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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신앙은 이성이다 이런 얘기를 주욱 듣고 있다가, 갑자기 달라이라마는 나보고 칭호를 무엇으로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모국에서는 보통 ‘도올선생’이라는 말로 불리운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도올선생’이라는 호칭에 대한 나의 영역은 ‘마스터 스톤’(Master Stone)이었다. 그랬더니 왜 하필 ‘마스터 스톤’이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돌대가리’라고 불리었기 때문에 그런 호칭이 붙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는 깔깔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돌대가리가 아니라 불ㆍ법ㆍ승 삼보의 보석대가리라고 해야겠군요. 여태까지 도올선생께서 기독교역사나 교리에 관한 최근의 학설을 친절하게 소개해주신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도올선생처럼 그렇게 다방면으로 디테일한 학문적..
부록 9. 서구인들의 세 가지 신의 관념 화이트헤드는 그의 유기체적 우주론의 구상을 밝힌 대저, 『과정과 실재』의 마지막 장에서 서구인들의 전통적인 신의 관념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요약하고 있다. 그 첫째가 황제의 이미지로서의 신(God in the image of an imperial ruler)이다. 서구세계가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는 마침 시저가 세계를 정복한 후였으며, 따라서 서구신학의 표준 텍스트는 시저의 법률가들에 의하여 편찬되었다. 그리고 서구교회는 전적으로 시저에게 속해있던 속성들을 신에게 부여했던 것이다. 이집트ㆍ페르시아ㆍ로마의 황제와 같은 이미지로 신을 만들어 내는 뿌리깊은 우상숭배의 전통이 이미 그 초창기로부터 확립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 번째가 도덕적 에너지를 의인화한 이미지로..
예수신화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종교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매우 교활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서로마의 운세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고, 그가 기독교를 공인하려 했던 것은 기독교의 대세에 밀렸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독교를 역이용하여 쓰러져가는 로마제국을 재건하려 했던 것이죠.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기울어져가는 로마제국의 새로운 정신적 일체감의 기초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본다면 영지주의와 같은 신비주의ㆍ개인주의, 그리고 우리 동학처럼 신과 인간을 하나로 이해하는 신인(神人, godman)의 로고스론은 제국주의의 하이어라키를 정당화시키는 데는 매우 불편합니다. 즉 리터랄리스트의 권위주의적 주장이 로마제국의 정치적 음모를 위해 더 적합했던 것이죠. 하나의 신,..
그노스틱스와 리터랄리스트의 대립 나는 달라이라마의 날카로운 질문에 좀 충격을 받았다. 그에게 나의 언변은 매우 생소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장황할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를 매우 진지하게 경청했을 뿐 아니라, 중간에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 있으면 반드시 되묻고 이해를 하고서야 넘어갔다. 나의 이야기를 막는 법이 없었으며 나의 이야기가 소기하고자 하는 의미맥락이 완벽하게 드러날 때까지 나로 하여금 이야기를 계속하게 만들었다. 내가 대화의 초장부터 받은 달라이라마의 인상은, 그는 매우 이지적인 사람이었으며, 무한한 지적 호기심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홀대하는 자세가 전무했다. 그는 자비와 지혜의 상징이었다. 나는 곧 편안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어떤 추상적 정신운동이 ..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전개 “우선 『예수의 신비』의 저자들은 4복음서가 모두 사도바울의 편지 이후에 성립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에 착안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전혀 이들의 새로운 창안이 아니고 매우 정통적인, 그러니까 초대교회사를 연구하는 모든 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예수의 전기로서 우리는 우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들 수가 있는데 이 세 복음서는 공통된 관점에서, 그러니까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해서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s)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세 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성립했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그런데 이 공관복음서의 원형을 이루는 「마가복음」조차도 사도바울의 죽음 이후에 성립한 것이 확실하며, 연대..
예수 신화의 변용과 재생산 “바로 프레케와 간디는 그 역사적 이유를 소상하게 규명할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애초로부터 사실로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지중해연안문명에 공통된 신화양식의 유대사회적 변용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의 시대는 싯달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의 시대보다는 몇 세기나 늦은 인류문명의 꽃이 만개한 시대이며, 불교사로 본다면 대승불교운동이 본격적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줄리어스 시이저 등, 플루타크(Plutarch, c. 46~119이후 죽음)의 『영웅전』(Bioi parallēloi, Parallel Lives)에 나오는 인물들이 활약하던 시기를 지나 제국문명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와 로마를 넘나들며 활약했던 플라비우스 요..
