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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 사람의 길 목차 (맹자한글역주) 도올 김용옥 서론 서(序) 맹자제사(孟子題辭) 조기(趙岐), 그는 누구인가? 범례 본문 1. 양혜왕 상(梁惠王 上) 1 하필 이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까 2 현자인 이후에야 이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3 50보 도주한 이가 100보 도주한 이를 비웃다 4 짐승을 몰아 사람을 먹이다 5 인자무적(仁者無敵) 6 달갑게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는 사람 7 흔종(釁鐘)에 아파하는 마음과 정치 2. 양혜왕 하(梁惠王 下) 1 백성과 함께 즐겨라 2 나라 가운데에 함정을 파다 3 청컨대 임금께선 용맹을 크게 키우십시오 4 선왕의 여행에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5 왕이 재물과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 6 제선왕이 두리번거리며 딴 얘길하다 7 백성의 뜻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라 8 고립된 사..
선진 제십일(先進 第十一) 편해(篇解) 주희는 이 편을 가리켜 공자가 제자들의 현부(賢否: 현명한 정도)를 평한 것이 많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이 편의 성격을 정확하게 규정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편 만큼 전편이 공자만년의 학단에 있어서의 사제(師弟)의 언행을 채록한 양식으로 일관 되어 있는 유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보편타당한 교훈이라든가 대기설법(對機說法)적인 교훈이나 자술적 교훈이 아닌,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들에 관한 공자의 말씀이며,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제자들의 성격이나 덕성, 그리고 만년 학단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추상적 메시지가 아닌 인간 내음새로 가득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에는 공자말년 노나라 공자학단을 리드했던 중요한 인물들..
18. 까투리에 감정 이입한 공자 10-18. 새는 뭔가 위험스러운 기색이 느껴지면 튀쳐오른다. 그리고 하늘에서 빙빙 돌다가 나뭇가지 위에 사뿐히 올라앉는다. 10-18. 色斯擧矣, 翔而後集. 공자께서 이런 광경을 보시고 시 구절을 읊으셨다: “저 깊은 산 외나무다리에 앉은 까투리야! 좋을 때로다! 좋을 때로다!” 曰: “山梁雌雉, 時哉! 時哉!” 자로가 이 노래를 잘못 알아듣고 까투리를 잡아 요리를 하여 바쳤다. 공자께서 세 번 냄새만 맡으시고는 일어나시었다. 子路共之, 三嗅而作. 모든 사람이 이 장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고 잘 모르겠다고 하나, 그것 은 주희가 이 장에 궐문(闕文)이 있어 억지 주석 달 수가 없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가 덩달아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논어』의 여타 구절과..
17. 수레에 탈 때의 공자 모습 10-17. 수레에 오르실 때에는 반듯하게 서서 수레지붕으로부터 내려와 있는 끈을 잡고 오르셨다. 수레 안에서는 공연히 뒤돌아보지 않으셨으며, 큰소리로 빠르게 뭔 일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지 않으셨으며, 손가락질을 하지 않으셨다. 10-17. 升車, 必正立執綏. 車中, 不內顧, 不疾言, 不親指.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동거마(銅車馬)를 보더라도 1호거(一號車)는 마부 와 탑승자가 모두 한 공간에 서는 형식의 수레이고 2호거(二號車)는 마부는 앞에 앉고 뒤에 요즈음 자동차 같은 방이 있어 그 실내에 앉도록 되어 있다. 두 수레를 보면 모두 수레의 높이가 큰 바퀴의 중심축 위로 있기 때문에 상당히 높다. 그냥 올라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둘 다 수레에 오르는 것은 옆에서 오르는 것..
16. 공자가 안색이 변하는 상황에 대한 기록 10-16A. 잠잘 때에는 시체처럼 대(大)자로 뻗어 주무시는 법이 없었으며, 사적으로 집에서 거하실 때는 일체 용태를 꾸미는 법이 없었다. 10-16A. 寢不尸, 居不容.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아도 부부가 한 침대에서 반듯하게 누워 불을 끄는 것이 뭐 정도인 양 항상 그런 장면을 비추지만 참으로 유치한 발상이다. 부부가 꼭 한 침대에서 자야한다는 서양식 발상도 이미 우리나라의 절대 보편적 규범인 것처럼 미신화되어 버렸다. 방의 여유가 있다면 각방과 합방은 자유롭게 운용되어야 한다. 그런 문제에 관해 하등의 사랑을 운운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잠은 완벽하게 깊은 잠을 자는 것이 다음날의 일과를 위해 좋은 것이요, 꼭 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만 좋은 잠을 자는 것..
