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2/03/20 (46)
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목차 서설: 고행과 해탈 기나 긴 사색의 출발고행과 해탈생명의 원리로서의 물생명의 원리로서의 불과 기와 숨윤회란 무엇인가?업에 대한 최대의 왜곡체념적인 전생의 업보업의 새로운 이해중도와 뉴웨이(1)선정지상주의고행이란 무엇인가?신비주의아트만브라흐만합일과 피타고라스신비주의적 합일고행의 단념과 안아트만싯달타의 고독고행 단념한 뒤 싯달타의 행동싯달타와 수자타인도신화와 단군신화길상과의 대화붓다의 세 가지 의미색신과 법신(2)붓다인 싯달타모두 붓다가 될 수 있다의 붓다35세 청년이 붓다가 되다싯달타와 예수의 유혹욕망이여! 마라여!사문유관과 출가해탈과 열반깨달음에 대해대각은 앎이다번뇌가 끊어지니 마음이 시원해지다삼법인의 허구무아와 비아(3)싯달타가 깨달은 것12연기설이 만든 혼란연기론이 아닌..
감사의 말씀 이 책이 완성되기까지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얻었다. 내가 도움을 청한 모든 사람들이 헌신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먼저 나의 인도여행의 모든 여정을 기획해주고 인도의 유적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준 이춘호군에게 감사한다. 도올서원 제1림 재생이며 현재 델리대학 인도미술사과정에서 박사공부를 하고 있다. 탁월한 언어능력으로 매우 소상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인도여행을 도와준 메타(Mr. Bharat Mehta)와 그의 가족에게 감사한다. 뭄바이 베이스로 다이아몬드무역에 종사하는 가문의 사람인데 원광대학교 재학시절에 우연히 이리에서 알게되어 훌륭한 우정이 지속되었다. 아주 독실한 자이나교도인데 자이나교의 현실적 종교관행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한항공..
나는 중이요 나는 사실 그에게 묻고 싶은 불교학의 전문적 주제들이 너무도 많았다. 나는 일평생 ‘불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호학(好學)이란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배우기를 좋아한다 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그래서 독단에 갇혀 버린다. 사실 공자가 말하는 호학도 자기를 비울 줄 아는 마음의 공부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자기를 비우는 마음의 공부가 곧 공의 지혜다. 내가 생각하기엔 공자도 그러한 공의 지혜를 터득한 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십일세기에 현실적으로 존속하고 있는 왕입니다...
서양의 이성과 불교의 이성 나의 이야기를 바톤받아 달라이라마는 이성에 관하여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하였다. “이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성에 관한 모든 논의는 그 논의가 되고 있는 맥락이라는 어떤 삶의 장을 떠나서 이야기될 수가 없습니다. 이성은 절대적으로 논의되어서는 아니되며 반드시 그것은 어떤 필드(Field) 속에서의 이성에 관한 논의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성 자체가 천수관음처럼 무한히 다른 모습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이성을 너무 수학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으며, 그리고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을 지나치게 물리적 세계에 한정시켰습니다. 그러니까 계산이 가능하고 진ㆍ위의 분별이 정확한 그런 물리적 세계만을 이성의 영역으로 설정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수..
근대적 인간, 합리성, 불교 나는 몇년 전에 읽은 애튼보로의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책이 생각났다【David Attenborough, The Private Life of Plants, Princeto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과학세대 옮김, 『식물의 사생활』, 서울 : 까치, 1995.】. 식물의 행태에 관한 수준높은 보고서였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윤회문제로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오늘 나와 달라이라마의 예정된 시간은 매우 제한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달라이라마의 대답은 매우 명료했다. 그것은 이미 오랜 논전을 거쳐 성숙된 정연한 이론체계일 것이다. 이제 나는 감잡기 어려운 형이상학의 세계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형이하학의 세계로의 착륙을 시도하는 것이 최..
윤회는 마음을 기준으로 한다 “말씀하시는 것을 모두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저에게는 몇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우선 말씀하시는 이러한 모든 것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선 미세마음이 물리적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그것이 전혀 없는 것이라면 이 모든 이야기는 환상에 그치고 말수가 있습니다.” “도올선생께서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물리적 조건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물질로부터 현현(emergence)되는 그 무엇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신체적 조건을 떠나 독립적으로 떠다니는 존재로서의 마음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조건하에서의 이매지내이션의..
