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효와 제국의 꿈
『효경』은 누가 지었을까?
이상으로 주자학의 수용으로부터 시작하여 한국인의 효관념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가 감행해야 할 작업은 『효경』이라는 텍스트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과연 누가 언제 왜 『효경』을 만들었는가?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아무 『효경』 책이나 거들떠보면 있는 얘기들을 내가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공자자찬(孔子自撰), 증자소록(曾子所錄), 증자문인편집(曾子門人編輯), 자사소작(子思所作), 칠십제자문도의 유서(遺書), 한유소찬(漢儒所撰) 등등의 다양한 제설이 있으나, 그 작자(作者)를 이야기하면 ‘증자문인계열에서 성립한 책’이라는 설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증자는 효를 주제로 하여 공자학설을 발전시킨 인물이라는 것이 통설이고, 그 효의 학풍을 이은 제자 중에 누군가가 『효경』을 편집하거나 찬술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이러한 통설을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통설은 아무런 구체적 정보를 우리에게 전하지 않는다. 과연 누가 언제 왜 이 『효경』을 지었을까?
우선 ‘효경(孝經)’이라는 서명(書名)부터 우리는 통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외면상 ‘효경’이라는 서명에 ‘경(經)’이라는 권위있는 단어가 접합되어 있기 때문에 『효경』이야말로 십삼경(十三經) 중에서 ‘경(經, canon)’이라는 권위있는 이름이 붙은 최초의 책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도 잘 따져보면 어폐가 있다. ‘경(經)’이라는 개념 속에, 권위있는 경서로서의 의미가 포함되려면 그러한 바이블을 규정하는 조직이나 정치권력의 권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례를 들면, 신약 27서가 권위있는 정경으로서 인지된 배경에는 로마가톨릭이라고 하는 강압적 종교 정치권력조직의 정경화작업(canonization)의 뒷받침이 있었다. 아타나시우스의 정경 리스트 이래 진행된 가톨릭의 정경화작업은 주로 이단을 죽이기 위하여 이단계열의 성경을 모두 외경화하기 위한 배타적 작업이었지만, 백화노방(百花怒放)의 다양한 학설을 포용하는 것을 미덕으로 안 춘추전국시대를 거친 중국제국에서는 그러한 배타적ㆍ부정적 정경화의 필요성은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된 제국이 등장하면서 사상의 통일이나, 존중되어야만 할 경전의 규정에 대한 긍정적 필요성은 부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학파가 있지만 그들학파가 제국의 정통학문이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역사의식의 결여라고 말할 수 있다.
『효경』의 ‘경’은 오경박사제도 이후의 경 개념일 수 없다
공자는 하ㆍ은ㆍ주 삼대에 대한 뚜렷한 역사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력이 있었다. 그래서 『시(詩)』, 『서(書)』를 편찬했고, 『춘추(春秋)」라는 역사서를 편찬했다. 다시 말해서 유교만이 중국이란 무엇이며 중국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역사적 통찰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연하지만 선진시대에 ‘육예(六藝)’라는 말이 있었다고 사료되지만,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ㆍ역(易)ㆍ춘추(春秋)를 ‘육경(六經)’이라는 말로 지칭한 것은 『장자(莊子)』 「천운(天運)」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 최초의 용례이다. 그러나 과연 「천운(天運)」 편이 언제 만들어진 문헌인지를 단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여튼 보통 ‘육경’이라는 개념에서 문서화되기 어려운 ‘악(樂)’을 제외하고 나머지 ‘오경(五經)’이 중국의 권위있는 캐논으로서 그 지위를 부여받은 것은 역시 한무제 때 ‘오경박사(五經博士)’ 제도가 설치되면서부터 일 것이다. 물론 이 ‘오경’이라는 개념 속에 『효경』은 들어가 있질 않다.
