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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할아버지부터 모조리 다른 두 개의 족보 우리 한국인들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족보학에 관심이 많은 민족이다. 민간 레벨에서 우리나라처럼 모든 집안마다 장구한 족보를 간직하고 있는 문명은 이 지구상에서 유례가 별로 없다. 그런데 족보는 본시 부계혈통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 처녀잉태 사실은 바로 부계의 혈통을 단절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요셉의 아들이 아니다. 그런데 족보는 요셉의 족보다. 참으로 이런 넌센스가 어디 있는가? 한국인들처럼 족보에 민감한 사람들이 성서를 읽을 때는 이러한 명백한 불일치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에 바로 마태ㆍ누가의 고민이 있다. 예수의 출생을 범용한 인간의 출생과는 다른 것으로 그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예수를 그..
예수의 부계족보와 부계가 부정된 동정녀탄생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는 태초로부터 존재했던 말씀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예수는 처녀 마리아의 자궁에서 비로소 태어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는 시간의 생성과 더불어 이 세계로 진입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의 어느 시점에서 탄생될 수 있는 그런 존재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서에는 처녀마리아 탄생 설화나 유년설화와 같은 일체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다 빠져버린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필요도 없고, 또 받아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예수의 신적 권위는 세례 요한의 세례로써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로고스라는 존재성의 권위로써 확보된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처녀 마리아의 성령잉태를 보다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
마리아 컬트 마리아는 성서에 즉해서 말한다면 가톨릭성당 입구에 서있는 성모 마리아상이나 중세기 성화에 그려져 있는 순결한 처녀의 모습이 될 수는 없다. 최근 KBS 드라마 『서울 1945』 속에 나오는 고두심분(份)의 ‘엄마상’ 정도의 모습이야말로 마리아의 참모습이었을 것이다. 여러 남매들을 거느리고 참혹한 고난의 세월을 견디어 가면서도 소리없이 끈질기게, 그리고 한없는 사랑과 인자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평범하고 주름진 노경의 여자였을 것이다. AD 2ㆍ3세기에만 해도 초대교회에 마리아 컬트(Maria Cult)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의 모습의 담지자(테오토코스, Theotokos)로서의 처녀 마리아의 숭배는 기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공인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기독교도가 되면 갑자기 많은 이권과 특..
왜곡된 순결한 처녀 이미지 그리고 야고보는 예수의 사후 예루살렘교회의 리더가 되었던 사람이다. 얼굴이나 인상착의가 예수와 매우 흡사했고 인격적으로도 매우 원만하고 통솔력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를 말하는 어떤 학자들은 예수가 죽은 후 제자들에게 다시 모습을 보인 그 부활한 예수는, 예수와 똑같이 생긴 야고보가 예수의 사후 교단을 수습하기 위하여 위로방문하러 다닌 스토리들이 와전된 것이라고 말한다. 예루살렘교단은 그렇게 해서 야고보에 의해서 성립했던 것이다. 헤롯왕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자기가 목을 벤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믿고 호들갑을 떨었다(막 6:16, 눅 19:7~9, 마 14:1~2), 예수를 사모하던 사람들이, 그에 대한 애정이 사무치던 사람들..
콘텍스트에서 텍스트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비록 신학계의 상식적 담론을 반복함에 불과할지라도, 거룩한 독자들은 마치 내가 성서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오인할 수가 있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서 저자의 전달방식을 믿는 것이 아니다. 복음이라는 케리그마(kerygma, κῆρυγμα)는 예수님의 말씀 그 자체 속에 있는 것이지 그 말씀을 드러내기 위한 드라마적 장치나 내러티브적 콘텍스트(context, 문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콘텍스트가 아닌 텍스트 그 자체로 진입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예수의 자기이해에 있어서, 예수님 스스로 ‘나는 순결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처녀는 젊은 부인 이사야는 유다왕국의 네 임금, 웃시야, 요담, 아하즈, 히스기야를 섬긴 유대민족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다. 상기의 예언은 이사야가 아하즈왕의 이러한 앗시리아 충성주의를 비판하면서 아하즈왕에게 하나님의 징표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는 장면이다. 이때 ‘처녀’는 성교를 경험하지 않은 처녀가 아니고, 바로 아하즈왕이 새로 맞이한 젊은 부인을 가리킨다. 아하즈왕의 새 부인이 곧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아들의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이라 하리라고 한 것은 딴 뜻이 아니라 네 아들은 너와 같이 앗시리아 이교숭배를 하는 그런 못된 짓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항상 하나님을 공경하는 절대신앙의 인..
