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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더 읽을 것들 1.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한국사상연구소 편집, 예문서원, 2001) 한국사상연구소가 편집한 이 책은 한국의 철학사상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문들을 선별하고 풀어내어 소개한 9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집입니다. 「한국의 성리학 사상」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책의 4부에는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전개되었던 ‘사단칠정논쟁’, 이이의 유학 사상, 나아가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 등에 대한 원문과 그 번역문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해당 부분에 각 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간략한 해제가 함께 실려 있어 많은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됩니다. 2. 『한국철학 에세이』(김교빈, 동녘, 2003) 이 책은 한국 철학을 대표하는 9인 사상가들의 삶과 사상을 제목 그대로 에세이 식..
이황과 이이의 후배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같지 않다 그러나 이간의 낙론(洛論)과는 달리, 한원진을 대표로 하는 호론(湖論) 계열 학자들은 개별자의 문제에 대해서 경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론을 주장하는 유학자들은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다고 보는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원진이 왜 이간의 의견에 반대하는지, 그의 말을 경청해보도록 하지요. (인의예지신이라는) 오상은 오행 중 빼어난 기(氣)의 이(理)입니다. 반드시 빼어난 기를 얻은 뒤에야 그 이를 비로소 오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빼어난 기를 얻지 못하면, 비록 이가 있다 해도 오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오행의 빼어난 기를 모두 얻었으므로 오상의 덕을 모두 갖추었으나, 동물은 혹여 하나의 빼어난 기..
이황과 이이의 후배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은 같다 앞에서 보았듯이, 젊은 유학자 기대승의 반발로 시작된 논쟁이 바로 ‘사단칠정논쟁’입니다. 이때 이황은 사단의 마음과 칠정의 마음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윤리적으로 선한 마음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물론 사단의 마음이 다른 마음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이(理)에 의해서 작동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야만 하겠지요. 바로 이 점을 젊은 유학자 기대승이 집요하게 문제 삼았습니다. 어떻게 기(氣)를 떠나서 이(理)의 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지요. 사실 주희에게 이는 작용하는 것이라기보다 모든 것에 편재하는 순수한 이치였습니다. 이 점에서 기대승의 문제 제기는 범주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비판이라고도..
기대승을 편들며 이황을 비판한 이이 이렇게 이이는 사단을 칠정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감정에 포함시키고, 두 가지 모두 기로서의 마음의 작용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단은 칠정을 포괄할 수 없지만 칠정은 사단을 포괄합니다. (…) 사단은 칠정이 완전한 것만 같지 않고, 칠정은 사단이 순수한 것만 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곧 저의 생각입니다. 『율곡전서』(10권) 「답성호원(答成浩原)」 四端不能兼七情 而七情則兼四端 (…) 四端不如七情之全 七情不如四端之粹 是則愚見也 사단불능겸칠정 이칠정즉겸사단 (…) 사단불여칠정지전 칠정불여사단지수 시즉우견야 사실 이이의 ‘사단칠정론’은 기대승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먼저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칠정 중 가장 순수한 것이 바..
드러난 측은지심은 기에 속한다 앞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이이는 본성, 마음 그리고 감정이 이(理)에 속하는지, 아니면 기(氣)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성(性)은 형체도 없고 작용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속하지요. 반면 마음[心]과 감정[情]은 뚜렷한 형체는 없더라도 작용을 하기 때문에 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구분한다면, 이이의 생각대로 마음과 감정의 작용은 모두 기에 속하게 되고, 본성 자체는 이에 속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이이가 이황의 사단칠정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퇴계 선생은) ‘사단은 이(理)가 드러나서 기(氣)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氣)가 드러나서 이(理)가 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기가 드러..
주희의 이기론을 그대로 따른 이이 이황의 ‘사단칠정론’이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사단이 이(理)가 드러난 경우라면 칠정은 기(氣)가 드러난 경우라고 보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주장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이가 드러난다는 말은 우리 내면에 있는 이가 외부 사물을 만났을 때 감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라는 것이 마치 기처럼 그렇게 작동하고 움직일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을 던지는 이유는 주희에게서 이란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비유를 다시 떠올려보도록 하지요. 강물은 요동치며 작용합니다. 그에 따라 강에 비친 달그림자도 요동치게 되겠지요. 이런 경우 달그림자 자체가 움직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서신 왕래에도 애초의 입장을 유지하다 그러나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려 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으니까요. 논쟁이 심화되자 이황은 자신의 입장을 보다 명확히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개념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이황의 태도는 어떻게 보면 이론적으로 엄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럼, 이황이 8년 동안 논쟁을 마무리하면서 정리한 ‘사단칠정론’의 핵심 부분을 검토해보도록 하지요. 사단이 외부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인다는 것은 진실로 칠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理)가 드러날 때 기(氣)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드러날 때 이가 타는 것입니다. (…) 대개 이가 드러날 때 기가 따른다는 것은 이를 주로 하여 말했을 뿐..
