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홍만종 (253)
건빵이랑 놀자
33.劉靜修百代人物 而以過江一賦疵之 靜修又有詩曰 臥榻而今又屬誰 乾坤回首見旌旗 路人爭指降王道 好似周家七歲兒 頗含譏諷 亦過江賦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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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총림(詩話叢林) 목차 홍만종(洪萬宗) 권1 권2 이규보(李奎報) 심수경(沈守慶) 백운소설(白雲小說) 견한잡록(遣閑雜錄) 이제현(李齊賢) 권응인(權應仁) 역옹패설(櫟翁稗說) 송계만록(松溪謾錄) 성현(成俔) 어숙권(魚叔權) 용재총화(傭齋叢話) 패관잡기(稗官雜記) 남효온(南孝溫) 이제신(李濟臣) 추강냉화(秋江冷話) 청강시화(淸江詩話) 김정국(金正國) 윤근수(尹根壽) 사재척언(思齋摭言) 월정만록(月汀謾錄) 조신(曺伸) 차천로(車天輅) 소문쇄록(謏聞瑣錄) 오산설림(五山說林) 김안로(金安老) 신흠(申欽)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산중독언(山中獨言) 청창연담(晴窓軟談) 권3 권4 이수광(李晬光) 김득신(金得臣) 지봉유설(芝峰類說) 종남총지(終南叢志) 유몽인(柳夢寅) 남용익(南龍翼) 어우야담(於于野談) 호곡만필(壺谷..
소화시평 책거리 목차 1. 소화시평과 함께 울고 웃던 1년 4개월여러 상황으로 진도가 수이 나가지 않다순간 순간이 알알이 박히다 2. 소화시평 정리를 끝마치다소화시평 스터디와 블로그정리 방향의 변화와 후기가 빠진 이유충실하게 보냈던 시간이여 인용 19년 글 임용 Life 상권 목차 하권 목차
2. 소화시평 정리를 끝마치다 예전에 5년 간 임용을 준비했지만 처절하게 실패했다. 한 번도 1차에 합격하지도 못한 채 꿈을 접었기 때문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해온 게 한문공부인지라 계속 도전을 했지만 그럴수록 절망감만 커져갔고 한문은 어렵고 지리한 학문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사라는 꿈을 포기한 순간 대안학교 교사가 되며 교사라는 꿈을 이루어주더라. 단재학교에서 6년 간을 근무했으니 6년 동안은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문은 전혀 보지 않게 됐다. 하지만 작년부터 다시 임용을 준비하기로 맘을 먹었고 그에 따라 다시 자연스럽게 한문을 공부하게 됐는데 6년 동안이나 놓았던 한문이 제대로 보일 리도 만무했고 자리에 앉아 공부한다는 게 그렇게 버거울 수가 없었다. ▲ ..
1. 소화시평과 함께 울고 웃던 1년 4개월 예전에 6박 7일 동안 대구 달성에서 출발하여 낙동강을 따라 서울로 돌아오는 자전거 여행을 했었다. 그 여행을 시작하며 기록을 남겼었다. 처음에 ‘삶이란 하나의 도화지에 자신의 색채로 그림을 그려가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순간순간 그린 그림들이 모이고 쌓여 그게 삶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계속 얘기했듯이 그런 순간순간의 그림들이 대단할 이유도, 뭔가 엄청난 의미를 지닐 필요도,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해 보여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작은 일일지라도 그 순간을 수놓으며 반복적으로 해나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떠나면서 난 그 여행을 ‘도화지에 한 획을 그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한 획을 긋는 것만으론 그림이 완성되지..
2분이란 시간에 왕소군과 의순공주를 담아내다 순발력 테스트식으로 2분 만의 시간 동안에 홍석기가 짓게 된 시가 바로 『소화시평』 권하 85번에 실려 있는 시다. 이 시는 기승전결의 일반적인 흐름을 따라 가지 않는다. 일반적인 흐름에서 전구(轉句)는 기구와 승구에서 전개한 시상을 완전히 뒤바꾸며 환기를 시키고 결구의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는 결구의 내용을 강화하기에 위해 1~3구까지 감정을 켜켜이 쌓아간다. 그래서 한 구 한 구 읽을 때마다 깊은 울분과 회한이 짙게 느껴지며 결구에 이르고 보면 그 감정이 제대로 폭발되는 것이다. 千秋哀怨不堪聞 천추토록 애절한 원망 차마 듣질 못하겠는데, 落月蒼蒼萬壑雲 지는 달이 희끄무레한데다 온 골짜기엔 구름까지 꼈네. 莫向樽前彈一曲 술잔 앞을 향하여 한 곡..
63. 점필재와 간이에 견주어도 될 시재를 지닌 장유의 시 張谿谷維, 文章圓暢馴熟, 爲一大家. 金淸陰序其集曰: “宣陵之世, 畢齋獨步, 穆廟之時, 簡易高蹈.” 蓋言谿谷文章, 可幷二公而爲三傑也. 其「贈畸庵」詩曰: “叢篁抽筍當階直, 乳燕將雛掠戶斜. 自笑蓬蒿張仲蔚, 平生不識五侯家.” 此可以見一斑而知虎豹之文. 해석 張谿谷維, 文章圓暢馴熟, 계곡 장유는 문장이 원만하고 트여 있으며 순하고 원숙하여 爲一大家. 한 명의 대가가 되었다. 金淸陰序其集曰: 청음 김상헌이 계곡의 문집에 서문을 쓰며 말했다. “宣陵之世, 畢齋獨步, “선릉의 시기엔 점필재가 독보적이었고 穆廟之時, 簡易高蹈.” 목릉(선조)의 시기엔 간이가 우뚝했다【고도(高蹈): 툭 일어섬, 특출남[崛起, 特出]】. 蓋言谿谷文章, 可幷二公而爲三傑也. 아마도 계곡의..
62. 밑바탕이 있는 시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feat. 조찬한) 大凡詩與文, 貴有淵源. 其所謂奇崛者, 淡雅者, 雖其才之不同, 而惟源深者, 欲奇而奇, 欲淡而淡. 趙玄洲纘韓, 平生爲詩, 奇怪險崛. 其詠玩瀑臺詩曰: “深藏睡虎風烟晦, 倒掛生龍霹靂噴.” 有捕龍蛇搏虎豹之勢, 至如「贈槐山守吳肅羽」詩, 則曰: “新燕不來春寂寂, 故人將去雨紛紛.” 殆平易淡雅, 絶無險截之態, 非其源之深博者, 能若是乎. 해석 大凡詩與文, 貴有淵源. 대체로 시와 문장은 연원이 있음을 귀하게 여긴다. 其所謂奇崛者, 淡雅者, 말했던 기이하고 우뚝한 것과 담백하고 우아한 것은 雖其才之不同, 비록 재주가 같지 않지만, 而惟源深者, 오직 연원이 깊은 사람이라면 欲奇而奇, 欲淡而淡. 기굴하려 하면 기굴해지고 담아하려면 담아해진다. 趙玄洲纘韓, 平生爲詩..
54. 이안눌의 축수연 시, 석주와 동악을 평가한 동명 沈判書輯, 乞養除安邊, 壽大夫人. 東岳席上賦一律, 其頷聯曰: “卿月遠臨都護府, 壽星高拱大夫人.” 文士李進見之, 歎曰: “眞六經文章也.” 余問東溟曰: “石洲ㆍ東岳詩誰優?” 東溟曰: “石洲甚婉亮, 東岳甚淵伉, 比之禪家, 石洲頓悟, 東岳漸修, 二家門路雖不同, 優劣未易論.” 해석 沈判書輯, 乞養除安邊, 판서 신집이 봉양을 구걸해서 안변부사를 제수 받았을 때 壽大夫人. 대부인의 축수연을 열었다. 東岳席上賦一律, 其頷聯曰: “卿月遠臨都護府, 壽星高拱大夫人.” 동악이 자리에서 율시를 지었으니 함련은 다음과 같다. 卿月遠臨都護府 경월은 멀리 도호부에 임했고 壽星高捧太夫人 수성은 높이 태부인을 받들었네. 文士李進見之, 歎曰: “眞六經文章也.” 문사 이진이 이 시를 ..
