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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11.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② 옛 사람의 문집을 뒤적이다 보면 뜻밖에 많은 산수유기(山水遊記)와 만나게 된다. 유기(遊記)는 산수(山水)를 향한 고인(古人)의 진지한 열정의 산물이니, 여기에는 자연 앞에 선 외경이 있고, 인간의 왜소를 돌아보는 겸허가 있다. 오늘날 이들 유기(遊記)는 고작 수필의 대접 밖에 못 받아 설 자리를 잃고 한문학 연구자들에게도조차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구도자의 심경이 되어 산수간을 노닐던 고인들의 그 헌활(軒豁)한 정신의 경계도 다시 만날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고목(古木)이 절벽에 기댄 채 말랐는데, 우뚝함은 귀신의 몸뚱이 같고, 서리어 움츠림은 잿빛 같았고, 껍질 벗음은 마치 늙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았으며, 대머리가 된 것은 병든 올빼미가 걸터앉아..
5.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유종원(柳宗元)의 유명한 「영주팔기(永州八記)」는 그가 좌천되어 영주(永州) 땅에 쫓겨 와 있던 시절, 울적한 심회도 달랠 겸, 공무의 여가에 틈만 나면 주변의 산수간을 소요하며 노닐던 일을 기록한 글이다. 다음은 그 가운데 「시득서산연유기(始得西山宴遊記)」의 일절이다. 금년 9월 28일에 법화사(法華寺) 서정(西亭)에 앉았다가 서산(西山)을 바라보고 비로소 기이하게 여겨 마침내 하인을 시켜 상강(湘江)을 건너 염계(染溪)를 따라 잡초 덤불을 찍고 무성한 풀을 살라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야 그만 두게 하고, 더위잡고 올라가 걸터앉아서 노닐었다. 무릇 여러 고을의 땅이 모두 깔고 앉은 자리 아래로 펼쳐져 있어 그 높고 낮은 형세의 솟아오르고 움푹한 것이 개미둑 같고 ..
9. 들 늙은이의 말② 이와 비슷하게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산에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산거집구(山居集句)」 연작을 무려 100수나 남겼다. 집구(集句)란 이 사람 저 사람의 시에서 한 구절 씩 따와서 새로 조립하되 운자도 맞아야 하니, 순수한 창작은 아니라도 그 노고는 창작 이상의 품이 든다. 매월당 자신도 다음과 같이 쓰게 된 이유를 이야기 했다. 성화(成化) 무자년(戊子年, 세조 13, 1468) 겨울 금오산에 있을 때, 눈 오는 밤 화로를 안고 앉았자니, 고요하여 사람의 발소리는 없었지만 바람과 대가 우수수 소리를 내어 나의 흥취를 일으켰다. 인하여 산동(山童)과 함께 재를 헤쳐가며 글자를 써서 고인(古人)의 시구를 집구하니 산거(山居)의 취미에 합당함이 있었다. 成化戊子冬, 居金鼇山..

4. 들 늙은이의 말 봄날이 무르익어 숲으로 들어가면 꼬불꼬불 숲속으로 산길이 통해 있고, 소나무 대나무 서로를 비추이고 들꽃은 향기 가득 산새들은 지저귄다. 이러할 때 거문고 안고 바위 위에 올라앉아 두세 곡 연주하면 이 몸은 아득히 동중선(洞中仙) 화중인(畵中人)일세. 春序將闌, 步入林巒, 曲逕通幽, 松竹交映, 野花生香, 山禽哢舌. 時抱焦桐, 坐石上, 撫二三雅調, 幻身卽是洞中仙畫中人也.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다. 시내는 흘러가고 돌은 서 있다. 꽃은 나를 맞이하고 새는 노래 부른다. 골짜기는 메아리로 대답하고 나무꾼은 노래한다. 사방이 온통 적막해지니 내 마음 절로 한가해지네. 雲白山靑, 川行石立. 花迎鳥歌, 谷答樵謳. 萬境俱寂, 人心自閑. 꽃이 너무 화려한 것은 향기가 좋지 않고, 꽃에 향기 짙은 ..
7.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辨)③ 萬物變遷無定態 만물이 변천함은 일정함이 없나니 一身閒適自隨時 한가로이 자적하며 때를 따라 사노라. 年來漸省經營力 근년 들어 사는 일은 돌보질 않고 長對靑山不賦詩 청산을 마주 보며 시도 짓질 않는다. 이언적(李彦迪)의 「무위(無爲)」란 작품이다. 소동파(蘇東坡)는 「적벽부(赤壁賦)」에서 “대개 장차 그 변하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천지는 일찍이 한 순간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그 변치 않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물(物)과 아(我)가 모두 다함이 없다[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고 했던가. 젊은 날 성취를 향한 집착과 작위하고 경영하던 마음을 훌훌 던져 버리고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겨 다만 일신(一身)의 한적(閒適)을 추구할 뿐..
6.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辨)② 滿庭月色無烟燭 뜨락 가득 달빛은 연기 없는 등불 入坐山光不速賓 둘러앉은 산빛은 뜻밖의 손님. 更有松弦彈譜外 솔바람 악보 없는 가락 울리니 只堪珍重未傳人 소중히 지닐 뿐 전할 수 없네. 고려 때 최충(崔沖)의 「절구(絶句)」이다. 달빛을 등불 삼아 자리를 벌리자, 청하지도 않은 손님 청산이 슬그머니 차지하고 들어와 앉는다. 손님이 왔으니 풍악이 없을 쏘냐. 솔바람은 악보로 옮길 수 없는 미묘한 곡조를 연주한다. 맑고 상쾌한 경지다. 이 거나하고 해맑은 운치를 어찌 말로 다하랴. ‘소이부답(笑而不答)’할 뿐이다. 茅齋連竹逕 秋日艶晴暉 띠집은 대숲 길로 이어져 있고 가을 날 햇살은 곱기도 하다. 果熟擎枝重 瓜寒著蔓稀 열매가 익어서 축 쳐진 가지 참외도 달리잖은 끝물의 덩쿨..
3.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辨) 공자(孔子)가 『논어(論語)』 「옹야(雍也)」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고 말한 이래로, 산수간(山水間)의 노님은 자못 철학적 의미를 담게 되었다. 주자(朱子)는 공자(孔子)의 말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통하고 막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은 점이 있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은 점이 있는 까닭에 산을 좋아한다는 것[知者達於事理而周流無滯, 有似於水, 故樂水; 仁者安於義理而厚重不遷, 有似於山, 故..
4. 청산에 살으리랏다② 다시 김부식(金富軾)은 「제송도감로사차혜원운(題松都甘露寺次惠遠韻)」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속객의 발길 닿지 않는 곳 올라서니 생각이 해맑아 지네.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산 모습 가을이라 더욱 고웁고 강 물빛 밤인데도 외려 밝아라.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해오라비 높이 날아 사라져가고 외론 돛만 홀로 가벼이 떠가네.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부끄럽다. 달팽이 뿔 위에서 공명(功名)을 찾아다닌 나의 반평생. 속객(俗客)의 자취가 끊어진 곳을 속객(俗客)이 홀로 찾았다. 산마루에 올라 툭 터진 시계(視界)에 서니, 함께 짊어지고 온 속된 생각도 말끔히 씻어진다. 3ㆍ4구의 자안(字眼)은 ‘갱(更)’과 ‘유(猶)’에 있다.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 여름날..

2. 청산에 살으리랏다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외론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간다.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서로 보아 둘 다 싫증나지 않는 것은 경정산(敬亭山) 너 뿐이로구나. 이백(李白)의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이란 작품이다. 속세의 시름을 지닌 채 경정산을 찾은 나그네는 산정(山頂)에서 물끄러미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그때 저 골짜기 아래로부터 새떼들은 산 위로 비상한다. 새떼의 돌연한 비상을 쫓다가 마침내 아득히 사라진 그 자리에서, 시인은 문득 ‘홀로’ 유유히 떠가는 구름을 발견한다. 새들은 그다지도 바쁘게 어디로 사라져 간 것일까. 왁자지껄 무리를 지어 들끓다가 사라진 새떼는 사실 시인이 물 아래에서 지고 올라온 욕망과 번뇌의 찌꺼기는 아니었을까. 산 위에 올라선..
2.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② 말로만 되뇌는 ‘나 돌아갈래’ 송대(宋代) 곽희(郭熙)는 유명한 『임천고치(林泉高致)』 가운데 「산수훈(山水訓)」에서 이렇게 말한다. 군자가 산수(山水)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구원(丘園)에서 바탕을 기름은 항상 머무는 바이고, 천석(泉石)에서 휘파람 불며 노님은 늘 즐기는 바이며, 고기 잡고 나무하며 숨어 지냄은 늘 즐거워하는 바이고 원숭이나 학이 울고 나는 것은 항상 친하게 지내는 바이다. 티끌세상의 시끄러움과 굴레에 속박됨은 인정(人情)이 항상 싫어하는 바이나, 연하(烟霞) 자옥한 가운데 사는 신선은 인정(人情)이 늘 추구하면서도 볼 수는 없는 바이다. 그러나 사람이 저 혼자 즐겁자고 사회적 책임을 다 버려두고 이세절속(離世絶俗)하는 삶을 추..
21.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1.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天翁尙不貰漁翁천옹(天翁)은 어옹(漁翁)을 받지 않으려는지故遣江湖少順風 일부러 강호에 순풍 적게 보내네.人世險巇君莫笑 인간 세상 험하다 그대여 웃지 마오自家還在急流中 그대 외려 급류의 한가운데 있는 것을. 고려 김극기(金克己)의 「어옹(漁翁)」이다. 어옹(漁翁)은 순풍을 기대하고 강호에 들어왔다. 그런데 뜻밖에 강호에서조차 순풍은 좀체 불 생각을 않는다. 순풍을 잔뜩 기대하고 강호를 찾은 어옹(漁翁)은 강호행(江湖行) 이전 순풍은커녕 역풍에 온갖 고초와 신산(辛酸)을 겪었음에 틀림없다. 현실의 거센 풍파를 피해 강호의 순풍 속에 안기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강호에서 조차 순풍은 잘 불어주질 ..