이황, 윤리적 감정과 현실적 감정의 차이를 사유하다 이황은 사단의 순수성을 확신했던 유학자입니다. 그 순수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사단은 이(理)가 드러난 것’이라고 역설했던 것이지요. 그런 이황에게 기대승의 편지는 도발적인 도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기대승은 자신보다 스물여섯 살이나 아래인 젊은 유학자이지 않습니까?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유학의 정신으로 보면, 이황은 기대승을 선배 유학자를 가르치려드는 오만한 학자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황은 기대승이 젊다는 이유로 그의 반박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기대승의 도전을 자신의 학문적 성숙을 가능하게 해준 행운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이제 이황의 반론을 한번 들어볼 순서가 된 것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
절도에 맞게 드러난 감정이 사단이다 또 기대승은 사단이 그 자체로 보면 선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절도에 맞지 않는 부정적인 사단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감정[情]에 대해 자세히 논한다면, 사단이 드러날 때에도 절도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진실로 다 선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 사람을 살펴보면, 간혹 부끄러워해서는 안 될 것을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시비를 따져서는 안 될 것에 대해 시비를 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봉집(2권)』 「고봉상퇴계사단칠정설(高峯上退溪四端七情說)」 若泛就情上細論之, 則四端之發, 亦有不中節者, 固不可皆謂之善也. 有如尋常人, 或有羞惡其所不當羞惡者, 亦有是非其所不當是非者. 약범취정상세론지, 즉사단지발, 역유..
이황에게 날아든 한 통의 서신 어느 날 옆집에서 살고 있던 유학자 정지운(鄭之雲)이 이황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만든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이황에게 보여주고, 그림과 그림에 붙인 설명이 옳은지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지요. 『천명도설』을 살펴보다가 이황은 ‘사단(四端)은 이(理)에서 드러난 것이고, 칠정(七情)은 기(氣)에서 드러난 것이다’라는 구절을 보게 됩니다. 무심결에 이황은 이 구절을 ‘사단은 이가 드러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드러난 것이다’라고 고쳐주었습니다. 약간 어렵고 복잡한 논의이지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사단’과 ‘칠정’이란 개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단’은 이미 맹자의 유학 사상을 다룰 때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유학자로 살아가는 이이의 방법 조선시대 모든 사대부의 현실적인 꿈은 과거 급제에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겉으로는 안빈낙도(安貧樂道)했던 공자의 수제자 안연을 흠모한다며 읊조리고 다녔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위해서나 부모와 가문을 위해서도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대부의 의무였습니다. 이 점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어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보통 사대부가 한번도 합격하기 힘들다는 과거시험에 자그마치 아홉 번이나 합격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합격이 아니라 모두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렀습니다. ‘구도장원공’이란 ‘아홉 번이나 장원에 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즘으로 ..
유학자로 살아가는 이황의 방법 1392년, 조선왕조가 고려왕조를 붕괴시키고 이 땅에 새롭게 등장합니다. 조선 개국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이 바로 고려 말에 들여온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 특히 주자학을 배웠던 사대부들입니다. 여기에서 기억해두어야 할 유학자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라는 인물이지요.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이념적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것이었지요. 그는 우선 고려왕조의 이념적 토대였던 불교를 비판할 수 있는 신유학의 사상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1394년 완성된 『심기리편(心氣理篇)』과 1398년 완성된 『불씨잡변(佛氏雜辨)』입니다. 『심기리편』에서 정도전은 불교를 마음[心], 도교를 ..
이황(李滉)과 이이(李珥) 주자학을 심화시킨 철학적 논쟁들 조선은 주희를 따르던 유학자들이 세운 왕조였다. 따라서 이 땅의 유학자들에게 중국인 주희의 사상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필수적인 학문이었다. 복잡하고 방대한 주희의 사상을 정리하느라 그들은 자신의 평생을 바치기도 했다. 마침내 어느 정도 주희의 생각을 따라잡게 되자, 조선 유학자들은 도설(圖說)이라는 형식의 글을 만들게 되었다. 말 그대로 간단한 도식과 설명으로 주희의 가르침을 요약하려고 한 것이다. 이황과 이이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이황은 주희의 가르침을 열 장의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글을 지어 임금에게 바쳤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성학십도(聖學十圖)』라는 책이다. 아래의 사진은 그중 첫 번째 그림에 해당된다. 인용 목..
더 읽을 것들 1. 『전습록』 1·2(왕수인, 정인재 · 한정길 옮김, 청계, 2007) 왕수인의 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책은 바로 『전습록』입니다. 『전습록』(1ㆍ2)은 국내 두 양명학(陽明學) 연구자들의 열정이 반영되어 있는 중요한 번역서입니다. 번역문과 함께 전체 원문이 실려 있어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습록』에 대한 기존 유학자들의 이해 방법을 주석으로 친절하게 달아놓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번역서가 다른 것들과 차별되는 부분이지요. 2.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 청년 왕양명』(뚜웨이밍, 권미숙 옮김, 통나무, 1994)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왕수인의 사상적 편력을 소개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전기는 절대 아닙니다. ..