동정녀 마리아 탄생설화와 그릇된 인용 재미난 것은 동정녀 마리아 탄생설화에 관하여 사도 바울의 서한문에는 일체의 언급이 없다. 그리고 복음서 안에 있는 최고층대의 자료인 Q자료 속에도 일체 언급이 없다. 다시 말해서 AD 60년대까지만 해도 예수가 순결한 동정녀로부터 잉태되었다는 담론은 전혀 초대교회 내에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조설화들을 보면 대부분 알에서 태어난다. 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도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 곁 큰 알에서 깨어 나왔다. 박이란 박 같이 큰 알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석탈해(昔脫解)도 큰 알에서 나왔고, 김씨시조 김알지(金閼智)는 계림 금궤짝[金櫃]에서 나왔다. 고구려시조 주몽(朱蒙)도 하나님[天帝]의 아들[子] 해모수(解慕漱)의 아들이지만 닷되들이 만한..
공적인 사실과 전승담론의 조화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예수의 공생애의 사역과 관련하여 드러난, 공적인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적인 사실을 하느님적 경지와 조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전통사회는 사(士)ㆍ농(農)ㆍ공(工)ㆍ상(商)이라는 계급적 분별이 있었다. 크게는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있었다. 어느 사회든 전통사회에서는 이러한 구분은 매우 보편적ㆍ심층적 문명의 경향성이었다. 모든 문명(=인간세)은 선을 긋기를 좋아한다. 이스라엘 사회는 당시 사ㆍ농ㆍ공ㆍ상 대신에 다른 계층적 구조가 있었다. 최상층에는 극소수의 정치적 지배자들이 있었다. 왕과 총독, 그리고 그 주변의 고급행정관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인구의 1%도 채 되지 않지만 당시 이스라엘 땅의 과반을 소유하고 있었..
마태ㆍ누가가 마가보다 더 인기 마태나 누가가 마가보다 인기가 더 많은 것은 매우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마태ㆍ누가가 마가보다 더 자상하고 더 뿌듯하고 더 섬세하고 더 완결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체를 보더라도 훨씬 더 세련되어 있다. 희랍어의 문체로 말한다면 누가의 문장이 가장 세련되었고 유려하다. 역시 개정판을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판ㆍ원판의 묘미는 개정판이 따라갈 수 없는 그 나름대로의 숭고한 가치가 있다. 마가는 복음서를 곧바로 복음의 선포로써 시작한다. 기쁜 소식의 선포는 곧 예수라는 역사적 실존의 공생애로부터 출발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의 말씀이다. 예수의 말씀이야말로 복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어떤 가문의 사람인지..
공관복음서 이러한 생생한 역사적 지평 위에서 복음서는 전개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마가복음서의 기본적 관점(觀點)을 공유(共有)하는 복음서를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 the synoptic gospels)라고 부르는데 마태와 누가가 바로 이 공관복음서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러니까 마태와 누가는 마가를 책상 앞에 놓아두고 쓴 작품이다. 책으로 말한다면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개정증보판’인 것이다【신약학의 거장 다드의 표현, Dodd, About the Gospels 24】. 그러니까 마태와 누가 속에는 마가가 거의 다 들어있다. 마가의 661개의 문장(verses) 중에 600개가 마태 속에 들어있고, 350개가 누가에 들어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매우 충실히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가..
