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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고고학 이처럼 경계를 허묾으로써 푸코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배제된 타자에게 다시 ‘동일자’의 자리를 주고 복권시키려는 것일까요? 병원에 수용당하길 거부한 광인이나 차별에 고개 숙이길 거부한 흑인, 혹은 규율에 따르길 거부한 범죄자를 새로운 정상인의 모델로 승화시키려는 것일까요? 물론 그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동일자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영역, 비정상과 동일시되던 ‘외부’여서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간주하던 영역을 다시 사고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동일자를 새로이 사고할 수 있으리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계를 허물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존에 정상적이라고 간주되던 것이 얼마나 일관되지 ..
‘침묵의 소리’ 푸코의 사상 전반을 특징짓는 가장 커다란 기획은 정상과 비정상, 동일자와 타자, 내부와 외부 사이에 만들어진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예컨대 과학이라고 간주된 것과 비과학이라고 비난받는 것 사이의 경계, 정상인과 ‘아직’ 정상인이 아닌 자들 사이를 가르는 경계, 이성과 비이성을 가르는 경계, 혹은 이성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정신이 ‘나간’, 정신이 ‘들어온’이란 말을 생각해 보세요)가 그것입니다. 한마디로 내부이자 정상과 동일시될 수 있는 동일자 와 거기에 동일시될 수 없기에 배제되어야 할 타자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푸코는 허물려고 하는 것입니다(여기서 ‘타자’란 말은 라캉이 쓰는 것과는 정반대의 뜻입니다. 라캉에게 그것은 기존의 질서를 집약하고 있는 자아 외부의 구조로서, 푸코의..
5. 푸코 : ‘경계허물기’의 철학 세 명의 푸코 푸코는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대부 중 한사람으로 간주됩니다. 혹은 적어도 근대적 합리주의에 반대한 반합리주의자, 계몽적 이성의 독재에 항의한 반계몽주의자로 간주됩니다. 이런 사정은 우리의 경우에 더욱 단순화되고 있지만, 서구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해 ‘구조주의자’라고 평하는 것 만큼이나 ‘포스트모더니스트’란 평가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정은 그의 친한 친구였던 들뢰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들뢰즈의 경우에는 포스트모더니스트란 평가에 대해서 매우 적대걱 입장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입장 가운데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알튀세르 철학의 모순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은 ‘기능주의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의 이론은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가 개개인을 호명함으로써 항상 이미 존재하는 기존 질서 속에 포섭하고, 거기서 요구되는 역할을 자신의 일로 ‘인정’ ‘오인’하고 수행한다는 결과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란 개념은 기존의 지배적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고 기능하는가 하는 메커니즘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며, 이 질서의 변화와 전복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전혀 설명할 수 없다는 비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만으로는 이러한 비판을 반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는 아마도 이데올로기를 ‘재생산’이란 관점에서 정의하고 개념화하려는 문제설정에서 근본적으로 연유하는 것 같습니다. 즉 이데올..
이데올로기의 중요 명제들 이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중요한 명제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이데올로기 ― 이것은 ‘이데올로기 일반’을 뜻합니다 ― 는 역사가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데올로기는 영원하다는 뜻으로, 어떤 사회에도 이데올로기는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에 비유합니다. 물론 개개의 이데올로기들이야 역사를 갖겠지만 말입니다. 둘째, “이데올로기는 현실적 존재 조건에 대한 상상적 관계의 표상”이라고 합니다. 즉 이데올로기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나 현실관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럴 것이다’라고 당연시되어 있는 방향으로 변형된 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가 아니란 뜻에서 이러한 ‘비현실적’ 관계를 마치 ‘있는 ..
이데올로기를 위한 변명 알튀세르의 기획이 갖고 있는 이러한 모순적 요소 가운데 결국 그가 선택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애초에 그의 기획 가운데 중심의 자리에 있던 것은 전자, 즉 과학으로서 맑스주의를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1968년의 5월 혁명을 거치면서 그는 중심을 이데올로기론으로 옮기며, 전자에 기울었던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자기비판’을 합니다. 첫째로 그는 자신이 진리 허위에 대한 이성주의적 이분법에 빠져 있었다고 비판합니다. 즉 과학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진리요, 이데올로기는 그렇지 못하기에 거짓이요 허위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허위의식으로 정의하는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테제를 비판했으나, 그리하여 이데올로기 자체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실재요 ..
