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기독교 성서의 이해 - 제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 제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건방진방랑자 2022. 2. 27. 11:10
728x90
반응형

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유대교로부터 이탈된 기독교: AD 100

 

 

예루살렘 멸망 이후 한 30년 동안 기독교는 복음서와 함께 놀라운 교인들의 팽창을 기록했고 특히 동방세계에서는 확고한 교회조직을 형성했다. 요한복음서내에서는 유대인(the Jews)이 저주의 대상으로 기독교인과 확연히 구분되어 객화된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도다.’(1:11), 요한복음서 전체를 통해 유대인이라는 표현은 예수의 적대세력으로서 예수의 삶이나 그것을 읽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소외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곧 기독교가 완전히 유대교로부터 이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서는 초대교회 내에 유대인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쓰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관복음서 내에서는 예수가 청중들의 일상생활적 삶의 가까운 역사적 지평 속에서 살아 꿈틀거린다. 우리와 같이 생활하고 호흡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속에서는 예수가 초역사적 지평 위에 있다. 너무도 멀리 있는 것이다. 이미 예수의 이야기는 기억되고 있는 역사 속의 담론이 아니라, 기억 속에는 담기 어려운 추상적 존재의 담론이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당대의 한 시점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당대의 사람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기억이 초월된 영원한 현재로서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속의 예수는 과거사 속의 한 인물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의 인물(the eternal Contemporary)인 것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서의 저술연대는 AD 100년 이전으로는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다.

 

전통적 교설에 따르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에베소에 살았던 어떤 지혜로운 노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전설처럼 그 노인이 곧바로 예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인, 벳새다 사람 세베대의 아들 요한(John the son of Zebedee, 4:21, 1:16, 5:10, 요한의 형은 야고보)의 늙은 모습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혹설에는 요한이 예수의 이종사촌이라고도 한다. 즉 세베대의 부인 살로메가 예수의 엄마 마리아의 여동생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러한 전설들로부터 우리가 요한복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의미있는 것으로 취할 수 있는 측면은, 달관한 사상가의 모습과 예수에 관한 아주 초기전승과 맥이 닿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이 두 사실, 그러니까 달관한 사상가, 독자적으로 초기전승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라는 두 사실은 요한복음을 이해하는 데 지극히 중요하다.

 

요한복음은 에베소에서 쓰여졌을 수도 있고, 시리아에서, 혹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여졌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은 추정일 뿐 아무도 모른다. 단지 확실한 것은 기독교가 이미 완전히 낯선 땅으로 나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방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동방지중해연안의 대도시에는 거의 다 기독교교회가 성립했고 어떤 교회는 이미 반세기의 전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팔레스타인이라는 역사적 지평은 추상화되어 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이방신도들에게는 그것은 무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자연히 기독교내로 모든 이방전통이 역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세는 헬레니즘의 언어와 빛깔과 내음새라는 필터를 통해 들어왔다.

 

 

 

 

영지주의의 혼합요소들

 

 

유대교 자체에 내재하고 있었던 모든 다양한 에소테릭(esoteric)비전(秘傳)이라는 말로만은 해석되기 어렵다. 우리의 일상적 인식을 넘어서는 신비롭고 은밀한 사유를 지칭한다한 전통, 일례를 들면 지혜문학, 묵시문학, 그리고 쿰란공동체에서 나타나는 명백한 이원론적 세계관: 진리의 영과 불의의 영, 악한 영과 선한 영, 의인과 악인, 빛과 어둠, 자유의지와 예정론,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의 전쟁, 최후의 심판, 메시아사상, 부활사상, 그리고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 종교사상, 그리고 이집트의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Osiris)컬트와 그의 핍박자 세트(Seth), 그리고 희랍의 헤르메스(Hermes)와 동일시된 토트(Thoth)숭배, 그리고 희랍의 토속신앙인 디오니소스축제, 그리고 오르페우스종교, 그리고 그 영향권에서 성립한 플라토니즘의 이원론, 그리고 그것이 다시 개화한 네오플라토니즘의 유출론적 세계관, 그리고 견유학파(Cynics)의 초세간주의, 스토아철학의 금욕주의, 에피큐리아니즘의 쾌락주의, 회의주의학파의 반지성주의적 경향성, 그리고 근동ㆍ중동에 배어있던 인도문명적 사유의 실마리들, 이 모든 것이 구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2세기초의 이러한 자유로운 지적분위기를 우리는 총괄하여 그노스티시즘(Gnosticism) 영지주의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초기기독교내의 이단적 소그룹의 종파가 아닌 것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2세기초부터 이미 기독교는 영지주의 기독교로서 전개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언급을 독자들이 오해하지 않기를 갈망한다. 나는 기독교를 이단화하고 영지주의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초기 기독교는 영지주의 기독교라고 해도 될 만큼 헬라세계의 종교였으며, 그러한 일반분위기에서 어떻게 정통기독교적인 교리가 성립하여 갔는가를 개방적으로 탐색하지 않으면 도저히 기독교의 실상에 접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신앙과는 무관한 역사적 사실의 탐색이며, 오히려 역사적 사실의 개방적 탐색이야말로 오히려 궁극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켜준다는 것을 잊으면 아니 된다. 바로 그 열쇠가 요한복음이다.