15. 벗을 사귀는 공자의 모습 10-15A. 붕우가 죽었는데 돌아갈 곳이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우리 집에 빈소를 차려주어라.” 10-15A. 朋友死, 無所歸. 曰: “於我殯.” ‘빈(殯)’이란 옛날 초분의 습관이 발전된 것이며, ‘장(葬)’ 이전의 단계인데, 요즈음의 3일장, 9일장과는 달리,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최소한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과정이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붕우에 대한 공자의 배려는 보통사람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붕우(朋友)’란 의(義)로써 맺어지는 관계이다. 죽어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니 어찌 빈해주지 않을 수 있으리오. 朋友以義合, 死無所歸, 不得不殯. 10-15B, 붕우의 선물은 제아무리 수레와 말과 같은 ..
14. 공자, 태묘에 들어가 모든 절차를 묻다 10-14. 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 제사가 진행됨에 매사를 물으시었다. 10-14. 入太廟, 每事問. 노나라에 있는 태묘야말로 노나라사람들의 프라이드를 떠받쳐주는 최 고의 상징물이다. 이 태묘의 대제의 조제자(助祭者)로서 예에 밝기로 소문난 공자가 매사를 묻는다는 이 충격적인 장면은 「팔일(八佾)」 15에서 이미 진설(盡說)하였다. 그러나 「팔일」과 「향당(鄕黨)」의 이 두 기사가 단순히 같은 파편이 두 번 중출(重出)한 것이 아니라는 황간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팔일」은 ‘혹자’의 비난에 대하여 공자께서 말씀하신 특정한 사례를 기술한 특칭의 단편이고, 이것은 평소 공자의 주공 태묘에서의 일반적인 행태를 기술한 전칭의 단편이라는 것이다[此是錄平生常行之事]..
13. 임금을 섬길 때의 공자 모습 10-13A. 임금께서 요리된 음식을 보내주시면, 반드시 자리를 바르게 하고 앉아서 본인이 먼저 조금씩 맛을 보시었다. 임금께서 날고기를 보내주시면, 반드시 익혀서 조상제단에 바치시었다. 임금께서 산 짐승을 보내주시면, 반드시 집에서 기르셨다. 10-13A. 君賜食, 必正席先嘗之; 君賜腥, 必熟而薦之; 君賜生, 必畜之. 앞에서 이미 ‘석(席)’의 문제는 이야기를 하였다.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앉는 것이다[席, 猶坐也. 황소]. ‘상지(嘗之)’는 단지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조금씩 일부를 떼어 먹는 것이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 집으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상하지나 않았는지, 자기 몸으로 확인한 다음에 자기 집안의 권속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먹은 음식..
12. 사람의 생명을 중시했던 공자의 모습 10-12. 공자의 집안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돌아오시어 이를 아시고 말씀하시었다: “사람이 상했느냐?” 그리고 말(馬)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10-12. 廐焚. 子退朝, 曰: “傷人乎?” 不問馬. 『논어』 중에서 공자의 휴매니즘(humanism) 정신을 나타내는 극적인 고사로서 잘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여기 핵심적인 포인트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인명의 존엄성을 우선시하는 공자의 몸에 배어있는 정신이다. 인명을 너무도 천박하게 다루는 희랍이나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의 신화적 세계에 비하면, 너무도 상식적이고 은은한 인간존엄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공자의 생애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
11. 다른 사람과 친교를 맺을 때의 공자 모습 10-11A. 사람을 다른 나라에 보내어 그곳에 있는 붕우의 안부를 물을 때에는, 그 떠나는 사자에게 두 번이나 절하고 보내시었다. 10-11A. 問人於他邦, 再拜而送之. 황소는 다른나라의 군주에게 사신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공자가 직접 타국의 군주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것은 공자의 사적 사절이며 외국에 있는 친구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유보남 설).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사람만 보내는 것이 아니고 토산물의 예물을 같이 보낸다. 그리고 그 사신이 떠나기 전에 그 사신에게 ‘재배(再拜)’를 했다는 것은 그 사신에게 절한다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절한다는 뜻이다. 그 공경의 마음을 사절에게 담아 보내는..
10. 마을에 있을 때의 공자의 모습 10-10A. 향당에서 향음주례가 파하고 퇴장을 할 때에 큰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먼저 일어나 나가면 그제야 그 뒤를 따라 나가셨다. 10-10A. 鄕人飮酒, 杖者出, 斯出矣. 향음주례에 관한 것은 『의례』에 잘 기술되어 있다. 이것은 향음주례가 파했을 때의 광경에 관한 것이다. ‘장자(杖者)’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어른)이다. 그 당시 지팡이는 요즈음 허리에까지 올라오는 작은 것이 아니라 산신령 민화 속에 나오듯이 본인의 키보다도 높은 것이었다. 불편할 것 같은데 경극(京劇)에도 모두 그런 지팡이를 쓰는 것을 보면 근세까지 내려온 풍습이었다. 당시(唐詩)에 등장하는 지팡이도 다 그렇게 높은 것이었다. 편의의 문제라기보다는 권 위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 『예기』 「왕..
