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1/09/20 (16)
건빵이랑 놀자
26장 6. 간명한 게 아름답다 詩云: “維天之命, 於穆不已!” 蓋曰天之所以爲天也. “於乎不顯, 文王之德之純!” 蓋曰文王之所以爲文也. 純亦不已. 『시경(詩經)』에서 말하기를, “아! 하늘의 명(命)이여, 오! 심원하여 그침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하늘된 소이를 말한 것이요, “아! 드러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왕(文王)의 순수함이여!”라고 하였으니, 이는 문왕(文王)의 문(文)됨을 말한 것으로서 순(純)하여 그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詩, 「周頌維天之命」篇. 於, 歎辭. 穆, 深遠也. 不顯, 猶言豈不顯也. 純, 純一不雜也. 引此以明至誠無息之意. 程子曰: “天道不已, 文王純於天, 道亦不已. 純則無二無雜, 不已則無間斷先後.” 시는 「주송 유천지명」의 편이다. 오(於)는 감탄사다. 목(穆)은 심..
26장 5. 중용적 사고방식의 크기 今夫天, 斯昭昭之多, 及其無窮也, 日月星辰繫焉, 萬物覆焉. 今夫地, 一撮土之多, 及其廣厚, 載華嶽而不重, 振河海而不洩, 萬物載焉. 今夫山, 一卷石之多, 及其廣大, 草木生之, 禽獸居之, 寶藏興焉. 今夫水, 一勺之多, 及其不測, 黿ㆍ鼉ㆍ蛟ㆍ龍ㆍ魚ㆍ鼈生焉 貨財殖焉. 저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촛불 하나가 반짝이는 것 같은 밝음이 많을 뿐인데, 그 무궁한 데 이르러서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다 거기에 매달려 있고 만물을 덮고 있다. 땅이라고 하는 것은 단 한줌의 흙이 많이 모인 것일 뿐인데, 넓고 후박한 데 이르러서는 화악(華嶽)을 등어리에 싣고도 무거운 줄 모르고 하해(河海)를 가슴에 안고도 새지 않는다. 그러니 만물을 실을 만하다. 대저 산이라 하는 것은 한 뭉치의 돌로..
26장 4. 사물의 법칙 博厚配地, 高明配天, 悠久無疆. 如此者, 不見而章, 不動而變, 無爲而成. 박후는 땅에 배합(配合)하고 고명은 하늘에 배합(配合)하고 유구는 무강(無疆)이다. 이와 같은 것은 드러나지 않아도 빛나고[章], 동(動)하지 않으면서도 변하고, 함이 없는 데도 성(成)한다. 此言聖人與天地同體.見, 猶視也. 不見而章, 以配地而言也. 不動而變, 以配天而言也. 無爲而成, 以無彊而言也. 여기서는 성인이 천지와 같은 체(體)임을 말했다. 현(見)은 시(視)와 같다. 불현이장(不見而章)은 땅과 짝한다고 말한 것이다. 부동이변(不動而變)은 하늘과 짝한다고 말한 것이다. 무위이성(無爲而成)은 한계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유구(悠久)’는 보이지 않는 기능이니까 강역(疆域)이 없다! 무진(無盡)하고 무궁..
26장 3. 하늘과 땅은 유기체론적 상징 博厚, 所以載物也; 高明, 所以覆物也; 悠久, 所以成物也. 박후(博厚)라는 것은 만물을 싣는 것이요, 고명(高明)이라는 것은 만물을 덮는 것이요, 유구(悠久)라는 것은 만물을 이루어 주는 것이다. 悠久, 卽悠遠, 兼內外而言之也. 本以悠遠致高厚, 而高厚又悠久也. 此言聖人與天地同用. 유구(悠久)란 곧 유원(悠遠)함이니 안과 밖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본래의 유원(悠遠)으로 높고 두터움에 이르지만, 높고 두터움은 또한 아득하고 먼 것이다. 여기서는 성인이 천지와 같은 용(用)임을 말했다. ‘박후(博厚)하다’는 것은 땅이라는 공간성을 가지고 하는 말인데, 그것은 만물을 싣는 것입니다. ‘고명(高明)’이라는 것은 하늘이라는 공간성을 말하는데, 만물을 덮는 것이죠. 밑에서 ..