52. 이안눌이 석주와 권필의 자식들을 만나 느꺼워하며 지은 시 東岳李安訥, 與體素ㆍ石洲相善, 二人俱逝. 其後兩家子弟, 共訪東岳于江都, 遂感而賦詩曰: “藝文檢閱李僉正, 司憲持平權敎官. 天下奇才止於此, 世間行路何其難. 陽春白雪爲誰唱, 流水高山不復彈. 晧首今逢兩家子, 一樽江海秋雲寒.” 詞甚遒麗. 體素初擢第, 直拜檢閱, 終于宗簿寺僉正; 石洲曾爲童蒙敎官, 今贈司憲持平, 兩君年皆止四十有四. 해석 東岳李安訥, 與體素ㆍ石洲相善, 二人俱逝. 동악 이안눌은 체소와 석주와 서로 친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죽었다. 其後兩家子弟, 共訪東岳于江都, 훗날 양가의 자제들이 함께 강도에서 동악을 방문했는데 遂感而賦詩曰: “藝文檢閱李僉正, 司憲持平權敎官. 天下奇才止於此, 世間行路何其難. 陽春白雪爲誰唱, 流水高山不復彈. 晧首今逢兩家子, ..
홍만종의 조선인재발굴단, 이항복편 『소화시평』 권하 13번은 이항복이 어렸을 때부터 시를 지을 수 있는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판이 자자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그 또한 노는 인간(호모 루덴스)이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옛날부터 최근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프로그램 중에 ‘영재발굴단’이란 이름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는 말 그대로 ‘영재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프로그램이 제작되어 많은 영재들이 배출되었다. 그런데 이 프로를 볼 때 단순히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영재란 무엇인가?’라는 기준 자체에 있다. 즉, 영재라는 기준 자체는 방송이 정한 ‘기업 비밀’에 해당되며, 그건 이 사회가 생각하는 ‘영재란 이런 거야’라는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영..
윤두수의 한시 이해하기 도올 김용옥샘의 책을 읽다 보면 판본에 대한 정밀성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걸 여러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지금처럼 한 권의 책이 다량으로 나올 수 있는 시기에도 개정판이나 증보판이 나오기 때문에 출처를 밝힐 땐 어느 출판사에서 언제 나온 책인지를 명확히 써야 한다. 그래야 판본에 대해 명확히 밝힐 수 있고 논점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다. 지금도 그런데 예전의 책들은 많이 생산되지 않았다 해도 사람들이 필사를 하며 글자가 바뀌거나 아예 내용이 달라진 부분도 있다. 그러니 자신이 연구하는 판본이 제대로 된 판본인지, 그리고 다른 판본에는 다른 글자나 내용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저자의 입장을 정확히 비판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런 과정이 빠진 채 한 권의 책이 어떤 출처에서 나..
4. 정치 풍자를 담은 칠언절구 한시들 崔侍中承老「禁中新竹」詩曰: “錦籜初開粉節明, 低臨輦路綠陰成. 宸遊何必將天樂, 自有金風撼玉聲.” 有諷戒音樂之意. 李亨齋稷「登鐵嶺」詩曰: “崩崖絶磵愜前聞, 北塞南州道路分. 回首日邊天宇淨, 望中還恐起浮雲.” 有憂讒畏譏之意. 權愼村思復「放鴈」詩曰: “雲漢猶堪任意飛, 稻田胡自蹈危機. 從今去向冥冥外, 只要全身勿要肥.” 以譬逐利之徒. →해석보기 辛文學藏「詠木橋」詩曰: “斫斷長條跨一灘, 濺霜飛雪帶驚瀾. 須將步步臨深意, 移向功名宦路看.” 以戒干祿之徒. 崔東皐岦「十月雨」詩曰: “一年霖雨後西成, 休說玄冥太不情. 正叶朝家荒政晩, 飢時料理死時行.” 訏謨廊廟者, 可以自警. 柳於于夢寅「伊川」詩曰: “貧女鳴梭淚滿腮, 寒衣初擬爲郞裁. 明朝裂與催租吏, 一吏纔歸一吏來.” 分憂子民者, 可以爲鑑. 噫!..
3. 일상 풍자를 담은 오언절구 한시들 詩可以達事情, 通諷諭也. 若言不關於世敎, 義不存於比興, 亦徒勞而已. 崔拙翕瀣「遆職後」詩曰: “塞翁雖失馬, 莊叟詎知魚. 倚伏人如問, 當須質子虛.” 以警患得患失之輩. 鄭雪谷誧「示兒」詩曰: “乏食甘藜藿, 無衣愛葛絺. 若求溫飽樂, 不得害先隨.” 以警非分妄求之輩. 李稼亭穀「有感」詩曰: “身爲藏珠剖, 妻因徙室忘. 處心如淡泊, 遇事豈蒼黃.” 以譬人之物欲內蔽. 成獨谷石磷「送人楓岳」詩曰: “一萬二千峯, 高低自不同. 君看日輪上, 何處最先紅.” 以譬人之品性高下. →해석보기 崔猿亭壽城「江上」詩曰: “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孤舟宜早泊, 風浪夜應多.” 有急流勇退之意. 宋龜峰翼弼「南溪」詩曰: “迷花歸棹晩, 待月下灘遲. 醉睡猶垂釣, 舟移夢不移.” 有操守不變之意. 徐萬竹益「詠雲」詩曰: “漠漠復..
소화시평(小華詩評) 홍만종(洪萬鍾) 권상(卷上) 서설(序說)1. 가치2. 17세기 국학의 대표자 홍만종3. 홍만종의 시화집들 특징4. 성격5. 비평가의 세 가지 자격6. 품평 언어7. 사본의 문제점서문1. 태현경의 가치를 지닌 소화시평(김진표)2. 성당풍 시를 짓는 우해의 평론집(홍석기)3. 소화시평의 특징과 가치(김득신)4. 긴 세월에 걸쳐 책을 만들다(홍만종)5. 시평치윤서(詩評置閏序)1. 활발발한 기상의 왕건 2. 거란과 문종 3. 현종의 원대한 시 4. 백상루에 빠진 충숙왕 5. 창업의 뜻을 담은 이성계의 시 6. 귤로 신하를 깨친 문종 7. 평양군을 기린 성종 8. 태평한 기상을 담은 인종 9. 섣달 매화를 읊은 선조신흠 – 청창연담 권하 5310. 인조의 비상함이 담긴 시 11. 효종의 호기..
64. 장난기 가득한 시 金東峯詩曰: “是是非非非是是, 非非是是是非非.” 又曰: “同異異同同異異, 異同同異異同同.” 奇服齋詩曰: “人外覓人人豈異, 世間求世世難同.” 又曰: “紅紅白白紅非白, 色色空空色豈空.” 豈兩公喜用此等句語, 頗近戱劇. 李白雲「閒居」詩曰: “莫問纍纍兼若若, 不曾是是况非非.” 始知此老始刱此體. 해석 金東峯詩曰: “是是非非非是是, 非非是是是非非.” 김동봉이 시를 썼으니 다음과 같다. 是是非非非是是 옳은 걸 옳다고 하고 그른 걸 그르다 하는 것, 이것은 옳은 게 아니고 非非是是是非非 그른 걸 그르다 하고 옳은 걸 옳다고 하는 것, 이것이 그른 걸 그르다 하는 것이네. 又曰: “同異異同同異異, 異同同異異同同.” 또한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同異異同同異異 같은 것이 다르고 다른 것이 같으니, ..
