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어휘사전 - 211. 염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11. 염

건방진방랑자 2020. 4. 28. 13:27
728x90
반응형

211.

 

 

염가(艶歌)

비파(琵琶)의 곡조. 악부시집(樂府詩集)』 「슬조곡(瑟調曲), “古今樂錄曰 艶歌行非一 有直云艶歌卽艶歌行是也 若羅敷 何嘗 雙鴻 福鍾等行 亦皆艶歌라고 보인다.

 

염거(鹽車)

소금 수송하는 수레. 이는 양마(良馬)가 노마(駑馬)와 어울려 소금수레를 끈다는 말로, 사람의 불우지탄(不遇之嘆)을 말한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소금을 실은 수레를 말한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늙은 기()가 소금 수례를 끌고 태항산(太行山)을 오를 적엔 녹즙(漉汁)을 땅에 뿌리고 흰 땀이 아울러 흘러 중판(中坂)에서 배회하며 올라가지를 못한다[夫驥之齒至矣, 服鹽車而上大行. 蹄申膝折, 尾湛胕潰, 漉汁灑地, 白汗交流, 中阪遷延, 負轅不能上].” 하였는데, 이는 어진 인재가 천역(賤役)에 곤한 경우를 비유한 것이다.

 

염거곤(鹽車困)

높은 재주, 큰 인물이때를 만나지 못하여 천한 역()에 종사한다는 말이다. 가의(賈誼)조굴원부(弔屈原賦)천리마가 두 귀를 늘어뜨리고 소금수레를 끌도다[驥垂兩耳兮服鹽車].”라 하였다.

 

염거곤양기(鹽車困良驥)

백락(伯樂) 손양(孫陽)이 일찍 우판(虞板)을 지나다가 보니, 천리마(騏驥)가 소금 수레 밑에 엎드려 있다가 백락을 보고 길이 우는지라, 백락이 수레에서 내려 보니 천리마가 이에 고개를 쳐들고 우는데 그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다 한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염거류기기(鹽車類騏驥)

재능은 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함을 한탄한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염거태항(鹽車太行)

큰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 작은 일에 쓰여져서 곤경에 처한다는 뜻이다. 태항산의 길은 꼬불꼬불하여 험난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4, “천리마라도 나이가 늙으면 소금 수레에 매여 태항산을 오르게 되는데, 고갯길이 꼬불꼬불하여 오르지 못한다.” 하였다.

 

염건막견곤화류(鹽車莫遣困驊騮)

현재(賢才)가 둔재(鈍才)와 뒤섞여 불우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염경(斂耕)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임금이 들을 순시하여 봄에 가는 것()을 살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고, 가을에는 추수하는 것을 살펴서 넉넉하지 못한 것을 도와 준다[春省耕而補不足, 秋省斂而助不給].” 하였다.

 

염계(濂溪)

물 이름인데,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가 여산(盧山)에 옮겨 살면서 자기 고향에 있는 염계(濂溪)의 이름을 따왔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염계 선생이라 했다. 주돈이는 태극도(太極圖)및 통서(通書) 등을 지었고, 성리학(性理學)의 개조(開祖)가 되었으므로 도통을 이었다 한다.

 

염계(濂溪)

() 나라 도학자 주돈이(周敦頤)의 호이다. 처음 호남성(湖南省) 도현(道縣)에 있는 염계 가에 살았으므로 이른 말인데, 나중에는 여산(廬山)의 연화봉(蓮華峯) 아래로 옮겨가 살았다. 그는 꽃 중에서도 특히 연꽃을 좋아하여 이를 군자(君子)에 비유하면서 애련설(愛蓮說)이라는 글을 짓기도 하였다.

 

염계옹(濂溪翁)

송대(宋代)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염계는 그의 호이다. 그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을 군자(君子)에 비유해 극찬하였다. 고문진보(古文眞寶)後集

 

염고(閻顧)

당 나라 때 초상화를 잘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염입본(閻立本)과 진()나라 때의 화가 고개지(顧愷之)를 가리킨다.

 

염공(髥公)

수염이 아름다워 조조(曹操)로부터 미염공(美髥公)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삼국 시대 촉() 나라 관우(關羽)의 미칭이다.

 

염관(炎官)

전설 속에 나오는 화신(火神)의 이름이다.