 

 

 

 

심포지움과 희랍신들의 퇴폐성

 

 

초기교회에 모여든 헬라세계의 다양한 지식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종교의 개념과는 다른 색다른 종교의 개념과 색깔과 진지함을 원했다. 희랍인들의 언어는 사실 그 언어 자체가 신화적이었다. 그들은 신화의 요람에서 컸다. 그들의 유모가 요람에서 들려주는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신화神話)가 그들의 말의 어휘가 된 것이다. 자라나면서 학교교육에서 배운 시인들의 시나 극작가들의 희곡이 모두 신들의 이야기였다. 어슴프레 땅거미가 깔리고 동네 마실을 가면 약속된 아무개집에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을 보통 심포지움(symposium)이라고 부르는데, 심포지움 장면에는 반드시 삐딱하게 드러누워 술을 마실 수 있는 소파들이 삥 둘러 놓여있고 그 가운데 안팎으로 신들의 그림이 그려진 희랍 항아리가 놓여있다. 이 항아리에는 포도주가 담겨져 있는데, 당시의 포도주는 요새 같이 정제된 고급 술이 아니라 막걸리 같은 걸쭉하고도 색깔이 짙은 술(퀴케온, 요한복음강해87)

 

이었기에 항아리나 잔에 술이 담기면 일체 그 속이 비쳐보이질 않았다. 따라서 술을 퍼마실수록 신들의 그림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서 신에 대한 이야기들은 점점 고조에 달하는 것이다. 이 심포지움은 술 마시기, 시 짓기, 음악연주, 신들에 관한 담론, 위트나 논쟁, 이 모든 것이 반드시 경쟁게임의 형태로 밤을 지새우며 진행되었는데 희랍의 관례로는 남성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분위기가 고조에 달하면 동성연애적 장면이 연출되었고, 호모적 섹스행위조차 경쟁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었다(현존하는 벽화그림으로 이런 장면들은 정확히 재구성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희랍의 신들은 술이나 처먹고, 근친상간이나 강간, 질투와 음모와 살상을 일삼는 아주 퇴폐적 존재들이었으며 인간의 비극적 운명이나 상기시킬까, 전혀 인간의 구원과는 무관한 존재들이었다. 계시라든가 예언자전통이라든가 메시아대망과 같은 그런 사상은 냄새도 없었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희랍인들의 고등한 문화적 향수에 배어있는 말이고 춤이고 그림이며 향락일 뿐이었으며 어떠한 도그마적 강요가 아니었다. 따라서 일관된 교리도 없었으며 특정한 성직계급이나 특권이 없었으며 따라서 교회도 없었고 성경도 없었다. 끊임없이 지어지는 이야기들만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심포지움만 있었다. 그들의 삶의 고뇌를 넘어서는 어떤 일관된 믿음의 체계를 제공하는 신경(信經, creed)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퇴폐적, 좋게 말하면 인간적이고도 민주적인 신의 이야기(=신화)전통에 젖어있는 희랍인들에게 인간의 구원을 말하는 유일신 신앙은 참으로 신선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만나온 신들은 전혀 도덕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가 선포하는 복음 속의 하나님은 강렬하게 도덕적이었고 매우 체계적인 구원(salvation)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적인 명령이고 선포였다.