유앙겔리온의 전성시대 마가복음은 빅 히트였다. 그 감동은 여기저기 교회마다 소문으로 퍼져나갔고, 낭송자는 유랑극단처럼 여기저기로 순회공연을 다녔다. 반주자도 없는 1인공연이니 간편하게 다녔을 것이고, 가는 곳마다 한번에 다 읽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연속극처럼 몇 회에 나누어 낭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여튼 인기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대본을 카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본을 가지고 또 새 팀들이 유랑의 길, 전도의 길을 떠났다. 그런데 그러한 복음을 듣는 사람마다 감동 끝에 자기가 이전에 들어왔던 이야기를 첨가해서 전하는 사람도 생겨나게 되고, 또 관련된 설화들을 창작하여 덧붙이는 사람도 생겨난다. 옛날에 할머니들이 들려주던 이야기들은 누대를 거쳐 전승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주는 사람마다 스토..
산조의 전승양식과 복음의 전승양식 가야금산조는 한말에 전라도 영암 사람 김창조(金昌祖, 1856~1919)라는 무속의 달인이 판소리에 내재하는 가락을 압축시켜 절대음악의 장르인 순수기악곡으로 재창조해낸 우리민족예술의 걸작 중의 걸작이다. 그 장르가 하도 새롭고 하도 충격적이라서 듣는 사람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흐트러진 가락’이라 하여 산조(散調)라 속칭(俗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순식간에 구한말 음악계에 열병처럼 번져가서 오늘의 장관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옛날에는 악보라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연주라는 개념이 꼭 ‘악보대로’ ‘선생에게 배운 대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의 해석이나 장끼나 자기가 좋아하는 가락을 첨가하기도 하고 또 자기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것은 ..
낭송문학 요한계시록 판타지아 복음서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현 성서의 제일 끝머리의 요한계시록이라는 문헌이 붙어있는데, 이 문헌이야말로 낭송문학의 극단적 형태를 과시하고 있다. 계시문학(Apocalyptic Literature)은 초기기독교인들의 발명이 아니고,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배어있는 대중문학 장르였다. 이 묵시문학은 기원전 2세기초에서 기원후 2세기초까지 유대인 사회에서 매우 유행하던 문학장르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며,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초시간적ㆍ초월적 세계의 체험을 인간의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꿈이나 천사나 환상을 통하여 드러난다. 그 주제는 메시아적 대망이며 이 세계의 종말이며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다. 종래적 예언자의 예언은 하나님의 의지를 이 현실역사의 지평..
마가복음은 낭송된 것이다 마가복음은 그것이 독서용의 문헌이 아니라 초대교회에 던진 판소리의 사설과도 같은 것이다. 마가복음은 케릭스에 의하여 대중들에게 낭송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로 시작되어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로 이어지는데 아마도 구약(70인역 이사야 40:3)의 인용구는 노래 챈팅으로 낭독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자들이 심히놀라 떨며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말도 하지못하더라’로 끝났을 때, 아마도 이 복음판소리가 준 감동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
심청의 십자가 우리가 기독교문명을 접하기 이전에도 이미 ‘죽음과 부활’이라는 메시지는 우리 주변에 무수히 깔려있었던 이야기 패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을 우리의 서민들은 하나의 문학적 상상이나 날조로서 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얼한 사실이다. 심청이는 정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남들이 하기 어려운 희생의 결정을 내렸고 몸을 팔았다. 죽음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효(孝)를 나타낸다고 하는 그 여린 여인 심청의 결단처럼 심각한 문제상황은 없다. 분명 그것은 심청의 십자가였다. 그리고 임당수로 몸이 팔려 뱃전에서 떠나가는 가냘픈 심청이의 모습, 뒤늦게 달려와 임당수 해변에서 대성통곡하는 아버지 심봉사의 원성! 심청이 거동봐라 샛별같은 눈을감고 초마자락 무릅쓰고 뱃전으로 우루루루 만경창파 갈..