윤회하는 것은 미세마음이다 그러나 나의 추궁은 집요했다. “앞서 말씀드린 영혼의 동일성의 지속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도 도올선생님은 적절한 질문만을 골라 던지시는지 참 놀랍군요. 도올선생께서 지적하신 문제야말로 흔히 불교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애매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만 해서 오해가 많은 핵심적 주제이지요. 우선 ‘영혼의 동일성의 지속’(the continuation of the identity of soul)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우리 티벹에서는 윤회의 과정에서 전생의 존재가 확인된 사람들을 뚤꾸(trulku)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화신(化身, nirmāṇa-kāya)의 뜻이지요. 저는 제 전대 13대 달라이라마의 뚤꾸입니다. ..
종교의 본질적 주제는 죽음 나는 갑자기 숨이 콱 막히고 말았다. 사실 난 중국철학적 세계관에 오며는 너무도 할 말이 많다. 그것은 나의 언어영역이기 때문에 나는 세세하고도 권위있는 답변을 끝없이 늘어놓을 수가 있다. 그러나 성하의 말씀도 일리가 있었다. 전혀 다른 평행선의 신념체계를 맞부닥뜨려 본들 거기서 설득이나 타협이란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종교적 가치의 문제가 개입되고 있는 이상! 달라이라마는 말씀을 이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속적 윤리(secular ethics)입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삶(good life)에 관한 것이며, 좋은 사회, 좋은 군주, 좋은 시민에 관한 담론일 뿐입니다.” “성하께서는 이미 불교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
영혼의 동일성에 대해 그래서 나는 작전을 변경했다. 공세의 방향을 대전환시키기로 작심했다. 그러나 윤회의 문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사실 윤회의 문제란 불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도아리안족의 세계관의 공통분모였으며 그들은 그러한 윤회의 생각을 통해서 카스트의 고착성을 정당화시킬려고 노력했습니다【힌두이즘과 카스트의 관계, 그리고 카스트 자체에 대한 정치ㆍ종교ㆍ사회적 의미를 아주 명료하게 잘 해설한 것으로 킨슬리의 저서를 들 수 있다. David R. Kinsley, Hinduism ― A Cultural Perspective, New Jersey : Prentice Hall, 1993. 제5장과 제8장을 참고할 것.】. 그리고 또 희랍의 올페이즘에도 완전히 동일한 윤회의 생각이 있습..
윤회란 인간마음의 역사 그러나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연기적 자아라는 표현에 대해서 좀더 설명을 해주시죠?” “연기란 한마디로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이라는 뜻입니다. 무자성이란 자성(自性)의 법(法, dharma)이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그것은 결국 모든 존재는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interdependency), 상호관련되어 있다(interconnectedness)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호의존성ㆍ상호관련성을 불교에서는 공(空, śūnya)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무(無, Nothingness)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항상 거기 있는 겁니다(something there). 그러니까 무아라고 하는 뜻은 아라..
무아와 윤회의 모순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당초에 과학적 검증 운운했지만, 이러한 영역은 영원히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도 정정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나의 이런 질문에 감춰져 있는 논리적 함정을 이미 간파를 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윤회를 사실로서 믿는 세계관에는 익숙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윤회를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교의 많은 교설들이 논리적으로 성립불가능해진다. 임마누엘 칸트는 아예 그것을 요청(postulation)으로 말해 버렸지만 달라이라마는 그것을 사실(fact)로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역시 합리주의적 철학자였고, 달라이..
윤회는 과학이다 이런 부분에 오면 그의 이야기는 알 듯 말 듯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매우 명료한 논리를 가지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열반이나 해탈(解脫, mokṣa)과 무관하게 윤회는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윤회라는 것은 인간의 선업과 악업의 과보를 정당하게 만들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설정된 하나의 문화적 전통(cultural convention)이 아닙니까? 그것은 성하나 티벹사람들의 세계인식의 한 방법이지 그것을 사실로서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성하와 같이 과학에 사리가 분명하신 분이 윤회를 정말 사실이라고 믿고 계신 겁니까?” “윤회는 사실입니다.” “문화적 사실이나 심리적 사실이나 논리적 사실이 아닌, 물리적 사실이며 과학적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윤회는..