9. 자리를 반듯하게 한 후에야 앉던 공자 10-9. 공자께서 착석하실 때에는 반드시 자리를 반듯하게 한 후에 앉으시었다. 10-9. 席不正, 不坐. 나의 번역이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원문에 즉하지 않았다고 말할지는 모르겠으나, 본 장의 해석이 보통 심히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오해를 막기 위하여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공자는 앞서 말했듯이 형식주의자가 아니다. 조선의 졸유(拙儒)들이 이런 구문을 형식주의적으로만 해석하여 피상적인 예절을 따지는 데 바로 우리 유학전통의 병폐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라고 단순히 해석될 문제가 아니다. 고전을 모르는 속유들이 당대의 자기습관을 가지고 항상 고문(古文)에 자기류의 의미를 덮어씌우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선 ..
8. 음식을 대하는 공자의 모습 10-8A. 밥은 도정(搗精)이 잘 된 흰쌀밥을 싫어하지 않으셨으며, 날고기(육회, 생선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10-8A. 食不厭精, 膾不厭細. 어떤 사람은 ‘현미종교’에 빠져있어 그것이면 만병통치인 것처럼 선전 하나, 사실 현미는 먹기에 괴롭다. 나는 흰쌀밥을 좋아한다. 그냥 입맛에 편한 것이 좋은 것이다. 흰쌀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식생활의 원칙은 영양가에 있는 것이 아니요, 정갈함과 편안한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다. ‘회(膾)’는 육회, 생선회를 다 포괄한다. 지금의 중국인은 별로 육회를 즐기지 않으나 공자 때는 육회가 중요한 음식이었다. 유독 한국인만 육회를 즐기는 것을 보면 역사적으로 고산동지역 문화가 우리 조선과 교류가 ..
7. 재계할 때의 공자 모습 10-7A 재계(齋戒)기간 동안에는 반드시 명의(明衣)라는 특별의상이 따로 있었다. 그것은 베로 만들었다. 10-7A. 齊, 必有明衣, 布.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그 외로 다양한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에 앞서 목욕재계라는 것을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음식이나 성관계 등 모든 것이 통제된다. 산재(散齊)가 7일, 좀 느슨한 재계이다. 치재(致齊)가 3일, 치열하고 엄격한 재계이다. 모두 10일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에 여러 번 목욕을 하는데, 목욕 하고나서 입는 옷을 명의(明衣)라고 한다. 명의는 신명(神明)과 소통하는 옷이라는 뜻도 되고, 명결(明潔)한 옷이라는 뜻도 된다. 이 명의는 베로 만든다. 목욕하고나서 베를 몸에 대는 것보다 면제품이 좋을 듯 싶으나, 우리가 알..
6. 공자의 복식에 대해 10-6A. 군자는 짙은 색과 검붉은 색으로는 깃과 끝동에 선을 두르지 않는다. 10-6A. 君子不以紺緅飾. 이 장은 주를 한 군데로 몰지 않고 한 조 한 조 따로 해설하는 것이 이해를 도울 것 같아 번호를 각 조(條)마다 따로 붙였다. ‘감색(紺色)’은 붉은 빛이 도는 심청색인데 우리말로는 그냥 ‘짙은 곤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의미전달이 쉽다고 복식하시는 분이 말씀하신다. 여기 ‘군자’는 편해(篇解)에서 이야기했듯이 공자가 스스로를 부르는 일인칭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이것은 군자를 일반화시켜서 ‘군자는 모름지기 …… 해야 한다’라고 공자가 말한 것이 되므로, 결국 이것은 공자가 자신의 의복습관을 이야기한 것이 된다. 보통 짙은 곤색(감색)이나 검붉은 색(추색..
5. 이웃나라를 빙문할 때의 공자모습 10-5. 외국에 사신으로 나아가 규(圭)를 잡고 상대방의 군주를 알현할 때에는 몸을 굽혀 마치 그 규의 무게를 못 이기는 듯 장중하게 거동하시었다. 먼저 규를 높게 치켜들면서 읍한 후에, 물건을 드리는 자세로써 규를 내려 봉헌하였다. 이 때 얼굴빛이 변한 것이 파르르 떨 듯하였다. 걸음은 발뒤꿈치를 안쪽으로 휘게 끌면서 궤적을 따라가는 듯이 하였다. 10-5. 執圭, 鞠躬如也, 如不勝. 上如揖, 下如授. 勃如戰色, 足縮縮, 如有循. 규를 봉헌하고 나면 빙례의 연회가 열리는데 그때는 편안한 기운이 감도는 용모를 지으시었다. 享禮, 有容色. 그 후로 사람들을 사사로이 만나보실 때에는 흐뭇하고 유쾌한 모습이었다. 私覿, 愉愉如也. ‘규(圭)’는 옥으로 만든 것이며 위가 ..
