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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07 月令之家, 蟲食穀稼, 取蟲所類象之吏, 笞擊僇辱, 以滅其變. 實論者謂之未必眞是. 然而爲之, 厭合人意. 今致雨者, 政也, 吏也, 不變其政, 不罪其吏, 而徒攻社, 能何復塞? 苟以爲當攻其類, 衆陰之精, 月也. 方諸鄕月, 水自下來. 月離于畢, 出房北道, 希有不雨. 月中之獸, 免·蟾蜍也. 其類在地, 螺與蚄也. 月毁於天, 螺·蚄舀缺, 同類明矣. 雨久不霽, 攻陰之類, 宜捕斬免·蟾蜍, 椎被(破)螺·蚄, 爲{其}得[其]實. 蝗蟲時至, 或飛或集, 所集之地, 穀草枯索. 吏卒部民, 塹道作埳, 榜驅內於塹埳, 杷蝗積聚以千斛數. 正攻蝗之身, 蝗猶不止, 况徒攻陰之類, 雨安肯霽? 인용목차
7. 자로와 염구와 공서화는 인합니까? 5-7. 맹무백(孟武伯)이 여쭈었다: “자로는 인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5-7.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그러자 맹무백은 다시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由: 자로의 이름)는 천 수레의 나라라도 그 군재정을 맡겨 다스리게 할 만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又問.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그렇다면 구(求: 염유의 이름)는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구는 천 가호의 읍이나 백수레의 대부 영지에서 지방장관을 하게 할 만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求也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그러면 적..
6.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떠나고 싶어라 5-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의 도가 실현되지 않는구나. 뗏목을 타고 바다에 둥둥 떠 있고 싶다. 이럴 때 나를 따르는 자는 오직 유(由: 자로의 이름) 이겠지?” 5-6. 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 시었다: “유는 용맹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 나를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는 사리를 헤아리는 바가 부족하다.”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논어』는 자로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우리가 공자를 성인이라 부른다면, 진정으로 우리가 아성(亞聖)이라 부를 사람은 안회보다도 자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공자는 자로와 더불어 역사에 등장하였고 자로와 더불어 역사에서..
5.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 칠조개 5-5. 공자께서 칠조개에게 벼슬을 권하시었다. 칠조개가 그것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저는 벼슬하는 것에 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기뻐하시었다. 5-5. 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칠조개(漆彫開)는 『논어』 전편을 통하여 단지 이 장에서 한번 언급되고 있는 인물이다. 성이 칠조(漆雕) 이름이 개(開)다. 원래 그 이름이 계(啓)였는데, 한(漢)나라 경제(景帝)의 실명이 계(啓)였기 때문에 존귀한 사람의 이름을 경피(敬避)하는 과거의 풍습 때문에 한때 그 이름이 개(開)로 기술된 것이다. 그런데 공안국(孔安國)이 그의 이름을 개(開)로 표기하면서 계라는 원명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마천의 「열전」은 칠조개의 자(字)가 자개(子開)..
4. 중궁은 어질지만 말재간은 없다 5-4. 누군가 말하였다: “옹(雍)은 인하기는 한데 말재주가 없습니다.” 5-4. 或曰: “雍也仁而不佞.”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말재주를 도대체 어디에 쓰겠다는 거냐? 약삭빠른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아, 자주 남에게 미움만 살 뿐이니,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으나 말재 주를 도대체 어디에 쓰겠다는거냐?”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옹(雍)은 성(姓)이 염(冉), 명(名)이 옹(雍), 자(字)가 중궁(仲弓)이다. 제자적(弟子籍)의 본래 모습을 더 가깝게 전달하고 있는 『공자가어』의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는 옹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염옹은 자가 중궁이다. 염백우의 같은 종족이다. 매우 못난 아버지 ..
3. 자장은 호련과 같은 사람이다 5-3. 자공이 여쭈어 말하였다: “저는 어떻습니까?” 5-3. 子貢問曰: “賜也何如?”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너는 그릇이다.” 子曰: “女器也.” 자공이 이어 “어떤 그릇입니까?”하고 되묻자, 曰: “何器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귀한 호련(瑚璉) 옥그릇이다.” 曰: “瑚璉也.” 자공(子貢)은 현실적인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공자학단의 경제적 지원자였고 정치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인물이었다. 자공은 아마도 공자가 자천에 대하여 그렇게 높은 평가를 하는 것을 보고 샘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도 공자에게 어떤 평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자공문왈(子貢問曰)’이라는 최초의 구절은 그러한 자공의 안달복달하는 심정을 잘 나타내고 ..
2. 자천을 군자라 칭찬하다 5-2. 공자께서 자천(子賤)을 평하여 말씀하시었다: “군자로다! 이 사람이여. 노나라에 군자의 전통이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덕성을 취했겠는가?” 5-2. 子謂子賤,“君子哉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 자천은 누구인가? 공자가 말년에 노나라에 돌아왔을 때, 목격한 노나라의 훌륭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젊고 유능한 판관과도 같은 어떤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 3는 자천에 관해 매우 간결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복부제는 노나라 사람이다. 자는 자천이다. 공자보다 49세 연하이다. 그는 벼슬하여 선보의 재가 되었다. 재주와 지략이 있었으며, 인자스럽고 사람을 아끼었다. 백성들을 기만하는 일이 없었다. ..
1. 공자 형의 딸과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다 5-1A, 공자께서 공야장을 평하여 이르시기를 “사위삼을 만하다. 비록 그가 오랏줄에 묶여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것은 그의 죄가 아니다”하시고, 자기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셨다. 5-1A. 子謂公冶長, “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 공야장(公冶長)은 성이 공야(公冶)고 이름이 장(長)이다【‘장(萇)’으로 쓰기도 한다】. 공자제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하나, 기실 그 인간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 주자의 주가 정설일 것이다[長之爲人, 無所考]. ‘위(謂)’라 한 것은 단순히 ‘일컫는다’는 뜻이 아니고, 인간에 대하여 평가한다는 가치판단의 의미가 깊숙이 내포되어 있다. ‘처(妻)’는 자기 딸을 시집보낸다는 의미의 동사이다. ‘가처야(可妻也..
공야장 제오(公冶長 第五) 편해(篇解) 「공야장(公冶長)」편은, 「팔일(八佾)」편이 예악(禮樂)의 주제를 중심으로 일관되게 편집된 느낌이 강한 것처럼, 그 자체로 어떤 일관된 테마가 있는 듯이 느껴지는 편이다. 그리고 그 구성의 양식도 1~13, 14~24, 24~27의 3부로 나뉘면서 서로 관련을 가지는 치밀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24장은 중복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연결고리를 형성】. 주희는 이 장이 고금인물(古今人物)의 현부득실(賢否得失)을 논하고 있다고 갈파하였다. 「공야장」은 분명 인물평론집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인물평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물평을 통하여 격물궁리(格物窮理)의 일단(一端)을 밝히려 했다고 주희는 말하고 있다. 이면의 주제는 「학이(學而)」편..
26. 가족이 아니고서야 적당선이 필요하다 4-26 자유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너무 자주 간하면 욕을 당하고, 붕우간에 너무 자주 충고하면 멀어지게 마련이다.” 4-26. 子游曰: “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 이것은 물론 자유(子游)의 말로서 기록된 것이며, 「이인(里仁)」편에서는 이질적인 성격의 것이다. 원래 이인」편에 속하지 않는 파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제18장의 주제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 장은 18장을 보완하는 성격이 있다. 그리고 공통되는 주제가 「안연(顔淵)」 23에도 나온다. 그러니까 이 말은 비록 자유의 말이긴 하지만, 공자가 평소 자기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항시 말했던, 제자들이 자주 들었던 말씀이었을 수가 있다. 그래서 부록격으로 「이인」..
25. 덕이 있다면 친구가 생긴다 4-2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덕은 외롭지 아니하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4-25. 子曰: “德不孤, 必有隣” 호인의 말대로 15장부터 24장까지를 증자 문인의 소기(所記)라고 한다 면 이장은 또 다시 공자의 오리지날한 기온 파편의 수집일 것이다. 그런데 이 로기온을 여기 편집시킨 의도는 매우 명백하다. 제1장의 ‘이인위미(里仁爲美)’와 수미일관한 주제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인」 편은 ‘이인위미(里仁爲美)’로 시작하여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으로 끝나는 매우 짜임새 있는 편집체제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음의 26장은 자유(子游)의 말로서 부록격으로 귀엽게 첨가된 것이다. 그리고 ‘덕불고, 필유린’이라는 주제는..
24. 말은 어눌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4-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4-24. 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 그리고 선교일치(禪敎一致) 를 주장한 고려 중기의 대국사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이름도 바로 이 장에서 유래된 것이다. 불교도 한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한에 있어서는 이미 유교 경전의 격의를 거치게 마련이다. 군자라면 모름지기 바램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바라는가? 언(言)에는 눌(訥)하고, 행(行)에는 민(敏)하기를 바래야 한다. 고주(苞氏)에 눌(訥)을 ‘지둔(遲鈍)’이라 했다. ‘느리고 둔한 것이다.’ 말은 아무리 느리고 둔해도 상관없는 것이지만, 행동 ..
23. 약(約)하는 사람은 실수가 적다 4-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약(約)으로써 잃는 자는 적다.” 4-23. 子曰: “以約失之者鮮矣.” ‘약(約)’이란 경제적 검약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언어의 검약, 행동의 검약, 가치관의 총체적 검약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인간은 어차피 과불급이 없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항상 과(過)의 오류보다는 불급(不及)의 오류가 개선의 여지가 더 많다. 다시 말해서 노자가 말하는 허(虛)가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약(約)이란 불급(不及)보다도 훨씬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의도적인 검약이다. 공자의 사상은 결코 노자의 사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모두 동시대의 시대 정신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여기 공자가 말하는 ‘약(約)’이나 노자가 말..
