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선진시대 효의 담론화
『효경』이라는 책명과 내용이 인용된 최초의 사례
『효경』」이 선진문헌에서 독립된 책자로서 언급되고, 그 책의 내용이 정확하게 인용되어 있는 최초의 사례를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선식람(先識覽)」 제4, 여섯 번째 편인 「찰미(察微)」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대저 나라를 보지(保持)하는 데 있어 최상의 방책은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사태의 최초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방책은 벌어진 일이 결국 어떻게 결말지어질지를 예견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차선책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의 상황이라도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다.
凡持國, 太上知始, 其次知終, 其次知中.
이 세 가지에 능하지 못하면 나라가 반드시 위태로워지고, 군주 자신도 궁색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효경』에 이르기를 ‘높은 자리에 올라도 위태롭게 처신하지 않으면 그 높은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다. 돈이 집안에 가득 차도 그것이 넘치지 않도록 행동하면 그 부를 오래 지킬 수 있다. 부귀가 그 몸을 떠나지 않은 연후에나 능히 사직을 보전할 수 있고, 그 인민을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 초나라는 바로 이것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三者不能, 國必危, 身必窮. 『孝經』曰: “高而不危, 所以長守貴也; 滿而不溢, 所以長守富也. 富貴不離其身, 然後能保其社稷, 而和其民人.” 楚不能之也.
‘찰미(察微)’라는 것은 사태가 발발하기 이전에 그 미세한 조짐[微]을 미리 살피고 간파[察]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실례로 든 역사적 사례는 초나라와 오나라 사이에서 일어난 대 전역(戰役)이었던 ‘계보지전(雞父之戰, BC 519, 魯 昭公 23년)’을 두고 한 말이었다.
초나라 변읍으로서 오나라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비량(卑梁)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비량의 처녀와 오나라의 변읍의 처녀가 함께 변경 뽕나무 숲에서 뽕닢따며 지들끼리 놀다 어쩌다가 비량의 처녀가 생채기를 입게 된다. 그래서 비량처녀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오나라 변읍동네에 가서 사과를 요구했는데, 오처녀 아버지가 애들 싸움에 뭔 어른까지 야단이냐고 불순하게 대했다. 비량처녀 아버지가 격분한 나머지 오처녀 아버지를 격살(擊殺)하고 돌아와 버렸다. 오처녀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다시 비량으로 가서 비량처녀 한 집안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그러자 비량의 군주는, “어찌하여 오나라사람들이 내 습성을 깔보고 쳐들어 와서 우리 읍 사람들을 죽인단 말이냐”하고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 변읍으로 가서 그곳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러자 오왕 이매(夷昧, BC 543~527 재위)가 이 사실을 듣고 화가 치밀어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 비량으로 가서 그 성읍사람들을 전멸시키고 초토화시켜 버렸다. 이렇게 해서 십 년을 끄는 대 전쟁이 벌어졌는데 결국 초나라가 수치와 굴욕 당하는 패배를 맛보게 된다. 초나라의 평왕(平王, BC 528~516 재위)은 부인까지 빼앗기고 만다.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사태나 아프가니스탄사태도 그 심층에 있어서는 동일한 양상이라고 생각된다. 부시는 전혀 ‘찰미(察微)’의 덕성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오바마라도 그 미(微)를 살피고 또 살피어야 할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찰미(察微)」에서 이 계보의 전역을 사례로 들어 ‘지시(知始)’, ‘지종(知終)’, ‘지중(知中)’의 세 방책을 논의하다가 『효경』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효경』의 문장은 현재 금ㆍ고문의 「제후장」에 들어있는 원문 모습 그대로이다.
이설(異說)을 세우기를 좋아하는 주석가들이 여기 『효경』 운운하여 인용한 대목은 앞 문장에 대한 주석의 형태로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고(진창제陳昌齊 설) 말하기도 하고, 『효경』 인용 대목을 빼면 앞뒤가 더 매끄럽게 연결된다는 등(진기유陳奇猷 교석) 여러 다양한 가설을 펴고 있으나 후에 다시 상술하겠지만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문헌의 성격으로 보나(그렇게 사람들이 만지작거렸던 문헌이 아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내에 존재하는 「효행(孝行)」편에 또 다시 인용되고 있는 『효경』의 문장들을 보나 이러한 제설은 췌설(贅說)에 불과하다. 앞뒤의 연결도 초나라 군주와 오나라 군주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의미맥락이므로 『효경』의 「제후장」의 의미맥락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여씨춘추(呂氏春秋)』가 쓰여졌을 당시 『효경』이 독립된 문헌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론의 여지가 없다.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찰미」 편 기사는 『효경』이 선진시대에 독립된 책자로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부동의 확증이다.
