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1996년 (330)
건빵이랑 놀자
10.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③ 날 향해 핀 꽃을 얘기하다 春風忽已近淸明 봄바람 문득 이미 청명이 가까우니 細雨霏霏晩未晴 보슬비 보슬보슬 늦도록 개이잖네. 屋角杏花開欲遍 집 모롱이 살구꽃도 활짝 피어나려 數枝含露向人傾 몇 가지 이슬 머금고 날 향해 기울었네. 그리하여 봄은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위 시는 권근(權近)의 「춘일성남즉사(春日城南卽事)」이다. 청명이 가까워진 어느 봄날 성남의 소묘이다. 굳이 ‘두목(杜牧)’의 “청명시절우분분(淸明時節雨紛紛)”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 시절에는 꽃 소식을 재촉하는 봄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신다. 이른바 행화(杏花)의 시절이 온 것이다. 가을날의 근심이 덧없이 스러진 청춘의 꿈을 애상(哀喪)하는 허탈한 독백이라면, 봄날의 근심은 근심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알 수 없..
9.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② 이색, 사립문을 닫은 까닭 이제 입상진의(立象盡意)의 거울에 비추어, 시 몇 수를 감상해 보자. 1수 「팔월초십일(八月初十日)」이고 2수 「신흥(晨興)」으로 다음과 같다. 夜冷貍奴近 天晴燕子高 차운 밤 고양이는 가까이 붙고 개인 하늘 제비는 높이 나누나. 殘年深閉戶 淸曉獨行庭 남은 해 깊이 문 닫아 걸고 맑은 새벽 홀로 뜰을 걸으리. 『소문쇄록(謏聞瑣錄)』에서 한적시(閑寂詩)의 대표적 예로 들고 있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작품이다. 서늘해진 가을 밤, 고양이는 추위를 못 이겨 자꾸 사람 곁을 찾아들고, 하늘 높이 제비는 강남 가는 길을 서두른다. 시인은 고양이와 제비를 빌어 가을이 깊어 감을 말하고 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고양이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외롭고 ..
5.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다시 그림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다. 산수화에서 비가 오는 광경은 어떻게 그리는가? 화면 위에 빗금을 그어 빗줄기를 그리지는 않는다. 눈이 오는 것을 어떻게 그리는가? 학생들이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릴 때처럼 칫솔에 흰 물감을 묻혀 뿌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바람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은 없고 비만 올 때는? 비를 그리지 않고, 눈을 그리지 않고, 바람을 그리지 않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비와 바람을 시로 담는 법 왕유(王維)의 저술로 전해지는 「산수결(山水訣)」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가 오면 천지가 구분되지 않고 동서를 알 수가 없다. 바람만 불고 비는 오지 않으면, 단지 나무의 가지만 보인다. ..
7. 내 혀가 있느냐?② 부드러운 게 강한 걸 이긴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의 염려 때문에 입상(立象)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직설적 언어의 나열보다 전달면에서 더욱 훌륭한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허균(許筠)의 『한정록(閑情錄)』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상용(商容)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 그가 병으로 눕자 노자가 물었다. “선생님! 제자에게 남기실 가르침이 없으신지요?”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를 내리 거라. 알겠느냐?”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거든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알겠느냐?” “강한 것은 ..
4. 내 혀가 있느냐? 언어가 이처럼 불완전한 도구라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불완전하게 남겨둬 많은 얘기를 담긴다 서진(西晋)의 구양건(歐陽建)은 「언진의론(言盡意論)」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금에 이름을 바로잡으려 힘쓰고, 성현이 말을 능히 떠나지 못한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진실로 이치를 마음에서 얻어도 말이 아니면 펼 수가 없고, 사물을 말에 고정시켜도 이름이 아니면 구분할 수 없다.” 언어가 제 아무리 불완전한 존재라 해도, 인간은 언어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옛 성인의 뜻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주역(周易)』 「계사(繫辭)」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성인은 상(象)을 세워서 그 뜻을 다하고, 괘(卦)를 세워서 참과 거짓을 다하..
