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열하?
앞에서도 보았듯이, 이전의 중국 기행문은 모두 연기(燕記), 연행록(燕行錄)이라 불린다. 유독 박지원의 것만이 『열하일기』라는 좀 괴상한(?) 이름을 갖고 있다. 왜 연행록이 아니고 『열하일기』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열하? 그러고 보면 이 이름은 또 얼마나 낯선지. 중국기행이 국내여행보다 흔해빠진 요즘에도 열하를 여행 코스로 삼는 이들은 아주 드물다. 그만큼 열하는 여전히 낯설고도 이질적인 공간이다.
『열하일기』에서는 열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강희제 이후 역대 황제들이 거처했던 하계별궁의 소재지로, 북경에서 약 230킬로미터 떨어진 하북성 동북부, 난하지류인 무열하(武烈河) 서안에 위치한다. 열하라는 명칭은 이 무열하 연변에 온천들이 많아 ‘겨울에도 강물이 얼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한 것. 이곳은 한족과 이민족 간의 격전지로 유명한, 장성 밖 요해의 땅이자 천하의 두뇌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황제의 열하행은 “두뇌를 누르고 앉아 몽고의 목구멍을 틀어막자[壓腦而坐, 扼蒙古之咽喉而已矣]”는 고도의 정치적 포석의 일환이었다. 건륭황제의 치세에 이르러 국경도시로서 융성번화의 극치를 달렸던바, 황제는 ‘피서산장(避暑山莊)’이라 불리는 장대한 별궁을 지어놓고는 매년 순행하여 장기 체류하곤 했다.
열하는 애초의 일정에 없던 것이었다. 목적지는 연경이었는데, 마침 황제가 피서산장인 열하에 있으면서 조선 사행단을 급히 열하로 불러들이는 돌발적 사태가 벌어진다.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고 간신히 연경에 도착하여 겨우 숨을 돌리는 순간, 느닷없이 열하로 떠나야 했으니(그날의 해프닝은 3부의 2절을 기대하시라!), 연암은 조선사람으로서는 처음 이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만수절 행사에 모여든 온갖 이민족들 몽고, 이슬람, 티베트 등의 기이한 행렬을 목격하게 된다. 요컨대 열하는 이질적인 것들이 ‘도가니’처럼 뒤섞이는 특이한 장이었다. 그가 그 장대한 여정을 ‘열하’라는 이름으로 압축한 것도 바로 그 점에 착안한 것이었으리라. 변방의 외부자 연암, 만주족 오랑캐가 통치하는 중화, 그리고 열하라는 낯선 공간 ―― 『열하일기』는 이 상이한 계열들이 접속해서 만들어낸 하나의 ‘주름’이다.
▲ 성군(聖君) 트리오
청나라, 아니 중국사가 낳은 최고의 황제 ‘트리오’, 오른쪽 위로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각각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제위순 역시 그와 같다. 연암의 열하행은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 가운데서도 강희제는 지략, 경륜, 학문 등 다방면에서 막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한 ‘왕중왕’이고, 옹정제는 변방의 하급관리까지 일일이 체크할 정도로 치밀하고 성실한 군주로 유명하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하다 ‘과로사’로 쓰러진 드문 케이스다. 그 둘에 비하면 좀 급이 떨이지기는 하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공덕에 힘입어 건륭제 역시 청나라를 세계제국의 중심으로 이끌어갔다. 연암이 만날 당시에는 총명과 위엄은 여전한데, 마음의 평정을 잃어 노쇠의 기미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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