맹자(孟子)가 말하는 인의예지와 효
잠깐 앞서 얘기했던 ‘효의 담론화’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공자에게 맹무백(孟武伯)이 효를 물었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효’가 사회적 담론으로서 개념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論語)』 「위정편」에 보면 제5장부터 제8장까지 쪼르르륵 ‘맹의 자문효(孟懿子問孝)’, ‘맹무백문효(孟武伯問孝)’, ‘자유문효(子游問孝)’, ‘자하문효(子夏問孝)’라는 식으로 양식화된 질문이 4장을 관(冠)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자 당대에 공자의 말로써 오간 상황이 기록된 것이라고 간주되기는 어렵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라는 기록에서, 아마도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라는 문장은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공자의 말로서 공문(孔門) 내에서 전송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 공자의 말을 ‘맹무백문효’라는 담론화된 질문과 연결시킨 것은 이미 효라는 개념이 사회담론으로서 등장한 이후에 이루어진 사태이다. 그것은 공자의 시대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최소한 맹자(孟子)의 시대에나 이르러서 그러한 양식으로 결합되었을 것이다. 맹자는 효를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인간의 내면적 덕성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인간의 행위라고 보았다. 효야말로 인의예지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실마리이며, 역으로 말하면 인의예지는 효를 통하여 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효(孝)도 사회화된 규범으로서의 인간의 외면적 행동이 아니라, 인간 내면으로부터 절로 우러나오는 덕성이라고 보았다.
인(仁)의 구체적 표현은 부모를 섬기는 것이다. 의(義)의 구체적 표현은 형의 의로움을 잘 따르는 것이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 효(孝)이며, 형의 의로움을 따르는 것이 제(悌)이다. 인간의 지혜(智)의 구체적 표현이란 바로 이 효제(孝悌)를 깨달아 그것이 나에게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禮)의 구체적 표현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효제(孝悌)를 절도있게 만들고 또 예의바르게 문식(文飾)하는 것이다. 음악(樂)의 구체적 표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효제를 즐기는 것이다. 즐길 줄 알면 효제의 마음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이니 어찌 효제의 마음을 그칠 수 있겠는가! 『맹자』 「이루(離婁)」
仁之實, 事親是也; 義之實, 從兄是也. 智之實, 知斯二者弗去是也; 禮之實, 節文斯二者是也; 樂之實, 樂斯二者, 樂則生矣; 生則惡可已也.
인ㆍ의ㆍ예ㆍ지ㆍ악 오자(五者)의 주요 덕목을 효제(孝悌)로써 설명하는 맹자(孟子)의 인식체계 속에서 이미 효는 충분히 담론화(episteme)되어 있다. 효에 관한 다음의 절실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아주 옛날에는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땅에 묻지를 않고 그냥 버려두는 습속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 그 어버이가 돌아가시자, 그 시신을 들고 가서 야산 구덩이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여우와 살쾡이가 자기 어버이를 파먹으며, 파리와 등에가 새카맣게 모여 빨아먹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흘겨보기는 한들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대저 그 자의 이마에 왜 땀방울이 맺혔을까? 그것은 남들이 보기 때문에, 체면 때문에 땀방울이 맺힌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 깊은 감정이 절로 얼굴과 눈시울에 북받친 것이다. 얼른 돌아와 삼태기와 들것에 흙을 담아 뒤집어 쏟아 시신을 엄폐하였다. 시신을 엄폐하는 것이 진실로 옳은 행동이라고 한다면, 효자(孝子)와 인한 사람(仁人)이 부모의 시신을 엄폐하는 방식에 있어서 반드시 도리가 있을 것이니, 그냥 흙이나 덮고 말 리는 없다(후한 장사를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등문공(滕文公)」
蓋上世嘗有不葬其親者. 其親死, 則擧而委之於壑. 他日過之, 狐狸食之, 蠅蚋姑嘬之. 其顙有泚, 睨而不視. 夫泚也, 非爲人泚, 中心達於面目. 蓋歸反虆梩而掩之. 掩之誠是也, 則孝子ㆍ仁人之掩其親, 亦必有道矣.
