다. 직관적 앎도 지식이다. 지식의 체화가 곧 지혜일 뿐이다. 앎을 통하지 않고 얻어지는 지혜는 없다. 밀교에서 말하는 비전적인 지혜조차도 앎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앎을 습득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분별적 지식을 거부함으로써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 하는 것도 하나의 지식이다. 선방에서 외쳐대는 할()의 방망이도 하나의 지식이다. 불립문자도 하나의 지식이다. 성철스님이 말씀하시는 돈오돈수도 하나의 지식이요, 하나의 앎이다. 성철스님도 항상 타임지를 읽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신 분이요, 한학에 능하여 유려한 게송을 읊는 것으로 존경을 받았던 분이다. 성철스님도 항상 이 세계에 대한 앎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으신 훌륭한 스님이었다. 싯달타는 정말 알려고 몸부림쳤던 것이다. 고행(苦行)을 통해서는 그에게 그 이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고행 그 자체에의 충실은, 쾌락 그 자체에의 충실과 하등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싯달타는 왜 이렇게 인생이 괴로운 것이며, 이 모든 중생의 고의 근원이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 고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있는 것인지, 그 고의 궁극적 원인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엉터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알고 싶었던 것이다.

 

각자(覺者), 즉 붓다의 최종적 의미는 이러하다. 정말로 아는 사람(one who really knows)! 싯달타가 붓다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로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싯달타가 중도를 깨달았을 때를 회상하여 외친, 앞서 인용한 마하박가의 초전법륜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킨다.” 그의 중도가 지향했던 바는 뛰어난(殊勝, 수승) 앎이요, 바른 깨달음이었다.

 

 

 싯달타가 대각한 후에 처음으로 설법한 초전법륜지, 사르나트의 녹야원(鹿野苑) 전경. 당시에는 이 근방에 사슴이 많이 살고 있었다. 여기 보이는 탑(Dhamekh Stupa)은 아쇼카시대에 지어진 것을 굽타시대 때(AD 500년경) 새롭게 증축한 것이다. 내가 갔을 때 티벹 승려들이 법회를 열고 있었다.

 

 

번뇌가 끊어지니 마음이 시원해지다

 

 

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를 증득하고 카시 사르나트에 있는 다섯 비구들을 향해 떠나면서 싯달타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이것은 참으로 내가 접한 한 인간의 지적 자신감의 표현으로서는 극상의 포효다최봉수 옮김, 마하박가』 Ⅰ, pp.556. 南傳大藏經3-15. T. W. Rhys Davids and Hermann Oldenberg, The Mahāvagga, in The Sacred Books of the East, edited by F. Max Müller (Delhi: Motilal Banarsidass, 1974), Vol. XIII, p.91. 상기의 세 번역을 참고하여 번역하였다. 이 세존의 말은, 그가 가야와 우루벨라 마을 사이에 있는 큰길을 가고 있을 때, 아지바카(Ājīvalka)교파의 우파카(Upaka)라는 사람이 세존의 깨끗하고 밝은 모습을 보고 그대는 과연 누구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게송으로 답하는 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I have overcome all foes;
모든 것을 알았다. I am all-wise;
나는 일체의 제법에 물들여지지 않았고 I am free from stains in every way;
모든 것을 버렸다. I have left everything;
갈애가 다한 해탈을 얻었다. and have obtained emancipation by the destruction of desire.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스승으로 칭하리오! Having myself gained knowledge,
whom should I call my master?
나에겐 스승이 없다. I have no teacher;
나와 비견할 자도 없다. no one is equal to me;
천신을 포함하여 이 세간에 나와 같은 자는 없다. in the world of men and of gods no being is like me.
어떤 자도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 I am the holy One in this world,
나는 이 세간에서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로다.  
나는 무상(無上)의 스승이다. I am the highest teacher,
나는 홀로 모든 것을 바르게 깨달아 I alone am the absolute Sambuddha;
청량하고 적정한 경지에 이르렀다. I have gained coolness (by the extinction of all passion)
and have obtained Nirvāna.
나는 법륜을 굴리기 위해 카시의 도성으로 간다. To found the Kingdom of Truth
I go to the city of the Kāsīs (Benares);
어두운 이 세상에 불멸의 북을 울리기 위해. I will beat the drum of the Immortal in the darkness of this world.