4. 조정에 있을 때의 공자 모습 10-4. 공자께서 궁궐문을 들어가실 때에는 몸을 숙이어 마치 비좁은 곳을 들어가듯 경건히 들어가시었다. 서 있을 때는 사람이 들락거리는 곳 한가운데(중문中門) 서 계신 법이 없었고, 다니실 때는 절대 문지방을 밟지 않으시었다. 10-4. 入公門, 鞠躬如也, 如不容. 立不中門, 行不履閾. 임금께서 항상 서 계시는 곳은 빈자리일지라도 지나갈 때는 얼굴빛을 근엄하게 바꾸시었고 발걸음은 종종걸음을 하시었다. 궁궐에서는 평소 말씀하시는 것이 부족한 듯하시었다. 過位, 色勃如也, 足躩如也, 其言似不足者. 계단을 올라 승당하실 때에는 치맛자락을 손으로 감아올리시고 허리를 굽히어 절하듯 하시었다. 숨을 멈추어 마치 숨이 죽은 듯하시었다. 攝齊升堂, 鞠躬如也, 屛氣似不息者. 궁궐에서 ..
3. 외국 사절단을 접대하는 공자의 모습 10-3. 임금께서 공자를 불러 외국사절단을 접대케 하시었다. 이때는 얼굴빛이 장중하게 변하시었고 걸음은 의례에 맞는 종종걸음을 하시었다. 영빈대열에 같이 서있는 동료에게 말을 전할 때는 말을 전하는 방향에 따라 두 손을 읍하여 좌우로 상체를 움직이게 되는데, 늘어진 옷자락의 앞뒤 재봉선이 가지런히 맞아 흐트러짐이 없었다. 빠르게 나아가실 때에는 긴 소매깃이 좌우로 펄럭이는 모습이 새가 날개를 편 듯하였다. 10-3. 君召使擯, 色勃如也, 足躩如也. 揖所與立, 左右手. 衣前後, 襜如也. 趨進, 翼如也. 빙례가 종료되고 외국사절단을 보내고 나면 반드시 명령을 잘 수행하였다고 복명해야 한다. 그때 공자께서는 이와 같이 말 씀하시었다: ‘손님들은 뒤돌아 볼 일 없이 잘..
2. 조정에서 조회 볼 때에 공자의 자세 10-2. 조정에서는 하대부(大夫)와 말씀하실 때는 깐깐하게 말씀하셨고, 상대부(上大夫)와 말씀하실 때는 은은하게 말씀하시었다. 10-2. 朝, 與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임금이 계실 때는 거동을 조심스럽게 하였으나 위의(威儀)를 잃지는 않았다. 君在, 踧踖如也. 與與如也. 원래 중국고래의 조정의 습관에 의하면 해뜨기 전에 신하들이 다 궁중에 출근해서 군주가 출어(出御)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해가 뜨면 군주가 나타나 임석(臨席)한다. 조정의 조(朝)라는 말이 이렇게 아침에 모이는 습관에서 비롯 된 것이다. 즉 조정(朝廷)이란 아침에 모이는 뜨락이라는 뜻이다. 최근 청조까지 이 습관은 지켜졌다. 해뜨기 전 상대부ㆍ하대부 조정의 관료들이 모였을..
1. 있는 곳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다 10-1. 공자께서는 향당에 계실 때에는 따사롭고 공순(順)하게만 보여 말을 잘 못하는 사람 같았다. 10-1. 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그러나 종묘와 조정에서는 또박또박 말씀을 잘하셨고 단지 삼가셨을 뿐이다. 其在宗廟朝廷, 便便言, 唯謹爾. ‘향당(鄕黨)’은 공자의 일상적 삶의 영역을 가리킨다. 그 사인(私人)으로서의 생활영역이다. ‘종묘(宗廟)’는 국가제식이 행하여지는 곳, ‘조정(朝廷)’은 구체적으로 임금과 함께 정무(政務)를 보는 곳이다. 공(公)과 사(私)의 두 생활영역이 대비되고, 공자의 생활자세도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사(私) 공(公) 향당(鄕黨) 종묘(宗廟) 조정(朝廷) 온공(溫恭)하다 정확하고 삼간다 말 못하는 듯하다 또박또박 말 잘한다 ..
향당 제십(鄕黨 第十) 편해(篇解) 우선 양식적으로 이 「향당(鄕黨)」편은 타 제편과 구분된다. 타 제편이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다고 하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기온 파편을 주로 모은 것임에 반해, 이것은 공자의 언행에 관한 내러티브이다. 따라서 ‘자왈(子曰)’ 파편이 거의 없다. 그리고 구설(舊說)에 의하면 전체가 한덩어리로 되어 있던 것이라서 장절의 구분이 없었다고 한다. 주자는 그 한 덩이를 17절로 나누었고, 마지막의 색사거의(色斯擧矣) 장은 하나의 성격을 달리하는 1단장(斷章)으로 분리시켰다. 그래서 주자의 분류에 의하면 본 편은 18장이 된다. 주자의 『집주』에 분명히 18장으로 분장되어 있다. 이러한 전체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주자의 편해에 ‘1장 17절’이라고 한 말 때문에 중간..
