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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업의 새로운 이해 싯달타라는 청년의 사유의 혁명은 바로 이러한 숙명론적이고 결정론적인 까르마를 자유의지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까르마를 윤리적 주체로서의 나의 자각의 계기로서 심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업의 전환은 최소한 윤리적 측면에서는 싯달타 뿐만 아니라, 챠르바카(Cārvāka 斫婆迦, 順世派) 쾌락주의자나 쟈이나교의 마하비라와 같은, 싯달타 당대의 모든 사상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현세에 있어서의 나의 업이 나의 미래의 생존의 모습을 결정한다고 한다면, 나는 주체적으로 윤리적 행위, 즉 선업을 통하여 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나의 생존이 과거의 업의 결과라 해도, 그것은 체념이 아닌 끊임없는 자각과 반성의 계기..
체념적인 전생의 업보 업의 사상이 얼마나 치열하고 무서운 개인의 윤리를 요구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로써 새삼 새로운 각성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슈퍼마켓에 갔다가 선반에 있는 물건을 슬쩍 했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런데 운좋게도 폐쇄회로 텔레비젼에 걸리지도 않았고, 아무도 본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들키지 않았다. ‘물건을 슬쩍 했다’는 사태는 사실 하나의 무형의 이벤트이며, 들키지만 않는다면, 파도가 일었다가 잔잔해진 물처럼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영원히 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물건을 슬쩍 했다’는 사태는 분명한 나의 행위다. 즉 나의 까르마다. 그런데 이 까르마는 앞에서 말했지만 반드시 보(報)를 수반한다. 이미 저질러진 나의 까르마는 누가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