 

염구(冉求)

공자의 제자인데, 일찍이 노() 나라 대부(大夫)로서 참례(僣禮)를 일삼던 권신 계손씨(季孫氏)의 가신(家臣)이 되어 그를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방조한 일로 공자에게 견책을 받았었다. 논어(論語)

 

염국(染局)

옷감에 물감을 들이는 관서. 곧 제용감(濟用監)을 가리킨다

 

염군(閻君)

() 나라 만년(萬年) 사람 염입덕(閻立德)을 말한다. 정관(貞觀) 연간에 장작대장(將作大匠), 공부 상서(工部尙書)를 역임하고 회화(繪畫)로 이름이 있었다. 당서(唐書)卷一百

 

염기(炎氣)

화기. 중기.

 

염념(淰淰)

걸리고 막힘

 

염념불망(念念不忘)

항상 생각하여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염노(念奴)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창(名娼)의 이른다. 그는 특히 창가를 잘하기로 유명하였다. 유사(遺事)염노는 얼굴이 곱고 노래를 잘하여 하루도 임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단판(檀板)을 잡고 자리에 나와 좌우를 돌아볼 적마다 임금이 귀비에게 저 아이는 너무 요염하여 눈매가 사람을 미혹시키며 목청을 굴려 노래할 적에는 그 소리가 마치 아침 놀(朝霞) 위에서 나오는 듯하여, 종고(鍾鼓)와 쟁우(箏竽) 따위가 아무리 시끄럽게 울려도 그 소리를 가로막을 수 없다.’ 하였다. 여러 궁기(宮妓)들 중에서 임금의 특별한 귀염을 받았다.” 하였다.

 

염단(髥斷)

시를 읊으면서 수염을 쓰다듬어 끊어진다는 말로, 시 쓰기가 그만큼 괴롭다는 뜻이다. 노정양(盧廷驤)의 고음시(苦吟詩)한 글자를 읊어 이루매 두어 줄기의 수염 쓰다듬어 끊기네[吟成一箇字 撚斷數莖髥]”라고 하였다.

 

염덕(炎德)

남방은 오행상 화에 속한다. 햇볕의 따뜻함을 말한다.

 

염락(濂洛)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준말이다. 송대(宋代) 성리학의 주요 학파로,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호(程顥)ㆍ정이(程顥),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성리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염락소류(濂洛泝流)

주렴계(周廉溪)와 정자(程子)공자(孔子)처럼 근원을 다 알지 못하고 아래의 흐름에서부터 위로 거슬러 찾아간다는 말이다.

 

염락체(濂洛體)

송 나라의 염계(濂溪)ㆍ낙양(洛陽) 지방에 살던 주돈이(周敦頤)ㆍ소옹(邵雍)ㆍ정호(程顥) 등 학자의 문체를 말한다.

 

염량세태(炎凉世態)

따뜻하면 붙고 서늘하면 버리는 세상의 태도. 세력이 있을 때는 붙좇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속의 인심.

 

염렴(溓溓)

살어름이 어는 모양, 잔물결 이는 모양

 

염마천왕(琰魔天王)

귀신 세계의 수령으로서 사후의 유명계를 지배하는 왕.

 

염매(鹽梅)

음식의 양념이 되는 소금과 매실(梅實)이다. 서경(書經)열명(說命)에 은()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정승으로 임명하면서, “너는 짐의 뜻을 가르쳐서 만약 술과 단술을 만들면 네가 누룩과 엿기름이 되며, 만약 간을 맞춘 국을 만들거든 네가 소금과 매실이 돼라.(若作和羹 爾惟鹽梅)” 한 데서 온 말로, 꼭 필요한 인재가 임금을 잘 보좌하여 좋은 정사를 베풀게 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서경(書經)』 「열명(說命)

 

염매은정(鹽梅殷鼎)

염매(鹽梅)는 국 끓일 때 조미료(調味料)로 쓰이는 소금과 매실(梅實). 소금과 매실의 비율이 맞아야 국맛이 좋듯이, 신하가 임금을 잘 보좌해야 훌륭한 치적을 올리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서경(書經)』 「열명(說命)국 끓일 때 그대는 염매의 구실을 하라.”는 대목에서 온 문자인데, 은 고종(殷高宗)이 부열(傅說)에게 한 말이므로 은 나라 솥이라 한 것이다.