우리가 중국의 경전을 보통 ‘십삼경(十三經)’이라 말하지만, ‘십삼경’의 개념은 송대에나 와서, 당나라 때의 개성석경(開成石經) ‘십이경(十二經)’에 『맹자(孟子)』를 보태어 성립한 것이며, 그 이전에는 매우 유동적인 셈법이 많았다. 한대에도 ‘칠경(七經)’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당대에도 ‘구경(九經)’이라는 말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였으며, ‘구경’에 무엇을 보태느냐에 따라 ‘십경(十經)’, ‘십일경(十一經)’, ‘십이경(十二經)’ 등의 말이 존재했다. 하여튼 십삼경이라는 중국의 경전이 바이블로서 중국역사에 존재했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송대 이전에는 해당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니까 경전의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면 한무제 때 ‘오경박사’의 ‘오경’ 이전에는 ‘경(經)’을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경’이라 말해도 그 ‘경’은 국교의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갖는 경(바이블)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유교가 실제로 중국사회 통치이념으로서 구체화된 것은 왕망(王莽, BC 45~AD 23) 이후의 사건이다. 왕망은 실제로 『주례(周禮)』라는 유교경전에 의거하여 이상적 유교국가(an ideal Confucian state)를 건설하려는 황당한 꿈을 유향(劉向)ㆍ유흠(劉歆) 부자와 함께 실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의 신(新)왕조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그 꿈은 후한제국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그러니까 선진시대에, 그러니까 통일제국이 출현하기 이전에 서명으로서 ‘경(經)’ 자가 붙은 『효경』을, 오경박사 제도 이후의 경전과 같은 개념의 최초의 용례로서 인식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분명한 비약이 있다. ‘효경(孝經)’이라는 서명은 『효경』이라는 문헌 자체 내에 나오는 말을 축약시킨 단순한 용례일 수도 있다. 고문효경 「삼재장(三才章)」 제8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대저 효란 하늘의 벼리이요, 땅의 마땅함이요, 백성이 행하여야 할 바이다. 그것은 천지의 벼리이니 백성이 본받지 않을 수 없다.
夫孝, 天之經也, 地之誼也, 民之行也. 天地之經, 而民是則之.
‘효경’이란 바로 ‘효(孝)가 하늘의 벼리[經]’이다. ‘효가 하늘과 땅[天地]의 벼리[經]’이다라는, 『효경』내에 존재하는 구문을 축약시켜 그 책명으로 삼은 편의상의 이름이며, 그것을 곧바로 ‘효의 경전’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효경’이란 ‘효의 벼리’, 그러니까 효의 원칙이나 방법을 제시한 책이라는 뜻이 그 원초적인 의미일 것이다. 최근에 마왕퇴(馬王堆) 3호 한묘에서 출토된 고일서(古佚書)의 이름이 『경법(經法)』이니, 『십육경(十六經)』으로 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효경’의 용례와 의미의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효경』은 과연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인도유러피안 어군 속에는 ‘효’라는 개념이 없다
한번 이런 생각을 해보자!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효심이 사라지고 있다고들 말한다. 이대로 가면 효도나 효성은 우리사회에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이다 운운, 과연 그럴까? 한국인의 가족관계와 서양인의 가족관계를 차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은 일차적으로 말하는 존재이다. 불교가 아무리 불립문자를 이야기해도 인간 존재의 모든 규정성은 언어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말’이란 결코 서구언어학이나 철학이 말하는 어떤 추상적 논리나 감정이나 역사가 배제된 어떤 수학적 도상이 아니다. 말이란 존재의 역사이다. 말이란 단순히 의사전달을 위한 논리적 매개가 아니라, 나의 존재의 역사성을 토탈하게 규정하는 논리 이상의 그 무엇이다. 말이 의사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나의 의사전달 방식을 말이 규정하는 것이다. 나는 말을 습득하는 순간, 그 말이 소속된 문명의 전승체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유아라 할지라도 말을 습득하는 동시에 이미 고등한 문명의 전승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말의 일차적 기능은 개념의 외연이나 내연을 정확히 규정하거나 개념들간의 정밀한 연결방식을 습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의 습득과 더불어 체득되는 축적된 감성의 심미성 속으로 나의 존재양식이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다. 나라는 상징체계는 내가 습득한 말로써 구성된다.