19. 최승로, 한유의 작법으로 시를 쓰다 凡爲詩, 意在言表含蓄有餘爲佳. 若語意呈露, 直說無蘊, 則雖其詞藻宏麗侈靡, 知詩者固不取矣. 淸河崔承老詩曰: ‘有田誰布穀, 無酒可提壺. 山鳥何心緖, 逢春謾自呼.’ 辭語淸絶, 意味深長, 頗得古人賦比之體. 昔韓昌黎「遊城南」作詩曰: ‘喚起窓全曙, 催歸日未西. 無心花裏鳥, 更與盡情啼.’ 山谷云: “喚起·催歸, 二鳥名, 而若虛設, 故後人多不覺耳.” “然實有微意, 蓋窓已全曙, 鳥方喚起, 何其遲也; 日猶未西, 鳥已催歸, 何其早也. 二鳥無心, 不知同遊者之意乎! 更爲我盡情而啼, 早喚起而遲催歸, 可也. 至是然後, 知昌黎之詩有無窮之味, 而用意則精深也.” 布穀·提壺亦皆鳥名, 淸河此詩得韓法. 해석 凡爲詩, 意在言表含蓄有餘爲佳. 무릇 시를 짓는다는 것이란 뜻은 말 밖에 있고 함축은 넉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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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묵자의 시적 고질병 제시화총림후(題詩話叢林後) 임방(任埅) 玄默子, 癖於詩, 癖者病也. 古人有泉石膏肓烟霞痼疾, 夫泉石烟霞, 豈可爲人之膏肓痼疾者? 而苟使惑好之, 則能爲疾若此, 況詩之可喜可愛, 不翅泉石烟霞, 則其膏肓痼疾於人者, 不旣大矣乎? 玄默子於詩, 沈濳淪溺, 耽嗜之不已, 古今諸詩, 旣自飫觀而熟. 復乃於東方詩大家名家, 有集行世者, 皆包括無餘, 凡雜出傳記及傳誦街巷者, 搜遺鉤匿, 唯恐有失. 以至小儒賤流緇黃婦孺, 數句一語之可取者, 靡不採掇, 細加評隲, 目之曰『小華詩評』, 更續以補遺置閏. 又復上自麗代, 下至今日, 裒聚文人韻士譚詩瑣說, 輯爲『詩話叢林』四册. 余得而徧閱之, 掩卷而歎曰: “美哉! 詩話之作, 蔑以加矣! 此可與元美『巵言』ㆍ元瑞『詩藪』, 繼武並駕, 亦足誇示中華藝苑之功夫, 豈小哉!” 然而玄默子之癖, 可謂病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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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의 이해가 깊은 우해가 편찬한 시화총림 시화총림발(詩話叢林跋) 임경(任璟) 玄默子, 少也學詩于鄭東溟, 東溟亟稱之. 蓋其天分旣高, 又得之大方家, 其所涉獵泛濫, 出入精粗巨細之間者, 自足爲一代具眼. 又能屛棄世事, 惟以文墨自娛, 專精攻業, 故凡於詩學, 率迎刃而中窾焉. 所著『小華詩評』, 盛行於世, 爲諸文士所稱賞. 金柏谷得臣序之曰: “于海自髫齔, 學於東溟鄭君平, 君平謂余曰: ‘于海律格淸峻, 頗有唐韻.’ 又曰: ‘見得高明, 善於評點.’” 洪晚洲錫箕序云: “鄭東溟君平, 文章冠當世, 甞稱于海「采蓮曲」詩曰: ‘酷似盛唐韻語.’” 于海之詩評, 宜見重於世, 而其傳之遠也, 可知矣, 噫! 此皆可以見玄默者詩學之大略耳. 至若『詩話叢林』一書, 則又是就前輩小說中, 拈出其詩話, 而袞輯者也. 語其精, 則披沙而揀金焉, 語其富則囷積而雲委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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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책을 편찬하는 이는 여러 판본을 참고한 후에 편찬하라 凡纂書者, 必攷據精實, 勿之有疎, 然後可以傳信. 而朴汝厚泰淳, 尹廣州也, 刊行許筠所纂『國朝詩刪』. 其中酒泉縣七律, 乃申企齋光漢詩, 而係於奇服齋遵. 蓋『詩刪』元本, 服齋詩, 次在企齋之上, 想汝厚誤錄企齋名於其第二作, 故此詩自爾上係服齋之作矣. 企齋此詩, 旣昭載於本集, 且釘板於縣壁, 而其謬如此. 且七絕中, 「題僧軸」詩, ‘疎雲山口草萋萋, 夜逐香烟到水西. 醉後高歌答明月, 江花落盡子規啼.’之詩, 首係於權石洲, 而考之『石洲集』中, 而無有. 余家有『詩刪』舊本, 此乃李嶸詩, 而次在石洲之上, 此亦汝厚誤漏李嶸名, 故通係於石洲, 疎率甚矣. 且其所稱栗谷「初出山」詩, 乃許筠贋作, 自註曰: “本集不載, 似爲三四諱之.” 其意不難知. 而汝厚刊正, 而不刪此詩, 兼錄其註, 到有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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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잘 표절한 시들 詩家最忌剽竊, 古人曰: “文章當自出機杼, 成一家風骨, 何能共人生活耶?” 此言甚善. 而先輩亦多犯之 李容齋詩, ‘一身千里外, 殘夢五更頭.’ 用唐顧況詩, ‘一家千里外, 百舌五更頭’之句, 林石川, ‘江月圓還缺, 庭梅落又開.’ 用金克己, ‘多情塞月圓還缺, 少格少格山花落又開.’ 蔡湖洲, ‘荒林秋盡雨, 窮店夜深燈.’ 用唐司空圖詩, ‘曲塘秋盡雨, 方渚夜深船’之句, 三人皆沿襲前人詩. 蔡又有「贈僧」詩云: “法門有三乘, 最下是輪回. 去從何處去, 來從何處來.” 盡用佛家語也. 金河西麟厚詩, 載『續靑邱風雅』, 其詩云: “來從何處來, 去從何處去. 去來無定蹤, 悠悠百年許.” 蔡下句, 全用金上句, 此李相國所謂拙盜易擒體歟. 金息菴斯百, 甞以接慰官, 至東萊府, 登海雲臺, 俯瞰滄溟浩浩漫漫, 一碧萬里, 賦詩一絕曰: “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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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옥봉과 허난설헌의 당시를 베낀 시 象村『晴窓軟談』云: ‘趙瑗妾李氏詩一句, 江涵鷗夢濶, 天入鴈愁長, 古今詩人, 未有及此者.’ 余見唐人項斯詩曰: ‘水涵萍勢遠, 天入鴈愁長.’ 李氏此句, 全出於此, 象村豈不見項斯詩耶? 余見許氏蘭雪「送其兄荷谷謫甲山」詩五言律頸聯, ‘河水平秋岸, 關雲斂夕陽.’ 