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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를 읽다 - 23. 생활의 발견과 일상의 시 본문

책/한시(漢詩)

우리 한시를 읽다 - 23. 생활의 발견과 일상의 시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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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생활의 발견과 일상의 시

 

 

일상을 담은 한시

 

 

1. 한시의 역할

1) 시는 교양이며 생활이 일부임.

2) 좋은 일로 축하해줄 때도, 벗이나 친지가 죽는 슬픔을 맞이할 때도, 벗이 찾아오거나 떠나갈 때도 시를 지었음.

3)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소재한 시들이 많을 수밖에 없음.

 

 

2. 서거정(徐居正)의 일상시

1) 서거정은 쉽게 시를 썼던 사람으로 하루에 10수의 시를 지은 적도 있었음.

2) 늘 함께 시를 주고받는 벗들이 있어 그들이 아들을 낳아도, 만나려다 병으로 만나지 못해도, 꽃이나 약재 등 선물을 받아도 시를 지었음.

 

 

3. 서거정의 시

誰識酒腸淺 自知詩料貧 뉘 알랴 술 창자 작은 것을, 절로 아네 시의 재료가 빈천하다는 걸.
大醉逢妻諫 苦吟被僕嗔 만취하여 아내 잔소리 듣고, 괴롭게 읊조리니 종이 화를 내내.
撚鬚難得句 拭吐不須巾 수염 비비꼬아도 시구 얻기 어렵고 토할 것 닦아줄 수건도 필요치 않네.
相對孟光處 呵呵一笑新 서로 맹광의 아내처럼 대하며 깔깔대는 한바탕 웃음소리 새롭다오.

 

1) 절친한 벗 홍일동(洪逸童)과 매일 만나다 3년간 만나지 못했고, 다시 만나자 대화를 나누듯 시를 주고받았는데, 서거정의 답시를 받지 못하자 새벽같이 종을 보내 시를 받아오라 채근 한 것임.

2) 서거정이 시를 짓느라 끙끙대는 사이 하인은 주인의 불호령이 겁이나 울면서 집으로 제 집으로 돌아갔고, 아내는 술에 약하면서 과음을 하고 시도 잘 짓지 못하면서 끙끙댄다고 술도 끊고 시도 짓지 않는 게 낫다고 핀잔을 줌.

3) 수염을 꼰다고 한 것은 당나라 노연양이 시에서 말한 고사를 가져온 것임.

吟安一個字 撚斷數莖鬚 시 읊음에 한 개의 글자 안배하느라 몇 가닥 수염을 꼬아 끊었네.

 

4) 또한 이백(李白)이 장안의 저잣거리에서 취해 자다가 갑자기 현종(玄宗)의 부름으로 궁중에 들어가 시를 짓게 됐는데 현종이 그가 취한 것을 깨우려 친히 수건으로 토한 것을 닦아줬다는 고사도 활용했음.

5) 잔소리하는 아내를 맹광에 비겨 그 입을 닫게 만들려는 속셈으로 시를 지음.

 

 

 

한시, 음식을 담아내다

 

 

1. 한시의 소재가 넓어지다

1) 우리 한시사에서 음식이 시의 소재로 일찍부터 등장했음.

2) 이색(李穡)은 일상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당시의 먹을거리와 관련된 풍속도 담아냈다.

 

 

2. 이색(李穡)종동정구리(從東亭求梨)

筵前平桂積如山 연석 앞에 평계는 쌓여 있는 게 산 같았네.

 

1) 평계(平桂): 꿀떡이다. 밀가루와 꿀을 섞어 납작하고 길쭉하게 만든 다음 기름에 구운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이를 과자라고도 불렀으며, 제사상이나 잔칫상, 손님상에 한 자 정도 수북하게 쌓아 놓음.

2) 소문쇄록(謏聞瑣錄)3에선 평계를 대를 잘라 면채자를 꿰어, 간장 발라 불에 구웠네[削竹串穿蕎麥餻 仍塗醬汁火邊燒]”라 했는데, 면채자(麪菜炙)는 메밀가루를 여러 나물과 섞어서 대나무에 꿰어 꼬치를 만들고 간장을 발라 구운 음식으로, 동지에 콩죽과 함께 이웃에 돌림.

 

 

3. 일상의 시에 대한 인상

1) 시가 생활의 일부였기에 평범한 일상을 시에 담는 것은 당연한 일임.

2) 조선 중기엔 당시(唐詩)에 모범을 두었기에 이런 일상을 담은 시들은 환영받지 못함.

3) 당시의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자 했던 풍조가 일었고 일부는 그러한 성과를 이루기도 했음.

4) 그에 대한 반발로 자신의 범상한 일상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시의 본질이란 인식이 생겨남.