맹자(孟子)의 논리는 매우 강렬하다. 외면적으로는 발생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논리를 펴고 있지만, 그것이 소기하는 바는 내면주의적이고, 선천주의적이며, 강렬하게 도덕주의적이다. 이것은 맹자(孟子)가 ‘효(孝)’를 담론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등문공」의 문장도 묵가(墨家)의 박장(薄葬)을 의식하면서 논쟁의 한 테제로서 반박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미 효가 선진철학의 한 중심과제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孟子)』라는 서물 속에서 이러한 효에 관한 언급은 무수히 찾을 수 있으나, 내면주의적이고, 선천주의적이며, 도덕주의적인 입장을 맹자(孟子)는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맹자보다 한 반세기 늦다고 사료되는【전목(錢穆)의 『선진제자계년(先秦諸子繫年)』에 의거】 순자(荀子)의 논의는 맹자(孟子)와 전혀 길을 달리하고 있다.
맹자(孟子)를 반박하는 순자의 명쾌한 논리
데카르트의 코기탄스(cogitans)로부터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monadology)에 이르는 모호한 선험적 명제들을 대하다가, 갑자기 존 록크(John Locke, 1632~1704)의 ‘백지(white paper)’【록크는 『인간오성론』 속에서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그것은 1700년 삐에르 코스테Pierre Coste가 『인간오성론』을 불어로 번역할 때 아리스토텔레스 저작물의 라틴어 번역개념을 부과하여 날조한 개념이며 전혀 록크의 의도와 관련없다】를 대하는 느낌을 받는다. 록크는 『인간오성론』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백지로써 태어나며, 그 백지 이전의 감성에 주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 백지 위에 무한히 다채로운 저작물을 그려넣는 것은 오직 경험(experience)이라고 주장한다.
무엇이 이 백지 위에 무한히 다채로운 추론과 지식의 저작물을 그려 넣었을까? 이에 대하여 내가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경험으로부터’라고 나는 말하겠다. 경험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지식이 근거하는 것이며, 경험으로부터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Whence has it all the materials of reason and knowledge? To this I answer in one word, from experience: in that all our knowledge is founded, and from that it ultimately derives itself. (Book I, Ch.1, Sec.2).
록크는 백지(白紙)라는 말을 통하여 플라톤이나 데카르트, 그리고 스콜라철학자들이 인간의 마음속에는 본래적으로 어떤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나 도덕적 원리 같은 것이 구유되어 있다고 하는 모든 선험론적 주장을 통박하고 있는 것이다.
자아! 이제 맹자(孟子)를 반박하는 순자(荀子)의 명쾌한 논리를 한번 들어보자
지금 사람의 본성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배고프면 배불리 먹으려 하고, 추우면 따습게 몸을 뎁히기를 원하고, 일을 많이 하여 피곤하면 쉬기를 원한다. 이것이 곧 사람의 성정이다(타고난 대로의 감정이나 생리의 경향성, 그것을 순자는 곧 본성이라고 규정한다).
今人之性, 飢而欲飽, 寒而欲煖, 勞而欲休, 此人之情性也.
지금 사람이 배가 고픈데도 윗사람을 보면 감히 먼저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하여 피곤한데도 감히 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대저 아들이 아버지에게 양보하고 동생이 형에게 양보하는 것과, 아들이 아버지 일을 대신하고 동생이 형 일을 대신하는 것, 이 두 가지 행동은 인간의 본성(性)에 반(反)하는 것이며 인간의 정리(情理)에 어긋나는 것이다.
今人飢, 見長不敢先食者, 將有所讓也. 勞而不敢求息者, 將有所代也. 夫子之讓乎父, 弟之讓乎兄; 子之代乎父, 弟之代乎兄, 此二行者, 皆反於性而悖於情也.
그러므로 효자의 도리라고 하는 것은 후천적 예의의 학습을 거쳐 수식된 질서이다. 그러니 성정을 솔직히 따르게 되면 사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양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적 성정에 패역(悖逆)하는 것이다.
然而孝子之道, 禮義之文理也. 故順情性則不辭讓矣, 辭讓則悖於情性矣.
이러한 사실로써 인간의 문제를 살펴본다면, 인간의 본성이 본시 혐오스럽다(惡: ‘악’으로 읽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善: 좋다)하다고 하는 것은 후천적 습득에 의한 작위[僞]일 뿐이다.
用此觀之, 然則人之性惡明矣, 其善者僞也. 「성오(性惡)」
이것은 순자(荀子)가 맹자(孟子)의 성선(性善)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성오(性惡)의 논리의 일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순자(荀子)의 학설을 성악(性惡)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순자(荀子)는 ‘성악’을 말한 적이 없다. 맹자(孟子)의 선(善)도, 순자(荀子)의 악(惡)도, 어떤 윤리적 실체를 말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순자(荀子)의 ‘惡’는 ‘악’으로 읽지 말고 ‘오’로 읽어야 한다. 선진철학에 있어서는 조로아스터교ㆍ유대교ㆍ기독교의 윤리와는 달리 선ㆍ악이 실체화되지 않는다. 순자(荀子)는 인간의 본성이 호오(好惡)의 주체임을 말했을 뿐이다(「性惡」).
