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06/24 (47)
건빵이랑 놀자
25. 문(文)으로 확장하고 예(禮)로 집약하라 6-2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문(文)의 세계에 있어서는 가급적 널리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예(禮)로써 집약시켜야 한다. 그리하면 도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6-25.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공자는 동아시아 문명권에 있어서는 학문의 방법론을 제시한 최초의 사 상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학문방법에는 항상 변증법적 대립과 지양의 관계항 목들이 있다. 여기서도 박(博)과 약(約)은 변증법적 길항관계에 있다. 박(博)은 넓히는 방향이고 약(約)은 집중시키는 방향이다. 문(文)은 넓히는 방향이고 예(禮)는 집약시키는 방향이다. 그러니까 문(文)은 넓은 휴매니티의 교양을 의미하는데 반하여 예(禮)는 어떤 넓..
24. 인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판단을 흐리게 할 순 없다 6-24. 재아가 공자께 여쭈었다: “인(仁)한 사람이라면, 누군가 ‘여기 우물에 사람이 빠졌습니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곧바로 우물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6-24.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 ‘井有仁(人)焉.’其從之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어찌 앞뒤 안 가리고 그런 짓을 하겠는가? 군자라면 당연히 우물가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기는 해야하지만, 같이 우물에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을 그럴 듯한 말로 속일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재아는 삐딱한 인물이다. 사람을 골탕 먹이기를 좋아하고, 질문을 해도 대..
23. 변해가는 세태를 개탄하다 6-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모난 고(觚) 술잔이 모나지 않으면, 어찌 고라 할 수 있으리오! 어찌 고라 할 수 있으리오!” 6-23. 子曰: “觚不觚, 觚哉! 觚哉!” 고(觚)는 술잔의 이름이다. 나팔모양으로 생긴 술잔인데, 손잡이 쪽은 좁고 입술을 대는 테두리 쪽은 넓다. 손잡는 곳에 빙둘러 아름다운 문양이 조각 되어 있다. 고주는 마음의 설을 들어, ‘고(觚)는 예기(禮器)인데, 1승들이를 작(爵)이라 하고, 3승들이를 고(觚)라 한다’고 풀이해놓고 있다. 『의례』의 「특생궤식례(特牲饋食禮)」의 정현주에 의하면, 작(爵)이 1승이고, 고(觚)가 2승이며, 치(觶)가 3승이고, 각(角)이 4승, 산(散)이 5승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 승이라는 것이 우리 상식..
22. 공자의 이상국가론 6-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제나라가 한 번 변하면 노나라에 이를 것이요, 노나라가 제대로 한 번 변하기만 한다면 이상국가에 이를 텐데.” 6-22. 子曰: “齊一變, 至於魯; 魯一變, 至於道.” 주자의 집주가 본 장의 내용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나의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한마디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노나라는 주공의 나라, 제나라는 강태공의 나라, 두 나라는 인접해 있었다. 그러나 제국(齊國)은 노국(魯國)에 비하면 엄청난 대국이었다. 물질적ㆍ문명적 향유의 수준에 있어서 제나라는 노나라와 비교도 안 되는 대국이었고 패도의 나라였다. 그러나 공자의 자부감을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리 대국이 군사적으로 ㆍ정치적으로ㆍ경제적으로 향유의 수준이 높다 하더라도 ..
21. 물을 좋아하는 인자와 산을 좋아하는 지자 6-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동적이고 인자는 정적이다. 지자는 즐길 줄 알고 인자는 수(壽)할 줄 안다.” 6-21.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소라이(荻生徂徠)는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은 공자시대의 말이 아니고[非孔子時辭氣], 공자가 암송했던 고언(古言)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4구절 이 옛날의 법언(法言) 같은 것을 해설한 공자 자신의 주석이라는 것이다. 매우 그럴듯한 분석방식 같지만, 소라이의 이러한 분석방식 자체가 매우 상투적이며, 그가 고언(古言) 운운하는 그 고언이 도무지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인지 아무도 밝힐 수..
20. 인함과 지혜로움에 대해 6-20. 번지가 앎(知)에 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백성의 마땅한 바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안다고 말할 수 있다.” 6-20.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번지가 또 인(仁)에 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한 사람은 항상 어려운 큰 일을 먼저 도모하고, 자신을 위하여 얻는 일은 뒤로 한다. 그리하면 가히 인하다 말할 수 있다.”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번지에 관해서는 「위정(爲政)」 5에서 충분히 해설하였다. 번지는 46세 연하의 말년 제자로서 수레몰이를 하며 공자의 측근에 있었던 제자다. 요즈음의 언어로 말하면 공자의 쇼파 노릇을 했던 당돌한 20대의 젊은이다. 분명 ..