열반이 해탈을 보장하지 않는다 나는 너무 정치적인 문제로 깊게 들어가고 싶질 않았다. 그것은 시간이 나면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화두를 틀었다. 마음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까 불교를 심리학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심리학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달라이라마의 대답은 정말 정갈했다. 그는 될 수 있으면 어려운 불교용어를 피해가며 말한다. “마음의 평화란 열반(涅槃, nirvāṇa)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것은 분명 존재가 아닙니다.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표현이 열반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 속으로 내가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열반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적 실체(onto..
인간의 마음에 달렸다 “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정치적 리더십의 도덕성 그 자체도 항상 문제가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아시아역사의 현실적 대세는, 비록 그것에 대한 정확한 가치판단을 유보한다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필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즉 아시아의 인민들은 힘이 없었고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화ㆍ서구화라는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의 존재이유에 대한 정신적 가치가 충족되어야만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가치를 정치적 리더들이 제공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아시아제국의 근대정치사는 탐욕적 개인들에 의하여 지배되어온 역사였습니다. 전 국가의 정신적 가치가 그 국가를 리드하는 리더십의 도..
티벹과 중국의 미래 “저는 티벹의 문제를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성하께서 지적하신 그 타협의 문제와 관련하여 티벹이야말로 이상적인 어떤 인류문명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문명이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지식과 삶이 화해하며, 모든 종교적 신념이 관용되며, 전통적 가치가 서구적 물질문명 앞에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지만은 않는 그러한 인류문명의 본보기로서 존속될 가치가 있는 문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독자적 문명을 강압적인 수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괴하고 서구문명의 모든 병폐의 쓰레기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중국정부의 소행은 인류의 공동의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중국자신의 미래를위하여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달에 저는 홍콩에서 활약하고 있는 어느..
과학적 가치의 정립 그리고 나는 최근에 나의 EBS 노자강의에서 21세기의 인류의 당면과제로 제시한 세 가지 문제를 거론하면서 다시 과학의 주제를 접근해 들어갔다. “저는 최근 우리 한국사람들을 위한 테레비강의에서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과제로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그 첫째가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고, 그 둘째가 지식과 삶의 화해고, 그 셋째가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였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제는 이미 우리가 어제 심도있게 토론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간과 환경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지식이 인간의 삶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과도하게 인간의 삶의 본연을 제어하고 있는 상황, 이런 것들은 모두 과학이라고 하는 세계사적 주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자연을 파..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또 한번 그의 단도직입적인 언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정말 절대적 진리란 없는 것입니까?”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물론 불경에 보며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 이따위 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사람들이 매우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타의 깨달음이 연기(緣起)인 한에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어로 ‘앱솔루트 트루쓰’(Absolute Truth)라고 말할 때 이미 우리는 그 말이 지닌 역사적 인식의 포로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절대적 진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어떤 공포감이나 중압감의 포..
비그뱅, 절대적 진리는 없다 달라이라마의 어조는 단호했고 간결했다. 어제 단 하루의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그 만남을 통하여 서로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고 받았다. 사실 그가 내뱉고 있는 말들은 거대한 종교계의 현실적 지도자로서는 몸을 좀 사려야할 그런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어마어마한 말들을 그는 거침없이 내뱉었다. 나는 그의 그러한 정직한 태도가 너무도 좋았다. 어느 샌가 나는 그의 한 친구로서, 제자로서 한없는 경복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진실한 인간이었다. 나는 그의 과학에 대한 생각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비그뱅(Big Bang)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기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까? 원인이 없이 시작되는 사건이니까요.” “비그뱅(Big Bang)이라는 사건을 단순히 ..
불교는 심리학인가? “어제 말씀 중에서 기독교는 사건중심이고 불교는 법중심이라고 하셨는데, 그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기(緣起, 산스크리트어: pratītya-samutpāda, 팔리어: pa ṭicca-samuppāda)입니다.” 나는 이 한마디에 온 전신에 전율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결했고, 내가 원시불교에 관하여 깨달은 총체적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는 대스승이었다. “연기(緣起)란 무엇입니까?” “연기(Dependent Arising)란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여(paṭicca) 함께(sam) 일어난다 (uppāda)는 뜻입니다. 즉 이 우주의 어떠한 이벤트도 절대적인 독립성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연기..
