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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어휘사전 - 209. 연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09. 연

건방진방랑자 2020. 4. 2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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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

임금의 수레

(수레로) 나르다.

 

()

한시(漢詩)의 대구(對句).

 

연가(燕歌)

비장(悲壯)한 곡조의 노래를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자객(刺客) 형가(荊軻)가 진왕(秦王)을 죽이려고 떠날 때 역수(易水) 위에서 차가운 역수 가에 바람결 쓸쓸한데, 장사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노래를 부른 고사가 있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연가점여주인유(燕歌漸與酒人游)

형가(荊軻)가 뜻을 품고 사방을 주유하다가 연()에 와서는 시장의 개백정 또는 술꾼과 어울려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하면 노래를 하다가 또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다가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듯이 놀았다는 것이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형가(荊軻)

 

연각(軟脚)

원방(遠方)의 여정(旅程)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에게 대접하는 술로서, 즉 환영연(歡迎宴)을 의미한다.

 

연각주(軟脚酒)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하는 술로, 먼 길을 돌아온 사람을 위해 마련하는 연석(宴席)을 말한다.

 

연강(連江)

강물 위에까지 연이어.

 

연객(淵客)

물속에 사는 교인(鮫人)의 별칭으로 바로 인어(人魚)이다. 좌사(左思)오도부(吳都賦)연객이 울음을 울면 눈물이 모두 진주로 된다.” 한 주에 연객은 교인이다.” 하였고, 몽구(蒙求)』 「연객읍주(淵客泣珠)에는 인어가 인가에 기숙하고 여러 날 동안 비단을 팔았으며, 돌아갈 때는 소반에 구슬을 떨구어 주인에게 주었다.” 하였다.

 

연객(煙客)

영조 때 시서화(詩書畫)에 뛰어나 삼절(三絶)로 이름났던 허필(許佖)의 호이다. 자는 여정(汝正),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보다 학문에 열중하였다.

 

연객직초(淵客織綃)

연객은 교인(鮫人) 즉 인어(人魚)이다. 물속에 사는 교인이 인가(人家)에 머물면서 명주를 짜놓고 돌아갔다 한다. 몽구(蒙求)卷上 연객읍주(淵客泣珠)

 

연갱복(連更僕)

예기(禮記)』 「유행(儒行)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것인데, 주인의 하는 말이 너무도 많아 옆에 있는 시자(侍者)가 먼저 피로하게 되므로 시자를 자꾸 교체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연거(輦車)

임금이 타는 수레 / 유의어: 연곡(輦轂) / 인용: 五學論(정약용)

짐을 운반하는 여러 사람이 끄는 수레 / 인용: 大賈(이조원)

 

연건(淵騫)

()은 안연(顔淵)이요, ()은 민자건(閔子騫)이니, 모두 공자의 제자로서 덕행(德行)가 있는 분들이다.

 

연견(鳶肩)

솔개가 앉아 있으면 양쪽 날개의 어깨 부분이 위로 뾰족하게 튀어나오므로, 몸이 몹시 야위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연결인(捐玦人)

패옥 버린 사람이란 곧 초() 나라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초사(楚辭)』 「구가(九歌)내 패옥을 강 가운데 버리도다[捐余玦兮江中].”하였고, 심주(沈周)의 제화시(題畵詩)에는 물풀의 꽃 손에 쥐고 실망하여 탄식하노니 짝지어 상군께 푸닥거리할 사람도 없네[手把蘋花却惆悵 無人作伴賽湘君].”하였다.

 

연계(蓮界)

연화세계(蓮花世界).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 세계로 화엄세계(華嚴世界) 또는 극락세계(極樂世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곡(燕谷)

한곡(寒谷). 유향별록(劉向 別錄)() 나라에 한곡이 있는데 추연(鄒衍)이 율()을 불매 온기(溫氣)가 이르렀다.” 하였다.

 

연곡사온율(燕谷思溫律)

() 나라에 서곡(黍谷)이란 곳이 있는데 추워서 오곡이 나지 않는다. 추자(騶子)가 음률을 불어넣으니 따뜻한 기운이 생겼다.

 

연공(燕公)

() 나라 현종 때의 재상 장열(張說)의 봉호이다.

 

연공필(燕公筆)

문장이 화려함을 비유한 말이다. 연공(燕公)은 당()나라 장열(張說)의 봉호인데, 장열은 문장이 매우 뛰어나서 당시에 대수필(大手筆)이라 일컬어졌었다. 당서(唐書)卷一百二十五

 

연관사(捐館舍)

살던 집을 버린다는 뜻으로, 사망의 경칭(敬稱)이다. / 유의어: 연관(捐館) / 인용: 題自庵詩帖(윤근수)

 

연광정(練光亭)

평양(平壤) 덕암(德巖) 위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 인용: 夜登練光亭(김창흡)

 

연구(聯句)

두 사람 이상이 모여 각자 돌아가며 한 구씩 읊어 하나의 시를 완성하는 시 작법(詩作法)의 하나이다.

 

연구(煉九)

신선(神仙)의 단약(丹藥)을 제련하는데 아홉 번의 단계를 경과하여야 완성된다 한다.

 

연군(烟軍)

은혈(銀穴)을 뚫는 사람. 지금의 광부(鑛夫)를 말한다.

 

연군서(練裙書)

손님들의 귀여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남송(南宋)의 양흔(羊欣)은 불의(不疑)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가 오정령(烏程令)이 되었을 때에 흔의 나이는 겨우 12세였다. 그때에 왕헌지(王獻之)가 오흥 태수(吳興太守)가 되어 그를 몹시 사랑하였다. 한 번은 여름에 헌지가 현()에 들어갔는데, 흔이 새 비단 바지를 입고 낮잠을 자고 있었으므로 헌지가 그의 비단 바지 두어 폭에 글씨를 써놓고 돌아온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남사(南史)卷三十六

 

연궁(蓮宮)

사찰(寺刹)을 가리킨다. 청련궁(靑蓮宮) 혹은 청련우(靑蓮宇)라고도 한다.

 

연권(連蜷)

말이 춤추는 모양. 빛나다.

 

연권류(連蜷留)

초사장구(楚辭章句) 구가(九歌)동황태일(東皇太一)영연권혜기류(靈連蜷兮旣留)”에 대한 주석에서 연권(連蜷)’신무가 신()을 맞아 인도하는 모양이다.”고 하였다.

 

연기홍재택(年饑鴻在澤)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떠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시경(詩經)소아(小雅) 홍안(鴻鴈), “큰기러기 날아서는, 못 가운데 앉았도다[鴻鴈于飛 集于中澤].”하였다.

 

연길(涓吉)

혼인 등의 경사를 위하여 좋은 날을 고르는 일을 말한다. / 인용: 山有花女歌(최성대)

 

연년(延年)

목숨을 늘이다. 수명을 연장시킴. 장수함

 

연니(燕泥)

제비가 집짓기 위해 물고 온 찰흙을 말한다.

 

연니융(燕泥融)

제비가 물어다가 집을 지을 진흙이 추위에 얼었다가 풀렸다는 것으로, 땅이 녹은 것을 말한다.

 

연다(煙茶)

담배(南靈草)의 별칭이다. 광해조(光海朝) 중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남령초가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기호품으로 자리잡자, 예전에는 손님접대를 차나 술로 하던 것을 담배를 권하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는 일이 빈번해졌으므로 세상에서 담배를 연다(煙茶)’ 또는 연주(煙酒)’라고 불렀다.

 

연단(鉛丹)

관원()이 문서를 들고 검은 붓, 붉은 붓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연단(煉丹)

도사(道士)가 단사로 황금이나 선약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하는 연금술(鍊金術)의 한 가지이다.

 

연단경(鍊丹經)

도를 닦는 사람이 먹던 약의 처방을 적은 책. 갈홍의 종조(從祖) 갈현(葛玄)이 일찍이 신선술을 터득하였기 때문에 갈홍은 연단의 비술을 전해 받아 많은 의서를 저술하였다. 진서(晉書)卷七十二 갈홍전(葛洪傳)

 

연단소염(撚斷疏髥)

당 나라 사람의 시에, “다섯 글자를 읊어 짓노라고 두어 줄기 수염 비비어 끊는다[吟成五個字 撚斷數莖髭].”란 글귀가 있다. 이것은 오언시(五言詩) 두 귀를 짓는데, 이렇게 애를 쓰는 자기의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연담노인(蓮潭老人)

영조(英祖)정조(正祖) 연간의 승려 유일(有一)을 말한다. 그는 자()가 무이(無二)였고 연담(蓮潭)은 그의 법호(法號)이다. 불교사전(佛敎辭典)

 

연대(嚥臺)

연소왕(燕昭王)이 어진 선비를 구하니, 곽외(郭隗)가 말하기를, “옛날에 임금이 천리마(千里馬)를 구하려고, 사람을 시켜 천금(千金)을 가지고 사방으로 다니며 찾으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천리마를 찾고 본즉, 말이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은 말의 머리를 오백금에 사 가지고 왔더니 임금이 노하여 꾸짖으므로,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죽은 천리마를 오백금에 샀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지면 살아있는 천리마가 절로 찾아 올 것입니다.’ 하더니, 과연 일 년 만에 천리마를 몰고 온 사람이 둘이나 되었다 합니다. 그런즉, 내가 비록 어질지 못하나 어진 선비를 구하시려면 먼저 나에게 융숭한 대접을 시작하여 보십시오.” 하였다. 연 소왕은 그 말대로 대()를 쌓고 곽외를 먼저 스승으로 섬기었더니, 과연 사방에서 어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연대(嚥臺)

중국 하북(河北) 역현(易縣)의 동남쪽에 있던 황금대(黃金臺)의 별칭인데, 전국시대(戰國時代) 연 소왕(燕昭王)이 그곳에 누대를 쌓고 누대 위에 천금을 놓아두고서 천하의 선비를 맞아들였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연대구(燕臺句)

이별을 읊은 수준 높은 서정시를 말한다. 당대(唐代)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일찍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이별을 슬퍼하는 시 연대(燕臺)’ 네 수를 지어 그 심정을 곡진하게 묘사했던 데에서 나온 것이다.