19.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사람에게 말하라 6-1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력이 중등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곧바로 고등한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중등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고등한 지식을 곧바로 가르치면 아니 된다.“ 6-19. 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소라이(荻生徂徠)는 송유들이 모든 사람이 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가설 때문에 이 장의 해석도 그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균일하게 깨우칠 수는 없는 것이며, 성인은 지력이 못 미치는 것을 인간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고 설파한다. 놀라운 우민(愚民)의 낭설이다. 자신의 기설(奇說)을 위해 공자의 말 그 자체를 왜곡하는 우(愚)을 펼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여기 공자는 근원적으로 인간의 ..
18. 아는 자와 좋아하는 자와 즐기는 자 6-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배움의 길에 있어서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 무엇을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무엇을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6-18.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구절도 매우 상투적으로 해석하여 유교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공자가 앎의 단계(객관적 지식의 단계), 좋아함의 단계(감정적 호오의 단계), 즐김의 단계(대상과 나가 일치되는 합일의 경지)를 설정해놓고 즐김을 예찬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유교를 빙자하는 자들이, 지식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즐김만 같지 못하니 …’하고 시건방진 훈수를 두는 것이다. 도대체 ‘즐긴다는 것[樂之]’이 무엇이냐? 대상..
17. 타고난 대로 살리 6-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은 반듯하다. 그런데 그것을 구부리어 사는 삶이란 요행으로 면하는 삶일 뿐이다.” 6-17. 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참으로 위대한 공자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맹자의 성(性)의 주장 이 맹자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요, 그 디프 스트럭쳐(deep structure)는 모두 공자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기온이라 할 것이다. 우선 이 장을 해석하는 고주의 입장과 신주의 입장이 매우 다르다. 우선 첫 번째 구절에 대한 마융馬融)의 주석을 한번 살펴보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직의 도(道)로써 일관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言人之所以生於世而自終者, 以其正直之..
16. 사(史)하기보다 야(野)하리라 6-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질(質)이 문(文)을 이기면 야(野)하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史)하다. 문과 질이 골고루 배합된 연후에나 군자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 6-16.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너무도 유명한 문구이기에 별다른 해석을 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말화 되어 있기에 풀어 번역하면 오히려 원의가 협애하게 축소될 뿐이다. ‘야(野)’는 가공되지 않은 투박함, 촌스러움, 생긴 그대로의 원초적 질박함이요, ‘사(史)’는 문명의 세련화를 거친 닳아빠짐, 반지르르함, 교양미를 지칭한다. 나 도올은 양자에 있어서 완벽한 빈빈(彬彬)을 기대할 수 없다면 항상 사(史)보다는 야(野)로 치우치는 것을 사랑한다. 야가 사보..
15. 이 길 6-1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누구인들 밖을 나갈 때에 문을 거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런데 어찌하여 이[斯] 도(道)를 거치지 아니 하려느뇨!” 6-15.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고대 중국인들의 가옥구조를 보면, 내실에서 외당 사이에 동서로 가로지르는 벽이 있고, 그 벽에 문이 달려 있는데 그것을 호(戶)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실에서 외당으로 나아가려면 이 호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예를 들어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도(斯道)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공자가 말한 것이다. 이것은 요시카와의 설명이지만, 나는 이러한 번잡한 지식을 전혀 공자의 말에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시카와가 말하는 가옥구조가 보편적인 중국인의 구조일 리도 없고, ..
14. 말 잘하는 것과 아리따움을 칭송하는 세상을 미워하다 6-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축타의 말재주와 송조의 미모가 없으면 요즈음 세상에선 환난을 면키 어렵다.” 6-14. 子曰: “不有祝鮀之佞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공자가 어지럽고 더럽게 느껴지는 세상을 한탄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해석에는 제설이 분분하다. 더러운 세상이 정말 아니꼬와서 두고 못 보겠다는 식의 분노가 서린 공자의 푸념이야말로 공자를 공자다웁게 만드는 위대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자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메시지도 ‘성인의 말씀’으로서 거룩하게만 새기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 발랄한 로기온의 생명력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미 서막에서 이야기했지만 송조는 송나라의 미..