22. 말을 할 때 신중히 해야 하는 이유 4-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내지 않은 것은, 몸소 실천함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4-22. 子曰: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질박하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는 이런 평범한 『논어』의 구절에서 우리는 가장 심오한 인생의 예지를 얻는다. ‘고자(古者)’란 추상적인 ‘옛 시간’을 의미하지만 실제적으로 ‘옛 사람들’을 의미한다. 고인(古人)들의 삶의 태도를 예찬하며 금인(今人)들의 경박함을 경계한 공자의 말이다. 공자가 산 시대가 신ㆍ구세대가 교차하고 역사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였다. 공자는 옛 사람들의 훌륭한 점을 신세대에게 전하고 싶어 했다. 옛 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았다. 그 말을 몸소..
21. 부모님의 나이에 대한 자식의 일희일비(一喜一悲) 4-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부모님의 나이는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한 편으로 는 그로써 기쁜 마음이 들고, 한 편으로는 그로써 두려운 마음이 든다.” 4-21. 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옛날에는 사람의 나이를 아는 것도 갑자(甲子)를 세어 아는 것이다. 지 금처럼 십진법에 의한 직선적 숫자로 출생연도만 알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몇 살이라는 것이 산출되는 것이 아니다. ‘환갑(環甲)’이니 ‘진갑(進甲)’이니 하는 따위의 개념들이 모두 갑자의 순환적 흐름에서 생겨나는 개념이다. 갑자(甲子)의 한 싸이클을 돌아온 ‘환갑(還甲)’이야말로 고대인들에게는 인생 역정의 대기준이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나이는 애써 기억하고 ..
20. 효도의 방법 4-2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삼년 동안 아버지의 도(道)를 고침이 없으면 효(孝)라 이를 만하다.” 4-20. 子曰: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학이(學而)」 11에서 이미 논의되었다. 「학이」편의 문장이 이 「이인(里仁)」편의 파편을 토대로 구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이인(里仁)」편의 성립이 「학이」편의 성립보다 시대적으로 앞선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이인」편의 파편에다가 ‘부재(父在), 관기지(觀其志); 부몰(父沒), 관기행(觀其行)’을 덧붙여 그 맥락을 새롭게 한 것이다. 3년이라는 숫자가 은나라의 풍습과 관련이 있다는 호적(胡適)의 설도 새겨들을 만하다. 호인이 말하였다: “이 장은 이미 「학이」편에 나왔다. 이것은 중복하여 나왔는데 그 절반이 빠..
19.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법 4-1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멀리 놀러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놀러 갈 때에는 반드시 부모님께 갈 곳을 알려 드려야 한다.” 4-19. 子曰: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 ‘유(遊)’라는 표현은 단지 요새말로 ‘놀러간다’는 뜻만은 아니다. 집을 떠나 여행하는 모든 행위를 총칭한다. 유세한다, 유학한다, 유람한다는 등등의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 ‘유필유방(遊必有方)’의 ‘방(方)’은 가는 방향, 즉 갈 곳을 부모님께서 아시도록 한다는 뜻으로 신주는 새기었다. 그러나 고주는 ‘방(方)’을 여행할 때에는 반드시 규율이 있는 여행을 한다, 즉 정도에 의거한 여행을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方, 常也]. 『예기』 「곡례」 상에는 다음과..
18. 부모와 생각이 다를 때 자식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4-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부모를 섬길 때는 은미(隱微)하게 간(諫)해야 한다. 부모님의 뜻이 내 말을 따르지 않음을 보더라도 더욱 공경하여 어기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괴로웁더라도 원망하지는 말아야 한다.” 4-18. 子曰: “事父母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부모란 나의 존재의 한계이다. 부모로 인해서 내가 태어났고, 부모로 인하여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부모라 할지라도 성인이 된 나의 입장과 그 삶의 뜻[志] 사이에 충돌(不從)이 생겨나는 상황은 얼마든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충돌의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기간(幾諫)’의 ‘기(幾)’는 고주나 신주나 모두 ‘미(微)’로 풀었다..
17. 남을 보고 반면교사로 삼다 4-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며, 어질지 못한 이를 보면 안으로 자기를 되돌아본다.” 4-17.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이인(里仁)」편의 테마는 본장에서 클라이막스에 오른다. 다음의 18장부터는 「이인」편의 주요테마가 효(孝)라는 주제로 굴절되면서 증자학파의 내음새가 보다 짙게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인(賢人)을 만나면 우리는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견(見)’이란 단순히 시각적인 ‘봄’이 아니라, 내면적인 만남(Encounter)이다. ‘사제(思齊)’는 배움의 동경이요, 그것은 본받음이다. 기독교에도 이 비슷한 전통이 있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7..
16. 군자와 소인의 깨달음 4-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의(義)에서 깨닫고, 소인은 이(利)에서 깨닫는다.” 4-16. 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본 장의 해석은 ‘유(喩)’의 의미규정에 따라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유 (喩)를 깨닫는다[효曉]는 뜻으로 해석하면, 그 엄밀한 논리를 따라가면 소인(小人)이 결코 이원론적으로 배제되지 않는다. 즉 군자는 의로움에서 깨달음을 얻고, 소인은 이로움에서야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즉 깨달음의 층차의 단계적 고하를 나타낸 말로서만 해석되는 것이다【고주나 신주나 모두 유(喩)를 효(曉)로 풀이했지만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는 않았다. 군자는 인의(仁義)를 좋아하고, 소인은 재리(財利)를 탐한다는 식으로 풀이했을 뿐이다】. 그런데 ‘유(喩)’를 ..
15. 공자, 하나의 도로 모든 걸 꿰뚫다 4-1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삼(參: 증자의 이름)아! 나의 도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 4-15.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증자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曾子曰: “唯.” 공자께서 나가시자, 증자의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 과 서(恕)일 뿐이다.”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이 장에 대한 나의 논의는 「학이(學而)」 4와 「학이(學而)」 10의 안(案)에 대강 그 윤곽이 드러나 있다. 전통적으로 이 장의 언사가 중후하게 취급되게 된 것은, 공자 생전에 사상을 그의 정통 수제자인 증자(曾子)가 공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표현한 절세..
14. 남의 알아주지 않을수록 나의 실력을 키워라 4-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무엇을 가지고 설 것인가를 걱정하라. 사람들이 자기를 알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참으로 알려질 수 있기를 구하라.” 4-14.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이미 「학이(學而)」 16에서 충분히 논의된 것이다. 위(位)와 입(立)은 생긴 글자 모양도 비슷하지만 의미가 상통한다. 위(位)가 없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기 보다는, 과연 내가 무슨 실력으로 그 자리에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해야 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도 위가 없다[무위無位]는 것과 ..
13. 예와 사양함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4-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예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린다면, 도대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예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리지 않는다면 도대체 예를 어찌할 것인가?” 4-13. 子曰: “能以禮讓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爲國, 如禮何?” ‘예양(禮讓)’의 ‘양(讓)’은 ‘사양’, ‘겸손’, ‘겸양’의 의미를 나타낸다. 양(讓)은 예(禮)의 한 표현이며, 예(禮)보다 그 외연(外延)이 좁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12년조 기사에는 진(晉)나라의 장수들이 서로 사양하여 질서를 지키고 무공을 세워, 국민들이 크게 화합한 미담을 싣고 있다. 그리고 평하기를 ‘사양이란 예의 근본이다[양(讓), 예지주야(禮之主也)]’라고 말한다. 사(士)..
12.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 4-1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익에 질질 끌려 행동하면, 원망만 많이 생겨날 뿐이다.” 4-12. 子曰: “放於利而行, 多怨.” 공안국의 고주는 ‘방(放)’을 ‘의(依)’로 해석했다. 여기서 ‘의(依)’는 단순히 ‘의지한다’. ‘의거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에 질질 끌려 다닌다’라는 어감이 강하다. 공안국은 말한다. 방(放)이란 질질 끌려다님을 의미한다. 매사를 이익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행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放, 依也. 每事依利而行之者也. 여기서 말하는 ‘이(利)’란 자신의 개인적 이익[사리私利]만을 앞세우는 행동이다. ‘이(利)’는 공자에게 있어서는 인(仁)의 반면(反面)이다. 여기에 바로 맹자사상의 배아(胚芽)를 발견하는 것이다. 인(仁)..
11. 군자와 소인의 생각 4-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큰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안온한 삶의 터를 생각한다. 군자는 두루 적용되는 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작은 혜택을 생각한다.” 4-11. 子曰: “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 이 장은 문구의 해석에 있어서는 크게 난해할 것이 없다. 그러나 해석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그 첫째 번 입장은 전통적 해석으로 고주나 신주나 크게 차이가 없다. 이 전통적 해석에 대한 반론은 에도의 유학자 소라이(荻生徂徠)에 의하여 제기된 것이다. ‘회(懷)’라는 것은 ‘생각한다’,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즉 무엇을 삶의 중심테마로서, 가치관으로서 간직한다는 뜻이다. 덕(德)이란 큰 덕이다. 즉 보편적인 삶의 가치다. 주희는 주(注)하여 ..
