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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5. 이명(耳鳴)과 코골기 내가 아는 걸 남이 몰라도, 내가 모르는 걸 남이 알아도 화가 난다 다시 연암에게로 돌아가자.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의 한 도막이다. 어린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에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에 아이가 서로 맞대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耳鳴)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하였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
4.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 이미지의 구성이 이렇게 탄탄하고, 언외의 함축이 이렇듯 유장하다 보니, 한시의 감상은 매우 지적이고 감성적인 바탕이 요구된다. 그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도 없고, 아무나 알 수도 없다. 껍데기가 아닌 실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 조선 후기의 문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질뇌(疾雷)」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레 소리에 산이 무너져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해가 중천에 솟아도 소경은 보지 못한다. 도덕과 문장의 아름다움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며, 왕도와 패도, 의(義)와 리(理)의 구분을 속인은 변별하지 못한다. 아아! 세상의 남아들이여. 눈과 귀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총명은 눈과 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조각 영각..
4. 허공 속으로 난 길② 함축함으로 상상의 여지를 만들어낸 백광훈의 ‘홍경사’ 다음은 조선 중기의 시인 백광훈(白光勳)의 「홍경사(弘慶寺)」란 작품이다.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가을 풀, 전조(前朝)의 절 남은 비(碑), 학사의 글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보네. 이 작품을 다시 이렇게 배열해 보면 어떨까. 가을 풀 고려(高麗) 때 절. 남은 비(碑) 학사(學士)의 글. 천년(千年)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 이미지의 배열이 박목월(朴木月)의 「불국사(佛國寺)」를 연상시킨다.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 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구름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3. 허공 속으로 난 길 시는 시인이 짓는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는 사물이 직접 말을 건넨다. 시에서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이유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이언인(俚言引)」이란 글에서 “시는 만물이 사람에게 가탁하여 짓게 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귀와 눈으로 들어와서 단전(丹田) 위를 맴돌다가 끊임없이 입과 손을 따라 나오니, 시인과는 상관하지 않는다[故其假於人, 而將爲詩也, 溜溜然從耳孔眼孔中入去, 徘徊乎丹田之上, 續續然從口頭手頭上出來, 而其不干於人也].”고 말했다. 사물은 제 스스로 성색정경(聲色情境)을 갖추고 있어, 단지 시인의 입과 손을 빌어 시가(詩歌) 언어(言語)로 형상화 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때 시인은 사물의 몸짓..
2.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 대저 시인은 천기(天機)를 누설하는 자이다. 시를 쓰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시인의 정신처럼 송나라의 유명한 평론가 엄우(嚴羽, 약 1290~1364)는 그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저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으니, 책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旨趣)가 있으니 이치와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고 이치를 많이 궁구하지 않으면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할 수가 없으니, 이른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말의 통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윗길이 된다. 夫詩, 有别材, 非關書也; 詩有别趣, 非關理也. 然非多讀書多窮理,..
1. 허공 속으로 난 길 1.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빛 표면적 진술에만 집착하는 독자는 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행간에 감춰진 함축, 언어와 언어가 만나 부딪치며 속삭이는 순간순간의 스파크, 그런 충전된 에너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취(生趣)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고정관념이 아닌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대하라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答蒼厓)」란 글에는 마을의 꼬마가 천자문(千字文)을 배우는 데 게으름을 부리자, 선생이 이를 야단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자 꼬마가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 자(字)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천자문(千字文)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말이 천지현황(天地玄黃)이..
지은이의 말 한시는 전달의 특수성 때문에 오늘날 그 효용가치를 상실했다. 한시는 전문 연구자들의 학술적 관심사가 되고 있을 뿐,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버린 낡은 길이다. 그렇다고 한시가 추구한 정신의 깊이나 미학의 너비마저 덤불 속에 버려둘 수는 없다. 먼지 쌓인 역사의 뒤편에 방치된 채 날로 그 빛이 바래가고 있는 한시에다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고, 막힌 길을 새로 뚫어 현대적 의미를 밝히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책무다. 이 책은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 1994년 2월부터 1996년 5월에 걸쳐 연재한 글을 보태어 손질하고 차례를 가다듬어 정리한 것이다. 고전 시학의 정수를 오늘의 시인과 독자들이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접근하게 할 수는 없을까? 한시는 정말로 골동적 가치만을 지닌 퇴영적 문화유산에 지나지..