예수와 신화 "저는 최근에 『예수의 신비』(The Jesus Mysteries)라는 책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인류문명의 다양한 신비주의를 폭넓게 연구한 두 영국학자, 프레케(Timothy Freke)와 간디(Peter Gandy)의 역저인데, 예수라는 사건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건이 아니고 신화적으로 구성된 픽션에 불과한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가설을 설득력 있고 치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이것은 20세기 문헌학의 획기적인 대발견이라고 불리우는 나하그 함마하디 영지주의 문서(the Nag Hammadi Gnostic Library)의 연구성과와 그동안 우리에게 무시되어 왔던 지중해 주변의 토착문명의 신화적 세계관의 매우 복잡한 연계구조에 관한 새로운 인식의 성과를 반영한, 단순한 가설 이상의 치..
붓다는 존재한 인간인가? 나는 사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미국서 큰 사람도 아니고 미국교육이래야 6년간 박사공부를 한 것 뿐이다. 나는 한국말을 가장 잘 한다. 그것은 우선 한국말이 자유자재롭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영어를 하는 데도 그리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아무렇게든지 영어로 전달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난 영어로 말하는 동안에 내가 영어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잊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냥 되는 대로 적당히 뇌까린다. 나의 거침없는 서두로 좀 장내가 숙연해진 듯했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제가 인도를 오게 된 것은 명백하게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첫째 목적은 ‘역사적 붓다’(Buddha as a historical p..
위대한 출발 인도인들은 간지스 강 가트 건너편의 땅을 ‘사악한 땅’이라 불렀다. 그러나 싯달타는 바로 그 땅을 정토로 만들었다. 수보리야! 간지스강에 가득찬 모래알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간지스 강들이 또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모든 간지스 강들에 가득찬 모래는 참으로 많다하지 않겠느냐? 須菩堤 如恒河中 所有沙數 如是沙等 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금강경』 제11분이 묘사하고 있는 그 현장, 바로 그 카시의 간지스 강 모래밭. 사악한 땅의 모래밭에서 정성스럽게 두손모아 기도하고 있는 저 여인을 보라! 나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계단을 올라갈 때 많은 승려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그 중 나에게 인사를 한 사람은 라크도르(Lhakdor)라는 승려였다. 라크도르는 달라이라마의 지..
무비스님과의 일문일답 나는 원전의 의미도 충실히 전달하면서도 매우 평이하고 편안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으로서 무비스님의 『금강경 강의』라는 책을 만났던 것이다. 물론 나는 나의 『금강경 강해』 속에서 무비스님의 책에 많은 도움을 입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혀 놓았다. 그러나 나는 구체적으로 무비스님의 신상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如幻)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해인사강원을 나왔고, 구한말 대유 최익현의 학맥을 이은 한학자였으며 대학승이었던 탄허스님(呑虛, 1913~1983) 밑에서 열심히 공부한 분이라는 정도의 간단한 이력만 알고 있었다. 나는 무비스님이 만나고 싶어졌다. 한국에서 만날려면 많은 시간을 일부러 소요해야 하는데 여기 보드가야에서 한 호텔에 묵고 있는 터에 모르..
번역과 문명 2002년 1월 11일 운명의 날이 밝았다. 다행스럽게도 걱정스러웠던 감기 몸살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아침, 호텔에 있는 신문들을 들추어보니 어제 수자타 아카데미 살인사건이 사방에 크게 보도되고 있었다. 어젯밤, 수자타호텔을 들어섰을 때 나는 갑자기 부산말을 하는 보살님들 수십 명에게 둘러 싸였다. 나는 우리나라 여자들 중에서 매우 특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이북에서는 평양여자, 이남에서는 부산여자를 꼽는다. 평양여자들은 대체적으로 잘 생겼고 거침이 없으며 말을 잘한다. 그리고 사람을 제압하는 힘이 있다. 부산여자들도 거침이 없이 말을 잘하며, 옆에 있는 사람들을 공연히 들뜨게 만든다. 부산여자들은 신바람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개방적이며 애교가 만점이다. 평양여..