판소리와 복음서 판소리사설은 그냥 사설로만 읽으면 매우 현학적이고 어렵고 지루하다. 그러나 그것을 발림이나 아니리, 그리고 북 반주를 수반하는 소리꾼의 창(唱) 이야기로 들을 때는 무슨 이야기인지 세부적인 것까지는 다 모른다 해도 대충 재미있게 알아듣는다. 『춘향전』이나 『심청전』의 사설을 뜯어보면 매우 현학적인 한문투가 많다. 즉 그것을 쓴 사람은 조선조 문화의 아주 고도의 문헌적 지식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 그 재미를 향유한 사람들은 식자층이 아닌 조선왕조의 일반서민들이었다. 소리꾼의 판이 벌어진 곳은 양반집 사랑채의 대청이었지만 그 앞마당을 가득 메운 것은 농촌의 뭇백성이었다. 시각적 문헌과 청각적 문헌은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시각적 문헌은 그 자체로 그것을 읽는 지식인들을 ..
낭송문화 속의 교회 교회라는 곳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초대교회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이러한 낭송문화였다. 예수의 말씀이라고 전승되어온 파편이나 다양한 목격담, 그리고 사도들의 편지가 케릭스에 의하여 낭송되는 것이 그들의 예배였다. 낭송문화는 반드시 운이 들어가고 인토네이션의 리듬이 들어가고 때로는 노래가 삽입되기도 한다. 그것은 거의 우리나라의 ‘판소리’라는 장르와 매우 유사한 것이다. 케릭스는 우리나라 ‘소리꾼’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단지 조선조말기의 소리꾼은 신분적으로 광대신분이었기에 천시된 반면에, 초대교회의 전령은 신의 말씀을 전하는 전령으로서 숭상되었다는 것만 다르다. 전령들의 낭송이 끝나면 성찬이 베풀어진다. 즉 빵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이다. 성찬이라는 것도 요즈음처럼 쬐끔쬐끔 상징적으..
케릭스 바울이 데살로니카의 교우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그냥 편지 하나를 보냈다는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편지는 보통의 교우들은 읽을 능력이 없다. 그 편지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반드시 교회의 회중들이 모여있는 공적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읽은 것이다. 이 낭독(Public Reading)은 초대교회의 가장 보편적 문화였다. 이 편지의 경우에는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읽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읽는 사람을 구해서 읽어 들리게 하라는 부탁을 첨가한 것이다. ‘이 편지를 낭송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들리게 하라’라는 부탁을 자기의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너희들에게 명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그리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
시각적 문헌과 청각적 문헌 내가 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가? 우리는 너무도 ‘사실’에 무지하다는 것이다. 성경을 운운한다면 우리는 우선 성경이라는 아주 객관적인 문헌에 관한 사실들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한 사실을 토대로 초대교회의 역사적 정황을 정확하게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복음이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구의 매우 위대한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은 때때로 오늘날의 우리의 체험 속에서 왜곡된 주관적 인간의 언사에 불과할 수가 있다. 성령을 주장하는 정통파들일수록 인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각하는 오류의 폐해를 주책없이 전파하는 경향이 심하다. 내가 말하려는 복음서에 관한 중..
양피지와 파피루스 마가시대에는 종이에 해당되는 것이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양피지(parchment)라는 것인데 양가죽을 무두질하여 늘려서, 쎄무가죽처럼 야들야들하게 얇게 만든 것이다. 양가죽만 쓰는 것은 아니고 염소나 소가죽도 쓸 수 있다. 소가죽은 길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새끼가죽일수록 고급품이 나오는데 그것을 벨룸(vellum)이라고 한다. 이 양피지는 우리나라 족자처럼 양쪽에 나무를 껴서 두루루 만다. 따라서 한 면에만 쓴다. 앞뒤 양면을 다 쓰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양사로써 한 두루마리 즉 권(卷)의 의미를 지니는 볼룸(volume)이라는 말을 쓴다. 한 볼룸은 한 롤(roll)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양피지 이외로는 파피루스(papyrus)라는 소재가 있다. 이것은 나..
