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2/03/22 (9)
건빵이랑 놀자
두 개의 코기토 데카르트가 근대철학을 열었으며, 따라서 ‘근대철학의 비조’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근대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데카르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데카르트에 대해 말하려면, 근대철학을 연 ‘제1원리’인 코기토에 대해 말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코기토(cogito)라는 말은 ‘생각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cogitare의 1인칭 형태입니다. 즉 ‘나는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이 cogitare는 영어에서 생각하는 것과 관련된 단어들, 예컨대 cognition, recognize와 같은 단어들의 어원이 되는 단어입니다. 철학에서 코기토 라고 말할 때, 그것은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가리키는데, 이 말은 ‘코기토 에르고..
중세 너머의 철학 이러한 은폐된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서 신학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형태의 철학으로 무장하면서 신학을 위한 반론을 펴게 됩니다. 실질적으로는 신학의 반대자들, 정통적인 신학에서 벗어나는 사상가들과의 각축전은 사실은 불가피하게 신학 안에서, 신학적인 껍데기를 입고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10세기 이후에 그러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로스켈리누스(Roscelinus)나 아벨라르(Abelard, 라틴어로는 아벨라르두스)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명론(nominalism)이라 불리는 견해를 제출합니다. 유명론은 ‘일반적인 개념은 단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라는 견해인데, 신학적 사고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사상적으..
은폐된 공세 지오다르노 브루노(Giodarno Bruno, 1548~1600)는 일찌감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자신의 시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우주란 무수히 많은 태양과 별들로 가득찬, 그러나 끝도 중심도 없이 운동만을 지속하고 있는 영원한 전체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신이란 일체의 만물을 지배하며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며, 우주의 각 개체 속에 있는 것인 동시에 우주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신과 자연(우주)을 하나로 보는 이런 입장을 범신론(汎神論)이라고 합니다. 이는 중세적인 신의 개념, 기독교적인 신의 개념과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교회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견해였습니다. 이런 입장은 과학의 이름으로도 철학의 이름으로도 ‘용서받을 수 ..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중세의 철학 이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라는 주제로 들어가 봅시다. 근대철학에 대해 얘기하려면 가장 먼저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 근대 전체에 대해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해야 할 범위를 철학으로 제한해서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면, ‘철학에서 근대란 무엇인가?’ 혹은 ‘철학적 근대란 무엇인가?’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기대에 못 미친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저는 지금 근대에 대한 어떤 심오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근대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중세와의 대비 속에서 중세와 구분선을 그음으로써 정의되는 그런 시기입니다..
경계읽기와 ‘문제설정’ 그렇다면 경계선들을 찾아내고 그 경계선의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이 문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자 자신이 자기 사상의 경계선을 보여주는 경우는 결코 없으며, 철학책 어디를 봐도 경계선을 보여주는 표시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경계선 같은 건 애시당초 없는 건지도 모릅니다. 원뿔을 밑에서 보면 원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보이는 것처럼, 모든 것은 보는 지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마찬가집니다. 데카르트를 로크와 대비시켜 경계선을 찾으려 할 때와 칸트와 대비시켜 경계선을 찾으려 할 때, 혹은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와 대비시켜 경계선을 그으려 할 때, 경계선은 모두 다 달라질 것입니다. 또 철학사를 반복의 역사일 뿐이라고 볼 때와 ..
철학의 경계 저는 예전에 쓴 책에서 “철학은 의심하기에서 출발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철학이란 이런 방법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사고방식, 지배적인 철학과 투쟁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철학사는 전장(전쟁터)’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치고받는 이 투쟁을 통해 철학자들이 얻어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때까지 지배적이던 철학 밑에서 사고되지 못했던 것, 또는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을 찾아내고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전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의 지배적인 사상 때문에 오히려 보이지 않고 사고되지 않게 된 것을 찾아내고 확보하는 투쟁이 바로 철학인 셈입니다. 사실 철학에선 다른 사상가들과 자신이 어떤 점에서 다르며 어떤 점에서 새롭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
서론 포스트모던 ‘시대정신’ 하나의 사상, 하나의 시대정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이젠 너무도 분명한 듯 보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런 선언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시대의 조류에 매우 둔감한 분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어디서나 거론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조는 하나의 사상이나 시대정신이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나아가 최근의 다양한 사회현상들을 ‘포스트모던하다’라는 형용사로 특징짓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도 이런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사조들, 예를 들면 맑스주의 같은 것들은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옛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제2증보판에 부쳐 이번에 증보하면서는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장을 추가했고, 보론으로 「근대적 지식의 배치와 노마디즘」을 실었다. 그리고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장이 새로 들어가면서 관련된 내용을 결론에 추가했고, 본문 가운데 일부분을 약간 수정했다.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장은, 나로선 어쩌면 가장 가까운 철학적 친구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사람들이라 진작에 들어갔어야 할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지난번 개정증보판을 내면서도 여유가 없어서 원고를 써넣을 수 없었던 것인데, 이제야 비로소 채워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장을 추가하면서 결론에 동일성과 차이, 동일자와 타자의 문제와 관련하여 약간의 글을 추가했다. ‘보론’으로 추가한 것은,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 내지 ‘인문학의 전망’에 대해 강연했던 것인데..
책머리에 데리다는 ‘텍스트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모든 텍스트는 그 외부의 주름이다.’ 물론 여기서 ‘외부’란 단지 통상적 유물론에서 말하듯이 사회경제적 조건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실천적 유물론에서 말하듯이 실천적 맥락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사유 안에 들어와 있는 비-사유고, 각각의 철학이 그 위로 펼쳐지며 나름의 사유의 선들을 그리는 그런 지반이다. 아니, 사유가 그것의 소재로 삼는 모든 것이다. 어느 날 사유에게 다가온 것, 그런 식으로 사유가 만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유하면서 사용한 모든 것(책이나 언어를 포함하여), 그것이 바로 사유의 ‘외부’다. 공장이나 병원도, 감옥이나 형법도,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