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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122. 반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122. 반

건방진방랑자 2020. 4. 1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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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반간(反間)

거짓으로 적국 사람이 되어 적정을 탐지하여 본국에 알리거나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고사성어다.

 

반강(潘江)

()과 반()은 모두 진() 나라 때 문장(文章)이 당세에 으뜸이었던 육기(陸機)와 반악(潘岳)을 가리키는데, () 나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육기의 문재는 바다와 같고, 반악의 문재는 강과 같다[陸文如海 潘藻如江].” 한 데서 온 말이다.

 

반경(半鏡)

() 나라 서덕언(徐德言)이 진 후주(陳後主)의 매() 낙창공주(樂昌公主)에게 장가들었는데, 그때 난리가 나서 서로 보호하기 어렵게 되자, 서덕언이 아내와 헤어지면서 말하기를 당신 같은 재색(才色)으로는 나라가 망하면 반드시 권호가(權豪家)로 들어가게 될 것인데, 우리의 정연(情緣)이 서로 끊어지지만 않으면 다시 서로 만나기를 바라노니, 의당 신표가 있어야겠소.” 하고, 거울 하나를 반으로 쪼개서 한 쪽씩 나누어 가졌는데, 뒤에 과연 그 거울로 인하여 다시 서로 만나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 인용: 薛氏女

 

반경환원(半鏡還圓)

사랑하는 남녀(男女)가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서덕언(徐德言)이 난리를 만나, 아내인 낙창공주(樂昌公主)와 서로 헤어지면서 후일의 신표로 삼기 위해 둥근 거울을 반으로 쪼개어 각각 한 조각씩 소지했다가, 난리가 끝난 후에 과연 그 거울을 가지고 서로 다시 결합하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반계(磻溪)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이 낚시하다가 주 문왕(周文王)을 만난 곳이다.

 

반계곡경(盤溪曲徑)

소반같이 좁은 시내와 꾸불꾸불한 지름길. 정당한 방법을 취하지 않고 옳지 않은 수단을 써서 억지로 일을 한다는 뜻이다.

 

반계섬궁(攀桂蟾宮)

과거에 급제(及第)하였다는 뜻이다. 섬궁은 달을 말한다. () 나라 이래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섬궁에서 계수나무 가지를 꺾었다.’고 표현하였다.

 

반계수(磻溪叟)

태공망 여상(呂尙)을 말한다. 문왕(文王)이 반계에 와서 여상을 만났다고 한다.

 

반계지수(磻溪之叟)

반계의 늙은이는 곧 반계에서 낚시질하던 강태공(姜太公)을 말한다. 강태공은 낚시질이나 하며 은거하다가 80세가 다 되어서 주() 나라에 등용되어 무왕(武王)을 도와 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사기(史記)卷三十二

 

반계직침(磻溪直針)

반계는 섬서성(陝西省) 보계현(寶溪縣)에 있는 위수(渭水)로 흘러드는 냇물. ()여상(呂尙)이 여기서 낚시질하다가 문왕(文王)을 만났다.

 

반고(反顧)

돌이켜 보다.

 

반곡(盤谷)

반아(盤阿)와 같은 말로, 보통 은거지를 말한다. 시경(詩經)위풍(衛風) 고반(考槃)

골짜기 이름인데, 지금 하남성(河南省) 제원현(濟源縣) 북쪽으로서 당() 나라 이원(李愿)이 반곡에 은거(隱居)하러 갈 때 한유(韓愈)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라는 유명한 글을 지었는데, 도통(道統)과 학()의 노정(路程)을 서술한 명문이다.

 

반골(反骨)

뼈가 거꾸로 되어 있다는 말로, 모반을 뜻하는 고사성어다. / 인용: 반골기질의 허균과 그를 도와준 사람들, 반골기질의 허균을 비판한 홍만종

 

반공(班公)

칠인반(七人班), 즉 죽림칠현(竹林七賢)의 반열에 있는 분이라는 뜻으로, () 나라 시인 나은(羅隱)의 시 기우성왕간의(寄右省王諫議)대궐 뜨락 향초들 시든 것을 보았는데, 이젠 또 수레 몰고 칠인의 반열로 가시는가[看却金庭芝朮老 又驅車入七人班].”라는 표현이 있다.

 

반과(飯顆)

이백(李白)이 반과산(飯顆山)에서 두보(杜甫)를 만나 희롱삼아 지은 시에, “반과산 앞에서 두보를 만나니, 머리엔 벙거지 쓰고 해는 한낮이로구나. 묻노니 어찌하여 저리 너무 여위었노, 전부터 시 짓기 괴로워서 그리 된 게지[飯顆山前逢杜甫 頭戴笠子日亭午 借問爲何太瘦生 爲被從前作詩苦].” 하였다.

 

반과보(飯顆甫)

이백(李白)희증두보시(戲贈杜甫詩에 반과산 마루에서 두보를 만나니, 머리에 삿갓을 썼는데 해는 한낮이다[飯顆山頭逢杜甫 頭戴笠子日正午].”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반과산(飯顆山)

반과는 밥을 말한 것인데, 중국 장안(長安)에 반과산이 있다.

이백(李白)두보(杜甫)가 반과산(飯顆山)에서 만나 이백이 시를 지어 주기를, ‘반과산 앞에 두보를 만나니 머리에 삿갓을 썼는데 해는 한낮이었네. 묻노라, 무엇 때문에 그토록 여위었나, 모두 종전에 시를 애써 지은 까닭이로다.’ 하였다.

 

반궁(泮宮)

성균관(成均館)의 별칭이다.

제후(諸侯)의 학궁(學宮). 시경(詩經)노송(魯頌) 반수(泮水)즐거운 반수(泮水)에 잠깐 그 미나리를 캐었노라.” 했는데, 그 주에 반수는 반궁(泮宮)의 물이다. 제후의 학궁을 반궁이라 하니, 동ㆍ서ㆍ남방에 물이 있어 반벽(半壁)과 같다.” 하였다.

 

반근(盤根)

뿌리와 가지가 뒤엉키듯(盤根錯節) 복잡하게 얽혀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가리킨다.