 

연도일할(鉛刀一割)

납으로 만든 칼도 한번은 자를 힘이 있다. 자기의 힘은 미약하다고 겸손하게 하는 말로도 쓰이며, 소인배도 한번은 착한 일을 할 수 있으나 두번은 계속해서 할 수 없다는 말로도 쓰인다.

 

연독(緣督)

()을 하되 명예에 가깝지 않게 하고 악()을 하되 형벌에 저촉되지 않게 하고 연독(緣督)하여 그로써 경상(經常)을 삼는다. ()은 따른다는 뜻이요, ()은 중()의 뜻이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

 

연락부절(連絡不絶)

오고 가고 함이 끊이지 않음.

 

연려(燃藜)

명아주 지팡이를 태운다는 말로, () 나라 때 유향(劉向)이 천록각(天祿閣)에서 글을 교정하는데, 밤에 어느 노인이 청려장(靑藜杖)을 짚고 각에 찾아와서 청려장 끝에 불을 붙여 밝혀 주었다. 유향이 성명을 묻자, 그 노인이 나는 태을(太乙)의 정기(精氣)이다.” 했다는 고사가 있다. 삼보황도(三輔黃圖)

 

연련(攣攣)

그리워하는 모양, 사모하는 모양

 

연련(漣漣)

눈물을 흘리는 모양

 

연련일제포(戀戀一綈袍)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수가(須賈)가 그의 옛친구 범수(范睢)의 궁한 것을 동정하여 제포를 준 고사에서 온 말로, 벗을 그리워하는 정이 간절함을 말한다. 제포는 명주베로 지은 도포이다.

 

연로(燕虜)

() 나라를 가리킨다.

 

연로(輦路)

임금이 탄 수레나 가마가 다니는 길로, 곧 대궐의 길을 가리킨다.

 

연루(蓮漏)

연화루. () 나라 때의 고승 혜원법사(慧遠法師)의 제자인 혜요(慧要)가 물위에 연잎(蓮葉)열두 개를 세워 유파(流波)를 인하여 작동시켜서 12()를 정했던 물시계이다.

 

연루(鉛淚)

장우(張雨)의 황촉규시(黃蜀葵詩)金銅仙人雨中立 鉛淚洽辭漢時라 하였다.

 

연루(煙樓)

안개가 낀 높은 누각을 이르는 말이다.

 

연류(煙柳)

수양버들을 먼 곳에서 바라볼 때 안개처럼 보인다 하여 생긴 말이다.

 

연륜(演綸)

임금의 윤언(綸言)을 연역(演譯)한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치의(緇衣)왕이 한 말이 실같으면 밖으로 퍼지는 것은 윤() 같다.”에서 나온 말이다.

 

연름(捐廩)

곡물(穀物)을 기부(寄附)하는 일을 말한다.

 

연릉(延陵)

춘추시대(春秋時代) 오왕 수몽(吳王壽夢)의 넷째 아들로 연릉에 봉해진 계찰(季札)을 가리킨다. 오왕 수몽이 일찍이 계찰의 어짊을 알고 그에게 왕위(王位)를 전하려 하였으나, 계찰이 끝내 왕위를 받지 않았다 한다. 계찰은 사신이 되어 상국(上國)을 두루 다니면서 어진 사대부(士大夫)들과 교유하였고, 특히 노() 나라에 사신 가서는 주() 나라의 음악을 보고 열국(列國)의 치란흥망(治亂興亡)을 알았었다고 한다. 사기(史記)卷三十一

 

연릉부원군(延陵府院君)

이호민(李好閔)의 봉호(封號)이다.

 

연릉악(延陵樂)

연릉은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계찰(季札)의 봉호이다. 계찰이 일찍이 노()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 나라의 훌륭한 음악을 보고서 열국(列國)의 치란 흥망을 알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卷三十一

 

연릉지검(延陵之劍)

연릉은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오() 나라의 계찰(季札)을 가리킨다. 계찰은 오왕(吳王) 수몽(壽夢)의 작은 아들로 어질다는 명성이 있어서 수몽이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사양한 채 연릉으로 가서 머무르자 연릉에다가 봉하였으므로 흔히 연릉계자(延陵季子)라고 불리운다. 일찍이 진() 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서() 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서 나라의 임금이 계자가 차고 있는 칼을 보고는 갖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진 나라의 사신이 함께 있었으므로 계자가 즉시 칼을 풀어 주지 못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주기로 마음먹었다. 계자가 진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 나라를 다시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서 나라의 임금이 죽은 뒤였다. 이에 계자는 서 나라 임금의 무덤 앞에 있는 나무에다가 칼을 걸어 놓고 떠나갔다. 신서(新序)』 「절사(節士)

 

연릉현검(延陵懸劍)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말한다. 연릉은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계찰(季札)의 봉호이다. 계찰이 상국(上國)으로 사신가는 길에 서() 나라 임금을 잠깐 찾아보았는데, 서 나라 임금이 계찰의 보검(寶劍)을 보고는 그것을 갖고 싶어 하면서도 차마 말을 못하였다. 그러자 계찰은 마음속으로 그 칼을 그에게 주기로 약속하고 떠났었는데, 그후 계찰이 사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곳에 들르니 서 나라 임금이 이미 죽었으므로, 계찰이 내가 처음에 마음속으로 이미 허락한 것이니, 그 사람이 죽었다 해서 내 마음을 변할 수 없다.” 하고, 그 칼을 그의 묘수(墓樹)에 걸어두고 떠났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卷三十一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연리(掾吏)

()ㆍ한() 때 군수에 소속된 관원의 통칭이다.

 

연리가(連理柯)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결이 서로 연하여 하나가 되는 것으로, 전하여 애정이 깊은 부부의 관계를 비유한다.

 

연리목(連理木)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진() 나라 조간자(趙簡子)가 하수(河水)를 건너려 하는데, 나룻터의 아전(津吏)이 취하여 건널 수 없었다. 조간자는 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니, 그의 딸이 아비를 대신하여 삿대를 잡아 배를 건너주며 노래 부르기를, “우리 아버지는 풍파 없으라고 하신(河神)에게 제사드리다가 술이 취하였으니 용서하여 주시오.” 하는데, 용모와 태도가 어여쁘고 노랫소리가 아름다웠다. 조간자는 그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 처녀를 첩으로 데리고 왔는데, 그의 처가 청릉대(靑陵臺)에 떨어져 자살하였다. 그 부부의 무덤이 따로 있었는데 두 무덤에 나무가 나서 가지가 서로 향하여 뻗어서 합하여 칭칭 감기었는데, 그것이 연리목(連理木)이다.

 

연리지(連理枝)

뿌리와 줄기가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결이 서로 연하여 하나가 된 것을 말하는데, 전하여 남녀의 애정이 매우 두터움, 부부가 합쳐서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리화개(連理花開)

서로 애정이 깊은 부부(夫婦)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연리지란 근간(根幹)이 각기 다른 두 나무의 가지결이 서로 연하여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연마후(緣馬後)

춘추시대(春秋時代) 맹지반(孟之反)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쳐 올 적에 맨 뒤에 떨어져 오면서 자기 말을 채찍질하며 말하기를, “내가 감히 뒤처지려는 것이 아니라 말이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연막(蓮幕)

막부(幕府)의 미칭(美稱). 남제(南齊) 때 왕검(王儉)의 막부를 연화지(蓮花池)라고 일컬은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사(南史)49 유고지전(庾杲之傳)/ 인용: 臨溟大捷歌(홍양호)

 

연매(燕禖)

제비가 찾아오는 따뜻한 봄날에 제왕이 아들을 얻기 위해 올리는 제사이다.

 

연매궁독(燕禖弓韣)

왕의 후계자가 탄생한 것을 말한다. 연매(燕禖)는 제비가 날아오는 따뜻한 봄철에 제왕의 후계자를 얻기 위해 제사 드리는 것을 말하고, 궁독(弓韣)은 아들을 낳았을 때 천지 사방을 향해 활을 쏘아 축하하는 뜻을 취한 것이다. 예기(禮記)』 「월령(月令), 내칙(內則)

 

연맥(碾麥)

보리를 방아 찧음.