人之性惡, … 生而有疾惡焉.
‘인지성오(人之性惡)’라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질오(疾惡)’함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실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가능성을 태어난 대로의 본성에 다 부여해버리면 후천적 학습의 필요성이나 의미가 다 상실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진흙을 이겨 기와를 만드는 도자기꾼[陶人]이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어떻게 타고난 본성 그대로 도자기를 만든단 말인가? 어찌 목공이 나무를 깎아 기물을 만드는 것이 목공의 타고난 대로의 재주란 말인가? 성인이 예의를 만들어내는 것은 도자기꾼이 진흙을 빚어 기와를 만들어내는 것과 똑같은 후천적 학습의 과정이라는 것이다[聖人之於禮義積僞也, 亦猶陶埏而生之也],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요ㆍ순이나 걸왕ㆍ도척이나 다 동일한 것이다[堯舜之與桀跖, 其性一也], 예의나 축적되는 인간의 후천적 노력을 인간의 본성에 고유한 것이라고 해버린다면 요임금ㆍ우임금을 귀하게 여길 까닭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걸왕ㆍ도척ㆍ소인배들을 천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들이 타고난 본성 그대로를 따르고[從其性], 자기 감정 흐르는 대로 제멋대로 행동하며[順其情], 결국에 가서는 이익을 탐내고 타인의 물건과 행복을 다투어 빼앗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효와 관련하여 순자(荀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이 어찌하여 증삼(會參)과 민자건(閔子爲)과 효기(孝己: 은나라 고종高宗의 태자로서 효행으로 유명)만을 사적(私的)으로 사랑하고, 그 외의 뭇사람들은 다 제켜 두었을까보냐!
天非私曾ㆍ騫ㆍ孝己而外衆人.
그런데도 유독 이 세 사람만이 효의 실천에 있어서 홀로 돈독하여 효의 이름을 독차지한 것은 무슨 까닭이뇨?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삶의 과정을 통하여 예의의 실천에 극도로 헌신했기 때문인 것이다.
然而曾ㆍ騫ㆍ孝己獨厚於孝之實而全於孝之名者, 何也? 以綦於禮義故也. 「性惡」
순자(荀子)에게 있어서 효란 후천적 노력과 학습의 결과일 뿐이다. 선천적 도덕원리의 자연스러운 발로가 아니다. 우리는 경험론자들의 논리가 합리론자들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신화적 얼버무림이 없기 때문이다. 순자(荀子)의 논리야말로 오히려 공자의 적통일 수 있다. 공자가 말하는 도덕성을 더 합리적으로 발전시킨 사상가일 수가 있다.
순자의 냉철한 합리주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효가 논쟁의 중심과제로서 담론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효의 담론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효경』의 성립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순자(荀子)의 냉철한 합리성은 다음의 논지에서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순자(荀子)의 합리주의는 우리가 『삼강행실도』의 비판적 검토에서 논의한 바, 인륜관계의 쌍방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일방적 관계는 결국 인간세에 파탄을 가져올 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순자(荀子)는 인륜관계의 무차별적 평등이라는 것은 혼란을 의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는 인정하지만 복종주의나 권위주의는 수용하지 않는다. 그는 우선 군ㆍ신, 부ㆍ자, 형제, 부ㆍ부의 관계가 인륜도덕의 근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군신ㆍ부자ㆍ형제ㆍ부부 이 네 관계는 시작하면 끝이 나고, 끝나면 또다시 시작하여 무궁한 순환고리를 이루는 것이니, 천지와 이치를 같이 하고, 만세와 더불어 같이 영원하다. 이러한 것을 일컬어 대본(大本)이라 말하는 것이다. 「왕제(王制)」
君臣ㆍ父子ㆍ兄弟ㆍ夫婦, 始則終, 終則始, 與天地同理, 與萬世同久, 夫是之謂大本.
그것이 우주만물의 큰 근본인 만큼, 그것은 예에 합당하고, 의에 합당하여야 하며, 쌍방이 호혜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라야만 한다. 그가 임금의 바른 도(君道)를 말하는 첫마디는 매우 함축적이고 시사적이다.
혼란한 임금이 있어 혼란한 나라가 있는 것이지 혼란한 나라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다스리는 인물이 있고 나서 좋은 법이 있는 것이지 나라가 저절로 잘 다스려지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군도(君道)」
有亂君, 無亂國; 有治人, 無治法.
