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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들, 교환 가능한 것과 교환 불가능한 것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들, 교환 가능한 것과 교환 불가능한 것

건방진방랑자 2021. 6. 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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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 가능한 것과 교환 불가능한 것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2인칭적 죽음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우리의 생각을 강요하는데 ‘3인칭적 죽음은 그냥 스쳐가는 것, 우리에게 별다른 생각을 강요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것일까요? 왜 아내의 밤늦은 귀가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 나의 뇌리를 지배하는데, 옆집 아주머니의 행실은 그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까요? 다시 질문해본다면, 왜 어떤 경우에 나는 사건의 의미를 찾는 사람, 기호의 해석자가 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고 단순히 무관심한 방관자가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타자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의 차이를 음미해보기 위해 잠시 키르케고르(S. Kierkegaard, 1813~1855)키르케고르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개신교 교육을 받았다. 청년 시절 사랑하던 레니나 올센과의 파혼 경험은 개신교와 더불어 그의 사상의 방향을 결정짓는 큰 사건이 된다. 그는 헤겔의 보편적 이성주의에 반대하여 인간 실존의 단독성을 강조했다. 주요 저서로 두려움과 떨림, 반복, 죽음에 이르는 병등이 있다두려움과 떨림(Furcht und Zittern)을 넘겨보도록 하죠.

 

 

아브라함이 행한 일에 대한 윤리적 표현은 그가 이삭을 죽이려고 했다는 말이 되고, 또한 그 행위에 대한 종교적 표현은 그가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런 모순 가운데 바로 어떤 사람의 잠을 빼앗아버릴 수 있는 불안이 놓여 있다. 만약 이런 불안이 없다면 아브라함은 현재 있는 그 자신은 아닐 것이다.

두려움과 떨림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는 성경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대부분 들어보았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이 자신을 믿고 따르던 아브라함에게 이삭이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갈등과 고뇌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의 아들 이삭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윤리적으로 볼 때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볼 때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선행입니다. 이 두 가지 의미의 모순 사이에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키르케고르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불안, 즉 그의 고뇌와 결단을 읽어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령을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고뇌 없이 아들을 제물로 바쳤다면,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브라함일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윤리적으로 죄악이라고 생각해서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한다면, 이 경우에도 역시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브라함일 수 없을 겁니다. 키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 딜레마 속에 자신을 내던졌으며 자신의 불안을 기꺼이 껴안았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하느님의 명령대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할 때가 바로 내일로 다가오자, 아브라함의 불안과 고뇌는 극도로 증폭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늦은 밤 이삭이 곤히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삭의 손을 쓰다듬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아브라함의 고뇌를 위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해봅시다. “뭐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도 젊으니까 아들 하나를 더 낳으면 되지요.” 그러나 이런 위로가 아브라함의 고뇌에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이삭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다시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그 아들이 바로 지금 제물로 바쳐야 하는 이삭일 수는 없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삭을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을 위로한 사람은 이삭을 다른 아들로 교환 가능한 존재로 보고 있다면, 아브라함 본인은 이삭을 다른 어떤 아들로도 교환 불가능한 존재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두 가지 태도가 발생하고 구별되는 것일까요? 철학적으로 명료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특수성(particularity)특수성이란 개념과 짝이 되는 것은 일반성이란 개념이다. 예를 들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상품, 즉 바나나, 사과, , 모자 등은 특수성에 비유될 수 있고, 이런 특수한 것들을 구매할 수 있는 화폐는 일반성에 비유될 수 있다단독성(singularity)’이란 것입니다. 어떤 책 한 권이 눈앞에 있다고 합시다. 그것은 인쇄소에서 찍은 많은 책 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이 책을 보다가 인쇄가 정확히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당장 책을 구입한 서점에 가서 동일하지만 다른책과 바꿀 것입니다. 이 경우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을 특수한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특수한(particular)’이라는 표현은 바로 동일하지만 다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첫 선물로 받은 것이라면 어떨까요? 책의 첫 번째 면에는 그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절대적으로 다른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책을 보다가 앞서와 마찬가지로 책이 파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서점에 가서 이 책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할까요? 아마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바로 이 책을 단독적(singular)’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이런 단독적인 존재였습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고뇌와 불안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것을 제물로 바쳐야 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아브라함을 위로하던 그 남자에게 이삭이란 존재는 하나의 특수한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별로 어렵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 하나를 더 낳으면 되지요.” 그는 이삭을 아브라함이 낳을 수 있는 여러 아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보았던 것이죠. 따라서 그에게는 아브라함과 같은 고뇌와 불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데도 바로 이 두 가지 태도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타인을 단독적인 존재로 사랑할 수도 있고, 아니면 특수한 대상으로 사랑할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와 단독적인 사랑을 맺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과 헤어져서는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누군가와 특수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그 사람과 헤어지더라도 곧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강제하는 사건이나 기호가 어디서부터 유래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독적인 사람,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분출되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사건의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생각이 마치 애인의 거짓말 때문에 고통받는 질투에 빠진 남자와도 같은 상태에서 출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을 통해 그가 드러내려 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것을 단독적인 것으로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호를 감지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3인칭적 죽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사유를 발생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2인칭적 죽음’, 사랑하던 너의 죽음은 우리를 매우 극심한 고통에 빠뜨리고 긴 생각에 잠기도록 만듭니다. 여기서 라는 존재는 단순히 여러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바로 절대적인 단 한 사람, 특수한 너가 아닌 단독적인 너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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