5) 이 무렵부터 연작시 형태로 먹을거리가 시의 소재로 등장하게 됨.

 

 

4. 백과사전적 지식의 등장

1) 서양은 17세기 계몽의 시대백과사전이 탄생했음.

2) 조선에서도 이 시기에 먹을거리에 관한 주목할 만한 서적들이 탄생함.

3) 이수광(李睟光)지봉유설(芝峯類說)은 조선의 백과사전식 저술의 출발을 알렸고 음식에 대한 기록이 상당량에 이름.

4) 허균(許筠)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도 다양한 먹을거리에 대한 정보를 다루고 있음.

 

 

5. 이응희(李應禧)의 시로 적은 백과사전만물편(萬物篇)

1) 자는 자수(子綏), 호는 옥담(玉潭). 산본의 수리산 아래 살면서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서울이 이름난 문인들과도 교유하지도 않음.

2) 지극히 평범했기에 그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

3) 만물편엔 만물을 25종의 유형으로 나누고 다시 그 아래 280개의 사물을 나열한 다음, 각각의 사물에 대해 오언율시를 지음.

4) 만물편엔 특히 물고기와 채소, 과일 등에 대한 자료가 풍부함.

 

 

6. 이응희(李應禧)진과(眞瓜)

名眞意有在 其理我能窮 이름의 의 뜻이 있으니 그 이치는 내가 궁리할 수 있다네.
短體稱唐種 長身號水筒 짧은 놈은 당종이라 부르고, 긴 놈은 수통이라 부르지.
刳分金子散 條折蜜肌濃 쪼개 놓으면 금가루 흩날리고 잘라놓으면 꿀 같은 과즙 가득해.
品格渾如此 西瓜語必同 품격이 혼연히 이와 같으니, 수박이란 말과 반드시 함께 한다네.

 

1) 참외는 고려에 온 송의 서긍(徐兢)이 지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그 이름이 보이니, 이른 시기부터 우리나라에 있던 과일임.

2)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감과(甘瓜)와 같다고 했고,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의주에서 나는 것이 좋다. 작으면서도 씨가 작은데 매우 달다[甜瓜, 義州爲上. 小而核細, 味甚甘滑]”라고만 적음.

3) 만물편에서 읊은 곡물이나 과일, 채소 등은 우리 문학사에서 거의 시로 읊은 적이 없던 것인데 이응희가 지음으로 사전의 기능까지도 겸하게 됨.

 

 

7. 이응희(李應禧)만두(饅頭)

吾家巧媳婦 能作水饅嘉 우리 솜씨 좋은 며느리, 물만두 잘 만들지.
玉屑鞱金粟 銀包泛鐵鍋 옥가루에 금빛 조로 소를 만들어 은빛 피로 싸서 철가마에 띄우네.
苦添薑味勝 醎助豆漿多 찍어 먹는 것엔 쓴맛 더하려 생강맛을 더했고, 짠맛 더하려 간장 더했지.
一椀呑淸曉 崇朝飯不加 한 그릇을 맑은 새벽에 먹으면 아침이 끝나도록 밥 생각나지 않는다네.

 

1) 제갈공명이 만들었다는 만두는 이른 시기 중국에서 들어와 고려시대에 이미 우리 식단에 널리 올랐다.

2) 이색(李穡)이랑가조향만두(二郞家朝餉饅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 흰 피 속에 고소한 기름을 넣어 만들었음을 알 수 있음.

外面團圓雪色凝 바깥 면은 둥글고 눈처럼 하얀색으로 엉겨
流膏內結曉重蒸 흐르는 기름이 안에 뭉쳐 있으니 새벽에 거듭 찐 거라네.

 

3) 위의 시를 보면 조선 중기에는 만두가 더욱 발전하여 좁쌀을 소로 하고 생강과 간장을 넣어 물만두를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음.

 

 

 

채소를 한시에 담다

 

 

1. 김창업(金昌業) 또한 자신의 집과 밭에 있는 70종의 식물을 대상으로 방대한 규모의 시를 제작했다.

1) 자 대유(大有), 호 노가재(老稼齋).

2)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며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이 그의 형이다.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김창집을 따라 1712년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노가재연행록(老稼齋燕行錄)을 저술함.

 

 

2.김창업(金昌業)시금치菠薐(時根菜)

菠薐傳數名 其始出波羅 시금치는 여러 이름이 전해지는데 처음에 페르시아에서 나왔네.
我國有俗稱 恐是赤根訛 우리나라에선 속칭이 있는데 아마도 적근의 와전인 듯.

 

1) 시금치는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것으로 파사초, 파사채, 파채라고 했음.

2) 뿌리가 붉어 적근채(赤根菜)라고도 했는데, 김창업은 적근채가 와전되어 시근채가 되었다고 함.