 

반근착절(盤根錯節)

걸출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어렵고 복잡한 상황을 말한다. 소식(蘇軾)걸탁용임예찰자(乞擢用林豫札子)라는 글에 반근착절의 상황에서 그를 한번 시험해 보면, 분명히 걸출한 재능(利器)을 드러내 발휘할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반근착절(盤根錯節)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마디. 얼크러져 매우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세력이 단단하여 흔들리지 않는 일, 몹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반남(潘南)

관향(貫鄕)이 반남인 박정(朴炡)을 가리킨다.

나주(羅州)의 속현이다.

 

반남자(潘南子)

반남 박씨(潘南朴氏)인 박정(朴炡)을 가리킨다.

 

반노(反魯)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내가 위()에서 노()로 되돌아온 후에 비로소 악()이 바로잡아져서 아()와 송()이 각기 제자리를 잡았느니라[吾自衛反魯, 然後樂正, 雅頌各得其所].” 하였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반대조삼(鞶帶遭三)

주역(周易), “혹 반대(鞶帶)를 주나 아침결에 세 번 끄르도다.”는 말이 있다. 반대는 큰 가죽띠. 정의(正義), “만일 호의(好意)로 반대를 주면 받아서 길이 보유(保有)함직하거니와, 만일 송사(訟事)로 이겨 얻었으면 비록 반대를 주었더라도 끝내 오래지 못할지니, 하루아침에 끝나는 사이에 세 번이나 끌러 벗길지 모른다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다.

 

반도(蟠桃)

동해(東海)의 선경(仙境)에 있다는 큰 복숭아인데, 두보(杜甫)의 고우시(苦雨詩)나는 쇠하여 물에 뜬 허수아비 같으니 반도가 있는 동해로 건너가고 싶네[吾衰同泛梗 利涉想蟠桃]”라고 하였다. 두소릉집(杜少陵集)卷一

선과(仙果). 연감유함(淵鑑類函)동해에 도색산(度索山)이 있고 그 산에 큰 복숭아 나무가 있는데, 이것이 반도이다.” 했고, 한무고사(漢武故事)서왕모(西王母)가 복숭아 7개를 내어놓고 두 개는 자기가 먹고 5개는 무제에 주었는데, 무제가 그 씨를 남겨 심으려고 하자, 서왕모가 이 복숭아는 3천 년 만에 한 번 꽃이 피고 3천 년 만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 지금까지 이 복숭아가 세 번 익었는데, 동방삭이 세 번 훔쳐먹었다.’ 했다.” 하였다.

 

반도결실(蟠桃結實)

재주를 지니고 있으면 언젠가 때가 온다는 뜻이다.

 

반돈(槃敦)

고대 제후들이 회맹할 때 쓰던 제기이다. ()은 피를 담았고 돈()은 음식을 담았다. / 인용: 大賈(이조원)

 

반동(反同)

고려 말기에 승도(僧徒)들이 권세가의 서장(書狀)을 빙자하여 주군(州郡)에서 받아들이던 쌀과 베를 말한다.

 

반두(礬頭)

산수(山水)를 그리는 법. 산 위에 조그만 돌덩이가 무더기를 이룬 것을 반두라 한다. 철경록(輟耕錄)寫山水訣

 

반랑(潘郞)

() 나라 반악(潘岳)을 가리킨다. 무제(武帝)가 적전(籍田)에 임하여 친히 밭을 갈 때 적전부(籍田賦)를 지어 천하에 문명(文名)을 떨쳤다. 진서(晉書)55

 

반랑고(潘郞苦)

반랑은 진() 나라 때 시인 반악(潘岳)을 지칭한 말로, 그가 젊어서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반악은 중년에 백발이 되었는데, () 나라 사술조(史述祖)의 제천악백발(齊天樂白髮)이란 사(), “가을바람이 일찍 반랑의 귀밑털에 들어가니, 이처럼 희끗희끗한 머리에 문득 놀라노라.” 하였다.

 

반랑기려(潘閬騎驢)

() 나라 시인 반랑(潘閬)의 소요집(逍遙集)허공 속에 꽂혀 있는 삼봉이 너무 좋아, 머리 돌려 쳐다보다 당나귀 거꾸로 타게 됐네. 서로들 덩달아 크게 웃는 웃음소리, 여기에다 집 옮겨 오래오래 살까 보다[高愛三峯揷大虛 回頭仰望倒騎驢 傍人大笑從他笑 終擬移家向此居].”라는 시가 있다.

 

반랑도기려(潘閬倒騎驢)

() 나라 시인 그는 섬서(陝西)의 화산(華山)의 경치를 몹시 사랑하여 시를 짓기를, “화산의 삼봉(三峯)이 공중에 솟은 것을 사랑하여 머리를 쳐들고 바라보느라고 나귀를 거꾸로 탔네[高愛三峯揷太虛 昻頭吟望倒騎驢].”

 

반랑삼봉(潘閬三峯)

삼봉은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화산(華山)의 연화봉(蓮華峯)ㆍ모녀봉(毛女峯)ㆍ송회봉(松檜峯)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은둔했던 선인(仙人) 반낭은 파리한 나귀를 거꾸로 타고 산천의 아름다움을 구경했다 한다.

 

반랑삼봉유(潘閬三峯遊)

반낭은 송() 나라 때 사람으로 시문(詩文)에 능하였는데, 일찍이 화산(華山)의 삼봉(三峯)을 유람하였다 한다.

 

반랑우직년(潘郞寓直年)

32세를 말한다. () 나라 반악(潘岳)추흥부(秋興賦)내 나이 32세 때 벌써 머리가 희끗해졌는데, 그때 태위연(太尉掾) 겸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으로 산기성(散騎省)에서 숙직을 하고 있었다.” 하였다.

 

반랑이모(潘郞二毛)

반랑은 진() 나라 때 문장가인 반악(潘岳)을 가리키며 이모는 머리털이 희어진다는 뜻이다. 그의 추흥부(秋興賦)서문에 내 나이 서른두 살 때부터 희끗희끗 백발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온다. 문선(文選)13

 

반령(潘令)

일찍이 하양 영(河陽令)을 지냈던 진() 나라의 문장가 반악(潘岳)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록(班祿)

목축을 하던 재산.