 

염사(艶詞)

남녀간의 애정을 술회하는 노래, 즉 연가(戀歌)와 같은 뜻이다.

 

염상(炎上)

타오르는 불을 이른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火曰炎上.”이라고 보인다.

 

염생(冉生)

중국 사천성 무현(茂縣)을 점거하고 있던 오랑캐 부족 염방(冉駹)으로서, 여기서는 청() 나라의 군대를 의미한다. 사기(史記)』 「서남이전(西南夷傳)

 

염서(鹽絮)

()을 노래한 시를 말한다. () 나라 사안(謝安)의 조카 사랑(謝朗)은 눈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는 소금을 공중에 뿌려 놓은 것에 그런대로 비유할 만하다[散鹽空中差可擬].”라고 하고, 이에 대해 질녀인 사도운(謝道韞)버들강아지가 바람에 날린다고 하는 것이 낫겠다[未若柳絮因風起].”고 한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列女傳 왕응지처사씨(王凝之妻謝氏)

 

염선소조(念仙搔爪)

채경(蔡經)이 마고(麻姑) 선녀가 낟알을 던지니 모래가 되는 것을 보고는, 그 긴 손톱으로 가려운 등을 긁었으면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염수(染鬚)

늙은 사람이 장년(壯年)으로 꾸밈을 이른다.

 

염숙도(廉叔度)

숙도는 염범(廉范)의 자이다.

 

염신(炎神)

남방의 신.

 

염여퇴(灩澦堆)

배를 타고 무사히 건너가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험하다는 장강(長江) 구당협(瞿塘峽)의 큰 암석이 있는 여울물 이름이다. 겨울철에 강물이 줄어들면 수백 척이나 우뚝하게 드러나고 여름에 강물이 불면 수십 척이나 물에 잠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말과 같으며, 뱃사공들이 무서워서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고 한다. / 인용: 灩澦堆(홍섬), 長干行(이백)

 

염염(淡淡)

물이 순하게 흘러 편편하게 차는 모양, 물이 흔들리어 움직이는 모양, 사물의 그림자가 아른아른한 모양.

 

염염(剡剡)

번쩍번쩍 빛나는 모양, 일어서는 모양.

 

염염(冉冉)

부드러워 아래로 늘어진 모양. 세월 같은 것이 가는 모양. 향기가 나는 모양.

 

염염(懕懕)

편안한 모양, 병을 앓는 모양.

 

염염(厭厭)

편하고 고요한 모양, 성하게 자라는 모양, 희미하고 어두운 모양, 나약한 모양, 기분이 좋은 모양.

 

염염(念念)

항상 마음에 둠, 생각마다, 아주 짧은 순간.

 

염양천(艷陽天)

아름다운 청춘의 때를 말한다. 염양(艷陽)봄날의 아름다운 풍광을 말하고, ()운명을 말한다. / 인용: 江南女(최치원)

 

염옹(髥翁)

() 나라 서림(徐霖)을 이른다. 순수(巡狩)하던 무종(武宗)을 호종하여 서울까지 왔었으나 벼슬을 주자 굳이 사양하고 돌아갔음. 그는 자호를 염옹이라 할 만큼 수염이 남달리 아름다웠다고 한다. 명사(明史)286

 

염용(斂容)

자숙하여 몸가짐을 조심하고 용모를 단정히 함. / 인용: 柳居士(홍신유)

 

염우(廉隅)

품행이 바르고 절개가 굳음을 말한다. / 인용: 昆侖奴(신광하)

 

염우부(鹽雨賦)

다산(茶山) 49세 때인 순조 10(1810) 7월에 강진(康津)의 유배지에서 폭풍우로 산야의 초목과 곡물이 혹독한 피해를 당한 것을 목격하고 지은 작품이다.