호방한 정신과 섬세한 정신 사이에서 주희는 장재, 정호, 정이 등의 선배 유학자들의 뒤를 이어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는 학풍에 주춧돌을 놓았던 위대한 유학 사상가입니다. 그는 월인천강(月印千江)으로 비유되는 거대한 형이상학 체계를 구축했고, 이에 걸맞은 수양론도 체계화했습니다. 그의 수양론 가운데 한 축을 이루었던 것이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였습니다. 젊은 시절 왕수인은 주희가 권고한 격물치지 방법을 맹신했던 적이 있지요. 그의 일화에서 보았듯이, 대나무의 이치를 탐구하려던 그의 계획은 7일 만에 좌절되고 맙니다. 성인이 되려는 왕수인의 이런 치열한 노력과 자기 검증 자세는 마침내 그를 주희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유학의 창시자로 우뚝 서게 해주었습니다. 왕수인의 새로운 ..
자신의 내면을 집요하게 검열하다 사실 ‘사구교(四句敎)’의 핵심은 양지(良知)의 개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지라는 반성적 자각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조그마한 선도 제대로 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양지 때문에 치지나 격물도 가능한 것이지요. 여기에서 잠시 왕수인이 양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좀더 살펴보도록 하지요. 양지(良知)란, 맹자가 “시비지심(是非之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시비지심은 생각하지 않고도 알고 배우지 않고도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양지라고 하니, 이것은 천명지성(天命之性)인 내 마음의 본모습이 밝고 분명하게 자기를 자각하는 것이다. 무릇 하나의 생각이 발동할 때에 내 마음의 양지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그것이 선한지에 대해 내 마음..
네 구절로 압축되는 왕수인의 가르침 왕수인에게 마음(心), 의(意), 지(知), 물(物)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연결고리를 구성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 네 가지 개념들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유학 사상을 포괄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마침내 왕수인의 시도는 하나의 정리된 형태로 확정되었으며, 그것은 바로 그의 제자들이 ‘사구교(四句敎)’라고 일컫는 명제였습니다. 사구교란 글자 그대로 ‘네 구절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왕수인의 유학 사상을 정리하려는 사람들은 “마음과 무관한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통찰, 그리고 이로부터 유래하는 ‘사구교’만을 기억해도 무방합니다. 그 정도로 ‘사구교’는 왕수인의 사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모습이고, ..
마음과 무관한 사물과 이(理)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수인을 이해하려면 마음이 무엇인가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보는 통찰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점만 잊지 않으면 왕수인의 나머지 통찰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리했습니다. 몸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마음이고, 마음이 드러난 것이 바로 의(意)이며, 의의 본체가 바로 지(知)이고, 의가 지향하는 것이 바로 물(物)이다. 만약 의가 부모를 섬기는 데 있다면, 부모를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의 물이다. 만약 의가 군주를 섬기는 데 있다면, 군주를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의 물이다. 身之主宰便是心, 心之所發便是意, 意之本體便是知, 意之所在便是物. 如意在於事親, 卽事親便是一物, 意在於事..
구체적인 어떤 것을 향해가는 마음 왕수인의 주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무관한 사물은 없다”는 독특한 생각이지요. 이것은 “마음이 가지 않으면 사물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길을 걸을 때 우리의 마음이 크게 열려 있지 않은 경우, 다시 말해 어떤 일을 염려해서 그 일에 온통 마음이 가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산길에서 수없이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산길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꽃과 새들에게 마음이 간다면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품을 정도로 넓게 확장될 것입니다. 결국 마음이 가야만 외부 사물도 존재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왕수인의 근본적인 통찰이었지요. 그렇다면 사물의 이(理)는 어떻게 될까요? 주희는 외..
보지 않을 때 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아마 여러분도 제자의 생각에 상당히 공감할 것입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했고 또한 생각도 할 수 없지만, 무수히 많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나요? 결국 여러분도 그 제자처럼 내 마음과 관계없는 다양한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자의 질문에 대해 왕수인은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대가 이 꽃을 보기 전에 꽃은 그대의 마음과 함께 고요한 상태에 있었네. 그대가 와서 이 꽃을 보는 순간 꽃의 모습이 일시에 분명해졌지. 그러니 이 꽃은 그대의 마음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네.” 이 또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답입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왕수인의 대답을 음미해보지요. 왕수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
마음과 무관한 사물은 없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나요?” 매우 당혹스런 질문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의 마음은 머리 안의 뇌에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가슴속에 있다고 보아야 하나요? 사실 그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이 보고 있는 책에 쏠려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향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대학』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떠오르는군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보통 우리는 어떤 것을 눈으로 보고 그 다음에 그것을 마음으로 생각한다고 이해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7일 동안 대나무를 탐구한 젊은 유학자 어떤 소년에게 스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란다.” 그러자 소년은 당돌하게도 스승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아닙니다. 선생님,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의 정신을 알고 있었던 셈이지요. 앞에서 정이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안연이 즐겨 그러했듯이 성인이 되고자 함이라고 말입니다. 성인이 되는 꿈을 가진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갓집에서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청년은 어느 유학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유학자는 “성인이 되려면 격물..