다 이루었다 나는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수자타호텔 209호실로 들어갔다. 수자타호텔 리셉셔니스트가 내가 딴 호텔에서 자는 것을 눈치채고, 남향의 좋은 수트룸을 주었던 것이다. 안온한 느낌이 드는 쾌적한 방이었다. 나는 이날 밤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있기로 했다. 나는 두 손을 쫙 벌리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형상으로 침대 위에 벌컥 드러누웠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我也悉達! 나 또한 다 이루었다!(요 19:30)는 뜻이다【‘실달(悉達)’에는 ‘싯달타’라는 뜻과 ‘다 이루었다’는 뜻이 겹쳐있다.】. 순간 나의 기나긴 반백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왜 이토록 치열하게 나는 살아야 하는 것일까? 머나먼 옛날, 엄마와 남산 수도산에 원족가던 일, 눈들 방죽에서 ..
티벹의 침묵 나는 정말 기뻤다! 내일 또 시간을 내주시겠다니! 오늘 나의 대화가 결코 그에게 누가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 바쁜 중에 또 시간을 내어 주시다니! “저는 도올선생님과 같은 분과 앉아서 대화하는 시간이 인생에 가장 보람 있는 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도올선생님처럼 그렇게 많은 분야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만나 뵙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무슨 얘기가 나와도 그것을 진지하게 풀어나가시는군요. 요번 보드가야의 일정은 너무 빡빡합니다. 내일 제가 특별히 시간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러나 편안할 때 한번 다람살라에 오십시오. 다람살라에 오시면 언제고 제가 뵙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는 보다 여유있..
불상 도입의 명과 암 달라이라마는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팔목에 찬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았다. 나 도올은 평생 팔목에 시계를 차지 않고 살았는데 달라이라마는 왼쪽 손목에 쇠줄의 네모난 시계를 차고 있었다. 자주빛 다체(drache) 법복을 걸친 그의 우람찬 몸매에 달랑 감겨있는 시계줄의 모습은 정말 코믹했다. 그러나 그는 문명의 이기도 마다하지 않는 성자였다. 얼마나 바쁜 일정을 보내시면 저렇게 손목에 시계를 걸치고 사실까?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나와의 대화를 계속하기를 원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가 불상에 관한 이러한 장황한 얘기를 하는 본 뜻은 우리 북전불교(福田佛敎)에서는 대승만이 불타의 참 가르침을 전하는 진짜 불교이고, 소승은 개인의 수양에 치우친 좀 수준 낮은 불교인 것..
불상과 반야 “그렇습니다. 제가 번역한 반야경전계열의 작품으로서 AD 200년경에 성립했다고 하는 『금강경』(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Sūtra)【『금강경』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으로도 불리우는 반야경전 중의 하나이다. 이 경전의 성립연대에 관해서는 AD 150~200년 사이라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선생의 설을 따랐다. 나는 동경대학 재학시절에 나카무라 선생의 강의를 몇 번 청강한 적이 있다. 中村元ㆍ紀野一義 譯註, 『般若心經ㆍ金剛般若經』(東京 :岩派書店, 1997), p.202.】을 펼치면 제5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몸의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
희랍문명과 불상중심 운동 그러니까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박트리아 희랍문화로부터 시작된 쿠샨왕조의 일반적 문화풍토에서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아폴로나 제우스의 신상이나 신화의 내용을 담은 부조들을 벽면이나 정원의 치장에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자 자연스럽게 그러한 그리스의 신상들을 모델로 해서 붓다의 모습을 형상화했던 것입니다. 간다라의 불상들은, 근엄한 명상인의 정형화된 32호상의 프로토 타입을 전달하는 후기 마투라 불상들과는 달리 매우 인간적인, 아폴로를 닮은 미남자의 모습이었으며, 그 표현양식도 자세나 의복, 머리맵시 등이 자유분방한 표현을 취했으며, 대개 희랍-로마풍을 본뜬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조각공들은 중인도의 불상불표현(佛像不表現)을 고..
불상의 탄생 우리는 쿠샨왕조하며는 그 전성기를 이룩한 카니쉬카(Kaniṣka) 왕 생각이 나고, 카니쉬카왕하며는 『한서』(漢書)를 지은 반고(班固)의 동생 반초(班超) 생각이 납니다. 반초는 형 반고, 아버지 반표(班彪), 여동생 반소(班昭)와 함께 이름을 날린 초(楚)나라 명가의 자손으로 서역의 정벌에 대공을 세운 명장인데, AD 90년경 파미르고원을 넘어 카니쉬카왕의 군대와 일대 격전을 벌려 결국 카니쉬카의 무릎을 꿇게 하고 말았지만, 카니쉬카는 현명하게 화친을 맺고 오히려 파미르고원의 동서에 걸친 실크로드의 요지를 장악하고 로마와 계속 교역했던 것입니다. 카니쉬카왕이 로마의 아우레이(aurei)금화를 모방하여 갖가지 금화를 주조하였는데, 이 금화의 여러 신상 중에서 불타의 모습도 발견되는 것입니다...