4. 달마가 오지 않았는데도 도연명은 선을 아네 이 글은 두 가지를 말했다. 시와 선이 만나는 지점을 살폈고, 선시의 세계를 조금 맛보았다. 이 두 가지는 조금 층위가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선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굳이 다를 것도 없다. 시의 생각과 선의 사고는 무던히도 닮았다. 시인과 선객은 자주 가깝게 왕래한다. 서로 말귀가 통하고 배짱이 맞기 때문이다. 선방에 가짜 선객이 많듯이 시단에 가짜 시인이 많은 것도 같다. 대충 비슷하게 흉내 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점에서도 둘은 비슷하다. 하지만 진짜 앞에서는 둘 다 꼼짝도 못한다. 숨도 쉴 수 없다. 시와 선이 하나로 만나 선시가 된다. 절묘한 결합인 셈이다. 선시의 언어는 직관의 언어다. 의미를 해체하고, 사물로 말한다. 풍경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려 ..
10. 동문서답의 선시들⑤ 다음은 고려 때 최유청(崔惟淸)의 「잡흥(雜興)」이다. 春草忽已綠 滿園蝴蝶飛 봄풀이 어느덧 저리 푸르러 동산 가득 나비가 날아다닌다. 東風欺人垂 吹起床上衣 봄바람 잠든 나를 속여 깨우려 침상 위 옷깃을 불어 흔드네. 覺來寂無事 林外射落暉 깨고 보면 고요히 아무 일 없고 숲 밖엔 저녁 해만 비치고 있다. 依檻欲歎息 靜然已忘機 난간에 기대어 탄식하려다 고요히 어느새 기심(機心) 잊었네. 봄볕이 따스해 혼곤한 낮잠에 빠졌다. 자는데 누가 자꾸 일어나라고 옷깃을 흔들어 깨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부스스 일어난다. 일은 무슨 일, 봄바람의 공연한 장난이다. 밖을 내다보니 그게 아니다. 숲밖에는 저물녘 햇살이 빗겨있고, 봄 동산엔 풀빛이 벌써 짙었다. 꽃 찾는 나비는 햇살을 등에 안고 훨..
9. 동문서답의 선시들④ 이렇듯 선시의 세계는 칼끝 같은 깨달음을 노래한다. 언어가 무력화되고 의미가 힘을 잃는다. 다시 정진규의 「모기 친구」를 읽어 본다. 진종일 뛰어 놀고서도 씻지 않으려 하기에 얼굴엔 온통 암괭이를 그리고서도 말을 듣지 않기에 지난 밤 모기에 물린 자리가 발갛게 부어 올랐기에 모기는 깨끗한 것보다는 더러운 걸 더 맛있어 한다고 겁을 주었더니, 그럼 모기에겐 깨끗한 것이 더러운 거고 더러운 것이 깨끗한 거네, 모기가 목욕을 해주었잖아! 더러운 걸 먹어버렸잖아! 난 모기 친구가 될 거야 그러곤 여섯 살짜리 내 상욱이는 깔깔깔 달아나버렸다. 깨끗하고 더럽다는 말의 의미가 한 순간에 증발해버리는 상쾌함이 있다. 내게 깨끗한 것이 남에겐 더럽고, 내가 더러워 못 견딜 것도 남에겐 아무렇지 ..
8. 동문서답의 선시들③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선시를 몇 수 보자. 김시습(金時習)의 「증준상인(贈峻上人)」 20수 연작 중 제 8이다. 終日芒鞋信脚行 종일 짚신 신고 발길 따라 가노라니 一山行盡一山靑 한 산을 가고 나면 또 한 산이 푸르도다. 心非有想奚形役 마음에 생각 없으니 어찌 형상 부리며 道本無名豈假成 도는 본시 무명(無名)한데 어찌 거짓 이룰까. 宿露未晞山鳥語 간 밤 이슬 마르잖아 산새는 지저귀고 春風不盡野花明 봄 바람 그치잖아 들꽃은 피었구나. 短笻歸去千峯靜 지팡이로 돌아갈 때 천봉이 고요터니 翠壁亂烟生晩晴 푸른 절벽 짙은 안개 저녁 햇살 비쳐드네. “저 들판 끝난 곳이 그 바로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금 청산 밖에 있구나[平蕪盡處是靑山, 行人更在靑山外].”의 탄식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로 시상..
7. 동문서답의 선시들② 의미가 도처에서 단절된 것은 현대시 속에도 있다. 이승훈의 「너」를 읽는다. 캄캄한 밤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너를 만났을 때도 캄캄했다 캄캄한 밤에 너를 만났고 캄캄한 밤 허공에 글을 쓰며 살았다 오늘도 캄캄한 대낮 마당에 글을 쓰며 산다 아마 돌들이 읽으리라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캄캄한 밤에 너를 만나, 아무 것도 안 보이는 허공에 글을 써왔다. 오늘은 캄캄한 대낮 마당에 글을 쓴다. 내 글은 돌들이 읽을 것이다. 역시 요령부득이다. 시인은 ‘그리고’라고 말해야 할 때 ‘그러나’를 말하고, ‘오늘은’ 하지 않고 ‘오늘도’라고 말한다. ‘캄캄한 밤 허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캄캄한 대낮 마당’으로 미끌어진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허공에 쓴 글은 쓰나마나 한 글이다. ..
3. 동문서답의 선시들 이제 선시에 대해 살펴보겠다. 선은 분별지를 마음에서 걷어내는 것이다. 명상(瞑想) 즉 생각을 잠재우고, 묵상(黙想) 곧 생각을 침묵시키는 것이다. 그때 남는 것은 마음뿐이다. 선은 마음을 텅 비워 본래의 나와 만나는 순간이다. 명상이란 뜻을 지닌 범어의 댜나(Dhyāna)를 선(禪)으로 옮겼다. 정려(靜慮) 또는 사유수(思惟修)로도 옮긴다. 다시 말해 선은 생각을 걷어내는 마음공부다. ‘근심과 기쁨을 마음에서 걷어내는 것이 바로 선[喜憂心忘便是禪]’이다. 달마는 제자와의 문답에서 선을 이렇게 설명한다. 선(禪)은 어지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생각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것이 선정(禪定)이다. 마음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로 하여,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으며 감도..
5. 학시와 학선의 원리④ 다시 이어지는 셋째 수이다.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마치도 참선 배움 같거니 自在圓成有幾聯 자재롭고 원성(圓成)함 몇 연이나 있었던고? 春草池塘一句子 사령운(謝靈運)의 지당춘초(池塘春草) 한 구절이 나오자 驚天動地至今傳 천지가 놀라 떨며 지금껏 전하누나. 수많은 학구(學究)들이 참선으로 득도의 길을 찾아 나서지만, 활연대오(豁然大悟)의 소식을 통통쾌쾌(痛痛快快)하게 깨치는 자는 몇 되지 않는다. 대부분 깨친 척하는 가짜들과 깨달음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엉터리들이 뜻 모를 공안(公案) 몇 개 들고 앉아 대중을 우롱하고 있을 뿐이다. 진짜 앞에 서면 가짜는 오금도 펴지 못한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자재원성(自在圓成)이다. 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느 것 하..
4. 학시와 학선의 원리③ 선의 어떤 경지를 설명하기 위해 시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이후로 여러 문헌에 자주 등장했다. 고려 때 선승 경한(景閑)도 그의 어록에서 시와 선이 만나는 지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어떤 중이 내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아득히 강남 땅 2,3월을 생각하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 향기롭네[遙憶江南三二月, 鷓鴣啼處百花香].”라고 대답하겠다. 또 어떤 중이 내게 조사(祖師)께서 동쪽으로 온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더딘 해에 강과 산은 곱기도 한데, 봄바람에 꽃과 풀은 향기롭구나[遲日江山麗, 春風花草香].”라고 대답하거나, “산꽃이 활짝 피니 비단 같은데, 시냇물은 쪽빛도곤 더욱 푸르다[山花開似錦, 澗水碧於藍].”라고 하겠다. 이 같은 싯귀..
3. 학시와 학선의 원리② 선과 시는 왜 넘나드는가? 시와 선을 하나로 보는 시선일여(詩禪一如)의 사고는 선학(禪學)이 일어난 송나라 이후에 활발해지지만, 일찍이 당나라 두보(杜甫)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 지을 때 용사(用事)는 선가(禪家)의 말과 같아야 한다. 물속에 소금이 녹은 것은 물을 마셔보아야 짠맛을 안다. 『서청시화(西淸詩話)』에 나온다. 물속에 녹은 소금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셔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분명히 있다. 꼭 꼬집어 말하지는 않았어도 너무도 또렷하다. 시와 선은 이 지점에서 만난다. 당나라 때 시승 제기(齊己)도 「기정곡낭중(寄鄭谷郞中)」란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詩心何以傳 所證自同禪 시심(詩心)을 무엇으로 전할 수 있나 증명함이 절로 ..
2. 학시와 학선의 원리 시가 선과 만나 선시(禪詩)가 된다. 시가 선의 경지에 이르면 시선(詩禪)이다. 시와 선은 어떤 공통점이 있기에 자주 한 자리에서 거론되는가? 송나라 때 엄우(嚴羽)가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선도(禪道)는 오직 묘오(妙悟)에 달려 있고, 시도(詩道) 또한 묘오에 달려 있다”고 하여, 시와 선을 나란히 보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시와 선의 공통점을 ‘묘오(妙悟)’로 들었다. 묘오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이다. 시를 잘 쓰는데 필요한 것은 이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아니라 떨리듯 다가오는 묘오라는 것이다.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다. 책을 얼마만큼 읽었는지는 상관이 없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旨趣)가 있다. 이치로 따져서 되는 것이 아니다..

20. 선시(禪詩), 깨달음의 표정 1. 선사들이 깨달음의 순간 시를 선택하는 이유 언어란 본래 부질없는 도구다. 말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남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툭하면 오해를 낳고, 곁길로 샌다. 옛 시인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고 노래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다. 언불진의(言不盡意), 말은 뜻을 다 전달할 수 없다. 이 생각은 옛 사람들을 늘 절망케 했다. 말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뜻, 말의 범위를 넘어서는 의미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오묘한 깨달음의 세계는 늘 언어를 저만치 벗어나 있다. 수레 깎던 윤편(輪扁)은 제 자식에게조차 그 기술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주역(周易)』의 대답은 ‘입상진의(立象盡意)’다. 말로 하려들지 말고, 이미지를..
14.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④ 南窓終日坐忘機 하루 종일 남창에서 마음 비워 앉았자니 庭院無人鳥學飛 뜨락에 사람 없어 새가 날기 배우네. 細草暗香難覔處 가는 풀의 여린 내음 찾기가 어려운데 淡烟殘照雨霏霏 엷은 안개 지는 해에 비는 부슬부슬. 강희맹의 「병여음(病餘吟)」이다. 큰 병을 앓은 뒤라서인지 눈빛이 더없이 투명하다. 볕 좋은 남창에 기대 해바라기를 하고 앉았는데, 발길 끊긴 마당에선 어린 새가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 첫 비상을 시작하려 푸드득거리는 어린 새의 날갯짓에서 시인은 뜨거운 생명력을 느낀다. 그 생명력은 가는 풀의 여린 향기로 전이되어 나의 후각을 자극하고, 두리번거리는 눈길에 희뿌연 안개와 저녁노을,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선취(禪趣)가 물씬하다. 흔히 선시를 말하는 것을 보면,..
13.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③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빈 산 사람은 보이질 않고 다만 사람의 말소리만 들리네. 返景入森林 復照靑苔上 저물녘 볕 숲속에 비치어들어 다시금 푸른 이끼 비추는 구나. 시불(詩佛) 왕유(王維)의 「녹시(鹿柴)」란 작품이다. 산은 비어 사람도 없다. 그런데 어디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때 뉘엿한 햇볕은 다시 금 숲속에 들어 푸른 이끼 위에 빗긴다. 사람은 어디 있는가? 시인은 또 어디에 있는가? 시의 내용을 앞에 놓고 화가를 불러 그림으로 그리려 해도,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숲속에 비쳐드는 투명한 햇살처럼 허공에 빛나는 투명한 정신의 광휘가 감돌고 있을 뿐이다. 마음을 맑게 씻어준다. 월산대군의 시조에 다음과 같은 절창이 있다. 추강에 밤..
12.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② 이 이야기를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금시(琴詩)」에서 다시 이렇게 읊조린다. 若言琴上有琴聲 거문고에 소리가 있다 하면은 放在匣中何不鳴 갑 속에 두었을 젠 왜 안 울리나. 若言聲在指頭上 그 소리 손가락 끝에 있다 하면은 何不於君指上聽 그대 손끝에선 왜 안 들리나.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거문고와 손가락의 사이에서다. 거문고에 손가락이 닿아 소리로 울리는 이 미묘한 이치를 아는가? 소리는 그렇다면 어디에 숨어 있었더란 말인가?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 도연명(陶淵明) 「음주(飮酒)」시의 뒤 네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산 기운 저녁이라 더욱 고운데 나는 새 짝을 지어 돌아가누나.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이 가운데 참된 뜻이 있으나 말을 ..