13. 패주할 땐 후미에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맹지반 6-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맹지반(孟之反)은 공을 자랑하지 않는구나! 노 나라의 군대가 퇴각할 때에 후미를 맡아 싸웠다. 노나라의 북성 문을 최후로 들어갈 때 말 궁둥이를 채찍질하면서 말했다. ‘내가 용감해서 후방을 맡은 것은 아니다. 말이 시원찮아 뒤처졌을 뿐이다.’” 6-13.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 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맹지반(孟之反, 멍 즈환, Meng Zhi-fan)은 공자 당대의 인물로서 노나라의 대부라고 한다. 이름이 측(側), 또는 자측(子側). 지반(之反)은 자(字)인데, 그냥 반(反)이라고도 쓴다. 맹자반(孟子反)이라고도 쓴다. 이 전투의 상황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12. 정치엔 인재를 구하는 게 먼저다 6-12.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읍제(邑)가 되었다. 공자께서 자유를 만났을 때 물으시었다: “너는 사람을 얻었느냐?” 6-12. 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爾乎?” 자유가 대답하였다: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길을 다닐 적에 골목 지름길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여태까지 공적인 일이 아니면 한 번도 제 방에 온 적이 없나이다.”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於偃之室也.” 공문(孔門)의 활약상의 다양한 면모에 관하여 풍요로운 정보를 제공하 는 위대한 장이라 할 것이다.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된 것은 애공 12년(BC 483) 전후의 일이며 공자의 귀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의 일이다. 그때 공자의 나이는 69세 ..
본서의 표기체계에 관하여 공자(孔子)는 ‘공쯔’로 표기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내가 1982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부터 주장한 것이다. 13경이라는 고전은 어디까지나 중국고전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에게서 객관화되어야 할 외래문명이다. 수메르문명의 『길가메시 서사시』의 인명을 ‘길가메시’라고 표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우리식의 독특한 발음으로 표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중국어와 일본어에 관한 표기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1985년 1월에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나의 저술을 통하여 발표한 ‘최영애-김용옥 표기법(씨케이 시스템 C.K.System)’은 중국어ㆍ일본어 표기의 문제를 음운학의 성과 위에서 일관된 원칙을..
11. 자하야 너는 군자유가 되어라 6-11. 공자께서 자하(夏)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너는 군자유가 되거라. 소인유가 되어서는 아니 되나니!” 6-11.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자하(子夏)에 관해서는 1-7에서 충분히 논의하였다. 군자유와 소인유의 공통분모는 유(儒)이다. 따라서 군자와 소인이 모두 같은 유이며 계급적ㆍ신분적 차별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유는 사(士)이며 배우는 자의 통칭이다. 군자와 소인은 같은 지식사회에서 분별되어질 뿐이다. 왜 하필 자하에게 공지는 이 말을 하였을까? ‘위자하왈(謂子夏曰)’이라는 것은 자하를 맞대놓고 얘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너[女]’라는 이인칭을 쓰고 있다. 자하는 문학으로 꼽힌다. 문학이란 요즈음의 문학(literature)이 아..
10. 하려는 의지도 없이 아예 선을 그어버리다 6-10. 염구가 말하였다: “저는 선생님의 도(道)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딸릴 뿐입니다.” 6-10.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참으로 힘이 딸리는 자는 중도라도 그만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을 뿐이니라.”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劃” 인간의 나태에 관한 통렬한 비판이다. 앞서 말했듯이, 염구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고, 실무형 관료였다. 이렇게 실무에 밝은 자들이 항상 삶의 지혜로 삼는 것은, 스스로의 가능성에 관하여,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여건에 관하여 한계를 긋고 살아가는 것이다. 현명하고 또 슬기롭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
9. 한 대나무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의 즐거움 6-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훌륭하도다! 안회는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청수로 누추한 골목에서 산다.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회여! 그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도다. 훌륭하도다! 안회는.” 6-9.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한 인간에 대한 이 이상의 찬사는 없을 것이다. 제자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감동적으로 듬뿍 실려있다. 이 장의 감상 포인트는 ‘그 근심[其憂]’과 ‘그 즐거움[其樂]’이다. ‘그(其)’라는 말에 강조가 놓여있다. 바로 그 근심, 그 누추함에서 그 즐거움을 발견할 줄 아는 지혜, 그 현명함[賢哉!]을 상찬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의 지혜문학에..
