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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더 읽을 것을 1. 『맹자』(홍인표, 서울대학교출판부, 1992) 『논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맹자』도 많은 번역본들이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그중 이 책이 가장 눈에 띕니다. 되도록 맹자의 사상을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원문과 번역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필요에 따라 상세한 주석과 해설이 실려 있어 많은 편의를 제공합니다. 이 번역서의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매우 높다는 데 있습니다. 2. 『맹자 평전』(양구오롱, 이영섭 옮김, 미다스북, 2002) 공자와 함께 유학 사상을 대표하는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체계화한 중요한 이론가이지요. 이 책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 속에서도 공자의 유학 사상을 지키려고 했던 유학자 맹자의 사상과 삶..
맹자, 후세에 영광을 얻다 유학 사상에서 맹자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최초로 유학 사상을 철학적인 체계로 무장시켰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최초의 유학 사상 이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만든 체계는 성선설(性善說)이라는 잘 알려진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덕적으로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이지요. 만약 그의 주장이 옳다면, 성인이 되려는 사람들은 모두 이 선한 본성을 확충하여 현실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유학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수양론적 전통이 확립됩니다. 사실 맹자 이전에 공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언급하기를 극도로 자제했습니다. 『논어』 「공야장」 편을 보면, 제자 자공이 다음과 같이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예의제도에 관한 선..
폭군은 당연히 죽여야 한다 극단적인 사례를 하나 생각해볼까요? 왕의 신분이지만 소체를 따라서 소인이 된 사람이 있고, 농민의 신분이지만 대체를 따라서 대인이 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지요. 이 경우 누가 통치를 담당해야 할까요? 그것은 당연히 후자일 것입니다. 정치를 담당하려면 소인이 아니라 반드시 대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맹자의 유명한 혁명론이 출현하게 된 배경입니다. 그의 혁명적인 생각을 확인해보도록 하지요.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물었다. “탕(湯)임금이 걸(桀)임금을 쫓아내고 무왕(武王)이 주(紂)임금을 정벌한 일이 있었습니까?” 齊宣王問曰: “湯放桀, 武王伐紂, 有諸?” 제선왕문왈: “탕방걸, 무왕벌주, 유저?”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 책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孟子對曰..
수양이 이루어진 사람만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 맹자의 유학 사상에서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성선설(性善說)을 구성했다는 데 있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사례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사단의 마음은 우리가 결코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그것은 나에게서 기원하는 것입니다. 결국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있는 셈입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사단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입니다. 맹자에 따르면, 우리가 선한 것은 바로 이 본성이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모두 이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이해한다면, 공자가 이야기했던 군자와 소인의 구별은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일까요?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 ..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성향과 인간의 본성 맹자와 고자 사이의 논쟁 한 가지를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자가 말했다. “본성은 소용돌이치는 물(水)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주면 동쪽으로 흘러가고, 서쪽으로 터주면 서쪽으로 흘러간다. 사람의 본성에 선(善)과 불선(不善)의 구분이 없는 것은 물에 동과 서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 告子曰: “性猶湍水也, 决諸東方則東流, 决諸西方則西流.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水之無分於東西也.” 고자왈: “성유단수야, 결저동방즉동류, 결저서방즉서로. 인성지무분어선불선야, 유수지무분어동서야.” 맹자가 대답했다. “물에 진정 동서의 구분은 없지만 위아래의 구분도 없겠는가?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하지 않음이 없고 물은 아래로 흘러가..
성선설을 지키기 위해 고자(告子)와 논쟁하다 맹자가 보기에 인간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선한 마음 또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보면 우리의 마음은 자연히 그를 동정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맹자에 따르면, 이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 선천적으로 선하기 때문이지요. 그 유명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공자의 유학 사상을 변호하려는 숭고한 소명을 부여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옹호했던 것은 자신이 체계화한 성선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볼 수 있지요. 『맹자』를 읽어보면 우리는 그의 성선설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어떤 사상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고자(告子)입니다. 물론..
측은지심이 골고루 흘러가게 해주면 된다 몇 가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맹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네 가지 마음 또는 감정을 우리의 본성에서 출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만약 네 가지 마음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라고까지 강하게 단정하고 있지요. 이어지는 구절을 살펴보면, 맹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네 가지 마음을 더 크게 확충할 것을 요구합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이다. (…) 자기에게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이는 모두 확충(擴充)할 줄을 안다.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물이 처음 솟아나듯이 ..