3) 김창흡(金昌翕) 이전에는 시금치에 대한 기록이 적기에 이 시들이 작은 식물 사전 기능을 함.

 

 

3. 신후담(愼後聃)이 지은 채소류 연작시

1) 이익(李瀷)의 제자인 신후담(愼後聃) 역시 식물에 관심이 높아 채소와 과일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여 소식십팔영(蔬食十八詠)을 지었음.

2) 18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시로 지은 사전이 유행함.

 

 

4. 김려(金鑢)와거(萵苣)

種苣三十日 天氣苦亢暘 상추씨 뿌린지 30일 날씨가 극심한 가뭄에 고통 받아
幽畦黯蓁蕪 穉甲競焦黃 응달 밭이 검게 말라 어린 첫째들이 다투어 말라갔지.
好雨忽霡霂 凱風紛飄揚 단비가 문득 가랑비로 내려 남풍이 어지러이 불어와
乳膏周原圃 芳蕤爛輝光 온 언덕 밭에 윤기가 나고, 찬란한 빛발처럼 향기가 널리 퍼졌네.
巨葉紫綠皺 襃然展錦裳 큰 잎은 붉고 푸른 주름져서 비단 치마 펼친 듯.
病妻親手摘 朝湌爲我嘗 병든 아내가 손수 따다 아침밥상에 나를 위해 올렸네.
芥汁糝鱻軒 椒醬來糟姜 겨자즙에 생선 잘라 섞어놓고 고추장에 생강초를 곁들이면
麥飯雖麤糲 甛滑美無方 보리밥이 비록 거칠다 해도 꿀맛이라 비길 데 없지.
搖疊以裹之 大嚼吻弦張 첩첩 가져다 포개어 싸서 크게 활처럼 입 벌려 베어 물고서
飽頹北牕下 是民眞羲皇 배불러 북쪽 창 아래에 쓰러지면 이것이 참으로 복희의 삼황 때 백성이로세.

 

1) 김려(金鑢)중과오고십운(衆果五古十韻)에서 30종의 과일, 중소오고십운(衆蔬五古十韻)에서 19종의 채소, 중화오고십운(衆花五古十韻)에서 10종의 꽃, 중기오절(衆器五絶)에서 42종의 기물을 시로 읊조림.

2) 상추는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천금채(千金菜)라고 했는데 와국(咼國)에서 공물로 가져와 수나라 사람들이 비싼 값에 들여와 심었다고 함. 우리말로는 부로라고도 함.

3) 병든 아내가 상추를 뜯어와 겨자를 친 다진 생선, 고추장에 생강초를 넣은 쌈장에 곁들이니, 거친 보리밥 일망정 꿀맛 같다고 함.

 

 

 

태평성대의 기상이 담긴 한시

 

 

1. 정민교(鄭敏僑)확귀(穫歸)

九月寒霜至 南鴻稍稍飛 9월에 차가운 서리 내리자 남으로 기러기 조금씩 날아가네.
我收水田稻 妻織木綿衣 나는 논의 벼를 수확하고 아내는 무명옷 짜네.
白酒須多釀 黃花自不稀 백주 많이 빚으니, 국화는 절로 적지 않게 피네.
於焉聊可隱 且作百年歸 이에 즐기며 숨을 만하니, 또한 백년 인생 돌아가리라.

 

1) 위항시인 정민교(鄭敏僑)는 시로 이름이 높았지만 가난하여 호남의 한천(寒泉)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이때의 모습을 시로 그려냄.

2) 가난한 살림이지만 중양절의 풍류는 잊지 않고 국화 곁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자 거친 막걸리일망정 푸짐하게 빚어둔다고 함.

3) 조선후기 위항문학의 성과가 바로 이러한 일상적 삶을 진솔하게 드러낸 데 있는데, 김창협(金昌協) 형제가 말한 진시(眞詩)라 할 수 있음.

 

 

2. 장혼(張混)답빈(答賓)

籬角妻舂粟 樹根兒讀書 울타리 모서리에서 아내 조를 찧고 나무뿌리에서 아이 책 읽네.
不愁迷處所 卽此是吾廬 장소 헤맬까 걱정되지 않으니, 곧 이곳이 나의 집이로세.

 

1) 자 원일(元一), 호 이이엄(而已厂) 혹은 공공자(空空子)

2) 인왕산 옥류동 골짜기에 살았는데 그 집의 이름이 이이엄이었기에 호가 됨.

3) 위의 시는 특별한 것이 없는 일상을 그대로 담아내 참된 시가 됨.

4) 일상생활을 시로 끌어들여 담박의 미학을 발휘함.

 

 

 

 

인용

목차

한시사 / 略史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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