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2/03/24 (27)
건빵이랑 놀자
그늘③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 셋째,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입니다. 칸트에게 실천적인 판단을 하는 이성은 이론적인 판단을 하는 이성과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심지어 이론적인 이성의 영역에선 신을 쫓아내도, 실천이성의 영역에선 필요에 의해 다시 불러들이기도 할 만큼 따로 놉니다. 여기서 순수이성은 ‘선험적 형식’이라는 이유로, 진리를 기초지우는 확실한 근거로서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실천이성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보편입법의 원리’라는 도덕철학은 무엇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여기서 다시 진리를 끌어들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천이성은 순수이성과 전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고, 칸트에게 행동이나 의지는 진리와 전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보편적 윤리..
그늘② 선험적 주체 문제 둘째, 선험적 주체에 관한 문제입니다. 흔히 지적되는 순수이성의 추상성이나 비역사성은 일단 그냥 넘어갑시다(이는 피히테나 헤겔, 뒤에는 딜타이 등에 의해 집중적으로 지적됩니다). 근본적인 난점은 ‘선험적 형식’ 자체에 있습니다. 먼저, 지성의 선험적 형식인 범주를 봅시다. 칸트의 12개 범주는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10개 범주를 약간 변형시킨 것인데,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선험적 형식인 범주는 철학자마다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범주가 모든 판단의 전제가 되는 ’선험적 형식’인가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범주 이전에 범주를 나누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칸트와 아리스토텔..
그늘 진리에 관한 문제 이로써 칸트철학은 근대적 문제설정의 딜레마를 해소하고 위기의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뿌리깊은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해결은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생성시키거나 ‘전이’시킵니다. 칸트철학 자체 내에는 이미 새로운 위기의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앞서처럼 세 가지 차원에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는 진리를 주관화하는 전략과 관련된 것입니다. 칸트는 현상이란 우리가 지각하고 인식한 것이고, 따라서 주관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지요. 대신 주관 밖에는 ‘사물 자체’를 남겨두고 말입니다. 사물 자체는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고 우리의 인식을, 진리를 단지 현상에 관련된 것으로 제한합니..
칸트철학의 영광 칸트는 흄에 의해 전면화된 ‘근대철학의 위기’ 속에서 작업했습니다. 그는 위기 속에서 붕괴된 근대철학의 지반을 새로이 복구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근대적 문제설정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둥으로서 ‘진리’와 ‘주체’를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한 칸트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진리의 주관화입니다. 즉 진리를 외부의 사물이나 대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체 자체의 내부에서 찾자는 것이지요. 둘째는 주체(주관)의 객관화입니다. 모든 주체가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경험이나 인식의 기초가 되는 필수적인 형식을 주체 내부에서 찾아냄으로써 그것이 모든 주체들에게 공통된 것임을, 따라서 객관적인 것임을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이 두 과정의 복합으..
근대적 윤리학 확립 셋째, 근대적 윤리학(도덕철학)의 확립입니다. 칸트가 윤리학 혹은 도덕철학의 문제를 다룬 책은 알다시피 『실천이성 비판』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행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 책에서, 칸트가 던지는 도덕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 “인간의 의지(및 행동)는 이성의 힘만으로 규제될 수 있는가?” 바꿔 말하면 인간의 의지와 행동을 규제하는 원리가 인간의 이성 안에 있을 수 있는가,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보편적인 원리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이는 근대적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이 신에게서 독립해 존재하고, 인식하며, 행동할 수 있는가가 근대철학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질문이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지를 규제할 보편적인..
근대적 주체의 재건② ‘지성’이란 분별하는 능력(분별력)입니다. 크다, 작다, 하나다, 다수다, 필연적이다, 우연적이다 등의 ‘범주’를 통해 대상의 성질을 구별해내고 그것들을 결합해서 “나무를 비비면 불이 난다”는 판단을 만들어내는 능력인 거죠. 그런데 이런 능력이 활동할 수 있으려면, 그래서 경험에서 어떤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으려면 최소한 범주가 있어야 한다는 게 칸트의 생각입니다. 이 범주가 없다면 사물을 비교하는 것도, 사물들의 연관(필연적이다. 우연적이다 등등)을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범주는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하며, 경험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경험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판단하는 데 필수적인 최소한의 범주를 칸트는 12개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범주로..