자신의 본성을 확충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맹자의 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개념입니다. 맹자는 공자의 유학 사상을 옹호하는 대변인 역할을 자청했던 사상가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맹자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맹자는 공자가 사유하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새롭게 사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선천적인 동정심, 즉 측은지심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공자의 유학 사상에는 공자가 인간의 선천적인 동정심에 대해 사유했다는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맹자는 이러한 동정심의 감정을 통해 유학 사상을 새롭게 부각시킵니다. 먼저 측은지심과 관련된 맹자의 유명한 논증을 꼼꼼하게 읽어보도록 하지요. 지금 누구든 어린아이가 막 우..
공자 사상을 지키려는 소명의식 어느 날 밤, 한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 묻습니다. “외부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께서 논쟁하기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논쟁하기를 좋아하십니까?” 그러자 스승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내가 어찌 논쟁하기를 좋아하겠는가! 나는 어찌할 수 없어서 논변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공자의 사상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인간들이 금수와 다름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자의 사상을 이론화했던 것이다.” 『맹자』 「등문공」 아마도 질문했던 제자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기 스승에 대한 험담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스승은 어디를 가든 어떤 사람을 만나는 화려한 언변과 논리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했습니다. 스승은 그것이 불가피한 일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합니다. 이어서 그..
2. 맹자(孟子) 측은지심의 발견으로 유학의 수양론을 만들다 길을 가다가 구걸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그들의 힘없는 손에 동전 몇 푼을 건네주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는 냉정하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생활력을 빼앗는 것이라고. 이런 냉정한 분석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우리의 마음 한켠에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동정심으로서의 측은지심이다. 공자를 계승한 맹자는 선천적인 동정심을 강조했던 유학자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윤리적 행동을 이러한 선천적 동정심을 기초로 해서 사유하려고 했다. 그의 성선설(性善說)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동정심, 즉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
더 읽을 것들 1. 『논어』(동양고전연구회, 지식산업사, 2005) 서점에는 『논어』에 대한 수많은 번역서가 꽂혀 있습니다.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좋을까요? 그중 동양고전연구회가 번역한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논어』에 대해 주희를 포함한 여러 권위 있는 주석가들의 의견들을 취사선택하여 깔끔하게 번역해놓았기 때문이지요. 이 번역서를 통해 독자들은 2500여 년 동안 유학자들이 『논어』를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배병삼, 사계절, 2005) 처음 『논어』를 읽는 독자들은 공자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나 당혹스러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독자들에게 이 책은 『논어』를 읽으면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 북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禮)와 인(仁)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공자는 2500여 년을 지나 지금까지 흐르고 있는 유학 사상이라는 도도한 물줄기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이 점에서 그는 최초의 진정한 유학자였고, 그 뒤로 등장할 모든 유학자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습니다. 공자의 유학 사상을 상징하는 핵심은 예와 인의 두 가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예라는 개념은 그가 중시했던 주나라의 통치 질서, 즉 주례에서부터 기원했습니다. 공자는 주례의 보편성을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보면, 꿈속에서 주례를 완성했다고 전해지는 주공(周公)을 못 보았다고 공자가 한탄했던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요. 그만큼 그는 주례의 가치를 매우 신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에 머물렀다면 단순한 복고주의자에 그쳤을 것입니..
인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 여기서 공자는 인이라는 이념과 삶이라는 현실 사이를 날카롭게 구분하는 이분법을 제안하게 됩니다. 지금 유명한 고사성어가 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배경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지요. 공자가 말했다. “뜻있는 선비와 인한 사람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인을 해치지 않으니, 자신을 죽여서라도 인을 이룬다.” - 『논어』 「위령공」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공자의 논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을 인이라는 이념에 부합하게 영위한다면, 우리 삶은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자신의 삶을 버려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던 유학자 정신의 원형이 생겨납니다. 평상시 유학자들..
공자에 이르러 바뀐 군자의 의미 공자는 확신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사사로운 마음을 이겨서 예를 회복할 수 있다[克己復禮]’면, 그래서 인자가 되어 정치를 담당할 수만 있다면 사회의 모든 혼란과 갈등이 눈 녹듯이 소멸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그는 안연이나 자공 등의 제자들을 그렇게 키우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도 실제 정치에는 크게 개입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어느 군주도 그들을 등용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군자(君子)라는 용어와 관련된 매우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전에 군자라는 표현은 통치자 또는 지배층을 가리키는 용어였습니다. 그런데 공자에게서 군자라는 말은, 현실 정치에..
인자(仁者)의 이상과 인자가 되는 방법: 서(恕) 대개의 경우, 공자는 제자들에게 통치자를 도와 관료가 될 수 있는 근본적인 공부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자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안연이라는 수제자입니다. 그는 공자가 아끼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안연은 통치자나 관료의 신분은 아니지만, 언젠가 공자를 도와 정치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던 제자였습니다. 공자는 안연에게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가르침을 전해주었지만, 사실 가장 유명한 것은 ‘서(恕)’라는 방법입니다. 공자는 제자 자공(子)에게 서야말로 어질게 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강조합니다. 자공(子貢)이 물었다.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한 가지 말씀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서(恕)이다! 자신이..
