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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어떻게 시대를 나눌 것인가 수천 년에 이르는 동양의 역사시대 전체를 하나로 뭉뚱그려 살펴보기는 어려울뿐더러 섣부르게 달려들다간 산만해지게 된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시대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사실 시기 구분의 문제는 역사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주제에 속한다. 역사학자들은 역사시대를 정치적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사회경제적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시간 순서에 따라 편의적으로 고대, 중세, 근세, 현대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역사를 ‘연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목적을 가장 손쉽게 이룰 수 있는 구분을 택하기로 한다. 모든 개별 역사는 발생하고 성장하고 세계사에 섞이는 시대를 거친다. 마치 한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어 사회에 뛰어들게 되는..
동양사의 세 가지 축 동양이라는 말이 서양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해서 무작정 폐기 처분할 것까지는 없다. 사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일본은 7세기 무렵에 그전까지 ‘왜(倭)’라고 불리던 자기들 이름을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의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당시 일본의 지배자였던 쇼토쿠(聖德) 태자는 중국 수 제국에 보내는 서신에 이렇게 썼다. “해가 뜨는 곳의 천자가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일본과 중국을 대등하게 간주한다는 말인데, 물론 수의 황제인 문제(文帝)는 크게 노여워했다. 그러나 해는 일본에서 떠서 중국에서 진다는 뜻이니, 당시 동양인들 역시 당시 서양인들처럼 자기네 지역을 세계의 전부라고 여긴 것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본다면 유럽인들이 ..
프롤로그: 동양의 태어남과 자람, 그리고 뒤섞임 동양이라는 말 보통 해가 뜨는 방향을 동쪽이라고 말하지만, 지구는 둥그니까 어디가 동쪽이라고 못 박을 수는 없다. 동양이라는 명칭은 사실 유럽인의 시각에서 나왔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고대와 중세의 유럽인들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이 지구의 전부라고 여겼다. 그나마도 그들이 아는 아시아는 소아시아와 인도에 불과했고, 아프리카는 사하라 이북에 국한되었다. 아프리카는 유럽의 남쪽에 있으므로 동서 방향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서쪽에 있다고 믿었고, 유럽에서 동쪽으로 멀리 뻗어 있는 아시아를 동양(East)이라고 불렀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직 동방의 끝까지 와본 적이 없었으므로 주로 지금의 서아시아 지역을 동..
지은이의 향기가 나는 종횡무진 시리즈가 되기를 바라며 깊으면 좁아지고 넓으면 얕아지게 마련이다. 그럼 깊으면서도 넓을 수는 없을까? 16년 전 종횡무진 시리즈를 시작할 때부터 늘 나를 괴롭혀온 질문이다. ‘종횡무진(縱橫無盡)’이라는 표제가 말해주듯이, 이 시리즈는 전문가용 학술서가 아니라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를 위한 대중서다. 하지만 넓어지면 얕아진다는 대중서의 ‘숙명’을 피하기 위해 나는 일반 대중서에는 없는 요소들을 과감히 끌어들였다. 구어적인 서술 방식이라든가 빠른 진행은 대중서 특유의 생동감을 불어넣으려는 시도였지만, 대담한 사건 연결이나 인물 비교는 역사 교과서나 대중서에서 볼 수 없는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한 결과였다. 이렇게 두 마리 토끼를 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가는 봄, 오는 여름에도 한문공부 삼매경에 빠지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1년은 11월과 12월, 그리고 그 다음 해 1월과 2월만 기억에 남는다. 나머지 시간은 그저 하염없이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이니, 그날이 그날 같고 저날이 저날 같은 무색무취의 시간들로 채워진다. 그러니 1년이란 단위로 놓고 볼 땐 1월이 새해의 시작이란 의미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곧 다가올 2차 시험을 위한 맹렬한 준비기간이자 미련없이 2차 시험을 봐야 하는 시간이며 2월은 그 결과를 봐야만 하는 시간이다. 이때 붙게 되면야 3월부턴 전혀 새로운 인생의 장이 펼쳐질 테지만 나처럼 떨어진 경우엔 또 임용시험을 맹목적으로 준비해야 하니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러다 1차 시험이 있는 11월이 되어서야 다시 시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