여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효’라는 말이 있는 한, 효라는 내 마음의 역사성은 소멸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효’라는 말이 어느 나라 언어에든지 그 상응되는 말이 있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상정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우선 인도ㆍ유러피안 언어군 속에서 효에 해당되는 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어에서 단 하나의 개념화된 단어로써 효를 번역하기는 불가능하다. 보통 효를 ‘필리알 파이어티(filial piety)’라고 번역하는데(James Legge), 이것도 벌써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고 의미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 ‘필리알(filial)’이라는 형용사는 아들을 의미하는 라틴어 필리우스(filius)에서 온 말이다. ‘아들이 부모에 대하여 지녀야 하는 경건성’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앞서 비판한 복종주의적 도덕의 일방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매우 국부적인 뜻밖에 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파이어티(piety)’라는 말도 종교적 함의가 강하여 순수한 인간관계에 적용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 외로도 ‘필리알 컨덕트(filial conduct, R. T. Ames, 자식다운 시행)’, ‘더 트리트먼트 어브 페어런츠’(the treatment of parents, Arthur Waley), ‘필리알 듀티’(filial duty) 등등의 번역이 있으나 효라는 하나의 포괄적 개념을 전달하기에는 너무도 조잡한 번역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언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마스터한 사계의 대가들의 번역이다.
가장 포괄적인 번역으로서 ‘러브 비트윈 페어런츠 앤 칠드런(love between parents and children)’이라고 한다 해보자! 그러면 ‘효’라는 개념의 특수한 느낌은 ‘러브’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보편적 패러다임 속으로 용해되어 버리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토록 기본적이고 단순한 ‘효’라는 개념이 영어로써 표현할 길이 없다니!
‘학교’를 ‘스쿨(school)’로 상응시키는 데 우리가 별로 불편이나 어색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우리의 교육체제나 학교라는 개념을 둘러 싼 대중교육의 일반적 분위기나, 커리큘럼, 양식, 감정, 건물 등등의 모든 요소들이 우리의 삶의 체험 속에서 거의 일치되는 것으로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 상응되는 스쿨이 있는 것처럼 당연히 효에 상응되는 서양말이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기대가 부서지는 당혹감에서 우리는 학교와 같이 물리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사태가 아닌 우리 삶의 양태가 얼마나 타문화권의 사람들과 다른 것인가, 그 총체적 역사성의 실상을 명료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고의 개념지도가 다른 것이다. 문명의 양태나 삶의 전승의 갈래가 다른 것이다. 무수한 겁(劫)을 통하여 알라야식(ālaya vijñāna)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들의 의미론적 결합양태가 다른 것이다.
유대교 창조신화나 희랍신들의 세계나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효 결여
유대교의 전통 속에서도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자신을 창조한 야훼 아버지와 선악과를 사이에 두고 끊임없는 긴장관계에 있다.
그리고 부인 하와(이브)와의 관계도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 하나에 불과한 종속적 존재이다. 그리고 실낙원(失樂園)과 복락원(復樂園)의 테마는 인간과 야훼와의 긴장관계가 유지된 채 인간 삶의 역사성을 계속 신화적 합목적성 속에서 전개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효라는 주제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우스(Zeus)도 아버지 크로누스(Cronus)와 끊임없는 대립적 긴장관계에 놓여있다. 티탄들의 왕인 크로누스는 부인 레아(Rhea)와의 관계에서 태어나는 자식들이 자기보다 더 강성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공포심에서 낳는 족족 그들을 다 삼켜버린다. 즉 아버지에게 자식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며 공포의 대상이며 삼켜 없애버려야 할 대상이다.
결국 레아가 갓난아기 제우스 대신 돌덩어리를 크로누스에게 줌으로써 제우스는 죽음을 모면한다. 장성한 후에 제우스는 티탄들에게 항거하는 반란을 주도하고 아버지 크로누스의 성기를 낫으로 절단하여 죽여버린다. 제우스는 아버지에 대한 반란으로써만 그 존재를 보장받은 것이다.