 

연명(淵明)

동진(東晉) 때의 고사인 도잠(陶潛)의 자이다. 그는 일찍이 팽택령(彭澤令)을 지내다가 한 번은 군()에서 독우(督郵)가 왔는데 아전이 의당 큰 띠를 띠고 알현해야 한다.” 하자 내가 쌀 5()의 봉록 때문에 독우 따위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 하고는 곧장 팽택 영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온 후 일생을 유유자적하였다. 진서(晉書)卷九十四 / () 나라 도잠(陶潛)의 자()이다. 그는 진 나라 말엽에 집이 가난하여 친구들의 권고로 팽택 령(彭澤令)이 된 지 80여 일 만에 호연히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서 전원(田園)으로 돌아왔다. 진서(晉書)卷九十四

 

연명서소(淵明舒嘯)

도연명(陶淵明)이 가슴 펴고 휘파람 붐.

 

연명일운군미전(淵明逸韻君眉展)

연명은 동진(東晉)의 고사 도잠(陶潛)의 자인데, 일찍이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편지로 도잠을 부르자, 도잠이 말하기를 저는 술을 좋아하니 법사께서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즉시 가겠습니다.” 하고 마침내 그 곳에 당도하니, 법사가 도잠에게 술을 금하고 백련사에 들기를 권유하자, 도잠이 눈썹을 찡그리고 가버렸다는 고사를 전용한 것이다.

 

연명자(淵明子)

도잠(陶潛)의 시 책자(責子), 아들 다섯이 모두 지필(紙筆)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제 6(), “자식 통은 아홉 살이나 먹었으면서, 찾는 것이라곤 배와 밤이라네[通子垂九齡 但覓梨與栗].” 하였다.

 

연명조만반람여(淵明早晩返籃輿)

도연명(陶淵明)이 다리 병이 있어서 놀러 나갈 적에는 남여(藍輿)를 타고 다녔다.

 

연명책자(淵明責子)

도연명(陶淵明)이 아들을 나무람. 도연명은 그 다섯 아들을 나무라는 뜻으로 시를 지었는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白髮被兩鬢 肌膚不復實 雖有五男兒 總不好紙筆 阿舒已二八 懶惰故無匹 阿宣行志學 而不愛文術 雍端年十三 不識六與七 通子垂九齡 但覓梨與栗 天運苟如此 且進盃中物

 

연모지정(戀慕之情)

사랑하여 그리워하는 정을 말한다.

 

연목구어(緣木求魚)

사리상 불가능한 것을 말한다. 물고기는 본시 물에서만 사는 것인데 나무에 올라가서 고기를 찾는다면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래서 사리상 도저히 불가능한 것에 비유한다. 맹자(孟子)』 「앙혜왕(梁惠王)그러한 행위로 그러한 욕망을 구한다면 마치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같다.” 하였다. / 유의어: 상산구어(上山求魚)

 

연문(羨門)

묘문(墓門)을 말한다.

 

연문자(羨門子)

옛 선인(仙人)으로 이름은 자고(子高).

 

연미(燕尾)

제비 꼬리란 난()의 별칭이다.

 

연미복(燕尾服)

검은 비단으로 지은 남자용 예복. 저고리 앞쪽은 허리 아래가 없으며 뒤가 길게 내려와 두 갈래로 째져 제비 꼬리 같은 양복.

 

연미지급(燃眉之急)

눈썹이 (불이 붙어) 타 들어가는 듯한 위급한 상황을 말한다.

 

연민작형박(燕珉作荊璞)

연석(燕石)과 민()은 옥()과 비슷하나 옥이 아니며, ()나라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얻은 박옥(璞玉)은 천하의 보옥(寶玉)이다. ()나라 어느 사람이 연민(燕珉)을 박옥으로 알고 속은 일이 있었다.

 

연방(蓮房)

연밥이 들어 있는 송이를 말한다.

 

연방(蓮榜)

조선 왕조 때 사마시(司馬試)인 생원과(生員科)와 진사과(進士科)에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방목(榜目)이다.

 

연방옥경(燕訪玉京)

남조 때 송() 나라 말엽, 창가(娼家)의 딸인 요옥경(姚玉京)은 과부가 되어 절개를 지키며 시부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언제나 한 쌍의 제비가 와서 집을 짓고 살았다. 한번은 제비 한 마리가 새매에게 잡혀 죽자, 남은 제비가 슬피 울면서 집을 맴돌았다. 가을이 되자 그 제비는 옥경의 팔뚝에 앉아 작별을 고하는 듯하므로 옥경은 붉은 실로 다리를 묶어 주면서 내년에 다시 오라.” 하였는데, 이듬해 과연 다시 왔다. 그 후 옥경이 병들어 죽었는데, 이듬해 제비는 다시 와서 주인을 찾으며 슬피 울므로 집 식구들은 옥경은 죽었으며 무덤은 남곽(南郭)에 있다.” 하였더니, 그 제비는 무덤을 찾아가 따라 죽었다 한다. 연녀분기(燕女墳記)

 

연백(年伯)

본디 아버지와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부르는 칭호인데, 흔히 아버지나 형과 같은 연배의 사람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인다.

 

연벌연(燕伐燕)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상대방을 나무라는 것을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연 나라가 혼란해지자 이 틈을 타서 제() 나라는 연 나라를 공격하였다. 맹자(孟子)이것은 연 나라가 연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다.”고 비웃었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연벽(聯璧)

쌍벽(雙璧). 연벽(連璧)과 같다. 연결된 두 개의 옥인데, 아름다운 사람을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용지(容止)반안인(潘安仁)과 하후잠(夏候湛)이 모두 용모가 수려하였는데 동행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그 때 사람들이 연벽으로 일컬었다.”고 하였다.

 

연벽(連璧)

연결된 두 개의 옥인데, 아름다운 사람을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용지(容止)반안인(潘安仁)과 하후잠(夏侯湛)이 모두 용모가 수려하였는데 동행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연벽으로 일컬었다.”고 하였다.

 

연보(年譜)

한 사람의 일평생 사적을 적어 놓은 책.

 

연보(連保)

연좌(連坐)의 뜻이니 일족이나 이웃에 연대책임을 묻는 것이다. / 인용: 母別子(김성일)

 

연복(延卜)

일명 후시(後市)라고도 한다. 조선 중기 연경(燕京)에 파견되었던 사행이 귀환할 때 그들을 맞이하러 들어가는 수백필의 쇄마(刷馬)편을 이용하여 의주(義州)에서 물화(物貨)를 수집한 봉성(鳳城)의 장사치들이 복물(卜物)을 운반 매매하는 것을 말한다.

 

연복(燃腹)

한나라 동탁(董卓)이 죽자 군사들이 그의 배꼽에 불을 켰더니, 살의 기름으로 3일 동안이나 탔다고 한다. / 인용: 檄黃巢書(최치원)

 

연복경신혼(燕蝠競晨昏)

제비는 해가 뜨는 때를 아침, 해가 진 때를 저녁으로 아는데, 박쥐는 해가 진 때를 아침, 해가 뜨는 때를 저녁으로 알아서, 둘이 서로 다투다가 결정을 짓지 못하고 봉황(鳳凰)에게 물으려고 갔더니, 길에서 만난 한 새()가 말하기를, “봉황은 잠이 깊이 들었으니, 도시 부엉이가 대리(代理)할 것이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시비(是非)를 똑바로 분별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인데, 세속의 시비 총중에 끼어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복정(延福亭)

옛터가 개성 동대문 밖 산대(山臺) 바위 밑에 있다. 고려 의종(毅宗)이 이 정자를 짓고, 기화이초(奇花異草)를 심으며 뚝을 쌓아 호수를 만들고 밤낮 배를 띄우며 놀다가 마침내 위사(衛士)들의 원망을 사서 정중부(鄭仲夫)의 난을 만났다.

 

연봉(蓮峯)

중국 화산(華山)의 별칭인데 송() 나라 초기에 진단(陳搏)이 그곳에 은거하였다. 진단이 선천도(先天圖)를 그렸는데 나중에 주돈이(周敦頤)태극도(太極圖)가 되어 송인(宋人)의 상수(象數)의 학이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송사(宋史)卷四百五十七 진박전(陳搏傳)

 

연부(燕府)

북경(北京)을 가리킨다.

 

연북(硯北)

벼루의 북쪽. 책상과 벼루를 남쪽을 향하여 놓았을 때 자기 몸은 그 벼루의 북쪽에 위치함을 이른다. 시문을 저작하는 것을 말한다.

 

연북거(硯北居)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들어앉아 있음을 이른다. 사람이 평소 궤안(几案)을 남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사람은 벼루의 북쪽에 위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분부(年分簿)

농사의 풍흉에 따라 전세(田稅)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1년을 10분으로 하여, 10분에 만족하면 상상(上上)의 세를 메고, 9분이면 상중(上中), 8분이면 상하(上下), 7분이면 중상(中上), 6분이면 중중(中中), 5분이면 중하(中下), 4분이면 하상(下上), 3분이면 하중(下中), 2분이면 하하(下下)가 되고 1분이면 면세해 준다. 대전회통(大典會通)』 「호전(戶典)

 

연비(燃臂)

수진(修眞)의 한 방법. 팔을 향불로 태우는 일을 말한다. / 인용: 道康瞽家婦詞(정약용)

 

연비(鳶飛)

시경(詩經)대아(大雅) 한록(旱麓), “솔개는 날아 하늘에 닿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는 구절이 있는데, 중용(中庸)에서 이것을 인용하여 천지의 지극한 이치를 살필 수 있다 하였다.