卽是唐人全句, 無一字異同, 此可謂活剝生吞者也. 해석 象村『晴窓軟談』云: ‘趙瑗妾李氏詩一句, 江涵鷗夢濶, 天入鴈愁長, 古今詩人, 未有及此者.’ 상촌(象村)의 『청창연담(晴窓軟談)』에서 ‘조원(趙瑗)의 첩 이씨의 시 한 구절이 아래와 같은데 고금의 시인 중 이것에 이른 이가 없다.’라고 했다. 江涵鷗夢濶 天入鴈愁長 강에 잠긴 갈매기의 꿈은 드넓고 하늘에 들어간 기러기의 근심 길어라. 余見唐人項斯詩曰: ‘水涵萍勢遠, 天入鴈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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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증조부 시와 백곡의 시를 왜곡하여 인용한 『기아(箕雅)』 南壺谷龍翼所選『箕雅』, 載余族曾祖慕堂, 挽栗谷詩七言律. 而其頷聯曰: “洛下政逢司馬日, 蜀中新喪孔明時” 改孔明二字爲臥龍, 豈壺谷誤聞而然耶? 司馬臥龍爲巧對, 故抑以其私見改之耶? 不聞於其子孫, 而改下則謬矣. 慕堂亦豈不知司馬臥龍之爲巧對? 而乃曰: ‘孔明者.’ 非但取其響韻, 臥龍則隱時之稱, 旣爲漢相以後, 不當用此號也. 余堂叔泛翁, 亦常曰: “儷語云: ‘孔明不死 雖復漢而何難? 召虎再生, 此興周之有望.’ 龍虎之對, 不爲不巧, 而儷中以爲不對, 王父不曰臥龍, 而曰孔明, 亦用此也.” 此豈非明證乎? 且金柏谷得臣, 「龍山」一絕, 起句曰: ‘古木寒雲裡, 秋山白雨邊.’ 壺谷選入此詩於『箕雅』, 而以寒爲黃者, 亦何耶? 豈以黃與白色對而然耶? 余與柏谷最相善, 故慣聞此詩, 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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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용익의 『기아(箕雅)』를 비판하다 自古選詩者, 非博識宏量, 固難乎取舍精覈. 近世, 南壺谷龍翼, 雜摭我東風雅詩刪詩話等書, 且取近代諸詩, 輯成一帙, 名曰『箕雅』. 自撰其序, 歷論前輩所選之失, 蓋自許其所選之精也. 然以余觀之, 取舍失於名實, 好惡偏於親踈, 未免爲薰蕕錯雜, 至於作者名姓, 亦多錯錄. 其中所謂閨秀趙瑗妾李氏, 「春日有懷」詩, 卽蘭雪軒許氏詩也, 載於本集, 其詩云: “章臺迢遞斷膓人, 雙鯉得書漢水濱. 黃鳥曉啼愁裡雨, 綠楊晴裊望中春. 瑤階寂歷生春草, 寶瑟凄涼閑素塵. 誰念木蘭舟上客, 白蘋花滿廣陵津.” 金萬英「咏西瓜」詩, 卽玉壺子鄭星卿, 兒時所作, 亦載於本集, 詩云: “色似靑天初霽後, 形如太極未分前. 劈破丹心香露滴, 相如從此懶尋泉.” 且權鞈「殷山」詩, ‘首陽亦周土, 薇蕨累淸風. 若解殷山在, 應先箕子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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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거정이 표절한 구절의 진위를 밝히다 天使祈順, 奉詔來也, 徐四佳居正爲遠接使. 一日祈順, 遊漢江濟川亭, 四佳先唱, ‘風月不隨黃鶴去 烟波長送白鷗來’之句, 有若挑戰者. 天使卽次曰: ‘百濟地形臨水盡, 五臺泉脉自天來.’ 回顧四佳曰: “是否?” 四佳色沮, 先輩以先交脚後仆地爲譏. 蓋烟波之句, 只咏景物, 着處可用, 百濟之句, 漢江形勢, 模得眞狀. 祈以中華之人, 足未會到, 而領略山川, 輪入一句, 立談之間, 造語絕特, 宜乎! 四佳之膽落也. 余甞與諸文士論詩, 余曰: “四佳此句, 全用中菴蔡洪哲詩一聯, 而只改相逐二字, 爲長送, 可發一哂.” 諸人皆駭然曰: “四佳, 國朝之大家, 豈如是剽竊他人全句乎? 必是中菴踏襲四佳, 而用之矣.” 余曰: “中菴卽麗朝人, 此詩乃月影臺所賦, 而明載於『東文選』, 則蔡用徐作耶? 徐用蔡作耶? 且『東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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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화집마다 뒤바뀐 작가들 我東, 自麗朝至于今, 作爲詩話, 或小說, 以傳於世者, 夥矣. 各因見聞而筆之, 其詳略之不侔, 取舍之不同, 無足怪也. 至於作者之姓名互換, 朝代或舛, 如‘石頭松老一片月, 天末雲低千點山’之句, 李仁老『破閑集』, 以鄭知常詩載之, 崔滋『補閑集』, 以榮陽補闕詩錄之. ‘上磨星斗屋三角, 半出虛空樓一間’之句, 『補閑集』, 以使臣崔姓名亡者載之, 李齊賢『櫟翁稗說』, 以鄭知常詩錄之. ‘水鳥浮還沒, 山雲斷復連.’ 徐居正『東人詩話』, 以唐時高麗使詩載之, 曺伸『謏聞瑣錄』, 水鳥浮還沒, 以士人沈善詩錄之, 山雲斷復連, 以參判洪逸童詩錄之. ‘春夢亂如秦二世, 覊愁强似魯三家’之句, 權應仁『松溪漫錄』, 以魚無迹詩載之, 申欽『晴窓軟談』, 以文官朴蘭詩錄之. 使觀者, 莫知適從, 展轉失眞, 若非博洽之士, 安得辨主客而定是..
종남총지(終南叢志) 목차 김득신(金得臣)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정두경의 성당에 비길 만한 시권필 - 忠州石권필 - 送胡秀才정두경 - 俠客篇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시 짓기의 괴로움과 지금 시인들의 문제점김득신 - 詩癖48 인용목차지도
오산설림 초고(五山說林 草藁) 목차 차천로(車天輅)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귀시를 지은 윤결과 그걸 간파한 차식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
165. 楊滄海爲江陵府使時 吾先君爲高城郡守已四載 先君以試官之江陵 滄海先生爲吾先君 題詩於襄陽降仙亭柱曰 降仙亭上望仙翁 何處鸞笙倚碧空 伽樂峯頭斜日落 白鷗疎雨海棠紅 吾先君亦有私詩曰 臨瀛一訪偓佺翁 云云 玉柱何年揮彩筆 驚他海蜃散靑紅