 

염유(恬愉)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염이(扊扅)

지극히 빈한한 가정 살림을 말한다. 백리해사(百里奚詞)라는 고악부(古樂府)생각하면 이별할 때 씨암탉 삶아 주고 문짝 뜯어 밥했는데 오늘날 부귀하니 나를 잊어버렸구나[憶別時 烹伏雌 炊扊扅 今日富貴 忘我爲].”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보통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염이가(扊扅歌)

금곡(琴曲)의 이른다. 백리해(百里奚)의 아내가 지었다. 백리해(百里奚)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에서 벼슬하였으나 우가 멸망하자 곤궁하였다. 그 후 진()의 재상이 되었는데 옛날에 헤어진 그의 아내가 찾아와 이별할 때, 염이(扊扅; 사립문 받침대)를 떼어 암탉을 삶아 주었더니, 부귀해서는 나를 잊는가? (憶別時 烹雌鷄 炊扊扅 今日富貴 忘我爲)”라는 노래를 불렀다. 여기에 염이란 말이 있으므로 염이가라 한 것이다.

 

염인(廉藺)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공신인 염파(廉頗)인상여(藺相如)를 말한다.

 

염인고풍(廉藺高風)

염파(廉頗)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명장(名將)이다. 인상여(藺相如)화씨벽(和氏璧)과 관련된 외교 문제를 멋있게 처리하고 진() 나라에서 돌아와 상경(上卿)이 되자, 염파가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앉았다고 하여 모욕을 가했는데, 인상여가 국가의 급선무를 우선하고 사감(私感)을 뒤로 돌리자, 염파가 그를 찾아가 사과한 뒤 함께 국사에 진력했던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염장(斂葬)

시체를 염습하여 장사지냄.

 

염절(廉折)

옛 음악의 용어인데 날카롭고 급한 소리를 말한다. 사기(史記)』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小弦廉折이라 하였다.

 

염정(廉貞)

청렴하고 곧은 것

 

염제(炎帝)

농업과 의약을 관장하는 신()인 신농씨(神農氏)를 말한다.

남방을 다스리는 신으로 여름과 불을 주관한다고 한다.

 

염제친소상(炎帝親所嘗)

염제(炎帝)는 신농씨(神農氏), 책은 신농본초(神農本草)를 가리킨다. 신농씨가 각종 초목의 맛을 보며 온갖 질병에 대해 처방을 제시했는데, 후세에 이를 전승하여 신농본초(神農本草)라는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기(史記)』 「삼황기(三皇紀)통지(通志)』 「삼황기(三皇紀)

 

염조(鹽竈)

소금을 굽는 가마를 말한다.

 

염주(炎洲)

전설 속에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솟는다고 하는 남해(南海)의 섬을 말한다.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 “염주는 남해 바다 속에 있는데, 사방이 2천 리이고 북안(北岸)에서의 거리가 9만 리이다.” 하였다.

 

염지(染指)

좌전(左傳)고기 국물속에 손가락을 넣어 맛보면서 침을 흘린다는 뜻이다[染指垂涎].”는 말이 나오는데, () 나라 자공(子公)이 평일에 진기한 음식을 얻어먹게 되면 반드시 식지(食指)가 동하였다. 하루는 자공이 영공(靈公)을 보러 들어가는데, 식지가 동하므로 같이 가던 자가(子家)도 함께 들어가니 과연 자라()를 잡아서 국을 끓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보고 웃으니 영공이 물었다. 자가가 이야기를 하였더니, 영공이 자공에게는 국을 주지 않았다. 자공은 국솥에 손가락을 넣어서 찍어서 맛을 보고 나왔다. 춘추좌전(春秋左傳)宣公 4

 

염지미상선타이(染指未嘗先朶頤)

먹고 싶은 욕심에 입맛을 다시면서 침을 흘리는 것을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공자 자공(子公)이 자라 요리를 먹지 못하게 되자 자라 삶은 솥 속에 손가락을 담갔다가 그 손가락을 빨면서 나갔다[染指於鼎 嘗之而出]는 이야기가 전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宣公 4/ 주역(周易)이괘(頤卦) 초구(初九)그대의 신령스러운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고서 턱을 움찍거리니 흉하다[舍爾靈龜 觀我 朶頤 凶].”는 말이 있다.

 

염진(炎塵)

무더운 낮에 일어나는 먼지를 말한다.

 

염차광생(厭次狂生)

염차(厭次)는 고을 이른다. 한대(漢代)의 부평(富平)ㆍ동방삭(東方朔)이 평원(平原) 염차 사람으로 자칭 염차의 광생이라 하였으며, 그는 해학에 뛰어나고 사부(辭賦)에도 능했다.