부록 14. 초기불교의 정신이 담긴 통도사 우리나라의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 해서 존재 의의를 갖는 사찰로서 그 가람의 성격이 초기불교의 정신에 가장 가깝게 오는 우리나라의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이 통도사를 창건한 스님, 자장율사는 신라 진골출신으로서 인도를 여행한 현장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여기 보이는 사진은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 부르는 통도사의 핵심부이며 중앙에 부도 형태의 스투파(stūpa)가 있다. 그 앞에 있는 대웅전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대웅전은 이 금강계단 스투파에 대한 전실로서의 기능 밖에는 지니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강계단은 선덕여왕대 646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오늘의 모습은 진신사리를 탐내는 외세의 침략..
대승운동의 출발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좌부(Theravāda)와 대중부(Mahāsāṅghika)의 분열을 계기로, 대중부가 발전하여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난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역사적 정황을 전달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중부도 어디까지나 소승부파불교의 일파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이 곧 바로 대승불교로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대승불교 운동에 대중부의 이론이 보다 깊은 영향은 주었을 것입니다. 결국 초기부파불교의 주축이 아라한을 지향하는 상주(常住)의 특수승려집단에 한정되었던 것이라면, 대승불교운동은 아쇼카시대에 극성했던 스투파신앙의 흥기에 따라 파생된 레이맨(layman) 즉 재가 신도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중혁신운동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상주의의 확립 나는 계속 형상(iconic)과 비형상(aniconic), 등신불과 법신불, 대승과 소승의 논제를 계속 풀어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비형상주의적 경건성에 비하여 아주 색다른 표현력을 가진 문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헬라스, 그리스 문명입니다. 크레테섬의 미노아문명에서 출발하여 이방정복자들의 문명을 창조적으로 결합해간 이 그리스 문명은 일찍이 신의 모습을 인성으로 표현하는 데 하등의 주저함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인간주의를 그들의 합리적 사유의 근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초기로부터 아이코노그라피를 발전시킨 것도, 결국 희랍세계와 접목됨으로써 시작된 것이며 예수의 모습도 초기에는 아폴로신상을 닮았던 것인데 로마제국의 제국종교가 된 이후로부터는 희랍의 영향을 받는 로마조각의..
이슬람의 형상거부 “인류의 종교사에 있어서 대중문화ㆍ예술과 관련된 가장 큰 잇슈 중의 하나가 결국 신성(Divinity)을 어떻게 시각화(visual representations)하냐는 문제와 되어 있다고 봅니다. 신은 일체의 시각적 표상을 거부한다든가, 인간외적 물체의 상징으로만 나타난다든가,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된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표상 방법이 있겠는데, 아주 간단히 나누면 아이코닠 이미지(iconic image)와 언아이코닠 이미지(aniconic imagery)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코닉 이미지는 대체로 인간의 형상(anthropomorphic image)과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종교적 아이콘(icon)이라 하면 대체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도의 베다제식전통에서..
소승, 대승, 아잔타! “그리곤 곧 아잔타석굴(the Ajanta Caves)을 가보았습니다. 제가 너무도 유명한 그 아잔타에 관하여 뭐 특별히 얘기할 것이 있겠습니까만, 기원전 200년경부터 기원후 650년경까지 장장 8ㆍ9세기에 걸치는 불교미술, 조각, 건축, 회화의 찬란한 전개를 한 무대에서 굽어볼 수 있다는 감격은 저로 하여금 문헌으로만 접해왔던 불교미술의 프로토타입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틔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잔타석굴을 안내하던 관광가이드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저로 하여금 인류의 종교미술사를 새롭게 정리할 수 있게 만드는 기준을 제공하는 천하의 명언이었습니다.” “그 말이 무엇입니까?” “저보고 묻더군요, ‘소승과 대승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다음과..