 

반뢰수(畔牢愁)

() 나라 양웅(揚雄)굴원(屈原)이소경(離騷經)에 근본하여 지은 문장(文章)의 이름이다.

 

반룡(攀龍)

용의 수염을 잡고 올라간다는 말로, 명망이 있는 사람에게 붙어서 공명(功名)을 취한다는 뜻이다. 전설상의 제왕인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을 주조하여 완성하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황제를 태우고 승천하였는데, 이때 신하와 후궁 70여 명이 용을 타고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반룡(蟠龍)

진흙 속에 서리고 있는 용. 사람의 출세 이전을 비유한다.

 

반룡부봉(攀龍附鳳)

용과 봉은 임금의 비유인데, ()나라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 연건(淵騫)용 비늘을 부여잡고 봉황의 날개에 붙는다[攀龍鱗 附鳳翼].”에서 나온 말로, 조정에 들어가 임금에게 의지하여 공적을 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반린부익(攀鱗附翼)

처음 창업(創業)하는 제왕(帝王)에게 붙어서 부귀(富貴)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반마(盤馬)

말에 올라타고 회선(廻旋)하는 것. 곧 무술을 연마하는 일이다. 위서(魏書)』 「내대천전(來大千傳)대천이 항상 어개(御鎧)를 입고 대궐 앞에서 반마할 때면 감탄하지 않은 조신(朝臣)이 없었다.” 하였다.

 

반마(班馬)

한서(漢書)의 작자 반고(班固)사기(史記)의 작자 사마천(司馬遷)의 합칭으로 명문 사가들이다.

 

반마원명추(班馬怨鳴騶)

함께 동참하여 즐기지 못하는 외톨이 신세를 탄식한 말이다. 반마(班馬)는 대열에서 이탈하여 홀로 된 말을 의미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襄公 18年 有班馬之聲 齊師其遁 注

 

반맹견(班孟堅)

맹견은 후한의 역사가인 반고(班固)의 자. 그는 9세에 글을 지었고 아버지 표()의 유지를 받들어 한서(漢書)를 완성했으며, 백호통의(白虎通義)를 찬진(撰進)했다.

 

반면(半面)

잠깐 동안 서로 만난 것을 말한다라는 말이다.

 

반면장(半面粧)

서비(徐妃)는 양 원제(梁元帝)의 비()로 이름은 소패(昭佩)인데, 원제가 한 눈이 애꾸눈이었으므로, 반면(半面)에만 화장(化粧)을 하고 임금을 맞이했다가 임금의 노염을 샀다. 그 뒤에 그녀는 임금의 근신(近臣)과 음통(淫通)하였다.

 

반면지분(半面之分)

얼굴을 반만 아는 사이. 서로 알아는 보지만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 사이 / 유의어: 반면지식(半面之識)

 

반명(盤銘)

목욕반에 새겨진 명()이란 뜻으로, 고대 중국 () 임금의 반명을 말한다. 탕 임금의 반명에는 진실로 어느 날 새롭게 했거든 날마다 새롭게 하고, 다시 계속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하였다. 대학(大學)2

 

반몌공련이(反袂空漣洏)

춘추(春秋)의 애공(哀公) 14년 조()서쪽으로 사냥을 나가 기린을 잡았다[西狩獲麟]”는 내용이 있는데, 그 주()공자(孔子)는 이것을 보고 기린은 성왕(聖王)이 나오면 나타나는 상서로운 짐승인데, 나쁜 세상에 나와 잡혔으니, 나의 도가 곤궁하다.” 하고 옷소매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 인용: 山有花女歌(최성대)

 

반모(斑毛)

호피를 두고 한 말이다.

 

반모욕파(潘毛欲皤)

() 나라 반악(潘岳)32세 때부터 백발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진서(晉書)』 「심악전(潘岳傳)

 

반목질시(反目嫉視)

눈을 흘기면서 밉게 봄.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는 눈으로 쳐다봄.

 

반묘방당(半畝方塘)

주희(朱熹)관서 유감(觀書有感)’이라는 칠언 절구를 말한다. 참고로 그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반 이랑 네모진 못 거울 하나 펼쳐져서, 구름 그림자 하늘 빛 서로 어울려 배회하네. 묻노니 어떡하면 저처럼 맑은가, 근원의 샘물 콸콸 쏟아져 내리기 때문일세[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

 

반문농부(班門弄斧)

노반의 문 앞에서 도끼를 자랑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실력을 생각지 않고 당치않게 덤비는 것을 말한다.

 

반반(媻媻)

가고 오고 함, 왕래함

 

반반(盼盼)

() 나라 상서(尙書) 장건봉(張建封)의 첩인데, 가무와 시를 잘하였다. 장 상서가 죽은 뒤에 반반이 십 년이 넘도록 개가하지 않으니 백거이(白居易)가 시를 보내어 왜 따라 죽지 않느냐고 물었다. 반반이 울면서 첩이 죽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우리 남편이 첩을 사랑하여 따라 죽게 했다 하면 깨끗한 덕에 누가 될까 염려해서였다.”고 말하고 백거이의 시를 화답한 후 열흘을 먹지 않다가 죽었다 한다. 전당시화(全唐詩話)

 

반반(半半)

무엇을 절반으로 나눈 각각의 부분

 

반반(斑斑)

물건이 고르게 잘 섞인 모양, 눈물 자국이 점점이 남아 있는 모양

 

반반(反反)

신중하고 침착함, 되풀이 하여 익힘, 순수히 수행하는 모양

 

반백(攀栢)

() 나라 왕부(王裒)의 부친이 사마소(司馬昭)에게 살해되자, 왕부는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무덤에 엎드려 절을 하고는 옆의 잣나무에 매달려 울부짖었는데, 나무에 눈물이 흘러 그 나무가 말라죽었다 한다. 진서(晉書)』 「효우전(孝友傳)王裒

 

반복(反復)

주역(周易)』 「복괘(復卦)에서 복괘의 일양(一陽)이 생()하는 것을 두고 이르기를 그 도를 반복하니 7일 만에 되돌아온다[反復其道 七日來復].” 한 데서 온 말이다.

 

반부(攀附)

반룡부봉(攀龍附鳳)의 준말로, 용의 비늘을 끌어 잡고 봉의 날개에 붙는다는 뜻인데, ()하여 영주(英主)를 섬겨 공명(功名)을 세우는 비유로 쓰인다.