 

 

싯달타의 오도송(悟道頌)으로 꼽히는 이 마하박가의 게송에서도 제일 먼저 등장하는 말은,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다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깨달음의 가장 원초적인 사태는 모든 것을 알았다이다. 그렇다면 싯달타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안 것인가?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 오도에 등장하는 몇 마디를 우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짧은 오도송 속에도 우리가 여태까지 논의해온 많은 테마들이 함축되어 있다. 여기에도 해탈(解脫, mokṣa)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해탈은 갈애가 다한 해탈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고 있다. 즉 해탈이란 여기서 윤회의 굴레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갈애가 다해버린[空竭, 공갈] 마음의 상태이다. 방광대장엄경에는 오도송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方廣大莊嚴經卷第九, 成正覺品第二十二, 大正3-596..

 

煩惱悉已斷 諸漏皆空竭 번뇌가 모두 끊어졌도다! 모든 잡념이 사라졌도다!
更不復受生 是名盡苦際 괴로운 생존을 다시 반복치 않으리, 이를 일러 고가 다했다 하노라.

 

 

여기 제3구인 갱불부수생’(更不復受生)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해탈(解脫, mokṣa)의 원래적 의미인 윤회적 삶으로부터의 벗이남이라는 맥락을 확인할 수 있지만, 역시 보다 근원적 의미는 번뇌가 끊어지고 잡념(, )()는 범어 ‘āsrava’의 의역이다. 여기서 누는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누는 본래 流入의 의미였다. 번뇌나 업이나 고난이 몸 속으로 새어들어 온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런데 후대로 오면서 이 누는 새어 나간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번뇌는 눈ㆍ코ㆍ입ㆍ귀 따위의 6근으로 밤낮 새어나와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우리 마음을 흘러 달아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누를 더 이상 흐를 것이 없는 상태로 비우는 것을 누진(漏盡, āsrava-kṣaya)이라 했고 공갈(空竭)이라 했다. 나는 여기서 제1구의 번뇌와 중복되기 때문에 그냥 잡념이라는 표현을 차용하였다.이 사라진 마음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열반(涅槃, nirvāṇa)이라는 말은 청량하고 적정한 경지라는 표현으로 드러나 있다. 동대문 밖에 청량리’(淸凉里)라는 동리 이름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 청량리라는 이름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예로부터 그곳에 얼음공장이 있었나? 청량음료를 많이 팔았나? 아니면 그 동네가 특별히 시원한 바람이 불었나? 경북 봉화, 경남 합천 등지에 청량사’(淸凉寺)라는 고찰이 있듯이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청량산에 있는 사찰,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 원효창건설과 의상창건설이 있다. 경상도 합천군 가야면 황산리 매화산 기슭에 있는 사찰.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 삼국사기최치원이 즐겨 놀았다는 기록이 있음., 청량이란 본시 불교용어로서, 번뇌의 불길이 꺼져서 마음이 시원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번뇌의 불길이 다 꺼져서 시원하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 즉 청량한 상태를 달다는 열반이라 불렀던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생각할 때, 흔히 그 교리의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먼저 떠올리는 것은 삼법인(三法印)이니 사법인(四法印)이니 하는 따위의 것들이다. 그렇다면 불타의 보리수나무 밑의 성도의 내용은 이 세 법인으로 압축되는 것일까?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열반적정(涅槃寂靜) 이 세 법인이면 붓다의 성도의 내용은 다 완결되는 것일까? 무엄하게도 나 도올은, 이러한 도식적 이해야말로 불교의 이해를 망치는 근원이요, 삼법인은 결코 근본불교의 정신을 바르게 전달하는 방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망언인가?

 

 

 간지스 강에 떠내려 가는 삼법인

 

 

삼법인의 허구

 

 

