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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체념적인 전생의 업보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체념적인 전생의 업보

건방진방랑자 2022. 3. 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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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적인 전생의 업보

 

 

업의 사상이 얼마나 치열하고 무서운 개인의 윤리를 요구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로써 새삼 새로운 각성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슈퍼마켓에 갔다가 선반에 있는 물건을 슬쩍 했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런데 운좋게도 폐쇄회로 텔레비젼에 걸리지도 않았고, 아무도 본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들키지 않았다. ‘물건을 슬쩍 했다는 사태는 사실 하나의 무형의 이벤트이며, 들키지만 않는다면, 파도가 일었다가 잔잔해진 물처럼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영원히 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물건을 슬쩍 했다는 사태는 분명한 나의 행위다. 즉 나의 까르마다. 그런데 이 까르마는 앞에서 말했지만 반드시 보()를 수반한다. 이미 저질러진 나의 까르마는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들키든지 안 들키든지,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든지 안 보시든지를 불문하고, 반드시 그 자체로 과보를 동반한다. 그리고 이 과보는 당대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윤회의 생을 통하여 영속되는 것이다.

 

똑같이 운좋게, 아무도 모르게 살인을 했다고 하자! 결국 아무도 모르는 전혀 일어난 적이 없었던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당사자의 업은 기나긴 억겁 년의 윤회를 통하여 그 당사자 개인의 과보로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의 꼬마(오스먼트 분)에게 나타나든지, 누구에게 나타나든지 반드시 그 업보는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인도사상이 말하는 업보의 철칙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아리따운 여인의 몸매를 투시하며, 샅샅이 훑어내리고 빨개 벗기고 음탕한 생각을 잠깐 했다고 해보자! 이것은 아무도 듣도 보도 못한 오로지 나 개인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까르마이지만, 벌써 나는 의업(意業)을 저지른 것이다. 업이란 몸으로 저지르는 신업(身業), 말로 저지르는 구업(口業)ㆍ어업(語業), 그리고 생각으로 저지르는 의업(意業), 이 모두가 나에게 보를 수반하는 까르마인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표업(表業)만이 업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표업(無表業)도 다 업인 것이다.

 

윤회는 왜 있게 되는가? 윤회는 바로 우리의 업 때문에 있게 되는 것이다. 윤회의 소이연이 바로 업인 것이다. 나는 앞서 말했다. 윤회는 윤리적인 동기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윤회는 업 때문에 있다. 아트만은 업의 기억을 가지고 끝도 없는 지루한 여행을 떠난다. 오늘 나의 현세의 윤회의 현실은 나의 과거의 업 때문이다. 우리는 이 업의 사상을 과거와 연결시켜 생하면 결정론이나 숙명론적인 사유에 함몰되기 쉽다. 한국인의 일상언어 속에서 업보라는 말은 그러한 숙명론적, 즉 체념적 냄새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불가항력적인 어려운 일이나 비극적인 상황에 휘몰렸을 때 흔히 이와 같이 말하곤 한다.

 

이게 다 내 전생의 업보일세!”

 

까르마는 과연 이러한 체념을 위한 수단일까?

 

 

 보드가야 쪽에서 본 나이란쟈나 강과 그 건너 우뚝 서있는 전정각산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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