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의 주자 『대학장구』 비판
주희는 「대학(大學)」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대학지도(大學之道)’로부터 ‘미지유야(未之有也)’까지의 한 단, 즉 삼강령 팔조목의 한 섹션만을 경화(經化, canonization)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도학(道學)의 출발경전으로서의 최고의 권위를 「대학(大學)」의 첫머리에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나머지에 오는 문장은 이 경(經)을 부연설명하는 전(傳)으로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명도(明道)는 주희가 경으로 간주한 부분에 이미 뒷 문장을 삽입해 넣었지만, 주희는 「대학(大學)」의 앞대가리 한 단은 온전하게 경(經)으로서 보전했다. 그러나 그것을 부연설명했다는 나머지 부분을 10장으로 나누어 배열하려고 하였을 때, 순서의 재배치가 불가피했다. 그리고 과연 주희가 주장하는 대로 전(傳) 10장이 정확하게 경문과 매치가 되는 지도 보장할 길이 없다. 더구나 가장 핵심적인 ‘격물치지’ 부분에 대해서는 전(傳)이 없었다. 그래서 제5장에 그 전에 해당되는 문장을 날조해서 보전(補傳)을 만들었다. 이 ‘보전(補傳)’이야말로 주자학의 핵심에 해당되는 부분이며 「대학(大學)」을 그의 사상 전체계와 연결시키는 문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희의 날조(捏造)이다.
주희 편집 이전의 『예기』 제42편 「대학(大學)」을 우리는 ‘고본대학(古本大學)’이라고 부른다. 이 고본대학과 주희의 『사서집주』본의 「대학(大學)」은 텍스트 그 자체가 다른 성격의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당부분의 유자들이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을 모른 채, 주희의 『사서집주』만을 신봉했다. 주자 「대학(大學)」 이전의 고본대학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감행한 조선 유자는 거의 없다. 이병휴(李秉休, 성호 이익의 조카)가 고본대학을 문제시 삼은 바 있고, 윤휴(尹鑴, 1617~1680)가 주자의 권위에 구애됨이 없이 새롭게 분장ㆍ분구를 시도하고 고본대학을 고수하려는 자세를 보인 것은 예외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이들의 학문성향은 전혀 체계적인 학통을 수립할 수 없었다. 주자를 잘못 건드리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리고 일가 구족이 멸망하는 판이니 그 누가 구차스럽게 그런 짓을 하겠는가? 신ㆍ구약성경과 특정신학체계의 일자무오류(一字無誤謬)적 권위를 신봉하는 자들의 작금의 작태와 별 차이가 없다.
주희가 학용(學庸), 즉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의 이러한 장구의 틀을 짠 것은 주희의 서한들로 미루어 보건대 45세부터 46세에 이르는 시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후 주자는 비로소 『효경』에 손을 대었다. 『효경』에 대해 간오(刊誤)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물론 이미 감행한 「대학(大學)」의 경ㆍ전의 틀이 그 모델로서 심중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희의 「대학(大學)」 장구작업은 문제를 많이 안고 있었기 때문에 후에 왕양명을 비롯하여 양명심학 계열 사람들의 강렬한 비판에 봉착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합리적 이유가 있었고 「대학(大學)」이라는 문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므로 주희의 「대학(大學)」 장구 작업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가 있다.
그리고 고본 「대학(大學)」에 비해 장구 「대학(大學)」이 텍스트를 크게 손상시켰다고 말하는 자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게 혹평할 이유까지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효경』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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