여기 법인’(法印)이라는 말은 원시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과히 기분좋은 말은 아니다. ‘법인’(法印, dharmoddāna)이란 문자 그대로 불법(佛法)이 되는 인증(印證)’이라는 뜻이다. 즉 불법과 타법이 혼동될 경우 어떠한 일자가 불법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 그것을 곧 법인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은 법인이라는 말 자체가, 불타 자신의 말이라기보다는, 불타의 말씀을 변호하기 위한 호교론(apologetics)적 색채를 강하지 띠면서 후대에 형성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 설법이 아닌 아폴로지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법인으로서의 이 삼 개 조항, 그러니까 불교헌법 3대 총강령이라 말할 수 있는 이 조항의 내용은 직접ㆍ간접으로 성도 후의 세존이 설한 내용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삼법인(三法印)의 내용 또한 불교교리의 핵심을 잘 압축해놓은 것이라는 데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세존 자신은 자기의 생각을 이렇게 도식화된 형태로 인증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잡아함경권제1색에서 생겨난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며, 무상한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아니다[色無常, 無常卽苦, 苦卽非我. 대정2-2]’라고 말한 것이 후대에 말하는 삼법인의 근거로서 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구문이지만, 이러한 아함의 전승은 삼법인과 같은 어떤 정형적 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삼법인이란 어디까지나, 부파불교에서 호교론적인 시각에서, 최소한 이러한 교설의 기준을 지켜야만 혹자가 불타의 말이라고 암송하는 내용이 붓다의 가르침이라 인증할 수 있다고 하는 기준을 세운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보리수나무 밑의 인간 싯달타의 명상이나 사유의 과정을 추적하는 데 있어서는 이 삼법인은 결코 바람직한 방편이 되질 못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 시절에 불교학개론을 처음 들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는 불교학을 전공하는 교수님이 안 계셨다. 그런데 타대학으로부터의 강사초빙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대학교 강단에서 불교학을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학을 가르치시던 분이 그냥 강의했다. 불교학개론 첫 시간에 내가 접한 것은 깨알같이 칠판에 쓴 삼법인(三法印)이었다. 그런대로 성실한 내용의 강의였지만 삼법인은 화창한 봄날의 나른한 수강생들에게 쏟아진 자장가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나는 이 삼법인에 대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삼법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에는 매우 중대한 오류가 끼어들 가능성이 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아 허무하다! 아 쇼펜하우어가 생각나는구나! 제법무아(諸法無我), 아 덧없다! 모든 법이 다 가짜구나!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 ~ 이 허무하고 덧없는 세상을 버리고 고요한 열반에나 들자꾸나!

 

제행무상이니 제법무아니 하는 말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적 질서의 부정을 의미한다면, 그에 대하여 열반적정은 본체론적 궁극자! 무상하고 덧없는 세계에 대하여 고요하고 평화로운 영원한 열반의 세계를 우리 의식 속에 그려주는 것이다.

 

3법인 중에서 가장 오류적인 것은, ‘열반적정이라는 이 한 마디인 것이다. 열반(涅槃, nirvāṇa)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열반이라는 단어는 죽음과 연결이 되고, 삶의 세계가 빛을 의미한다면, 죽음의 세계는 곧 어둠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서 삶의 세계가 쉬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동()의 세계라고 나면, 죽음의 세계는 당연히 정()이 되고 만다. 따라서 열반은 한 본체론적이고, 우주론적이고, 실체론적 의미를 띠게 되며, 그 본체적 세계는 적정(寂靜)한 것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문명사에 등장한 모든 주정주의(主靜主義, quietism)의 한 원형에 불과하다. 현상적 질서에 대하여 보다 근원적인 실체가 있고, 그 실체는 고요하고 정적인 것이라는 주장인 것이다松本史朗, 연기와 공(서울 : 운주사, 1998), pp.222~3. 緣起(東京 : 大藏出版, 1998), pp.192~3. 마쯔모토씨는 해탈과 열반이라는 논문에서 해탈이나 열반은 가치적으로 상하관계에 있는 두 실체를 전제로 하며, 그것은 좋은 것이 나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때 좋은 것은 무시간적인 독존(獨存)이다. 싯달타 재세시에도 초기상키야철학이나 쟈이나교의 아론은 이러한 해탈사상을 대표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아론(我論)에 기초한 해탈사상이 초기불교교단에 침투되어 불교경전에 반영되었다고 지적한다. 나는 마쓰모토씨의 이러한 논의는 매우 의미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초기불교에서 삼법인으로서 이 열반적정이라는 말을 삽입시킨 것은 그릇된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불교를 곡해시키는 근원적인 오류의 샘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신유학의 선하인 정몽(正蒙)의 저자 장 헝취(張橫渠, 1020~1077)를 위시하여 동론(動論)을 외친 명말청초의 대유 왕 후우즈(王夫之, 1619~1692)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한결같이 불교를 공격하는 것도 바로 이 열반적정이라는 한마디에 숨어있는 주정주의의 함정이었다. 기실 남방상좌부전통을 이은 오늘날의 스리랑카ㆍ미얀마ㆍ타이 등의 남방불교에서는 열반적정을 법인으로서 간주하지 않는다. 남방불교에서는 삼법인이라는 개념보다는 삼상(三相, tilakkhaṇa)이라는 개념을 쓰며, 여기에는 물론 열반적정이 빠져있다. 팔리어본 법구경(Dhammapada) 20, ‘진리의 길만 펼쳐봐도 이러한 사실을 쉽게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이다석지현 역, 법구경(서울 : 민족사, 2001), pp.151~2. / 雜阿含經第十一切行無常, 一切法無我, 涅槃寂滅이라 했고(大正2-66), 大般涅槃經第十三一切行無常, 諸法無我, 涅槃寂滅, 이것은 第一義이다라고 했고, 蓮華面經卷下一切行無常, 一切法無我, 寂滅涅槃, 이 셋은 法印이다라 했고, 有部毘奈耶第九諸行은 모두 無常이요, 諸法은 모두 無我, 寂靜은 곧 涅槃이다. 이것을 三法印이라 이름한다라 했고, 大智度論第三十二三法하여 法印으로 삼았다. 소위 一切有爲法無常印, 一切法無我印, 涅槃寂滅印이 그것이다라 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三法印의 개념은 아가마시대부터 성립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法印의 개념으로 확연하게 쓰여진 것은 대승불교시대에 내려와서야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대승의 아폴로지로서 생겨난 것이며, 특히 중국불교에 와서 경전의 진위를 판정하기 위한 표준으로서 더 확고한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개들은 아(我)가 없다. 나른한 요기들처럼 항상 축 늘어져 있다. 여기 길거리에 치어 열반한 개에게 동네아동이 물을 뿌려주고 있었다. 이 생명은 육도윤회에서 무엇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부록 3. 비아에 대한 보충설명