 

반부담(半負擔)

짐을 반쯤 실은 말 등에 안장 없이 사람이 걸터 앉는 것. 즉 짐을 반쯤 싣고 사람이 타는 것을 말한다.

 

반비보보(潘妃步步)

남제(南齊)의 동혼후(東昏侯) 소보권(蕭寶卷)이 땅에 황금 연꽃을 깔아 놓고 총비(寵妃)인 반옥아(潘玉兒)에게 밟고 가게 하면서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누나[步步生蓮花].”라고 일컬었던 고사가 전한다. 남사(南史)齊紀下 廢帝東昏侯

 

반빈(潘鬢)

() 나라 때 반악(潘岳)의 살쩍. 반악의 추흥부(秋興賦)서에 내 나이 32세에 비로소 이모(二毛)가 나타났다.” 하였는데, 그 주에 이모는 머리에 흰 털이 나서 두 빛깔이 된 것을 말한다.” 하였으므로, 이는 곧 반악의 살쩍이 희어졌다는 뜻이다.

 

반사조(潘師朝)

() 나라 강주(絳州) 사람. 그가 만든 강첩(絳帖)은 각첩(閣帖)을 토대로 하고 기타의 법첩(法帖)으로 보강한 것이다.

 

반산(飯山)

() 나라 이백(李白)두보(杜甫)를 조롱하여 비유한 말이다.

 

반산봉두보(飯山逢杜甫)

이백(李白)이 반과산(飯顆山)에서 두보(杜甫)춘일회이백(春日懷李白)라는 시로써 서로 화답하였다.

 

반산청수(飯山淸瘦)

() 나라 때 장안(長安) 부근에 있던 산인 반과산(飯顆山)을 말한다. 이백(李白)이 반과산에서 두보(杜甫)를 만나 두보가 고심하면서 시를 짓느라 삐쩍 마른 것을 보고 기롱하였다.

 

반상막의지석륵(反相莫疑知石勒)

옛날 진() 나라 때에 오호(五胡) 종족들이 중국에 들어와 큰 난리를 꾸몄는데, 그 전에 왕연(王衍)이란 사람이 갈()족인 남의 노예로 있는 석륵(石勒)이란 자를 보고, 그에게 반역의 상()이 있으니, 미리 처치하지 아니하면 후일에 문제가 되리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 그 후에 과연 석륵은 반란군에 참여하여 크게 출세하여 중국 북방을 모두 점령하고 조왕(趙王)이라고 자칭하였었다. 그런 것이 당 나라 현종 때에도 현종이 안녹산을 신임하고, 그때의 정승인 양귀비의 사촌 양국충(楊國忠)이란 자를 정승으로 등용하였는데, 양국충은 원래가 똑똑하지도 못한 깡패였으므로 안녹산이 항상 업신여겼다. 그래서 양국충은 현종에게 안녹산이 반역할 것이니 빨리 처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하니, 현종은 석륵이 반역할 것을 알았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다. 그까짓 안녹산이 무슨 힘으로 반역을 하며 또 내가 그처럼 신임하는데 어찌 딴마음을 먹겠느냐 하고서, 듣지 않았다가 후일에 큰 변란을 당하였다.

 

반상서열(班常序列)

양반과 상민의 서열.

 

반생(班生)

서역(西域)30년 동안이나 진수(鎭守)하여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진 한() 나라의 장군 반초(班超)를 가리킨다.

 

반생(潘生)

() 나라의 문장가 반악(潘岳)으로, 하양 영(河陽令)을 거쳐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을 전전하였다. 진서(晉書)55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官序潘生拙 才名賈傅多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20 秋日寄題鄭監湖上亭

 

반생랑서(半生郞署)

() 나라 때 연로(年老)하도록 중랑서장(中郞署長)으로 있었던 풍당(馮唐)을 말하는데, 사람의 기구한 운명을 말한다.

 

반생불자각(半生不自覺)

법화경(法華經)어떤 장자(莊子)가 아들의 옷에 값을 따질 수 없는 매우 귀한 보배 구슬을 넣어 주었는데, 이 아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구걸하며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생지(班生志)

후한(後漢) 반초(班超)가 붓을 잡고 베껴 쓰는 일을 하며 모친을 봉양하다가, “대장부라면 부개자(傅介子)장건(張騫)처럼 이역(異域)에 나가서라도 공을 세워 제후(諸侯)가 되어야 마땅하지, 어찌 붓만 잡고서 긴 세월을 그냥 보내서야 되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서역(西域)에 사신으로 나가 큰 공을 세운 뒤 정원후(定遠侯)로 봉해진 고사가 있다. 동관한기(東觀漢記)班超

 

반생투필(班生投筆)

후한(後漢) 때의 장수 반초(班超)가 관청의 대서(代書) 일을 하며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다가 붓을 던지며 탄식하기를 대장부가 별다른 지략(智略)이 없으면, 그래도 부개자(傅介子)장건(張騫)처럼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가 된 일이라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서역(西域)의 사신으로 가 큰 공을 세워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던 고사가 있다. 후한서(後漢書)』 「반초전(班超傳)

 

반선계(攀詵桂)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에 오른 것을 절계(折桂)라 하는데, 선계(詵桂)는 곧 계지(桂枝)의 별명이다.

 

반선지희(半仙之戲)

그네 뛰는 것을 이른다. 당 현종(唐玄宗) 한식일(寒食日)이면 궁중에서 그네를 뛰게 하여 이를 보고 즐기었는데, 현종이 그 그네 뛰는 것을 반선의 놀이(半仙之戲)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반설조(反舌鳥)

새 이름으로, 혀를 잘 굴려 여러 가지로 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전하여 소인의 참언(讒言)에 비유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의하면, 반설조는 봄에 울다가 5월이 되면 소리가 없어진다고 하였으므로, 소인의 참언도 때가 지나면 저절로 사라짐 비유한다.

 

반세공명포경간(半世功名抱鏡看)

훈업은 자주 거울을 본다[勳業頻看鏡].”두보(杜甫)의 시()가 있다. 공명(功名)은 언제 이룰지 모르고 늙어만 간다는 뜻이다.