인자(仁者)의 이상과 인자가 되는 방법: 극기복례(克己復禮)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부하를 사랑한 어느 장군의 경우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그런 군대가 얼마나 강할지 생각해보세요. 그의 부하들이 자발적으로 지도자를 위해 목숨을 던지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공자가 생각했던 예, 그리고 예를 실현하는 사회가 달성되기만 한다면 그 사회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회일 것입니다. 그 누가 이러한 사회를 넘보겠습니까? 장군은 자신의 부하들을 힘으로 제압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명령을 듣지 않는 부하를 일벌백계함으로써 전체 군대의 질서를 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으로는 전체 군대를 마치 자신의 수족처럼 통솔할 수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지도자로서의 장군은 자신의 사적인 감정과 판단을 넘어설 필요가 있..
군자는 바람, 소인은 풀과 같다 이미 여러분은 눈치 챘겠지만, 공자의 유학 사상은 기본적으로 통치자 계층이나 정치에 참여하려는 지식인 계층에게 보다 더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먼저 예를 지키면 아랫사람은 자연스럽게 복종하게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이지요. 일종의 엘리트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공자의 낙관적 견해는 그가 계강자(季康子)라는 정치가에게 해주었던 말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만약 무도한 사람을 죽여서 백성들로 하여금 도를 지키는 방향으로 가게 한다면 어떻겠소?” 공자가 대답했다. “당신은 정치를 하겠다면서 어찌 살인을 하려고 합니까? 당신이 선을 원하면 백성들도 선하게 됩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습..
군자와 소인의 조화로운 정치질서 여러분은 앞에서 소개한 『춘추좌전』의 한 구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군자들은 능력 있는 사람을 숭상하여 아랫사람에게 양보하고, 소인들은 농사일에 열중하여 윗사람을 섬겼다[君子尙能而讓其下, 小人農力以事其上].”고 했던 말을요. 여기서 군자는 당시의 통치계층을 가리키며, 소인은 그렇지 않은 일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군자의 역할은 능력 있는 사람들을 숭상해야 하는 것이고, 소인의 역할은 농사일에 열중하여 윗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군자는 훌륭한 인재들을 등용하여 자신의 관료로 채용해야 하고, 소인은 농사라는 직접적인 경제활동에 힘써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군자와 소인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공자의 말대로라면 군..
유학사상의 창시자로 마침내 BC 502년, 공산불뇨(公山弗擾)라는 사람이 노나라 실권자인 계손씨에게 반기를 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때 공산불뇨는 공자를 초빙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공산불뇨의 반란 행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반란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평생 지켜왔던 예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였기 때문이지요. 공자는 예를 다시 회복하겠다는 일념으로 많은 제자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번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뜻이 좌절될 때마다. 그가 돌아보았던 것은 바로 그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와 지금까지 함께 고생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면서 공자는 인간적으로 몹시 미안했겠지요. 우리는..
좌절한 정치가 공자(孔子, BC 551 ~BC 479)의 고민은 매우 컸습니다. 자신을 믿고 하나 둘씩 몰려드는 제자의 수는 늘어만 가는데, 이들의 잠재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뾰족한 방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의 제자들은 공자가 국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전통적 가르침, 다시 말해 주나라의 예(禮)인 주례(周禮)에 정통했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습니다. 공자 당시 예라는 것은 간단한 예의나 예절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기록되어 있는 양공(襄公) 13년 때의 다음 이야기는 공자가 왜 주례를 혼란한 정치 상황을 종식시킬 수 있는 원리라고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군자들은 능력 있는 사람을 숭상하여 아랫사람에게 양보하고, 소인들은 농사일에 열중하여 윗사람을 ..
1. 공자(孔子) 인의 이념과 예의 실천 공자는 2500여 년을 도도하게 흘러온 유학 사상이라는 강물의 원천이다. 물론 유학 사상의 장구한 흐름에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이야기들이 녹아들어 있다. 한때 불교가 수입되면서 유학의 흐름이 끊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유학 사상은 장애물을 우회하고 흐르는 강물처럼 지혜롭게 흘러가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유학 사상은 20세기에 들어서서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과학 기술로 무장한 서양문명의 도래로 유학 사상은 너무도 낡은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유학 사상은 이 장벽마저도 뛰어넘어 미래로 흐르면서 재도약하고 있다. 과연 유학 사상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