10. 군자는 극단이 아닌 의에 따라 처신한다 4-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세상 일에 관하여서는 가까이 할 것도 없고 멀리 할 것도 없다. 오로지 의로움에 따를 뿐이다.” 4-10.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이 장의 해석에 관해서도 심하게 많은 논란이 있다. 문자가 소략하고 그 함의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출전을 활용하여 그 진의를 밝히려 하지만, 그러한 인용학(citology)의 한계는 분명한 것이다. 적(適)이라는 것은 긍정의 언사요, 막(莫)이라는 것은 부정의 언사다. 적(適)이란 가까이 함이요, 막(莫)이란 멀리함이다. 무적(無適)과 무막(無莫)이라는 것은 중용에 대한 양단(兩端)이다. 군자(君子)는 위(位)를 얻은 벼슬아치를 가리키는 ..
9. 거친 옷과 밥에 초연한 까닭 4-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와 더불어 말할 꺼리가 없다.” 4-9. 子曰: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악의(惡衣)와 악식(惡食)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도에 뜻을 둔 선비가 악의ㆍ악식을 부끄러워한다면, 어찌 그를 친구 삼아 말벗할 수 있으리오? 악의ㆍ악식이란, 조의(粗衣), 조식(粗食)을 말하는 것일진대, 더러운 옷과 더러운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비싸고 사치스러운 의식(衣食)이라 할지라도, 더러운 것 투성이일진대, 오히려 그것을 멀리하는 것이 선비의 아름다움이요 멋이다. 이 장의 주어가 ‘사(士)’라는 사실을 한번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사는 자유민으로..
8. 도를 들을 수만 있다면 4-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4-8.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 사람들의 일상적 체험 속에서 자주 회자되는 이 유명한 『논어』의 구절의 해석에 관해서도 고주의 입장과 신주의 입장이 다르다. 우리는 이 두 입장을 모두 수용해야만 본 장의 언어에 담겨있는 공자의 삶의 애틋한 호소를 보다 리얼하게 느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주는 이 공자의 고백을 정치사적 맥락에서 푼다. ‘문도(聞道)’의 도(道)는 도덕의 정치가 실현되는 세상의 출현을 의미한다. 공자는 죽음에 임박할 때까지 자신의 고국, 노나라에 그러한 인정(仁政)의 밝은 세계가 도래하기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은 쇠해가고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한다. ..
[1~3] 다음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琴師金聖基者 初爲尙方弓人 性嗜音律 不居肆執工 而從人學琴 得精其法 遂棄弓而專琴 樂工之善者 皆出其下 又旁解洞簫琵琶 皆極其妙 能自爲新聲 學其譜擅名者 亦衆 於是洛下有金聖基新譜 人家會客讌飮 雖衆伎充堂 而無聖基 則以爲歉焉 然聖基家貧浪遊 妻子不免飢寒 晩乃僦居西湖上 買小艇 篛蓑手一竿 往來釣魚以自給 自號釣隱 每夜風靜月朗 搖櫓中流 引洞簫三四弄 哀怨劉亮 聲徹雲霄 岸上聞者 多徘徊不能去 官奴虎龍者 ㉠上變起大獄 屠戮搢紳 爲功臣封君 氣焰熏人 嘗大會其徒飮 具鞍馬禮請金琴師聖基 聖基辭以疾不往 使者至數輩 猶堅臥不動 虎龍怒甚 乃脅之曰 不來 吾且大辱汝 聖基方與客鼓琵琶 聞而大恚 擲琵琶使者前 罵曰 歸語虎龍 吾年七十矣 何以汝爲懼 汝善告變 其亦告變 我殺之 虎龍色沮爲之罷會 自是聖基不入城 罕詣人作伎 然有會心者 ..
권력에 아부하지 않던 거문고 전문가 김성기 이야기김성기전(金聖基傳) 정래교(鄭來僑) 거문고 전문가가 된 사연과 그의 탁월한 실력琴師金聖基者, 初爲尙方弓人, 性嗜音律, 不居肆執工, 而從人學琴, 得精其法, 遂棄弓而專琴. 樂工之善者, 皆出其下, 又旁解洞簫琵琶, 皆極其妙, 能自爲新聲, 學其譜擅名者亦衆, 於是洛下有金聖基新譜. 人家會客讌飮, 雖衆伎充堂, 而無聖基則以爲歉焉. 만년에 은둔한 채 자적하며 살다然聖基家貧浪遊, 妻子不免飢寒. 晩乃僦居西湖上, 買小艇篛簑, 手一竿往來, 釣魚以自給, 自號釣隱. 每夜風靜月朗, 搖櫓中流, 引洞簫三四弄, 哀怨瀏亮, 聲徹雲霄, 岸上聞者, 多徘徊不能去. 실력자 호룡의 협박을 되받아친 호기로움宮奴虎龍者者, 上變起大獄, 屠戮搢紳, 爲功臣封君, 氣焰熏人. 嘗大會其徒飮, 具鞍馬禮請金琴師聖基, 聖..
백운소설(白雲小說) 목차 이규보(李奎報) 1최초로 중국에 알려진 우리나라의 시을지문덕 - 與隋將于仲文2진덕여왕의 태평송진덕여왕 - 致唐太平頌3최치원의 솜씨와 한계최치원 - 檄黃巢書4唐書不立崔致遠列傳議 5최치원까지의 문단(文壇)의 흐름최치원 - 登潤州慈和寺박인범 - 涇州龍朔寺閣박인량 - 使宋過泗州龜山寺6귀신이 지은 시를 완성하여 장원급제한 정지상 7정지상과 김부식의 악연한시미학산책8시적 재능이 특출난 오세재지봉유설보한집 역옹패설吳德全戟巖詩跋尾9죽림칠현을 본받았던 죽림고회와 나와의 인연 10동급자들과 지은 시가 중국에서 유행하다 11꿈속의 꿈을 통해 신세를 한탄한 이규보 12백거이를 닮은 나 13오류선생 같은 백운거사白雲居士傳14구양수가 국화꽃이 진다는 걸 몰랐다며 나무란 왕안석은 잘못했다 15좋은 시 감식..
31. 뭣 같은 삶을 한시로 쓰다 古人曰: “天下不如意事, 十常八九, 人生處斯世, 能愜意者幾何?” 余嘗有「違心」詩十二句, 其詩曰: “人間世事亦參差, 動輒違心莫適宜. 盛歲家貧妻常侮, 殘年祿厚妓將追. 雨霪多是出遊日, 天霽皆吾閑坐時. 腹飽輟湌逢美肉, 喉瘡忌飮遇深巵. 儲珍賤售市高價, 宿疾方痊隣有醫. 碎小不諧猶類此, 楊州駕鶴况堪期.” 大抵萬事之違於心者, 類如是, 小而一身之榮悴苦樂, 大而家國之安危治亂, 莫不違心. 拙詩雖擧其小, 其意實在於喩大也. 世傳「四快」詩曰: “大旱逢嘉雨, 他鄕見故人. 洞房花燭夜, 金榜掛名辰.” 旱餘雖逢雨, 雨後又旱, 他鄕見友, 旋又作別, 洞房華燭, 安保其不生離? 金榜掛名, 安知非憂患始也? 此所以違心多而愜心少也, 可歎也已. 해석古人曰: “天下不如意事, 十常八九,옛사람이 “세상에 생각 같지 않은 ..
[1~2] 다음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詩話載李山甫覽漢史詩曰 王莽弄來曾半沒 曹公將去便平沈 余意謂此可句也 有高英秀者譏之曰 ㉠是破船詩也 余意凡詩言物之體 有不言其體而直言其用者 山甫之寓意 殆必以漢爲之船而直言其用曰 半沒平沈 若其時而山甫在而言曰 汝以吾詩爲破船詩然也 余以漢擬之船而言之也 而善乎子之能之也 則爲英秀者 何辭以答之也 ㉡詩話亦以英秀爲惡喙薄徒 則未必用其言也 -이규보, 「白雲小說」 1. ㉠과 같이 평가한 이유를 쓰시오. 2. ㉡의 구절을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여 국역하시오. 高英秀者 吳越國人 與贊寧爲詩友 口給好罵滑稽 每見眉目有異者 必噂短於其後 人號惡喙薄徒 嘗譏名人詩病云 李義山覽漢史云 王莽弄來曾半破 曹公將去便平沉 定是破船詩 李羣玉詠鷓鴣云 方穿詰曲﨑嶇路 又聽鉤輈格磔聲 定是梵語詩 羅隱云 雲中雞犬劉安過 月裏笙歌煬帝歸 定是..
30. 영사시를 폄하한 고영수의 시관을 비판하며 이산보시의(李山甫詩議) 詩話載, 李山甫「覽漢史」詩曰: “王莽弄來曾半沒, 曹公將去便平沈.” 余意謂此可句也, 有高英秀者譏之曰: “是破船詩也.” 余意凡詩言物之體, 有不言其體而直言其用者. 山甫之寓意, 殆必以漢爲之船而直言其用曰: “半沒平沈.” 若其時而山甫在而言曰: “汝以吾詩爲破船詩然也. 余以漢擬之船而言之也, 而善乎子之能知也.” 則爲英秀者, 何辭以答之也? 詩話亦以英秀爲惡喙薄徒, 則未必用其言也. 해석 詩話載, 시화에 실려 있는 李山甫「覽漢史」詩曰: “王莽弄來曾半沒, 曹公將去便平沈.” 이산보의 「람한사(覽漢史)」 시는 다음과 같다. 王莽弄來曾半沒 왕망【왕망(王莽): 중국의 전한(前漢)을 타도하고 임금이 된 사람(재위 : 8~22). 5년 평제(平帝)를 죽이고 영(嬰)을 ..
7. 잘못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을 알 수 있다 4-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과실이란 각기 그 습벽(習癖)을 따른다. 그 사람 의 과실을 보면 곧 그 사람의 인함을 알 수 있다.” 4-7.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이 장의 해석에 있어서 고주와 신주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으나, 신주의 해석이 탁월하다. 고주는 도무지 명료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공안국은 말한다. 당(黨)이란 끼리끼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소인은 도저히 군자의 행동을 할 수가 없으니 그러한 것은 소인의 과실로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용서하고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과실을 보아서 현명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이 각기 제자리로 귀속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곧 인을 실천하는 것이다. 黨,..