근대적 주체의 재건 둘째, 근대적 ‘주체’의 재건입니다. 근대철학의 확실한 기초요 출발점이었던 주체는 흄의 비판을 통해 ‘지각의 다발’ ‘관념의 다발’로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더해 이젠 아예 인식하는 주체조차 불가능하다는, 극히 부담스런 결론에서 칸트는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든 길은 찾는 자에겐 있게 마련입니다. 칸트는 죽음 직전의 위기에서 근대적 ‘주체’를 살려냅니다. 과연 어떻게 살려낼까요? 칸트가 보기에 인간의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물론 흄이 지적한 것처럼 경험적 인식은 매우 불확실해서 진리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경험을 통해 인식한다고 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뭔가가 있을 겁니다. 도대체 그게 ..
진리 개념의 전환과 재건② 칸트철학에 단골로 등장하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니 ‘아 프리오리’(a priori, 선천적)니 하는 말들이 중요한 건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선험적’이란 말은 ‘경험적’이란 말과 반대짝입니다. ‘경험적인 것’이란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선험적인 것’이란 경험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모든 미인은 예쁘다”가 그렇습니다. ‘분석판단’은 주어에 이미 술어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미인은 예쁘다”라는 명제는 분석판단입니다. 왜냐하면 ‘미인’이란 주어에 이미 ‘예쁘다’라는 술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판단’은 주어에 술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미인은 키가 크다”는 명제가 그렇습니다. ‘미인’이..
진리 개념의 전환과 재건 그렇다면 이제 칸트가 어떤 식으로 근대철학의 기초를 재건하는지 살펴봅시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얘기하는 게 유용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진리’ 개념의 전환과 재건입니다. 알다시피 흄은 귀납론과 인과법칙을 부정했습니다. 귀납론을 빌려, “이제까지 본 모든 까마귀가 다 까맸다. 따라서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고 한다 합시다. 그러나 이후에 갈색 까마귀나 회색 까마귀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고, 혹시라도 그런 까마귀가 한 마리라도 발견되는 날이면 앞서 한 말은 거짓이 됩니다. 또 인과관계란 관찰한 사람이 갖는 습관적인 추론이라고 했지요. 이렇게 되면 경험적 지식은 어떤 확실한 지식, 참된 지식을 줄 수 없습니다. 즉 진리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칸트가..
제3부 독일의 고전철학 : 근대철학의 재건과 ‘발전’ 1. 칸트 : 근대철학의 재건 근대철학의 위기와 칸트철학 앞서 말했듯이 ‘근대철학의 비조’라는, 지금까지도 데카르트가 누리고 있는 영광은 신학의 지배 아래 있던 철학, 신의 지배 아래 있던 인간을 신학과 신으로부터 독립시킴으로써 근대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근대적 문제 설정을 기초지우고 방향지웠다는 공적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카르트로선 자명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생각하는 나’ 즉 인식주체가 매우 불확실하며, 진리 역시 극히 취약한 기초를 갖고 있음이 흄으로 인해 드러났습니다. 진리는커녕 인과법칙조차도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주체가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지각의 묶음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데카르트가 마련한 근대철학의 전제가, 그 출발점과 ..
5. 근대철학의 위기 유명론과 경험론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로크ㆍ버클리ㆍ흄의 사상을 유명론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유명론은 로크에 의해 근대적인 문제설정으로 포섭되었습니다. 그 결과 유명론이 가지고 있었던 반관념론적인 성격은 근대철학 내부에서 딜레마를 드러내고, 결국 극한으로까지 가게 됩니다. 버클리와 흄의 작업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명론은 관념론으로, 혹은 회의주의로 전환되었지요. 경험적 지식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경험주의는 그 반대물로, 즉 경험이라는 것은 도대체 믿을 수 없고 진리를 형성할 수 없다고 하는 반대물로 전화되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함으로써 근대철학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회의주의’는 극한에 선 근대철학..