 

연비어약(鳶飛魚躍)

만물이 각자 제 살 곳을 얻어 잘 살아간다는 뜻이다. 시경(詩經)대아(大雅) 한록(旱麓)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는 구절이 있다.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속에 고기가 뛰어노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데, 이는 솔개와 물고기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타고난 길을 가기 때문이다. 만물이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전체적으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도()임을 말한다.

 

연빙(淵氷)

여림심연 여리박빙(如臨深淵如履薄氷)의 준말이다. “깊은 연못가에 있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한다.”고 하였는데, 행실을 신중히 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태백(泰伯), 시경(詩經)소아(小雅) 소민(小旻)

 

연빙계(淵氷戒)

깊은 못에 임하거나 얇은 얼음을 밟은 것처럼 마음가짐을 신중히 하라는 경계. 시경(詩經)소아(小雅) 소민(小旻)조심하고 삼가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이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하였다. 논어(論語)』 「태백(泰伯)

 

연사(蓮社)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공부하는 결사(結社)를 말한다.

백련사(白蓮社)의 약칭. 뜻을 같이 하는 승속(僧俗)의 인사들이 모여 만든 불교의 결사체(結社體)를 말한다. 불교 정토종(淨土宗)의 최초의 결사(結社),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慧遠)이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당시의 현사(賢士) 유유민(劉遺民)ㆍ뇌차종(雷次宗) 등과 함께 승속 123인을 규합하여 결사를 조직하고 그 정사(精舍)의 연못에 백련(白蓮)을 심었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승사략(僧史略)

 

연사주인(蓮社主人)

() 나라 때의 백련사(白蓮社)의 중심 인물이었던 혜원선사(慧遠禪師)를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석()ㆍ도()ㆍ유()의 명인들을 여산(廬山)의 호계(虎溪) 동림사(東林寺)에 모아 백련사를 결성했다.

 

연산(燕山)

연연산(燕然山)의 준말이다. () 나라 두헌(竇憲)이 흉노를 크게 격파한 뒤, 연연산에 올라 한 나라의 위덕(威德)을 기리는 글을 종사관 반고(班固)에게 짓게 하여 새긴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두헌전(竇憲傳)

 

연산(燕山)

연산부(燕山府), 즉 연경(燕京)을 가리킨다.

 

연산(燕山)

중국 하북(河北) 계현(薊縣)의 동남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수백 리를 뻗어 해변에까지 닿아 있는 산으로, 우리 나라에서 중국에 왕래할 때 넘나들던 곳이다.

 

연산륵석(燕山勒石)

연산(燕山)은 몽고 지방에 있는 연연산(燕然山)으로, 항애산(杭愛山)이라 불린다. 후한(後漢)의 화제(和帝) 원년(89)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남선우(南單于) 및 강호(羌胡)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락산(稽落山)에서 북선우(北單于)와 싸워 크게 승리하여 연연산을 점령하고 돌아왔는데,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반고(班固)의 솜씨로 명()을 지어 비석을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卷二十三 두헌전(竇憲傳)

 

연산명훈(燕山銘勳)

용맹한 장수가 북방 오랑캐를 물리치길 기원하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연서(燃犀)

숨겨진 유괴물(幽怪物)을 밝게 비추어보는 것을 말한다. 동진(東晉)의 온교(溫嶠)가 우저기(牛渚磯)에서 물소뿔을 태워 비추어 깊은 물속의 유괴물을 보았다는 고사가 있다.

 

연서남자(煙書嵐字)

아지랑이처럼 아름다운 글씨를 가리킨다.

 

연서조우저(燃犀照牛渚)

()나라 사상(謝尙)이 우저(牛渚)에서, 물이 깊은 것을 보고 그 밑에 무엇이 있는가 하고 서각(犀角)으로 불을 켜서 비쳐보니 물속의 기괴한 것들이 환히 보였다.

 

연석(燕石)

연산(燕山)에서 나는 돌로 옥 같지만 옥은 아닌 그냥 돌이다. 송나라의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이 돌을 얻고서는 보배인 줄 알고서 가죽 궤에 10중으로 넣고 붉은 비단으로 10번을 싸서 애지중지하여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14 보연석(寶燕石)

연산(燕山)에서 나는 옥과 유사한 돌로, () 나라 어리석은 사람이 옥인 줄 알고 잘 보관하여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연석은 사이비(似而非) 또는 가치 없는 것을 의미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낭야대취편(琅瑯代醉編)

 

연석(鍊石)

예전 여와씨(女媧氏)복희씨(伏羲氏)의 누이라 한다. 공공(共工)이란 이가 하늘을 머리로 받아 무너진 것을 여와씨가 오색 돌을 만들어서 다시 기었다고 한다.

 

연석보(鍊石補)

상고 시대에 복희씨(伏羲氏)의 누이인 여와씨(女媧氏)가 오색(五色)의 돌을 달구어 뚫어진 하늘을 기웠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사기(史記)』 「삼황기(三皇紀)공공씨(共工氏)가 축융씨(祝融氏)와 싸우다가 이기지 못해, 성이 나서 부주산(不周山)을 머리로 들이받아 무너뜨리자 천주(天柱)가 끊어졌으므로, 여와씨가 오색의 돌을 달구어 하늘을 기웠다.” 하였다.

 

연석보천(鍊石補天)

태고(太古) 적에 하늘 한 쪽이 무너졌는데 여와씨(女媧氏)가 오색 돌을 다듬어 하늘을 기웠다는 신화(神話)가 있다.

 

연석오색(鍊石五色)

사기(史記)』 「보삼황본기(補三皇本紀)공공씨(共工氏)가 축융씨(祝融氏)와 싸워 이기지 못하자 화가 치밀어 불주산(不周山)을 무너뜨리자 하늘을 받치고 있던 기둥이 부러지고 땅을 동여매고 있던 밧줄이 끊어졌는데, 여와씨(女媧氏)가 오색빛 돌을 다듬어 하늘을 깁고 자라의 다리를 끊어 사방의 끝에 기둥으로 세웠다.” 하였다.

 

연석존(燕石尊)

연산(燕山)에서 나는 돌. 겉모양은 옥과 비슷한데 사실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실속은 없고 허명만 있는 것을 말한 것. ()의 어리석은 인간이 연석을 큰 보물로 알고 길이길이 간직하고 있었는데, 객이 보고는 껄껄대며 말하기를, 이것은 기와조각과 다를 바 없는 연석이라고 하자, 주인은 노발대발하며 더 깊이 간직했다는 것이다. 낭야대취편(琅瑯代醉編)燕石

 

연석지교(鍊石之巧)

삼황(三皇) 때에 여와씨(女媧氏)가 다섯 가지 색깔의 돌을 달구어 하늘을 때웠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회남자(淮南子)』 「현명훈(賢冥訓)

 

연성(連城)

연성벽(連城璧)의 준말로, () 나라 소왕(昭王)이 조() 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열다섯 성과 바꾸자고 청한 화씨벽(和氏璧)을 말한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 나라가 초()의 화씨벽(和氏璧)을 얻으니, 진소왕(秦昭王)이 조왕(趙王)에게 글을 보내어 성()과 바꾸자고 청했다.” 하였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연성벽(連城璧)

화씨벽(和氏璧)을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조() 나라 혜문왕(惠文王)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 나라 소왕(昭王)15개의 성()과 맞바꾸자고 청한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연성종(連城終)

연성벽이란 전국시대(戰國時代) 조 혜문왕(趙惠文王)이 소장한 구슬로서 진 소왕(秦昭王)이 이를 십오성(十五城)과 바꾸자고 요구한 데서 일컬어진 말인데, 이 구슬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맨처음 초() 나라 화씨(和氏)가 형산(荊山)에서 이 옥박(玉璞)을 얻어 이를 초 여왕(楚厲王)에게 바쳤으나 옥인(玉人)이 이를 돌이라 하므로 왕이 임금을 속였다 하여 화씨의 왼쪽 발꿈치를 베었고, 뒤에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이 옥박을 바쳤으나 이때 옥인 역시 돌이라 하므로 또한 임금을 속였다 하여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베었는데, 결국 그 다음 문왕(文王)이 즉위한 뒤에야 이것이 진짜 옥박이라고 판명되었었다.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연성화씨진(連城和氏珍)

진귀한 보물이라는 뜻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에 화씨벽(和氏璧)이 있다는 말을 듣고, () 나라 소왕(昭王)이 열다섯 성()과 바꾸자고 청한 고사가 있는데, 이로부터 화씨벽을 연성벽(連城璧)이라고도 칭하게 되었다. 사기(史記)81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연소왕(燕昭王)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연() 나라 끝 왕. 당시 연 나라가 제() 나라에 격파되었으므로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후례(厚禮)로 초빙하여 국정을 쇄신하고 제 나라를 되 공략(攻略)하여 연 나라가 다시 강성해졌다.