제9장 낭송문화와 복음서 복음서 저작의 물리적 사실들: 종이 복음서에 관하여 우리가 얘기를 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매우 중요한 기초적 사실들, 우리가 오늘날 우리 자신의 일상체험의 구조 때문에 매우 안일하게 무시해버릴 수 있는 사실들, 복음서가 쓰여진 당대의 초대교회의 일상적 삶의 문화적 쇄사(瑣事)와 관련된 사실들에 관하여 응당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당시에는 인쇄라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의 ‘독서’라는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책방에 가서 책을 사서 본다든가, 교회에 가면 의자 앞에 신도들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성경이 꽂혀있다든가 이런 진풍경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당대..
미국과 유대인 현금의 세계질서를 지배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미국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 더 막강하다. 이 지구의 역사에서 한 나라가 그토록 강성한 유례는 없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시기에도 중국에는 한제국, 인도에는 쿠샨왕조가 있었고, 그리고 로마의 동점을 막고 있었던 파르티아제국(Parthian Empire)도 있었다.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라고 한다면,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유대인이다. 이 세계는 실제로 유대인들에 의하여 지배 당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미국의 금융, 언론, 학술,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있어서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칼 맑스, 프로이드, 아인슈타인, 노암 촘스키, 스필버그, ..
다이애스포라 신세 유대인은 또다시 자기 고향을 잃고 이역의 다이애스포라(Diaspora)에 살아야만 되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이 ‘떠돌이 신세’는 자그마치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the State of Israel)가 공표되기까지 1800여년 동안 계속되었던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김춘추가 당(唐)이라는 대국의 힘을 빌어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되, 통일의 주체라는 신라까지 말아멕혔다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도 예산에 가면 임존성(任存城)의 잔해가 남아있어 백제인들의 마지막 항쟁의 치열했던 함성이 메아리 친다. 당장(唐將) 소정방(蘇定方)은 의자왕을 비롯 수없는 왕족ㆍ대신ㆍ장사(將士)들을 포로로 하여 당으로 돌아갔고, 이세적(李世勣)은 보장왕을 비롯 다수의 귀족과 20여만..
바르 코크바와 랍비 아키바 AD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도 로칼한 시나고그들은 유대교의 구심체로서 기능했고, 기독교 교회들도 특히 갈릴리지역에서는 번창해나갔다. 로마인들은 정치적 저항에는 가혹했지만 원칙적으로 유대인들이 유대교에 귀속되는 권리까지 침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AD 66~73년 사이의 제1차 독립전쟁시기에서 사두개인들은 많이 죽임을 당하였지만 바리새인들은 내면적으로 결속하여 유대인 공동체의 정신적 토대를 오히려 공고히 다져나갔다. 미쉬나(Mishnah)와 탈무드(Talmud)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형성의 주축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AD 132년 하드리안 황제(Hadrian, AD 76~138, 재위 117~138)는 유대인의 할례와 일체의 거세를..
요한복음 속의 예수 나사렛의 예수는 물론 유대인이었다. 예수는 안식일을 지켰고, 유대의 율법과 관습을 잘 알았다. 그의 제자도 모두 유대인이었고, 그를 따르던 군중도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의 선교활동 전체가 팔레스타인 내에서만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예수는 유대인의 민족적 메시아는 될 수 없었다. 요한복음 속의 예수는 그를 심문하는 빌라도 총독에게 이와 같이 반문한다. 빌라도 총독: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죄인 예수: “나를 ‘왕’이라니, 그건 네 자신의 말이냐? 그렇지 않으면 딴 사람들이 들려준 말을 네 입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냐?” 빌라도 총독: “네가 날 유대인으로 알고 그따위 질문을 하는 거냐? 너를 왕이라고 고소한 놈들은 바로 네 동족들이다. 넌 도대체 그들에게 뭔 짓을 했느냐?” 죄..