 

반송사(伴送使)

중국의 사신을 호송하던 임시 벼슬을 말한다. / 인용: 皇華集序(이정구)

 

반수(般倕)

고대의 유명한 목수인 노반(魯般)공수(工倕)를 말한다.

()은 노() 나라 공수반(公輸般)이고, ()는 황제(黃帝) 때 사람으로 모두 교장(巧匠)이다.

중국 상고 때의 건축가인 공수반(公輸班)과 공공(共工)을 가리킨다. ()은 반()과 통용한다.

 

반수(泮水)

반궁(泮宮)과 같은 것으로 태학관을 말한다. () 시대 제후의 국학(國學)으로 향사(饗射)를 익히던 곳이다. 태학(太學) 전반(前半)의 주위에 물을 두른 것이므로 반수(泮水)라 한다.

 

반수채근(泮水採芹)

반궁은 제후의 학궁(學宮)으로 곧 성균관(成均館)을 가리키는데, 시경(詩經)노송(魯頌) 반수(泮水)즐겁다 여기 반수에서 잠깐 미나리를 캐노라.” 하였다.

 

반숙(伴宿)

출상(出喪)하기 전날의 밤샘(을 하다)

동반하여 하룻밤 묵다 / 인용: 有客行(성해응)

 

반순비(反脣狒)

아프리카 등지에 서식하는 비비원숭이는 발 모양이 가는 쪽의 반대 방향으로 생기었고, 웃으면 입술이 치켜올라가 눈을 가리는데, 성질이 흉포하여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반식(伴食)

당 나라 노회신(盧懷愼)이 요숭(姚崇)과 같이 재상이 되었으나, 재주가 요숭보다 못함을 스스로 알고 항상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지 아니하니, 사람들이 그를 밥먹는데 짝하는 재상이라[伴食辛相].” 하였다.

 

반식자우환(半識者憂患)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도리어 근심거리가 된다.

 

반식재상(伴食宰相)

재능이 없으면서 유능한 재상 옆에 붙어서 정사를 처리하는 재상을 말한다.

 

반신반의(半信半疑)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한다.

 

반심(班心)

옛날 어사대(御史臺)의 아전들이 어사(御史)가 서는 곳을 지칭한 말이다.

 

반씨빈(潘氏鬢)

나이 30세 전후에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짐을 비유한 말이다. 반씨(潘氏)는 곧 진() 나라 때의 문장가인 반악(潘岳)을 가리키는데, 그의 추흥부(秋興賦)내 나이 삼십이 세에 처음으로 이모(二毛)를 보았다.” 한 데서 온 말이다.

 

반씨천방(潘氏千房)

천방은 수많은 석류(石榴) 알을 가리킨 것으로, () 나라 반악(潘岳)이 석류를 두고 지은 한거부(閒居賦)수많은 석류 알이 한 꼭지에 매달려 열 개가 모두 똑같구나[千房同蔕 十子如一].”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반악(潘岳)

() 나라 중모(中牟) 사람으로 아름다운 자태와 용모를 지녔으므로, 낙양(洛陽) 거리를 거닐면 부녀자들이 과일을 던지면서 유혹하였다 한다. 진서(晉書)卷五十五

 

반악빈(潘岳鬢)

반악(潘岳)은 진() 나라의 문장가로, 인물이 잘나서 풍채 좋기로 유명하였는데, 그는 32세에 귀밑머리가 세기 시작하였다 한다. 그의 추흥부(秋興賦)余春秋三十有二 始見二毛라는 말이 있다.

 

반악삼도원(潘岳三桃苑)

반악은 진() 나라 사람으로 자()는 안인(安仁). 일찍이 하양(河陽)의 원이 되어 곳곳에 복숭아를 심었다. 삼도(三桃)는 후도(候桃)ㆍ앵도(櫻桃)ㆍ호도(胡桃)를 말하는데 그의 한거부(閑居賦)삼도는 앵도와 호도의 다른 종류를 표했다.” 하였다. 진서(晉書)』 「심악전(潘岳傳)

 

반악여(潘岳輿)

() 나라 반악(潘岳)한거부(閑居賦)모친을 가마에 모시고 수레에 태워, 멀리 기전(畿甸)을 유람하고 가까이는 집 뜰을 돌아다녔다[太夫人乃御版輿 升輕軒 遠覽王畿 近周家園].”라는 구절이 있다.

 

반악한거배판여(潘岳閑居陪板輿)

노모(老母)를 모시고 나들이를 간다는 말이다. 판여(板輿)는 노인용 가마를 뜻하는데, () 나라 반악(潘岳)한거부(閑居賦)太夫人乃御板輿 升輕軒遠覽王畿 近周家園이라는 구절이 있다.

 

반안인(潘安仁)

() 나라 시인 반악(潘岳). 그의 자가 안인(安仁)이다. 하양현(河陽縣)의 수령으로 있을 때 온 고을에다 도리(桃李)를 심었다.

 

반안현(潘安縣)

하양현의 별칭으로, 반악이 일찍이 하양의 현령이 되었는데, 반악의 자()가 안인(安仁)이었으므로, 이를 줄여서 반안이라고 하였으며, 드디어 하양현의 별칭으로 쓰여지게 되었다.

 

반앙(飯秧)

모내기 할 때 밥을 제공하고 품삯을 그만큼 감하는 것을 밥모(飯秧)라고 하였다.

 

반야주이학(半夜舟移壑)

사람의 죽음을 말한다. 만물의 변화를 주관하는 조물(造物)의 뜻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골짜기 속에 배를 숨겨두고는 안전하다고 여기지만 한밤중에 힘센 자가 등에 지고 달아나도 어리석은 사람은 알아채지를 못한다[夫藏舟於壑 謂之固矣 然而夜半 有力者 負之而走 昧者不知也].”라고 하였다. / 유의어: 반야학주이(半夜壑舟移)

 

반양(潘楊)

() 나라 때의 명사 반악(潘岳)이 양수(楊綏)의 고모에게 장가들었다는 것으로, 인척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한다.

 

반양(班揚)

후한(後漢) 때의 문장가인 반고(班固)와 전한(前漢) 때의 문장가인 양웅(揚雄)을 합칭한 말이다. 모두 큰 문장가들이다.