6. 힘이 부족하여 인을 못하는 경우는 없다 4-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아직도 인을 좋아하는 자와 불인을 미워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인을 좋아하는 자는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다. 그런데 불 인을 미워하는 자는 그 인을 행함에 있어, 불인한 것이 자기 몸에 물들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다. 하루라도 그 힘을 인에 쓸려고 노력하는 자가 있는가? 나는 그 인함에 쓸 힘이 부족한 인간을 본 적은 없다. 과연 그런 자가 있을 까? 나는 단연코 그러한 자를 본 적이 없다.” 4-6. 子曰: “我未見好仁者, 惡不仁者. 好仁者, 無以尙之; 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加乎其身. 有能一日用其力於仁矣乎? 我未見力不足者. 蓋有之矣, 我未之見也.” 이 장에서는 주어가 ‘오(吾)’로 쓰이지 않았다. 모두..
5. 군자여 어느 순간에도 인(仁)을 해야 한다 4-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부귀는 사람들이 다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에 처하지 않는다. 빈천은 누구나 다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부당한 방법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군자가 인함에서 떠나 있다면 어찌 명예로운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 군자는 한 끼니를 마칠 시간 동안에도 인을 어기는 법이 없다. 황급한 때에도 반드시 인과 더불어 하며, 실족할 때에도 반드시 인과 더불어 할 뿐이다.” 4-5. 子曰: “富與貴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君子去仁, 惡乎成名?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
4. 인에 뜻을 두라 4-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진실로 인함에 뜻을 둔다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4-4.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 이 구절도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나는 기본적으로 ‘악(惡)’을 ‘악’으로 읽고 그것을 객관적 명사적 실체로서 전제하는 모든 해석은, 현대어에서 비롯된 그릇된 편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사상에는 성악설(性惡說)이라는 것이 없다. 근원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관한 존재론적 규정이 없는 것이다. 오직 성(性)의 문제를 정(情)의 문제로서 다루었다는 것이 최근의 간백문헌연구 성과가 밝히는 사실이다[凡人雖有性, 心無定志, 待物而後作 … 性自命出, 命自天降. 道始於情, 情生於性. 郭店楚簡 『性自命出』). ‘성악설..
3. 타인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 4-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오로지 인(仁)한 자래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으며, 또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것이다.” 4-3. 子曰: “唯仁者能好人, 能惡人.” 나 도올은 『논어』의 이 구절을 심히 사랑한다. 동양적 세계관에서는 선(善, the Good)과 악(惡, the Evil)은 대립적 가치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선(善)의 대립적 개념은 불선(不善)일 뿐이요, 악(惡)이 아니다. 악(惡)이란 본시 인간의 호오(好惡)의 일측면일 뿐이다. 모든 악(惡)은 나의 감정의 오(惡: 미움)로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인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나 증오감을 동시에 포섭하는 것..
2.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 4-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하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경에 처하지 못하며, 또 오랫동안 즐거움에 처하지 못한다. 인자(仁者)는 인에서 편안할 줄 안다. 지자(知者)는 인에서 이로움을 취한다.” 4-2. 子曰: “不仁者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 인간이 오랫동안 곤궁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곤궁한 상황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는 극기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범인은 곤궁한 상황에서 쉽게 좌절하고 만다. 그런데 인간이 혜택받은 환경과 성공의 즐거움에서 오랫동안 처할 줄 아는 슬기를 발휘하는 것도 곤궁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다. ‘약(約)’이란 궁핍하고 곤궁한 ..
1. 어진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살라 4-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마을에서 인하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 택하여 인(仁)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4-1. 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사실 이 구절은 너무도 짤막하고 전후 맥락이 무시되어있기 때문에 정 확하게 해석하기가 어렵다. 고주ㆍ신주를 막론하고, 전통적인 해석은 ‘이(里)’를 사람이 거처하는 동리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 동리[里]는 『주례』의 규정에 의하면, 25개의 집이 모여있는 취락의 규모를 말한다. 다산은 ‘이인위미(里仁爲美)’의 구문은 리(里)에서 일단 구두점을 찍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里一字爲句, 其義方鬯]. 사는 동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인한 동리에 사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판..
이인 제사(里仁 第四) 편해(篇解) 많은 사람들이 이 「이인(里仁)」 편이야말로 『논어』의 진정한 시작일 것이라는 가설을 심정적으로 동의하는데 주저치 않는다. 『논어』의 편제가 「이인(里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자의 로기온자료 모음 중에서 이 「이인」의 자료야말로 최고층(最古層)을 형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웨일리(Arthur Waley)는 원래 『논어』는 제3편에서 제9편까지로만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1~2편, 10~20편은 그 뒤로 증보된 것인데 어떤 일관된 성격을 찾을 수 없는 잡다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인」편의 느낌은 소박하고 원시적이며 함축적인 공자의 언사를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공자의 원래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물론 ‘이인’이라는 편명은 관례대로 첫 장 첫..
26. 윗자리에 있을 땐 너그럽고, 예를 행할 땐 공경하며, 초상에선 슬퍼하라 3-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아니하며, 예를 행함에 공경스럽지 아니하며, 상에 임함에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 그를 무엇으로 평가하겠는가?” 3-26.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아무리 자유의 민주사회가 되고 공산의 평등사회가 되더라도 장유(長 幼)의 차이는 있고, 상하(上下)의 분별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느 사회든지 장(長)ㆍ상(上)의 사람들이 보다 많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윗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관용(tolerance)이다. 그리고 의식을 행할 때 요구되는 것은 허식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경의(propriety)다. 그..
25. 소악(韶樂)과 무악(武樂)에 대한 공자의 평가 3-25. 공자께서 소악을 평하시어, “지극히 아름답고 또한 지극히 좋다” 하셨으며, 무악을 평하시어,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못하다” 하시었다. 3-25. 子謂韶,“盡美矣, 又盡善也.” 謂武,“盡美矣, 未盡善也”. 소(韶)란 순임금 자신이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순임금 시대 에 지어진 대표적 악곡이다. 무(武)란 무력으로 은나라를 정벌하고 혁명으로 주 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시대에 만들어진 악곡이다. 소악은 천하를 선양받은 성군 순임금의 평화로운 시대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멜로디의 음악일 것이며, 무악은 무력혁명의 열기와 새로운 시작과 건설을 의미하는 의욕을 담은 매우 진보적인 음악일 것이다. 여기 미(美)와 선(善)의..
24. 목탁처럼 공자는 곧 쓰일 것이다 3-24. 의(儀) 땅의 국경수비대장이 공자를 뵙기를 청하여 말하였다: “군자께서 이 땅에 이르시면 내 일찍 아니 뵈온 적이 없었다.” 3-24. 儀封人請見.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공자의 시종인들이 뵙게 해주었다. 그가 뵙고 나와서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선생께서 지위를 얻지 못하고 유랑하심을 걱정하는가? 천하에 도가 없은 지 오래되었다. 하늘은 장차 선생님을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인간세란 본시 사람들의 네트워크이다.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인간을 만나게 된다. 아주 기대되는 상층의 지식세계에서 오히려 빈곤한 인간상의 군중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주 편벽한 ..
23. 음악의 달인 공자가 말한 음악의 흐름 3-23. 공자께서 노나라의 악관인 태사에게 음악에 관하여 말씀하시었다. 이르시기를: “악곡의 전체 구성은 알만한 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모든 음색이 합하여진 듯 타악기가 주선을 이룬다. 다음에 풀어지면서 순결한 현악기들의 소리가 이어진다. 그러면서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연음형식으로 서로 꼬여 나간다. 그러면서 최종의 완성으로 치닫게 된다.” 3-23. 子語魯大師樂. 曰: “樂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장의 번역은 어렵다. 그 내용이 뜬구름 잡는 것 같아 어떻게 표현하든 그것은 자의적 요소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공자는 음악의 명인이요 달인이었다. 여기 실린 이야기는 같은 ..
22. 관중은 그릇이 작다 3-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관중(管仲)의 그릇이 작구나!” 3-22. 子曰: “管仲之器小哉!” 그러자 어떤 이가 말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或曰: “管仲儉乎?”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관씨는 부인을 셋을 거느렸고, 관의 사무를 부하들에게 겸임시키는 일이 없었으니 어찌 검소했다 말할 수 있겠는가?”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그래도 관중은 예는 아는 사람이었지 않았겠습니까?” “然則管仲知禮乎?”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라의 임금이래야 나무를 심어 문안을 가릴 수 있거늘 관씨 또한 나무를 심어 문안을 가렸고, 나라의 임금이래야 두 임금이 만나는 의전 절차를 위해 대청에 술잔받침대를 두었거늘 관씨 또한 술잔받침대를 두었으니, 관씨가 예..
21. 재여가 모르는 것을 아는 듯 말하다 3-21. 애공(公)이 사(社)에 관하여 재아(宰我)에게 물었다. 재아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하후씨는 소나무를 썼고, 은나라 사람들은 측백나무를 썼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썼습니다. 밤나무를 쓴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戰慄)케 하려 함이옵니다.” 3-21. 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使民戰栗.” 공자께서 이를 들으시고 말씀하시었다: “내 이미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가버린 일은 탓하지 않겠다.” 子聞之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애공(哀公)은 정공의 아들로서 공자 58세의 때에 어린 나이로 즉위한 노 나라의 군주라는 것은 이미 전술한 바와 같다(2-19). 그..