예수에게는 메시아라는 자기인식이 없었다 일반 유대 민중에게 있어서 ‘메시아’의 일차적 의미는 그들에게 정치적 독립, 즉 이민족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주는 다윗왕과 같은 역사적 인물이었다. 역사적 예수는 이러한 맥락에서의 ‘메시아’로서 자기인식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메시아는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최후의 승리자이다. 그런데 ‘힘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메시아’ 라는 것은 일반 대중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메시아의 모습이었다. ‘죽는 메시아’(dying Messiah), ‘죽임을 당하는 메시아’(killed Messiah)는 상상키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복음서 저자들에게는 이 ‘부활’(Resurrection)과 ‘재림’(Parousia)이라고 하는 문제가 흩어져가는 민족에게..
마가복음서 집필상황과 이스라엘민족의 애환 이런 상황에서 마가는 복음서를 썼다. 복음서는 단순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하여 쓴 책이 아니다. 당대의 크리스챤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전쟁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복음서의 저자들도 이 민족적 비극을 객화시켜서 담담하게 묘사할 뿐 자기내면의 상처와 아픔으로 그리고 있질 않다.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의 유대민족의 정치적 해방에 관심이 없었으며, 결국 자기민족인 유대인들의 몰이해와 박해 속에서 죽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의 출현은 완전히 민족적 프라이드와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고 좌절 속에 해체되어만 가고 있었던 유대인 커뮤니티 속에 새로운 민족적 구심점을 창출하려는 한 노력으로도 볼 수가 있다. 그들은 예수를 진정한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아로 그리..
마사다 요새 AD 70년 유월절 기간 동안에 티투스의 4개 군단과 강력한 지원군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처참한 파괴가 이루어진 이 사건으로 6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났다.(사망자가 100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자그마치 팔레스타인 유대주민의 4분의 1이 죽은 것이다. AD 73년, 아마도 74년초까지 사해의 서쪽해안 난공불락의 산 정상에 있는 마사다 요새에서 항쟁을 계속했던 유대의 독립투사들은, 금남로 도청에 포위되었던 광주시민처럼 상황이 도저히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결을 결정하였다. 지하의 수도관에 숨어있던 두 명의 아낙과 다섯 어린이들만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유대인 독립투사들의 비참한 항쟁의 종말을 지켜보았다. 마사다 요새를 로마군이 함락시켰을 때는 시체만 즐비하게 널려있었던..
예루살렘교회 전통과 복음양식 바로 마가의 복음서양식의 출현은 이러한 바울의 추상적 이방선교에 대한 예루살렘교회 전통의 회복을 의미하는 사건이기도 했던 것이다. 예루살렘교회와 팔레스타인 곳곳의 토착교회에는 바울의 추상적 논술과는 달리 보다 구체적인 예수의 이야기, 즉 1세대ㆍ2세대의 직전 담론들이 짤막한 케리그마(kerygma, κῆρυγμα)의 형태로 지속되어 내려오고 있었다. 마가는 이러한 단편적 케리그마의 유형들을 하나의 일관된 수난극의 플롯 속에서 묶어내어 예수라는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는 포괄적인 새로운 케리그마를 구상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복음이었다. 그런데 복음서의 출현은 AD 70년 예루살렘멸망을 전후로 한 정치 상황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이때만 해도 기독교는 아직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지 않았..
바울 비젼의 독자성 3년 후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지만 그는 자신의 개종체험을 인가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정통성이나 권위를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다. 예루살렘에서 만나서 15일을 같이 유숙했다고 하는 ‘게바’(Cephas)도 주석가들의 통념처럼 꼭 베드로이어야만 하는 보장도 없다. 게바(베드로의 아람말)와 베드로는 어원의 문제를 떠나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예수의 동생 야고보 이외에는 다른 사도들, 즉 예수의 직전제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만날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그의 이방선교에 대한 사도 권능의 원천이 전혀 예수의 제자들과는 무관한 것임을 자랑스럽..