26장 2. 쉼 없기에 장구한다 不息則久, 久則徵, 불식(不息)하면 구(久)한다, 쉼이 없으니까 장구할 수 있다. 久, 常於中也. 徵, 驗於外也. 구(久)는 내면에서 떳떳한 것이다. 징(徵)은 외면에서 징험되는 것이다. 항상 역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을 염두에 두고서 중용(中庸)을 풀이해 들어가십시오. 왕부지(王夫之)의 ‘형질론’으로 볼 때, 우리의 손톱이 그 온전한 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은 뿌리에서 다시 생겨나고 끝에서 닳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손톱 하나도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예요. 뿌리에서 생겨나지 않으면, 점점 닳아서 쪼그라들어요. 새끼손톱이나 새끼발톱에 가끔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죠? ‘형(形)’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질(質)’이 끊임없이 불식(不息)해야 합니다..
26장 1. 자강불식(自强不息)과 무식(無息) 故至誠, 無息. 고로 지극한 성은 쉼이 없다. 旣無虛假, 自無間斷. 이미 헛됨이나 거짓이 없이 스스로 한 순간이라도 끊어짐이 없다. 캬아! 지극한 성(誠)은 쉼이 없다! 참 대단한 말입니다. 장지연이가 ‘자강불식론(自强不息論)’을 말하였는데, 이 ‘자강불식론(自强不息論)’은 다들 아시다시피 다아윈, 스펜서의 ‘진화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서구의 ‘진화론’을 동양에서는 무엇으로 번역하였는가 하면, 『주역(周易)』의 ‘자강불식론’으로 번역했지요【‘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주역(周易)』 「대상전」의 ‘건괘(乾卦)’에 나오는 말이다】. 진화의 과정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발전·변화하면서 지금까지 왔고, 약육강식의 법칙이 진화의 과정에 있는 이 세계를 지배해..
25장 2. 지식보다 감수성 誠者, 非自成己而已也, 所以成物也. 成己, 仁也; 成物, 知也. 性之德也, 合內外之道也, 故時措之宜也. 성(誠)하다고 하는 것은 그 스스로 나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그 성기(成己)의 과정에서 물(物)을 또 이룬다. 자기를 이루는 것은 인(仁)이요, 남을 이루는 것은 지(知)이다. 이는 본성의 덕(德)이니 성기(成己)·성물(成物) 내외(內外)를 합한 도(道)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어떠한 상황에 때때로 맞추어도 항상 마땅하게 된다. 誠雖所以成己, 然旣有以自成, 則自然及物, 而道亦行於彼矣. 仁者體之存, 知者用之發, 是皆吾性之固有, 而無內外之殊. 旣得於己, 則見於事者以時措之, 而皆得其宜也. 성(誠)은 비록 나를 이루게 하는 것이지만 이미 자기로서 이루게 해줬다면 자연히 사물에 미치며..
25장 1. 성실함과 생이불유 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 성(誠)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도(道)는 스스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言誠者物之所以自成, 而道者人之所當自行也. 誠, 以心言, 本也; 道, 以理言, 用也. 성(誠)은 물건이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도(道)는 사람이 마땅히 스스로 행해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성(誠)은 심(心)으로 말하였으니 본(本)이고 도(道)는 리(理)로 말하였으니, 용(用)이다. 아! 얼마나 멋있어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재미난 게 여기서도 펀(Pun, 언어유희)이 나타나고 있죠? 성(誠)과 성(成)이 같은 발음이고 도(道)와 도(道, 導)가 같은 발음이죠? 성(誠)이라는 것은 ‘언(言)’ 변이 빠지면 스스로 이루어 가는 것[成]입니다. 여기서 ‘자성야(自誠也)’라고 하는 것..
24장 3. 유교의 합리주의 ‘화복장지 선필선지지 불선필선지지(禍福將至 善必先知之 不善必先知之)’ 여기서 선(善)이 악(惡)이 아니라 불선(不善)과 짝을 이루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선(善)의 반대말은 악(惡)이 아니라 불선(不善)이다! 동양에는 선(善)ㆍ악(惡)의 이원론이 없다! 악(惡)은 악(惡)이 아니라 불선(不善), 선(善)에 미달한 것입니다. 천사와 악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며, 모든 악(惡)은 불선(不善)일뿐이예요. 선(善)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고 불선(不善)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善)과 악(惡), 즉 선(善)과 불선(不善)이라는 게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선(善)은 ‘좋을 선’자로 번역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좋은 것도 미리..
24장 2. 중풍과 당뇨는 업보 ‘국가장흥 필유정상(國家將興 必有禎祥)’ 여기서 ‘정(禎)’이라는 것은 ‘정(貞)’이고 이것은 점친다는 말입니다. 지난 여름 2림(林)때 최교수의 갑골문 강의를 들은 사람은 이 맥락을 잘 이해할 거예요. 주자에게는 갑골에 대한 정보가 확실히 없었으니까. 정확한 번역을 하지 못했을 텐데, 이 ‘정(貞)’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장망 필유요얼(國家將亡 必有妖孼)’ 이것은 분명하죠? 도올서원이 일어날려고 하면, 이곳에 좋은 학생들이 모여서 상서로운 조짐이 돌아야 제대로 될 것이고, 도올서원이 망하려고 한다면 요괴스러운 현상이 많이 일어나서 망합니다. 인간 세상사라는 것은 명백한 거예요. 이것은 ‘지성지도(至誠之道)’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미리 ..