20. 관저의 시는 지나치지 않고 감정을 잘 담았다 3-2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관저(關雎) 노래는 즐거우면서도 질탕치 아니하고, 구슬프면서도 상심케 하지 아니한다.” 3-20.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시경』은 중국의 고대가요선집이며, 오늘날 현존하고 있는 『시경』의 체 제가 공자라는 역사적 인간의 편집체계를 반영하는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는 것은 크게 의심할 나위가 없다. 『시경』의 노래들은 크게 풍(風)ㆍ아(雅)ㆍ송(頌)이라는 세 장르로 대별되고 있는데, 풍(風)은 주(周)나라의 각 제후국들의 민요이며, 아(雅)는 귀족의 노래이며, 송(頌)은 종묘제례악이다. 풍(風)에는 15개국의 노래가 실려 있는데 160수가 전하고, 아(雅)는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나뉘며 105수에 ..
19. 아랫사람을 부림과 윗사람을 섬기는 방법 3-19.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3-19. 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공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임금은 신하를 부리기를 예(禮)로써 하고, 신하는 임금을 섬기기를 충(忠)으로써 해야 합니다.”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앞의 18장의 내용도 결국 정공(定公)시절의 공자의 삶을 배경으로 한 것 으로 보아야 한다면 18장과 19장은 내재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수집된 파편일 것이다. 그리고 19장은 ‘자왈(子曰)’이 아닌 ‘공자대왈(孔子對子曰)’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 1장과 함께 공자학단 외부전승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1장과 19장은 인민의 지배..
18. 임금에게 최선을 다하는 걸 아첨이라 비난하다 3-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이 아첨한다 하는구나!” 3-18.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예를 다함과 아첨은 전혀 별개의 사태이다. 인간의 선의의 표현으로서의 질서있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수학자가 수의 질서를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물리학자가 우주의 질서를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생물학자가 생물을 지배하고 있는 놀라운 호미오스타시스(Homeostasis)의 질서를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공자는 인간세에 존속되는 예의 질서를 아름답게 느꼈을 것이다. 공자는 모든 인간에 대하여, 그 신분과 상황의 차이에 따라 예를 다하는 삶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서 높이 있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사..
17. 이미 사라진 예법이지만 흔적이 남아 있길 3-17. 자공이 초하루를 알리는 제식에 바치는 희생양 제도를 없애려 하였다. 3-17. 子貢欲去告朔之餼羊.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는구나, 나는 그 예를 아끼노라.”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이 장을 이해하기 전에 우리는 ‘칼렌다(calendar)’ 즉 역(曆)이라고 하는 인류 문명의 특유한 현상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曆)이란 일정한 시간의 길이를 나누는 시스템의 총칭인데, 이 역이란 것은 문명화된 삶의 기본적 사무를 규율화시키는 가장 본질적인 제도인 것이다. 농업, 상업, 정치, 종교, 과학이 모두 이 역(曆)과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 인지되는 가장 자연스러운 시간의 주기성은 낮..
16. 가죽을 뚫는 활쏘기를 비판하다 3-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활쏘기는 과녁의 가죽을 뚫는 것을 장끼로 삼지 않고, 힘을 쓰는 운동은 획일적 기준으로 그 등급을 매기지는 않는다. 이것이 곧 옛사람의 도이다.” 3-16.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이 장의 해석을 문법적으로 고주와 신주에 큰 차이가 있으나 그 철학적 함의는 크게 차이가 없다. 고주는 ‘사부주피(射不主皮)’와 ‘위력부동과(爲力不同科)’를 고지도(古之道)의 두 개의 다른 사례로서 병치시켜 두 문장으로 만들었고, 신주는 이 양자를 한 사례를 설명하는 한 문장으로 연결시켰다. 따라서 ‘위력부동과(爲力不同科)’는 ‘사부주피(射不主皮)’를 설명하는 조건절로 종속되고 만다. 나는 신주의 해석을 존중하면서 고주의 기본 틀을 ..
15. 공자, 태묘에 들어가 모든 절차를 묻다 3-15. 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 제사가 진행됨에 매사(每事)를 물으시었다. 3-15. 子入大廟, 每事問. 혹자가 말하기를: “그 누가 저 추인(鄹人)의 자식을 일러 예를 안다고 하는가? 태묘에 들어와 매사를 물으니.”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大廟, 每事問.”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었다: “묻는 것이 곧 예니라.” 子聞之曰: “是禮也.” 곡부에 가면 지금도 주공 단을 모신 태묘가 웅장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다. 무분별한 홍위병의 상흔이 아직도 지난 시절의 무지와, 역사의 홍류 속에서 끊임없이 휘몰아치곤 하는 비공(批孔)의 함성을 전해주고 있지만, 그 소조한 뜨락, 기나긴 신도와 하늘을 가르는 청동빛 서린 측백나무의 늘어진 모습들은 원성(元聖..
14. 공자는 주나라를 이상향으로 여기다 3-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주나라는 하나라 은나라 이대(二代)를 거울삼았다. 찬란하도다, 그 문화여! 나는 주를 따르리로다.” 3-14.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이 장은 이미 여러 문맥에서 거론되었기에 장황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혹자는 ‘감(監)’을 단순하게 주(周)와 하(夏) 은(殷) 두 왕조를 비교한다는 뜻으로 풀기도 하지만, 역시 ‘감(監)’은 그런 비교의 뜻에 국한될 수 없다. 계승발전시켰다는 적극적 뜻으로 풀어야 마땅하다. 주나라는 하나라와 은나라의 장단득실을 참고하여 새로운 인문주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하는 자연주의적 문화요, 은은 초월주의적 종교문화요, 주는 인문주의적 문화다. 주(周)는 하..
13. 아랫목 신보다 부뚜막 신에게 아첨해야 하지 않소 3-13. 왕손가가 공자에게 물어 말하였다: “아랫목 신에게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부뚜막 신에게 잘 보이라 하니,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3-13.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이에 관해서는 구구한 주석이 많으나 다 각설하고 내 생각대로 간결하게 해설하겠다. 왕손가(王孫賈)는, 「헌문」편 20장에 공자자신의 말 속에서 잘 해설되어 있듯이, 위나라의 현신(賢臣) 삼인(三人) 중의 한 사람이다. 위국(衛國)의 대부인데, 주나라 왕손으로 위국으로 출사(出仕)했다는 설도 있고, 원래 위나라 사람으로 ‘왕손’은 성씨일 뿐..
12. 제사엔 예(禮)보다 정성이 먼저다 3-12. 제사를 지낼 적에는 있는 것 같이 하라 함은, 하느님을 제사 지낼 적에는 하느님이 계시는 것 같이 하라는 뜻이다. 3-12. 祭如在, 祭神如神在.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직접 참여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면 그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도 같은 것이다.”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자왈(子曰)’ 앞에 있는 문장은 분명 공자의 말이 아니며, 공자의 말에 선행하는 당대의 관용적 표현이거나 어떤 고전의 인용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 인용문이 어디까지냐 하는 것이다. 정자(程子: 이천伊川)는 ‘제여재(祭如在)’의 ‘제(祭)’는 자기 조상을 제사지내는 것을 말한 것이요, ‘제신여신재(祭神如神在)’의 ‘제신(祭神)’은 자기 조상 외의 신들을 제사지내..
11. 체제사를 알면 나라를 다스림은 쉽다 3-11. 어떤 이가 체에 관한 해설을 듣고자 하였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대함에 있어서, 그것을 여기에 놓고 보는 듯 하겠구나!” 그러면서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3-11. 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이 장 역시 난해하다. 그러나 그 대화의 형식이나 기술의 방식이 생기발랄하고 매우 구체적인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당시 이미 체(禘)에 관한 학문적 논의(설說)가 있었다. 그러나 합의된 이론(理論)이 없고 이론(異論)이 분분하였다. 더욱이 체제사가 노나라에서 거행되고 있는 현실은 전혀 당위적 형태를 반영하고 있질 못했다. 물론 이 11장은 상기(上記..
10. 노나라가 참람되이 천자의 제사인 체(禘)제사를 지내다 3-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체제사에서, 강신주를 따르는 절차 이후로는, 나는 현행의 체제사를 보고 싶지 않다.” 3-10.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사실 이 장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해석에는 무한한 가능성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문장 그 자체는 문법적으로는 의미가 명료하다. 고주에 따라 그 뜻을 새기면 다음과 같다. 체(禘)라는 것은 왕자(王者)의 대제(大祭)다. 이것은 군주가 선조의 위패들을 모신 태묘에서 철에 따라 지내는 대제인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종묘대제(宗廟大祭)야말로 체(제사의 한 전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종묘의 정시제(定時祭)는 춘하추동 사계절의 시작과 납일(臘日)에 지..
9. 문헌이 부족하여 증명할 수가 없네 3-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하나라의 예는 내가 말할 수는 있지만 그 후예인 기나라가 증험을 대주지 못하며, 은나라의 예 또한 내가 말할 수는 있지만 그 후 예인 송나라가 증험을 대주지 못한다. 문헌자료와 구두자료가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료들이 충분하다면, 나는 하은의 예를 증명해낼 수 있을 텐데.” 3-9. 子曰: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나는 여기에 숨은 뜻을 명료하게 드러내어 쉽게 이해되도록 번역을 했지만, 기실 이 장의 문장만으로 그 명료한 뜻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그 대강은 반드시 「위정(爲政)」편의 23장과 본편의 14장의 미언대의(大義)와 아울 러 함께 파악하여야 ..