난군(亂君)만 있고 난국(亂國)은 없다. 치인(治人)만 있고 치법(治法)은 없다. 천하의 명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순자(荀子)의 합리주의에 깔린 깊은 인민대중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21세기에도 이러한 메시지는 강렬하게 우리 체험의 한복판을 쑤시고 들어온다. 어찌 ‘어지러운 대한민국’이 있을까 보냐? 단지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권력자들만 있을 뿐이다. 다스리는 사람[治人]만 있고 다스리는 법[治法]은 없다라고 말하는 뜻은, 아무리 법이 완전해도 법 자체로써 사회에 질서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 법을 해석하고 운용하는 사람이 훌륭해야 치법은 치법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뜻이다.
유의 적통, 법가적 합리성의 새 국면 개척
오늘날 법제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순자(荀子)의 명제는 매우 적확한 의미를 지닌다. 순자(荀子)는 유ㆍ법을 통합하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儒)의 적통성을 지키면서 법가적 합리성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묻건대, 사람의 임금(人君)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예를 기준으로 하여 신하들에게 관작과 봉록을 나누어주는데 공평하고 두루 미치게 하여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없어야 임금이다.
請問爲人君? 曰, 以禮分施, 均徧而不偏.
묻건대, 사람의 신하[人臣]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예를 기준으로 하여 임금을 대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따르고 나태함이 없어야 신하이다.
請問爲人臣? 曰, 以禮待君, 忠順而不懈.
묻건대, 사람의 아비[人父]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자식에게 관대하고 자혜를 베풀며 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아비이다.
請問爲人父? 曰, 寬惠而有禮.
묻건대, 사람의 자식[人子]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며 예를 극진히 하는 것이 자식이다.
請問爲人子? 曰, 敬愛而致文.
묻건대, 사람의 형[人兄]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자비로운 마음으로 동생을 사랑하며 우애를 나타낼 줄 알아야 형이다.
請問爲人兄? 曰, 慈愛而見友.
묻건대, 사람의 동생[人弟]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형에게 굽힐 줄도 알고 공경하며, 가급적 형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해야 동생이다.
請問爲人弟? 曰, 敬詘而不苟.
묻건대, 사람의 남편[人夫]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부인에게 공을 세우면서도 그것을 자랑치 아니 하며, 부인과 허물없이 화합하면서도 음란치 아니 하고, 위엄을 나타내면서도 정확한 분변이 있어야 남편이다.
請問爲人夫? 曰, 致和而不流, 致臨而有辨.
묻건대, 사람의 아내[人妻] 된다 함이 무엇이뇨? 대답컨대, 남편이 예가 있으면 부드럽게 따르고 잘 들어 모실 줄 알고, 남편이 예가 없으면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송구스럽게 대하면서도 스스로의 위엄을 잃지 않아야 아내이다.
請問爲人妻? 曰, 夫有禮則柔從聽侍, 夫無禮則恐懼而自竦也.
이러한 사람의 윤리의 도(道)야말로, 한 편으로 치우치면 가정과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이요, 쌍방적으로 같이 제 길을 가면 가정과 나라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사람들이 계고(稽考)하고 또 계고해야 할 일이다.
此道也, 偏立而亂, 具立而治, 其足以稽矣. 「군도(君道)」
여기 「군도(君道)」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편립이란, 구립이치(偏立而亂, 具立而治)’라는 명제이다. 인간의 윤리는 쌍방적이고 호혜적일 때만이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들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깊게 깊게 생각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순자(荀子)의 합리주의는 시대적 한계 즉 군주제의 기미(羈縻)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이나 ‘개인’의 개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순자(荀子)를 통해서 바라볼 수 있는 선진시대의 일반적 사회윤리가, 맹자(孟子)를 적통으로 해서 생각한 송대 이후의 가치관에 비하면, 오히려 발랄한 평등적 인간관을 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삼강행실도』에서 가장 문제시 삼았던 효의 충화(忠化)라는 테제에 있어서도 순자(荀子)는 명료하게 합리적인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무조건 윗 사람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효인가? 물론 오늘날에도 대 교회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신도들이 하나님의 이름 아래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행복하게 여길 것이고, 국가 정치조직을 이끌어가는 우파나 좌파나 모두 국민들이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을 행복하게 여길 것이다.