물론 이런 관계 속에는 효라는 덕목이 자리잡을 곳은 없다. 제우스가 올림푸스산의 전지전능의 제왕의 자리에 등극한 후에도 그에게 일차적 관심은 사랑이 아니라 정의이다. 정의(δικη)란 대립적 신들이 서로 고유의 영역을 이탈하여 침범하지 않는 상태일 뿐이다. 인간세에 관한 그의 관심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정의라는 개념에는 반드시 대립적 인간관계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신화(myth)는 인간의 삶의 양식의 투영이다. 이러한 신화(myth) 속에 사는 인간들에게 비로소 외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와 같은 인간이해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유아의 성욕(infatile sexuality)의 발견이 인간의 성욕개념을 확장시킨 프로이드의 공헌이라고 찬양하지만, 우리의 기억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그토록 상세한 설명을 통하여 인간존재의 보편적 구조를 규정하려는 정신분석학적 언어가 과연 어디까지 타당한지 우리 자신의 언어개념 지도로써는 너무도 파악하기 힘들 때가 많다. 원초성이 인간성의 근원이라는 가설, 그리고 그 근원에 인간의 보편성이 존한다는 가설도 때로는 매우 나이브한 생각일 수가 있다.
그리고 왜 유아의 정신세계를 근친상간에 대한 욕정과 금기의 갈등을 통하여서만 규정하려고 드는지, 그리고 왜 인간의 양심이나 도덕적 이상의 형성이 일차적으로 그런 외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의 극복과정에서 일어나는 동성 부모와의 동일시로써만 설명되어야 하는지, 왜 어린아이의 자기 신체의 인식이 ‘거세공포’와 같은 강박관념을 거쳐야만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특수한 뉴로시스 환자의 정신세계의 무의식적 바탕으로서 유아정신영역에 관한 판타지의 언어들은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신화적이며, 서구언어의 독특한 전승의 산물일 뿐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상징적 의미체계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매우 단순한 실존적인 것일 수 있다. 그 단순한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꼭 근친상간의 대립과 갈등과 그 극복이라는 테제를 도입해야만 할 필요성이 있는지,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유아에 대한 가설은 어차피 신기루이다. 도라(Dora)【프로이드가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뉴로시스 환자의 이름】의 의식세계를 가지고 인간 보편을 운운할 수는 없다. 서구인들의 언어 개념지도에 우리의 사유를 억지로 꿰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의 특수한 개념과 감성구조에 따라 우리 스스로의 철학을 전개해야 한다. 효라는 언어가 있는 한 효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구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효의 철학’을 전개할 수가 없다. 효라는 언어가 없는데 어찌 효의 철학이나 효의 가치관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이 기나긴 효의 가치관의 전승을 이룩한 경전이 바로 『효경』이다. 『효경』은 사라지지 않는다. 『효경』이 표방하고자 했던 그 가치관은 바로 지금 이 순간 21세기 한국인들의 혈맥 속을 흐르고 있는 것이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과 공자의 효 담론
우리는 『논어(論語)』의 구절들을 아주 상식적으로,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의식 속에 당연히 주어져 있는 평범한 사태로서 읽어버리고 말 수가 있다.
그런데 여기 『논어(論語)』 「위정」의 첫 마디, ‘맹무백이 효를 물었다[孟武伯問孝]’라는 말은 객관적인 사태의 기술로서는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왜 뜬구름 없이 갑자기 효를 묻는가? 효가 무엇이길래 공자에게 갑자기 던지는 질문의 대상이 되는가? 효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원초적 감정이고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저절로 느끼는 감성의 체계일 것이다. 결코 이성적 질문의 대상으로서 객관적 탐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라는 대 석학을 만났을 때 갑자기 맹무백이 효를 물었다는 사실은, 효가 이미 사회적 담론으로서, 즉 하나의 에피스팀(episteme, 인식)으로서 객관화되고 공론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무엇이었던가?: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일 뿐[父母唯其疾之憂].”
‘효를 물었다’ 했을 때의 효는 분명 당시의 사회적 가치를 집결시킨 하나의 개념이다. 그런데 공자의 대답은 질문의 대상이 된 개념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행하고 있질 않다. 즉 그 개념의 구조에 대한 개념적 성찰이 전혀 없다. 그리고 효라는 개념에 관하여 우리가 통상적으로 갖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방향’에 관한 복종이나 의무의 냄새가 전혀 없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을 말했을 뿐이다【불교의 은(恩)이나 기독교의 카리스마(χάρισμα)와 상통한다】. 그리고 그것은 개념적 성찰이나 설명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느낌’일 뿐이다.