8. 백우에게 이런 병이 들 줄이야 6-8. 백우가 몹쓸 병에 걸렸다. 공자께서 병문안을 가시었다. 6-8. 伯牛有疾, 子問之. 방안으로 들어가시지는 않으시고 창으로 그 손만 잡으시고 말씀하시었다: “맥이 없구나! 명이 다 했구나!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自牖執其手, 曰: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 참으로 중후한 공자의 인품과 삶의 비운의 한 장면을 가슴 저미게 보여주는 훌륭한 장이다. 이런 파편은 거의 공자 생전 그대로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 등장하는 염백우는 염구ㆍ염웅과 함께 노나라 염씨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십철(四科十哲)에 덕행으로 손꼽힌 공문의 무게있는 인물이다. 성이 염(冉) 이름이 경(耕), 자..
7. 계씨의 신하되는 걸 거절한 민자건 6-7. 계씨가 민자건(閔子)을 비읍의 읍재(邑宰)로 삼으려 하였다. 6-7. 季氏使閔子騫爲費宰. 민자건은 심부름 온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말 좀 잘 해다오. 또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문수(汶水)가에 있을 것이다.”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여기 민자건(閔子騫, 민 쯔치엔, Min Zi-gian)이 처음 나오고 있다. 우선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를 보자. 민손은 노나라사람이다. 자가 자건이다. 덕행으로 이름이 드높았다. 공자는 그의 효성을 칭찬하였다. 閔損, 魯人, 字子騫. 以德行著名, 孔子稱其孝焉. 그리고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논어』 기사를 편집한 것 외로는 다음과 같은 정보만 있다. 민..
6. 중유와 자공과 염구는 정치할 만한가 6-6. 계강자(季康子)가 여쭈었다: “중유(仲由: 자로)는 정치를 맡길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는 과단성이 있으니 정치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6-6. 季康子問: “仲由可使從政也與?” 子曰: “由也果, 於從政乎何有?” 여쭈었다: “사(賜: 자공)는 정치를 맡길 만합니까?” 말씀하시었다. “사는 사리에 통달했으니 정치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曰: “賜也, 可使從政也與?” 曰: “賜也達, 於從政乎何有?” 여쭈었다: “구(求: 염유)는 정치를 맡길 만합니까?” 말씀하시었다: “구는 다재다능하니 정치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曰: “求也, 可使從政也與?” 曰: “求也藝, 於從政乎何有?” 여기 공자에게 질문을 하는 계강자는 ..
5. 3개월 간 인을 떠나지 않았던 안회 6-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회는 말이다, 그 마음이 석 달 줄곧 인(仁)을 어기는 법이 없나니. 석 달이 지나도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인(仁)한 채로 흘러갈 뿐이다.” 6-5. 子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이 구절도 대강의 뜻은 알아차릴 수 있으나 주어가 명료하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너무도 많다. 1 고주는 ‘기여(其餘)’를 공문에서 안회 이외의 학생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풀었다. 타 제자들은 잠시만 인에 이를 때가 있고 오로지 안회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言餘人暫有至仁時, 唯回移時而不變也]. 나는 이 설이 매우 졸렬하다고 생각한다. 공자가 안회와 여타의 학생을 그런 식으로 분별심을 ..
4. 중궁은 자질이 있기에 쓰일 것이다 6-4, 공자께서 중궁(仲弓)을 평하여 말씀하시었다: “보통 황소의 새끼라도 털이 붉어 아름답고 각진 뿔이 웅장하다면 사람들이 제물로 쓰지 않고 내버려 두어도, 산천의 하느님께서 어찌 그것을 내버려 두겠느냐?” 6-4. 子謂仲弓曰: “犂牛之子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 남면할 만하다고 평한 중궁에 관하여서는 본 편 첫머리(6-1)에서 설진(說盡)하였다. 중궁은 염옹(冉雍)의 자(字)이다. 염웅은 앞서 말했지만 비천한 집 안의 소생이다. 따라서 ‘황소의 새끼[리우(犂牛)]’로 비유한 것은 그 천한 소생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공가(公家)에서는 제물로 쓰는 특별한 소를 길렀다. 그러나 그러한 소가 모자랄 때에는, 민가에서도 털에 붉은 기가 돌며 뿔이 아주 ..