순자(荀子)는 인륜관계에 있어서 그 관계를 설정케 하는 인간 개체 항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개체항목들을 초월하는 도(道)나 의(義)와 같은 추상적 원리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도의(道義)의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고, 그것이 인간의 주관적 임의성에 굴복되면 그것은 결코 순종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슬람(Islam)’이 일차적으로 ‘복종’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사태이다. 그 나름대로 어떠한 정당성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복종을 통해서만 평화를 얻는다는 것은 인간세에서 배제되어야 할 윤리이다. 아무리 추상적 절대자일지라도, 인간의 사유나 언어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복종이라는 인간적 윤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 초월적 타자를 기만적 존재로 비하시키는 것이다. 초월자이기 때문에 언어를 초월한다고 하면 인간의 모든 협애한 도덕도 초월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은 복종되어서는 아니 된다. 순자(荀子)는 말한다.
집에 들어오면 어버이께 효도를 다하고, 밖에 나가면 어른에게 공경을 다하는 것, 이런 것은 인간의 소행(小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윗사람에게 고분고분 따르고, 아랫사람에게 두터운 인정을 베푸는 것, 이런 것은 인간의 중행(中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入孝出弟, 人之小行也. 上順下篤, 人之中行也.
오직 도(道)를 따르고 임금을 따르지 아니 하며, 오직 의(義)를 따르고 아버지를 따르지 아니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대행(大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從道不從君, 從義不從父, 人之大行也.
만약 이 위에 그 뜻이 예를 기준으로 하여 평온함을 유지하고, 그 말이 정확한 논리를 기준으로 하여 아름답게 구사된다면 유도(儒道: 지식인의 합리성)가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지극한 효자인 순(舜) 임금이라 할지라도 한 터럭 만큼이라도 이에 더할 것은 없을 것이다. 「자도(子道)」
若夫志以禮安, 言以類使, 則儒道畢矣, 雖舜不能加毫末於是矣.
순자(荀子)의 모습을 잘그려내고 있는 초상화. 남훈전(南薰殿) 장(藏) 『역대성현명인상(歷代聖賢名人像)』에 실려 있다. 청(淸)나라 내부(內府)에 전해 내려오는 유서깊은 초상화로서 순자(荀子)의 기품을 잘 표현하고 있는 명작이다. 자신에 넘치는 당당한 풍도와 말끔한 자태는 그의 합리주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전국시초난릉령순황(戰國時楚蘭陵令荀況)’【전국시기의 초나라 난릉의 令, 순황】이라고 쓰여져 있다.
군ㆍ부(君父)라도 도의(道義)를 구현치 않으면 따르지 말라
여기 「자도(子道)」의 충격적인 메시지는 ‘종도부종군(從道不從君), 종의부종부(從義不從父)’이다. 송ㆍ명ㆍ청대의 윤리와는 너무도 다른 것이다. 임금이라도 도(道)를 구현하는 자가 아니면 따라서는 아니 되는 것이요, 아버지라도 의(義)를 구현하는 인간이 아니라면 따라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도와 의는 인간 개체의 임의성을 초월하는 객관적 사회적 원리요 기준이다.
효자가 어버이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 어버이의 명을 따르면 오히려 어버이가 위태롭게 되고,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어버이가 안전하게 되는 경우, 효자라면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충정(衷情)【여기서 ‘충(忠)’ 대신 ‘충(衷)’이라는 어휘를 택한 것도 순자(荀子) 표현의 특징에 속한다】이다.
어버이의 명을 따르면 어버이가 욕을 보게 되고,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어버이가 영예롭게 되는 경우, 효자라면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의(義)로운 것이다.
어버이의 명을 따르면 어버이가 금수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어버이가 예절을 되찾게 되는 경우, 효자라면 어버이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 경(敬)이다.
孝子所以不從命有三, 從命則親危, 不從命則親安, 孝子不從命乃衷,
從命則親辱, 不從命則親榮, 孝子不從命乃義,
從命則禽獸, 不從命則脩飾, 孝子不從命乃敬.
그러므로 마땅히 어버이의 명을 따라야 할 때 따르지 아니 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요[不子], 마땅히 어버이 명을 따라서는 아니 될 때 어버이 명을 따르는 것은 자식의 충정이 아니다[不衷]. 따라야 할 것이냐! 따라야 하지 말 것이냐! 그 의로운 기준을 명백하게 하여, 공경(恭敬)과 충신(忠信: 진실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과 단각(端慤: 정성어린 단정함)을 다하여 신중하게 실천하여 나간다면 비로소 그것을 일컬어 대효(大孝)라 할 수 있는 것이다.
故可以從而不從, 是不子也, 未可以從而從, 是不衷也, 明於從不從之義, 而能致恭敬忠信, 端慤以愼行之, 則可謂大孝矣.