19 仲尼在陳, 有隼集于陳侯之庭而死, 楉矢貫之, 石砮, 其長尺有咫. 陳惠公使人以隼如仲尼之館問之. 仲尼曰: “隼之來也遠矣! 此肅愼氏之矢也. 昔武王克商, 通道于九夷․百蠻, 使各以其方賄來貢, 使無忘職業. 於是肅愼氏貢楉矢․石砮, 其長尺有咫. 先王欲昭其令德之致遠也, 以示後人, 使永監焉, 故銘其栝曰 ‘肅愼氏之貢矢’ , 以分大姬, 配虞胡公而封諸陳. 古者, 分同姓以珍玉, 展親也 ; 分異姓以遠方之職貢, 使無忘服也, 故分陳以肅愼氏之貢. 君若使有司求諸故府, 其可得也.” 使求, 得之金櫝, 如之. 인용목차
18 吳伐越, 墮會稽, 獲骨焉, 節專車. 吳子使來好聘, 且問之仲尼, 曰: “無以吾命.” 賓發幣於大夫及仲尼, 仲尼爵之. 旣徹俎而宴, 客執骨而問曰: “敢問骨何爲大?” 仲尼曰: “丘聞之: 昔禹致羣神於會稽之山, 防風氏後至, 禹殺而戮之, 其骨節專車, 此爲大矣.” 客曰: “敢問誰守爲神?” 仲尼曰: “山川之靈, 足以紀綱天下者, 其守爲神 ; 社稷之守者, 爲公侯. 皆屬於王者.” 客曰: “防風何守也?” 仲尼曰: “汪芒氏之君也, 守封․嵎之山者也, 爲漆姓. 在虞․夏․商爲汪芒氏, 於周爲長狄, 今爲大人.” 客曰: “人長之極幾何?” 仲尼曰: “僬僥氏長三尺, 短之至也. 長者不過十數之, 數之極也.” 인용목차
17 公父文伯之母朝哭穆伯, 而暮哭文伯. 仲尼聞之曰: “季氏之婦可謂知禮矣. 愛而無私, 上下有章.” 인용목차
16 公父文伯卒, 其母戒其妾曰: “吾聞之: 好內, 女死之 ; 好外, 士死之. 今吾子夭死, 吾惡其以好內聞也. 二三婦之辱共先者祀, 請無瘠色, 無洵涕, 無掐膺, 無憂容, 有降服, 無加服. 從禮而靜, 是昭吾子也.” 仲尼聞之曰: “女知莫若婦, 男知莫若夫. 公父氏之婦智也夫! 欲明其子之令德.” 인용목차
15 公父文伯之母欲室文伯, 饗其宗老, 而爲賦「綠衣」之三章. 老請守龜卜室之族. 師亥聞之曰: “善哉! 男女之饗, 不及宗臣 ; 宗室之謀, 不過宗人. 謀而不犯, 微而昭矣. 詩所以合意, 歌所以詠詩也. 今詩以合室, 歌以詠之, 度於法矣.” 인용목차
14 公父文伯之母, 季康子之從祖叔母也. 康子往焉. *위門與之言, 皆不踰閾. 祭悼子, 康子與焉, 胙不受, 徹俎不宴, 宗不具不繹, 繹不盡飫則退. 仲尼聞之, 以爲別於男女之禮矣. 인용목차
13 01 公父文伯退朝, 朝其母, 其母方績. 文伯曰: “以歜之家而主猶績, 懼忓季孫之怨也, 其以歜爲不能事主乎!” 02 其母歎曰: “魯其亡乎! 使僮子備官而未之聞耶? 居, 吾語女. 昔聖王之處民也, 擇瘠土而處之, 勞其民而用之, 故長王天下. 夫民勞則思, 思則善心生 ; 逸則淫, 淫則忘善, 忘善則惡心生. 沃土之民不材, 淫也 ; 瘠土之民莫不向義, 勞也. 是故天子大采朝日, 與三公․九卿祖識地德 ; 日中考政, 與百官之政事, 師尹維旅․牧․相宣序民事 ; 少采夕月, 與大史․司載糾虔天刑 ; 日入監九御, 使絜奉禘․郊之粢盛, 而後卽安. 諸侯朝修天子之業命, 晝考其國職, 夕省其典刑, 夜儆百工, 使無慆淫, 而後卽安. 卿大夫朝考其職, 晝講其庶政, 夕序其業, 夜庀其家事, 而後卽安. 士朝受業, 晝而講貫, 夕而習復, 夜而計過, 無憾, 而後卽安. ..