3. 공서적과 원헌의 행동방식 차이 6-3A. 자화(子華: 공서화의 자字)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였다. 염자(冉子)가 자화의 홀로 남을 어미를 위하여 곡식을 청하였다. 6-3A.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한 말이나 주려무나.” 子曰: “與之釜.” 더 많이 청하자, 말씀하시었다: “그럼 한 가마 정도 주렴.” 그런데 염자는 곡식 다섯 섬을 주고 말았다. 請益. 曰: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공자께서 내심 불쾌히 여겨 말씀하시었다: “적(赤: 공서화의 이름)이 제나라로 가는데, 살찐 말수레를 타고 가볍고 호사한 가죽옷을 입고 가는구나. 나는 들었지. 군자는 곤궁한 사람을 도와주어도 부유한 사람을 보태주는 짓을 하지 않는다고.”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
2. 안연의 호학 6-2. 애공(哀公)이 물었다: “제자 중에서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6-2.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안회顔回)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은 두 번 다시 반복하는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그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으니, 아직 배우기를 좋아한다 할 만한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우리 또래의 사람들만 해도, 좀 고전의 소양이 있는 집안에서 큰 사람이라면, 공자의 안회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 그리고 공자가 그리는 안회의 모습에 서 얻어지는 교훈은 항상 몸에 배이도록 들었던 『논어』의 ..
1. 중궁은 남면할 수 있겠구나 6-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옹(雍: 중궁의 이름)은 남면케 할 만하다.” 6-1. 子曰: “雍也可使南面.” 중궁(仲弓)이 자상백자(子桑伯子)에 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의 간솔함은 괜찮다.”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簡.” 중궁이 말하였다: “자기는 공경함에 거(居)하면서 남에게 간솔하게 행동하고, 그렇게 백성들을 살핀다면 괜찮다고 할 만도 하겠지요? 그러나 자기도 간솔함에 거(居)하면서 남에게도 간솔하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간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옹의 말이 옳다.” 子曰: “雍之言然.” 『논어』의 모든 장이 그러하듯이, 본 장의 의..
옹야 제육(雍也 第六) 편해(篇解) 이 편의 대체적 구성에 관하여 주희는 매우 재미있는 주석을 달아놓고 있다: ‘「옹야」편은 2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편의 제14장 이전은 그 대의가 「공야장(公冶長)」편과 같다[범이십팔장(凡二十八章). 편내제십사장이전(篇內第十四章以前), 대의여전편동(大意與前篇同)]’ 이것은 곧 「옹야」편의 28장이 앞의 14장과 뒤의 14장으로 그 성격이 대별되며, 앞 14장은 전편인 「공야장」과 그 대의가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주희는 「공야장」편의 성격을 ‘옛과 지금의 인물들의 현부 득실을 논함[논고금인물현부득실(論古今人物賢否得失)]’이라 규정했으므로, 이것은 「옹야」편의 전14장 또한 고금인물들의 현부 득실을 논하는 성격에서 그 대의가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
27. 호학(好學)해야만 한다 5-2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반드시 나와 같이 충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5-27.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논어』 전체 중에서 참으로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명구 중의 명구로서, 나 도올이 항상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또 들려주는 대목이다. ‘십실지읍(十室之邑)’이란 열 가호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은 마을[邑]이다. 읍(邑)의 가장 작은 단위로서, 강조적인 표현이다. 그렇게 작은 마을에도 충직하고 신험있는 말을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충신(忠信)한 자들이란 좋은 사람들이요, 착한 사람들이다. 충(忠)과 신..
26. 자신의 허물을 알고 자책하는 사람 5-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 절망스럽구나!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내심 스스로 자책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5-26. 子曰: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 여기 ‘이의호(已矣乎)’라는 표현은 「위령공」 12, ‘오미견호덕여호색자야(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라는 구문 앞에 한번 다시 나오고 있다. 이것은 주자가 주석 한 대로 종내 그러한 사람을 얻지 못하고 마는 것을 깊게 탄식하는 말이다[已矣乎者, 恐其終不得見而歎之也]. ‘아~ 정말 이젠 틀렸구나!’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현대 중국어의 표현으로는 ‘쑤안러(算了)’정도의 느낌이 될 것이다. ‘송(訟)’이란 원래 공자의 시대에도 재판의 뜻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장은 그러한 법제적 용어를..