부록 13. 아잔타 사원 아잔타는 인도인의 심미적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인도대륙의 가장 위대한 조형물의 하나이다. 감정적인 연루가 없이 아잔타석굴을 본다는 것은 천하의 불경이다. 아잔타는 돈황에서 우리나라 석굴암에 이르는 모든 석굴의 아키타입이다. 그것은 BC 2세기 소승의 시대로부터 AD 7세기, 엘로라에 바톤을 넘겨주기까지 번창했던 비하라(승방)와 차이띠야(caitya, 法堂)의 밀집취락이었다. 아우랑가바드의 북서쪽 101km, 잘가온(Jalgaon)의 남쪽 55km 지점에 위치하며 인도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였으며 ‘데칸의 문’이라 불리었다. 우리나라 하회(河回)와 같이 생긴 와고라강(Waghora River)의 흐름으로 침식된 높이 6m에 이르는 반월형(말발굽형)의 절벽에 구멍을 파들어간..
신화 속에 사는 인도인 우리나라 석굴암의 본존불의 상호에서 감지하는 고요한 적막 속에 살포시 눈썹을 내리감은 영원한 평화의 느낌, 그러한 느낌의 보다 장쾌한 깊이를 엘레판타의 마헤사(위대한 주, the Great Lord)의 모습에서 저는 발견했습니다. 영원한 명상 속에 살포시 내리감은 눈, 육감적인 도툼한 입술, 기다랗게 내려뜨린 귀, 날카로운 눈썹의 선율, 얼굴보다 더 높게 땋아올린 머리카락의 화려한 더미, 찬란한 목걸이 장식, …… 인도의 어느 곳에서 본 조각의 상호보다 이 시바의 얼굴은 뛰어난 세련미와 웅혼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카일라사 산에서 파르바티와 성교를 하고 있는 시바를 저주하기 위해서 카일라사 산을 번쩍 들어버릴려고 용솟음 치는 랑카의 마왕 라바나(Ravana)를, 부인을 껴안..
석굴암 성하께서 한국에 오시게 되면 딴 곳은 몰라도 꼭 한 군데는 가보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조선의 옛 왕국 신라의 고도 경주의 토함산 꼭대기에 있는 흔히 석굴암이라고 불리는 석불사(石佛寺)라는 곳이지요【경덕왕(景德王) 창건 당시 이 석굴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다. 김대성(金大成, 700~774)의 발원에 의하여 이 석굴사원의 공사가 시작된 것은 경덕왕 10년(751)이었다. 그 뒤로 약 30년에 걸쳐서 공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黃壽永 編著, 『石窟庵』(서울 : 藝耕産業社, 1980), pp.18~20.】. 동해바다에서 첫 일출의 햇살이 떠오르는 순간 이 석굴 속의 본존불의 이마를 비추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온 전신이 보드라운 여인의 살결처럼 살아 움직이지요. 지금은 전실이 지어져서 이..
부록 12.4. 환조와 본존불에 대해 여기 환조(丸彫)라는 말은 부조(浮彫)와 대비되어 쓰이는 미술사의 용어인데, 그것은 좌우앞뒤 4면을 모두 조각한 통조각 작품이라는 뜻이다. 초기불상들을 잘 살펴보면 환조같이 보이는 것도 실상은 뒷면이 처리가 안 된 부조(relief)일 경우가 많다. 벽에 조각해 들어갈 때는 환조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간다라ㆍ마투라의 불상들이 모두 부조작품에 속하는 것이며 환조는 그 이후의 발전이다. 벤자민 로울랜드 지음, 이주형 옮김, 『인도미술사』(서울 : 예경, 1999), p.125. 그리고 석굴암의 본존(本尊)의 명호(名號)에 관하여 여러가지 논의가 있으나 이 본존은 그냥 소박하게 석가모니 부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황수영(黃壽永)선생은 석굴암 본존이 아미타불(阿彌陀佛)임이..
엘레판타의 석굴 “저는 인도에서의 첫날밤을 뭄바이의 하버 베이(Harbour Bay)에서 지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창문을 열어보니 아라비아해면으로 반사되는 찬란한 햇살 저편에 그 유명한 게이트웨이 어브 인디아(Gateway of India)가 보이더군요. 첫날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게이트웨이 뒷켠을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섬 관광을 가는 배가 있다기에 별 생각 없이 올라탔습니다. 동북쪽으로 9km가량을 가니까 엘레판타라는 섬(Elephanta Island)에 도착하더군요. 저는 이곳 유적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었습니다. 엘레판타는 학구적으로 소개된 책자가 거의 없이 방치된 유적이었으니까요. 열대의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긴 계단을 올라가 섬의 중턱에 있는 석굴에 당도했을 때, 무방비상태..