여기서 이미 우리는 ‘존재할 것이냐, 존재하지 않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를 외치는 햄릿의 처절한 독백의 함성을 들을 수 있다. 햄릿에게서 존재(to be)와 비존재(not to be)의 명제가 삶과 죽음의 선택의 기로를 의미했다면 이미 ‘따를 것이냐[從], 아니 따를 것이냐[不從]’ 놓고 고민하는 효자의 독백 속에도 삶과 죽음의 무수한 기로들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존재와 비존재, 따름과 따르지 아니 함의 ‘아이더 오아(either or)’를 근원적으로 초탈하는 객관적 규범을 순자(荀子)는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순자(荀子)가 말하는 대효(大孝) 속에는 소효(小孝)의 갈등들이 극복되어 있다. 『부모은중경』이 제시하는 보편적 담론이 이미 예시되어 있다. 이것은 전국시대에 이미 효(孝)라는 개념에 대한 모든 갈등구조가 충분히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정직한 대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효는 사회적 담론(episteme)으로서 정착되어간 것이다.
순자가 말하는 군신관계: 간(諫)ㆍ쟁(爭)ㆍ보(輔)ㆍ불(拂)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이와 같이 묻는다: “아들이 아버지의 명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효(孝)입니까[子從父命, 孝乎]? 신하가 임금의 명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정(貞)입니까[臣從君命, 貞乎]?”
여기 순자의 어휘선택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후대의 ‘군신관계’에서 고착적으로 사용된 ‘충(忠)’이라는 말을 일부러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충 대신 ‘정(貞)’이라는 단어를 썼다. ‘정’에는 ‘곧음’ ‘절개’ ‘정절’의 의미가 더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정은 충(loyalty)을 의미한다.
애공이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물었어도 공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물러났다. 물러난 뒤 공자는 자공에게 말하였다: “애공이 나에게 아들이 아버지 명을 따르는 것이 효이고, 신하가 임금 명을 따르는 것이 충정이냐고 물었다. 세 번이나 되풀이해서 물었는데도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賜)여! 그대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자 자공이 대답한다: “아버지 명을 따르는 것, 임금 명을 따르는 것, 당연한 진리 외로 또 무슨 대답이 있겠나이까[子從父命, 孝矣, 臣從君命, 貞矣, 夫子有奚對焉]?”
이러한 자공의 상식적 가치관에 대하여 공자는 자공을 나무라며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한다.
사(賜)【자공의 이름, 제자를 친근하게 부를 때는 자(字)를 취하지 않고 명(名)을 취한다】 이놈 너 소인이로구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옛부 만승(萬乘)의 나라에 간쟁하는 신하(臣) 넷만 있어도 나라의 국경이 오그라드는 일이 없고, 천승(千乘)의 나라에 간쟁하는 신하 셋만 있어도 사직이 위태롭지 않고, 백승(百乘)의 가(家)에 간쟁하는 신하 둘만 있어도 종묘가 훼손당할 일이 없다. 또 아버지에게 간쟁하는 아들이 있으면 무례(無禮)를 행치 아니 하고, 선비에게 간쟁하는 벗이 있으면 불의(不義)를 행치 아니 한다.
小人哉! 賜不識也. 昔萬乘之國有爭臣四人, 則封疆不削; 千乘之國有爭臣三人, 則社稷不危; 百乘之家有爭臣二人, 則宗廟不毁. 父有爭子, 不行無禮; 士有爭友, 不爲不義.
그러니 어찌하여 아들이 아비의 명을 좇는 것만이 아들의 효일 것이며, 어찌하여 신하가 군주의 명을 좇는 것만이 신하의 충정(貞)일까 보냐? 아버지나 군주의 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따라야 할 것인지 안 따라야 할 것인지 그 소이(所以: 까닭)를 밝혀 행동하는 것, 그것을 효라 일컫고, 그것을 충정이라 일컫는 것이다. 「자도(子道)」
故子從父, 奚子孝? 臣從君, 奚臣貞? 審其所以從之, 之謂孝, 之謂貞也,
순자(荀子)가 말하는 논리는 바로 ‘심기소이종지(審其所以從之)’라는 이 한마디로 집약된다. 복종 그 자체가 충ㆍ효가 될 수가 없다. 과연 왜 복종을 해야 하는지, 그 이치가 납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불편한 논리를 순자(荀子)는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정이천이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는 『주역』 「계사」의 명제에 대하여, ‘도는 음양 그 자체가 아니다. 일음일양 하게 하는 그 까닭이 바로 도이다[道非陰陽也, 所以一陰一陽者道也].’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이것이 바로 기(氣)와 리(理)를 나누는 성리학의 기본명제가 되었는데, 이미 그러한 사유의 시원을 순자(荀子)의 사유패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순자(荀子)는 군신관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임금에게 그릇된 모책(謀策)과 그릇된 사업이 있어, 장차 그것으로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사직을 멸망시킬 수 있는 두려움이 있을 때에, 대신(大臣)이나 부형(父兄) 중에 충직한 사람이 있어, 임금에게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진언함에, 다행히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그것으로 좋으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간(諫, remonstrance)이라고 한다.