30. 집이 멀어 애인을 보러 갈 수 없다는 비겁한 핑계 9-30. “이스랏의 꽃잎은 봄바람에 펄럭펄럭, 아~ 어찌 그대가 그립지 않으리오마는 왜 그리 멀리 있소. 그대 집은.” 9-30.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이 노래를 들으시며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진실로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지도 않으면서, 어찌 집만 멀다 말하느뇨?”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이스랏은 산앵두나무. 그것이 당체(唐棣)다. 겹잎의 담홍색(淡紅色) 아 름다운 꽃이 봄에 핀다. 당체는 때로 아가위나무를 가리키기도 한다. 고주의 입장은 이 장을 전 장에 종속시켜 ‘권도(權道)’의 문제를 계속 끌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이런 입장이 도무지 애매하고 별로 취할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 인용된 시는..
29. 권도(權道)의 경지 9-2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더불어 함께 배울 수는 있으나, 더불어 함께 도(道)로 나아갈 수는 없다. 더불어 함께 도로 나아갈 수는 있으나, 더불어 함께 우뚝설 수는 없다. 더불어 함께 우뚝 설 수는 있으나, 더불어 함께 권(權)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 9-29.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인간의 호학의 경지의 상달(上達)의 차서를 말한 것이다. 4 권(權) 자유로운 상황적 실천(Free Situational Application) ⬆ 3 입(立) 주관의 정립(Establishment of Thought System) ⬆ 2 도(道) 바른 방향을 잡음(Right Direction) ⬆ 1 학(學) 기초의 습득(Bas..
28. 지혜로운 자와 인한 자와 용맹한 자의 특징 9-2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자(知者)는 미혹됨이 없고, 인자(仁者)는 잔 걱정을 하지 않으며, 용자(勇者)는 두려움이 없다.” 9-28. 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14-30에 공자의 자겸(自謙)의 말로서 중출(中出)한다. 밝음[明]은 족히 리(理)를 밝힐 수 있기 때문에 의혹됨이 없고, 리(理)는 족히 사사로움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근심이 없고, 기(氣)는 족히 도의(道義)에 짝할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 이것은 배움의 차서이다. 明足以燭理, 故不惑; 理足以勝私, 故不憂; 氣足以配道義, 故不懼. 此學之序也. 도올서원에서 어느 학생이 나에게 이와 같이 물었다: “여기 지자(知者)는 자공(子貢)이고, 인자(仁者)는 안회(..
26. 공자의 칭찬에 자로는 그 말씀만 외우려 하다 9-2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다 해져버린 누비솜옷을 입고, 찬란한 여우가죽이나 담비가죽 갖옷을 입은 신사 옆에 서있어도, 조금도 꿀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자! 유(由)일진저! 『시』에 있지 않은가! ‘사람을 해치지 아니 하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아니하니, 어찌 선(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9-26. 子曰: “衣敝縕袍, 與衣狐貉者立, 而不恥者, 其由也與? 不忮不求, 何用不臧?” 자로가 듣고 신이 나서 이 『시』의 구절을 종신토록 암송하려 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꾸짖어 말씀하시었다: “그런 방법이 어찌 족히 좋다 말할 수 있으리오?” 子路終身誦之. 子曰: “是道也, 何足以臧?” 사랑스러운 우리의 자로! 우직하고 정직하기에 꿀림이 없고 당당..
27. 한계에 이르러야만 가치를 알게 되는 것들 9-2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나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듦을 견디어내는 모습을 알 수 있도다.” 9-27. 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세한(歲寒)’은 일년 중 추운 계절, ‘송백(松柏)’은 상록침엽수, ‘후조(後彫)’는 문자 그대로는 ‘늦게 시든다’는 의미이지만, 강조가 ‘시든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시듦을 견디다’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고주는 이와는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세한’을 매년 다가오는 겨울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모처럼 다가온 특별한 해의 추위로 해석하는 것이다. 중목(衆木)은 극심한 추위로 다 시들고 얼어죽고 마는데, 송백만은 조금 시들고 만다는 식으로..
25. 사람의 의지는 빼앗지 못한다 9-2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삼군의 거대병력으로부터도 우리는 그 장수를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초라한 필부에게서도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9-25.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공자의 명언이다. ‘삼 군(三軍)’은 7-10에도 자로의 말로 나왔는데 37,500명의 대군단병력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재적 힘이요 시스템이다. 전략만 잘 짜면, 조조라도, 항우라도 다 빼앗아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부의 의지는 인간 존재의 내면의 힘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항거한다면 어떠한 외재적 힘도 그것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 서슬퍼런 칼날 위에도 딛고 설 수 있지만 중용은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하는(『중용(..