왕수인(王守仁) 세계는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산길을 걷다 지쳐서 어느 작은 바위에 걸터앉는다.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이름 모를 들꽃 하나를 발견한다.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당혹스러운 느낌이 스친다. 내가 만약 이 작은 바위에서 쉬지 않고 그대로 산길을 갔더라면, 이 꽃이 과연 나에게 발견되기나 했을까? 나에게도, 그리고 이 세상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면 이 꽃이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이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꽃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내게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도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곳에 없었다면, 꽃은 아무런 의미를 발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왕수인은 바로 이 점을 발견했던 독특한 유학자였다. 마음 바깥에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
더 읽을 것들 1. 『주서백선』(주자사상연구회 옮김, 혜안, 2000) 이 책은 1794년 조선의 국왕 정조가 편찬한 『어정주서백선(御定朱書百選)』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군주가 직접 주희의 방대한 서신들 가운데 100통을 선별하여 편찬한 것입니다. 여기에 실려 있는 100통의 편지는 주희의 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자사상연구회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간단한 해제와 함께 주희의 서신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많은 주석을 달아놓았습니다. 주희의 사유를 좀더 깊이 살펴보려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2. 『인간 주자』(미우라 쿠니오, 김영식 · 이승연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6) 공자와 더불어 유학 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월인천강’의 비유가 가진 난점 그러나 주희의 이런 관점은 후세에 숱한 비판을 일으킵니다. 그 가운데 주희의 유학 사상에 대한 정약용(丁若鏞)의 비판을 살짝 음미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후세의 학문은 형체가 없는 것, 형체가 있는 것, 영명한 것, 어리석은 것 등 모든 만물을 하나의 이(理)에 귀속시켜, 다시는 크고 작고 중심적이고 부수적인 차이를 없게 만들었다. 이른바 “하나의 이로부터 시작되어 만 가지로 흩어져 다르게 생성되지만 끝내는 다시 하나의 이로 합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주선사(趙州禪師)가 말한 “모든 존재들은 하나로 귀속된다”는 불교 이론과 조금의 차이도 없다. 『맹자요의』 後世之學, 都把天地萬物無形者有形者靈明者頑蠢者, 竝歸之於一理, 無復大小主客. 所謂始於一理, 中散爲萬殊, 末復合於一理也...
내 마음이 외부 사물의 이치와 같다 정이는 주희가 평생 동안 가장 흠모했던 선배 신유학자였습니다. 정이는 불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불교 이론은 이치에 가깝기 때문에 양주(楊朱)와 묵자(墨子)보다 그 해가 더 심하다. 『하남정씨유서』 13:2.” 정이의 평가가 타당하다면 불교 이론 중 어느 부분이 유학 사상과 가장 근접했던 것일까요? 유학과 불교의 공통점은 모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밀한 이론을 가졌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맹자의 성선설이 유학 사상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가 곧 유학 사상에 본성 이론을 도입했기 때문이지요. 불교는 모든 외부적인 사태를 마음으로, 나아가 불성(佛性)으로 수렴합니다. 이와 마찬가지..
인간의 마음은 전쟁터와 같다 주희는 성인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인간이므로 누구나 육체와 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성인도 육체적 욕망에서 기원하는 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 성인이 아닌 일반인도 본성에서 유래하는 도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주희가 말하는 성인이란 도심을 인심의 지배자로 만든 사람이며, 성인이 아닌 일반인은 거꾸로 인심을 도심의 지배자로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이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삶의 모든 지평에서 출현하는 두 가지 마음의 양태, 즉 도심과 인심을 명확히 구별하고, 나아가 도심으로 하여금 인심의 주인이 되도록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런 까닭에 「중용장구서」 후반부에서 주희는 ‘정일(精一)’ 공부의 중요성을 ..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유학자 황종희(黃宗羲, 1610~1695) 이래로 수많은 학자들은 주희의 최종적 가르침이 ‘월인천강(月印千江)’으로 상징되는 이기론과 그에 입각해서 세워진 수양론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한 수양론은 주희의 미발 함양 공부와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를 말하는 것이지요. 과연 이런 견해가 타당할까요? 놀랍게도 주희의 사유는 결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주희는 1189년, 그의 나이 60세 무렵 『중용』에 대해 새로운 서문을 짓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라고 알려진 짧은 글이지요. 이 짧은 서문에서 주희는 함양 공부를 통해 마음을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만들려고 했던 시도를 한 발짝 넘어서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마음을 두 가지 마음이 ..