 

연소축대(燕昭築臺)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연 나라 소왕(昭王)이 제() 나라에 원수를 갚고자 사방의 어진 사람을 불러들이기 위해 쌓았다는 대(), 그 위에 황금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연솔(連率)

연수(連帥), 옛날에 제후(諸侯)의 장()인 태수(太守)를 일컫는 말이었으며 후대엔 관찰사(觀察使)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 인용: 旄丘(시경)

 

연수(淵藪)

물건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말한다. / 인용: 薌娘謠(이광정)

 

연수추지성(延壽推至誠)

한 나라 한연수(韓延壽)가 지방 장관으로 나가서, 예를 극진히 하여 현사(賢士)를 초빙하고 간쟁(諫諍)을 널리 받아들이는 등 선정(善政)을 베풀어 치행(治行)이 천하의 제일로 꼽혔던 고사이다. 한서(漢書)76

 

연시강개(燕市忼慨)

연시(燕市)는 연 나라의 저자를 말하는데, 의협심이 매우 강했던 위() 나라 자객(刺客) 형가(荊軻)가 연 나라에 처음 가 있을 적에 날마다 연 나라 저자에서 개백정 등과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뒤에 연 태자 단(燕太子丹)의 요청을 받고 그의 원수인 진왕(秦王)을 자살(刺殺)하러 갔던 일 등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연시류정기(燕市留正氣)

연시(燕市)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수도로, 연경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러 가는 형가(荊軻)가 친구 고점리(高漸離)와 연시(燕市)에서 매일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고, () 나라 좌사(左思)의 영사(咏史)형가 연시에서 술 마셨나니, 주기가 오르면서 그 기운 더욱 떨쳤어라[荊軻飮燕市 酒酣氣益震].”라는 표현이 있다.

 

연시일(練時日)

한 무제(漢武帝)가 교사(郊祀)의 예를 정하고 악부(樂府)를 세워, 이연년(李延年)을 협률랑(協律郞)으로 삼고 사마상여(司馬相如) 등으로 하여금 음률에 맞추어 짓게 한 십구장(十九章)의 노래이다. / 인용: 原詩(홍석주)

 

연식재(宴息齋)

주역(周易)』 「수괘(需卦)상사(象辭)군자는 이 점괘를 보고서 날이 어두워지면 들어가 휴식을 취하느니라[君子以嚮晦入宴息].”라는 말을 취한 것이다.

 

연심(蓮心)

연근(蓮根)에서 나온 움을 가리키는데, 본디 맛이 쓰기로 유명하다.

 

연아(演雅)

시를 지을 제 운자(韻字)를 모두 짐승의 뜻이 들은 글자를 넣은 것

 

연안(燕鴈)

서로 헤어져 있다는 뜻이다.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올 적에는 기러기는 이미 북쪽으로 날아가고, 기러기가 날아올 땐 제비는 이미 남쪽으로 날아가서 서로 만나지 못한다.

 

연안대비(燕雁代飛)

제비가 올 때 기러기는 떠난다. 사람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연안상위(燕鴈相違)

제비는 봄의 철새이고 기러기는 가을의 철새이므로, 서로 만나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연안성(延安城)

황해도 연백군(延白郡)에 위치한 성.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당시 이조 참의(吏曹參議) 이정암(李廷馣)이 왜군과 싸워 대첩(大捷)을 거둔 곳.

 

연액(煙液)

안개 방울. 구름과 비.

 

연양(蓮洋)

청 나라 시인 오문(吳雯)의 호이다.

 

연양군(延陽君)

이시백(李時白)의 봉호(封號), 이귀(李貴)의 아들이다.

 

연어(軟語)

부드럽고 순한 말이다. 불교 십선(十善)의 하나에 유연어(柔軟語)가 들었다. 유마경(維摩經)말한 바의 계체(誡諦)는 항상 연어를 썼다[所言誠諦 常以軟語].” 하였다.

 

연어(鳶魚)

소리개와 물고기. 시경(詩經)대아(大雅) 한록(旱麓)소리개는 날고 물고기는 뛰도다[鳶飛戾天 魚躍于淵].”에서 나온 문자로, 소리개와 물고기가 자득(自得)하는 모양, 또는 임금의 덕화(德化)가 잘 미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중용(中庸)12에서는, ()가 행하는 것이 상하(上下) 모두 명백하여 온갖 현상이 도 아닌 것이 없음을 밝히기 위하여 인용되었다.

 

연어락(鳶魚樂)

시경(詩經)대아(大雅) 한록(旱麓)솔개는 날아 하늘에 닿고 고기는 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연연(悁悁)

근심하는 모양, 성냄

 

연연(延延)

긴 모양, 많은 모양, 오래된 모양

 

연연(淵淵)

깊고 고요한 모양, 북 치는 소리

 

연연(沇沇)

널리 유행하는 모양, 짐승이 분주히 오가는 모양

 

연연(嬿嬿)

아름다운 모양

 

연연(娟娟)

아름다운 모양, 희미하게 먼 모양, 달빛이 맑고 밝은 모양, 나비가 나는 모양. 두보(杜甫)의 시에 석뢰(石瀨)에 달이 연연하다.” 하였다.

 

연연(燕燕)

한쌍의 제비인데 제비는 본디 과실을 먹지 않는 것으로, () 나라 백거이(白居易)의 감흥시(感興詩)술동이 앞에 유치시킨 것은 성성의 피이고 장막 위에 안일을 도모한 건 연연의 집이로다[樽前誘得猩猩血 幕上偸安燕燕窠].” 한 데서 온 말이다. 백락천집(白樂天集)後集 卷十三

 

연연(燕然)

연연산(燕然山)의 약칭. 후한(後漢) 영평(永平) 원년(元年)에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를 격파하고 이 산에 올라 비석을 새겨 공을 기록하고 돌아왔다. 지금의 몽고이다. 후한서(後漢書)』 「두헌전(竇憲傳)

 

연연(涓涓)

작은 물이 졸졸 흐르는 모양

 

연연(宴宴)

편히 쉬는 모양

 

연연과(燕燕窠)

백거이(白居易)의 감흥시(感興詩)술동이 앞에 유치시킨 건 성성의 피이고 장막 위에 안일 도모함은 연연의 집이로다[樽前誘得猩猩血 幕上偸安燕燕窠].” 한 데서 온 말이다. 백락천후집(白樂天後集)卷十三

 

연연륵송(燕然勒頌)

() 나라 두헌(竇憲)이 흉노를 쳐서 공을 이루고, 반고(班固)를 시켜 글을 지어서 연연산(燕然山)의 돌에 새겼다.

 

연연명(燕然銘)

후한(後漢)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의 군대를 크게 격파한 뒤, 연연산에 올라 반고(班固)로 하여금 글을 짓게 하여 기념비를 세우도록 한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23

 

연연산(燕然山)

몽고 지방에 있는 산으로, 항애산(杭愛山)이라 불린다. 후한(後漢)의 화제(和帝) 원년(89)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남선우(南單于) 및 강호(羌胡)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락산(稽落山)에서 북선우(北單于)와 싸워 크게 승리하여 연연산을 점령하고 돌아왔는데,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반고(班固)의 솜씨로 명()을 지어 비석을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卷二十三 두헌전(竇憲傳)

 

연연산(燕然山)

오늘날 몽고의 항애산(杭愛山)이다. 후한 화제(後漢和帝) 때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과 집금오(執金吾) 경병(耿秉)이 기병 3만 명을 거느리고 북선우(北單于)를 공격하여 회계산(會稽山)에서 크게 격파하고 연연산에 공적비를 세우고 돌아왔다. 후한서(後漢書)卷二十七 두헌전(竇憲傳)

 

연연산명(燕然山銘)

후한 때 장군 두헌(竇憲)이 흉노(匈奴)를 정벌하여 크게 승첩을 거두고 연연산에 이르러 반고(班固)로 하여금 그 공업(功業)을 기술하게 한 것을 이른 말인데, 그 문장 이름은 바로 봉연연산명(封燕然山銘)이다. 후한서(後漢書)卷二十三

 

연연산비문(燕然山碑文)

북방 오랑캐를 크게 격파하고 기념으로 세우는 비문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와 전투를 벌여, 13천 급()을 베고 20여만 명을 포로로 잡는 등 대승을 거둔 뒤, 연연산에 올라 반고(班固)로 하여금 글을 지어 기념비를 세우게 했던 고사가 있다. 후한서(後漢書)23 竇融傳 附 두헌전(竇憲傳)

 

연연산석(燕然山石)

연산은 몽고 지방에 있는 연연산(燕然山)으로, 항애산(杭愛山)이라 불린다. 후한(後漢)의 화제(和帝) 원년(89)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남선우(南單于) 및 강호(羌胡)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락산(稽落山)에서 북선우(北單于)와 싸워 크게 승리하여 연연산을 점령하고 돌아왔는데,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반고(班固)의 솜씨로 명()을 지어 비석을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卷二十三 두헌전(竇憲傳)

 

연연석(燕然石)

후한(後漢)의 두헌(竇憲)이 흉노(匈奴)를 정벌하고 나서 연연산에 올라가 그 공업을 새겨 놓은 비석. 지은이는 반고(班固). 후한서(後漢書)』 「두헌전(竇憲傳)

 

연연송(燕然頌)

후한(後漢) 때 두헌(竇憲)이 흉노(匈奴)를 정벌하고 연연산에 이르러 비()를 세워서 공업(功業)을 기술할 적에 그를 수행(隨行)했던 반고(班固)가 연연산명(燕然山銘)을 지어 그의 공업을 찬송한 데서 온 말이다.

 

연연한장명(燕然漢將銘)

후한(後漢)의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흉노를 정벌하면서 계락산(稽落山)에서 선우(單于)를 크게 격파하고는 변새(邊塞)에서 3천 리나 떨어진 연연산에 올라가 돌에 공을 새겼다. 후한서(後漢書)23 두융열전(竇融列傳)竇憲

 

연염(蓮焰)

연꽃 모양으로 된 등불을 말한다.