24. 허물이 있다면 고치길 꺼려하지 말라 9-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우러나오는 마음과 믿음 있는 말을 주로 하며,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삼지 아니하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 9-24. 子曰: “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1-8에 나왔다. 거듭 나왔는데 「학이(學而)」 8장과 비교하면 그 상반부가 여기에는 없다. 重出而逸其半.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23. 권위 있는 말은 고쳐야 하고 칭찬의 말은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9-2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법에 따라 해주는 권위있는 말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느뇨?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귀하니라. 귀에 거슬림이 없는 부드러운 말은,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느뇨? 왜 칭찬을 받는지 그 실마리를 캐어보는 것이 귀하니라. 기뻐하기만 하고 그 실마리를 캐어보지도 않고, 따르기만 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과연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뇨?” 9-23. 子曰: “法語之言, 能無從乎? 改之爲貴. 巽與之言, 能無說乎? 繹之爲貴. 說而不繹, 從而不改, 吾末如之何也已矣.” ‘법어지언(法語之言)’과 ‘손여지언(巽與之言)’의 정확한 뜻에 관해서는 주석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법어지언’은 권..
22. 후배들의 실력 향상이 놀랍다 9-22.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새로 자라나는 젊은 생명들은 참으로 두려워할 만하다. 앞으로 올 생명들이 지금 세대보다 못하다고 누가 감히 말하는가! 사오십이 되어도 뚜렷한 족적이 없는 자, 이 또한 족히 두려워할 것 없는 자들일 뿐.” 9-22.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 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은 지금 우리의 일상언어 속에서도 자주 쓰는 말이다. 이것은 공자의 인간 지성의 진보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는 말이다. 앞으로 올 세대들이 분명 지금 세대보다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신념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후생’은 전통적으로 안회를 지칭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귀로 후 공문에 속속 들어오는..
21. 요절했던 비운의 이들에게 9-2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 세상엔 싹을 틔웠으나 애석하게도 꽃을 못 피우는 자도 있고, 꽃을 피웠으나 애석하게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9-21. 子曰: “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 안회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심정을 이토록 아름다운 메타포로 표현하는 공자의 시적 정취가 동방인에게 문학을 안겨주었다.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삶의 무상함에 대한 통찰은 안회라는 개인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운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꽃을 못 피우는 위대한 싹이 얼마나 많을까? 꽃을 피웠으되 열매를 맺지 못하고 꺾이고 만 비운의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백두산의 정기를 담아 흐르는 올기강, 이도백하, 해란강, 모란강, 송화강의 굽..
20. 학문으로 진보하되 멈추지 않았던 안회 9-20, 공자께서 안회를 평하여 말씀하시었다: “애석하도다! 그가 가다니! 나는 그의 나아감만 보았고, 그가 중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9-20. 子謂顔淵, 曰: “惜乎! 吾見其進也, 未見其止也.” 안회가 죽은 후, 그를 안타깝게 회상하는 장면이다. 다음의 장과 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파편들이다. 노사(老師)의 한 제자에 대한 사랑의 극진함, 그리고 그 후덕한 인품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을 반드시 안회라는 특수한 한 인간과의 관계에서만 성립하는 발언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제자이든 누구이든 훌륭한 사람을 그리워할 줄 아는 공자의 인간미를 여기서 느껴야 할 것이다. ‘진(進)’과 ‘지(止)’의 두 글자는 앞 앞 장(9-18)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
19. 공자의 말을 부지런히 실천한 안회 9-19.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학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많은 놈들이 지루한 표정을 짓지. 그러나 언제든 지루해하지 않고 따라오는 자, 안회일 뿐” 9-19. 子曰: “語之而不惰者, 其回也與!” 무엇을 더 말하리오? 많은 주석가들이 안회가 이해력이 더 빨랐기 때문이라는 식의 주석을 달지만(고주), 안회의 집중력은 머리가 영민해서가 아니라 진지한 삶의 자세와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때문이었다. ‘어(語)’는 거성이다. ‘여(與)’는 평성이다. ○ ‘타(惰)’는 게으름과 권태이다. 語, 去聲. 與, 平聲. ○ 惰, 懈怠也. 범순부가 말하였다: “안자는 부자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마음속 깊이 이해하였고 힘써 행하였고, 조차전패(造次顚沛: 위급한 순간, 4..