탈출도, 귀환도 아닌…… 흄이 수행한 근대철학의 해체는 분명 근대적 문제설정의 경계 내부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단지 그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평가가 아닐 것 같습니다. 때로 그는 그 경계선 밖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두드러진 것은 믿음에 대한 흄의 이론입니다. 흄에게 인과관계는 습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상이나 관념을 결합시켜 어떤 지식을 형성합니다. 이 지식은 ‘법칙’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즉 참된 지식이나 진리 대신에 믿음이란 개념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흄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현재의 인상과 관련이 있는, 혹은 그것들로 결합되어 있으며 그것들로 연합되어 있는 생생한(살아 있는!) 원리”라고 말입니다. 믿음은 힘을 가지며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그..
근대철학의 전복 위에서 본 것처럼 흄은 근대철학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진리’ 혹은 ‘과학’의 불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아가 좀더 근본적으로 근대철학의 입지점인 ‘주체’ 자체가 결코 안정적이거나 자명한 것이 아님을 또한 보여주었습니다. 근대의 과학주의는 물론, 주체철학 자체가 어떤 근본적 곤란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는 근대적인 문제설정이 안고 있었던 딜레마를 폭발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근대철학의 ‘극한’이요 ‘한계지점’이었습니다. 이로써 근대적 문제설정은 해체되며, 근대철학의 ‘위기’라는 사태가 초래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의 대다수 철학자가 이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노력을 하게 되고, 이것이 그 이후의 근대철학을 새롭게 발전시키게 됩니다. 어쨌..
주체의 해체, 주체철학의 해체 흄은 버클리가 남겨둔 유보조항을 비판하면서 경험주의를 좀더 극단으로 밀고 갑니다. 버클리는 지각된 것을 관념이라 하고, 지각하는 것을 정신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물건을 보고 ‘사과’로 지각한다면 ‘사과’는 관념이고, 그걸 지각한 것은 정신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라고 하며, 지각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지각하는 정신만은, 지각되는 게 아니지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요컨대 지각하는 ‘주체’, 인식하는 주체(데카르트)가 ‘정신’이란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흄은 이런 예외조차 인정하지 않습니다. 흄은 사물을 보고 생긴 것은 인상이요, 그 인상의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게 ..
4. 흄 : 근대철학의 극한 과학주의에서 회의주의로 근대철학을 그 극한으로까지 몰고 갔던 사람은 누구보다 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하 알다시피 흄의 철학은 ‘회의주의‘로 불려지는데, 대개는 회의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그의 사상에 대한 평가를 일축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한 근대철학에서 그러한 회의주의가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근대철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매우 역설적인 중요성을 갖습니다. 흄의 출발점은 로크와 비슷합니다. 그 역시 엄격한 과학적 지식을 추구합니다. 그에 따르면 “자연과학의 성과를 빌려 인간학을 구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과학의 일종으로 간주되던 심리학에 기초해서 ‘경험적 인간학’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경험과 관찰이 일차적 위치를..
관념론으로 다른 한편 버클리는 ‘물질’이란 실체를 제거하지만, 정신에 대해선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각하는 정신이 없다면 대체 경험이 어떻게 가능하겠으며, 지각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따라서 버클리에게는 정신이란 실체만 존재하며, 이 실체가 지각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결국 ‘정신’이란 실체 앞에서 버클리는 유명론에 일종의 유보조항을 달아두고 있는 셈입니다. 자기가 비판했던 로크처럼 말입니다. 요약하자면, 버클리의 주장은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중세의 유명론은 실재론에 대항하는, 반관념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뜻에서 흔히 유명론을 중세의 유물론이라고도 하지요. 로크의 유명론 역시 이런 성격이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데카르트 철..