5.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② 스승이 미처 전하지 않은 본질을 떠난 다음에 알아채다 백아(伯牙)의 절현(絶絃)은 지음(知音)이던 종자기(鍾子期)의 죽음 때문이었다. 백아가 물 흐르는 것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곁에서 “강물이 넘실대는 것 같군.” 했고, 산을 오르는 것을 생각하면 종자기는 또한 그 마음을 그대로 읽었다. 그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평생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수선조(水仙操)」란 시의 서문에는 이 백아가 처음 성련(成連)에게서 거문고를 배울 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성련에게서 3년을 배운 백아는 연주의 대체를 터득하였으나, 정신을 텅 비게 하고 감정을 전일(專一)하게 하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성련은 “내가 더 이상은 가르칠 수 없겠구나. 내 스승 방자춘..
3.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언어로 전할 수 없는 것 『장자(莊子)』 「천도(天道)」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 ‘환공’이 누각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아래서 수레바퀴의 굴대를 끼우던 ‘윤편(輪扁)’이 다짜고짜 계단을 올라와 임금에게 물었다. “전하! 지금 읽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옛 성인의 책이니라.” “그 분은 지금 살아 계신가요?” “죽었지.” “그렇다면 전하께선 옛 사람의 껍데기를 읽고 계신 거로군요.” 제 환공은 화가 났다. 윤편의 수작이 방자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네 이놈! 무엄하구나. 그 말이 무슨 뜻인가. 까닭이 있으면 살려 주려니와, 그렇지 않다면 살려두지 않으리라.” 윤편은 대답한다. “저는 저의 일을 가지고 판단할 뿐입니다. 제가 바퀴를 끼운 것..
3. 왜 사냐건 웃지요② 왜 산에 사냐고 물으니, 그냥 산다 하지요 問余何事棲碧山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냐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閒 웃고 대답 아니 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 가거니 別有天地非人間 또 다른 세상일래, 인간이 아니로세.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산속에 묻혀 사는 나에게, 왜 답답하게 산속에 사느냐고 묻는다. 묵묵부답(黙黙不答),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한들 그가 내 마음을 어이 헤아릴 것이랴. 또 낸들 무슨 뾰족한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나, “왜 사냐 건 웃지요” 밖에는. 복사꽃이 물 위로 떠가니, 상류 어디엔가 무릉의 도원이 있지나 않을런지. 잠자다 일어나니, 분별하려는 기심조..
2. 왜 사냐건 웃지요 백지 편지에 보내온 센스 가득한 아내의 답장 옛 사람의 글에는 야단스러움이 없다. 간결하게 할 말만 하고, 때로 아무 말도 않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은 글자 사이로 흘러, 행간에 고여 넘친다. 예전 중국의 곽휘원(郭暉遠)이란 이가 먼 데로 벼슬 나가 있다가 집에 편지를 보냈는데, 착각하여 백지를 넣고 봉하였다. 그 아내가 오랜만에 온 남편의 편지를 꺼내 보니 달랑 백지 한 장뿐이었다. 답시를 보냈다. 碧紗窓下啓緘封 푸른 깁창 아래서 봉함을 뜯어보니 尺紙終頭徹尾空 편지지엔 아무 것도 써 있질 않더이다. 應是仙郞懷別恨 아하! 우리 님 이별의 한 품으시고 憶人全在不言中 말 없는 가운데 그리는 맘 담으셨네. 청나라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 「기부(寄夫)」에 나오는 이야기다. ..
3.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立象盡意論) 1. 싱거운 편지 열 두자로 보낸 편지 함경도 안변(安邊) 땅에 벼슬 살러 가 있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서울에 있던 백광훈(白光勳)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겉봉을 뜯어보니, 딱 열 두 자 한 줄의 사연이 있었다.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 三千里外, 心親一片雲間明月 이만한 사연 전하자고 천리 길에 편지를 띄웠더란 말인가. 그러나 음미할수록 새록새록 정감이 넘나는 뭉클한 사연이다. 한 조각구름 속에 밝은 달이라 했으니, 달은 달이로되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달이다. ‘심친(心親)’이라 하여 그밖에 다른 것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였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랬거니, 달은 나 있는..