18. 산과 평지 만들기로 비유한 노력의 중요성 9-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비유컨대 흙을 쌓아올려 산을 만든다고 하자! 열심히 쌓아올려 한 삼태기의 흙이면 산이 완성될 텐데 그것을 중지하면, 아무리 공이 많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중지한 것이다. 비유컨대 구덩이를 메꾸어 길을 낸다고 하자! 비록 첫 한 삼태기의 흙이라도 내가 쏟아부었다면, 길이 나게 되는 것은 아직 아무리 공이 적다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시작한 것이다.” 9-18.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많은 주석가들이 이 장을 매우 애매하게 해석한다. ‘위산(爲山)’과 ‘평지(平地)’가 정확하게 대칭되는 것인데 그것을 해석치 못하는 것이다. 위(爲)와 평(平)이 모두 동사이다. 위산(爲..
17. 여자 밝히듯 덕을 좋아하길 9-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덕(德)을 좋아하기를 아리따운 여인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9-17. 子曰: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번역은 점잖게 했으나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섹스를 좋아하는 것처럼 덕 닦기를 좋아하는 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혹은 요즈음 말로 아주 쉽게 말하자면 ‘섹스를 좋아하듯이 공부하기를 좋아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소라이(荻生徂徠)나 유보남(劉寶楠)은 ‘호덕(好德)’, ‘호색(好色)’의 덕과 색을 모두 사람으로 새겨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미인을 좋아하는 것처럼 유덕자를 좋아한다’는 뜻이 된다. 나는 고주가 이 말의 분위기를 잘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공자 당시의 사람들이 모두 색만 밝히고 덕(德..
16. 공자, 물을 예찬하다 9-16. 공자께서 개울 다리 위에 계시었다. 흐르는 물을 쳐다보시면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었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도다!” 9-16. 子在川上, 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우리가 공자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가장 많이 인용하는 장 이 바로 이 장이라 말할 수 있다. 체계적인 철학논술은 아니지만 실로 그의 우주관ㆍ인생관ㆍ역사관ㆍ가치관을 나타내는 가장 본질적인 통찰을 담은 파편이라 할 것이다. 서양철학의 본원이 희랍철학에 있고, 희랍철학의 본원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Pre-Socratic Philosophers)에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들의 철학은 기실 모두 이와 같은 단편(fragments)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오히려..
15. 공자에게 어렵지 않던 네 가지 일 9-1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밖에 나아가서는 공경(公卿)을 섬기고, 집에 들어와서는 부형(父兄)을 섬기며, 상사(喪事)는 성의를 다하여 도와주며, 술로 인해 주정부리지 않는 것, 이것이 어찌 나에게 어려운 일일 수 있겠는가!” 9-15. 子曰: “出則事公卿, 入則事父兄, 喪事不敢不勉, 不爲酒困, 何有於我哉?” 7-2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마지막 구절의 해석이 분분하다. 1)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겸손 표명. 신주의 입장) 2) 이것 이외로는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없다(진사이). 3) 이것은 노력을 안 해도 자연히 되는 것이다(소라이). 4) 이 네 가지를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하는 차원을 근원적으로 뛰어넘는다(다산). 나는 이 설을 모..
14. 각각 제자리를 얻다 9-1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위나라로부터 노나라로 돌아온 뒤로 음악이 바르게 되었다. 아(雅)와 송(頌)이 각기 제자리를 얻었다.” 9-14. 子曰: “吾自衛反魯, 然後樂正, 雅頌各得其所.” 애공 11년 겨울 공자는 돌아왔다. 나이는 68세. 이제 정치적 꿈의 실현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그에게는 오직 문화에 대한 집념만 남아있었다. 노나라 고국이 상징하는 주나라 고문명의 전통을 이제 세계적인 안목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전통의 문헌정리사업에 여생을 헌신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음악이었다. 공자가 말하는 음악은 기악곡인 동시에 시(詩)였다. 시(詩)는 풍(風)ㆍ아(雅)ㆍ송(頌)이라는 세 장르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을 바로 공자가 정..
13. 공자가 외지인 구이(九夷)에 살려 하다 9-13. 공자께서 편벽한 변방의 아홉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하셨다. 혹자가 말하기를, “그곳은 누추한 곳인데, 어찌 그런 곳에서 사실 생각을 하십니까?”하니, 9-13. 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공자께서 대답하시었다: “군자가 그곳에 거하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을까보냐!”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이 장에 대해서도 구구한 해석이 많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구이(九夷)’의 ‘오랑캐’라는 개념에 집착하여 종종의 억측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나 일본의 국수주의적 사유를 일삼는 사람들은 공자가 이(夷)를 흠모했다 하여 실상 공자가 이상화했던 나라가 일본이라는 둥, 조선이라는 둥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진사이 같은 ..