외면에서 달빛을 찾으려는 노력 주희는 이 외향적 공부 방법을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라고 말합니다. 격물치지란 ‘사물의 이치[理]를 파악해서 내 마음의 앎을 완성하는’ 공부를 의미하지요. 흔히 주희의 격물치지 공부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탐구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은 오해를 일으키는 견해입니다. 그에게는 나 자신과 무관한 외재적인 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희의 초월적 이는 인간이나 사물에게 동일한 상태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과정은 나와 관계 없는 외부 대상의 이치를 파악하는 과정이 아니라, 나와 동일하게 공유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그럼 격물치지 공부의 의미와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주희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내면에서 달빛을 찾으려는 노력 주희가 좋아하던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비유는 성인이 되는 방법 또한 결정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방법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내 자신이라는 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통해서 달을 찾아나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이라는 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통해서 달을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전자가 인간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본성을 통해서 초월적 이(理)를 자각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사물 속에 내재하는 이를 통해서 초월적 이를 자각하는 과정입니다. 주희는 전자의 공부를 ‘미발(未發) 함양(涵養)’ 공부라고 부르고, 후자의 공부를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라고 부릅니다. 먼저 미발 함양 공부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생각이 아직 싹트지 않..
천 개의 강에 달이 비치다 이어지는 글에서 주희의 설명을 들어보도록 하지요. 이 세계는 ‘만물을 낳는 것[生物]’을 마음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사람과 사물들은 각각 ‘세계의 마음[天地之心]’을 얻어서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덕을 말하면, 비록 그것이 모든 것을 포괄해서 모두 다 갖추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인(仁)일 따름이다. (…) 세계의 마음이 운행될 때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순서가 있지만, 봄의 생성하는 기(氣)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사람 마음의 경우, 덕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네 가지가 있지만, 인이 네 가지에 모두 작용하고 있고, 마음이 드러날 때에는 측은지심, 사양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네 가지 감정이 있..
불교를 비판하며 신유학의 정초를 세우다 이 세상에는 이(理)도 있고 기(氣)도 있다. 이라는 것은 감각적으로 확인될 수 없는 도(道)이자 만물을 낳는 근본이다. 기라는 것은 감각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형기[器]이자 만물을 낳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 이들은 반드시 이를 받은 후에 본성[性]을 갖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기를 부여받은 후에 형체(形)를 갖게 된다. 『주희집』 「답황도부서」 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是以人物之生, 必稟此理然後有性. 必稟此氣然後有形. 천지지간, 유리유기. 리야자, 형이상지도야, 생물지본야; 기야자, 형이하지기야, 생물지구야. 시이인물지생, 필품차리연후유성. 필품차기연후유형. 공통적인 이(..
이(理)와 기(氣) 모든 형이상학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다루려는 사상가들입니다. 그래서 형이상학은 구성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설명하기도 힘든 학문입니다. 장재가 얼음과 물의 비유로 자신의 형이상학, 즉 기론(氣論)을 사유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지요. 이렇듯 형이상학자의 사유를 이해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형이상학자가 사용하는 비유를 정확히 이해하면 어렵지 않게 그의 형이상학적 구조를 파악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부터 형이상학적 감수성이 남달랐던 주희는 어떤 비유로 자신의 형이상학을 구성하고, 설명했을까요? 먼저, 그가 사용했던 수많은 형이상학적 비유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보여주는 구절 하..
꼬마 형이상학자 1133년 바람이 선선한 어느 날, 아버지와 나이 어린 아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애정이 가득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가르쳐줍니다. “보아라! 저것이 바로 하늘[天]이란다.” 아마 아버지는 한자의 가장 기초가 되는 글자인 하늘, 즉 천(天)이라는 글자를 가르쳐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당돌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아버지를 놀라게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버님, 하늘 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어린 아들은 눈에 보이는 푸른 하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이 비범했던 아이가 훗날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 즉 새로운 유학 운동의 완성자로 성장하게 되지요. 그는 바로 주희(朱熹, 1130~1200)..
주희(朱熹) 하나의 달과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수많은 달빛 하늘에 달이 하나 떠 있다. 지상에 있는 호수에 하늘의 달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달그림자는 분명 달에 따라다니는 그림자이지만, 달을 닮아서 자기 나름대로의 밝은 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런데 하늘 위의 달은 이 호수에만 비추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바위 하나하나에도 달 그림자가 맺혀 있는 것은 아닐까? 바위들은 호수의 물처럼 맑지 않아 희미한 빛만 발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비유로 유학자 주희가 생각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다. 천 개의 강에 달그림자 천 개가 비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대나무나 꽃과 같은 사물은 어떤 달그림자를 품고 있을까? 아니, 우리 인간의 마음은 어떤 달그림자를 품고 있을까? 그 그림자가 밝게 빛을 ..