4.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숲 속에 천년 묵은 나무는 옹이가 많이 져서 재목으로 쓸 수가 없는 까닭에 나무꾼의 도끼를 피할 수 있었고, 여관집의 거위는 잘 울지 않아 쓸모없다 하여 목숨을 잃었다. 둘 다 쓸모없기는 매 일반인데 하나는 그로 인해 수명을 연장하였고, 하나는 그 때문에 명을 재촉하였다. 자! 그대는 어디에 처하겠는가? 장자는 망설임 없이 그 중간에 처하겠다고 한다. 그곳은 어디인가?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낭환집서(蜋丸集序)」에서, 익숙한 황희 정승의 이야기를 패러디 하여 이런 이야기로 들려준다. 황희 정승이 퇴근하여 집에 오니, 딸이 맞이하며 말하기를, “아버지! 이가 어디서 생겨요? 옷에서 생기죠?” “그렇지.” 그러자 ..
10. 설선작시 본무차별(說禪作詩, 本無差別)③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흡사 참선(參禪) 배움 같거니 筆下隨人世豈傳 앞 사람을 흉내 내면 그 누가 알아주리. 好句眼前吟不盡 좋은 시구 눈앞에서 끝없이 읊조려도 痴人猶自管窺天 어리석은 이들은 우물 안 개구리라. 예전 불법(佛法)의 대의(大義)를 묻는 제자의 물음에 임제(臨濟)는 할(喝)로, 덕산(德山)은 몽둥이로 대답하였다. 선가(禪家)의 화두(話頭)도 송대(宋代) 이후로 오면 아포리즘의 어조를 띄게 되어 영동(靈動)하는 활법(活法)으로서가 아닌 어정쩡한 흉내가 되고 만다. 자가(自家)의 체인(體認) 없는 흉내만으로는 무문(無門)의 관문도 소용이 없다. 시(詩)의 법도 이와 같다. 눈앞에 놓인 좋은 시구들을 백날 읊조려 본들, 미묘한 깨달음과 만나지 못하면..
9. 설선작시 본무차별(說禪作詩, 本無差別)② 시선일여(詩禪一如)의 인식이 보편화됨에 따라, 시를 배우는 과정을 선(禪)에 비유한 이선유시(以禪喩詩)의 생각도 활발하게 제출되었다.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흡사 참선(參禪) 배움 같거니 竹榻蒲團不計年 대 걸상 부들자리에 해를 따지지 않네. 直待自家都了得 스스로 깨쳐 얻음을 얻게 되면 等閑拈出便超然 멋대로 읊조려도 문득 초연하리라. 북송(北宋)의 시인 오가(吳可)의 「학시시(學詩詩)」이다. 대나무 걸상 위에 부들자리를 깔고 좌선(坐禪)을 오래 했다 해서 선(禪)의 화두(話頭)를 터득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연(自家)의 ‘료득(了得)’이다. 증심(證心)하는 깨달음이 있고 보면 그저 심상히 읊조리는 말도 초연(超然)한 상승(上乘)의 경계가 된다. 오가(吳..

3. 설선작시 본무차별(說禪作詩, 本無差別) 두보(杜甫)는 “시 짓고 용사(用事)함은 마땅히 선가(禪家)의 말과 같아야 한다. 물속에 소금이 녹아 있어도 물을 마셔 보아야 소금의 짠 맛을 알 수가 있듯이.”라고 말했다. 물속에 소금을 넣으면 소금은 물에 녹아 보이질 않는다. 입을 대고 마셔 보면 그제서야 짠 맛이 드러난다. 시의 언어는 물속에 녹아든 소금의 맛과 같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맛,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뜻, 선가(禪家)의 언어가 또한 그렇다. 『서청시화(西淸詩話)』에 보인다. 당나라 때 시승(詩僧) 제기(齊己)는 그의 「유시(喩詩)」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日用是何專 吟疲卽坐禪 날마다 힘쓰는 일 무엇이던가 읊조리다 지치면 좌선(坐禪)을 하지. 하루 종일 시에 ..
7. 선기(禪機)와 시취(詩趣)④ 閱過行年六十七 더듬어 지나온 길 예순 일곱 해 及到今朝萬事畢 오늘 아침 이르러 모든 일 끝나도다. 故鄕歸路坦然平 고향 돌아가는 길 평탄도 한데 路頭分明曾未失 갈 길이 뚜렷하여 길 잃지 않겠구나. 手中纔有一枝笻 수중엔 겨우 지팡이 하나지만 且喜途中脚不倦 도중에 다리 품 덜어줌 기뻐하노라. 충지(沖止) 스님의 「임종게(臨終偈)」이다. 어떤 삶 끝에서 이렇듯 투명한 정신의 자락이 펼쳐지는가. 스님은 이 게송을 남기고 옷을 갈아입은 뒤 그대로 입적하였다. 생사(生死)의 바다를 훌쩍 건너 저승길을 마치 소풍 가듯 떠나가고 있다. 보우(普愚) 스님의 「사세송(辭世頌)」 또한 생사(生死)의 바다를 단숨에 뛰어넘는 장엄함이 있다. 人生命若水泡空 인생은 물거품 부질없는 것 八十餘年春夢中..
6. 선기(禪機)와 시취(詩趣)③ 白雲堆裡屋三間 흰 구름 쌓인 곳에 세 칸 초가집 坐臥經行得自閑 앉아 눕고 쏘다녀도 제 절로 한가롭네. 澗水冷冷談般若 시냇물은 졸졸졸 반야(般若)를 속삭이고 淸風和月遍身寒 맑은 바람 달빛에 온 몸이 서늘하다. 고려 말의 선승(禪僧) 혜근(慧勤)의 「산거(山居)」란 작품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자는 생활이지만 무위도식과는 엄연이 다르다. 흰 구름 속 초가삼간에서도 일말의 누추를 찾을 길 없다. 시냇물은 졸졸졸 흘러가며 반야(般若)의 설법을 들려주고, 맑은 바람과 흰 달빛은 내 정신을 쇄락케 한다. 卷箔引山色 連筒分澗聲 구슬 발 걷어서 산 빛 들이고 대통 이어 시냇물 소릴 나누네. 終朝少人到 杜宇自呼名 아침내 아무도 오지를 않고 두견새 제 홀로 이름 부른다. 충지(沖..

2. 선기(禪機)와 시취(詩趣) 일본의 타쿠안(澤庵) 화상은 유명한 검술가였다. 그는 제자인 야규우에게 검술에 대한 충고의 말을 남겼다. 그 충고의 핵심은 항상 마음을 ‘흐르는’ 상태로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진정한 검술은 의식적으로 얻어진 기술적 기교를 넘어서는 것이다. 높은 경지의 검술가는 적과 마주하여 서 있을 때, 적도 자신도 적의 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기교를 잊고 무의식의 명령에 몸을 맡기고 서 있다. 검을 휘두르는 것은 이제 그가 아니다. 실제 어떤 검술가들은 적을 쓰러뜨리고 나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스즈키 교수의 『선(禪)과 정신분석(精神分析)』이란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항상 ‘흐르는’ 상태로 마음을 유지하라. 흘러가는 상태에 ..
3. 산은 산, 물은 물③ 효봉(曉峯) 스님의 다음 법어(法語)에서도 이러한 ‘반상(反常)’은 계속된다. 若人欲越四相山 누구든 사상산(四相山)을 건너랴거든 也要須杖兎角杖 토끼 뿔 지팡이를 짚어야 하고, 若人欲渡生死海 생사(生死)의 바다를 건너려 하면 也要須駕無底船 밑 빠진 배를 타야 하리라. 토끼에게 무슨 뿔이 있으며, 설사 있다 한들 상아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지팡이로 만들 수 있으랴. 밑 빠진 배를 타고 건널 수 있는 바다는 어떤 바다인가? 읽을수록 알쏭달쏭하고 들을수록 해괴하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사상산(四相山)과 생사해(生死海)를 건널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 행간의 뜻은 찾을수록 첩첩산중이다. 斫來無影樹 燋盡水中漚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와서는 물속의 거품에다 태워 버린..
2. 산은 산, 물은 물② 혜심(慧諶)은 위 같은 글에서 회양선사(懷讓禪師)의 시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懷州牛喫草 益州馬腹脹 회주(懷州) 땅의 소가 풀을 뜯는데 익주(益州)의 말이 배가 터졌네. 天下覓醫人 炙猪左膊上 천하에 의원을 찾아가 보니 돼지의 어깨 위에 뜸질을 하네. 말 그대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풀은 회주(懷州)의 소가 먹었는데, 수 천리 떨어진 익주(益州)의 말이 배가 터진다. 고쳐 달라고 의원을 찾아가니 엉뚱하게 돼지의 어깨에다 뜸질을 한다.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튀니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니 혜심(慧諶)은 아예 갈피를 잡을 생각은 버리라고 요구하는 듯하다. ‘이언절려(離言絶慮)’, 말을 떠나고 생각이 끊어진 곳, 그곳의 소식은 언어로 설명하려 하면 이렇듯 헛김이 샌다. 언어..
19. 선시(禪詩), 깨달음의 바다 1. 산은 산, 물은 물 노승(老僧)이 30년 전 참선(參禪)하러 왔을 때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뒤에 와서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고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게 되자,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몸뚱이 쉴 곳을 얻으매 예전처럼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일뿐이로다. 성철(性澈) 스님의 법어(法語)로 해서 유명해진 청원유신(靑源惟信) 선사의 공안(公案)이다. 선사(禪師)는 30년간의 수행 끝에 처음 본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다. 그러고 보면 30년의 공력은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고초일뿐이었다. 한때 눈앞이 번쩍 열리는 깨달음의 빛 속에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때도 있었다. ..

5. 속인(俗人)과 달사(達士) 통달한 사람은 괴이한 바가 없지만 속된 사람은 의심스런 바가 많다. 이른바 본 것이 적을수록 괴이함도 많다는 것이다. 대저 어찌 달사(達士)라 하여 물건마다 쫓아가서 눈으로 본 것이겠는가. 하나를 들으면 눈앞에 열 가지가 펼쳐지고, 열을 보면 마음에 백 가지가 베풀어져, 천 가지 괴이함과 만 가지 기이함을 도로 사물에 부칠 뿐 자기와는 간여함이 없는 까닭에 마음은 한가로와 남음이 있고, 응수(應酬)함은 다함이 없다. 본 바가 적은 자는 백로를 가지고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가지고 학을 위태롭게 여긴다. 사물은 제 스스로 괴이함이 없건만, 자기가 공연히 성을 내며, 한 가지만 같지 않아도 만물을 온통 의심한다. 達士無所恠, 俗人多所疑. 所謂少所見, 多所恠也. 夫豈達士者, ..
12. 유아지경(有我之境)과 무아지경(無我之境)③ 花開因雨落因風 비를 맞고 피어나서 바람 따라 떨어지니 春去春來在此中 봄 오고 가는 소식 이 가운데 있구나. 昨夜有風兼有雨 간밤에 바람 불고 비까지 내리더니 桃花滿發杏花空 복사꽃 만발하고 살구꽃은 다 졌다오. 권벽(權擘)의 「춘야풍우(春夜風雨)」이다. 물리(物理)의 순환하는 이치를 절묘하게 꼬집어 내었다. 비가 와서 꽃을 피우면, 바람은 와서 이를 떨군다. 어제 만발했던 살구꽃은 진흙탕으로 떨어지고, 그 자리엔 어느새 복사꽃이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따지고 보면 슬퍼할 것도 안타까워할 것도 없다. 만발한 복사꽃을 바라보는 경이와, 비바람에 져버린 살구꽃 빈 가지를 바라보는 허탈을 함께 포착했다. 봄은 그렇게 와서 또 그렇게 가버릴 것이고, 우리네 인생도..
11. 유아지경(有我之境)과 무아지경(無我之境)② 木末芙蓉花 山中發紅萼 나무 끝 부용꽃 산 속 붉은 떨기 피웠네. 澗戶寂無人 紛紛開且落 시내가 집 적막히 사람 없는데 분분히 피었다간 또 떨어지네. 역시 왕유(王維)의 「신이오(辛夷塢)」란 작품이다. 산속 가지 끝에 붉은 부용꽃이 망울을 터뜨렸다. 그 옆으로 졸졸 흘러가는 시내, 다시 시냇가엔 초가집 한 채. 집에는 하루 종일 사람의 기척이 없다. 자태를 뽐내어도 보아줄 이 없는 적막한 이 산중에서 무엇이 바쁜지 꽃들은 어지러이 피고 진다. 시간도 숨을 멈춘 것만 같다. 꽃이 피고 또 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화자는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시의 화면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시인은 단지 화면의 바깥에서 독자를 자기 옆에 정답게 앉혀 놓고 이 아..