25. 안연과 자로와 공자가 각자의 포부를 얘기하다 5-25. 안연과 계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제각기 품고 있는 뜻을 한번 말해보지 않으련?” 5-25. 顔淵, 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자로가 말하였다: “원컨대, 수레와 말, 웃 도리와 값비싼 가벼운 가죽외투를 친구와 함께 쓰다가, 다 헤지더라도 유감이 없고자 하옵니다.” 子路曰: “願車馬, 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안연이 말하였다: “원컨대, 잘함을 자랑치 아니하고, 공로를 드러내지 아니하고자 하옵니다.”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자로가 말하였다: “이제는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하옵니다.” 子路曰: “願聞子之志.”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늙은이로부터는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친구로부터는 믿음직..
24. 좌구명이 부끄럽다고 여긴 사람 5-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번지르르한 말, 꾸민 얼굴빛, 지나친 공손, 이것들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기노라. 싫어하는 감정을 감추고 그 사람을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기노라.” 5-24. 子曰: “巧言, 令色, 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14장에서 24장까지, 21장 한 장을 예외로 한다면, 모두 공자의 제자 이외의 인물에 대한 공자의 평어이다. 그 중에서 14장 ~ 20장의 일곱 장은 공자보다 앞선 동시대 열국의 대부에 대한 인물평이라는 의미맥락에서는 매우 동질적이다. 그런데 21장부터 24장까지는 각 장이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21..
23. 미생고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옆집에서 빌려서주다 5-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 이르는가? 어떤 사람이 미생고에게 초를 좀 얻으려 하자, 없으면 없다 말할 것이지 얼른 옆집에서 빌어 다가 주는구나!” 5-23.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鄰而與之.” 미생고(微生高)라는 사람은 문맥으로 보건대 공자 당대에 정직한 사람으로 평판이 높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는 공자가 사는 생활권에서 이름이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 동네사람이었기 때문에 옆집에서 무엇을 꾸어오는 것까지도 다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공자는 미생고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주변사람들의 평판에 찬물을 끼얹는다.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고 말하는가? 미생고는 정직하지 않다! 왜 그런가? 어떤 사람이..
22. 백이와 숙제는 묵은 원한으로 괴롭히지 않았다 5-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백이와 숙제는 사람들이 저지른 지난 잘못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사는 일이 거의 없었다.” 5-22. 子曰: “伯夷ㆍ叔齊不念舊惡, 怨是用希.” 임마누엘 칸트의 신(神)의 실존(實存, die Existenz Gottes)에 대한 문제의식은 바로 인간의 도덕성(Sittlichkeit)과 행복(Glückseligkeit)의 불일치라는 인간의 실존적 현실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도덕적으로 선업(善業)을 쌓는 인간에게 그 선업에 비례하여 행복이 보장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현세에 사는 이성 존재자가 자기의 전체에 있어서 모든 것을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이다.(Glückselig..
21. 우리 학단의 소자들이 광간하구나 5-21.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시었을 때, 말씀하시었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오당의 어린 제자들이 박력있고 뜻이 커서, 찬란하게 문장을 이루었으나, 그것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를 모르는구나.” 5-21. 子在陳曰: “歸與! 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모든 교육자들에게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멋드러진 『논어』의 한 구절이다. 교육자로서 이와 같은 설레임을 느낄 수 없다면 어찌 그를 교육자라 이를 수 있을까보냐! 이것은 공자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귀로(歸魯)라는 사건을 직면하고 있는 공자의 인간적 ‘그리움’을 묘사한 탁월한 파편이다.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문장을 발하고 있다. 후학의 교육이란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교..
20. 영무자의 지혜로움은 따라할 수 있지만, 어리석음은 따라할 수 없다 5-2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영무자(甯武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지혜롭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어리석었다. 그 지혜로움을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따르기 어렵다.” 5-20. 子曰: “甯武子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영무자(甯武子)의 실명은 영유(甯兪)다. 춘추 초기, 공자보다 약 1세기를 앞선 진문공(晋文公)의 시대, 위(衛)나라의 가로(家老)였다. 진문공(晋文公)은 제환공(齊桓公)의 뒤를 이어 춘추의 제2의 패자가 된 사람으로, 19년의 기나긴 유랑생활 끝에 군위(君位)에 오른 그 유명한 헌공의 아들 공자 중이(重耳)이다. 이때 위(衛)나라는 북방의 진(晋)나라와 남방의 초(楚)..