 

염차태행(鹽車太行)

현재(賢才)가 세상에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매몰되어 곤경에 처한 것을 말한다. 옛날 천리마(千里馬)가 소금 수레(鹽車)를 끌고 태항산(太行山)을 올라가다가 더 이상 못 가고 쓰러졌는데, 백락(伯樂)이 이 말을 알아보고는 통곡을 하며 옷을 벗어 덮어 주자, 천리마가 백락을 쳐다보며 슬프게 울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4

 

염촉사인(厭髑舍人)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 때에 불법(佛法)을 위해 몸을 바친 박염촉(朴厭髑)의 사실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상세하며 사인(舍人)은 염촉의 벼슬이다.

 

염파(廉頗)

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의 명장인데, 풍당이 문제에게 위상을 풀어주라고 간하기에 앞서 문제가 내가 염파와 이목을 얻어 내 장수로 삼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 그랬더라면 내가 어찌 흉노를 걱정할 일이 있겠는가[嗟乎! 吾獨不得廉頗李牧時爲吾將, 吾豈憂匈奴哉!].” 하자, 풍당이 지금 위상 같은 인물도 제대로 부려쓰지 못하면서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뜻으로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비록 염파와 이목을 얻었더라도 능히 쓰지 못할 것입니다[陛下雖得廉頗李牧, 弗能用也].” 하였다. 사기(史記)卷一百二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염파복(廉頗伏)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조왕(趙王)과 진왕(秦王)이 민지((澠池)에서 주연(酒宴)을 베풀 때 진왕의 강요로 조왕이 비파()를 타니, 조왕을 따라갔던 인상여(藺相如)가 격분하여 진왕에게도 장구 치기를 청하였다. 진왕이 즐겨 치지 않으니 인상여가, “왕이 장구를 치지 않으면 신()이 다섯 걸음 안으로 목을 찔러 피를 왕에게 뿌리겠습니다.” 하니, 진왕이 할 수 없어 장구를 쳤다. 조왕이 민지에서 돌아와서 인상여에게 장군 염파(廉頗)보다 높은 벼슬을 주니, 염파가 불평하다가 나중에는 인상여의 도량에 감복하였다.

 

염파복고의(廉頗伏高義)

염파는 조 나라 장군으로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는데, 조왕은 민지의 모임에서 돌아와 인상여(藺相如)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상경(上卿)을 시키니 지위가 염파의 위였다. 염파는 이에 불만을 품고 상여와 대전할 것을 결심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상여는피하고 만나지 않았다. 집 식구들이 의심하자 상여는 대답하기를 나는 강폭한 진 나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염 장군(廉將軍)을 두려워하겠는가. 현재 염 장군과 나는 이 나라의 두 범인데 만일 두 범이 싸운다면 누군가 하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진 나라에 이익을 안겨 주는 것이니 내가 피하는 것은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고 개인의 감정을 뒤에 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매를 짊어지고 가서 사과한 다음 친교를 맺었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염한(炎漢)

() 나라를 가리킨다. 한 나라는 화덕(火德)으로 나라를 세웠으므로 이렇게 칭한다.

 

염해(拈解)

선리(禪理)의 참오(叅悟)를 이른다. 전등록(傳燈錄)世尊在靈山會上 拈華示衆 是時 衆皆黙然 惟迦葉尊者破顔微笑라 하였다.

 

염화미소(拈花微笑)

석가(釋迦)가 연꽃을 따서 제자들에게 보였는데, 아무도 그 뜻을 해득하는 자가 없고 다만 가섭(迦葉)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를 짓자, 석가가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수하였다. / 유의어: 염화시중(拈華示衆)

 

염화시중(拈華示衆)

석가모니가 연꽃을 따서 들고 대중들에게 보이자 대중들이 석가의 마음을 알지 못했는데 가섭만이 그 뜻을 알았다는 이야기로,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도()를 전하는 것을 말한다. / 유의어: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

 

염황(炎黃)

상고 시대 성왕(聖王)이었던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와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를 합칭한 말이다.

 

 

인용

목차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어휘놀이터 > 어휘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휘사전 - 213. 영  (0) 2020.04.28
어휘사전 - 212. 엽  (0) 2020.04.28
어휘사전 - 210. 열  (0) 2020.04.28
어휘사전 - 209. 연  (0) 2020.04.28
어휘사전 - 208. 역  (0) 2020.04.2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