164. 丙寅年 吾先君作宰高城 辛公應時送別詩曰 高城爲郡久 邑里太蕭條 西望山皆骨 東臨海不潮 丹砂招葛老 鳧舃送王喬 拄笏吟詩處 兼無簿領囂
163. 花潭門人 如朴相國淳朴監司民獻許監司曄閔府使純 皆其可稱者 朴守菴枝華 受業最久 所得亦多 徐先生與開城敎授沈義過從 蓋亦有所取才也
162. 黃海方伯 有與花潭相識者 請先生一過 先生往客 方伯以師友禮待之 張樂爲懽 先生醉後起舞 人皆以爲神仙 留一日便歸 方伯多奉行資及紙墨 先生皆不受 只受五升米而已
161. 花潭謂諸葛孔明木牛流馬曰 孔明心匠幾何 此不足爲妙也 先生在花潭別業 庭有一杏 當春獨無生意 先生命家僮 剗土露根 以水洒之 覆之藁席 不數日萌芽攢出 門人皆怪之 先生曰 無足怪也 凡草木之生 出地各有分 今見此樹 培土太過 以朝暮掃庭而墳之也 土崇而氣不達 故生意不得發也 披而疏之 使通陽氣 所以復生 此理之常 但人未之知也
160. 花潭屢空 常食淡 人或遺之膏鮮 亦不食 花潭喜食乾蘇魚 花潭未嘗取於人 人亦未敢與之 雖食飮亦然 黃殷孫者 市井之有識者也 平生敬慕花潭 先生亦與之語 花潭嘗問弟子曰 大虛之中 多於塵埃者何物 皆未有以應 黃殷孫對曰天地 先生曰然 花潭謂吾先君曰 人之學 儒最難 佛次之 仙最其下也 花潭又曰 達者於生死 猶夜朝之常 若吾則歸化日急一日 在世度一日 不翅如一年也云 花潭嘗削木 作璿璣玉衡
159. 金安老當國 深忌花潭名重 心欲害之 見窓豁迎風足 庭空得月多之句 乃曰 不過自修之士 忮心遂已 朴相公祐留守松都也 相國淳乃其子也 受業於門 有時請先生於第 使相國辨聚 留守隔窓聽之 不覺心醉 每先生之去 出門目送之曰 眞神仙中人也
158. 黃山谷水仙花 凌波仙子生塵襪 水上盈盈步微月 花潭徐先生授弟子 至此句解不得 以先生不見雜書 曹子建洛神賦 凌波微步 羅襪生塵
157. 漢書李陵傳 力扼虎射命中 當懸吐曰力 隱 扼虎 爲古 射 隱 命中 爲飛尼
156. 林芑者吏文學官之雄也 以博學能文 出乎其類 常授人杜詩 至與奴白飯馬靑蒭 釋之曰 白猶言白面白徒也 謂與之徒飯而已 弟子有一人戱之曰 但與奴飯 而不給鹽醬 則必飼馬但蒭 而不及粥太也 芑怒之 聞者捧腹而笑
155. 杜樊川詩 廣文昔日留樗散 徐公居正注此而不爲之正 何也杜詩 鄭公樗散鬢如絲 鄭虔曾爲廣文館學士 而牧之所贈詩者 乃虔之子孫也 故云廣文樗散 今曰樗散字誤
154. 唐玄宗尊莊子 爲南華眞經 余未知南華之義 及讀老子翼 始知南華爲莊子所居之里名也
153. 老杜杜鵑行 業工竄伏深樹 四月五月啼偏呼 業工注不釋 余昔少時曾見一書 杜鵑雛曰業工 今不記出自何書也
152. 史記蘇秦傳 臨淄之途 車轂擊人肩磨 通鑑又有此文 讀者車轂句擊讀 人肩句磨讀 余亦如此 今始覺之 車句轂擊讀 人句肩磨讀 爲是 昔人之吐曰車轂 伊 擊 爲彌 人肩 伊 磨 爲彌 今當曰車 隱 轂擊 爲古 人 隱 肩磨 爲古 如此吐可也
151. 李義山回中牡丹爲雨所敗詩曰 浪笑榴花不及春 先期零落更愁人 玉盤逬淚傷心數 錦瑟驚紜破夢頻 萬里窮陰非舊圃 一年生意屬流塵 前溪舞罷君回顧 倂覺今朝粉態新 十年前 余與崔簡易堂岦氏論此詩 崔公以爲 前溪舞罷者 謂牡丹隨風飛過也 君回顧者 君指牡丹也 倂覺今朝粉態新者 謂牡丹雖落而色尙新也 余乃大笑 心不然之 崔公不以余言爲是 其守株刻舟甚矣 余以意釋之曰 浪笑榴花不及春者 言牡丹虛笑榴花不及春而發也 先期零落更愁人者 言牡丹未盡開而雨摧 是先期而落足以愁人也 玉盤逬淚傷心數者 言雨濕如鮫淚也 錦瑟驚絃破夢頻者 言雨聲如錦瑟也 萬里重陰非舊圃者 言回中乃入蜀之道 非舊鄕之圃也 一年生意屬流塵者 言牡丹委在泥塵 生意盡也 前溪舞罷君回顧倂覺今朝粉罷新者 前溪舞後溪舞乃曲名 見樂府 君指言佳人也 言佳人曾與牡丹鬪姸 今日前溪舞罷後須回顧我爾之粉態 倂覺姸新也 詩意謂壯丹花在 美人顏..
150. 宋時有武人 擧杜詩問於人曰 杜曰 白也詩無敵 繼之曰 淸新庾開府 俊逸鮑參軍 旣曰無敵則何以但比庾鮑也 其人不能答 然則武人亦未可輕也 李義山渾河中絶句曰 九廟無塵八馬廻 奉春城壘長春苔 咸陽原上英雄骨 半向君家養馬來 余嘗讀此詩 未解其意 遇一武臣 乃曰曾見一書 渾侍中瑊常灰人骨以喂馬 馬肥健異常云 以此觀之 雖武士豈可少哉
149. 詩三百篇 六義各異 而後之賦詩者 斷章取義 故古人不分正變而皆賦之 考於左傳可見 且一時街謳巷謠 未必人人皆出於正 亦未必人人皆出於淫 如周召南 或有淫風之詩 鄭衛亦或有正風之詩 大序可以救矣 自朱子斷爲序說 遂爲不易之詩 古之賦詩之義廢也 如凱風詩 漢人或引而美皇后 柳子厚亦用以思母 曰哀吾生之不淑 循凱風之悲詩 昔人之用詩 不拘如此 今人若用凱風 或於后或於母 則人必目以妄發 此豈春秋時某也賦某詩之旨哉
148. 漢書文帝紀 詔曰 今歲首不時使人存問長老 豈稱爲民父母之意哉 其賜八十以上 絮一斤肉十斤 通鑑只曰 今歲首不時使人存問長老 其賜八十以上云云 何其斷章之不通也
147. 漢書高祖紀 詔曰 丞相下御史 御史下中執法 中執法下郡守 言此詔 丞相當下於御史 以此又下云爾 通鑑只曰 御史中執法下郡守 誰解得
146. 王褒聖主得賢臣頌 雖伯牙操遞鐘逢門子彎烏號 猶未足以喩其意也 少微通鑑 去雖伯牙以下至烏號十二字 只曰猶未足以喩其意也 所謂喩其意者 指何言也
145. 淮南子 日出暘谷 浴乎咸池 拂于扶桑 蘇長公韓文公潮州廟碑 西游咸池略扶桑 西字必誤
144. 杜詩望嶽 安得仙人九節杖 拄到玉女洗頭盆 讀杜詩愚得 拄到作拄倒 其注意以玉女比楊妃 乃曰安得仙人九節之杖 拄倒楊妃之洗頭盆也云 剡人單元陽 可謂愚也已
143. 史記荊卿傳 秦王貪其勢 必得所欲 戰國策 作秦王貪其贄 必得所欲 國策勝
142. 史記韓非傳 彌子之母病 人聞往夜告之 韓非子作人聞往夜告之 當以人聞往句 夜告之句 極簡古
141. 成廟朝 朝士有後娶者 心疑處女有若經人者 疏請去之 上命宦侍 圖其家室形勢而來 見寢室傍有高樓 上賜其人書曰 譬如秋栗 時至自坼 率與之終身可也 時識者以爲 高樓連寢室 自少下上 相激使然 當以意思之 聖慮非衆人所及也 成廟値亢旱 靡神不擧 上親禱于慶會池邊 暴日露坐 幾至浹辰 聞有衆樂聲 上問之 乃房主監察行禮宴也 上大怒曰 天久不雨 草木燋卷 西成望絶 大命近止 予乃避正殿 減膳徹樂 露禱累日 勤苦如此 蓋爲民也 食祿之輩 乃敢張樂娛遊 甚亡謂 其皆詔獄 二十四人一時就拘 乃令其子等上疏乞哀 疏入 上大怒曰 渠輩旣以無狀陷罪 又使其顓蒙冒疏 尤可惡也 其拜疏之人 盡執以入 上御便殿以待 遂皆散走 獨房主監察之子不去被執 時尙童稚 上親問之曰 汝童稚何以獨不走 對曰初爲救父而上章 縱受罪安敢逃乎 上問曰此疏誰所作也 對曰臣自作之 上又問書者誰也 對曰臣所書也 上曰汝年幾何 ..