이데올로기와 ‘표상체계’ 둘째로, 과학으로서 맑스주의를 정립하려는 기획과 동시에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발전을 기획합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의 무의식적 표상체계’로서 정의하는 것입니다. ‘표상’은 representation을 번역한 말인데, 알다시피 represent는 ‘표상하다’는 뜻말고도 ‘재현하다’ ‘대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상한다는 말은 ‘눈앞에 떠올린다’는 뜻인데, 예컨대 ‘자동차’란 말을 듣고 그에 상응하는 물건을 떠올리는 경우나, 역으로 어떤 물체를 보고 ‘컴퓨터’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는 단어를 통해 사물을 눈앞에 재현하거나, 사물을 보고 그에 상응하는 단어를 머릿속에 재현하는 것이지요. 그럼 표상체계란 무엇일까요? 예컨대 ..
맑스를 위하여 이런 관점에서 알튀세르는 “맑스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제창합니다. 물론 맑스주의자들은 누구나 맑스에 의거하고 있으니 상당히 의아한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여기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맑스는 성숙한 시기의 맑스요, 『자본』이란 책으로 집약된 맑스입니다.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절정에 이른 청년 맑스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손 안에 있는 맑스고,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맑스란 겁니다. 과학자 맑스, 과학으로서의 맑스주의는 1845년 『독일 이데올로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그들과의 ‘단절’ 이후의 맑스와 맑스주의입니다. 이를 위해서 알튀세르는 그의 스승이었던 과학철학자 바슐라르(G. Bachelard)의 ‘인식론적 단절’이란 개념을 빌려옵니다. 그에 따르면, 어떠한 과학..
과학을 위하여 첫째로 그는 맑스주의 역사유물론을 ‘과학’으로 정립하고자 합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과학과 부르주아 과학이라는 이분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1940~50년대 소련의 문화 전반에 대한 즈다노프(A. Zhdanov)의 독재와 과학 전반에 대한 리센코(T. D. Lysenko)의 독재는 한마디로 부르주아 진영과 프롤레타리아 진영이란 두 개의 진영이 문화나 과학에도 존재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리센코의 주도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생물체의 형질은 닮는다는 이론이 소련 생물학계를 지배하자,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구성된 프롤레타리아적 생물학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즈다노프의 권력을 통해, 아니 궁극적으로는 스탈린의 권력을 통해, 유전을 주장한 멘델학파를 부르주아 생물학자로 몰아 축출..
4. 알튀세르 : 맑스주의와 ‘구조주의’ 알튀세르의 사상은 모순적인 요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사고의 영역을 과감하게 넘나들며 극한적으로 사고하려 했던 그 자신의 철학적 삶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모순적 요소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사상가의 궤적을, 여기서 충분히 쫓아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초기의 기획 자체부터 내재해 있었으며, 이후 초기의 입장을 전환시키는 계기로 작용하는, 따라서 후기의 사상에 기초를 놓는 요소 정도를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튀세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가는 구조주의와 맑스주의를 접합시키려고 했던 사람이란 것입니다. 사실 알튀세르의 초기 이론에는 스스로 ‘구조주의와의 불장난’이라고 불렀던 요소들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며, 이후 이데..
야누스 라캉 : 구조주의 혹은 포스트구조주의 라캉의 이론은 레비-스트로스가 그렇듯이 주체나 인간이란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습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이 주체의 통일성이나 중심성을 해체하는 효과에 대해선 앞에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라캉은 이런 해체 효과를 아주 멀리까지 밀고 갑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왕비는 자신의 ‘자아의 이상’을 획득하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고 상상적으로 동일시하는 과정을 통해, 사실은 타자가 지정한 자리를 받아들입니다. 즉 ‘내 자리’는 내가 아니라 타자가 지정하는 것이란 얘깁니다. 따라서 자아의 중심성은 거꾸로 타자의 중심성으로 전환됩니다. 그래서 그는 데카르트를 겨냥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생각하지 않는 ..
진리의 배달부, 그리고 주체화 앞서 타자는 편지를 통해 나의 위치를 지정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좋으나 싫으나 이미 지정된 ‘내 자리’인데, 이걸 굳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즉 왕비가 도둑질하는 장관을 그 자리에서 제지하고 질책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그런 편지가 왕비에게 없으리라는 왕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됨을 뜻합니다. 즉 왕비로서 인정받아야 할 중요한 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맙니다. 따라서 이런 불행한 사태를 바라지 않는다면, 왕비는 편지로 인해 지정된 자리를 자기 자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왕으로부터 ‘훌륭한 왕비’로서 계속 인정받고자 한다면, letter가 지정하는 자리를 자기 내부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행동할..