여기에 바로 공자의 위대성이 있고 인간을 바라보는 그 원초적 도덕성의 진실성이 있다. 이러한 공자의 느낌에 대해 ‘외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를 운운할 수는 없다. 라캉의 ‘미끄러짐(시니피앙에 대해 시니피에가 즉각적으로 부착되지 않으며 인간의 언어는 시니피앙의 연속일 뿐이다. 시니피에는 무의식의 담론 속으로 미끄러져 숨어버릴 뿐이다)’을 운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욕망과 좌절과 갈망이 범벅이 된 인간의 갈등구조가 아닌 것이다. 『논어(論語)』에서 이미 담론화되고 있는 효를 하나의 독립된 주제로서 형상화하여 그것을 보편적 통치이념으로서 만들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물이 『효경』이라고 한다면, 과연 누가 언제 그러한 작업을 감행하였을까?
새로운 보편주의적 제국의 꿈
불란서의 좌파 지식인으로서 유럽 현대철학의 리더 중의 한 사람인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 )가 쓴 『성 바울(Saint Paul) - 보편주의의 정립(La fondation de l'universalisme)』이라는 책이 있다. 바디우는 결코 현대서구신학적 논쟁의 디테일한 맥락 속에서 바울을 해석하고 있지 않다. 마치 레닌이 맑스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러시아 공산혁명을 이룩했듯이, 예수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로마의 정치권력과 대항하는 또 다른 정신세계로서의 보편주의적 교회 - 세계질서를 창출해낸 사상가로서, 마치 하나의 콘템포러리 혁명적 이데올로그를 그리듯이 바울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누구든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었나니라. 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다. 노예도 없고 자유인도 없다.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다. 너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일 뿐이니라. (갈 3:27~28)
유대인의 좁은 율법의 테두리를 타파하고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과 희망을 선포하는 바울의 논리는, 역사적 예수라는 인간과의 해후는 완전히 생략된 채, 오직 예수가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는 부활의 케리그마(κῆρυγμα, 설교)에 매달려 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난 적도 없고, 예수라는 인간에 대한 정보도 없다. 오직 부활이라는 ‘사건’의 주체로서의 예수를 선포하고, 인간이 예수와 더불어 죽음으로써 더 이상 죽음이 지배하지 못하는 영의 인간으로서 다시 부활하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超人, Übermensch)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특권을 인간 모두에게 부여한다.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초월적 분리를 포기하고 아들로 육화됨으로써 자신을 인간과 하나 되게 하며, 분열된 인간 주체의 새로운 구성에 참여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에게 보내졌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아들의 형상으로 화했다는 것이며, 그 아들의 죽음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됨을 통하여 모든 인류는 평등한 혈연관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보편주의적 결속을 통하여 이방인(에트네ἔθνη: 유대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의 교회조직을 만들었고, 그 교회조직은 결국 로마제국을 복속시켰다. 오늘날까지도 서양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있는 정신적 제국의 엄연한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이라는 단순한 하나의 담론에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바울의 진술이 서양의 가장 거대한 정신제국을 만들었다면, 오늘날 진보적 지성인은 바울에 상응하는 새로운 혁명적 논리를 창출할 수는 없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바디우의 바울론의 배면에 깔려있다.
바울이 부활의 논리로써 로마제국을 압도시켰다고 한다면, 우리는 똑같은 가설을 세워볼 수가 있을 것이다. 『효경』의 저자는 효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담론화를 통하여 세계에서 가장 지속적인 효의 제국을 창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효경』은 제국의 꿈이었다. 과연 『효경』의 저자는 누구일까?
▲ 필자가 걷고 있는 이 자리는 현재 시리아 다마스커스 근교인데 아마도 사울의 ‘얼나’가 예수를 만난 지점으로 사료되는 곳이다.
사도행전 제9장의 기록에는 사울의 박해여행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다메섹지방 민간전승에는 사울은 걸어간 것이 아니고 말을 타고 가다가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어 낙마한 것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이 사건으로 사울은 영적인 눈을 떴고 사도바울로 변신하여 전혀 새로운 개념의 에클레시아 공동체운동을 펼쳤다. 바울은 이미 제1세기에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부활의 제국을 꿈꾸었다.
지금 21세기 한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새로운 효의 제국을 꿈꾸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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