 

 

나의 무아와 비아라는 말은 인도철학계의 원시불교에 관한 논쟁인 비아설’(非我說)과 관련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나카무라(中村元)박사가 원시불교의 사상(原始佛敎思想)에서 초기불교에는 비아설(非我說)’만 있었을 뿐, ‘무아설(無我說)’은 설파되지 않았다고 했을 때의 비아(非我)’는 아()와 대립되는 비아(非我)로서의 실체개념이 아니라, 오온(五蘊)의 가합태와 같은 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라고 하는 소박한 윤리적 맥락을 드러내는 비아(非我)인 것이다. ()가 아니다라고 하는 술부적 부정태의 의미맥락이 일차적인 설법의 내용이었으며, 후대의 부파불교에서 이론화한 존재론적ㆍ우주론적 무아(無我)의 논설(論說)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무아(無我)가 단순히 내가 아니다[非我].’라는 소박한 명제의 맥락을 넘어서서 아()가 근원적으로 존재치 않는다고 하는 존재론적 주장으로 해석되면 그것은 또 하나의 형이상학적 콤미트먼트(Commitment)가 되며 형이상학적 명제에 대해 무기적(無記的) 태도를 견지한 싯달타의 생각에서 너무 이탈된다는 것이다. 내가 없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형이상학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윤리적 주체로서의 아트만(ātman)은 초기불교문헌에서는 결코 부정되질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나카무라박사의 지적은 원시불교성전의 맥락 속에서는 매우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쯔모토씨는 이러한 비아설(非我說)은 필연적으로 아론(我論)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인도에서는 아()의 해탈을 설하지 않는 아론(我論)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카무라박사가 말하는 비아설(非我說)은 비아(非我)를 아()로서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이러한 비아설은 아론을 설하는 자이나교의 무소유사상과 합치되는 것이며 불교의 연기론적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즉 비아(非我)가 실체화되며, 본래적 자아와 비본래적 자아가 항상 분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마쯔모토씨의 비판은 원시불교를 애매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일갈을 가하는 명쾌한 지적이기는 하지만 나카무라 박사의 본취지를 너무 비판을 위한 비판의 대상으로 휘몰아간 느낌이 있다. 나카무라박사의 논의는 마쯔모토씨가 주장하는 연기론적 사유를 다 고려한 위에서 소박한 실천적 의미맥락의 측면을 지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비아(非我)가 아니다라고 했을 때의 비아는 마쯔모토씨가 부정적 맥락에서 사용한 그러한 실체적 개념에 가까운 표현이며, 현대 면역학(immunology)에서 말하는 비아(非我, non-Self)라든가, 우리나라 단재 신채호가 말하는 비아(非我)’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다. 나는 나카무라의 비아설(非我說)’이라는 말 대신, ‘비아론(非我論)’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中村元, 原始佛敎思想 上(中村元選集, 13), 東京 : 春秋社, 1978, pp.139~212. 松本史朗, 緣起, p.201. 혜원역, 연기와 공, pp.232~3.

 

 

 

 

무아와 비아

 

 

기실 이 삼법인(三法印)의 언어 중에서 우리가 근본불교의 정신을 나타내는 단 한마디의 단어를 고르라고 한다면 무아’(無我. anātman), 이 한 마디 밖에는 없다. 그런데 무아(無我)는 궁극적으로 비아(非我)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 지금 우리가 보리수나무 밑에 앉아 명상하고 있는 싯달타의 사유의 세계, 그가 깨달은 세계, 그의 앎의 세계를 접근해 들어가려고 할 때, 내가 계속해서 해탈’(解脫, mokṣa)이니, ‘열반’(涅槃, nirvāṇa)이니 하는 말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뜻은, 바로 이런 방식의 사유체계가 반드시 무아론이 아닌 비아론과 연결되기 때문인 것이다.