부록 12.3. 석굴암에서의 추억 이 사진을 여기 공개할 수 있게 된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아홉살 때 석굴암의 모습인데 이 사진의 위대성은 동해일출의 햇살이 부처님의 이마를 한 줄로 비추고 있는 바로 그 현장을 담았다는 사실에 있다. 당시에는 전실이 없었다. 신라인의 석굴암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의 추억은 아련하면서도 생생하다. 엄마 주먹 속에 쥐어진 고사리 손을 따라 꼬불꼬불 넘고넘고 또 넘어도 여명이 밝을 줄 몰랐던 토함산! 그 토함산의 정상에서 동해바다를 바라 보았을 때 옥색 수평선의로 방울방울 맺힌 빛방을이, 점점 모여 달걀의 노른자위처럼 뭉치더니 둥실둥실 떠올랐다. 갑자기 찬란한 빛줄기를 발하자 부처님의 이마를 한줄로 비추었고 은 몸이 살아있는 여인의 감추어진 피부처럼 ..
부록 12.2. 관세음보살과 달라이라마 관세음보살은 우리가 잘 외우는 『반야심경』에는 관자재(觀自在)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보는 것이 자유자재로운 보살’이라는 뜻이다. 관세음이란 문자 그대로 하면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를 본다’는 뜻인데 하여튼 중생의 고통과 더불어 하며 이 세상에 끝까지 남아 세상을 구원하는 자비의 화신이다. 관세음보살은 원래 남성이다. 그러나 그 표현은 지극히 여성적이다. 온갖 화려한 영락(구슬)을 몸에 휘감으며 비치는 샤리가 흘러내리는 사이로 섬세한 손가락이 우리를 매혹시킨다. 왼손은 활짝 핀 꽃이 담긴 정병을 젖가슴 밑으로 치켜들고 있고, 발은 활짝 핀 연꽃을 살짝 딛고 있다. 관음의 특징은 두상에 있다. 본래의 얼굴 이외로 두부에 11개의 얼굴이 있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
부록 12.1. 석굴암 본존의 자태 석굴암의 본존불과 그 주변의 감실. 감실의 존재는 석굴의 깊이를 주며 천연동굴의 자연미를 자아낸다. 이 석굴암의 성립연대가 아잔타 석굴의 하한선에서 불과 2세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할 때 신라 석공들의 손길의 세련미와 그 기하학적 조형성의 완벽미는 세계불교미술사의 한 경이라고 할 것이다. 그 근엄한 자태의 그윽함은 가히 비견할 곳이 없다. 석굴암 본존의 자태는 전통적으로 규정해온 32상의 모든 뛰어난 속성을 구현한 이상적 형상이다. 그러나 신라석공의 손길은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완벽한 환조이며 편단우견의 옷자락이 등 뒤로 흘러내린 맵씨의 자연스러움은 비단결보다 더 고운 표현이다. 이런 섬세함은 인도ㆍ중국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
인도야말로 세계의 중심 달라이라마는 하나의 군주로서 볼 때에도 정말 개명한 군주였다. 마음이 열려있고 부패하지 않았으며 모든 도전 속에도 명랑한 자신감을 잃지 않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는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돌리려는 듯 엉뚱한 질문을 했다. “도올선생은 인도에 처음 오신 겁니까?” “네, 처음입니다. 성하 덕분에 꿈에만 그리던 환상의 인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 참 많은 것을 느끼셨겠군요. 우리 티벹인들은 인도를 아랴부미(Aryabhumi)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땅(the Land of the Holy)이라는 뜻이지요. 나 역시 인도에 한번 스쳐 오는 것을 등에 그쳤습니다. 제가 인도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56년 겨울의 일이었습니다. 그때의 감회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라즈가..
잉글리쉬교육과 잉글리쉬 마인드 달라이라마는 다음과 같은 웅변으로 자신의 지식에 대한 논지를 매듭지었다 “나는 달라이라마라는 제도에 의하여 어려서 발탁이 되었고 그래서 고독한 유년기ㆍ청년기를 포탈라궁에서 보냈습니다. 제가 티벹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라마 14세로서 공식적으로 즉위하여 포탈라궁의 사자좌에 앉은 것이 1940년 겨울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때 나의 나이가 만 5세였습니다. 나는 그때 취임식에 대한 기억조차 별로 없습니다. 보석장식이 달려있고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커다란 나무의자에 앉아있었던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바깥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시계를 분해했다 조립했다 하는 기계조작의 취미를 ..