더 읽을 것들 1. 『근사록』(주희, 이범학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근사록』은 주희가 친구 여조겸과 함께 장재, 정호, 정이 등 선배 신유학자들의 저술들을 주제별로 편집한 책입니다. 시중에는 『근사록』에 대한 많은 번역서가 나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일반인들이 참고하기 좋은 번역서는 이범학이 옮긴 이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고증적인 해설은 가급적 피하고, 철학적이며 동시에 역사적인 해설을 붙여서 오늘날 독자들의 감각에 맞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이지요. 2. 『송명성리학』(천라이, 안재호 옮김, 예문서원, 1997) 천라이의 책은 대표적인 신유학자들의 사상을 간결하고 평이하게 소개한 연구서입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그동안 별로 소개되지 않았던 정호와 정이의 유학 사상을 소개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많..
신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앞에서 우리는 맹자와 고자의 논쟁을 살펴보았지요. 여러분은 이 논쟁만을 보고 맹자의 주된 사상적 경쟁자가 고자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사실 맹자의 진정한 경쟁자는 묵자(墨子, BC 470?~BC 390?)라는 사상가입니다. 이 책에서 묵자를 별도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왜 맹자는 묵자를 공격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묵자가 주장했던 ‘겸애(兼愛)’라는 명제 때문이었습니다. 겸애란 모든 것을 차별 없이 사랑하자는 논리입니다. 『묵자』 「겸애」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천하에서 높은 선비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친구의 몸 위하기를 자신의 몸처럼 하고, 자기 친구의 부모 위하기를 자기 부모처럼 해야 하는데, 그런 뒤에야 천하의 높은 선비가 될 수 있다. 爲高士於..
본성과 감정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다 자, 그럼 정이가 제안한 성인이 되는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천지가 정기를 쌓아 오행 중에 뛰어난 것을 얻어 사람이 된다. 사람의 근본은 진실하고 고요하다. 본성[性]이 아직 감정[情]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본성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도덕 원리가 갖추어져 있다. 몸체가 생긴 후에는 바깥 사물이 몸과 접촉하니 본성이 마음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眞而靜, 其未發也. 五性具焉, 曰仁義禮智信. 形旣生矣, 外物觸其形而動其中矣. 천지저정, 득오행지수자위인. 기본야진이정, 기미발야. 오성구언, 왈인의예지신. 형기생의, 외물촉기형이동기중의. 마음이 움직이면 칠정(七情)이 거기에서 나오니, 이것을 희로애..
24살 젊은 유학자의 답안에 태학 교수가 놀란 까닭 1056년 24세의 나이로 정이는 형 정호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당시 북송의 수도인 개봉(開封)으로 가게 됩니다. 현재의 국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태학(太學)에서 공부하기 위해서였지요. 때마침 태학을 주관하던 사람은 당시 매우 유명한 유학자인 호원(胡瑗)이었습니다. 어느 날 호원은 태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여러 학생들에게 시험문제를 냈습니다. 호원이 낸 문제는 “공자의 제자 안연이 배우기를 좋아했던 것은 무슨 학문이었는가?” 였습니다. 물론 여러 학생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답안을 작성해 제출했겠지요. 답안지를 검토하던 중 호원은 깜짝 놀랍니다. 자신도 감히 쓰지 못할 정도의 정연한 문체로 쓴 놀라운 답안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그 답안을 쓴 이가 바..
어떤 사태든 내 몸 안의 일처럼 정호는 장재의 우주가족 이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장재의 기론(氣論)과는 다른 형이상학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구태여 정호를 별도로 다룰 필요가 없었겠지요. 방금 살펴보았던 ‘만물일체론’ 외에 정호는 ‘물래이순응(物來而順應)’이라는 명제로도 유명합니다. 여기에는 정호만의 고유한 형이상학적 체계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철학적 관점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한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천지가 변함없는 것은 천지의 마음이 모든 사물을 포괄하면서도 마음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이 변함없는 것은 성인의 감정이 만사에 순응하면서도 감정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학문은 무엇에 얽힘이 없이 크고 공정하며, 사태가 다가오면 자연..
만물을 자신과 한몸처럼 보아야 한다 장재가 유학자들에게 던진 우주가족의 이념의 영향은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물론 정호와 정이 형제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특히 형인 정호에게 장재의 철학이 끼친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정호는 어떤 사람이라도 우주가족으로 생각하라는 장재의 명령을 유학의 핵심 이념인 인(仁)이라는 개념으로 수렴시켰습니다. ‘만물일체(萬物一體)’라는 명제로 유명한 그의 인 개념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지요. 의학 서적에서는 손과 발이 마비되면 ‘불인(不仁)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仁)이라는 명칭의 모습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인자는 천지만물을 한몸이라 여기므로, 어떤 것도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이 없다. 자신이라고 여기니 어디인들 이르지 못하겠는가? 만일 자신에게 있지 않다면 자연히 자신과..