13.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③ 기러기에 자신의 감정을 얹다 차천로(車天輅)는 「영고안(詠孤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山河孤影沒 天地一聲悲 산하엔 외로운 그림자 없어지고 천지에 한 소리만 비장하더라. 날아가던 기러기의 외로운 그림자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도 아직 시인의 귀에는 천지를 가득 메운 기러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야 무슨 외롭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깊은 밤 까닭 모를 근심에 겨워 잠 못 이루고 뜨락을 서성이던 시인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기러기라는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얹어 노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큰 기교는 졸렬해 보인다 대개 이러한 것이 경물과 시인의 정신이 만나 결합되는 양상들이다. 이렇듯 한 편의 훌륭..
12.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② 자연과 인간의 대비 이색(李穡)은 그의 「부벽루(浮碧樓)」에서 노래하였다.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성은 텅 빈 채 달 한 조각 있고, 바위(조천석)는 천년 두고 구름뿐인데, 텅 빈 성과 조각달, 바위와 구름의 대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생각에 젖게 한다. 예전 번성했던 성엔 이제 사람의 자취는 찾을 길 없고 조각달만 옛 기억처럼 희미하게 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 달마저 얼마 안 있어 그믐의 암흑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닌가. 바위에는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만이 남았다. 그 위로 또 무심한 구름은 천년 세월을 덧없이 흘러갔다. 그 세월 동안 인간 세상의 영고성쇠는 또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이렇듯 각 구절의 사이에는 말하지 않고 남겨 둔 여운이 길고도..
5.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10자의 글자에 형상화하기 구양수(歐陽修)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 보면, 매요신(梅堯臣)과 시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요신은 “반드시 능히 묘사하기 어려운 경치를 형상화하여 마치 눈앞에 있는 것 같이 하고,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어 말 밖에 드러나게 한 뒤라야 시가 지극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구양수는 묘사하기 어려운 경물을 형상화 하여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는다는 것은 어떤 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매요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짓는 사람은 마음에서 얻고, 보는 이는 뜻으로 깨달으니, 말로써 무어라고 꼬집어 진술하기는 어렵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또한 그 방불함을 대략 말할 수는 있다. 온정균(溫庭筠)의 “주막집 달빛에 ..
10. 정오의 고양이 눈② 안목 있는 사람의 눈엔 덧칠한 게 보인다 홍만종(洪萬宗)의 『소화시평(小華詩評)』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호민(李好閔)이 어느 날 소낙비가 창문을 두드리자 갑자기 시 한 구절을 얻었는데, “산 비가 창문에 떨어짐이 많구나[山雨落窓多]”라 하였다. 그리고는 이를 이어 다시 짓기를, “시냇물은 대 숲 뚫고 졸졸 흘러가네[磵流穿竹細]”라 하고, 마침내 시 한편을 이루어 이산해(李山海)에게 보였다. 그러자 그는 ‘산우락창다(山雨落窓多)’에만 비점을 찍어 돌려보냈다. 이호민이 그 까닭을 묻자 이산해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이 실제 경물과 만나 먼저 이 구절을 얻었을 것이다. 나머지 구절은 그 다음에 만든 것이다. 시 전편의 참된 뜻이 모두 이 구절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만 비점을 ..