140. 成廟朝 有一朝士 後娶大夫女爲妻 三日後呈曰處女失行 請去之 成廟疑之 命老醫女軫之 醫女奏曰 裸而觀其陰 金絲未斷 鷄眼尙新 保無他疑 成廟深以爲然 厚賜女醫 命其人成夫婦而居之 所以然者 處女年少 夫者醉不省其如何 誤爲云云 故成廟疑之 女醫定之 女家以此得免惡名
139. 洪允成都元帥出湖南 聞全州人某甲 世爲望族富家 有三女皆美而婉 允成欲妾其女 未行 先下牒於湖南方伯 全州府尹以其計告之 又令設宿次於其家 監司及府尹招其父 以其文示之曰 爾若前却 不但禍及爾家 監司與府尹亦皆死 爾急歸家整理婚具 其父唯唯而退 歸家與其妻涕泣歎咤曰 生女太多 坐爲賊門 其第三女問其故 父曰非爾所知也 女曰一家之事 豈有子女不與知者乎 其父悉以告之 女曰此甚昜 女有以應之 願勿憂 及允成之來也 其女盛容飾 立於中門扇後 允成戎服而入 其女肘其臂 允成轉眄 見一美娥 相對而揖曰 公乃國之相臣 今爲大元帥 余亦此地右姓之女 聞公欲以我爲妾 是何辱我也 若欲爲妻 猶之可也 必欲妾之 今日願死於前 公豈忍行此無禮而枉死人乎 允成笑曰 如女言 遂揖而出 密狀于光廟曰 臣有妻甚不慧 不堪中饋 久欲易之 今來全州 聞某人之女賢而美 請爲繼室 敢以聞 上答曰 此卿家事 何必問..
138. 十九史略 紂力能伸鐵鉤索伐有施氏 人皆力能伸鐵鉤索句 或者又以伸鐵鉤句 索伐有施氏勾 尤可笑也 按淮南子 紂力能別䚥伸鉤索鐵 此三句 言紂力能別牛之角中䚥也 說文 䚥牛羊角中骨也 言拔而別之也 伸鉤 言引鐵鉤而伸之使直也 索鐵 言糾鐵而爲索也楚辭 索胡繩之纚纚 今當改曰 紂力能伸鉤 索鐵 伐有施氏 作三句爲是
137. 羅州城隍祠 有神甚靈 人過者不下 輒殺所騎 及允成之刺州也 下吏告之故 大怒鞭馬而過 其馬行不里所而倒死 允成大怒 卽屠其馬 載十盆酒 命軍卒持弓矢刀斧 身往其祠 置馬酒其前 叱咤而辱其神曰 爾旣殺我馬 是欲食其肉也 若不喫此肉 而嚼此酒者 吾當燒掇焚杆爾也 俄而觀之 酒暫縮而肉猶故也 允成大怒 遂焚其祠而逐之 其神遂遠徙于叢祠 其後邑人或祀之 其神曰 先請洪地主而享之 後祀我 每邑中有淫祀 必先祀允成 允成或醺醺如醉 必曰某人有祀神者乎 後問之果然
136. 洪允成之爲校生也 有一都事 巡到其郡 講諸生經書 允成與焉 因有一面之分 其後其都事入兵曹爲正郞 有一書生 來謁於其家 卽其人也 乃曰寒威凜冽 貧不辦耳掩 願請得直以備之 正郞卽帖給其價 頃之 一吏來進文簿 見其着赤狐新者 允成自脫而着之 因謂正郞曰 願更給價 正郞略無難色 其後世祖登寶位 有溫陽湯泉之幸 允成從之 時正郞曾以參判謫于其邑 允成賚乾大口數百尾 往遺之 已而建白于世祖 復其舊官 允成送人語曰 吾平生欲報君舊德 今復官 須還其大口 其人已散之隣里 難可復得 心自憂悶曰 寧勿蒙宥母徵此物 竟買而與之 洪允成之判吏部也 其叔父某甲 乞官其子 允成曰叔父 若以某地水田二十斛下種者與我 當從之 其叔曰 公何出此言也 昔公之困不得意 衣食於我十餘載 其他倚賴之力 秋毫無非我也 今公致身卿宰 獨不能官我一子乎 允成恐其語播 撲殺其叔於座中 遂埋諸園中 其妻欲狀訴 而刑曹不受 ..
135. 洪允成者湖西人也 將詣京師赴科 徒步而負 行至漢江 時首陽大君出遊濟川亭 宮蒼頭十餘人在舟中按舟 船使不得行 允成躍入舟中 手折小槳 盡格其奴沈水 獨身刺船而渡 首陽大君異之 使召而前 厚遇之 潛以恩意結之 後爲功臣 甚尊寵之 首陽大君卽世祖也
134. 燕山乘夜微行 遙見池邊立鸛 以爲人而大驚 近之飛去 翌日命擒鸛鳥
133. 有一內禁衛 彈指聲聞數里 夜直乘月彈指 燕山聞之 問聲從何處 左右討迹之以告 燕山召使彈指 厚賜其人
132. 世祖春日偶書一句于柱上曰 綠羅翦作三春柳 紅錦裁成二月花 居久之 見有一句足其下 觀之曰 若使王孫爭此色 春光不到野人家 上問左右 皆不知 有一直門卒 伏地曰死罪 臣所書也 命官之
131. 成廟朝 宰臣有權纂其姓名者 詔使時 以延慰使在安州 聞平壤庶尹之子 有中司馬者 在父殯側 私奸官妓 後權公爲大司憲 其人已登第爲正言 權公追擧其事彈之 其人上疏力辨之 上問權公曰得聞於誰也 對曰臣以昔年延慰使 久駐安州 平壤人某爲臣言之甚悉 上命獄其人 辭所延逮五六人 窮竟其言所從出 乃歸之已死者 無可左者 遂已 上以權公發人隱惡 終不陞階 竟沒於嘉善 其未死也 朝議惜之 祿付守知事 故死後得謚 其正言者 竟歷淸顯 然殯側奸妓之事 果不誣也云
130. 光廟爲首陽大君 春秋十四 宿一倡家 夜半其所與私者 來叩房門 光廟驚起 足蹴後壁 壁倒因出 騰身超過數仞墻 其人又超踰之 光廟超過三重城 其人亦如之 光廟從大道走行一里所 道傍有古柳樹 遂隱其腹 其人追之不及 又失其蹤跡 乃咄叱而去 有頃 長者啓門而出 溲溺小橋側 仰見星文怪之 自語曰 紫微經柳宿 必人君依柳樹象也 甚可怪也 良久而還入 光廟乃歸 翌日物色之 乃觀象監善推步者也 光廟暗記其姓名 而心獨喜 及後御極問之 其人死已久矣 乃厚賜其子孫
129. 司馬子長曰 文王拘而演周易 日者傳 又曰 文王演六十四卦 楊子雲亦從子長之言 然連山歸藏皆有六十四卦 文王前已有明矣 三國時邯鄲淳曰 神農演六十四卦 索隱記三皇亦曰 神農演六十四卦 朱晦菴曰 連山歸藏皆在文王之前 而六十四卦已有 則謂文王演之者 非也 古人或以爲伏羲時六十四 卦已具 未知孰是
128. 史記蔡澤傳 持梁刺齒肥 注刺齒二字 當作囓此 當讀如字 禮記母刺齒
127. 成廟宮中養一麛 馴擾之久 常不離左右 一日燕山侍側 其鹿來呧之 燕山足蹴之 上不悅曰 獸亦依人 何其不仁也 後成廟升遐 燕山卽位日 手射其鹿而殺之
126. 成廟廢妃某氏 親事紡績 嘗上朱汞機織絹 成廟往見之 妃下機而言曰 上監何身之長也 上曰又有長於我者 當召試觀之 遂命召許琮入 許公蓋身長十一尺也