장재의 형이상학적 감수성이 낳은 신유학의 서막 장재는 기의 형이상학으로 이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장재의 시선에는 지금까지 갈등과 대립으로 일관되어 온 인간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한마디로 우스운 일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마치 둥근 얼음과 네모난 얼음이 서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둥근 얼음은 자신의 둥이 옳다고 주장하고, 네모난 얼음은 자신의 네모남이 옳다며 싸우는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물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습니까? 둥근 얼음이나 네모난 얼음 모두 물의 자식들이 아니던가요? 이런 관점에서 장재는 자신이 바라보았던 세계를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나의 어머니라 부르며, 나는 이처럼 미미한 존재로 아득..
기(氣)의 형이상학으로 우주가족을 꿈꾸다 여러분은 산에 올라가본 적이 있는지요? 산의 기후는 언제나 변화가 심한 편입니다.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간혹 흥미로운 기상 현상을 관측하게 됩니다. 무척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변하면서 계곡 사이에서 엄청난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지요.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인 전경이 어느 순간 뿌옇게 피어오르는 구름으로 가려집니다. 과연 구름은 어디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에 떠돌던 물분자들이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진 순간 구름으로 뭉쳐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구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흩어져서 보이지 않게 됩니다. 또다시 방금 전의 탁 트인 전경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지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
새로운 유학을 꿈꾼 세 명의 유학자 기원전 202년에 시작되어 기원후 220년에 막을 내린 한나라는 유학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제국이었습니다. 이 제국은 여타 모든 사상을 배제하고 오로지 유학만을 숭상한다는 기치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만약 국가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했던 법가 사상을 지지한 진나라가 오래 지속되었다면, 공자로 대표되는 유학 사상은 아마도 땅속에 그대로 묻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 제국에 이어 중국을 장악했던 한 제국은 진 제국과 다르다는 것을 더욱 부각시켜서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법가 사상에서 국가를 좀먹는 좀벌레라고 폄하했던 유학 사상을 다시 살려내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오히려 유학 사상의 비극이 되고 말았습..
장재(張載)와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 우주가족의 구상과 성인에 대한 열망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강이 따스한 봄기운에 스르르 풀린다. 어느 한 군데 균열이 생기면 이내 강을 뒤덮었던 얼음이 네모난 모양, 둥근 모양, 뾰족한 모양, 넙적한 모양 등 온갖 모양의 조각으로 나눠진다. 어느덧 대기는 따사로운 기운으로 넘쳐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얼음들이 녹아서 원래의 강물로 스며든다. 이렇게 보면 온갖 모양의 얼음과 얼음 사이의 부딪힘과 갈등, 대립은 모두 덧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모두 물의 동일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장재는 얼음과 물이라는 비유를 통해 우주 전체의 모습을 사유했던 형이상학적인 유학자였다. 그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인간과 동식물을 포함하여 우주가족의 한 일원일 뿐이다. 그..
더 읽을 것들 1. 『순자』(김학주, 을유문화사, 2001) 이 책은 『순자』에 대한 번역서 중에 가장 신뢰할 만합니다. 한문학의 전문가답게 김학주는 『순자』 원문 특유의 뉘앙스와 논리까지도 번역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순자』에 담겨 있는 사상을 가장 쉽고 편안하게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번역서는 각 절마다 원문을 싣고, 아울러 상세한 해제와 해설을 붙여놓았습니다. 이 부분은 순자의 체계적인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2. 『순자』(장현근, 책세상, 2002) 장현근의 책은 『순자』 32편 가운데 순자의 유학 사상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일곱 편을 발췌하여 옮긴 책입니다. 『순자』 전체를 직접 읽기가 버거운 독자들에게 좋은 책입니다. 이 책에..
저주받은 유학자의 운명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비판했습니다. 순자는 공자가 강조했던 예의 외재성과 객관성을 회복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순자가 본성과 인위를 나눠서 본 관점이지요. 인간의 본성은 자연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문명 상태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자 이후 유학의 역사에서 맹자가 주류 유학자로 등장하면서, 순자의 철학적 통찰력은 어둠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신의 내면에 선한 본성이 있어서 언제든지 노력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맹자의 낙관적 주장이 지식인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었던 것이지요. 반면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을 혐오하는 자기 파괴적인 주장으로 이해되었고, 심지어 저주받게 되었습니다. 순자 인성론의..
예식의 집단심리학적 특성 그러나 예를 정당화하려는 순자의 노력은 아주 현실주의적입니다. 그는 정치ㆍ경제학적인 입장에서 예를 정당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집단심리학적인 측면에서도 정당화하려고 시도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논증이므로 함께 살펴보도록 하지요.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대답하기를, 아무런 이유도 없으니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면 재앙을 제거하려 하고, 하늘이 가물면 기우제를 지내고, 점을 친 뒤에야 국가 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것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예를 통해 꾸미려는 것뿐이다. 雩而雨, 何也? 曰: 無何也. 猶不雩而雨也. 日月食而救之, 天旱而雩, 卜筮然後決大事, 非以爲得求也以文之也. 우이우, 하야? 왈: 무하야. ..