 

반양호(潘楊好)

서로 인척(姻戚) 사이가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 나라 때 반악(潘岳)의 아버지와 양중무(楊仲武)의 조부와의 사이는 일찍이 구교(舊交)가 있었는데, 또 반악의 아내는 바로 양중무의 고모였으므로, 반악이 양중무와 매우 친밀하게 지냈던 데서 온 말이다.

 

반엄(半掩)

반쯤 가리다.

 

반여(潘輿)

반악의 한거부(閑居賦)태부인(太夫人)을 판여(板輿)에 모시고서 멀리 경기(京畿) 지방을 구경하기도 하고 가까이 집 뜨락을 소요하기도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반여부동진(潘輿不動塵)

반악(潘岳)한거부(閑居賦), “태부인(太夫人)을 판여(版輿)에 모시고 구경하러 다닌다.”는 구절이 있다.

 

반여친연(潘輿親宴)

모친의 수연(壽宴)을 말한다. 반여는 진() 나라 반악(潘岳)이 모친을 모신 수레라는 뜻으로, 그의 한거부(閑居賦)모친을 푹신한 수레에 모시고서 멀리는 기전(畿甸)을 유람하고 가까이는 집안 뜨락을 돌아다닌다[太夫人乃御板輿 遠覽王畿 近周家園].”는 구절이 있다. 문선(文選)16

 

반연연산명(班掾燕山銘)

후한(後漢)의 장군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를 대파한 공적을 그의 연(), 즉 종사관(從事官)이었던 반고(班固)가 연연산(燕然山)에 새겨 지은 비문(碑文)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23 두헌전(竇憲傳)

 

반염(攀髥)

황제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애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을 주조하였다 한다. 그 솥이 완성되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황제를 태우고 올라갔는데 신하들과 궁인들이 따라서 올라간 자가 70여 명이었고 나머지 용의 몸을 직접 잡지 못한 신하들이 용의 수염을 잡았더니 용의 수염이 뽑혀 떨어지면서 황제의 활도 함께 떨어졌고 백성들은 그 활과 용의 수염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한다. 史記28 封禪書/ 인용: 夜遊唐城 贈先王樂官(최치원)

 

반와독수(盤渦獨樹)

급류와 외로운 나무.

 

반용세(攀龍勢)

용은 왕을 비유한 것으로, 왕의 신임을 얻어 큰 공을 세울 기회를 얻음을 말한다.

 

반우(飯牛)

소를 먹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제 나라 사람 영척(甯戚)이 불우하여 소를 먹였다. 제 환공(齊桓公)이 나옴을 알고 영척이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요순을 만나지 못해 무명옷 입고 소를 먹이니 긴긴 밤 언제나 밝아지나하니, 환공이 듣고 대화한 후 대부를 삼았다. 몽구중(蒙求中)

 

반우(盤杅)

음식을 담는 그릇. 둥그런 모양을 반(), 네모꼴을 우()라고 한다.

 

반우(反隅)

하나를 설명하면 그 다음을 미루어 안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擧一隅 不以三隅反則不復也라 하였다.

 

반우지지식(反隅之知識)

공자(孔子)의 말에, “한 귀퉁이를 들어 말하는 것은 듣건대, 세 귀퉁이로써 돌이켜 생각해 알아야 한다.” 하였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반원(攀轅)

선정(善政)을 베푼 수령이 떠날 때 백성들이 수레를 붙잡고서 못 가게 만류한다는 말이다.

 

반원(攀援)

올라가서 따르다.

 

반의(斑衣)

문명인이 입는 옷을 말한다.

색동옷으로, 노래자(老萊子)가 색동옷을 입고서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북당서초(北堂書鈔) 129권에,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세에 부모가 아직 살아 있었으므로 항상 색동옷을 입고서 어린아이 시늉을 하면서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하였다. / 인용: 李少婦詞(최경창)

 

반의시무훤위리(斑衣試舞萱闈裏)

어린애들처럼 노래자(老萊子)가 오색 옷을 입고 재롱을 부려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함을 말한다. 고사전(高士傳)노래자(老萊子)는 나이가 70인데도 오색 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며 자식의 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하였다.

 

반의애일(斑衣愛日)

반의(斑衣)는 나이 70에 색동 옷을 입고 재롱을 떨어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렸던 노래자(老萊子)의 고사를 가리키고, 애일(愛日)은 얼마 안 남은 어버이의 여생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반의염치(班衣染齒)

왜구(倭寇)를 가리키는 말이다. 왜인의 풍속이 아롱옷을 입고 이빨을 검게 물들인 데서 온 말이다.

 

반의지희(斑衣之戱)

노래자(老萊子)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논다는 말로, 어버이에게 효도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반의진동(斑衣秦童)

일본 사람이 아롱진 의복을 입는 것은 진시황(秦始皇)이 삼신산(三神山)에 불사약(不死藥)을 캐러 보낸 동남동녀(童男童女)가 입고 간 아롱진 옷을 본받았다는 말이다.

 

반이소(反離騷)

양웅(揚雄),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의 뜻이 슬퍼 그를 조문하는 뜻으로 지은 글이다.

 

반인(伴人)

신역(身役)이 없는 양인(良人)을 당상관(堂上官) 이상에게 주어 근수(根隨)로 부리게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반자(半刺)

도호부(都護府)의 통판(通判) 벼슬, 즉 판관(判官)을 가리킨다.

 

반자(半刺)

반자는 군수(郡守)의 보좌관, 즉 통판(通判)ㆍ장사(長史) 따위. 지방 장관에 속해 있는 관원을 총칭하는 말이다.

 

반작(反作)

조선후기 환곡(還穀)의 법이 문란해지자 아전들이 곡식은 나누어 주지도 않고 창고에 그냥 두고서 농간을 부려 이득을 취하는 것. 번질

 

반장(班匠)

공수반(公輸班)과 장석(匠石)을 합하여 일컬은 것으로, 모두 기예(技藝)에 뛰어났다.

 

반장(班張)

후한(後漢) 때의 반고(班固)와 장형(張衡)을 아울러 일컬은 것인데, 이들은 모두 문장과 사부에 뛰어났다.