 

연엽감서탁(蓮葉堪棲托)

이백(李白)의 시에 연잎 위에서 거북이가 노네[龜遊蓮葉上].”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연엽태을선(蓮葉太乙船)

송 나라 한구(韓駒)가 화가 이공린(李公麟)이 그린 태일고야도(太一姑射圖)를 보고 지은 시의 태일진인 저 신선 연잎 배를 탔는데 건 벗어 머리 드러나 찬바람에 날리누나[太一眞人蓮葉舟 脫巾露髮寒颼颼].”에서 나온 말이다. 태을은 태일(太一)과 통용하며 본디 별 이름이다. 능양집(陵陽集)卷一 題王內翰家李伯詩畫太一姑射圖

 

연옥(燕獄)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추연(鄒衍)이 연 혜왕(燕惠王)을 극진히 섬기다가 참소를 받고 옥에 갇힌 뒤 하늘을 우러러 통곡을 하자 5월 하늘에 서리가 내렸다는 고사에서 기인하여, 보통 억울한 옥살이를 연옥(燕獄)으로 표현한다. 후한서(後漢書)57 유유열전(劉瑜列傳)

 

연우기(煙雨磯)

이슬비 내리는 낚시터라는 뜻으로, 즉 한적한 강촌(江村)의 풍경을 의미한다.

 

연운(燕雲)

중국의 유주(幽州)와 운주(雲州) 지방. 곧 청() 나라를 지칭한다. 오늘날의 하북(河北)과 산서(山西) 두 성()의 북부 지역이다.

 

연원역(連原驛)

충주(忠州)북쪽 5() 거리에 있는 역참(驛站)을 말한다.

 

연월(煙月)

흐릿한 달이란 말로, ‘조용하고 태평한 모양이나 그런 세월을 말한다.

 

연유(演羑)

문왕(文王)이 유리옥(羑里獄)에 갇혀 있으면서 ()의 팔괘(八卦)를 육십사괘(六十四卦)로 추연(推演)하였다고 함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

 

연의왕검부(蓮依王儉府)

남제서(南齊書)』 「유고지전(庾杲之傳)유고지(庾杲之)의 자()는 경행(景行)인데, 지방으로 발령받아 왕검의 위군 장사(衛軍長史)가 되자, 소면(蕭沔)이 검에게 편지하기를 귀하의 막부(幕府)에 수석 관료를 뽑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유경행은 푸른 물에 연꽃처럼 어찌 그리도 빛납니까?’했다.” 한 고사에서 온 말로 본디 막부에 등용된 것을 지칭함이다.

 

연이(宴爾)

신혼(新婚) 생활을 말한다. / 인용: 與人(박지원)

 

연익(燕翼)

제비가 알을 품듯 품어 주었다는 말이다. 자손의 미래를 위해 계책을 잘 세우는 것을 말한다.

 

연익모(燕翼謀)

조상이 자손을 위해 세운 계책이나 교훈. 시경(詩經)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그 손자에 모훈을 끼쳐 일을 신중히 할 자손을 편안케 하였다[詒厥孫謀 以燕翼子].” 하였다.

 

연인(涓人)

궁중에서 소제(掃除) 같은 일을 하는 환관.

 

연인(蜒人)

만인(蠻人)의 일종이다. 후산총담(後山叢談)널리 산골짜기에 사는 것을 요인(徭人)이라 하고, 물의 배 위에서 사는 것을 연인이라 하고, 섬 위에서 사는 것을 여인(黎人)이라 한다.” 하였다.

 

연임(淵臨)

공경()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한 것같이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말이 있다. 논어(論語)』 「태백(泰伯), 시경(詩經)소아(小雅) 소민(小旻)

 

연자(蜒子)

연인(蜒人)과 같으며 만인(蠻人)의 일종이다.

 

연자(蜒子)

제비.

 

연자기(燕子磯)

강소성(江蘇省) 강녕현(江寧縣) 북쪽 관음산(觀音山) 위에 있는 바위인데, 그 모양이 나는 제비처럼 생겼으므로 이렇게 명명하였다. 지명으로도 불린다.

 

연자루(燕子樓)

전라도 순천부에 있던 누정.

 

연작기홍곡(燕雀譏鴻鵠)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말이다. 진승(陳勝)이 젊을 때 어떤 사람과 품팔이를 하면서 밭두둑에 앉아 출세하면 잊지 않겠다.” 하니 그 사람이 품팔이하는 주제에 무슨 출세를 하느냐.”고 하자, 진승이 탄식하면서 연작이 어떻게 홍곡(鴻鵠)의 뜻을 알랴.” 하였으나, 뒤에 그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사기(史記)卷四十八 진섭세가(陳涉世家)

 

연작안지홍곡지재(燕雀安知鴻鵠志哉)

소인(小人)은 군자나 대인(大人)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연작조해(鳶鵲遭害)

솔개와 까치가 살해를 당하면 어진 새는 더욱더 멀리 날아가고, 어리석은 자가 죄를 입게 되면 지혜로운 선비는 깊이 숨어 버린다. 이 대문은 한서(漢書)매복전(梅福傳), “鳶鵲遭害 則仁鳥增逝 愚者蒙戮 則智士深退라고 보인다. 당시 성제(成帝)가 대장군 왕봉(王鳳)에게 정권을 위임하매 봉이 조권(朝權)을 전천하여, 충직한 왕장(王章) 같은 이를 모함해 주륙(誅戮)하고, 왕씨(王氏)의 세력이 성대해지며, 재변이 자주 나타나되 군신(羣臣)들이 감히 바른말을 못하는 것을 보고 매복이 상소하여 조진(條陳)하였던 것이다.

 

연작하(燕雀賀)

새로운 궁궐이 낙성(落成)된 것을 축하한다는 말이다. 큰 집이 새로 지어지면 보금자리가 생겼다고 제비와 참새 들이 서로 축하한다는 연작상하(燕雀相賀)’의 고사가 있다.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

 

연잔마(戀棧馬)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생각하는 용렬한 사람을 말한다.

 

연장(年丈)

원래는 부친의 나이와 비슷한 연장자를 말하는데, 함께 과거에 급제한 연장자라는 말로도 쓰인다.

 

연저(延竚)

머뭇거리다.

 

연적(硯滴)

벼룻물을 담는 그릇. , (), 돌 등으로 만드는데 보통은 도자기로 만듦.

 

연전(硯田)

벼루를 들어 밭에 비유한 것인데 문자로써 생계를 유지함을 이른다. 당경(唐庚)의 시에 硯田無惡歲라 하였다.

 

연전연승(連戰連勝)

싸움할 때마다 번번이 이김.

 

연전혜소(輦前嵆紹)

() 나라 혜제(惠帝)의 군사가 탕음(蕩陰)에서 패하였는데, 시중(侍中) 혜소(嵇紹)가 임금을 호위하다가 연() 앞에서 맞아 죽었다.

 

연제(燕齊)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산동지방에 있었던 두 나라의 이름으로 산동지방을 가리킨다.

 

연제우괴사(燕齊迂怪士)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봉래(蓬萊)의 안기생(安期生)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변가 연 나라 제 나라의 괴탄한 방사들이[海上燕齊怪迂之方士] 몰려와 신선에 대한 일을 떠들기 시작하였다.” 하였다.

 

연조강개(燕趙慷慨)

이 두 지방은 옛날에 협객(俠客)이 많이 났고, 의협적인 강개의 풍이 있었다.

 

연조로지재숙(燕趙魯之才淑)

연조(燕趙) 지역에는 우국지사(憂國之士)들이 많았으므로, 예부터 연ㆍ조에는 감개비가(感慨悲歌)하는 선비들이 많다고 일컬어졌다.

 

연조주(燕趙姝)

무녀(舞女)와 가희(歌姬)들을 가리킨다. 고시(古詩), “연과 조엔 아름다운 사람 많아서 미인은 얼굴이 옥과 같다네[燕趙多佳人 美者顔如玉]”하였는바, 연과 조에는 예로부터 미녀들이 많이 난다고 한다.

 

연종도력(年終都歷)

고려 때 모든 관리가 연중(年中)에 실제로 출사(出仕)한 일수와 휴가 일수 및 공적(功績)을 기록하여 고과(考課)하던 제도이다.

 

연주(連珠)

옛날 문체(文體)의 하나인 연연주(演連珠)의 준말로, 글의 표현이 화려하여 마치 구슬을 줄에 꿴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직설적인 내용 대신 간접적으로 완곡하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연주(煙酒)

담배(南靈草)의 별칭이다. 광해조(光海朝) 중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남령초가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기호품으로 자리잡자, 예전에는 손님접대를 차나 술로 하던 것을 담배를 권하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는 일이 빈번해졌으므로 세상에서 담배를 연다(煙茶)’ 또는 연주(煙酒)’라고 불렀다.

 

연주래(延州來)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계찰(季札)을 이른다. 그가 처음엔 연릉(延陵)에 봉해졌다가 뒤에 주래(州來)에 봉해졌으므로 이른 말인데, 그는 중원(中原)의 여러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국풍들을 구경했었다. 좌전(左傳)昭公 二十七年

 

연주부유(連州復乳)

() 나라 유종원(柳宗元)영릉군복유혈기(零陵郡復乳穴記), 석종유(石鍾乳)의 생산지로 유명한 연주(連州)5년 동안이나 석종유가 전혀 나오지 않다가 최군민(崔君敏)이 자사(刺史)로 부임하여 혜정(惠政)을 베풀자 다시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연준(蝡蠢)

연연준준(蝡蝡蠢蠢)의 준말로,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을 이른다.