예(禮)를 새롭게 정당화하다 공자는 인자(仁者)가 되기 위해 주나라에서 내려온 예를 배워야만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맹자에 이르러 공자가 말했던 외재적인 예는 이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본성으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사양지심이라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이에 반해, 순자는 내면에 사로잡힌 예를 다시 외부로 꺼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성악설을 주장했던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의 본성에는 사양지심(辭讓之心)과 같은 도덕적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선해지기 위해서는 외재적인 예의 학습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지요. 순자에 이르러 예는 다시 성왕(聖王)이 창조한 문명 제도라는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에..
국가의 공권력과 규범의 강제력을 받아들이다 이제 그가 어떻게 맹자를 공격했는지 살펴보도록 할까요?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릇 예로부터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이 선이라고 말한 것은 올바르고 질서 있고 공평하고 다스려진 것이었고, 악이라고 말한 것은 치우치고 음험하고 어긋나고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이것은 선함과 악함의 구분일 따름이다. 孟子曰: “人之性善.” 曰: “是不然.” 凡古今天下之所謂善者, 正理平治也. 所謂惡者, 偏險悖亂也. 是善惡之分也已. 맹자왈: “인지성선.” 왈: “시불연.” 범고금천하지소위선자, 정리평치야. 소위악자, 편험패난야. 시선악지분야이. 지금 진실로 사람의 본성을 올바르고 질서 있고 공평하고 다스려진 것으로 생각한다면, 성왕이 무슨 소..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던 이유 맹자의 성선설을 비판했던 고자의 주장이 아직도 생생한지요? 아마 여러분은 버드나무와 나무술잔의 비유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을 살아 있는 버드나무에, 맹자가 말한 유학적 덕목들은 버드나무를 죽여서 만든 나무술잔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해했지요. 나무술잔을 만들려면 반드시 버드나무에 인위적인 노력을 가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고자의 논점은 인위적인 노력을 강조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유학의 덕목들이 사람의 생명력을 죽이고 말 것이라는 점을 경고했습니다. 고자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다시 꺼낸 이유는, 이야기의 논점은 다르지만 순자의 성악설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입니다. 순자가 고자와 갈라지는 지점은 그들이 인위적인 노력을 ..
인간중심적, 이성중심적 사유 순자는 하늘과 인간, 그러니까 자연 질서와 인간 문명을 명확히 구별하려고 애썼습니다. 나아가 그는 인간 문명의 힘이 자연 질서를 압도한다는 점을 보다 명확히 밝히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 질서의 법칙을 이해하게 되면, 인간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고 보는 순자의 이성주의적 발상입니다. 다음 글은 순자가 자신의 이런 정신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을 위대하게 여기고 그것을 사모하는 것과 사물을 길러서 그것을 통제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낫겠는가? 하늘을 추종하여 그것을 기리는 것과 하늘이 낳은 것을 통제하여 이용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낫겠는가? 계절을 바라보며 그것을 기다리는 것과 계절에 대응하여 그것을 활용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낫겠는가? 大天..
자연 질서와 인간 문명을 구별하다 순자는 무엇보다도 자연주의자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주의란 일체의 종교적 관점을 버리고 인간과 자연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통치자가 정치를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를 간혹 듣곤 합니다. 그러나 홍수나 지진이 발생하는 것과 통치자의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순자가 살았던 시절에는 자연재해와 통치자의 정치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매번 하늘과 땅에 규칙적으로 제사를 지내 하늘의 복을 구하는 것이 통치자의 중요한 임무이기도 했지요. 중국의 최고 통치자를 지칭하는 개념인 천자(天子)라는 말도 이런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
제자백가를 통솔했던 위대한 유학자, 순자 제사를 지낼 때 제사에 참여한 여러 사람을 대표하여 고인에게 술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좨주(祭酒)라고 부릅니다. 가장 연장자이거나 가장 신망이 높은 사람만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자(荀子, BC 298년경~BC 238년경)는 전국시대의 모든 지식인들을 대표하던 좨주의 자리에 무려 세 번이나 올랐던 대단한 인물입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흔히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불립니다. 글자 그대로 제자백가는 여러 명의 선생들과 수많은 학파라는 뜻이지요. 중국 동방의 큰 나라였던 제(齊)나라는 국가의 부강을 위해서 수도 근처에 직하학궁(稷下學宮)이라는 일종의 거대한 인문사회 연구소를 세웁니다. 그래서 이곳을 보통 직하학사(稷下學舍)라고 부르기..
순자(荀子) 욕망의 발견과 유학의 정치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은 육체적으로 별로 뛰어난 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인간이 위대한 존재인 것은 자연을 이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은 자연에 순응할 뿐, 적극적으로 개조하거나 변형하지는 못한다. 맹자와 다른 맥락에서 공자를 계승했던 순자가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인간이 가진 이러한 적극적 실천 능력이었다. 순자는 이것을 인위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순자가 맹자의 성선설을 부정했던 것 역시 이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부터 선하다면,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자는 인간의 선함이 노력에 의해서 후천적으로 실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성악설을 주장한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