8. 흰 바탕이 있어야 색칠할 수 있다 3-8. 자하(夏)가 여쭈어 말하였다: “‘어여쁜 웃음 보조개 짓고, 아리따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하니, 흰 것으로 광채를 내도다!’ 하니, 이것은 무엇을 일컬은 것입니까?” 3-8. 子夏問曰: “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것을 뒤로한다.” 子曰: “繪事後素.” 자하가 말하였다: “예가 제일 뒤로 오는 것이겠군요?” 曰: “禮後乎?”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를 깨우치는 자, 상(商: 자하의 이름)이로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회사후소(繪事後素)’라 제목 지을 수 있는 이 장은 중국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논점을 제기하는 공자의 말로..
7. 군자다운 경쟁 3-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다투는 법이 없다. 그러나 굳이 다투는 것을 말하자면 활쏘기 정도일 것이다. 상대방에게 읍하고 사양하면서 당에 오르고, 또 당에서 내려와서는 벌주를 마신다. 이러한 다툼이야말로 군자스럽지 아니한가!” 3-7.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노자는 ‘부쟁(不爭)’을 말하였다. 쟁(爭)의 덕성에 의한 사회적 질서는 결국 인간을 유위(有爲)의 파탄으로 몰아갈 뿐이라고 질타한다. 공자 역시 군자(君子)의 덕성으로서 쟁(爭, competition)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자는 노자처럼 쟁(爭)을 근원적으로 거부하는 그러한 무위(無爲)의 철학을 구가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쟁을 근원적으로 거부한다는 ..
6. 계씨, 분수를 넘어서는 제사를 지내다 3-6. 계씨가 태산에서 여제(祭)를 지내었다. 공자께서 염유(冉有)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너는 그것을 막을 길이 없었느냐?” 3-6. 季氏, 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 不能救與.” 염유가 이에 대답하여 말하였다: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對曰: “不能.”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 슬프도다! 일찍이 태산의 하느님이 임방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子曰: “嗚呼, 曾謂泰山, 不如林放乎?” 우선 이 장에는 새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염유(冉有)라는 이름의 사나이 다. 우선 『공자가어(孔子家語)』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 1의 기사를 살펴보자. 염구의 자(字)는 자유(子有)이다. 중궁(仲弓, 염옹冉雍)과 같은 집안사람이다. 본시 재주와 예능이 뛰어났다..
5. 오랑캐 나라에 임금 있는 것과 중국에 임금 없는 것에 대해 3-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오랑캐에게 군주가 있다 해도 그것은 중원의 여러 나라들이 군주가 없는 것만도 같지 못하다.” 3-5. 子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 우선 텍스트의 배열상, 임방(林放)이 언급되고 있는 4장과 6장은 하나의 세트로 간주되는 편집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예(禮)의 테마를 집약적으로 다루고 있는 콘텍스트에서 4장과 6장 사이에 오랑캐(이적)와 중국(제하諸夏)【주(周) 나라의 봉건질서 속의 제국(諸國)】의 우열을 가리는 어떤 정치적 언급이 끼어든다는 것은 좀 어색하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브룩스는 이 장을 착간으로 간주해 제14편 「헌문」 18에 ‘관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4. 예(禮)의 근본을 묻다 3-4. 임방이 예의 근본을 여쭈었다. 3-4. 林放問禮之本.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훌륭하도다, 그 질문이여! 예는 사치스럽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하고, 상(喪)은 형식적 질서를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슬퍼야 한다.” 子曰: “大哉 問. 禮, 與其奢也, 寧儉. 喪, 與其易也, 寧戚.” 여기 등장하는 임방(林放)이라는 인물은 이 편의 4장과 6장에 그 이름이 올라있을 뿐, 전혀 어떤 인물인지 알 길이 없다. 고주(古注)에 정현(鄭玄)의 말로서 ‘임방(林放), 노인야(魯人也)’라고 적혀 있는 것이 그 단서의 전부다. 『궐리문헌고(闕里文獻考)』에는 성이 임(林)이고 이름이 방(放)이며 자가 자구(子丘)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속에는 ..
3. 인(仁)하지 않으면 예악(禮樂)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3-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이면서 인하지 못하다면 예인들 무엇하리오? 사람이면서 인하지 못하다면 악인들 무엇하리오?” 3-3.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전통적으로 비교적 논란의 대상이 될 바가 없는 아주 평범한 공자님의 말씀에 속하는 장구이지만, 나는 이 장을 심히 좋아한다. 공자의 사상을 매우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초기 파편의 전송으로 간주하며, 또 공자의 생각의 철학적 구조를 잘 나타내는 심오한 표현으로 해석한다. 여기 문제가 되고 있는 예(禮)와 악(樂)은 이미 「학이(學而)」 12 유자(有子)의 말을 해설할 때 자세히 말했던 것이다. 이 편의 일관된 주제의식인 예(禮)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통적으로 예(禮..
2. 삼가(三家)가 옹(雍)이란 천자의 음악으로 제사를 마치다 3-2. 맹손ㆍ숙손ㆍ계속의 삼가 사람들이 옹의 노래로써 제사를 마치었다. 3-2. 三家者以「雍」徹.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제후들이 제사를 돕네. 그 가운데 천자의 모습이 그윽히 빛나도다’라는 저 가사의 노래를 어찌 삼가의 당(堂)에서 부를 수 있겠는가?” 子曰: “‘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삼가(三家)’란 노(魯)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 대부가문, 노나라 의 장공(莊公)-민공(閔公)-희공(僖公) 삼대(三代)군주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정권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립된 환공(桓公)의 세 아들의 적통에서 비롯된 세 대부가문이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2-5) 자세히 논술한 바와 같다. 이 세 대부가문이 모두 자신의 사가(..
1. 계씨, 팔일무를 추게 하다 3-1. 공자께서 계씨를 일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여덟 줄로 뜰에서 춤추게 하니, 내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 참으리오!” 3-1. 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고주나 신주 모두 이 ‘계씨(季氏)’의 주인공을 공자 47세에 계씨(季氏)가문의 영주가 된 계환자(季桓子)로 보고 있으나, 나는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 그 이전의 영주 계평자(季平子, 계손의여季孫意如)로 간주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춘추좌씨전』의 기록에 미루어 볼 때, 계평자(季平子)야말로 포악하고 참월을 좋아하는 인간이었으며 공자의 개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리얼리티가 있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이 언급은 계평자(季平子)의 집권기간인 BC 532년부터 BC 505년 ..
팔일 제상(八佾 第三) 편해(篇解) 「팔일(八佾)」 편 역시 최초의 장에 공자의 말로서 나타나는 두 글자를 가지고 편 전체의 이름으로 삼은 것은 통례와 같다. 그런데 이 편의 특징은 편 전체가 매우 단일한 주제를 중심으로 의도적으로 편찬된 내음새를 강렬하게 풍긴다는 것이다. 이 「팔일」 편이야말로 『논어』 전편 중에서 단일한 주제(monothematic)를 중심으로 통일성이 가장 높은 편임에 틀림이 없다고 주자는 말한다. 그 단일한 주제는 ‘예악(禮樂)’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세를 구성하는 제식적 질서(ritual)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제식적 질서는 새롭게 태동하는 혁신적인 국가체제에는 권위를 부여하며, 또 격동하는 사회에는 어떤 심리적 안정성이나 역사적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
24. 아첨과 용기 없음에 대해 2-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제사를 지내야 할 하느님이 아닌데도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요, 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2-24.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여기 ‘귀(鬼)’를 정현고주(鄭玄古注)에 ‘조고(祖考)’로 본 것을 다산(茶山)이 통렬히 반박하고 있는 것에 나는 동감이 간다. 여기서 귀(鬼)라는 것은 단순히 내 조상귀신만을 말하는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귀(鬼)는 천신(天神), 지시(地示), 인귀(人鬼)를 총칭하는 일반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응당히 받들지 말아야 할 산천제사를 지낸다든가(부당한 태산제사 등), 받들지 말아야 할 타종족의 제사라든가, 하는 등등의 상황을 폭넓게 수용하는 명제라..
23.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2-23. 자장이 여쭈었다: “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까?” 2-23. 子張問: “十世可知也?”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본받아 덜고 보태고 한 바 있어 열세 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본받아 덜고 보태고 한 바 있어 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자가 주나라를 계승한다면 백 세대의 일일지라도 미리 알 수가 있는 것이다.”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 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 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이 장은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해석해 넘기지만, 실상 자세히 뜯어보면 그 말하고자 하는 바가 심히 명료하지 않다. 이 장의 해석에 있어 나는 다산(茶山)의 설(說)..
22. 사람이 믿음이 없다면 2-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으로서 신실함이 없으면, 그 사람됨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큰 수레에 큰 멍에가 없고, 작은 수레에 작은 멍에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그 수레를 가게 할 것인가?” 2-22.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여기 ‘신(信)’이라 함은, 계속 공자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만, 인간의 언어생활에 관한 것이다. 신(信)이란 언어의 신험성, 그 신빙성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에 대한 엄밀한 요구, 그것은 공자의 삶을 일관하고 있는 주제이다. 그리고 이 ‘신(信)’이라는 주제는 『논어』에 나오는 정치관련 언급기사를 훑어보면 일관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정치를 하는 군자에게 있어서 신험 성 있..
21. 꼭 벼슬을 해야지만 정치인가 2-21.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 하자, 2-21. 或謂孔子曰: “子奚不爲政?”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서경』에 ‘효성스럽도다, 효성스럽도다. 형제간에 우애가 깊도다. 이를 정치에 베풀도다’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치함이 아니겠는가? 어찌 내가 직접정치를 하는 것만이 정치라 할 수 있겠는가?” 子曰: “書云: 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혹위공자왈(或謂孔子曰)’이란 표현은 우선 우리의 주목을 끈다. 공자에게 질문을 던진 자가 누군지를 모르는 상황이란, 이 기록이 질문이 오간 당장(當場)의 현장기록이라고 한다면 있기 어려운 상황이다. 누군가 공자에게 질문하였다라는 식의 ..