4. 유아지경(有我之境)과 무아지경(無我之境) 관물(觀物)의 정신이 미학(美學)의 경계로 넘어오면 앞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논의가 된다. 청말(淸末)의 왕국유(王國維)는 소옹(邵雍)의 관물론에서 개념을 빌려와 유아지경(有我之境)과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설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유아지경(有我之境)이 있고 무아지경(無我之境)이 있다. “눈물 어린 눈으로 물어봐도 꽃은 말이 없고, 붉은 꽃잎 어지러이 그네 위로 떨어지네[淚眼問花花不語, 亂紅飛過鞦韆去].”와 “외론 여관 문을 걸고 봄 추위를 견디니, 두견새 소리 속에 기운 해가 저무네[可堪孤館閉春寒, 杜鵑聲裏斜陽暮].”는 유아지경(有我之境)이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캐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네[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와 “차가운 ..
9. 생동하는 봄풀의 뜻④ 牛無上齒虎無角 소는 윗니 없고 범은 뿔이 없거니 天道均齊付與宜 천도(天道)는 공평하여 부여함이 마땅토다. 因觀宦路升沈事 이로써 벼슬길의 오르내림 살펴보니 陟未皆歡黜未悲 승진했다 기뻐말고 쫓겨났다 슬퍼말라. 고상안(高尙顔)의 「관물음(觀物吟)」이다. 단순히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자기 위안이 아니다. 일찍이 이인로(李仁老)는 『파한집(破閑集)』에서 “천지는 만물에 있어 그 아름다움만을 오로지 할 수는 없게 하였다. 때문에 뿔 있는 놈은 이빨이 없고, 날개가 있으면 다리가 두 개 뿐이며,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고, 채색 구름은 쉬 흩어진다[天地之於萬物也, 使不得專其美. 故角者去齒, 翼則兩其足, 名花無實, 彩雲易散].”고 하였다. 뿔 달린 소는 윗니가 없고, 이빨이 날카로운 범에게는 ..
8. 생동하는 봄풀의 뜻③ 芸芸庶物從何有 많고 많은 사물들 어데서 왔나 漠漠源頭不是虛 아득한 저 근원은 허망치 않네. 欲識前賢興感處 전현(前賢)의 흥감처(興感處)를 알고 싶은가 請看庭草與盆魚 뜨락 풀과 어항 고기 자세히 보게. 이황(李滉)의 「관물(觀物)」이다. 원두(源頭)는 아득하여 허망한 듯 하지만 끝까지 궁구하여 ‘일리(一理)’와 만난다. 많고 많은 ‘서물(庶物)’들의 말미암은 바가 바로 이 지점이 아니던가. 전현(前賢)은 그 어디서 ‘막막원두(漠漠源頭)’와 만났던가. 뜨락에 돋은 풀과 어항에 노니는 고기에서다. 4구의 ‘정초(庭草)’ ‘분어(盆魚)’는 정호(程顥)가 뜰의 풀을 베지 않고, 어항에 물고기를 기르며 그 생의(生意)를 관찰하여 존심양성(存心養性)의 공부를 닦았던 일을 두고 한 말이다. ..
7. 생동하는 봄풀의 뜻② 김시습(金時習, 1435-1493)도 「관물(觀物)」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南枝花發北枝寒 남쪽 가지 꽃 피워도 북쪽은 차니 强道春心有兩般 봄 마음 두 가지라 굳이 말하네. 一理齊平無物我 한 이치 나란타면 물아(物我) 없으리 好將點檢自家看 점검하여 제 스스로 봄이 좋겠네. 따사로운 봄볕과 마주한 양지녘엔 이미 꽃망울이 부펐어도, 그늘진 저편은 아직도 꽃소식이 감감하다. 한 가지에 나고도 이럴진대 봄은 어느 한편만을 편애하는 것이냐. 그러나 떳떳한 한 이치가 분명히 밝아 있으니 어찌 ‘양반(兩般)’의 뜻이 있으랴. 3구에서 슬며시 ‘아(我)’를 끌어들인 것을 보면, 세도(世道)의 불공(不公)을 언외에 투탁하는 마음이 잡힐 것도 같다. 唐虞事業巍千古 당우(唐虞)의 사업은 천고에 ..

3. 생동하는 봄풀의 뜻 소옹(邵雍)의 이물관물(以物觀物)의 설이 있은 이래 그 정신을 이어받아 관물(觀物)을 주제로 한 시를 남긴 시인들이 적지 않다. 여러 문집에 실려 전하는 관물시(觀物詩) 몇 편을 살펴 보기로 하자. 먼저 이색(李穡)의 「관물(觀物)」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大哉觀物處 因勢自相形 크도다 사물을 바라보는 곳 형세를 인하여 꼴지워 지네. 白水深成黑 黃山遠還靑 흰물도 깊으면 검게 변하고 황산도 멀리 보면 푸르게 뵈지. 位高威自重 室陋德彌馨 지위가 높고 보니 위엄 무겁고 집이사 누추해도 덕은 더욱 향기롭네. 老牧忘言久 笞痕滿小庭 늙은 몸 말 잊은 지 이미 오래니 이끼 자욱 작은 뜰에 가득하도다. 만물(萬物)의 태(態)는 일정함이 없어 형세에 따라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한다. 한 마음의 ..
5.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③ 관물(觀物)함으로써 그 속에 구현된 리(理)를 읽어내고, 그 리(理)를 체법(體法)함으로써 인간 삶과 연관 짓는 것은 유가(儒家) 인식론의 바탕이 된다. 송대의 이학자 소옹(邵雍)은 이렇게 말한다. 무릇 관물(觀物)이라고 말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리(理)로써 보는 것이다. 천하의 물(物)은 리(理)를 담지 않은 것이 없고, 성(性)이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명(命) 없는 것이 없다. 그는 눈으로 사물의 외피만을 보는 것을 ‘이아관물(以我觀物)’에, 심(心)으로 리(理)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을 ‘이물관물(以物觀物)’에 견주고, ‘이물관물(以物觀物)’을 ‘반관(反觀)’이라 하여..
4.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② 일찍이 조식(曺植)이 지은 「무제(無題)」란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雨洗山嵐盡 尖峯畵裏看 산안개 말끔히 비 씻어 가니 그림 같이 드러나는 뾰족 묏부리. 歸雲低薄暮 意態自閑閑 저물녘 녈 구름은 낮게 깔리어 그 모습 제 절로 한가롭구나. 비가 지나가자, 자욱하던 이내가 말끔히 걷히었다. 그래도 산허리엔 저물녘 하루 일과를 마친 구름이 귀가를 준비하고 있고, 그 위로 뾰족한 묏부리가 발묵(潑墨)의 그림처럼 새틋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바쁠 것 하나 없는 구름의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깊은 편안함에 잠겨든다. 유유자적하다. 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산과 구름 모두 다 희고 희거니 구름인지 산인지 분간 못하네.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峯 구름 가자 산만이 홀로 섰구나 일만이야 이천봉 금강이라네..
2.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12월 8일 아침. 매화 분에 물을 주라 하셨다. 날씨는 맑았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갑자기 흰 구름이 집 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 치 남짓 내렸다. 조금 뒤 선생께서 누울 자리를 정돈하라 하시므로 부축하여 일으키자 앉으신 채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구름이 흩어지고 눈은 걷혔다. 문인(門人) 이덕홍(李德弘)이 쓴 「퇴계선생고종기(退溪先生考終記)」이다. 묘한 느낌을 주는 글이다. 스승의 죽음을 지켜 본 제자의 기록으로는 투명하리만치 담담하다. 슬픔이 묻어날 빈틈이 없다. 스승의 용태에 마음을 졸이면서도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창밖의 날씨로 쏠려 있었다. 그는 과연 무슨 마음으로 스승이 서거하던 날의 기후 변화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임종하던 날 아침, 스승은 방안 매화에 물..
2.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② 물고기와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희로애락의 감정은 물고기도 있다. 편안함을 기뻐하고, 눈앞의 이익을 탐하며, 강한 적을 두려워한다. 물고기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는가? 염치와 부끄러움,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가? 없다. 이것이 인간과 물고기를 갈라놓는 기준이 된다. 인간에게 이런 마음이 없다면 미물과 무엇이 다른가? 다시 한 두 예화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어떤 이가 야생 거위를 길렀다. 불에 익힌 음식을 많이 주니까 거위가 뚱뚱해져서 날 수가 없었다. 그 뒤 문득 먹지 않으므로, 사람이 병이 났다고 생각하고, 더욱 먹을 것을 많이 주었다. 그런데도 먹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자 몸이 가벼워져,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옹(翁)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지혜롭고..

18. 관물론(觀物論), 바라봄의 시학(詩學) 1.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지렁이를 두고 사람들은 수미(首尾)도 없고 배도 등도 없다고들 말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실지로는 수미(首尾)와 복배(腹背)가 있어 해를 피하고 리(利)에 나아가며, 정욕(情欲)을 모두 갖추고 있다. 옹(翁)은 말한다. 물건의 어리석고 굼뜬 것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하물며 사람과 같이 칠규(七竅)와 오장(五臟)을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 것에게 있어서이겠는가? 말을 듣고 빛깔을 보아 지각함이 어둡지 않은데도, 사람 가운데는 간혹 방향을 잃어 길을 잃는 자가 있으니 슬프다. 지렁이의 머리는 어느 쪽인가? 해를 피해 나아가는 쪽이다. 배는 어느 쪽인가? 바닥에 닿는 쪽이다. 앞에 소금을 뿌려두면 지렁이는 고개를 돌..
13.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② 우리말과 한자를 뒤섞어 쓰는 시는 구한말에 오면 다음과 같이 진전된다. 舍廊곗집處女在 사랑 문간에 처녀가 있는데 무던顔色가는腰 무던한 얼굴에다 가녀린 허리. 사람一見얼는隱 사람을 한 번 보고 얼른 숨으니 마치雲間月明消 마치 구름 사이 달이 숨는 듯. 이기(李沂, 1848~1909)가 『대한자강회월보』에 소개한 것이다. 앞에서는 구절마다 한글이 2자씩 일정한 위치에 들어갔는데, 여기서는 2자 또는 4자까지 들어가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구문을 만들어낸다. 그 사이에 김삿갓의 “데걱데걱등남산(登南山), 씨근벌떡식기산(息氣散). 醉眼朦朧굽어관(觀), 울긋불긋화난만(花爛漫)”이나, “청송(靑松)등성듬성립(立), 인간(人間)여기저기유(有). 소위(所謂)엇뚝빗뚝객(客), 평생(平生..