12 公父文伯之母如季氏, 康子在其朝, 與之言, 弗應, 從之及寢門, 弗應而入. 康子辭於朝而入見, 曰: “肥也不得聞命, 無乃罪乎?” 曰: “子弗聞乎? 天子及諸侯合民事於外朝, 合神事於內朝 ; 自卿以下, 合官職於外朝, 合家事於內朝 ; 寢門之內, 婦人治其業焉. 上下同之. 夫外朝, 子將業君之官職焉 ; 內朝, 子將庀季氏之政焉 ; 皆非吾所敢言也.” 인용목차
11 公父文伯飮南宮敬叔酒, 以露睹父爲客. 羞鼈焉, 小, 睹父怒. 相延食鼈, 辭曰: “將使鼈長而後食之.” 遂出. 文伯之母聞之, 怒曰: “吾聞之先子曰: ‘祭養尸, 饗養上賓.’ 鼈於何有? 而使夫人怒也!” 遂逐之. 五日, 魯大夫辭而復之. 인용목차
10 季康子問於公父文伯之母曰: “主亦有以語肥也!” 對曰: “吾能老而已, 何以語子?” 康子曰: “雖然, 肥願有聞於主.” 對曰: “吾聞之先姑曰: ‘君子能勞, 後世有繼.’ ” 子夏聞之, 曰: “善哉! 商聞之曰: ‘古之嫁者, 不及舅․姑, 謂之不幸.’ 夫婦, 學於舅姑者禮也.” 인용 목차
09 季桓子穿井, 獲如土缶, 其中有羊焉. 使問之仲尼曰: “吾穿井而獲狗, 何也?” 對曰: “以丘之所聞, 羊也. 丘聞之: 木石之怪曰夔․蝄蜽, 水之怪曰龍․罔象, 土之怪曰羵羊.” 인용목차
08 01 平丘之會, 晉昭公使叔向辭昭公, 弗與盟. 子服惠伯曰: “晉信蠻․夷而棄兄弟, 其執政貳也. 貳心必失諸侯, 豈唯魯然? 夫失其政者, 必毒於人, 魯懼及焉, 不可以不恭. 必使上卿從之.” 季平子曰: “然則意如乎? 若我往, 晉必患我, 誰爲之貳?” 子服惠伯曰: “椒旣言子矣, 敢逃難乎? 椒請從.” 02 晉人執平子. 子服惠伯見韓宣子曰: “夫盟, 信之要也. 晉爲盟主, 是主信也. 若盟而棄魯侯, 信抑闕矣. 昔欒氏之亂, 齊人閒晉之禍, 伐取朝歌. 我先君襄公不敢寧處, 使叔孫豹發帥敝賦, 踦跂畢行, 無有處人, 以從軍吏, 次於雍渝, 與邯鄲勝擊齊之左, 掎止是晏萊焉. 齊師退而後敢還. 非以求遠也, 以魯之密邇於齊, 而又小國也. 齊朝駕則夕極於魯國, 不敢憚其患, 而與晉共其憂, 亦曰: ‘庶幾有益於魯國乎!’ 今信蠻․夷而棄之, 夫諸侯之勉於君者, ..