125. 光廟反正時 有一賈豎 功最多 御筆賜之 曰三死無與 後成廟初卽位 其人殺人 有司論以如律 其人上御敎 貞熹大妃敎曰 先王旣有手敎 其原之 成廟難之曰 先王之敎 一時之恩也 殺人者死 萬世之公法也 豈可循一時之恩廢萬世之公法乎 貞熹大妃曰 雖然先王遺敎不可不用 特赦之 成廟難之再三 貞熹大妃不從 成廟曰 大母不聽余言 余不敢承國事 願更付他人 貞熹大妃曰 惟汝之爲
124. 三月上巳 成廟從宦者數人 遊後苑 命一別監 往泮宮看儒生幾人 已而還報曰 獨有一書生 在泮宮讀書 上命開後苑小門 急召其人 親問之曰 諸生皆去 爾獨在何也 對曰今日令節 諸生或歸家 或之友人家 或與同好相聚 臣遠方寒士 寄身下齋 無親戚無伴侶 欲往何之 是以獨留 上問曰諸生今在何處 對曰有十餘人 方會西齋後泮水邊供具矣 上曰汝試往其處 其人謹惟命 無何承傳宦者及大殿別監來 御廚之膳 上尊之酒 八九人負戴而至 乃置其人之前 使其人招諸生共之 諸生大驚 翌日特命殿講 其人遂賜及第
123. 宗室疎遠者一人 美鬚長數尺 容貌不揚 上垂眷異甚 賞賜便蕃 一日其人歸其家 謂其妻曰 我貌寢于思如此 上殊遇 群臣無上我者 我若翦斷此長鬚 上必加恩顧益深 手把翦刀盡剃之 居無何 上急命召之 見其如宦 怪問之 其人對言其狀 上大怒 命捽而出之
122. 成廟喜進烈酒 老宦有監者 恐其傷之 稍下水和其味 上飮而薄之 問其宦者 以實對 上命黜之
121. 兪公好仁家在南中 每乞歸省老母 成廟不許 一日好仁辭歸 成廟親餞 中酣作歌 이시렴브듸갈다아니가든못손냐므더니솔터랴남의권을드런다그려도하에답고나가을일너라 以歌之 好仁感泣 左右亦爲之感激 異日好仁不辭而去 成廟密遣人跡其行曰 予念之未忘于懷 渠亦念我乎 受命者追及之 至一驛亭 見好仁登樓北望 夷猶久之 遂書壁上一律曰 北望君臣隔 南來母子同 還奏其狀 上曰然 渠亦念我 好仁乞縣 便養老母 成廟初不許 血誠頻年 命除義城 密諭監司曰 好仁 予之友也 爲親屈百里 善視之 未幾監司考下下 上怒之 問監司曰 予曾有命 何以殿好仁也 監司對曰 國家設守宰 非爲榮其身 爲其親民而軌物也 今好仁吟風弄月 不治官事 是以謫之
120. 成廟每月 御光化門聽政 分遣史官宦官 巡省各司 有不坐之官 親臨杖之 雖六部尙書或受譴 罰至杖者
119. 兪公好仁在玉堂 成廟恩顧特優 學士無比 每月夜從宦者數人 遊慶會樓 池中小舟僅受五六人 獨命好仁從者 有若唐玄宗之待李謫仙也 好仁以校理豹直 上從小宦侍一人 夜臨直宿之房 好仁驚起 上命只着紗帽而坐 從容談論 上見其紬衾露破絮 黃染色退 上曰 爾歷官淸要 儉素如此 可尙也 卽命宦者持御被來 因以覆之而去 此正與唐文宗幸韋澳同一恩寵也 上愛好仁之詩才 惠寵日隆 終不至大官 蓋察其器不堪爲宰輔也 時人以是服上之用人之各因其才也 成廟時 州郡或有不治聞者 拿致闕下 親臨決杖 因還其任 而誡之曰 如不改心爲政 當加誅 人人莫不競勸
118. 成廟每置酒宴群臣 必張女樂 一日命笑春風行酒 笑春風者 永興名妓也 因詣尊所酌金杯 不敢進至尊前 乃就領相前 擧杯歌之 其意曰 舜雖在而不敢斥言 若堯則正我好逑也云 時有武臣爲兵判者 意謂旣酌相臣 當酌將臣 次必及我 有大宗伯秉文衡者在座 春風酌以前曰 通今博古 明哲君子 豈可遐棄 乃就無知武夫也 其主兵者方含怒 春風又酌而進曰 前言戱之耳 吾言乃誤也 赳赳武夫 那可不從也 按三歌皆俗謠 故以意釋之如此 於是成廟大悅 賞賜錦段絹紬及虎豹皮胡椒甚多 春風力不能獨運 將士入侍者 皆携持而與之 笑春風由此名傾一國 酌相之歌曰슌도게시건마아네님인가노라
117. 成廟夜宴近臣 命不醉不輟酌 承旨皆醉倒 上命中人 密解其銀帶 以其金帶圍之 因命扶出 翌日曉急命入侍 其人宿醉未醒 不省所帶之爲金也 及黎明 左右見其腰金 皆驚怪之 言官彈之 上笑曰 旣橫帶黃金 因以陞階可也 遂命超嘉善
116. 光廟謁文宣王廟歸 因不豫 貞熹王大妃憂之 問諸巫 皆曰孔廟神爲祟 貞熹大妃命宮人率諸巫 行淫祀於大成殿庭中 諸巫雜沓 衆伎亂作 館中諸生有士氣者 爲之倡 領諸生驅逐諸巫 椎破腰鼓雜樂 宮人驚散 走入奏之大妃 大妃大怒 將盡下諸生獄 知館以下率諸生待命闕下 大妃使人報成廟曰 殿下違寧 問諸巫覡 皆言祟在孔廟 予命宮人祈禱 請生大逆無道 撲打巫女 迫逐宮人 蹴破諸具 是不有君父者也 余將盡誅之 故使聞之也 成廟椎枕蹶然而起曰 吾太學生徒 如此其有義節耶 遂命司甕院供具 命知館事以下 率諸生入 賜宴于勤政殿庭 賜諸生胡椒人一升
115. 光廟與貞熹王后共坐 成宗春秋纔九歲侍 又有一王孫侍 忽雷一聲震殿上一柱 貞熹王后驚變乎色 其王孫錯愕失度 獨光廟不動 成廟亦自若 光廟戒貞熹曰 異日國事 當付此兒 毋忘予言
113. 燕山在東宮 多無度 群臣咸知其有童心 孫公舜孝一日乘醉 直上御床 以手撫之曰 此座可惜 上曰吾亦知之 不忍廢也 諫官奏曰 人臣上御牀 已大不敬 又敢附耳語 是無法 請下舜孝獄 論如律 上曰舜孝愛我 戒我以斷酒 當何罪也
112. 成廟喜傾大白 有一玉杯 淸瑩如水 上每置酒 酒酣 輒用此杯命飮者 有一宗室 上特垂恩紀 一日又命此杯 其人飮後便袖之 因起舞佯仆地 杯盡碎矣 蓋諷成廟以諫也 上亦不之過
111. 成廟喜酒 多近姬侍 命內需司 日獻素屛風 過一夜盡赤而出 以唾血故耳
109. 成廟喜遊豫 兩司上章諫之 不聽 卽駕出巡遊一邊 諫書未已 上便已駕還矣
108. 成廟一日 與幸宦者五六人 語民間事 仍命肉諸侍者 一宦豎辭不食曰 今日國忌不宜啗肉 上曰 余以先祖世遠故爾 汝何乃不情 豈汝父耶 退已 左右因前曰 某也乃咸興隷人也 少時與羣輩往樵于山 于時宦官某 受命如咸興 前有光馬 緋衣吹螺 肅前導 身跨馹騶盛甚 樵兒皆聚首聳觀 此宦豎歆羨不已 樵者有解事者曰 彼乃一宦者 翔貴如此 此豎問何以爲宦者 解事者說其所以然 是豎卽歸家 遂鈒去其勢 因以托籍中常侍之列 上曰 然則不祥之人也 命除宦籍
107. 成廟接臣僚 有若家人父子 而臨政肅敬 羣臣莫敢隱情飾行 在上前互相長短面折 不少諱避 及出闕門 坦然懽忭 無一纖芥相違 蓋上之神明盛德所變化也 以是觀之 古之人臣 各相用黨比周 未嘗不由上之所好惡何如也