생과 사의 찰나 황혼에 석양이 걸렸을 무렵, 우리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군과 남군이 미스터 타클라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인 알현시간을 확정했다. 내일 큰 행사가 있는데 그 전에 달라이라마께서 식사를 좀 일찍 끝내신 후 날 만나겠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궁 앞으로 1시까지 오면 된다고 하였다. 드디어 면담시간이 확정이 된 것이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난 매우 기뻤다. 날뛸 듯이 기뻤다. 난 결코 달라이라마를 내 마음속에 우상처럼 모시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한 위대한 인간을 만난다는 것이 그지없이 기뻤다. 하나의 정치적 리더로서 생각을 해도 달라이라마는 20세기로부터 21세기에 걸친 세계의 최장기집권자이다. 1951년 집정하여 2002년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났던 모든 정치적 지도..
여자 법사님의 푸대접 수자타 아카데미를 돌아볼 때에도 사실 나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여자 법사님께 점심공양은 하셨습니까 하고 오히려 내 쪽에서 슬쩍 떠봤는데, 그 법사님은 다음과 같이 냉랭하게 내뱉는 것이었다. “11시 반이면 점심공양이 다 끝나요. 학생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기 때문에 인도식 수제비로 점심을 들지요. 그런데 선생이나 학생이나 모두 똑같이 먹습니다. 예외가 없지요. 지금은 공양시간이 지나 부엌에 사람이 없습니다.” 예외가 없다는 말의 여운이 좀 께름직 했다. 그러면서 마당에 널린 배추밭을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은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배추를 길러 김치를 담궈 먹습니다. 요번에도 김치를 많이 담궜는데 내일 모레 개교기념행사를 치르려고 항아리를 봉해 놓았습니다. 그..
룸비니의 총각김치 “무조건 이 차를 돌려 대성석가사에 대라!” 죽으면 죽었지 우리 총각김치나 한번 먹고 가자! 오늘 국경을 못넘으면 내일 넘지! 호텔값이야 날리면 그뿐 아닌가? 서울 강남 서초구 끝자락에 우면산이라는 유서 깊은 산이 있다. 그 밑에 예술의 전당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전당 뒤쪽으로 돌아 산허리를 올라가면 대성사(大聖寺)라는 절이 있다. 그 절은 바로 백제에 불교가 초전된 터에 세워진 사찰인데 그 대성사에는 도문(道文)스님이라는 도력이 고매하고 행보의 스케일이 매우 크신 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다. 그 도문스님 문하에서 아까 말한 법륜스님, 그리고 법성스님, 보광스님과 같은 훌륭한 스님들이 배출되었다. 그런데 룸비니의 대성석가사는 도문스님 문하에서 이루어..
네팔 카필라바스투 강행군 지난 1월 5일 나는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가고 있었다. 현재 룸비니는 인도에 있질 않고 네팔에 있다. 그런데 인도에서 네팔국경을 건너는 문제도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항상 쓸데 없는 번문욕례(繁文縟禮)가 많이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고락크뿌르(Gorakhpur)를 아침에 출발하여 네팔국경을 넘어 룸비니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였다. 우리는 그날로 다시 고락크뿌르로 내려와 쿠시나가르까지 가는 여정을 짜놓았다. 호텔이 모두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스케쥴 변경은 항상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네팔에 있는 카필라바스투를 꼭 둘러보고 싶었다. 그곳에 가봐야만 나는 원시불교의 많은 문제에 관한 나의 사색의 확고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
수자타 아카데미 수자타 아카데미(Sujata Academy)는 한국의 제이티에스(JTS, Join Together Society)라는 국제복지기관이 1994년 1월에 바로 부처님의 고행지였던 시타림ㆍ전정각산 주변 척박한 지역의 주민들을 위하여 개교한 학교다. 제이티에스는 한국의 불교단체인 정토회 산하기관이다. 그런데 정토회는 80년대 초반부터 법륜스님께서 구심점이 되어 이끌어오셨는데, 의식있는 젊은 불자들의 호응이 높을 뿐 아니라, 한국불교의 취약점이라 할 수 있는 사회의식의 빈곤을 매우 조직적으로 극복해나간 훌륭한 사회활동단체로서 평가받고 있다. 8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했을 때는 그런 사회의 진취적인 흐름과 보조를 같이 했을 뿐 아니라, 9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그러한 운동의 에너지를 인권ㆍ복지ㆍ환경의 ..
엘리자베쓰와의 인터뷰 “인도에 와봐야 비로소 인간의 고통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터무니없이 불공평한 것입니다. 정말 카르마(Karma, 業)의 이론의 정당성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결국 그러한 모든 인간의 고통을 극복하는 열쇠가 내 마음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티벹불교가 뭐가 그렇게 좋습니까? 우리는 기독교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독교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데 종교적인 차원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콘트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상태를 항상 개선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티벹불교는 인간의 마음을 콘트롤하..