07 01 虢之會, 諸侯之大夫尋盟未退. 季武子伐莒取鄆. 莒人告于會, 楚人將以叔孫穆子爲戮. 晉樂王鮒求貨於穆子, 曰: “吾爲子請於楚.” 穆子不予. 梁其踁謂穆子曰: “有貨, 以衛身也. 出貨而可以免, 子何愛焉?” 穆子曰: “非女所知也. 承君命以會大事, 而國有罪, 我以貨私免, 是我會吾私也. 苟如是, 則又可以出貨而成私欲乎? 雖可以免, 吾其若諸侯之事何? 夫必將或循之, 曰: ‘諸侯之卿有然者故也.’ 則我求安身而爲諸侯法矣. 君子是以患作. 作而不衷, 將或道之, 是昭其不衷也. 余非愛貨, 惡不衷也. 且罪非我之由, 爲戮何害?” 楚人乃赦之. 02 穆子歸, 武子勞之, 日中不出. 其人曰: “可以出矣.” 穆子曰: “吾不難爲戮, 養吾棟也. 夫棟折而榱崩, 吾懼壓焉. 故曰雖死於外, 而庇宗於內, 可也. 今旣免大恥, 而不忍小忿, 可以爲能乎?” ..
06 虢之會, 楚公子圍二人執戈先焉. 蔡公孫歸生與鄭罕虎見叔孫穆子, 穆子曰: “楚公子甚美, 不大夫矣, 抑君也.” 鄭子皮曰: “有執戈之前, 吾惑之.” 蔡子家曰: “楚, 大國也” 公子圍, 其令尹也. 有執戈之前, 不亦可乎?” 穆子曰: “不然. 天子有虎賁, 習武訓也 ; 訓侯有旅賁, 禦災害也 ; 大夫有貳車, 備承事也 ; 士有陪乘, 告奔走也. 今大夫而設諸侯之服, 有其心矣. 若無其心, 而敢設服以見諸侯之大夫乎? 將不入矣. 夫服, 心之文也, 如龜焉, 灼其中, 必文於外. 若楚公子不爲君, 必死, 不合諸侯矣.” 公子圍反, 殺郟敖而代之. 인용목차
05 襄公在楚, 季武子取卞, 使季冶逆, 追而予之璽書, 以告曰: “卞人將畔, 臣討之, 旣得之矣.” 公未言, 榮成子曰: “子股肱魯國, 社稷之事, 子實制之. 唯子所利, 何必卞? 卞有罪, 而子征之, 子之隷也, 又何謁焉?” 子冶歸, 致祿而不出, 曰: “使予欺君, 謂予能也. 能而欺其君, 敢享其祿而立其朝乎?” 인용 목차
04 襄公如楚, 及漢, 聞康王卒, 欲還. 叔仲昭伯曰: “君之來也, 非爲一人也, 爲其名與其衆也. 今王死, 其名未改, 其衆未敗, 何爲還?” 諸大夫皆欲還. 子服惠伯曰: “不知所爲, 姑從君乎?” 叔仲曰: “子之來也, 非欲安身也, 爲國家之利也, 故不憚勤遠而聽於楚 ; 非義楚也, 畏其名與衆也. 夫義人者, 固慶其喜而弔其憂, 况畏而服焉? 聞畏而往, 聞喪而還, 苟羋姓實嗣, 其誰代之任喪? 王太子又長矣, 執政未改, 予爲先君來, 死而去之, 其誰曰不如先君? 將爲喪擧, 聞喪而還, 其誰曰非侮也? 事其君而任其政, 其誰由己貳? 求說其侮, 而亟於前之人, 其讎不滋大乎? 說侮不懦, 執政不貳, 帥大讎以憚小國, 其誰云待之? 若從君而走患, 則不如違君以避難. 且夫君子計成而後行, 二三子討乎? 有禦楚之術, 而有守國之備, 則可也 ; 若未有, 不如往也.”..
03 諸侯伐秦, 及涇莫濟. 晉叔向見叔孫穆子曰: “諸侯謂秦不恭而討之, 及涇而止, 於秦何益?” 穆子曰: “豹之業, 及「匏有苦葉」矣, 不知其他.” 叔向退, 召舟虞與司馬, 曰: “夫苦匏不材於人, 共濟而已. 魯叔孫賦「匏有苦葉」, 必將涉矣. 具舟除隧, 不共有法.” 是行也, 魯人以莒人先濟, 諸侯從之. 인용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