20. 다스리려는 사람이여, 자신이 먼저 실천하라 2-20. 계강자가 여쭈었다: “백성으로 하여금 경건하고 충직하여 스스로 권면하게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2-20. 季康子問: “使民敬, 忠以勸, 如之何?”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신을 장엄케 하여 사람을 대하면 백성이 경건하게 되고, 자신이 효성스러움과 자비로움을 실천하면 백성이 충직하게 되고, 능력있는 자들을 등용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들을 잘 교화시키면 백성들이 스스로 권면하게 될 것이요.” 子曰: “臨之以莊, 則敬; 孝慈, 則忠; 擧善而敎不能, 則勸.” 계강자(季康子, 지 캉쯔, Ji Kang-zi)는 대부 계씨가문의 7대 영주, 이름은 비(肥), 강(康)은 추증된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 6대 영주 계환자(季桓子)는 공자 가 ..
19. 인재를 잘 쓰면 백성들이 따른다 2-19. 애공이 물어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따릅니까?” 2-19.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곧은 사람을 들어 굽은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를 것이며, 굽은 사람을 들어 곧은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애공(哀公)은 문자 그대로 슬픈 군주, 공자의 생애에 있어서 공자의 조국 노나라의 마지막 군주다. 아버지 정공(定公)이 죽고 나서 왕위를 계승한 해가 BC 494년, 공자의 나이 58세였다. 그때 애공은 10세 전후의 어린아이였다. 그의 재위 16년에 공자는 세상을 떴다. 이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를 공자말년으로 본다면, 애공은 스물을 갓 넘은..
18. 자장이 녹봉을 구하는 방법을 공자에게 묻다 2-18. 자장이 공자에게 녹을 구하는 법을 배우려 하였다. 2-18. 子張學干祿.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어진다. 많이 보되 위태로운 것은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가 적어진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이 바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12ㆍ13ㆍ14장이 군자의 덕성, 군자됨의 기준을 말하고 있다면, 15ㆍ16ㆍ17ㆍ18장이 모두 학문하는 방법, 다시 말해서 배움의 길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지식을 획득해야 할 것인가라는 매우 인식론적인 ..
17. 안다는 것에 대해 2-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야! 내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이다.” 2-17.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의 말씀 중에서 그 말씀이 구체적인 대상을 향해 발설되었을 때, 우리는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역사적 맥락을 일차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논어』 중에서, 일평생 공자의 공자다움을 지켜준 애 제자 자로(子路)와의 애증어린 관계에서 발생된 대화의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는 이 말이 자로(子路)라는 인격체를 전제로 하는 맥락에서 일차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재인식해야한다. 그러한 해석의 지평 위에서 우리..
16. 이단을 공격하면 해가 된다 2-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단을 공부하는 것은 해가 될 뿐이다.” 2-16.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여기서 말하는 이단(異端), 지금 현재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쓰이는 맥락에서 규정되고 있는 의미로 해석될 수는 없다. 즉 여기서 말하는 이단(異端)이란 ‘unorthodoxy’나 ‘heterodoxy’의 의미로 해석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공자시대에는 ‘orthodoxy(정통)’의 개념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양묵(楊墨)이니 노불(老佛)이니 하는 따위가 모두 공자 후대에 형성된 대비된 개념들이요, 공자 시대에 공자를 괴롭혔던 어떤 이단학파의 개념이 아니다. 공자는 창조적 시대(creative age)를 살았지 호교적 시대(apologetic age)를..
15. 배우되 생각하고, 생각하되 배우라 2-1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치 않으면 맹목적으로 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2-15.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칸트는 감성(Sinnlichkeit)과 오성(Verstand)의, 인식성립에 있어서의 상 보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 (Kritik der Reinen Vernunft, B75). 우리의 심성이 그 어떠한 방식에서 촉발되는 한에서 표상을 받아들이는 심성의 수용성을 감성이라고 한다면, 이와 반대로..
14. 자기편만 만드는 인간과 어우러지는 인간 2-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두루 마음쓰고 편당 짓지 아니하며, 소인은 편당 짓고 두루 마음쓰지 아니한다.” 2-14.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앞서 서막에서도 논의한 바 있지만,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대비적 가치판단은 반드시 동일한 가치평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라는 것이 확실히 인식되어야 한다. 군자(君子)는 사(士)가 지향해야 할 이상이며 소인(小人)은 사(士)가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공자의 소인(小人)에 대한 비판은 사(士)에 대비되는 서민(庶民)에 대한 경멸의 언사가 아니라, 사(士)임을 자처하는 사회리더들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다. 다시 말해서 군자와 소인은 계급 적으로 준별되는 개념이 아니며, 둘..
13. 자공아, 말보단 행동으로 보이라 2-13. 자공이 군자에 관하여 여쭈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먼저 실행하라. 말은 실행한 후 그 행동을 따르게 하라.” 2-13. 子貢問君子. 子曰: “先行其言而後從之.” 보통 이 장은 ‘먼저 그 말을 실천에 옮기고, 그 후에 따르게 한다[선행기언(先行其言), 이후종지(而後從之)]’로 끊어 읽는 것이 상례이지만, 내가 다르게 끊은 방식과 내용에 있어서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내가 끊는 방식이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해준다. 자공(子貢)은 앞서 말했듯이 비교적 연소한 제자로서 탁월한 외교관이요, 비지니스맨이었다. 「선진(先進)」편의 사과십철(四科十哲)에 자공(子貢)은 재아(宰我)와 함께 ‘언어(言語)에 능한 자’로서 분류되어 있다. 범순부(范淳夫, 1..
12. 군자는 한정된 쓰임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2-1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2-12. 子曰: “君子不器.” 공자의 말씀으로서 전해 내려오는 이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은, 본 옛부터 유교전통의 핵심적 윤리로서 존중되어온 명언이기도 하지만, 이 말이 20세기 세계학술계의 쟁점(爭點)으로서 지극히 유명하게 된 것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이 말을 그의 역저, 『중국의 종교(The Religion of China)』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대비되는 유교 윤리의 대표적 구절로서 아필시킨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베버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의 경우 순결한 초월주의의 인정이 오히려 현실을 제어하는 힘을 잉태시켰지만, 유교의..
11. 온고지신(溫故知新) 2-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 것을 온양하여 새 것을 만들어 낼 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2-11.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온(溫)’은 고주와 소(疏)에 의거하여 ‘심역(尋繹)’과 ‘심난(燖煖)’의 두 의미로 해석되어왔다. 첫번째 해석은 ‘옛 것을 캐어들어간다’는 의미고, 두 번째 해석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옛 것을 다시 뎁힌다’는 뜻이다. 두 개의 해석이 모두, 옛 것을 잊지 않고 다시 복습함으로써 그 옛 것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함의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주자(朱子)는 ‘고(故)라는 것은 예전에 들은 것이요, 신(新)이란 지금에 새로 터득하는 것이다[故者, 舊所聞; 新者, 今所得].’라고 하였다. 다산(茶山)은 ‘심온(..
고문효경의 모습 이것이 내가 준거로 삼은 고문효경이다. 고문효경으로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본일 뿐 아니라 가장 정밀한 본래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판본에는 「공서(孔序)」는 들어있지 않다. 인치(仁治) 2년(1241), 키오하라노 노리타카(淸原敎隆, 1199~1265)의 교점본인데 동양사학자 나이토오 코난(內藤湖南, 1866~1934)의 소장이 되었다가 1934년 일본국보로 지정되었다. 키요하라노 노리타카는 카마쿠라 학문 융성에 크게 기여한 대학자로서 본명은 중광(仲光), 쇼오군(將軍)의 시강(侍講) 노릇을 했다. 카마쿠라 중기의 무장 호오죠오 사네토키(北條實時, 1224~76)를 가르쳤는데, 사네토키는 키요하라의 도움을 입어 카네사와문고(金澤文庫)를 건립하였다. 키요하라는 대대로 박사 집안으로서..
내가 참고한 고문경 판본 나는 동경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치열한 고증학의 방법을 배웠다. 나를 가르치신 선생님들의 대석학적 학식과 그 인품을 생각하면 항상 옷깃을 여미게 되고, 나도 후학들을 그렇게 가르쳐 주어야 할 텐데 하는 사명감이 가슴에 서리지만 이미 은퇴를 한 구각(軀殼)으로 어찌 할 바가 없다. 일본 근세석학들의 책을 보면 나는 내가 직접 배운 선생님들이거나, 그들의 사우관계에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 향기를 직접 느낄 수 있다. 그들이 기여한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존숭의 염은 우리가 지닐 필요가 없겠지만, 그들의 학문의 정직성과 엄밀성은 우리가 본받고 또 본받아야 한다. 나는 중국고전에 있어서 금문과 고문의 전통을 편견없이 수용하려고 노력하지만 대체적으로 고문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효경』을 ..
판본학의 바탕 없는 고전학은 구름누각 이상이 나 도올이 『효경』을 주해하기 위하여 독자들에게 주지시키고자 하는 사전정보이다. 나 도올은 본시 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사소한 고증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고증학의 실증이 없는 고전학은 사상누각이요, 판본학의 바탕이 없는 고전해독은 구름누각이요, 필로로지(philology, 문언학)의 공독이 없는 필로소피(philosophy, 철학)는 위선누각이다. 우리나라에서 나오고 있는 중국고전이나 한국고전에 관한 논문들을 보면 너무도 터무니없이 빈곤하고 부정확한 정보들이 횡행하고 있다. 나 도올의 문학(問學) 이 아직도 미숙한데 그를 일일이 다 지적할 바가 아니나, 우리나라에 제대로된 국사사전 하나가 없다고 말해도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기초 공..