지혜와 지식 달라이라마의 논리는 매우 명료했다. 나는 이어 인간의 지식에 관한 또 하나의 주제를 끄집어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불교가 과학적 세계관이나 과학적 가치와 접목됨으로써 앞으로 닥쳐올 인류의 미래를 리드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불교는 과학에 대해서 보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과학적 사유의 본령 속으로 깊게 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종교적 지도자들이 너무 무식합니다. 원래 과학이라는 말은 스키엔티아(scientia)라는 라틴어에서 온 표현인데, 그것은 지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계에 관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의 원래적 의미는 앞서 말씀드린 그노시스(Gnosis), 즉 영지(靈知)였습니다. 이 그노시..
불교와 정신적 패러다임 나는 물었다. “불교는 무신론(atheism)이라는 저의 말에 동의하십니까?” “물론이지요! 유신론의 전제는 반드시 이 세계에 대하여 이 세계 밖에 있는 창조주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도 인간 밖에 구세주(Savior)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으며 구세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우주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자로서의 신의 개념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는 불교는 분명한 무신론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진정한 과학의 힘을 믿는 모든 상식인들은 그 상식의 논리에 철저하기만 한다면 모두 무신론자(atheist)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의 종교인들은 무신론하면 아주 나쁜 말인 것처럼 생각하..
불교는 과학이다 달라이라마는 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들어주었다. 그리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서양인들에게 불교가 아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사실 달라이라마가 왜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보다도 몸소 그런 방면에 있어서 체험적인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서구인의 정신적 위기,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 등등의 클리쉐(cliché)를 되씹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제가 충분한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저는 사실 서양인들에게 불교가 아필된다, 이런 말을 근본적으로 하기가 싫습니다. 지금 동양과 서양, 이런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러..
새로운 세계사 전환의 계기 “깨우치는 바가 큽니다. 그러나 헤겔의 언급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하나의 이야기를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는 본시 인도의 종교입니다. 현재 불교는 인도 자체에서는 괄목할 만한 족적을 남기고 있지 않지만, 대승불교ㆍ밀교를 포함해서 모든 불교의 원형은 분명히 인도문명에서 잉태되고 장육(長育)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잉태되고 성장한 이 인도라는 토양은, 드라비다족으로 추정되는 원주민의 문명을 잠시 도외시하고 이야기하자면, 인도-유러피안어군에 속하는 산스크리트어를 조형으로 하는 인도 아리안어족의 문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여태까지 논의한 초월적 종교의 모든 원형은 함족ㆍ셈족어군(Hamito-Semitic languages)의 문명 속에서 태어난 것입니다【함족ㆍ셈족어군(Ha..
야크를 탄 세계정신 이 부분에서 그의 말씨는 매우 무거웠고 매우 또박또박했다. 나는 짓궂게 또다시 물었다. “모택동(毛澤東, 1893~1976)에게 또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너무 많지요!” 이런 말을 하면서 그는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의 호탕한 웃음을 따라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를 떠돌이 신세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 인류에게 불법(佛法)이 전파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티벹 사람들에게 한없는 고통을 주었을지언정, 그는 우리 티벹인민들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과거의 고립상태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흐름에 참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광막한 고원의 적막 속에 갇혀있다가 바깥세상을 배우..
모택동에게 애도를 표한 달라이라마 나의 어조에 담긴 절묘한 새커즘(Sarcasm, 빈정거림, 풍자)을 달라이라마는 정확히 다 파악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유쾌하게 깔깔 웃었다. 이런 말을 하며는 좀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에 로마교황이 나타나면 도로변에 마중 나온 사람들은 그 대부분이 비대한 흑인들이나 삶에 지친 서민들의 얼굴이다. 그러나 달라이라마가 맨하탄에 한번 나타나면 센트랄 파크의 잔디밭을 메우는 엄숙한 수만의 군중은 75%가 대학원 졸업생들이라고 한다. 현재 미국 불교도의 60%가 박사며 의사며 변호사며 회사고위간부 등, 프로펫셔날(professional)들이 차지한다. 미국사회의 인텔리겐챠(intelligentia, 지식노동자)들은 더 이상 기독교로부터 새로운 문명의 젖줄을 발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