5. 한시(漢詩) 최후의 광경 해체시는 전통미학과 기존문화를 해체하고 기존의 인간관도 해체시키려는 일종의 무규범성으로서의 소외 양상이었다. 해체시는 언어에 대한 불신으로 세계에 대한 불신을 효과적으로 표명했다. 욕설, 야유, 아이러니의 비틀린 언어도 소외의 주목할 만한 시적 양상이다. -115쪽 可憐門閥皆佳族 슬프다 문벌은 모두 훌륭한 집안으로 虛老風塵獨可悲 세월에 헛되이 늙으니 홀로 구슬프도다. 五老峯下論理坐 오로봉 아래에서 이치 논하며 앉았자니 世人皆稱道也知 세상사람 모두 도를 안다 일컫네. 위 시는 『한중기문(閒中記聞)』에 실려 있다. 한 사람이 시덥잖은 제 집안과 학문을 지나치게 뽐내므로 임제(林悌)가 조롱하여 지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오노봉(五老峯) 아래에서 리(理)를 논하며 앉아 있는 늙은..
11.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④ 그렇다고 김삿갓이 ‘비천한 재담’만을 일삼았던 광대였던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천박한 재담만으로 일관했다면 애초에 그의 시는 문자로 기록되어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四脚松盤粥一器 네 다리 소반에다 죽이 한 그릇 天光雲影共徘徊 하늘빛에 구름이 함께 떠도네. 主人莫道無顔色 주인아 면목 없다 말하지 마오 吾愛靑山倒水來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가난한 살림에 지나는 과객에게 먹다 남은 묽은 죽 한 그릇을 내오는 것을 보고 지었다는 시이다. 죽이 얼마나 묽었으면 앞산의 그림자가 얼비쳤을까. 이런 시도 점잖은 체면에서 보면 되잖케 보이기 마련이어도, 자신의 인생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잔잔한 서글픔이 있어 좋다. 天皇崩乎人皇崩 천황씨가 죽었느냐 ..
10.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③ 『도시시와 해체시』라는 책에서 이러한 시엔 “풍자정신 앞에 신성한 것, 숭고한 것, 초월적인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생각해 보았는가’하는 세계에 대한 지적 반응이다. 지적 반응은 희극적 태도다. 희극적 태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p.21)”가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스운 것 앞에서 뜻밖에 진지해지고, 진지한 것을 단번에 희화화해버리는 시인의 희극적 태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서당을 진작부터 알고 있나니 방 가운덴 모두 다 존귀한 물건뿐.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생도는 모두 열 살도 안 되어 선생이 와도 인사할 줄 모른다. 김삿갓이 고약한 시골..
9.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② 그러나 김삿갓이 함경도 일대를 떠돌다 지었다는 「무제(無題)」를 보자. 吉州吉州不吉州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한 고장 아니요 許可許可不許可 허가 허가 해봐도 허가하지 않는구나. 明川明川人不明 명천 명천 하건만 사람은 현명찮코 漁佃漁佃食無魚 어전 어전 하여도 식탁엔 고기 없네. 길주에 와서 허씨 성을 가진 집에 묵기를 청했는데 거절을 당했던 모양이다. 그 분풀이를 명천과 어전의 지명에 대로 풀었다. 똑같이 땅 이름으로 장난쳤지만 진지함은 없고 가벼운 말장난에 그쳤다. 邑號開城何閉門 고을 이름 개성(開城)인데 어찌 문을 닫으며 山名松嶽豈無薪 산 이름 송악(松嶽)인데 어이 땔감 없느뇨. 黃昏逐客非人事 황혼의 축객(逐客)은 사람 인사 아닐래라 禮義東方自獨秦 예의 동방 ..

4. 슬픈 웃음, 해체(解體)의 시학(詩學) 김준오는 자신의 저서 『도시시와 해체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 이런 말도 남겼다. “해체주의는 자명한 이치와 질서와 도덕을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세계를 가변적이고 일상적이며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한다. 자아도 더 이상 일관되게 세계와 교섭하고 대결하는 심리적 통일체나 종합적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해체시는 무질서한 세계를, 파편화된 세계를 그대로 수용한다.(p.152)” 1980년대의 해체시를 두고 한..
7. 김삿갓은 없다③ 정조 때 정승을 지낸 이서구(李書九)가 만년에 은퇴하여 향리에 물러나 있을 때 일이다. 그가 허름한 베잠방이 차림으로 냇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경망한 선비 하나가 시내를 건너려다, “여보. 늙은이! 나를 좀 업고 건네게.” 했겠다. “그러시지요.” 하고는 젊은 것을 업고 시내를 건너는데, 이 친구 늙은이 등에 업혀 까닥까닥 냇물을 건너다보니 아뿔싸! 늙은이가 정승이나 할 수 있는 옥관자(玉貫子)가 하고 있지 않은가. 시골 무지랭이 늙은인 줄 알았다가 큰 경을 치르게 생겼다. 어쩔 줄 몰라 부들부들 떨다가 창졸간에 시내를 건넜는데, 경망한 선비는 좀 전의 서슬은 간데없이 난짝 꿇어앉아 이마를 땅에 짓찧으며 죽을 죄를 빌었다. 그러자 이 의뭉스런 늙은이는 시를 한 수 읊어주고는 다..
6. 김삿갓은 없다② 이응수에 의해 김삿갓의 시집이 처음 간행된 것은 그가 세상을 뜬지 근 70년 뒤인 1939년의 일이다. 이응수는 이곳저곳에서 구전되던 김삿갓의 시 183편을 모아 상재하였다. 대부분이 전문(傳聞)에 의한 기록이고 보면, 그 진위(眞僞)를 헤아려 따진다는 것은 애초에 무망한 일이다. ‘최불암 시리즈’가 그렇고 ‘덩달이 시리즈’가 그렇듯이 극단적으로 말하면, 김삿갓의 시 또한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불특정 다수의 희작시들이 모두 그의 이름 아래 모인 것일 뿐이다. 김삿갓의 시로 알려진 다음 시를 보자. 是是非非非是是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옳음 아니고 是非非是非非是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옳지 않음 아닐세. 是非非是是非非 그른 것 옳다 ..
3. 김삿갓은 없다 희작시의 특징은 파격과 해학, 민중성과 익명성으로 대표된다. 특정 작가가 없을 뿐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의미 없는 가탁이 대부분이다. 또 이들 희작시들은 기존 한시의 문법을 과감히 깨뜨리고 있고, 시의 소재 또한 당시 사설시조가 평시조에 대해 그랬듯이 비시적(非詩的) 대상을 시(詩)의 소재로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그럴듯한 표면 진술의 당의(糖衣)를 입혀, 이면에서 풍자와 해학을 겨냥하는 언문풍월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전통 한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들 희작의 파격시들은 시랄 것도 없는 희학질에 불과하다. 도대체 점잖은 선비가 할 짓은 못 되는 것이다. 시시덕거리고 키득키득대는 정서에 더 가깝다. 희작시는 보통 전승의 과정에서 복수성을 띠면서 부연 확장된다. 예를 들어 김삿갓이 어느..
4. 눈물이 석 줄② 조선후기 『어수신화(禦睡新話)』란 책에는 16자 시도 실려 있다. 月上柳梢頭 人約黃昏後 달님이 버들가지 끝에 떠오니 해진 뒤에 만나기로 약속합시다. 父母俱睡熟 偸 부모님 모두 곤히 잠들면 몰래. 아쉬운 데이트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 가버려 어느덧 달이 늘어진 버들잎 새로 떠올랐다. 그러나 뜨거운 청춘 남녀는 그것으로 만남을 끝내기엔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부모님께 들통 나지 않게 한밤중에 다시 만나 밀회를 나누자는 약속을 주고받는 것이다. 意在不言中 低頭丢眼風 마음은 말없는 가운데 있어 고개를 푹 숙이고 눈웃음 짓네. 今日來不得 紅 오늘 오지 못하게 되면 난 몰라. 다정한 님의 소곤거림에 그녀는 더욱 두근대는 가슴을 달랠 길 없었다. 혹시 부모님이 늦게 주무셔서 약속을 못 지키게 ..

2. 눈물이 석 줄 한시의 어조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과거처럼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인 목소리에서 벗어나 모순되고 복잡한 양태를 연출하였다. 그들은 성리학적 세계관이 규정하는 제반 사회조건에 길들여져 있었으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이런 가운데 시인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희극적 양상을 나타내게 되는데, 그 결과 시는 진지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이른바 희작화(戱作化)의 경향은 이 시기에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이전의 시화(詩話)에도 희작의 양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로원야화기」부터 김삿갓의 시에 이르러 극에 달하는 파격의 희작시들이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집단적 양상을 띄고 등장하는 것은 주목되는 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이들 희작시의 작가들이 창작을 통..
2.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② ‘서울 것’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쪽같이 속았던 자신이 부끄럽고, 깜찍하게 속였던 ‘시골내기’가 맹랑했다. 이에 본격적으로 서울 것과 시골내기는 시 짓기 시합을 벌이는데, 여기에 동원된 시체(詩體)라는 것이 앞서 소개한 바 있던 잡체시들이다. 인명(人名)을 넣어 짓는 인명시(人名詩)로 겨루고, 연구(聯句)로 주거니 받거니 시합하고, 다시 육언(六言)으로 실갱이를 하다가, 종내 3ㆍ5ㆍ7(言)의 층시(層詩)로 옮겨 가고, 약명체(藥名體)로 승부를 결하였다. 서울 것은 시골내기에게 끝내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참패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이번엔 거꾸로 시골내기가 오행시(五行詩)로 겨룰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짓는 방법은 첫 구 첫 자에 ‘목(木)’자를 넣고, 끝 자에는..

17. 해체의 시학(詩學): 파격시의 세계 1.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 - 김준오 『도시시와 해체시』 중에서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는 숙종(肅宗)조의 한 시골 선비가 서울서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충남 아산 어름의 요로원에 잠자리를 찾아 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병든 말에 초췌 남루한 행색의 나그네는 가는 곳마다 홀대와 업신여김을 받았다. 그가 여관방에서 서울의 행세하는 집안의 끌끌한 선비와 함께 묵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 ..
13. 선덕여왕의 자격지심② 작호도(鵲虎圖)와 노안도(蘆雁圖)의 속뜻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 보면 흔히 표범을 그려놓고 그 배경에 소나무와 까치를 그려 둔 민화와 마주하게 된다. 이 그림은 일종의 세화(歲畵)로서 정월에만 붙이는 것이다. 반드시 표범이라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표범을 본 일이 없어 슬며시 호랑이로 둔갑해 그려져 있기도 한다. 이를 작호도(鵲虎圖)라 하여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호랑이와 까치를 친근하게 여겨왔고 운운하는 설명이 친절하게 붙어 있기도 하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표범과 소나무와 까치는 상황을 상징하는 하나의 코드일 뿐이다. 표범을 나타내는 한자 ‘표(豹)’는 ‘빠오’로 읽혀지니, 알린다는 뜻의 ‘보(報)’와 발음이 같다. 까치는 ‘희작(喜鵲)’이라 하여 ‘기쁜 소식’을 상징한다...
5. 선덕여왕의 자격지심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편에 보면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機三事)’란 항목이 있다. 그녀가 재위 16년 동안 미리 알아 맞춘 세 가지 일을 적은 것이다. 그 첫 번째는 당 태종이 붉은빛과 자주빛, 그리고 흰빛 등 세 가지 빛깔의 모란꽃 그림과 그 꽃씨 서 되를 보내왔는데, 여왕은 그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필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꽃이 피었는데 그 말과 같았다. 여러 신하가 어떻게 그럴 줄 알았느냐고 묻자, 여왕은 “꽃을 그리면서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바로 당나라 황제가 나의 혼자 지내는 것을 조롱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신하들을 탄복시켰다. 그런데 예전부터 모란꽃을 그릴 때에는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았다..
11. 뻐꾹새 울음 속에 담긴 사회학③ 한시에는 이렇듯 새 울음소리를 음차하여 훈독(訓讀)함으로써 이중 의미를 담는 금언체(禽言體)라는 것이 일찍부터 발달되었다. 노고지리를 ‘노고질(老姑疾)’로 표기하여 늙은 시어머니의 병환을 노래한다든지, 아예 ‘부과자(負鍋者)’라 하여 ‘노구[鍋] 솥을 등에 질[負] 이[者]’라고 풀기도 한다. 소쩍새는 솥적다고 ‘정소(鼎小)’라 하고, 까마귀는 ‘고악(姑惡)’이라 하여 시어머니를 향한 며느리의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소쩍새의 다른 이름인 주걱새를 ‘死去’(죽어)鳥로 표기하여 ‘나 죽겠네’의 탄식을 털어 놓기도 한다. 모두 쌍관(雙關)의 묘미(妙味)를 활용하고 있는 예들이다. 鼎小 鼎小 솥적 솥적 飯多炊不了 쌀이 많아 밥 지을 수 없다지만 今年米貴苦艱食..
10. 뻐꾹새 울음 속에 담긴 사회학② 布穀 布穀 뻐꾹 뻐꾹 布穀聲中春意足 뻐꾹새 울음 속에 봄은 무르익었는데 健兒南征村巷空 사내들은 전쟁 나가 시골 동네 텅 비었네. 落日唯聞寡妻哭 저물녘엔 들리느니 과부의 울음 소리 布穀啼 誰布穀 씨 뿌려라 울지만 누가 있어 씨 뿌리나 田園茫茫烟草綠 들판엔 아득하게 풀빛만 자옥해라. 권필(權韠)의 「포곡(布穀)」이란 작품이다. 시대 배경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이다. 때는 바야흐로 봄날, 뻐꾹새의 울음소리 속에 춘경(春耕)의 일손이 한창 바쁠 시절이다. 그러나 남정네들은 모두 남쪽 전장터로 징발되어 시골 동네는 텅 비고 말았다. 저물녘에 들려오는 과부의 울음소리는 이미 많은 남정네들이 그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음을 알려준다. 뻐꾹새가 씨 뿌리라고 목청을 뽑을수록 그녀들..