헤어드레서 엘리자베쓰 나는 암도식당을 나왔다. 암도 수제비에 좀 실패를 했기 때문에 2차를 시도하기로 했다. 그 옆의 포장마차 문깐에서 한국글씨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호미 까페(Homy Cafe)라는 간판 밑에는 한국글씨로 ‘수제비, 빈대떡, 만두, 만두국, 볶음밥, 생선튀김, 감자 튀김, 닭고기와 샐러드’라고 쓰여져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사람들의 구미를 좀더 잘 이해하는 곳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도 식단의 가격은 대체로 10루삐 전후였다. 그런데 이곳은 서양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서양인들은 대체적으로 우리보다 검약하다. 나는 야채만두와 소고기 수제비를 또 시켰다. 그런데 내 옆을 힐끗 쳐다보니까 세명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데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남자는 동양계 청년..
뺨따귀를 쳐올리던 여학생 어저께 보드베가스에서 있던 일이다. 우리 식탁 옆에는 아주 명랑하고 맹랑하게 생긴 성신여대생 한 명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는 티벹의 라사를 다녀서 인도로 넘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는 일화를 그 학생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티벹여행을 하는데 우연스럽게 일본의 멀쑥한 대학생 청년 두명과 함께 내내 동반여행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열차간에서 갑자기 한 일본청년이 묻더라는 것이다. “저는 정말 이해 못하는 게 있는데요, 왜 만나는 한국사람마다 암암리에 일본사람들을 적대시하는지 모르겠어요. 왜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일본사람들을 싫어하죠?” 이때 이 여학생은 돌연하게 그 일본청년을 꿰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럼, 제가 이해시켜 드리죠.” 그 순간 이 여학생은 ..
중국의 티벹 동화정책의 명과 암 이군과 남군을 데리고 나는 암도라는 천막촌 식당에 들어섰다. 늦은 시간인데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는 모습에 좀 놀랐다. 나는 음식만은 깨끗하게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인도여행을 통해 최고급 레스토랑만을 고집했다. 대개 5성급 호텔에 속한 식당들이었다. 평균 한끼에 2천루삐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런데 내가 충격을 받은 사실은 암도식당내의 모든 메뉴가 10루삐 전후라는 사실이었다. 한끼가 10루삐로 해결될 수 있다니! 신라호텔 최고급식당과 서울 뒷골목 포장마차집의 가격의 차이가 심하다 해도 2000 : 10이라는 차이는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고급레스토랑만 고집했던 나의 아집을 후회했다. 2000 : 10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도인들의 현..
접견 전날밤의 풍경 우리는 수자타 집터가 있었다는 동산에서 아주 영어를 썩 잘하는 귀여운 꼬마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눕 꾸마르(Anup Kumar)라는 이 소년의 별명을 ‘수자타동생’이라고 지었다. 나는 이 날 오후 늦게라도 법륜 스님이 계신 수자타 아카데미(Sujata Academy)를 들려올 생각이었다. 수자타동생이 마침 수자타 아카데미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운전사 고삐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다. 밤이 늦어지면 이 지역에서 산길을 다닌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 차가 토요타이기 때문에 눈에 잘 띄고 외국인이라는 것이 완연해서 곧 낙살리떼(naxalite, 산적)의 공격타게트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는 비하르(Bihar)다. 우리는 밴디트 퀸(Bandit Q..
수자타의 마을, 우루벨라의 정경 우리는 차를 타고 다시 나이란쟈나강을 건넜다. 원시경전에 우루벨라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는 수자타의 마을을 가보기 위해서였다. 수자타의 마을을 들어서자마자 나는 무엇인가 포근한 고향의 품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태고적부터 같은 탯줄로 이어져 내려왔던 어떤 동포(同胞)의 숨결이라고나 할까? 사방에 어린 아이들이 내가 어릴 때 놀았던 것과 똑같은 ‘자치기’를 하고 있었고, 또 한구텡이에서는 제기를 차고 있었다.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탈곡을 하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너무도 나의 고향같이만 느껴지는 유족한 농촌의 풍경이었다. 둥글둥글 거대하게 쌓아놓은 짚더미 사이로 우리나라 토종과 똑같이 생긴 황소들이 음메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들은 우리와 똑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