사도 바울과 아라비아 사막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바울은 아주 명료하게 ‘유대교’(Judaism)라는 표현을 썼다. 즉 유대전통이 그의 의식 속에서 이미 하나의 개념으로서 소외되어 있고 객화되어 있는 것이다. 유대교에 대한 열렬한 충성심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를 그토록 열심히 핍박했던 그가 그의 아들 예수를 ‘내 속에서’ 계시된 형태로 만난 사건을 계기로 어떤 심정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개종체험’의 대사건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그 체험의 사건에 관하여 일체 가까운 사람, 혈육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라비아로 갔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개종체험이 있은 후 당연히 그는 그 개종에 관하여 기독교단을 리드하는 사람들로부터 인가를 얻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
사울의 개종체험 이렇게 본다면 바울이 다메섹(다마스커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둘러 비추어 음성이 들리면서 눈이 멀었고, 사흘 후에나 아나니아라는 제자의 안수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고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에피파니(epiphany, 하나님 현현)의 체험, 그리고 제자 아나니아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매우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사도 바울에 관한 환상적 이야기들이 후대에 다양하게 전승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생생한 이야기의 진실, 기독교사의 최대의 역전적 계기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주 확실하고도 안전한 방법이 있다. 사도 바울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사도 ..
바울과 예수 바울은 예수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돌연한 계시적 체험에 의하여 그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 개종체험(conversion experience)의 드라마는 사도행전에 꽤 자세히 생생하게 3번이나 기술되어 있다.(행 9:3~19, 22:6~16, 26:12~18). 그러나 이 3번의 상황도 자세하게 뜯어 보면 설명방식이 각기 다르다. 3개의 다른 전승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욱 결정적인 사실은, 오늘날의 성서연구자들이 확정짓고 있는 일치된 결론은 사도행전의 기록이 결코 사도 바울의 직접적 증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사도 바울과 직접 안면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속의..
공전의 히트 바울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무시간적으로 표백시켜 그 속죄론적 의의만을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마가는 오히려 생동치는 한 역사적 인간으로서 갈릴리의 평원에서 활동한 예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논술했다고 한다면 마가는 나사렛 예수의 삶을 기록했다. 여기에 최초의 복음서라는 문학장르의 탄생의 역사적 의의가 있다. 초대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기적과 영광과 권세의 수퍼 히어로(a super-hero), 신인(神人, a divine man)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마가는 그러한 교인들에게 완전히 다른 복음의 드라마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가의 예수는 힘이 없었고 연약했으며, 사람들을 치유하고 권면했으며, 수난 속에 죽어갔다. 이러한 십자가를 통해 ..
수난복음서 마가는 수난복음서이다. 수난에 관한 이야기전승을 마가는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수난 한 주간의 역사만 해도 복음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마가복음은 크게 3부로 대별된다. 제1부는 수난사의 서막이다(시작~1:13). 자세히 살펴보면 희랍비극의 서막과 매우 유사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세례 요한의 출현, 예수의 세례, 광야에서의 시험이 매우 간략하게 서술되면서 예수라는 인물의 진정한 아이덴티티는 베일에 가려진 채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6장에는 살로메의 쟁반 위에 칼로 토막난 세례 요한의 머리가 올려지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생애 자체가 이미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의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2부는 예루살렘 상경 직전까지의 갈릴리호수를 중심으로 한 예수의 선교활동이..
마가의 복음 핵심 그 얼마나 강렬한 드라마인가! 이렇게 위대한 드라마의 엔딩장면을 놓고 밑 안 닦은 것 같다는 식의 투정들, 예수의 부활현현의 장면이 있었을 것이라는 등, 계속된 부분이 여기서 뜯겨져서 없어졌을 것이라는 등, 복음서 저자가 잡혀가는 바람에 완성을 못했을 것이라는 등등의 하찮은 췌언(贅言)을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일삼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분명히 말하건대 마가는 16장 8절, 연약한 여인들의 떨림으로 그의 유앙겔리온의 대미를 완벽하게 장식한 것이다. 그것은 의도된 결말이었다. 마가가 전파하고자 한 유앙겔리온의 핵심은 십자가였다. 예수라는 한 인간, 우리의 구세주의 몸으로 겪은 수난이요 희생이었다. 오로지 그 십자가가 그의 관심이었다. 화려한 부활이나 눈부신 승천이 그 주제가 아니었..