4. 뻐꾹새 울음 속에 담긴 사회학 凌晨走馬入孤城 새벽녘 말을 달려 외론 성에 들어서니 籬落無人杏子成 울타리엔 사람 없고 살구만 익었구나. 布穀不知王事急 나라 일이 급한 줄을 뻐꾹새는 모르고 傍林終日勸春耕 숲 곁에서 종일토록 봄갈이를 권하네. 고려 때 시인 정윤의(鄭允宜)의 「서강성현사(書江城縣舍)」란 작품이다. 새벽녘에 말을 달려 성에 들어서고 있으니, 그는 지금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람 그림자 하나 찾을 수 없는 외로운 성뿐이다. 혹시나 사람이 있을까 싶어 울타리를 기웃거려 보아도 보이는 것은 주인 없는 마당에 잘 익어 매달린 살구 열매뿐이다. 그런데 뻐꾹새는 급한 나라 일도 알지 못한 채 철도 없이 숲가에서 봄 밭갈이를 어서 하라고 울고 있다는 것이다. ..
8. 견우(牽牛)와 소도둑④ 만해 한용운의 「심은 버들」이란 작품도 바로 그런 예에 해당한다. 뜰 앞에 버들을 심어 님의 말을 매렸더니 님은 가실 때에 버들을 꺾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 버들마다 채찍이 되어서 님을 따르는 나의 말도 채칠까 하였더니 남은 가지 천만사(千萬絲)는 해마다 해마다 보낸 한(恨)을 잡아맵니다. 위 시에서 ‘남은 가지 천만사(千萬絲)’는 님을 향한 ‘남은 생각 천만사(千萬思)’와 쌍관(雙關)된다. 그러므로 ‘보낸 한(恨)’을 잡아매는 것은 ‘천만사(千萬絲)’의 얽히고설킨 버들가지이면서 동시에 ‘천만사(千萬思)’의 부질없는 기다림과 집착이 된다. 甲日花無乙日輝 오늘 핀 꽃이 내일 빛남 없음은 一花羞向兩朝暉 한 꽃으로 두 아침 햇살 부끄럽기 때문이라. 葵傾日日如馮道 해바라기 날마다 기..
7. 견우(牽牛)와 소도둑③ ‘갬[晴]’과 ‘정(情)’ 楊柳靑靑江水平 수양버들 파릇파릇 강물은 넘실넘실 聞郞江上唱歌聲 강 위에선 그 님의 노래 소리 들리네. 東邊日出西邊雨 동쪽엔 해가 나고 서쪽에는 비 오니 道是無晴却有晴 흐렸나 하고 보면 어느새 개였구나. 유우석(劉禹錫)의 「죽지사(竹枝詞)」이다. 수양버들 가지에 물이 오르니, 강물도 넘실넘실 물이 불었다. 청춘의 봄날, 사랑의 단꿈이 익어가는 강변의 스케치이다. 연잎 사이로 배를 띄웠던 아가씨는 저 건너 방죽가에서 그 님이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듣고 있다. 아가씨는 갑자기 화제를 돌려 날씨 타령을 늘어놓는다. 저편에선 비가 오는데 또 이편에선 햇살이 비친다. 개였나 싶으면 흐린 날씨처럼, 아가씨의 마음도 싱숭생숭 한 게다. 요랬다조랬다 하는 날씨처..
6. 견우(牽牛)와 소도둑② 조원(趙瑗)의 첩 이씨(李氏, 이옥봉)가 능히 시를 잘 지었다. 마침 시골에 어떤 남자가 소를 훔친 혐의로 관가에 끌려갔다. 답답한 그 아낙이 이웃의 이씨(李氏)에게 남편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소장(訴狀)을 써달라고 부탁하니, 이씨(李氏)는 그 말미에 이렇게 써 놓았다. 妾身非織女 郞豈是牽牛 첩의 몸이 직녀(織女)가 아니옵거늘 낭군이 어찌 견우(牽牛)시리요. 견우(牽牛)는 글자 그대로 풀이 하면 ‘소를 끌다’가 되니 소를 끌고 간 도둑이 된다. 자신이 직녀(織女)가 아니니 낭군이 견우(牽牛)일 까닭이 없다는 말은, 곧 낭군은 결코 소를 끌고 가지 않았다는 호소가 되는 것이니, 그 언어의 재치가 놀랍고 뛰어나다. 이 시를 본 태수는 기특하게 여겨 그 사람을 바로 풀어주었다. 이..
3. 견우(牽牛)와 소도둑 기관염(氣管炎)과 처관엄(妻管嚴) 앞서 본 여러 예화들은 모두 희필(戱筆)에 불과한 것이지만, 언어를 구사하는 재치가 뛰어나고 기지가 반짝인다. 대개 시와 문자유희는 엄격하게 다르지만, 언어를 주된 질료로 삼는 시는 본질적으로 얼마간은 유희적 기분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동음사(同音詞)나 다의사(多義詞)를 활용한 쌍관(雙關), 즉 말장난 펀(Pun)은 현대시에서도 흔히 접하게 되는 기교인데, 예전 한시에도 이러한 펀(Pun)의 예는 매우 빈번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애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중국 사람들이 쓰는 은어 가운데 기관지염에 걸렸다는 말은 공처가(恐妻家)라는 의미로 쓰인다. 왜냐하면 ‘기관염(氣管炎)’과 ‘처관엄(妻管嚴)’의 중국 발음이 서로 같기 때문..
4. 장님의 단청 구경② 광해군 때 평양 관찰사 박엽(朴燁)이 손과 함께 장기를 두고 있었다. 장기 수가 자꾸 막히자 박엽은 곁에 앉아 시중을 들고 있던 기생 소백주(小栢舟)를 쿡 찌르며 그러고만 있지 말고 노래나 한 수 지어 불러보라 하였다. 상공(相公)을 뵈온 후에 사사(事事)를 믿자오매 졸직(拙直)한 마음에 병들까 염려러니 이리마 저리차 하시니 백년동포(百年同胞)하리이다. 나는 당신을 만난 뒤로 모든 일을 당신께 의탁고자 해도, 혹 님이 나를 버리시면 어쩌나 하여 병이 될 지경인데, 당신은 이리하마 저리하자는 딴청만 하시니 그러지 말고 함께 품어 백년해로하자는 말씀이다. 그런데 다시 시의 원문을 가만히 읽어보면 장기판의 짝패인 상(象)ㆍ사(士)ㆍ졸(卒)ㆍ병(兵)ㆍ마(馬)ㆍ차(車)ㆍ포(包)의 음이 다..
2. 장님의 단청 구경 고려 때 이색(李穡)이 중국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여 성명(聲名)이 천하에 크게 떨쳤다. 그가 한 절에 이르니 스님이 마중 나와 말하기를, “그대가 동방의 문장사(文章士)로서 중국의 과거에 장원하였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이제 직접 만나 보니 큰 기쁨입니다[飽聞子東方文章士, 爲中國第一科, 今何倖見之].”라고 하였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떡을 가지고 와서 대접하니, 스님이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 僧笑少來僧笑少 승소(僧笑)가 적게 오니 스님 웃음도 적네. 대개 ‘승소(僧笑)’는 떡의 별칭인데, 쟁반에 떡[僧笑]이 조금 밖에 없으니 스님의 웃음[僧笑] 또한 적다고 말한 것이다. 이색(李穡)이 갑작스레 대구를 지으려 하였으나 도저히 짝을 맞출 수가 없는지라 사과..
2. 초록 저고리, 국수 한 사발② 김삿갓의 시 속에서도 이런 말장난의 예는 흔히 발견된다.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하늘은 길어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이 늙으니 나비도 오지 않네. 菊秀寒沙發 枝影半從地 국화는 찬 모래에 곱게 피었고 나뭇가지 그림자 반쯤 드리웠는데,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 가 정자를 가난한 선비 지나다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어졌구나. 月移山影改 通市求利來 달이 옮겨가자 산 그림자 바뀌고 저자에선 利를 구해 사람들 돌아오네. 김삿갓이 방랑의 길목에서 한 집에 묵어갈 것을 청하니, 주인은 난처해하다 천장에 거미집이 어지러운 골방으로 안내하고는 식사라고 내 온 것이 국수 한 사발에 간장 반 종지가 전부였다. 창가에 흘러드는 달빛을 보다가 바로 앞에 칙간에서 나는 구린내에 코를 막으며 그는 ..

16. 시(詩)와 문자유희(文字遊戱): 한시(漢詩)의 쌍관의(雙關義) 1. 초록 저고리, 국수 한 사발 조선 중기의 학자 김일손(金馹孫)이 젊어 산사(山寺)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가 띄운 편지 한 통이 장인에게 배달되었는데, 편지의 사연이 야릇하였다. 文王沒 武王出 周公周公 召公召公 太公太公 이를 현대어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문왕(文王)이 돌아가시자, 무왕(武王)이 나오셨네. 주공(周公)이여 주공(周公)이여! 소공(召公)이여 소공(召公)이여! 태공(太公)이여 태공(太公)이여!” 예전 은(殷) 나라가 임금 주(紂)의 포학한 통치로 혼란에 빠지자, 제후였던 문왕(文王)은 어짊으로 백성을 다스려 모든 제후들이 그를 존경하여 따랐다. 그가 세상을 뜬 뒤에도 주(紂)의 포학한 ..
11. 이합체(離合體)와 문자 퍼즐② 이제 본격적인 완성된 형태의 이합체(離合體) 시(詩)를 한 수 감상해 보기로 하자. 조선 중기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작품이다. 徂年糬已改 且可閑逍遙 흘러가는 세월 문득 이 몸 바꾸어 장차 한가로이 노닐만 해라. 聽取天幡鳴 耳邊喧調刀 천지의 소리를 귀여겨 들으니 귓가엔 떠들썩 칼 고르는 소리로다. 干時良已晩 二毛紛飄蕭 시대에 쓰임 구하려도 이미 늦었고 반쯤 센 터럭만 어지러이 흩날리네. 沓沓名利子 白日誇蟬貂 욕심 많은 저 명리(名利)의 사람은 밝은 해에 가벼운 갖옷 뽐내네. 弛置樂自便 也復觀漁樵 멋대로 놓아두니 즐거워 편안한데 다시 몸소 고기 잡고 나무를 하네. 倀鬼役於虎 人或遭昏妖 박귀(璞鬼)가 범에게 부림 당하듯 사람도 간혹 요귀를 만난다네. 結髮喜玄覽 吉凶窮..