 

무아론(無我論)에서는 아 즉 아트만(ātman)의 존재근거가 상실되고 해소된다. 근원적으로, 본질적으로, 실체적으로 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비아론(非我論)에서는 아()와 비아(非我)의 분열이 생겨난다. 다시 말해서 아가 본래적인 자아와 비본래적인 자아로 분열을 일으키며, 이 양자는 항상 대적적 관계로 치립(峙立)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탈이나 열반을 말할 때, 그것을 불을 끈 상태, 무엇으로부터 이탈된 상태를 의미한다면 거기에는 암암리 이러한 분열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즉 이탈ㆍ해탈은 반드시 ‘AB로부터 벗어난다고 하는 논리구조, 그러니까 사유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보리수 밑의 싯달타의 명상을 마왕 파피야스와의 투쟁으로 묘사한다면, 마라(魔王)의 유혹에 불타고 있는 나는 비본래적인 자아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불이 꺼져서 열반에 든 나는 본래적인 자아가 될 것이다. 이 본래적인 자아는 비본래적인 자아로부터 이탈되었고 해탈되었다. 그래서 열반에 들었다. 이때 육욕에 불타는 비본래적인 자아는 항상 나쁜 놈이고, 그 불이 꺼진 적멸한 자아는 항상 좋은 놈이다. 여기에는 항상 나쁜 놈은 육체적 자아이고, 항상 좋은 놈은 정신적 자아라는 심ㆍ신 이원론(body-mind dualism)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탈(解脫, mokṣa)열반(涅槃, nirvāṇa)의 사상은 분명 불교가 아니다. 이런 식의 비아론은 무아론이 아닌 것이다. 인도에서는 아의 해탈을 설하지 않는 아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원시불교가 비아론적인 해탈론ㆍ열반론을 고집하는 현에 있어서는 그것은 인도사상의 일반논리를 충실히 계승한 진부한 이론밖에는 되지 않는다. 상키야 철학이나 쟈이나교로부터 후대 베단타의 샹카라에 이르기까지의 거대한 인도사상의 홍류의 한 거품에 불과하고 만 것이다. 불교가 참으로 불교가 될 수 있는 아무런 새로운 논리적 근거를 우리는 발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 풍선이 상자곽 속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 풍선이 상자곽을 해탈하여 자유롭게 날아간다. 이때 상자곽의 모든 것은 나쁜 것이다. 그리고 풍선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상자곽은 시간적인데 반하여 풍선은 무시간적인 것이다. 아의 비아로부터의 해탈(解脫, mokṣa)이라고 하는 논리에는 항상 아가 건재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아론이 아닌 아론이다. 이것은 우파니샤드(Upanisad) 철학이지 불교철학이 아니다. 싯달타의 혁명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풍선 상자곽의 비유에 깔려있는 사유체계는, 플라톤동굴의 비유에 깔려있는 올페이즘적 사유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적인 사유의 한 전형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직면하여 그의 부당한 죽음을 디펜드하는 언사들도, 모두 한결같이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 육체의 생멸과 정신의 불멸이라는 그러한 비아론적 2원론사유에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아폴로지(Apology)크리토(Crito), 파에도(Phaedo)와 같은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어보면 누구든지 그러한 자아의 분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을 이은 기독교적 사유도 없이 죽음 즉 열반을 말한다. 죽음과 부활의 구조가 곧 기독교의 열반인 것이다. 통속적인 기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도 한결같이 해탈을 갈구한다. 기독교인들의 영혼이 사후에 천당으로 진입하는 것이나, 불교도들의 아트만(ātman)이 열반으로 진입하는 것이나 똑같은 해탈론인 것이다. 해탈과 열반을 말하는 한, 기독교와 불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그것은 곧 기독교와 불교, 희랍-유대 문화권과 인도 문화권이 공통된 언어문화권일 뿐 아니라 상고(上古)로부터 직접ㆍ간접으로 교류된 하나의 문화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새롭게 인식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키에, 싯달타는 이러한 해탈ㆍ열반(涅槃, nirvāṇa)의 논리를 주장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그러한 해탈ㆍ열반론이 풍미하는 자신의 문화전통을 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기원을 이룩한 사상가였고, 사회혁명가였으며, 종교적 실천가였다. 그는 주부-술부구조적인 자기 언어 그 자체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