사마광의 『고문효경지해』로부터 주희 『간오』, 동정 『대의』까지 그리고 고문효경은 공전(孔傳)이 사라진 본문만 남아있는 좀 기묘한 판본이 송나라 비각(秘閣)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사마광이 그 본문에 의거하여 『고문효경지해(古文孝經指解)』를 짓게 된 경위는 전술한 바와 같다. 사마광은 『지해』의 본문을 고문에 의거했다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금문인 정주(鄭注)와 어주(御注)의 본문을 대폭 수용하였으므로 『지해』의 본문은 고문인 듯하면서도 고문이 아닌 좀 엉터리 잡탕이다. 도저히 고문효경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세상에서는 이 사마광의 『지해』 본문을 ‘송본효경宋本孝經’이라고 부른다. 이 아리까리한 송본효경을 가지고 주자가 고문경의 모범이라 착각하고, 『효경간오(孝經刊誤)』라는 불행한 책을 지었고, 그 책의 체제..
『공전』 『정주』의 망일과 쵸오넨의 『정주』 헌상 보통 ‘어주(御注)’라고 하면 ‘천보중주(天寶重注)’를 가리키며 ‘개원시주(開元始注)’는 중국에서도 망일되었다. ‘개원시주’는 다행히 일본에 보존되어 오늘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개원시주와 천보중주의 차이는 「서문」의 이동(異同)과 주문(注文)의 증감뿐이며, 경문(經文)의 변화는 없다. 하여튼 어주가 세상에서 통용되게 되자 공(孔)ㆍ정(鄭) 이주(二)는 모두 빛이 바래버렸고, 안타깝게도 오대(五代)의 난(亂)을 거치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 후, 북송의 옹희(雍熙) 원년(984)에 일본의 승려 쵸오넨(奝然, ?~1016, 헤이안平安 중기의 토오다이지東大寺의 학승, 코오토京都의 사람. 983년에 入宋, 송태종을 알현)이 태종에게 『정주(鄭注)』한 책을 헌..
10. 공자가 말한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 2-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 행하는 바를 보고, 그 말미암은 바를 따지며, 그 지향하는 바를 살핀다면, 사람들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으리오! 사람들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으리오!” 2-10.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 人焉廋哉?” 『논어』에 수록되어 있는 공자의 말 중에는 구체적인 어떤 역사적 상황이 나, 공자의 삶의 과정의 어떤 시점에서 의미를 갖는 구절이 많지만, 전혀 그러한 구체적 상황을 전제로 할 필요가 없는 것도 많다. 그러한 특수한 대상을 전제로 할 필요가 없는 보편적인 언명은 그 보편적인 의미만을 취하면 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말이란, 그것이 발설되어진 역사적 상황이 없을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
9. 안연은 바보가 아닌 진정한 학인(學人)이었다 2-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회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하였으나, 내 말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아 그가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물러가고 나서 그의 사적 생활을 살펴보니 역시 나를 깨우치기에 충분하다. 안회는 결코 어리석지 않도다!” 2-9. 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안회는 공자의 데미안, 그가 인(仁)하다고 심복(心服)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수제자 안회의 요절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인간에 대한 사랑의 염(念)은 『논어』 곳곳에 스미어 있다. 그 안회에 대한 공자의 최초의 탄성이 바로 여기 이 구절이다. 안회(顔回)는 성(姓)이 안(顔)씨요, 명(名)이 회(回)다. 자(字)는 자연(子淵), 그래서..
8. 효도란 안색을 온화하게 하는 것에서부터 2-8. 자하가 효를 여쭈었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어른의 안색을 살필 줄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어른에게 구찮은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어른께서 먼저 잡수시게 하는 것만으로 일찍이 효라 할 수 있겠는가?” 2-8.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앞의 2-7과 사실 그 주제의 맥락이 일치되는 것이다. 효(孝)의 본질이 단지 물리적 수고를 덜어드리거나, 음식을 먼저 드리거나 하는 차원에서 머무르는 외면적 치레가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을 강력히 천명한 것이다. 자하(子夏)는 이미 1-7에 기출하였다. 그곳에도 ‘현현역색(賢賢易色)’이라 하여 ‘색(色)’자가 들어갔고,..
7. 잘 봉양해드리는 게 효도의 완성은 아니다 2-7. 자유가 효를 여쭈었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요즈음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만을 일컫는 것 같다. 허나 개나 말을 가지고 이야기 해도 또한 봉양해주기는 마찬가지인데, 공경함이 없다면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겠느냐?” 2-7.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우선 이 장의 질문자인 자유(子游, 쯔여우, Zi-you)는 「선진(先進)」편에서 언급한 사과십철(四科十哲)에 자하(夏)와 함께 문학(文學)에 능한 인물로 공문(孔門)에서 비교적 중후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자이다. 나이도 35세 연하, 45세 연하의 두 설이 있으나, 사마천의 기록대로 45세 연하로 보통 설정하고 있다. 「열전」..
6. 부모는 자식이 병들지나 않을까 근심한다 2-6. 맹무백이 효를 여쭈었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 2-6.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은 누구인가? 맹무백(孟武伯, 멍 우뿨, Meng Wu-bo)은 맹의자(孟懿子)의 아들이다. 무(武)는 시호(諡號)이고, 백(伯)은 맏아들을 뜻하니 맹무백은 용맹스럽고 강강(剛强)한 맹의자의 맏아들일 것이다. 중손(仲孫) 체(彘)이다. 앞서 번지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애공(哀公) 11년(BC 484, 공자 68세) 제나라가, 노나라가 거년(去年)에 식(鄎)【몽음현(蒙陰縣)의 북(北)에 있는 제나라 땅이다】을 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노나라를 침공한 사건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좌사(左師)를 이끈 ..
5. 예(禮)로 섬기고, 장사지내고, 제사지내라 2-5. 맹의자가 효를 물었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거슬림이 없는 것이 외다.” 2-5.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 그에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맹손씨 가 나에게 효를 물었는데, 나는 그냥 거슬림이 없는 것이라고만 대답했단다.”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번지가 말했다: “그것은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요?” 樊遲曰: “何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살아계실 때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지내고, 예로써 제사 지내는 것이다.” 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 효에 관한 테마 앞의 편해(篇解)에서 말했듯이 1장부터 4장까지가 본편의 강령에 해당 되..
4. 멋있게 나이를 먹기 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우뚝 섰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2-4.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내면적 깊이가 담긴 회고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논어』 구절을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이 장이 후보로 올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장의 내용을 심층적으로 알지는 못해도 부분적으로, 특히 자기의 나이를 말할 때 마흔 살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불혹의 나이’라고 하든가, 쉰 살이라고 하지 않고 꼭 ..
3. 법치보다 덕치를 말하다 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정령으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이 면하기만 할 뿐이요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면 사람들이 부끄러움이 있을 뿐 아니라 떳떳해진다.” 2-3.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유가와 법가 유가(Confucianism)와 법가(Legalism)의 정치철학적 입장을 단적으로 대비시키는 대구로서 늘상 인용되는 만고(萬古)의 명언이다. 그러나 유가와 법가가 과연 그렇게 날카롭게 대비되어야 할 성질의 것인지는 우리의 성찰을 요(要)하는 것이다. 유가의 정치철학의 근본이념은 덕치주의(德治主義)며, 이 덕치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적 덕성을 감화시키는 것을 그 ..
2. 시 300편을 한 마디로 하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이다 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시 삼백편을 한마디로 덮어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 2-2.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공자와 육경 다산은 ‘시삼백(詩三百)’이라는 표현에 대해 성호선생(星湖先生)의 말을 이라는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보주(補注)를 하고 있다. 보(補)하여 말한다: 시(詩)는 정확하게 311편이다. 그런데 그중 6개가 생시(笙詩)【주공(周公)이 당시의 노래를 기악곡화해서 생황으로 연주한 6편. 가사는 일찍 사라지고 그 제목만 남아있다】이고, 그 5개가 상송(商頌)이다. 생시(詩)는 본래 가사가 없는 것이고, 상송(商頌)은 주(周)나라 것이 아닌 전대(..
1. 정치를 덕으로 하면 뭇별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 같아진다 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정치를 하되 덕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나머지 모든 별이 그를 중심으로 고개 숙이고 도는 것과도 같다.” 2-1.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이것은 「위정(爲政)」편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유명한 구절이며 공자 자신의 말로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공자가 과연 이러한 천문의 이미지를 비유로 들어 자신의 ‘덕치주의(德治主義)’적 위정관(爲政觀)을 직접 표방했는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이것은 유가와 도가를 대립적 사상체계로 파악하는 후대의 관념적 틀에서 볼 때는, 매우 위험한 해석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이 장은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
위정 제이(爲政 第二) 편해(篇解) 「학이(學而)」 편해(篇解)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위정(爲政)」이라는 편명은 단 순히 ‘위정이덕(爲政以德)’, 이라는 첫 구절의 첫 두 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특별한 주제의식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편의 주제는 정치와 관련된 것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어떤 일관된 주제의식이 있는 장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위정(爲政)」편은 비교적 후대에 성립한 것으로, 전국시대의 백가쟁명(百家爭鳴)하던 시기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유가에 대한 어떤 아폴로제틱(apologetic, 변명의)한 주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브룩스는 이 편을 「안연(顔淵)」 제십이(第十二), 「자로(子路)」 제십삼(第十三)의 두 편의 정치사상적 흐름을 계승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