타자의 욕망 : 도둑 맞은 편지 이상의 이야기를 포의 소설 『도둑 맞은 편지』를 통해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라캉의 저작집이자 활동의 ‘기록’(écrit)인 『에크리』Écris는 바로 이 소설에 대한 세미나로 시작하지요. 아시다시피 그 소설의 주 스토리는 왕비가 왕이 있는 자리에서 왕이 봐선 안 될 중요한 편지를 장관에게 도둑맞음으로써 시작하지요. 경시청장이 탐정 뒤팽에게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왕비가 편지를 읽고 있을 때 왕이 갑자기 들어오고, 왕비는 약간 당황하지만 그걸 책상 위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서처럼 그냥 펼쳐두지요. 물론 왕은 그 편지를 못 봅니다. 그리고 그 방에 들어왔던 눈치 빠른 장관은 비슷한 문서를 하나 책상에 펼쳐두고 설명하는 체 하다가 그걸 두고 대신 왕비의 편지를 가져가지요. 그..
무의식에 담긴 타자의 욕망 다음으로 라캉은 무의식은 타자의 욕망(desire)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몇 가지 다른 개념을 함께 알아야 합니다. 그는 욕망을 욕구(need), 요구(demand)와 구별합니다. 욕구는 식욕, 성욕처럼 가장 일차적인 충동입니다. 만족을 추구하여, 그걸 충족시켜 줄 대상을 찾고자하는 충동이죠. 이는 다른 사람에게 만족시켜 달라는 ‘요구’로, 대개는 ‘사랑의 요구’로 나타납니다. 거칠게 말하면 요구는 욕구를 표현한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요구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으로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욕구가 그대로 표현될 수는 없습니다. 즉 어머니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지요. 한마디로 말해 요구는 사회적 질서..
타자의 담론, 무의식의 담론 다른 한편 라캉이 무의식을 파악하는 데서 전통적 개념과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소쉬르 등의 구조언어학의 개념들과 이론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조차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이 그대로 배어 있는 것입니다만, 그 개념들을 사용함으로써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나 기존 프로이트주의자들의 정신분석학과는 전혀 다른 새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명제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증이든, 실수든, 농담이든, 꿈이든 대개 어떤 무의식이 드러난 것으로 간주합니다. 즉 그런 현상들은 무의식의 ‘징후’라고 하지요. 언어학 용어를 쓰면 개개의 징후란 무의식상의 어떤 의미를 표시하는 기표(S)를 뜻합니다. 무의식은 기의(s)인..
정신분석학의 대상 라캉은 직업적인 철학자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미국식 정신분석학에 커다란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식 정신분석학은 일종의 자아심리학적인 경향이 있는데, 그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자아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론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즉 정신분석학을 구순기, 항문기, 성기기 등을 거쳐 하나의 표준적인 자아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 대한 일종의 임상심리학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라캉은 이것을 한편에선 생물학주의에 의해, 다른 한편에선 행태주의에 의해 프로이트 이론의 고유한 정신이 훼손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나름의 비판적 입지점을 설정한 라캉은 프로이트 이론에서 생물학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나아가 프로이트 이론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새로이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
레비-스트로스의 귀향 다른 한편, 과학에 대한 그의 태도 역시 이원적입니다. 원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배어 있는 그의 작업은 ‘야성적 사고’를 통해 주술과 과학의 대립을 깨려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서구적 관점에서 토템이나 주술을 과학의 이름을 빌려 매도하려는 시도를 정열적으로 반박합니다. 그의 입장은 서구적인 과학적 사고보다는 차라리 야성적 사고에 기울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야성적 사고를 보편적 사고로 위치 지으려는 그의 태도에서도 드러납니다. 이와 관련해 데리다는 그의 입장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일종의 루소주의적 향수를 읽어내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에게서 반서구적이고 반과학적인 경향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지나친 평가는 아닐 겁니다. ▲ 아메리고 베스푸치..