12. 공자, 좋은 가격에 팔리기를 기다리다 9-12. 자공이 말하였다: “여기 아름다운 옥(玉)이 있다고 하죠. 이것을 궤짝에 넣어 감추어 두시겠습니까? 좋은 가격을 구하여 내다 파시겠습니까?” 9-12. 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암 팔아야 하구말구. 그러나 나는 사러 오는 자를 기다릴 뿐.” 子曰: “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 마지막 구문만이 문제가 되는데, 1) 적극적으로 팔겠다는 뉘앙스, 2) 소극적으로, 피동적으로만 움직이겠다는 뉘앙스, 3) 좋은 가격을 기다릴 뿐이라는 뉘앙스, 4) 중매자를 기다린다는 뉘앙스, 등등의 해석이 있다. 그러나 하여튼 역사적 공자는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린 적은 없다. ‘韞’은 우분..
11. 자로 공자를 존경하는 마음에 거짓을 행하다 9-11. 공자께서 병이 걸리셨는데 위중한 상태에 이르렀다. 자로(子路)가 문인(門人)들을 가신(家臣)으로 삼아 대부의 장례체제를 준비하였다. 9-11. 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병에 차도가 있자, 공자께서 기운을 차리시고 말씀하시었다: “버릇이 길구나, 유(由)야, 왜 또 거짓을 행하려느뇨? 나는 본시 가신이 없는 사람, 가신을 두다니, 내 누구를 속 일 것이냐? 세인의 이목을 속일 수 없으니 하늘까지 속이려느뇨? 나는 가신의 허세 속에서 죽기보다는 차라리 평생 정든 너희들 손에 죽으련다. 어마어마한 장례는 얻지 못한다 해도 내 설마 길거리에서 죽기야 하겠느냐?” 病閒, 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誰欺? 欺天乎? 且予與其死於臣之手也, ..
10. 안연이 밝힌 공자 도의 위대함 9-10. 안연이 한숨쉬며 크게 탄식하여 가로되: “우리 스승의 도는 우러러볼수록 높아만지고, 뚫고 또 뚫어보아도 더욱 견고할 뿐. 바라보니 앞에 계시더니, 홀연히 뒤에 계시네. 스승님께서는 그토록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끌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는도다. 나를 문(文)으로 넓혀주셨고, 나를 예(禮)로 집약시켜주셨도다. 공부를 그만두자하여도 그만둘 수 없어 나의 있는 재능을 다하고자 하나, 스승님은 어느샌가 또 새롭게 우뚝 서 계시는도다! 아~ 스승님을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 그 실마리를 잡아야할꼬. 아~ 나의 스승님!” 9-10. 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9. 공자가 예의를 갖춘 사람들 9-9. 공자께서 거친 베옷을 입은 사람과 사모관대 의상을 제대로 갖춘 사람, 그리고 눈먼 사람을 보시면, 그들이 나이가 어려도 반드시 일어나셨고, 그들 곁을 지나치실 때는 종종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지나가셨다. 9-9. 子見齊衰者, 冕衣裳者與瞽者, 見之, 雖少必作; 過之, 必趨. 예로부터 가까운 사람의 상을 당할수록 더 거친 베옷을 입는다. 여기 ‘자최(齊衰)’는 단이나 깃을 꿰매지 않고 풀어헤친 상복으로서 3개월 이상의 근친의 상(喪)을 복(服)하고 있는 슬픈 자들이 입는 것이다. ‘면의상(冕衣裳)’은 면관(冕冠), 윗도리, 치마의 대례복을 차려입은 자로서 대부 이상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자(瞽者)’는 단순한 맹인이 아니라 대개 세습적인 악사들을 가리킨다. 일본..
8. 봉황도 오지 않고 하도도 나오지 않네 9-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 봉황새가 이르지 않는구나. 황하가 도상(圖象)을 떠올리지 않는구나. 아~ 나도 어느덧 스러져가는구나!” 9-8. 子曰: “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최소한 70세 이후의 공자의 아름다운 탄식의 한 시구로 해석해야 할 것 이다. 자신이 정치적으로 득위(得位)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든가, 자기 의 이데아 티푸스였던 성왕(聖王)의 불출현을 끝내 아쉬워하는 탄식이라든가 하는 식의 주석은 다 판에 박힌 이야기들이다. 보다 시적으로 보다 감성적으로 한 거인의 삶을 조망해야 할 것이다. 이런 구문은 구질구질한 주석이 그 본의를 망칠 뿐이다. ‘하불출도(河不出圖)’ 운운도 미신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계사(繫辭)」 상..
7. 어리석은 질문이라도 양단의 논리로 세밀히 설명해주다 9-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세인들이 나보고 박식하다고들 하는데, 과연 내가 뭘 좀 아는가?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비천한 아해라도 나에게 질문을 하면, 비록 그것이 골빈 듯한 멍청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 단(端)의 논리를 다 꺼내어 그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있는 성의를 다해 자세히 말해 준다. 이래서 내가 좀 아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 9-7.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이에 대한 구구한 주석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나의 번역을 자세히 살펴보라. 내가 살면서 공자에게 배우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장에서 나 역시 배우는 학인으로서 가장 크게 배운다. 내가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