4. 정오의 고양이 눈 마음을 놓치면 졸작이 된다 옛날에 절묘하다고 세상에 전하는 그림이 있었다. 장송(長松) 아래 한 사람이 고개를 들어 소나무를 보는 모습을 그렸는데 신채(神采)가 마치 살아 있는 듯하여, 천하의 명화로 일컬어졌다. 처사(處士) 안견(安堅)이 말하기를, “이 그림이 비록 묘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고개를 올려 보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는 법인데, 이것은 없으니 그 뜻을 크게 잃었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마침내 버린 물건이 되었다. 古有買妙畵於中國者. 畵長松下, 有人仰面看松, 神采如生, 世以爲天下奇畵也. 處士安堅曰: “是畵雖妙, 人之仰面也, 項後必有皺紋, 此則無之, 大失其旨.” 自此終爲棄物. 또 옛날 그림으로 묘필(妙筆)을 일컬은 것이 있었다. 늙은이가 손주를 안고 숟가락으로 밥을..
8.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② 노새에게 덧붙여진 짐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이런 시가 실려 전한다. 한 사나이가 길을 가다가 나귀를 타고 가는 미인을 만났다. 선녀가 적강(謫降)한 듯 아름다운 모습에 그는 그만 발길이 얼어붙었다. 연정의 불길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는 즉석에서 시를 써서 그녀에게 보냈다. 心逐紅粧去 身空獨倚門 마음은 미인 따라 가고 있는데 이 몸은 부질없이 문 기대 섰소. 넋은 이미 그대에게 빼앗겨 버리고 나는 빈 몸뚱이만 남아 문에 기대 섰노라는 애교 섞인 푸념이었다. 그녀가 답장을 보내왔다. 驢嗔車載重 却添一人魂 노새는 짐 무겁다 투덜대는데 그대 마음 그 위에 또 얹었으니. 그녀의 대답은 도무지 뚱딴지같다. 당신이 내 마음을 온통 다 가져 가 버렸..
3.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과장과 왜곡으로 본질을 강조하다 이왕 그림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가지 더 보기로 하자. 형호(荊浩)의 「화론(畵論)」을 보면 “장수는 목이 없고, 여인은 어깨가 없다[將無項, 女無肩].”이란 말이 나온다. 무슨 말일까? 목이 없는 장수가 어디 있는가. 여인은 어째 어깨가 없을까.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 장수의 기상은 목을 없는 듯 짧게 그리는 데서 드러나고, 미인의 가녀린 모습은 어깨 없이 부드럽게 흘러내린 곡선을 통해 강조된다는 말이다. 또 왕유(王維)가 「원안와설도(袁安臥雪圖)」를 그렸는데, 고사(高士) 원안(袁安)이 눈 쌓인 파초 아래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실제 파초는 남국(南國)의 식물이므로, 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는 시들고 만..
6. 말하지 않고 말하기③ 주변을 읊어 자기감정을 얘기하다 獨坐無來客 空庭雨氣昏홀로 앉아 오는 손님도 없고 빈 뜰엔 빗 기운만 어둑하구나.魚搖荷葉動 鵲踏樹梢飜물고기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까치가 밟았는가 나무가지 흔들리네. 琴潤絃猶響 爐寒火尙存거문고 젖었어도 줄은 울리고 화로는 싸늘한데 불씨는 남아 있네.泥途妨出入 終日可關門 진흙길이 출입을 가로 막으니 하루 종일 문을 닫아 걸고 있으리. 서거정(徐居正)의 「독좌(獨坐)」란 작품이다. 일견 속세를 떠나 칩거하고 있는 은사의 유유한 생활을 노래한 작품인 듯하지만, 속사정을 따져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찾아오는 손님 없이 혼자 앉아 있다는 1구는, 아무도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는 체념과, 그래도 혹시 누군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다림의 마음이 뒤섞인 모순..
5. 말하지 않고 말하기②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시 다음은 두보(杜甫)의 유명한 「춘망(春望)」이란 시이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나라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 봄 성엔 초목만 무성해. 感時花溅淚 恨別鳥驚心 때에 느꺼워 꽃을 대해도 눈물 쏟아지고 이별 한스러워 새 보아도 마음 놀라네. 이 시를 지을 당시 두보는 안록산(安祿山)의 난리 중에 반군의 손에 사로잡혀 경성에 갇혀 있는 처지였다. 만신창이가 된 종묘사직과 도탄에 빠진 백성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무한한 감개에 젖어들게 했다. 그는 이러한 감개를 흐드러진 봄날의 경물에 얹어 노래하고 있다. 사마광(司馬光)은 이 시를 평하여 『온공속시화(溫公續詩話)』에서 이렇게 적었다. “산하(山河)가 남아 있다고 했으니 나머지 물건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초목이 우거..