4. 이합체(離合體)와 문자 퍼즐 硏石猶在 峴山已頹 연석(硏石)은 그대로인데 현산(峴山)은 이미 무너져 버렸네. 姜女己去 孟子不來 강녀(姜女)가 떠나가자 맹자(孟子)는 오질 않네. 소동파(蘇東坡)가 자신의 벼루 뚜껑에 새겨 놓았다는 내용이다. 현산(峴山)의 돌을 캐어 벼루를 만들었다. 하도 많이 캐고 보니 현산(峴山)은 모두 닳아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정작 여기서 캐낸 벼루 돌은 아직도 남아 있다. 강녀(姜女)가 떠나가자 맹자(孟子)가 더 이상 오질 않는다는 말은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하(下)에서 ‘원급강녀(爰及姜女)’라 한 구절을 가지고 응용한 것이다. 글자 그대로 보아도 ‘강(姜)’에서 ‘녀(女)’가 떠나니 ‘양(羊)’만 남고, ‘맹(孟)’에서 ‘자(子)’가 오지 않으니 ‘명(皿)’만..
9.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③ 고대 중국에는 이렇듯 글자를 떼었다가 다시 붙이는 파자(破字)나 합자(合字)의 방식을 활용한 은어(隱語)나 수수께끼가 많이 전해진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에는 한(漢)나라 헌제(獻帝) 때 서울에서 불리웠다는 동요가 실려 있다. 千里草何靑靑 천리초는 어찌 저리 푸르른가. 十日卜不得生 열흘 동안 점을 치니 살지를 못한다네. 무슨 말인가. ‘천리초(千里草)’를 한데 묶으면 ‘동(董)’이 되고, ‘십일복(十日卜)’은 ‘탁(卓)’자가 된다. ‘청청(靑靑)’은 푸르게 우거져 왕성한 모양이고, ‘부득생(不得生)’은 결국 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위 노래는 당시 전횡을 일삼던 간신 동탁(董卓)이 지금은 저렇듯 날뛰고 있지만 마침내는 머지않아 망하고 말 것이라는..
8.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② 出門遠觀山山翠 문을 나서 멀리 보니 산마다 푸르르고 朋友相送月月親 벗을 보낸 뒤부터 달만 보면 반갑구나. 위의 시에서는 ‘출(出)’을 ‘산산(山山)’으로, ‘붕(朋)’을 ‘월월(月月)’로 각각 파자(破字)하여 장난친 경우이다. 이러한 장난이 보다 더 진전되면, 다음과 같은 창작으로 이어진다. 日月明朝昏 山風嵐自起 해와 달 아침 저녁 환하게 밝고 산 바람에 이내가 절로 이누나. 石皮破仍堅 古木枯不死 돌 껍질은 깨뜨려도 단단만 하고 고목은 말랐어도 죽지 않았네. 可人何當來 意若重千里 보고 싶은 그대가 오지 않으매 마음은 천리나 떨어져 있는듯. 永言詠黃鶴 志士心未已 시를 지어 황학(黃鶴)을 노래하자니 지사(志士)의 마음은 끝이 없어라. 송(宋) 나라 때 무명씨의 작이다..

3.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 한시 중에는 앞서 장두체(藏頭體)와 같이 파자(破字)하여 장난을 친 문자 유희가 심심찮게 있다. 다음은 흔히 김삿갓의 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仙是山人佛弗人 신선은 산 사람이나 부처는 사람 아니요 鴻惟江鳥鷄奚鳥 기러기는 강 새지만 닭이 어찌 새리요. 氷消一點還爲水 얼음이 한점 녹으면 도로 물이 되고 兩木相對便成林 두 나무 마주 서니 문득 숲을 이루네. 말인즉 구구절절이 옳다. ‘선(仙)’은 ‘인(人)’과 ‘산(山)’이 결합된 것이니 이를 파자(破字)하면 ‘산인(山人)’이 되고, ‘불(佛)’은 ‘불인(弗人)’이 된다. 또 ‘홍(鴻)’은 ‘강조(江鳥)’ 두 글자를 합한 것이고, ‘계(鷄)’는 ‘해(奚)’와 ‘조(鳥)’를 묶은 것이다. 일단 이 네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
6.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③ 다른 구절들도 모두 비슷한 발상으로 지은 것이다. 舞臺小天地 天地大舞臺 무대(舞臺)는 작은 세상이요, 천지(天地)는 커다란 무대(舞臺)일러라. ‘소(小)’와 ‘대(大)’를 중앙에 두고 ‘무대(舞臺)’와 ‘천지(天地)’의 위치를 서로 바꾼 것인데, 의미는 간결하면서도 깊은 함축을 담았다. 思伊久阻歸期 靜 憶 轉漏聞時離別 위 시도 첩자시(疊字詩)이다. 지은이는 송(宋)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진소유(秦少游)이다. 이 시는 왼쪽 ‘정(靜)’에서 시계 방향으로 7언으로 끊는데, 뒤의 넉 자 또는 석 자가 다음 구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읽는다. 靜思伊久阻歸期 돌아올 기약 늦는 그대를 생각타가 久阻歸期憶別離 돌아올 기약 늦어지니 이별을 떠올리네. 憶別離時聞..
5.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② 장두체(藏頭體)란 글자 그대로 각 구절 첫 글자에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시체(詩體)이다. 이를 달리 말해 옥련환(玉連環)이라고도 하는데, 옥(玉)이란 ‘옥편(玉篇)’의 예에서도 보듯 글자를 말하니, 옥련환(玉連環)이란 글자가 이어져 고리를 이루는 ‘꼬리따기 노래’라는 뜻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한시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감춰진 규칙을 고려하면 각 구의 끝 글자가 놓이는 순간 다음 구절의 첫 글자가 제한되니, 창작 상 고도의 기교와 언어 구사력이 요구된다. 그러면서도 운자는 엄격하게 지켰다. 木葉蕭蕭正着霜 낙엽 우엔 쓸쓸히 서리 내리고 相如多病臥虛堂 상여(相如)는 병 앓으며 빈 집에 누웠네. 土階荒草秋猶碧 흙 계단 황량한 풀, 가을에도 ..

2.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 한충(韓忠, 1486~1521)은 기개가 호방하고 비파 연주 솜씨도 뛰어났던 문사였다. 그가 주청사(奏請使)로 중국에 가게 되었는데, 용한 점장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자신의 평생의 길흉을 점치게 하였다. 점쟁이는 그의 사주를 따져본 뒤, 시 한 수를 적어 주었다. 내용은 이러하였다. 年壯氣拔天摩 把龍泉幾歲磨 上梧桐將發響 中律呂有時和 傳三代詩書敎 起千秋道德波 幣已成賢士價 生何獨怨長沙 위 6자 8구의 시는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다. 무엇을 예언한 것일까? 시를 받아든 한충(韓忠)은 뜻을 알 수가 없어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점쟁이가 써준 것은 장두체(藏頭體)라고 불리는 일종의 잡체시이다. 문자 퍼즐의 한 종류로, 그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3.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③ 개화기 「만주일보」 1919년 10월 1일자에는 사몽이란 필명자가 투고한 「고(苦)는 약(樂)의 종(種)」이란 제목의 시가 실려 있는데, 팔음가(八音歌)와 비슷한 발상으로 지어진 실험시이다. 그 첫줄에 ‘자운’이라 하여 “지금의 우리 고생 장래의 락이로다”는 한 줄이 실려 있다. 시의 전문은 이러하다. 지금의 우리들은 고생 중에 싸였네 금음밤에 불없이 헐덕이는 우리들 의워싸고 있는 것 제일 못된 악말세 우리의 지금 고생 비관 말고 힘쓰면 리상저끝 결과가 불원간에 오리라 고생 끝에 락이란 예로부터 있는 말 생각하고 깨다라 락심 말고 해보소 장차고 무한하든 우리들의 고생이 래두에 끝 있을 것 자신하고 분발해 의리 없는 저 악마 죄 내쫓아 바..
2.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② 「매일신보(每日申報)」 제1959호(1912. 5.1)에 실린 수원 사는 이원규(李元圭)란 이가 지은 「가루지 타령」이란 언문풍월도 수시의 발상을 십분 활용한 몹시 흥미로운 작품이다. 일지일지(一之一之) 글이나 일지(一之) 이지이지(二之二之) 금(金)을 이지(二之) 삼지삼지(三之三之) 집신이나 삼지(三之) 사지사지(四之四之) 브즈런해야 사지(四之) 오지오지(五之五之) 세월(歲月)가면 늙을 때가 돌아오지(五之) 육지육지(六之六之) 항업(航業)은 수로(水路)오 농업(農業)은 육지(六之) 칠지칠지(七之七之) 암컷이나 칠지(七之) 팔지팔지(八之八之) 쓰고 남거던 팔지(八之) 구지구지(九之九之) 궁교빈족(窮交貧族) 가난구지(九之) 십지십지(十之十..