마가가 그리는 예수의 색신 사마천이 그린 공자(孔子)의 모습이 과연 역사적인 실상에 가까운 공자의 모습인가에 관하여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공자세가(孔子世家)」를 구성하는 단편자료들 사이의 중복, 모순, 불일치, 시대적 배열의 문제점들이 수없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천이 그리려고 하는 공자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한 인간의 충실한 전기적 구성이다. 그러나 마가는 애초부터 그런 식으로 예수를 바라보지 않는다. 앞서 내가 복음서의 예수를 바울의 법신적 예수에 비하여 색신(色身)적 예수라고 말했지만, 이 색신이라는 것도 사마천이 공자를 바라보는 것과도 같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색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색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복음이며, 그 색신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이다. 마가..
마가복음과 공자세가 독자들은 마가복음과 「공자세가(孔子世家)」를 병렬하여 논구하는 나 도올의 견식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못마땅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깊게 양자를 모두 문헌학적 측면에서 검토해보면 그 성립과정이나 집필방식에 놀라운 유사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20세기 신학자들이 발전시킨 편집비평(redaction criticism)이나 양식비평(form Criticism)의 모든 문제점이 「공자세가(孔子世家)」 속에서도 드러나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정의로운 주장 때문에 요참(腰斬)의 사형언도를 받고 또 그것을 당대 사대부로서는 최대의 치욕이었던 궁형(宮刑, 거세)으로밖에는 모면할 길이 없었던, 너무나 처절하고도 끔찍했던 실존적 고뇌를 감내해야만 했던 사마천! 그 사마천은 「공자세가..
사기의 공자세가 우리는 인류문명의 7대 불가사의(Seven Wonders)니 뭐니 운운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스케일의 위대한 불가사의가 하나 있다. 『사기(史記)』라는 서물이 그것이다. 이 『사기』 속에는 ‘의(義)를 돕고 결연히 나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운 사람’, 암혈지사(巖穴之士), 유협지사(遊俠之士), 덕행으로 명성을 날린 시정의 장사치 등등, 후세의 이름을 남긴 영웅호걸이나 위인들의 바이오그라피(傳記)가 열전(列傳)이라는 장르 속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열전을 아무리 뒤척여도 공자(孔子)의 전기는 보이지 않는다. 노자(老子)나 한비자(韓非子)의 이름은 나와도 공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공자의 전기는 세가(世家)라는 장르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세가’는 천자(天子)..
로기온과 논어(論語) 복음서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에 관한 단편적 이야기들이나 그의 말씀, 그러니까 로기온(logion)이라고 부르는 설법토막들이 전승되어 오고 있었다. 아마도 교회 내에서 암송이나 독송의 형태로 내려오는 구전자료들, 그리고 신도들 앞에서 크게 공적으로 낭독하는 어떤 예수어록집 같은 문서기록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어록의 말씀은 역사적ㆍ상황적ㆍ감정적 맥락이 단절된 단편적인 것이었다. 그런 것은 아무리 들어도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한 인간에 대한 심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록에는 그 인간의 라이프 스토리라든가 그 말을 의미 있게 만드는 전후 내러티브(narrative, 서술적 담론)가 없는 것이다. 일례를 들면 우리가 아무리 『논어』를 열심히 읽어도 공..
제8장 복음서의 출현 복음서와 대승기독교 역사적 상황은 다르지만 기독교 복음서의 출현은 동일한 헬레니즘 문명권내에서 대승불교가 출현하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의미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복음서 출현이 약간 빠르다). 그러니까 복음서라는 새로운 문학양식의 출현은 기독교를 대승화시키는데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바울이 말하는 부활의 그리스도가 아닌 팔레스타인의 풍진 속에서 역사하는 나사렛 예수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기독교의 대승화작업에 최초의 전기를 마련한 사람이 바로 마가(Mark)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대승화작업의 정점에 요한복음이 자리잡고 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기독론과 『금강경』(金剛般若波羅蜜多經, Vajracchedikā-Prajñāpā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