 

연중황(淵中璜)

태공(太公)이 고기를 낚는데 곧은 낚시를 썼으니 고기가 잡힐 리가 없었고 옥황(玉璜)을 하나 낚아 얻었는데 글이 있기를, “()나라가 천하를 얻는다.” 하였다.

 

연지(蓮地)

사찰의 이명이다.

 

연지(連枝)

친형제를 말한다.

 

연지(硯池)

벼루를 씻는 연못을 말한다. 산음(山陰) 땅 난정(蘭亭)에 진() 나라 왕희지(王羲之)의 연지(硯池)가 있었는데, 조정에서 조칙을 반포하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 연못의 물이 모두 까맣게 변해 염색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다향실삼초(茶香室三鈔)』 『왕일소연지이적(王逸少硯池異迹)

벼룻물을 담아 두는 곳. 곧 벼루 앞쪽에 오목하게 파여진 곳을 말한다. 벼루의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지(臙脂)

여자들이 화장할 때에 사용하는 물품이다.

 

연진(嚥津)

도가(道家)의 양생법(養生法)의 하나이다. 신선전(神仙傳)에 의하면 입술을 핥고 침을 삼키고 기()를 수십 번 들이마신 다음에 일어나서 담소(談笑)를 한다.”고 하였다.

 

연진(軟塵)

연홍진(軟紅塵)의 약칭으로, 거마의 왕래가 어지럽고 시끄러운 서울 도회지의 실태를 말한다.

 

연진쌍검경동거(延津雙劍竟同去)

() 나라 때 유명한 칼인 용천검(龍泉劍)과 태아검(太阿劍)이 어떤 인연으로 서로 헤어졌다가, 나중에 연평진(延平津)의 물속에서 다시 만나 용이 되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 부부가 모두 세상을 떠났음을 말한다.

 

연진천수(燕秦千樹)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연 나라와 진 나라는 천 그루의 밤나무를 자랑한다.[燕秦千樹栗]”라는 글이 있다.

 

연집(燕集)

연회를 열다. 주연을 베풀다. ‘과 같음.

 

연참(鉛槧)

옛사람의 문자 기록하는 기구이다. ()은 문자를 도말하는 데에 쓰는 연분(鉛粉)이고 참()은 문자를 쓰는 목판(木板)이다. 서경잡기(西京雜記)양웅(揚雄)이 연필을 품에 끼고 분판을 들고서 계리(計吏)와 함께 수방 절속(殊方絶俗)의 말을 물어 방언(方言)을 지었다[揚雄懷鉛提槧 從諸計吏 訪殊方絶俗之語 作方言]” 하였다.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의 호이고 자는 성백(成伯)이다.

 

연청(延淸)

송지문(宋之問)의 자이다.

 

연촉귀송(蓮燭歸)

한림 학사 등 청직(淸職)에 몸을 담고서 임금의 총애를 받는 것을 말한다. 당 선종(唐宣宗) 때 한림 승지(翰林承旨) 영호도(令狐綯)가 밤중에 소대(召對)를 받고 궁중에 들어갔다가 학사원(學士院)으로 돌아올 적에 황제가 쓰는 황금 연꽃 모양의 촛불 아래 전송을 받으며 귀환하자 관리들이 모두 황제의 행차로 여겼던 고사가 전한다. 신당서(新唐書)』 「영호도전(令狐綯傳)

 

연충(淵衷)

연못처럼 깊은 마음이라는 말로 임금의 마음을 말한다. / 인용: 正氣錄序(윤근수)

 

연촉분휘(蓮燭分輝)

당 나라 영호도(令狐綯)가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있을 때 밤에 어전(御前)에서 늦도록 담론(談論)하다가 나올 때에, 임금이 어전에서 쓰는 금련촉(金蓮燭)을 나누어 내시(內侍)를 시켜 보내 주었다. 송 나라 소식(蘇軾)도 이런 일이 있었다.

 

연탁한사절(燕𠸌漢嗣絶)

한 성제(漢成帝)의 후()인 조비연(趙飛燕)과 그의 동생 조소의(趙昭儀) 때문에 전한(前漢)왕망(王莽)에게 찬탈당했음을 말한 것이다. 성제는 조비연을 사랑하여 황후로 삼고 그의 동생을 소의로 삼았는데, 소의가 황제의 아들을 살해하여 아들이 없으므로 정도왕(定陶王) ()을 세우니 이가 곧 애제(哀帝)이며, 다시 아들이 없어 평제(平帝)가 섰으나 왕망에게 시해되고 결국 전한은 멸망하였다. 이보다 앞서 동요(童謠)제비가 날아와 황손을 쪼아먹는다[燕飛來 啄皇孫].” 하였는데, 제비는 곧 조비연 자매를 가리킨 것이라 한다. 한서(漢書)外戚傳 효성조황후전(孝成趙皇后傳)

 

연태일려(燃太一藜)

태일(太一)은 태을(太乙)과 같은 뜻으로 북신(北辰)의 귀신 이름이다. 삼보황도(三輔黃圖)유향(劉向)이 천록각(天祿閣)에서 교서(校書)하고 있는데, 밤에 한 노인이 청려장을 짚고서 청록각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청려장의 끝을 부니, 연기가 나면서 불이 켜졌다. 유향이 그에게 성명을 물으니, 그는 나는 태을의 정기이다.’ 했다.” 하였다.

 

연퇴급류(緣退急流)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용감하게 물러난다는 뜻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한 관도(官途)를 단연코 물러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연파(煙波)

당 나라 장지화가 벼슬을 그만둔 뒤 배 한 척에 몸을 싣고 범택부가(泛宅浮家)하며 자칭 연파조도(煙波釣徒)라고 일컬었던 고사가 있다. 연파(煙波)는 연무(煙霧)가 창망하게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강호를 말한다. 신당서(新唐書)』 「장지화전(張志和傳)

 

연파범택(煙波泛宅)

연파는 당() 나라 때의 은사 장지화(張志和)의 자호인 연파조도(煙波釣徒)의 준말이다. 당시 안진경(顔眞卿)이 호주 자사(湖州刺史)가 되었을 때 장지화가 찾아가 알현하자 안진경이 그의 부서진 배를 고치기를 청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가택(家宅)을 물에 띄우고 초계(苕溪)ㆍ삽계(霅溪) 사이를 왕래하고 싶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卷一百九十六

 

연파불반유오도(煙波不返遊吳棹)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범려(范蠡)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회계(會稽) 싸움에서 실패한 수치를 씻어준 후, 배를 타고 오호(五湖)를 유람하면서 성명을 고치고 세상 영화를 멀리하였다.” 하였다.

 

연파수(煙波叟)

() 나라 때 은사(隱士)인 장지화(張志和)가 친상(親喪)을 당한 뒤로는 벼슬을 그만두고 강호(江湖)에 살면서 연파조도(煙波釣徒)라 자호하였다.

 

연파조도(煙波釣徒)

연파는 안개 같은 것이 끼어 부옇게 보이는 물결을 말한 것으로, 연파의 무리란 즉 호수 가에 은거하면서 낚시질이나 하는 은자(隱者)를 말한다.

 

연파조수(煙波釣叟)

() 나라 때의 고사(高士)로서 연파조도(煙波釣徒)라 자호한 장지화(張志和)를 이른다.

 

연패(淵佩)

청 나라에서 간행한 연감유함(淵鑑類函)패문운부(佩文韻府)를 합칭한 말이다.

 

연패(捐佩)

패옥을 버리는 것. 초사(楚辭)구가(九歐)나의 결()을 강중에 버리노라……[捐余玦兮江中]” 하였다.

 

연패회(捐佩會)

굴원(屈原)이 상강(湘江)의 귀신을 소재로 지은 상군(湘君)’이라는 시를 인용하여 뱃놀이를 비유한 것이다. 상군(湘君)을 영접하기 위해 강 위에 향초의 집을 짓고 향초의 배를 저어 가며 온갖 정성을 다 쏟다가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차고 있는 패옥(佩玉)이 무슨 소용이냐며 강 속에 내던져 버리고는[捐余玦兮江中 遺余佩兮醴浦], 그동안 수고해 준 상군의 시녀에게 모래섬의 향초를 캐어 선물로 준다[采芳洲兮杜若 將以遺兮下女]는 내용이 그 시의 끝 부분에 나오는데, 바로 그 연()과 패() 두 글자를 뽑아서 연패의 모임(捐佩會)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초사(楚辭)九歌

 

연평(延平)

연평부원군 이귀(李貴)를 가리킨다.