3. 버클리 :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로크에 대한 두 가지 비판 버클리는 로크 비판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입론을 세웁니다. 그의 로크 비판은 일단 두 가지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실체의 개념에 대한 비판입니다. 로크는 모든 복합관념은 오성(정신)이 결합한 것이고 명목적인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 ‘실체’에 대해서만은 예외로 한다고 합니다. 즉 물질과 정신이라는 실체는 ‘예외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버클리는 이런 예외조항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둘째, ‘제1성질’에 관한 비판입니다. 로크는 대상의 성질이란 모두 인식주체가 경험한 것이요 주관적이라고 하면서, 오직 제1성질만은 예외로 둡니다. 그러나 버클리는 제1성질만 유독 물질 그 자체에 속하는 객관적 성질이라고 할 이..
유명론의 근대화 앞서 우리는 로크의 경험주의가 두 가지 지반 위에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표면상으로 그것은 근대철학과 과학주의였지만, 사실상은 근대철학과 유명론이었음을 보았습니다. 중세에 유명론은 보편 개념이 실재한다는 주장의 반론으로 제출되었고, 실재하는 것은 개별자라는 ‘존재론적’ 성격의 사상이었습니다(중세에 별도로 존재론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성격은 존재론이라고 나중에 불리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따옴표를 쳐 ‘존재론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보편자에 대한 개별자의 우위를 주장하는 ‘존재론’이었지요. 그것은 신학적 문제설정 속에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신학과는 화해하기 힘든 것이어서 끊임없이 신학과 충돌하고 억압받기도 했습니다. 반면 로크에 이르러 유명론은 근대적 문제설정에 포섭되게 됩니다. ..
로크의 딜레마 그런데 로크는 곧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데 하나는 실체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로 실체에 관한 것. 로크는 경험을 통해 우리의 감각은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로크가 환각이나 착각에 의한 경험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나’를 자극하는 요인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사물을 보고 ‘빨갛다’고 지각했다면, 나로 하여금 빨갛다고 생각케 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그게 없다면 나는 착각한 거거나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요. 물론 경험이나 관찰한 바가 잘못되어서 나중에 수정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게 원래 빨간 건지, 아니면 다른 건데 우리가 그렇게..
‘본유관념’ 없는 진리를 위하여 데카르트가 진리의 근거를 이성과 이성의 본유관념에서 찾았다는 것은 앞서 거듭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크가 보기에 이런 본유관념이란 중세적이고 스콜라철학적인 잔재였습니다. 로크가 지금 있다면 이런 식으로 예를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불을 찾아서」란 영화가 있지요. 불을 사용하던 원시인들이 불씨가 꺼지자 불을 찾아오라고 몇 사람의 대표를 보내고, 이들은 고생 끝에 불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원시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불을 물에 빠뜨려 꺼뜨리고 맙니다. 그런데 이때 주인공은 그걸 찾는 과정에서 배운 불피우는 법을 써서 불을 피우려고 하지요. 물론 잘 안 되어, 그걸 가르쳐준 여자가 대신 피워 주지요. 불을 피울 줄 몰랐던 원시인이라면 어디엔가 있는 불을 찾아 쓸 줄밖..
2. 로크 : 유명론과 근대철학 로크의 입지점 알다시피 로크는 경험주의를 하나의 사조로, 흐름으로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이러한 로크의 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지반이 있습니다. 하나는 데카르트가 새로운 장을 열었던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입니다. 신에게서 독립한 주체, 그래서 존재ㆍ인식ㆍ가치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던 근대적 주체가 로크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지반이 됩니다. 진리라는 인식의 목표 역시 마찬가지지요. 다른 한편 그는 갈릴레이, 뉴턴, 호이겐스 등이 이룩한 과학혁명의 획기적 효과 속에서 사고했습니다. 즉 근대 초의 과학혁명이 로크의 사상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제 과학은 진리에 이르는 가장 커다란 길, 어쩌면 암묵적으로는 유일한 길로 간주됩니다. 데카르트가 기초를 닦아놓은 ..