106. 有一人 自方伯入爲承宣 成廟問曰 聞監司以食飮豐薄 殿最守令 然乎 對曰有之 上不悅曰 豈以口腹之供 責諸官人也 對曰食飮之具 尙不能適口 況於他事乎 上曰是也
105. 成廟時 有一宦者 從關西來 上問列邑待之如何 對曰 廚供極其侈盛 上心不之善 已而又曰 臣行到一邑 賓客滿座 朝食床設酌 日已午而未進食 醉客爛漫 盤中諸器 皆塵埃矣 上曰何必盛具 如彼足也
104. 成廟鍾愛王子一人殊甚 多有過僻之事 烏府論之 上命召城上所入掌令某入謁 上使之前 遂書一句而賜之曰 世人共愛霜後菊 此花開後更無花 其人拭淚而出 未幾上登遐
103. 成廟出幸 見一人斫一樹帶鵲巢者植其門前 使問之 對曰 聞鵲巢門前樹者 法當得及第云 而門前無樹木 鵲巢不可幾也 故以此代之 庶望有徵也 又問曰 能誦乎 能製乎 對曰兼有之 而負詘殆數十年 上卽命賜及第
102. 成廟夜遊 遙見三角山有火光 使人往觀之 有一書生 懸燈讀書 使問之 對曰欲爲及第耳 上命作絶句 遂賜及第
101. 成廟時 外舅有職居銀臺者 以紫檀木搆小軒 上聞之 面問曰 聞爾檀香作室 有諸 對曰未也 上卽命侍臣及中人往觀之 奏曰 果以紫檀爲之 上卽移御景福宮 命誅其外舅 已而還宮曰 余疾瘳矣 時大妃尙在 上恐請寬之 故托疾而移御 仍命誅之 旣刑之便復還也 說者以爲上之此擧 斷則斷矣 何如漢文之待薄昭也 後世必有議者
100. 成宗夜宴宰臣及近臣 席散 命各賜宮燭一柄 馬上手捧而歸其家 各設迎燭宴 時人榮之
99. 成宗親享宗廟 有掌令爲大祝 當讀便不出聲 有若箝者 翌日上命除豐山萬戶 言官爭論之 上曰 號爲文官 不能讀祝 聞粗解決拾 可使當一保障足矣 過數月 因以舊職召之
98. 丘從直者 草野人也 少入館下齋 時生進二十餘人 請一善卜人 決平生禍福 終至從直 卜者再拜曰 此數法當至正一品 壽踰稀望八 大貴富人也 諸君二十餘人皆不及也 衆皆大笑之 從直 捷文第 分校書館直宿 聞慶會樓絶勝 心欲觀之 直夜便衣 入數門至樓下 臨池散步 俄而成廟乘便輿 從數宦者從後苑戾至 從直惶忙伏輦路下 上問誰也 從直對曰校書館正字丘從直也 上又問何以至此 對曰臣嘗聞慶會樓玉桂瑤池 乃天上仙界也 今幸豹直芸閣 芸閣幸與樓不甚遠 故草野之臣 敢此偸看耳 上曰爾不可以便服見我 其以衣冠來 從直卽取着而進 上命設交椅于樓下 命從直使來前 問汝能歌乎 對曰臣少學謳謠 然擊壤之歌 豈合聲律 上曰試唱之 從直曼聲長歌 上善之 又命之 激厲高唱 聲振屋梁 上大悅 又問能誦經傳乎 對曰 臣能記春秋 上命諷之 應口誦如流終一卷 上大喜命賜酒而罷 翌日上特拜從直大司諫 除目下人皆大怪 三司交上..
97. 成廟聞一太守有異政 大是有用之器 擢爲執義 三司交章論之數日 又擢爲吏曹參議 三司又極彈之數日 又擢爲吏曹參判 三司又彈之數日 又擢爲吏曹判書 三司遂止不復論曰 若此不已 必至三公 不如且已 其人後爲相 果稱職 以是一國服上之知人也
96. 成廟朝 一宦寺承命從湖西返 上從容問民所疾苦 及又閑事 宦者對曰 忠州有一寒士 爲客於牧使 牧使以其親故對之 又以一妓薦枕其人鍾愛 而妓不入於情 及其別也 涕泣不能舍 其州廣文 乃文官 亦與別筵 其人又執廣文手 並與其妓 結其帶垂 謂廣文曰 君獨不能共我別恨乎 廣文爲賦一律 其頷聯曰 紫芝崔帶橫腰細 黑黍張靴着足安 其人因以其詩遺妓曰 願無相忘也 又二日而不忍別 觀者莫不目笑 而其人不爲之顧也 上聞之莞爾而笑 因題廣文之名於柱 異日上特以其廣文名 與弘文錄 柏府論之累日 一日上命招城上所入謁掌令入對 上曰何以有此論 對曰 自古弘文之錄 從一時公論 未嘗出於內旨也 上曰 奔走權要於而得之者爲公乎 名徹於人主而見知者爲公乎 其人力爭不可止 上聲色俱厲 責之甚嚴 命出其人 戰栗而退 誤由御道行 上熟視而語左右曰 身所當行之路 尙不知自行 反欲塞人之前程乎 諫官彈之解官 其廣文竟入玉堂..
95. 李公忠伯云 其大父名砯 有弟名某美姿容 若天神 人目爲玉人 行出則妓倡爭追逐之 以此不敢晝出都市也 成宗設豐進豐呈宴 官妓私倡滿庭 盡日皆注目一處 成廟怪而下問 侍臣請對曰 宣傳官李某在侍列故也 一日成廟在便殿 侍臣入侍 李某亦侍 時當盛夏 上袖出白貼扇 繫以白絹布三尺許 手自播揚再三 因下問侍臣曰 此扇當賜阿誰 或曰台軸 或曰主兵尙書 或曰宗伯掌文衡 上嘿然環視 適見李某稍遠侍 手擲其前曰 爾可提携 左右皆榮其寵光 而心嫉之 李某終身不得官 止於宣傳之銜云
94. 世祖反正 以人代之 召澂玉 解龜歸到吉州 思之曰 朝廷非有大事不召我 曹有敎 今無事遞我 必有由也 還馳至鏡城 問諸新節不言 澂玉顧命從者捽而下 踞椅而責之曰 爾若不言 當斬之 其人不敢諱 遂殺之 擧兵欲南向京師 乃曰 我威信素著山戎 今當渡江而作大金皇帝足矣 約明日率軍而行 時六鎭判官皆在偏裨 會寧判官伏人於板上 是夜澂玉宿東廂 力士二人持長劍 自板褪下 乘睡熟斫之 落右臂 澂玉驚起 奪其劍斫之 赤身飛出 左手所擊殺者數十百人 遂死於亂箭 時年二十四 余少時 定平府使李忠伯永興府使李彥華皆謂曰 曾見野史 其說如右云爾 澂石在世祖朝 平李施愛時有功云 金太祖之先 梁山人也 元世祖其苗出於平山 曾有所記
93. 澂玉之爲戎首 選六鎭藩胡善騎射者 皆隷牙下 各分爲隊 如會寧胡盡白馬白衣 鍾城胡盡靑駀馬靑衣 他皆如之 日與之敎鍊 數年後盡爲精銳者三千 每巡列邑時 各出境送迎 澂玉渡豆滿江 巡歷審視 若逢胡人 問歸順者 使居江濱 不欲者逐之 約曰 犯吾令者死 如有不從令者斬之 過江十日程 無一胡跡 其後朝廷議者以爲 藩胡選爲卒伍 籍於軍中 澂玉能以之左右 惟意他人必不能 恐有後憂 宜令罷之 乃善爲辭而諭之曰 爾輩旣向義歸化 猶我人也 但使安其耕鑿無土稅力役可也 若束以法令 使趨尺籍伍符 是有拘結也 自今以始其除之 然藩胡畏澂玉而愛之 遠人亦慕向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