성공과 실패 요약합시다. 레비-스트로스는 앞서 본 것처럼 ‘인간의 해체’ ‘주체의 해체’가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즉 데카르트나 칸트처럼 주체나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거나 그것을 철학적으로 규정하려는 근대적 노력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이후 ‘반인간주의’나 ‘반주체철학’이 자리잡을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준 셈입니다. 사르트르와의 논쟁을 통해 역사주의와 반대되는 과학으로서 구조주의를 정립한 것 역시 이후 반역사주의적 경향의 모태가 됩니다. 한편 레비-스트로스는 “중요한 것은 인간을 구성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해체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근대적인 인간개념을 해체하려고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에게 공통된 보편적인 요소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알다시피 그는 ..
사고구조의 보편적 질서 다음으로 그는 자연과 사회, 자연과 문화, 인간을 관통하는 선험적 무의식을 통해 보편적인 사고질서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즉 그가 말하는 근친상간 금지는 보편적인 사고의 무의식적 기초요, 보편적인 사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와 자연, 그리고 정신의 동형성(同形性)을 기초짓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원주민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유방식입니다. 흔히 마술적, 주술적이라 불리는 이 사고방식은 자연을 기초로 전개되는데, 레비-스트로스는 이것을 ‘야성적 사고’(la pensée sauvage, savage mind)라고 합니다. 이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ㆍ지속적으로 자연을 관찰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러한 야성적 사고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에..
친족관계의 보편적 질서 그러면 그가 경험적 연구를 통해 도달한 곳은 어딜까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무의식적 기초는 무엇일까요? 그가 도달한 곳은 한마디로 ‘근친상간 금지’(incest taboo)라는 규칙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자연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주목합니다. 인간이란 생물학적 존재면서 동시에 사회적 존재지요. 그런데 그는 인간이 편입된 곳이 자연인지 사회인지, 자연인지 문화인지를 구별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합니다. 즉 자연이 끝나고 문화가 시작되는 곳이 어디냐는 거죠. 그것은 또한 동물과 달리 어떤 규칙이나 질서가 안정성과 지속성을 갖도록 해주는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입니다. 『친족관계의 기본구조」의 첫 번째 장은 바로 이 ‘자연과 문화’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규칙..
2.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 구조언어학에서 구조주의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란 이름과 가장 긴밀히 결부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망명지 미국에서 구조언어학자인 야콥슨과 함께 지냈는데, 거기서 구조언어학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습니다. 이후 그가 개척한 ‘구조주의’라는 흐름과 연구방법은 이때 야콥슨을 통해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구조인류학』이란 책에서 『음운학 원론』으로 유명한 트루베츠코이를 언급하면서 자기의 연구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째, “음운론은 의식적인 언어현상의 연구로부터 무의식적인 하부구조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음운을 구별하는 것은 의식적인 게 아니라 무의식적인 거고, 따라서 음운론의 연구대상은 의식적 현상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하부구조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6부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 근대 너머의 철학을 위하여 1. 구조주의와 철학 현대철학에는 다양한 흐름이 있고, 이 흐름은 이제까지 얘기해온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만, 이 자리는 어차피 한정된 것이기에, 그걸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구조주의자, 혹은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사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만을 간략히 다루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현대철학을 대변하는 것이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옳은 말입니다. 현상학이나 하이데거, 거기서 이어지는 해석학적 흐름, 혹은 좀 다른 방향으로 현상학을 발전시킨 실존주의, 그리고 영미권의 철학도 나름의 분명한 전통을 형성하고 있는 게 사실이며, 독일에서는 비판이론이라 ..
근대철학과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구조언어학의 그것과 몇 가지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 기호의 의미를 용법으로 정의하는 것도 그렇고, 실천이란 개념을 통해 언어의 문제를 사고하는 것도, 생활형태 속에서 언어활동을 이해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특히 둘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는 구조언어학과 달리 항상-이미 정해진 의미구조, 완결된 체계를 이루는 의미구조 같은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어떤 언어든지 나름의 규칙에 따라 사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에게는 그 규칙 자체가 소쉬르가 생각했던 랑그처럼 하나의 단일한 체계로서 항상-이미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언어적 실천에 의해 가변하는 (게임의) 규칙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랑그’는 불변적인 실..