15.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1.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 부단한 언어의 실험정신, 질곡을 만들어 놓고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언어의 절묘한 직조(織造)가 보여주는 현란한 아름다움, 잡체시는 단순히 이런 것들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오늘의 시단에 던진다. 또한 젊은 시인들에 의해 실험되고 있는 형태시들이 기실은 까맣게 잊고 있던 전통의 재현일 뿐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세상은 이렇듯 돌고 도는 것이며, 우리는 이 모든 현상들 앞에서 수없는 상호 텍스트화를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一生苦沈綿 二月患喉撲 일생동안 병고에 괴로웠는데 이월에도 감기 들어 목이 쉬었네.三夜耿不眠 四大眞是假 삼일 밤을 끙끙대며 잠 못 이루니 사대 등신 멀쩡한 몸 헛것이로다.五旬尙..
12.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② 우리나라 문집을 읽다 보니 조선 중기 문인 조위한(趙緯韓)의 문집에도 신지체 한 수가 실려 있다. 문집을 그대로 오려 붙이면 아래의 사진과 같다. 이를 어떻게 읽을까? 대개 신지체는 위의 예에서도 보듯 한 글자가 두 글자 또는 세 글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모두 16자로 되어 있으니 대개 5언 8구의 율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퍼즐을 앞서의 방식을 따라 풀면 다음과 같다. 小郡臨湖上 危樓近太淸 작은 고을 호수 가에 임하여 있고 높은 누각 푸른 하늘 가까이 있다. 濃烟迷大野 片雨入荒城 짙은 안개 넓은 들에 어지럽더니 황량한 성 보슬비가 흩뿌리누나. 遠峀斜陽盡 橫塘細草平 먼 산에 지는 해도 스러져 가고 횡당엔 가는 풀만 우거졌구나. 空齋無一事 長嘯倚前楹 빈 집에 아무런 일이..
3. 그림으로 읽기, 신지체 『골계총서(滑稽叢書)』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옛날 한 원님의 첩이 총명하여 능히 문자를 이해했다. 그 고을에 문객 한 사람이 해학을 잘 하므로 원님이 아껴 우스개 얘기를 하며 서로 격의 없이 지냈다. 하루는 재상이 첩과 더불어 동산 정자에서 상춘 하고 있는데, 문객이 심부름 하는 아이에게 네 글자를 써서 재상에게 보내왔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원님은 내용을 아무리 읽어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첩이 곁에서 그 글을 읽더니 웃으며 말했다. “무에 어려울 게 있답니까? ‘일(日)’ 자가 매우 기니 이는 ‘장일(長日)’입니다. ‘심(心)’ 자에 점 하나가 없으니, 바로 ‘무점심(無點心)’입지요. ‘인(人)’자를 조그맣게 썼으니 ‘소인(小人)’이구요, ‘복(腹)..
10.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⑦ 이런 형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면 다음과 같은 모양이 된다. 烟 雨 冷 藏 雲 睄 山 望 紅 遠 花 水 流 春 老 吟 殘 蘂 窪 軟 東 鬪 含 隱 叉 香 荀 吐 尖 중국의 『이공시격(李公詩格)』이란 책에 수록된 「반복시(反覆詩)」이다. 이 시를 읽는 법 또한 절묘하기 짝이 없다. 겉 마름모꼴은 모두 20자로 되어 있는데, 아무 글자 아무 방향으로 읽어도 시가 된다. 대개 5언절구 30수 가량을 얻을 수 있다. 또 가운데 십자가 모양에는 모두 13개의 글자가 있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읽어 7언절구 4수가 이루어진다. 그런가 하면 위에서 내려오다가 가운데 ‘로(老)’자에서 왼편으로 혹은 오른편으로 읽던지, 왼편에서 읽어오다가 ‘로(老)..
9.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⑥ 비슷하지만 좀 더 복잡한 예를 하나 더 읽어보자. 명나라 장조(張潮)가 엮은 『해낭촌금(奚囊寸錦)』에 실린 「영기(令旗)」란 작품이다. 위 그림에서 보듯 깃발 안에 49자가 적혀 있고, 정중앙의 ‘영(令)’ 자만 검게 표시했다. 이 시를 읽는 방법은 좀 복잡하다. 중앙의 ‘영’자에서 출발해서 아래로 내려와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7자씩 끊어 읽는다. 그리고 다음 구의 첫 자는 전 구의 끝 글자를 반으로 갈라서 따온다. 예를 들어 첫 구의 끝 글자 ‘명(銘)’에서 ‘금(金)’을 취하고, 둘째 구의 끝 글자 ‘쟁(琤)’에서 ‘왕(王)’ 자를 취하는 방식이다. 퍼즐을 풀면 다음과 같다. 令出功成好勒銘 영 내리면 공 이루어 공 새기기 좋은데 金戈鐵馬靜瑽琤 쇠 창과 갑옷 말이 고요히 쟁..
8.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⑤ 이제 그 한 예를 보기로 하자. 다음은 한나라 때 소백옥(蘇伯玉)의 아내가 멀리 촉 땅에 있는 남편을 그리며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쟁반 가운데 써서 보냈다는 「반중시(盤中詩)」이다. 이 시는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정 중앙의 ‘산(山)’자에서 아래 ‘수(樹)’자로 내려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다시 그 다음 원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 해 읽으면 다음과 같은 3자시가 된다. 山樹高 산엔 나무가 높이 솟았고 鳥鳴悲 새는 구슬피 울음 우누나. 泉水深 흐르는 샘물은 깊기도 한데 鯉魚肥 뛰노는 잉어는 살이 올랐네. 空倉雀 텅빈 창고에 사는 참새가 常苦飢 언제나 주림으로 괴로워 하듯, 吏人婦 벼슬살이 떠나간 이의 아내는 會夫稀 지아비 만나..
7.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④ 아래 그림은 거북 모양으로 수놓은 직금도의 일종으로 당나라 때 변방의 장수였던 장규(張壄)의 아내가 지은 시이다. 睽 鄕 離 還 已 早 是 敎 征 客 十 秋 强 天 子 願 對 鏡 那 獻 堪 形 龜 作 妝 理 重 繡 聞 腸 雁 砧 更 斷 幾 廻 修 調 尺 杵 拂 淚 霜 見 素 垂 先 練 製 爲 先 疊 衣 箱 裳 開 글자의 배열을 따라 선을 이으면 완연한 거북의 모양이 이루어진다. 남편 장규가 변방으로 떠난 지 10여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 아내 후씨(侯氏)는 이 시를 수놓아 대궐에 가서 천자께 바쳤다. 이를 받아본 당 무종(武宗)은 그녀의 재주를 높이 사, 남편을 고향에 돌아오게 하였다. 아울러 비단 삼백필의 부상을 내렸다. 위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제일 위 ..
6.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③ 회문시 중에는 글자를 하나씩 밀려서 읽어도 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차 주전자에 흔히 써넣는 「다호시(茶壺詩)」이다. ‘가이청심야(可以淸心也)’라는 다섯 글자가 써 있는데, 이를 한 글자씩 밀면서 읽으면 이렇게 된다. 可以淸心也 마음을 맑게 할 수가 있고 以淸心也可 맑은 마음으로 마셔도 좋다. 淸心也可以 맑은 마음으로도 괜찮으니 心也可以淸 마음도 맑아질 수가 있고 也可以淸心 또한 마음을 맑게 해준다. 둥근 차 주전자에 돌려가며 쓴 글이니 사실 어느 글자로부터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 글자부터 읽더라도 뜻이 통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것을 ‘자자회문시(字字廻文詩)’라고 한다. 이인로(李仁老)는 『파한집(破閑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문시는 제(齊)..
5. 바로 읽고 돌려 읽고② 먼저 기본 형태의 회문시를 한 수 읽어보자. 腸斷啼鶯春 落花紅蔟地 꾀꼬리 우는 봄날 애끊는 마음 진 꽃은 온 땅을 붉게 덮었네. 香衾曉枕孤 玉臉雙流淚 이불 속 새벽잠은 외롭기만 해 고운 뺨엔 두 줄기 눈물 흐르네. 郎信薄如雲 妾情搖似水 님의 약속 믿음 없기 뜬구름인 듯 제 마음은 일렁이는 강물 같네요. 長日度與誰 皺却愁眉翠 긴 날을 그 누구와 함께 지내며 근심 겨워 찡그린 상 물리쳐 볼까. 이규보(李奎報)의 「미인원(美人怨)」이란 작품이다. 창밖에는 이른 새벽부터 꾀꼬리가 울고, 방안 이불 속에는 이른 아침부터 두 뺨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누워 있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뒤숭숭한 꿈에서 막 깨어났는데, 그녀의 잠을 깨운 것은 꾀꼬리의 울음소리였다. 설레이는 마음에 일어나 창밖..
2. 바로 읽고 돌려 읽고 청나라 때 북경에 ‘천연거(天然居)’라는 술집이 있었는데, 건륭황제가 이것을 제목으로 하여 시를 짓게 하였다. 客上天然居 居然天上客 나그네 천연거에 올라가더니 느긋히 천상의 객이 되었네. 두 구절의 글자 배열을 보면 둘째 구는 첫 구를 뒤집어 읽은 것이다. 말하자면 바로 읽고 거꾸로 읽어 두 구를 만들었다. 그러자 기효람(紀曉嵐)이 이렇게 받았다. 人過大佛寺 寺佛大過人 사람이 큰 절간을 지나가는데 절의 부처 사람보다 훨씬 크더라. 역시 첫 구를 거꾸로 하여 둘째 구로 얹은 것이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후한 상을 내렸다. 雁飛平頂山 山頂平飛雁 기러기 평정산을 날아가는데 산꼭대기 기러기 떼 가지런하네. 花香滿園亭 亭園滿香花 꽃이 만원정에 향기로우니 정원이 꽃 향기로 가득하구나. ..
3. 글자로 쌓은 탑③ 개화기의 잡지 『청춘』 제 6호(1915.3)에는 매우 흥미로운 시 한 수가 실려 있다. 조판의 어려움 때문에 원래 상태로는 보여줄 수 없어 유감이지만, 바둑판 모양으로 가로 세로 14자씩 배열하여, 글자는 중앙을 향하도록 방사형으로 배치하였다. 제목은 「부벽루기(浮碧樓記)」이다. 읽는 법은 중앙의 글자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한 글자씩 차례로 늘려 읽는 것이다. 펼쳐 보면 이 작품은 1자로부터 10까지 늘어났다가 다시 1자까지 줄어드는 마름모꼴의 특이한 시형이 된다. 樓 樓 江岸 城頭 浮碧空 帶長流 壯觀四海 雄壓西州 側身窺宇宙 引手挽牛斗 仙人所以好居 騷客幾多來遊 風烟四節各殊狀 人事千年等幻漚乙密臺邊神馬不還 麒麟窟裏古跡空留 高登雕欄頓覺逸興生 逈挹平原便欣塵慮休 丹靑曜日一杯可消百憂..
2. 글자로 쌓은 탑② 다음은 고려 때 승려 시인 혜심(慧諶)의 시이다. 1에서 10까지 차례로 늘어나고 있다. 물론 운자도 지켰다. 원 제목은 「차금성경사록종일지십운(次錦城慶司祿從一至十韻)」이다. 人 人 隨業 受身 苦樂果 善惡因 不循邪妄 常行正眞 粃糠兮富貴 甲胄兮仁義 況須參玄得眞 自然換骨淸神 體不是火風地水 心亦非緣慮垢塵 沒縫塔中燈燃不夜 無根樹上花發恒春 風磨白月兮誰病誰藥 雲合靑山也何舊何新 一道通方爲聖賢之所履 千車共轍故古今而同進 사람 사람. 업을 따라 그 몸을 받네. 괴로움과 즐거움은 선함 악함의 인과로다. 사악함 망녕됨 따르지 말고 언제나 바르고 참됨을 행하라. 부귀라 하는 것 쌀겨와 같다면 인의라 하는 것은 갑옷과 투구로다. 하물며 오묘한 이치 깨쳐 참됨 얻으면 저절로 바탕이 바뀌고 정신도 맑아지리. ..
14. 놀이하는 인간, 잡체시의 세계 1. 글자로 쌓은 탑 啥豆巴 滿面花 雨打浮沙 蜜蜂錯認家 荔枝核桃苦瓜 滿天星斗打落花 뭐지 콩이야. 얼굴 가득한 꽃 모래밭 빗방울 자국. 꿀벌이 제 집인 줄 알겠네. 여지 열매와 복숭아 씨, 쓴 외 온 하늘의 별들이 지는 꽃잎 때렸나. 이것은 중국 사천 사람들이 곰보를 놀리는 노래이다. 한 글자에서 차례로 한 글자 씩 일곱 자까지 늘여 나갔다. 각 구절의 끝은 같은 운자를 쓰는 면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중국음으로 읽어보면 그 자체로 매우 유쾌한 절주를 형성한다. 처음 무얼까? 하는 의문을 던져 놓고, 바로 콩이지 뭐야 하고 받는다. 다시 그 콩은 얼굴에 핀 꽃을 말하는데, 모래밭에 빗방울이 떨어진 형상과 같다. 벌집 같은 그 모습에 꿀벌도 제 집인양 착각할 ..
11. 하늘은 재주 있는 자를 시기한다② 성여학(成汝學)은 시재(詩才)가 높아 일세에 대적할 사람이 적었는데도 늦도록 벼슬 한자리 못했다. 양경우(梁慶遇)의 『제호시화(霽湖詩話)』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가 일찍이 그의 집에 왕래한 적이 있었는데, 보면 늘 찢어진 옷에다 찌그러진 갓을 쓰고 있었으며, 귀밑머리는 더부룩하고 머리칼은 하얗게 세어 홀로 한 칸의 서재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정말로 한 세상의 곤궁한 선비였다. 시가 능히 사람을 궁하게 한다고 하는 말은 아마도 성여학 때문에 나온 말인가 싶다. 余嘗往來其家, 每見其破衣矮巾, 滿鬢衰髮, 獨依一間書齋, 盡日授書童子, 眞一世之窮士. 詩能窮人者, 殆爲成敎授而發也. 그의 시에 보면 다음과 같다. 露草蟲聲濕 風枝鳥夢危 ..
4. 하늘은 재주 있는 자를 시기한다 나식(羅湜)은 시사(時事)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과거를 보지 않고 스스로 자취를 감추는데 힘썼다. 그러나 정미년에 벽서(壁書)의 화가 일어나자 그의 형 나숙(羅淑)과 함께 화를 당했다. 일찍이 역귀를 쫓는 소리를 듣고 시를 지었다. 儺鼓鼕鼕動四閭 역귀 쫓는 북소리 온 마을에 울리니 東驅西逐勢紛如 이리저리 쫓는 소리 그 형세 어지럽다. 年年聞汝徒添白 해마다 들었어도 흰 머리만 늘었구나 海內何曾一鬼除 나라 안의 한 귀신을 제거함 있었던가. 구나(驅儺)의 의식을 묘사했는데, 해마다 그렇듯 열심히 역귀를 쫓았건만 정작 없애야 마땅할 나라 안의 한 귀신을 몰아내지 못해, 그 근심으로 흰 머리만 날로 늘었을 뿐이라고 하였다. 4구에서 말한 ‘나라 안의 한 귀신’은 구체적으로 가..
9. 대궐 버들 푸르른데③ 이튿날 권필은 혹독한 형벌로 인해 들것에 실려 동대문을 나섰다. 그는 평소 몸이 약했던 데다 상처가 심해 바로 발행하지 못하고 동대문 밖 민가에 머물고 있다가 벗들이 권하는 막걸리를 마시고 장독(杖毒)이 솟구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의 시참(詩讖)이 전해진다. 처음 민가에 머물 때 주인 집 문짝에 시가 한 수 써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三月將盡四月來 삼월도 다 가고 사월이 오려는데 桃花亂落如紅雨 복사꽃만 붉은 비인 양 어지러이 떠지네. 勸君更進一盃酒 그대에게 한 잔 술 다시금 권하노라 酒不到劉伶墳上土 술도 유령(劉伶)의 무덤 위에는 이르지 못하리니. 그런데 시를 써놓은 사람이 첫 구의 ‘권(勸)’을 ‘권(權)’으로, 2구의 ‘유(劉)’를 ‘유(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