君有過謀過事, 將危國家, 殞社稷之懼也, 大臣父兄有能進言於君, 用則可, 不用則去, 謂之諫.
또 임금에게 잘못을 진언하였다가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다행이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그냥 물러서지를 않고 죽을 때까지 간하는 것을 쟁(爭, wrangling)이라고 한다.
有能進言於君, 用則可, 不用則死, 謂之爭.
또 곧잘 지혜를 합하고 힘을 모아 여러 대신과 여러 하급관리들을 통솔하여 서로서로 임금에게 선을 강권하고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도록 한다.
有能比知同力, 率羣臣百吏而相與彊君撟君.
이에 임금은 비록 속으로는 불쾌하지만 아무래도 신하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하여 나라의 대환(大患)을 풀고, 나라의 대해(大害)를 제거하며, 오히려 임금의 존엄을 세우고 나라의 안녕을 꾀하는 것, 이것을 일컬어 보(輔, assistance)라 한다.
君雖不安, 不能不聽, 遂以解國之大患, 除國之大害, 成於尊君安國, 謂之輔.
그리고 곧잘 임금의 명령에 항거하며, 임금의 권위를 몰래 빌어, 임금의 사업의 방향을 틀며,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위기를 벗어나게 하고, 임금의 치욕을 제거하고 그 공적이 족히 나라에 큰 이익을 가져오고도 남음이 있는 것, 이것을 일컬어 불(拂, opposition)【이상의 4개 영역 개념은 『순자(荀子)의 영역자인 노블록(John Knoblock)의 번역이다. 여기 ‘불’은 위배의 뜻이므로 ‘필’로 읽으면 안 된다】이라고 한다.
有能抗君之命, 竊君之重, 反君之事, 以安國之危, 除君之辱, 功伐足以成國之大利, 謂之拂.
그러므로 간ㆍ쟁ㆍ보ㆍ불의 사람들이야말로 사직의 충신이요, 국군(國君)의 보배이다. 명군(明君)은 이들을 두텁게 존중하지만 암주(闇主)나 혹군(惑君)은 도리어 자기를 해치는 적(賊)으로 여긴다.
故諫, 爭, 輔, 拂之人, 社稷之臣也, 國君之寶也, 明君之所尊厚也, 而闇主惑君以爲己賊也.
그러므로 명군이 상을 내리는 보배로운 신하는 암군에게는 벌을 내려야 할 대상이 되고, 암군이 상을 내리는 신하는 명군에게는 주살해야 할 역신이다. 「신도(臣道)」
故明君之所賞, 闇君之所罰也, 闇君之所賞, 明君之所殺也.
「신도(臣道)」의 말, 이것은 바로 ‘종도부종군(從道不從君)’의 다른 표현이다. 때로는 위배(違背)야말로 진정한 충순(忠順)이 된다. 신하가 힘써야 할 것은 군주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순자(荀子)의 합리주의 정신은 법가(法家)의 객관주의로 발전해나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순자(荀子)의 사상이 『효경』에 전면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것이다【『순자』 「자도(子道)」 편이 『효경』, 「간쟁장(諫諍章)」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우리의 논의는 명료해진다. 『효경』의 성립시기는 순자(荀子) 이후, 『여씨춘추(呂氏春秋)』 이전으로 집약된다. 순자(荀子)의 전성활동시기를 BC 280년 정도로 잡는다면,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성립시점은 BC 241년이 되므로 BC 3세기의 중반 전후로 추정될 수 있다
▲ 여불위(呂不韋)가 활약했고 진시황이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조(趙) 나라의 수도 한단, 2005년 EBS다큐멘타리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 10부작’을 찍기 위해 태항산맥 마전(麻田) 팔로군총사령부로 가는 길에 필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팔로군총사령부 곁에 무정, 최창익, 진광화, 윤세주 등이 이끌었던 조선의용군 화북본부가 있었다. 개울 건너 보이는 건물들은 조나라의 옛모습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국시대에는 화려한 국제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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