언어게임과 ‘인식론’ 여기서 실천이란 어떤 것이든 특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규칙이 관습적인 것이든, 도덕적인 것이든, 아니면 단지 언어적인 것이든 간에 말입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 역시 이런 규칙에 따른 것입니다. 물건을 사는 데 사용되는 언어사용 규칙이 있을 것이고, 그런 행동을 훔치는 행동과 구별해 주는 행동 규칙이 있을 것입니다. 이 규칙은 모두 사회적인 성격을 가질 겁니다. 이 규칙은 미국이면 미국, 한국이면 한국마다 고유한 ‘생활방식’(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을 빌면 ‘생활형태’)을 보여줍니다. 어떤 규칙도 이런 생활방식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화되는 것이며, 또한 반대로 바로 이 규칙들이 모여 특정한 생활방식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사람들이 ..
실천을 통한 언어학습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크게 두 가지의 시기로 나누어집니다. 초기의 사상은 『논리철학논고」라는 책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성전처럼 떠받드는 고전이 되는 책이지요. 한편 후기의 사상은 사후에 출판된 『철학적 탐구』라는 책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초기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론과 생각들을 해체하고 부정하며 전혀 다른 입장으로 선회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이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사상은 반영론과 비슷합니다. ‘그림이론’이라고도 하는데, 단어는 사물의 ‘이름’이고, 문장은 어떤 상황에 대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명제들은 물질이 원자로 나누어지듯이, 요소명제로 나누어지며, 이 요소명제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할 수 있다고 하지..
4. 비트겐슈타인 : 언어게임과 언어적 실천 구조언어학의 난점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은 언어와 인간에 대한, 그리고 구조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즉 새로운 사고영역을 개척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또 언어학으로서 설명해야 할, 그러나 구조주의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언어와 대상(지시체) 사이에 어떤 실제적 연관을 상정하는 실증주의적 입장과 비교해 구조언어학의 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컨대 논리실증주의와 유사한 언어관을 가지고 있던 러셀은, 만약 치즈에 대한 비언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떤 사람도 ‘치즈’라는 낱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시체 즉 대상과 기호 사이의 관계는 자의적이며, 기호는 서로 긴밀하게 엮인 하나의 체..
구조언어학의 기착지 소쉬르의 언어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흔히 ‘프라하학파’라고 불리는 언어학자들입니다. 야콥슨(R. Jakobson)과 트루베츠코이(N. Troubetzkoy)를 필두로 하는 이들의 이론은 대개 ‘구조주의 언어학’이라고 불립니다. 특히 야콥슨은 2차 대전으로 인해 미국에 망명해 있던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학교에서 지내면서, 레비-스트로스에게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바로 레비-스트로스를 통해 이제 구조주의 언어학의 방법론과 사고방식은 언어학을 넘어 인문-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로 흘러들어 갑니다. 여기서는 일단 우리 주제와 관련해 야콥슨의 이론적 입장을 최대한 간략히 살펴보고, 그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첫째, 기호의 구조를 인..
소쉬르 ‘혁명’의 효과 소쉬르의 언어학은 종종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 비유됩니다. 다만 소쉬르 자신이 그런 혁명’임을 주장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칸트와 달랐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어학자의 이런 주장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철학적 혁명에 비유되었던 것일까요? 다시 말해 소쉬르가 언어학에 새로 제기한 명제들은 대체 어떤 의미와 효과를 갖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요약합시다. 첫째,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개개의 주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랑그는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속된 규칙의 체계입니다. 개인들이 말을 하기 위해선 그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 규칙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의미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명제② 셋째, 공시성(synchrony)과 통시성(diachrony)에 관련된 것입니다. 예컨대 주어는 동사와 함께 쓰이며, 타동사는 목적어를 갖습니다. 이런 경우 주어는 동사와, 타동사는 목적어와 ‘공시적’이라고 합니다. 공시성이란 이처럼 어떤 기호를 사용하는 데 동시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말합니다. 반면 통시성이란 것은 예컨대 ‘셔’이란 말이 역사적으로 ‘서울’이란 말이 되기까지 겪은 역사적 변화를 가리킵니다. 흔히 역사성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한 말이죠.. 따라서 그가 보기에 언어학에는 공시언어학과 통시언어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통시언어학은 언어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고, 공시언어학은 언어의 규칙과 체계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소쉬르는 이 둘 중에서 언어학의 ..