2. 말하지 않고 말하기 화가가 달을 그리지 않고 달을 그리는 방법과, 시인이 말하지 않고 말하는 수법 사이에는 공통으로 관류하는 정신이 있다. 가렸기에 보여진다 구름 속을 지나가는 신룡(神龍)은 머리만 보일 뿐 꼬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 글자도 나타내지 않았으나 풍류를 다 얻었다[不著一字, 盡得風流].”는 말이 있다. 또 “단지 경물을 묘사할 뿐이나 정의(情意)가 저절로 드러난다[只須述景, 情意自出].”고도 한다. 요컨대 훌륭한 한 편의 시는 시인의 독백으로써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iative)의 원리로써 독자에게 전달된다. 즉 시인은 자신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표달해야 한다. 그래서 “산은 끊어져도 봉우리는 이어진다[山斷..
3. 그리지 않고 그리기③ 호접몽중가만리(胡蝶夢中家萬里)와 임금께 바칠 춘화도 그려내는 법 또 가령 “호랑나비 꿈속에 집은 만 리 밖[胡蝶夢中家萬里]”라는 화제(畵題)가 제출되었다면, 화가는 꿈속에 향수에 젖어 있는 나그네의 모습을 그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화면에는 잠든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그가 지금 고향 꿈을 꾸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주어야 한다. 1등에 뽑힌 화가는 소무(蘇武)가 양을 치다가 선잠이 든 모습을 그렸다. 소무(蘇武)는 한(漢) 무제(武帝) 때 흉노에 사신 갔다가 억류되어 흉노의 회유를 거부하여 사막에서 들쥐를 잡아먹으며 짐승처럼 살다가, 무려 20년 만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던 인물이다. 황제의 사신으로 왔다가 어처구니없이 포로로 억류되어 아무도 없는 사막 가운데 버려진 채 양을 치던 ..
2. 그리지 않고 그리기② 홍일점을 그려내는 법 “여린 초록 가지 끝에 붉은 한 점, 설레이는 봄빛은 많다고 좋은 것 아닐세[嫩綠枝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라는 시가 출제된 적도 있었다. 화가들은 일제히 초록빛 가지 끝에 붉은 하나의 꽃잎을 그렸다. 모두 등수에는 들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푸른 산과 푸른 강이 화면 가득한 중에, 그 산 허리를 학 한 마리가 가르고 지나가는데, 그 학의 이마 위에 붉은 점 하나를 찍어 ‘홍일점(紅一點)’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에서도 붉은 색을 쓰지 않았다. 다만 버드나무 그림자 은은한 곳에 자리 잡은 아슬한 정자 위에 한 소녀가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그렸을 뿐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여성을 ‘홍(紅)’으로 표현하곤 하였..
2. 그림과 시 1. 그리지 않고 그리기 ‘대교약졸(大巧若拙)’,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내뱉듯이 던지는 한 마디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리한 비수가 되어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사의전신(寫意傳神)과 입상진의(立象盡意) 전통적으로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 옛말에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 하였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情意)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 경물은 객관적 물상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얹을 수 있는가.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해야 한다..