 

반장군(班將軍)

함사반장군(頷似班將軍). 부귀(富貴)의 상()을 말한다. 반 장군(班將軍)은 동한(東漢) 때의 명신인 반초(班超). 그는 일찍이 상자(相者)에게 상을 보았더니 상자는 당신은 제비의 턱에 범의 목이니 만리후(萬里侯)에 봉해질 것이다.” 하였는데, 그는 그 후 과연 서역(西域)을 평정한 공로로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후한서(後漢書)班超列傳

 

반절(反切)

한자의 두 자음을 반씩 따서 한 음을 만들어 읽는 법이다. 예를 들면, ()자의 음은 무()과 분()을 합쳐 이 된다는 뜻으로 無分反또는 無分切이라고도 한다.

 

반정원(班定遠)

후한 명제(後漢明帝) 때의 반초(班超)이다. 서역(西域)50여 국을 항복받고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후한서(後漢書)卷七十七 반초전(班超傳)

 

반제(泮製)

반궁제술(泮宮製述), 곧 성균관에서 제술만으로 보이는 과시(科試).

 

반제매형(礬弟梅兄)

황산곡(黃山谷)의 수선화(水仙花)를 노래한 시()를 말하는 것이다.

 

반조(反照)

불가(佛家)의 말로 회광반조(回光返照)의 준말인데, 곧 자기의 본분(本分)을 돌아보아 아는 것을 말한다.

 

반중해(盤中醢)

() 나라 공갑(孔甲) 때에 상제(上帝)가 그에게 네 마리의 용을 선사하였는데, 용 한 마리가 죽자 사육사인 유루(劉累)가 남몰래 소금에 절여 젓을 담근 뒤 공갑에게 먹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좌전(左傳)昭公 29

 

반증(反證)

논어(論語)』 「술이(述而)한 귀퉁이를 언급해 주었는데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하지 못하면 다시 더 일러주지 말아야 한다[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반직(伴直)

두 사람이 당번으로 함께 숙직하는 것을 말한다.

 

반착(盤錯)

뿌리가 서리고 가지가 엉겨 있는 것처럼 복잡한 사안(事案)을 표현하는 말이다. 반근착절(盤根錯節)을 만나지 아니하면 잘 드는 연장(利器)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반근(盤根)은 오래 된 나무의 뿌리가 굴곡(屈曲)된 것이요, 착절(錯節)은 나무의 마디가 착잡한 것이다. 이 말은 어려운 고비를 당하여야 훌륭한 솜씨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반착기(盤錯器)

반착은 반근착절(盤根錯節)의 준말로, 복잡하게 얽힌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반천(半千)

5백 년을 이르는데, 5백 년 만에 한 번씩 현인(賢人)이 난다는 뜻에서, () 나라 때 원여경(員餘慶)의 스승 왕의방(王義方)이 원여경을 매우 훌륭하게 여기어 일찍이 그에게 이르기를 “5백 년마다 한 현인이 나오는 것인데, 그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고, 인하여 그의 이름을 반천으로 고쳤던 데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卷一百十二

 

반천제지(蟠天際地)

하늘을 따라 땅에 이르러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 또한 기세가 드넓고 큼을 형용한 말이기도 하다[謂從天到地無所不在. 亦用以形容氣勢博大] 장자(莊子)』 「각의(刻意)에서 위로는 하늘에 맞닿고 아래로 땅에 서려 있다[上際於天, 下蟠於地].’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 인용: 昭代風謠序(오광운)

 

반첩여(班倢伃)

한 성제가 조비연의 자제(子弟)를 총애하니, 반첩여는 박대받는 것을 알고서 彤弓(동궁으로 물러가 살며 환선시(紈扇詩)를 지어 스스로 슬퍼하였다. 그래서 뒷사람이 첩여원(婕妤怨)이라 하여 악부(樂府)에 편입시켰다.

한대(漢代)의 여류시인(女流詩人). 한 성제(漢成帝) 때 궁녀로 있으면서 왕의 총애를 받아 첩여(婕妤)가 되었다가 후에 조비연(趙飛燕)이 총애를 받게 되자, 참소를 당하여 장신궁(長信宮)으로 물러가 태후(太后)를 모시었다. 그는 장신궁에 있는 동안 시부(詩賦)를 지어 스스로를 슬퍼하였는데, ()가 매우 애처로웠다. 한서(漢書)卷九十七下 외척전(外戚傳)

 

반초(班超)

후한 때의 명장으로 일찍이 서역(西域)에 정벌을 나가 장군장사(將軍長史)ㆍ서역도호(西域都護) 등의 관직에 30여 년 동안 재직하면서 서역의 50여 나라들을 위무 안집(慰撫安集)하여 모두 한 나라에 귀순하도록 하였다. 봉호는 정원후(定遠侯)이다.

()나라 부풍(扶風) 안릉(安陵) 사람으로 자는 중승(仲升)인데, 명제(明帝) 영평(永平) 16(73)36인을 거느리고 서역에 사자로 나가 31년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50여 개의 군소 나라를 안정시켰는데, 그 공으로 벼슬이 서역도호(西域都護)에 이르고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후한서(後漢書)卷四十七 반초전(班超傳)

 

반초은(反招隱)

보통의 은자(隱者)와는 달리 저잣거리에 묻혀 사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왕강거(王康琚)의 시 반초은(反招隱)숲 속에 사는 이는 작은 은자요, 저잣거리에 사는 이가 바로 큰 은자로세[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라는 말이 나온다. 문선(文選)22

 

반초투필(班超投筆)

한나라의 반초(班超)가 관리 노릇을 하면서 글씨를 쓰다가 붓을 던지며, “대장부가 마땅히 만 리 밖에 나가서 공()을 세울 것이지 어찌 이런 것이나 쓰고 앉았으랴.” 하고 서역(西域)에 가서 공을 세웠다.

 

반추하처망륙랑(班騅何處望陸郞)

고악부(古樂府) 신현가(神弦歌) 명하동곡(明下童曲)육랑은 얼룩말을 타고 …… 문을 바라보고도 돌아오지 않는다[陸郞乘斑騅 …… 望門不欲歸].” 한 데서 온 말인데, 혹자는 여기의 육랑을 진 후주(陳后主)의 압객(狎客)인 육유(陸瑜)였다고 하나, 자세하지 않다.