이통(李侗)이다. 이통은 71세 때 왕응신(汪應辰)이 서폐(書幣)로 영접하자 이통이 그를 찾아가서 보고 그날로 병이 발작하여 죽었다. 송사(宋史)卷四百二十八 이합전(李郃傳)

 

연평검화진(延平劒化津)

부부가 모두 죽어 합장(合葬)할 때 만사(輓詞)에서 흔히 쓰는 말로, 검이 용으로 화해 두 마리가 합쳐졌다는 것은 죽어서 합장한 것을 말한다. 옛날에 오()나라의 무고(武庫) 안에 두 마리의 토끼가 있어서 무기의 쇠를 모두 먹어치웠는데, 이를 잡아 배를 가르니 쇠로 된 쓸개가 나왔다. 오왕이 검공(劒工)에게 명해서 이 쓸개로 검 두 개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간장(干將)으로 수컷이고, 다른 하나는 막야(鏌鎁)로 암컷이었다. 오왕은 이를 돌 상자에 넣어서 깊숙이 감추어 두었다. 그 뒤 진()나라 때 이르러서 오 땅에 자색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침에 장화(張華)가 보물이 있는 것을 안 다음, 뇌환(雷煥)이 천문(天文)과 술수(術數)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에게 가서 가르쳐 주기를 청하니, 뇌환이 말하기를, “하늘 위의 우수와 두수 사이에 자색 기운이 있는 것은 보물의 정기이다.” 하였다. 장화가 뇌환을 풍성현(豐城縣)의 현령으로 보내 이 두 검을 얻은 다음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그 뒤에 장화가 화를 당하자 장화가 가지고 있던 검은 양성(襄城)의 물 속으로 날아들어가고, 뇌환이 가지고 있던 검은 뇌환이 죽고 나서 뇌환의 아들이 검을 차고 연평진(延平津)을 지나갈 때 갑자기 허리춤에서 빠져 나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잠수부를 시켜서 검을 찾게 하였는데, 물속에는 단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만 보일 뿐 검은 찾지 못하였다. 습유기(拾遺記)卷十태평어람(太平御覽)卷三百四十四

 

연평로(延平老)

송 나라의 학자 이통(李侗)을 가리킨다. 연평은 그의 호이다. 나종언(羅從彦)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물러나서 여산(廬山) 아래에서 은거해 있으면서 세상과 담을 쌓고 스스로를 즐겼는데, 주희가 일찍이 그에게 가서 제자례(弟子禮)를 올렸다. 송사(宋史)428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의 봉호(封號)이다.

 

연평상공(延平相公)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에 봉해진 이귀(李貴)를 말한다.

 

연필(椽筆)

대수필(大手筆), 문장이 출중함을 말한다. 진서(晉書)65왕순전(王珣傳), “왕순이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서까래만한 커다란 붓을 주는 꿈을 꾸었는데, 꿈을 깨어서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대수필(大手筆)을 쓰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얼마 뒤에 황제가 죽었는데, 애책문(哀冊文)과 시의(諡議)를 모두 왕순이 기초(起草)하였다.” 하였다. / 인용: 沃川貞女行(김두열)

 

연필생화(椽筆生花)

() 나라 때 시인 이백(李白)이 젊었을 때에 붓머리에서 꽃이 피어나는 꿈을 꾸고 나서 문명(文名)이 천하에 드높았다 한다.

 

연하(燕賀)

남이 집 지은 것을 축하하는 말이다. 제비는 본디 사람의 집에 둥우리를 틀고 사는 새이기 때문에 사람이 집을 지으면 서로 축하하며 기뻐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회남자(淮南子), “큰 집이 낙성되면 제비ㆍ참새가 서로 치하한다[厦成而燕崔相賀].”하였다.

 

연하(煙霞)

산수(山水)의 경치를 말한다.

 

연하계(煙霞契)

산속에 들어가 숨어살려는 약속을 말한다.

 

연하고질(煙霞痼疾)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병처럼 깊음을 뜻하는 말이다. 당 나라 전암(田巖)이 벼슬을 마다하고 깊은 산속에 숨어살면서 임금이 지나다가 묻은 말에 답하기를, “()은 연하고질(煙霞痼疾)이요, 천석고황(泉石膏肓)입니다.” 하였다. 그것은 산수(山水)를 좋아하는 성벽(性癖)이라는 뜻이다.

 

연하동(煙霞洞)

항주부(杭州府) 성남(城南)에 있는 명승지로 석각나한(石刻羅漢)이 있다. 명일통지(明一統志)

 

연하어(煙霞語)

연하는 안개와 노을. 곧 속기가 없는 고상한 얘기를 말한다.

 

연하일휘(煙霞日輝)

안개와 놀과 햇빛. , 아름다운 자연 경치

 

연함(燕頷)

턱이 뾰족한 제비턱으로 귀인의 상이라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반초전(班超傳)에 연함(燕頷)과 호수(虎鬚)는 봉후(封侯)의 상이다.” 하였다.

 

연함호두(燕頷虎頭)

변방의 장수로 나가 큰 공을 세워 후()로 봉함을 받을 만한 위무(威武)스러운 장군의 골상(骨相)을 말한다. 서역(西域)에 종군(從軍)하여 정원후(定遠侯)로 봉해진 후한(後漢) 반초(班超)가 소싯적에 관상을 보자 제비턱에 범의 목을 하고 있으니 이는 만리후의 상이다[燕頷虎頸 此萬里侯相也]”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47 반초전(班超傳)

 

연허(燕許)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신인 연국공(燕國公) 장열(張說)과 허국공(許國公) 소정(蘇頲)을 가리키는 말로, 두 사람 모두 문장이 뛰어났기 때문에 연허대수필(燕許大手筆)’로 일컬어졌다.

 

연호(宴鎬)

()는 주() 나라의 서울이다. 주 나라 선왕(宣王) 때에 흉노(匈奴)족을 정벌하여 성공하고 돌아온 장병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였다.

 

연홍(鉛汞)

도가(道家)의 추환법(抽換法). ()과 홍()을 솥에 넣어 단약(丹藥)을 연()하는 것이다.

 

연홍(鉛紅)붉은 분가루. 곧 곱게 화장을 한 여자를 말한다.

 

연홍(燕鴻)

제비는 가을에 남쪽으로 갔다가 봄에 오고, 기러기는 봄에 북쪽으로 갔다가 가을에 오므로 서로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는 말이다. / 유의어: 연홍지탄(燕鴻之歎), 연안대비(燕雁代飛)

 

연화(烟花)

봄꽃들이 활짝 피어 뽀얗게 흐려보이는 현상으로 봄철의 경치를 말한다. 또는 안개의 꽃으로 단순히 안개라는 뜻도 있다.

 

연화(煙火)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서 불을 때어 나는 연기라는 뜻으로, 사람이 사는 기척 또는 인가를 이르는 말이다. / 인용: 老翁問答(이경석)

 

연화게(蓮花偈)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를 찬양한 글귀이다.

 

연화기보멸(蓮花起步懱)

미인의 아름다운 발걸음을 형용한 말이다. 남제(南齊) 때의 동혼후(東昏侯)가 자기 총희인 반비(潘妃)가 다니는 길에 황금으로 만든 연꽃을 깔아놓고 반비에게 그 위를 걷게 하면서 말하기를 발자국마다 연꽃이 나온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남사(南史)』 「제동혼후기(齊東昏侯紀)

 

연화루(蓮花漏)

물시계를 말한다. () 나라 때 혜원법사(慧遠法師)의 제자 혜요(慧要)가 산중에 시계(時計)가 없음을 염려하여 물 위에다 12개의 연잎을 세워서 물결을 따라 회전하게 하여 12()를 정했던 데서 온 말이다.

 

연화세계(蓮花世界)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 세계로 화엄세계(華嚴世界) 또는 극락세계(極樂世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화풍(楝花風)

음력 3곡우(穀雨) 절기의 마지막 화신풍(花信風). 이를 고비로 하여 봄은 다 가고 여름이 옴. 동고잡록(東皐雜錄)

 

연환(煙鬟)

푸른 산봉우리를 말한다. 소식(蘇軾)의 능허대시(凌虛臺詩)떨어지는 햇빛 푸른 벼랑을 감싸고 저녁 구름 연환에 젖어 있네.” 한 글귀가 있다.

 

연환지해(連環之解)

() 나라 임금이 틈도 없는 가락지(連環)를 조() 나라에 보내면서 이것을 풀어 보라 하였다. 여러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르는데, 왕후(王后)는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쳐서 깨뜨리고서, 진 나라 사신(使臣)에게 연환을 이렇게 풀었다고 전하라 하였다. 진 나라에서는 그의 지혜에 탄복하였다.

 

연환체(連環體)

시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 시의 첫 구절로 하여 짓는 시를 말한다. / 유의어: 회문시(廻文詩).

 

연횡(連橫)

강한 자와 약한 자가 결탁하는 것을 말한다. 합종연횡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최후로 남은 일곱 나라 가운데 진()나라가 가장 강하였고 나머지는 6국은 약했는데, 서쪽의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남북으로 약한 6국을 동맹시킨 소진(蘇秦)의 외교 전략을 합종이라 하고, 소진이 피살된 후 장의(張儀)가 이들 6국을 동서로 묶어 진나라를 섬기게 한 외교 전략을 연횡이라 한다.

 

연횡책(連衡策)

6국이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하는 정책.

 

연희(燕姬)

가무(歌舞)를 잘하기로 예로부터 유명했던 연() 지방의 여자를 말한다.

 

연희아(捐羲娥)

한유(韓愈)석고가(石鼓歌)어느 구절에, “서쪽으로 간 공자가 진 나라엔 가지 못해, 별들만을 따담고서 해와 달은 버렸다네[孔子西行不到秦 摭星宿遗羲娥].”하였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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