5. 이명(耳鳴)과 코골기 내가 아는 걸 남이 몰라도, 내가 모르는 걸 남이 알아도 화가 난다 다시 연암에게로 돌아가자.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의 한 도막이다. 어린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에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에 아이가 서로 맞대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耳鳴)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하였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
4.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 이미지의 구성이 이렇게 탄탄하고, 언외의 함축이 이렇듯 유장하다 보니, 한시의 감상은 매우 지적이고 감성적인 바탕이 요구된다. 그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도 없고, 아무나 알 수도 없다. 껍데기가 아닌 실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 조선 후기의 문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질뇌(疾雷)」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레 소리에 산이 무너져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해가 중천에 솟아도 소경은 보지 못한다. 도덕과 문장의 아름다움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며, 왕도와 패도, 의(義)와 리(理)의 구분을 속인은 변별하지 못한다. 아아! 세상의 남아들이여. 눈과 귀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총명은 눈과 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조각 영각..
4. 허공 속으로 난 길② 함축함으로 상상의 여지를 만들어낸 백광훈의 ‘홍경사’ 다음은 조선 중기의 시인 백광훈(白光勳)의 「홍경사(弘慶寺)」란 작품이다.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가을 풀, 전조(前朝)의 절 남은 비(碑), 학사의 글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보네. 이 작품을 다시 이렇게 배열해 보면 어떨까. 가을 풀 고려(高麗) 때 절. 남은 비(碑) 학사(學士)의 글. 천년(千年)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 이미지의 배열이 박목월(朴木月)의 「불국사(佛國寺)」를 연상시킨다.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 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구름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3. 허공 속으로 난 길 시는 시인이 짓는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는 사물이 직접 말을 건넨다. 시에서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이유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이언인(俚言引)」이란 글에서 “시는 만물이 사람에게 가탁하여 짓게 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귀와 눈으로 들어와서 단전(丹田) 위를 맴돌다가 끊임없이 입과 손을 따라 나오니, 시인과는 상관하지 않는다[故其假於人, 而將爲詩也, 溜溜然從耳孔眼孔中入去, 徘徊乎丹田之上, 續續然從口頭手頭上出來, 而其不干於人也].”고 말했다. 사물은 제 스스로 성색정경(聲色情境)을 갖추고 있어, 단지 시인의 입과 손을 빌어 시가(詩歌) 언어(言語)로 형상화 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때 시인은 사물의 몸짓..
2.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 대저 시인은 천기(天機)를 누설하는 자이다. 시를 쓰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시인의 정신처럼 송나라의 유명한 평론가 엄우(嚴羽, 약 1290~1364)는 그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저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으니, 책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旨趣)가 있으니 이치와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고 이치를 많이 궁구하지 않으면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할 수가 없으니, 이른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말의 통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윗길이 된다. 夫詩, 有别材, 非關書也; 詩有别趣, 非關理也. 然非多讀書多窮理,..
1. 허공 속으로 난 길 1.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빛 표면적 진술에만 집착하는 독자는 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행간에 감춰진 함축, 언어와 언어가 만나 부딪치며 속삭이는 순간순간의 스파크, 그런 충전된 에너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취(生趣)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고정관념이 아닌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대하라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答蒼厓)」란 글에는 마을의 꼬마가 천자문(千字文)을 배우는 데 게으름을 부리자, 선생이 이를 야단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자 꼬마가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 자(字)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천자문(千字文)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말이 천지현황(天地玄黃)이..
지은이의 말 한시는 전달의 특수성 때문에 오늘날 그 효용가치를 상실했다. 한시는 전문 연구자들의 학술적 관심사가 되고 있을 뿐,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버린 낡은 길이다. 그렇다고 한시가 추구한 정신의 깊이나 미학의 너비마저 덤불 속에 버려둘 수는 없다. 먼지 쌓인 역사의 뒤편에 방치된 채 날로 그 빛이 바래가고 있는 한시에다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고, 막힌 길을 새로 뚫어 현대적 의미를 밝히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책무다. 이 책은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 1994년 2월부터 1996년 5월에 걸쳐 연재한 글을 보태어 손질하고 차례를 가다듬어 정리한 것이다. 고전 시학의 정수를 오늘의 시인과 독자들이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접근하게 할 수는 없을까? 한시는 정말로 골동적 가치만을 지닌 퇴영적 문화유산에 지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