유명론과 경험주의 지금까지 우리는 중세철학에서 유명론과 실재론의 대립을 살펴보았습니다. 근대철학, 특히 경험주의를 다루는 자리에서 이토록 장황하게 중세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찌보면 뜬금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명론과 경험주의의 관계를 본다면 이런 장황함은 용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알다시피 유명론은 중세 전체를 지배한 실재론에 대한 반대로서 제기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데아와 유사한 보편자가 세계를 만들어내고 움직인다는 사고에 대한 반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데아와 같은 관념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관념론에 대한 비판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반대는 주로 개별적인 사물이나 현실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예컨대 하늘에 떠다니는 이데아나 관념에다가 사물을 꿰어..
윌리엄 오컴 반대로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이라는 사람은 당시의 유명론자로 가장 유명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보편 개념은 기호다. 이 기호에 상응하는 실재는 없다. 사물에 앞서가는 보편자는 신의 정신 속에도 없다. 예를 들어서 추상적인 ‘언제’ ‘어디’ 같은 것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구체적인 장소와 구체적인 시간만이 실재한다고 합니다. 관련된 사물들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을 떠난 ‘관계’라는 추상적인 존재란 없으며, 1, 2, 3 같은 숫자들은 실재하지만 일반적인 ‘수’라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결국 보편 개념은 이름일 뿐이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컴은 이런 논리가 기독교 교리에까지 적용된다면, 신학적 교의 자체가 붕괴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
토마스 아퀴나스 보편논쟁은 유명론자들을 억압함으로써 종식되었습니다. 실재론자가 승리한 것인데, 당시로선 당연한 결과인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 논쟁에서 제기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억압되고 은폐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논쟁이나 문제가 억압한다고 없어지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논쟁은 뒤에 가서 다시 나타납니다. 중세 후기에 유명론과 관련해 새로운 주장들이 다시 나타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오컴(William of Ockham)이 두 개의 대비되는 입장을 대표합니다. 유명론과 관계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은 ‘중용적 실재론’이라고도 불립니다. 반면 오컴은 유명론의 입장을 명확하게 했지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대한 번역 및 주석의 대가였던 알베르투스 마..
보편 논쟁 ‘보편논쟁’이라 불리는 논쟁을 통해서 유명론은 비로소 자기 이름을 얻게 됩니다. 이 논쟁은 짐작하다시피, 실재론자와 유명론자들이 싸운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실재론자들에 해당되는데, 신(보편자)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며, 개별자들은 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죽으면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라틴어로 universalis ante res, 즉 “보편이 앞선다”(“보편이 먼저다”)라고 말합니다. 에우리게나, 안셀무스, 기욤 드 샹포라는 사람이 대표적인 실재론자이지요. 안셀무스는 신의 본체론적인 증명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신은 ‘완전한 존재’다. 존재라는 속성이 없다면 그건 불완전한 것이다. 따라서 완전한 존재는 존재를 속성으로 가져야 한다. 그러..
스콜라철학의 탄생 이렇듯 보편 개념은 단지 이름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유명론이고, 보편 개념이 실재한다고 보는 것이 실재론입니다. 그 이견의 뿌리는 고대철학까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실재론적 입장은 플라톤 이래 주된 흐름이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가 실재하고, 인간의 지식이란 그 이데아 세계에 대한 기억이며, 따라서 진리란 그 ‘기억’을 되살려 이데아의 세계에 다시 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데아라는 보편 개념은 실재하는 것이며, 모든 보편 개념은 이데아의 세계에 근거하고 있기에 역시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지요. 이런 점에서 플라톤은 강력한 실재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반면 유명론은 이름에 걸맞는 입장이 분명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
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1. 유명론과 경험주의 실재론과 유명론 근대철학의 다음 장은 경험주의라고 불리는 철학적 흐름입니다. 이는 주로 영국에서 발달했고, 지금까지도 영국의 미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식주체의 경험이 지식의 연원이자 진리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철학사에서 이런 경험주의의 중요한 사상가로 꼽히는 사람은 아시다시피 베이컨과 로크, 버클리와 흠입니다. 그러나 경험의 중요성을 얘기한 것으로 경험주의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베이컨은 흔히 알고 있는 이 사상가들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러셀조차도 “베이컨은 자신이 과학에 대해 그토록 강조했으나 사실은 당시의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