19. 세 번 생각하지 말고 두 번이면 된다 5-19. 계문자(李文子)는 세 번 곰곰이 생각한 뒤에야 행동하였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었다: “두 번이면 충분하다.” 5-19. 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 斯可矣.” 계문자(李文子, ?~BC 568)는 삼환(三桓) 중의 막강한 계씨가문의 제3대 영주로서 노나라의 문공(文公)ㆍ선공(宣公)ㆍ성공(成公)ㆍ양공(襄公), 4대를 섬기면서 깊은 신뢰를 쌓은 인물이다. 그는 계씨가문의 대부(大夫)라는 우리의 상식적 편견과는 달리 노나라의 현인으로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훌륭한 인물이었다. 매우 상식적인 사람으로서 재지(才知)도 있었고, 매우 질소(質素)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의 명(名)은 행보(行父)이고, 문자(文子)는 시호이다. 『춘추경』..
18. 영윤인 자윤은 충성스럽고 진자문은 청렴하다 5-18 자장이 여쭈었다: “영윤 자문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이 되었는데도, 그때마다 기뻐하는 기색도 없었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면서도 그때마다 서운해 하는 기색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아보던 영윤의 정사를 반드시 새로 부임해온 영윤에게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이만하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충성스럽다 할 만하다.” 5-18. 子張問曰: “令尹子文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인하다고 할 만합니까?”하고 다시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모르겠다. 어찌 인하다고까지야 말할 수 있으리오?”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자장은 또 여쭈었다: “최자가 ..
17. 장문중은 지혜롭지 못하다 5-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장문중이 큰 거북딱지를 걸어두었고, 기둥머리 두공에는 산모양을 조각하고, 들보 위 동자기둥에는 수초모양을 그렸으니, 어찌 그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5-17. 子曰: “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장문중(臧文仲)의 성(姓)은 장손(臧孫)이요, 명(名)은 진(辰), 중(仲)은 자(字)요, 문(文)은 시호(諡號)이다. 장손진(臧孫辰)은 공자의 고국 노나라의 대부였다. 그러나 공자와 동시대의 인물은 아니고, 춘추 초기 진문공(晋文公)이 패자(覇者)가 되었을 시기의 인물이다. 장공(莊公)ㆍ민공(閔公)ㆍ희공(僖公)ㆍ문공(文公) 4대에 걸쳐 50년 가까이 노나라의 대부로서 활약하였다. 『춘추(春秋)』 경문(經文), 문공십년춘(文公十年春, ..
16. 공자가 존경하던 선배님 안영 5-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안평중(晏平仲)은 사람과 잘 사귀는 구나! 오래 사귈수록 오히려 공경하니.” 5-16. 子曰: “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 안평중(晏平仲, 옌 핑쫑, Yan Ping-zhong)이란 공자(孔子)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공자보다 약간 선배며, 자산(子産)보다는 약간 후배인, 당시의 대국 제(齊)나라의 재상 안영(晏嬰)을 가리킨다. 안(晏)은 성이요, 영(嬰)은 이름이요, 평(平)은 시호며, 중(仲)은 자이다. 평중(平仲)이 자라는 설도 있다. BC 567년에 제나라에 멸망당한 내(萊)나라의 이유(夷維)【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고밀현(高密縣)】 사람으로 제(齊)나라의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을 섬겼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15. 선배 정자산을 평가한 공자 5-15. 공자께서 자산을 평하시어 말씀하시었다: “군자의 도가 네 가지 있으니, 자기의 몸가짐이 공손하며, 윗사람을 섬김이 공경스러우며, 백성을 기름이 은혜로우며, 백성을 부림이 의로운 것이다.” 5-15. 子謂子産, “有君子之道四焉: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자산(子産, 쯔 츠안, Zi-chan)은 정(鄭)나라의 왕족출신의 재상인 공손교(公孫僑)의 자(字)이다. 자를 자미(子美)라고도 한다. 교(橋)는 그의 명(名)이다. 그는 정나라 목공(穆公)의 손(孫)이며, 자국(子國)의 아들로 태어나, BC 554년에 경(卿)이 되었고, BC 543년에 정권을 장악하였다. 공자보다 1세대가 빠른 명망 높은 정치가였다. 자산이 죽은 것이 노(魯)나라 소..
14. 공문자가 문(文)이란 시호를 받은 이유 5-14. 자공이 여쭈어 말씀드렸다: “공문자(孔文子)를 어찌하여 문(文)이라 시호 하였습니까?” 5-14. 子貢問曰: “孔文子何以謂之文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영민한 사람인데도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문이라 일컬은 것이다.”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이 14장에서부터 분위기는 일신된다. 여기서부터 24장까지는 당대 혹은 과거의 사회적 전범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공자의 평어가 수록되어 있다. 공자의 학내의 가까운 제자의 범위를 벗어난 인물들에 대한 평론이 수집되어 있는 것이다. 21장만이 공자의 삶의 역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예외적이다. 잘못 삽입된 파편일 수도 있다..