24장 1. 미리 안다는 것 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孼. 見乎蓍龜, 動乎四體. 禍福將至: 善, 必先知之; 不善, 必先知之. 故至誠, 如神. 지극히 성(誠)한 도(道)는 미리 알 수 있으니, 국가(國家)가 장차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고, 국가가 장차 망하려면 반드시 요괴스런 일이 있어 시초점과 거북점에 나타나고 사체(四體)에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화(禍)와 복(福)이 장차 일어나게 되어 있을 때, 좋은 것도 미리 알 수 있고 나쁜 것도 미리 알 수 있다. 고로 지극한 성(誠)이라는 것은 신(神)과 같은 것이다. 禎祥者, 福之兆. 妖孼者, 禍之萌. 蓍, 所以筮. 龜, 所以卜. 四體, 謂動作威儀之間, 如執玉高卑, 其容俯仰之類. 凡此皆理之先見者也. 然唯誠之至極, ..
23장 2.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유천하지성 위능화(唯天下至誠 爲能化)’ 여기서 ‘화(化)’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최후적인 것입니다. 주자 주(註)를 보면, ‘개인지성 무부동이기즉유이(蓋人之性 無不同而氣則有異)’는 말이 나오는데, 송(宋)·명(明) 유학(儒學)의 패러다임들이 여기서 나오며, 이에 따라서 근세유학의 첨예한 논쟁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22장에서는 아성(我性)·인성(人性)·물성(物性)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인(人)·물(物)이 다 기본적으로 동성(同性)이라는 시각(조선유학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과 조금 맥락은 다르다)의 기본적인 것은 여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중용(中庸)으로 말하면 아(我)·인(人)·물(物)이 다 동성(同性)이요, 하나의 연속적인 ‘성(性)’..
23장 1. 문명과 문화의 차이 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爲能化. 그 다음은 지극히 작은 것에 곡진함이니, 이 작은 일에 지극한 것으로도 성(誠)할 수 있다. 성실하면 드러나고, 드러나면 더욱 확연해지고, 확연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시키고, 감동시키면 변(變)하고, 변(變)하면 화(化)할 수 있으나. 오직 천하에 지극한 성(誠)이라야 이 궁극적인 화(化)를 이룰 수 있다. 其次, 通大賢以下凡誠有未至者而言也. 致, 推致也. 曲, 一偏也. 形者, 積中而發外. 著, 則又加顯矣. 明, 則又有光輝發越之誠也. 動者, 誠能動物.變者, 物從而變. 化, 則有不知其所以然者. 蓋人之性無不同, 而氣則有異, 故惟聖人能擧其性之全體而盡之. 其次, 則必自其善端發見之偏..
22장 2. 자연을 망치지 말고 화육(化育)에 참여하라 ‘능진물지성 즉가이찬천지지화육(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찬천지지화육(贊天地之化育)’이란 것은 뭐냐? 전에는 감(感)으로만 근사하게 잡고 있었는데, 이것은 사실은 에콜로지(ecology)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 존재한다는 방식은 문명의 방식입니다. 야생 곡식만 가지고는 우리가 살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논을 만들고 쌀을 길러야 하죠. 쌀을 기르는 것은, ‘능진물지성(能盡物之性)’할 때 ‘천지지화육(天地之化育)’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양사상은 문명의 형태가 ‘천지지화육(天地之化育)’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런 점에서 서구문명은 실수한 거예요. 서구문명은 이런 동양문명의 기본자세를 우습..
22장 1. 나를 확장하면 천지만물에까지 이른다 22장은 아마도 모든 동양고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파라그라프(Paragraph, 단락)일 것입니다. 주자 주(註)를 보면, 22장은 천도(天道)를 말한 것이고 23장은 인도(人道)를 말한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주자는 22장을 ‘자성명(自誠明)’에 대한 것으로 보고 23장을 ‘자명성(自明誠)’에 대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즉, 22장은 ‘성(誠)’의 세계로 보고 23장은 ‘성지(誠之)’의 세계로 본 것이죠. 또한, 23장 맨 처음을 ‘기차(其次)’로 시작하고 있는데, ‘성(誠)’에 대해서 ‘성지(誠之)’는 한 레벨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중용(中庸)의 저자는 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태여 이렇게 나눌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중용(中庸)의 저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