3. 소쉬르의 언어학적 ‘혁명’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명제 언어나 기호가 갖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그것이 어떤 사물이나 기호 사용자의 의도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기호를 통해서 어떤 사물을 지시하거나 어떤 의도를 표현한다는 거지요. 예컨대 ‘송아지’라는 기호는 실제 송아지의 ‘이름’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먹는다’는 말은 먹는 행위를 가리키고, 그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먹는 것과 관계된 어떤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하지요. 여기서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예를 들면 실제 송아지)을 흔히 ‘지시체’(referent)라고 합니다. 기호나 언어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생각은 ‘송아지’라는 기호와 실제 송아지(지시체) 간에 상응, 일치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호는 지시체를 반영한다는 거지요. 이러한..
문법의 논리학, 논리학의 문법 지금까지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말했는데, 이것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재미있는,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가 언어에 의해, 언어적 규칙에 의해 제약된다는 것을 보았지요? 언어적 규칙을 대략 ‘문법’이란 말로 대표해서 씁시다. 그러면 문법적 규칙이 달라지면 사고 규칙도, 사고 내용도 달라진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점을 잊고 데카르트처럼 문법적 규칙에 불과한 것을 자명하고 확실한 진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법의 환상에 빠져버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논리학에 대해서도 이제는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느 경우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사고의 법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논리학 역시 문법..
선험적 주체의 언어학② 마지막으로 다섯째, 그는 “주체(subject)의 활동은 사유 속에서 대상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나아가 “이 사유는 언어를 통해서 행해지기 때문에 결국 대상이란 언어를 통해서만 형성된다”는 것을 추가합니다. 일례로 치즈의 종류를 들어 봅시다. 요리를 즐기는 프랑스에서는 치즈의 종류가 700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용도와 맛, 만드는 방법 등에 따라 극도로 자세한 치즈의 이름이 다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아마 치즈의 맛을 즐기는 그들의 생활에서 기인한 거겠지요. 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일반 치즈와 피자용 치즈 등이 전부고, 더 나아간다 해도 해태치즈, 매일치즈 등과 같은 고유명사 이상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그 700가지 치즈를 맛보고 이름을 배운다 해도 실제로 치즈 맛..
2. 훔볼트 : 언어학적 칸트주의 선험적 주체의 언어학 언어학과 철학이, 언어와 사고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에 대한 이론을 가장 먼저 체계화한 사람은 훔볼트입니다. 외교관이었던 그는 언어에 대한 관심에 덧붙여 직업적인 이유로 다수의 외국어를 비교 연구할 수 있었고, 그걸 통해 민족마다 고유한 사고방식이 각각의 언어에 새겨져 있으며, 그것이 개인들의 사고를 제약한다는 사실에 일찍 주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이론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언어는 통일적인 유기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단어는 다른 단어를 전제로 하며, 또한 단어를 결합시켜 문장을 만드는 규칙 전체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까 말했던 ‘삶’이란 단어를 생각해 봅시다. 러..
언어 연구의 이유 다른 한편 언어가 내장하고 있는 이런 특징은, 각각의 언어마다 상이합니다. 다시 말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할 수 있는 것도 달라지고, ‘확실한 것’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번역을 할 때 뚜렷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의사 지바고」로 유명한 파스테르나크의 작품 가운데 My sister life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말로 직역하면 나의 누이인 생이 되고, 약간 멋을 부려 번역하면 ‘삶이여, 나의 누이여’가 됩니다. 그런데 이 시집을 체코어로 번역을 하려 하자마자 문제가 생깁니다. 러시아어에서 life의 성은 여성입니다. 그러니 ‘My sister’와 동격이 될 수 있었죠. 그러나 체코어에서는 life가 남성명사랍니다. 그러니 My siste와 동격이 되는 건 문법상..
제5부 언어학과 철학 ‘혁명’ : 근대와 탈근대 사이 1. 언어학과 철학 언어라는 주체 서구의 현대철학은 언어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나 라캉 등을 위시한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들은 물론, 비트겐슈타인이나 러셀, 프레게(G. Frege), 오스틴(J. Austin) 등 분석철학으로 묶이는, 하지만 다소 이질적임은 분명한 다수의 철학자들도 그렇고, 하이데거와 그의 사상에 의존하는 해석학도 언어에 대한 분석과 사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철학에 대한 강의에서 언어학을 언급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정적 동조’만으로 충분히 정당화할 만큼 철학은 너그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명하다고 생각한 것조차 결코 그대로 놔두는 법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