13. 자로는 실천하지 못하고선 다시 듣는 걸 두려워하다 5-13. 자로는 좋은 가르침을 듣고 아직 미처 실행하지 못했으면, 행여 또 다른 가르침을 들을까 두려워하였다. 5-13.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자로의 우직함과 진실함을 잘 나타내는 명구로서, 듣는 이의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깊은 파편이다. 이것은 자로의 독백도 아니요, 자로에 대한 공자의 평어도 아니다. 자로를 관찰해온 어떤 사람이 자료에 관하여 평한 것을 여기 담아놓은 것이다. 브룩스는 이 파편이 자로에 관한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실려있는 「선진(先進)」편으로 삽입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자로에 관한 평론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공자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평론이므로, 공자의 제자평론과 양식은 다를지라도 앞의 컬렉션과 동일한 맥락..
12. 성과 천도를 거의 말하지 않던 공자 5-12. 자공이 말하였다: “선생님의 문장은 얻어 들을 수 있으나, 선생님께서 인간의 본성과 천도를 말씀하시는 것은 얻어 들을 수가 없다.” 5-12.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1장부터 11장까지는 모두 공자가 주변의 친근한 제자들을 평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12장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자공이 공자를 평한 이야기다. 1장부터 13장까지를 공자의 제자에 대한 평어 모음이라고 말한다면, 그 중 12장과 13장은 약간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11장까지의 편집에 대한 부록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브룩스는 본 장을 양화편 뒤로 재편시켰다. 아마도 이것은 자 공이 훗날에 그의 스승을 회상하면서 한 이야기로서 후대에 구성..
11. 남이 나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다 5-11. 자공이 말하였다. “저는 남이 저에게 무리한 것을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남에게 무리한 것을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5-11.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야! 그것은 네가 쉽게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이 장에 대한 해석은 미묘한 차이 같지만, 신주와 고주의 해석이 크게 다르다. 나는 고주의 해석을 따랐다. 고주와 신주의 차이는 자공의 제1문장과 제2문장을 단절적으로 보느냐, 연속적으로 보느냐에 달려있다. 고주는 양자를 단절적으로 파악하는데 반하여, 신주는 양자를 연속적으로 파악한다. 고주는 우선 ‘가(加)’라는 동사를..
10. 나는 굳센 사람을 보질 못했다 5-10.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아직도 참으로 강(剛)한 자를 보지 못하였다.” 5-10. 子曰: “吾未見剛者.” 어떤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장(申棖)이 있지 않습니까?” 或對曰: “申棖.”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신장은 항상 욕심이 앞서는 사람이니 어찌 그를 강하다 하리오?” 子曰: “棖也慾, 焉得剛?” 고주는 신장(申棖)을 단지 노(魯)나라 사람이라고만 했을 뿐 그 외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苞氏曰: “申棖, 魯人也”]. 신장(申棖)이라는 사람이 과연 공자의 제자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주자는 신장(申棖)을 ‘제자성명(弟子姓名)’이라 했으나 별 근거는 없다. 『공자가어』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는 신(申)씨 성을 가진 제자로서 신적(..
9. 재아, 낮잠을 자다 5-9.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가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할 수가 없다. 내 재여에 대하여 뭔 꾸짖을 일이 있겠는가?” 5-9.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처음에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나는 남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재여 때문에도 이 같은 습관을 고치게 되었노라.”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논어』 전편을 통하여 재여는 공자에게 미움을 사는 제자의 모습으로 거의 일관되게 그려지고 있다. 재여의 자(字)는 자아(子我)이며..
8. 자공과 안회, 둘 중에 누가 나은가? 5-8. 공자께서 자공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너와 안회, 누가 더 나으냐?” 5-8.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자공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넘나보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이옵니다.”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래, 너는 안회만 같지 못하다. 그래! 나와 너 두 사람 모두 안회만 같지 못하다.”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안회를 공자보다 30세 연하라고 한다면, 자공은 31세 연하이니까, 자공은 안회보다 한 살 어릴 뿐이다. 즉 이 두 사람은 동년배의 사람들로서 공자의 총애를 받았던 탁월한 동량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공자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