 

반춘(班春)지방관(地方官)이 백성들에게 춘령(春令)을 반포하는 일을 가리킨다.

 

반측(反側)

일정하지 않다.

옆으로 눕고 뒹굴고 뒤집고 다시 옆으로 누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워서 몸을 이리 저리 뒤척임. 시경(詩經)주남(周南) 관저(關雎)/ 인용: 大寶箴(장온고)

 

반통(飯筒)

찐 찹쌀을 넣은 대나무통이다. () 나라 사람들이 굴원(屈原)을 애도하는 뜻에서 55일에 이것을 멱라연에 던져 그를 제사지냈다 한다. 속제해기(續齊諧記)

 

반통인(半通印)

한대(漢代)의 제도에서 승상(丞相)으로부터 영승(令丞)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정방형(正方形)의 인()을 사용하고, 색부(嗇夫) 등 말직들은 그것의 반분(半分)인 장방형(長方形)의 인을 사용했던 데서 온 말이다.

 

반포(反哺)

까마귀 새끼는 자란 뒤에, 어미 까마귀에게서 얻어먹은 만큼의 먹이를 다시 늙은 어미 까마귀에게 물어다 먹인다 하여, 까마귀의 별칭을 반포조(反哺鳥) 또는 효조(孝鳥)라 한 데서 온 말이다. 본초(本草) 자오부(慈烏部)까마귀가 처음 나면 60일 동안은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먹이고, 자라나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60일 동안 물어다 먹인다.” 하였다.

 

반포금(反哺禽)

새끼가 자란 뒤에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는 까마귀를 가리킨다.

 

반포조(反哺鳥)

까마귀

 

반포지효(反哺之孝)

도리어 먹이는 효도.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속설에서 온 말이다.

 

반포타방유(潘圃詫芳荽)

() 나라 때 문장가 반악(潘岳)한거부(閑居賦)좋은 곳에 거소(居所) 잡아 집을 짓고 못을 만들면……호유(胡荽)가 향내를 풍기리라.” 하였다. 진서(晉書)卷五十五 심악전(潘岳傳)

 

반함(攀檻)

한 성제(漢成帝) 때 주운(朱雲)이 영신(佞臣)의 목을 베라고 청했다가 크게 노한 성제로부터 참수(斬首)의 명을 받고 끌려나가면서도 난간을 잡고 놓지 않으면서 계속 직언을 하여(攀檻) 마침내 난간이 부서졌던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주운전(朱雲傳)

 

반형(班荊)

가시풀을 땅에 깔고 앉아서 이야기하여도 아무런 스스럼없는 사이, 즉 절친한 친구간을 말한다. () 나라의 오삼(伍參)과 채() 나라의 자조(子朝)가 친하게 지냈는데, 그의 아들들인 오거(伍擧)와 성자(聲子)도 서로 친하게 지냈다. 그 뒤에 오거가 정() 나라로 도망쳤다가 진() 나라로 들어가려고 하였는데, 성자 역시 진 나라로 가다가 정 나라 교외에서 둘이 만나 형초(荊草)를 펴고 길가에 앉아서 함께 초() 나라로 돌아가기를 의논하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襄公 26

 

반형언지(班荊言志)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오거(伍擧)가 정() 나라로 도망친 뒤, 친구인 성자(聲子)와 교외 들판에서 형초(荊草)를 깔고 앉아 고국에 돌아갈 것을 의논했던 고사가 있다. 춘추좌전(春秋左傳)襄公 26

 

반혼(返魂)

장사 지낸 뒤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 / 인용: 道康瞽家婦詞(정약용)

 

반혼단(返魂丹)

죽은 자를 살린다는 단약(丹藥).

 

반혼향(返魂香)

서쪽 바다 끝에 취굴주(聚窟洲)가 있고 그 위에 반혼수(返魂樹)가 있는데, 그 나무 뿌리를 솥에 고아서 즙을 낸 뒤 반혼향이라는 환약(丸藥)을 만들어 죽은 이의 코에 대면 기사회생(起死回生)한다는 전설이 있다. 술이기(述異記)卷上

 

반화총(班花驄)

오화총(五花驄). 말의 갈기털을 다섯 잎 꽃무늬 모양으로 다듬어서 장식한 말이다.

 

반화포(蟠花袍)

무인(武人)이 입는 것으로, 겹겹의 꽃모양을 넣어서 만든 겉옷을 말한다.

 

반후연함(班候燕頷)

부귀 겸전의 상모를 말한다. 반후(班侯)는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진 후한(後漢)의 명장 반초(班超)를 가리키는데, 어느 관상가가 반초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는 제비턱에 호랑이목(燕頷虎頸)이어서 일만리 후()를 봉할 상이요.” 하였는데 과연 서역(西域) 50여 나라를 평정하고, 그 공으로 서역도호(西域都護)가 되고 정원후에 봉해졌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반초전(班超傳)

 

반후종(飯後鐘)

세상 인심의 박함을 비유한 말이다. 왕정보(王定保)의 무언(撫言)() 나라 왕파(王播)가 젊어서 빈고(貧孤)하여 양주(揚州)의 혜조사(惠照寺)에 붙여서 중의 재찬(齋餐)을 얻어먹고 있을 적에, 중이 그를 싫어하여 재()를 파하고 나서야 종()을 치므로, 왕파는 시를 지어 중들의 식사 뒤에 울리는 종소리가 부끄럽다[慚愧闍梨飯後鍾]’고 했다.”는 고사이다.

 

반희(班姬)

반첩여(班倢伃)는 한 성제(漢成帝) 때의 궁녀. 성제의 사랑을 받았는데 조비연(趙飛燕)에게로 총애가 옮겨가자 참소당하여 장신궁(長信宮)으로 물러가 태후(太后)를 모시게 되었다. 이때 자신의 신세를 소용없는 가을 부채(秋扇)에 비겨 읊은 원가행(怨歌行)을 지었다. 한서(漢書)卷九十七 열녀전(列女傳)/ 유의어: 반희선(班姬扇)

 

반힐치(半黠癡)

어리석음과 영민함이 각각 절반씩이라는 뜻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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