 

 

 BC 5세기초 파에스툼에 있는 다이버의 무덤 속 한 벽면의 그림, 심포지움의 장면, 가운데 술이 취한 두 남자(호모)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자유로운 대화 분위기. 파에스툼(paestum) 박물관.

 

 

대승기독교의 정점을 향하여

 

 

희랍신화에 젖은 헬라인들은 그들 신화 속의 신들의 아류밖에 안 되는 로마신들에게 그리 큰 매력을 느꼈을 까닭이 없다. 옥타비아누스로부터 황제가 신격화된 후로부터 신의 권위는 날로 세속화되어 갔고 추락해갔다. 글라디에이터의 경기를 아무리 숨죽이고 관람한들 내면의 공허감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렇다고 근동ㆍ중동의 모든 이원론적 신앙은 악의 문제를 너무 쉽게 처리해버렸다. 선신과 악신이 갈라진 이원론적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는 인간의 고뇌의 심연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것은 글라디에이터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 이상의 감동을 주기가 어려웠다. 기독교는 최소한 인간의 악을 인간의 타락으로 설명할지언정 이원적 신의 근원을 설정하지는 않는다. 예수는 근원적으로 인성론(theory on human nature)을 설파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행위의 당위성을 인성 자체 내에서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일 뿐이며, 우리는 그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초대이방교회에 모여든 지식인들은 희랍의 합리적, 로고스적 지적 전통에 젖어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기독교라는 인간구원의 종교에 관하여 매우 진지한 해설을 듣기를 원했다. 바로 이러한 헬라ㆍ로마세계의 지적대중의 요구에 부합하여 등장한 제4복음서, 즉 완결판적인 새롭고도 최종적인 복음서가 바로 요한복음서라는 희대의 걸작품이다. 그것은 대승기독교의 정점이며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 에베소의 거리들의 모습은 장엄했던 국제도시의 풍모를 지금도 어김없이 전해주고 있다. 요한은 바로 이곳의 사람이었다. 그의 지적 풍토의 개방성을 느끼게 해준다. 대리석으로 포장되었고 정교하게 하수도처리가 된 성대로(聖大路, Sacred Way), 110m 평방의 아고라, 켈수스의 도서관, 김나지움, 스타디움, 초대교회유적, 번화가 쿠레테스로(Curetes Way), 고린도스타일의 하드리안 성전, 오데온 등으로 꽉차있는 이 도시는 꼭 한번 방문해볼 만하다.

 

 

4단계의 지평

 

 

우리의 논의를 다시 한 번 총체적으로 점검해본다면, 1단계인 예수의 생애의 시대는 말씀 그 자체의 지평이다. 2단계인 바울의 서한문시대에는 신의(神義)적 지평이 깔려있다. 3단계인 공관복음 시대에는 역사적 지평을 새롭게 발견해내었다. 4단계의 시작인 제4복음서 요한복음은 복음이라는 형식을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복음서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제공했던 것이다. 요한복음은 복음인 동시에 복음의 해석(Interpretation of Gospels)이다.

 

1단계
Stage
BC 4 ~ AD 30년경 예수의 생애 말씀의 지평
2단계
Stage II
AD 48 ~ AD 68년경 바울의 서한문 신의적 지평
3단계
Stage III
AD 70 ~ AD 90년대 공관복음서 역사의 지평
4단계의 시작
Stage IV
AD 100년경 요한복음 해석의 지평

 

 

상기의 도표에서 제2단계와 제4단계는 기실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내가 바울에 대하여 신의적’(神義的)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는 구체적인 역사적 예수를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의로운 관계설정의 결정적 계기로서 예수를 발견하고, 신의 아들로서 추상적으로 예수를 이해하고 그 실존적 의미만을 철저히 추구해 들어갔다는 맥락에서 내가 쓰고있는 어휘이다. 요한복음도 어떤 의미에서는 철저히 철학적이며 사변적인 우주론을 깔고 예수를 접근해 들어갔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삶보다 요한의 해석의 틀이 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공관복음서와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마가로부터 누가에 이르기까지 공관복음서는 어디까지나 예수의 삶이 선행하며 그에 대한 해석은 듣는 이, 읽은 이로 하여금 저절로 우러나오게 만든다.

 

그렇다면 요한의 연역적 방법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예수의 실상(實相)이 요한의 해석의 틀에 갇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의 헬라세계의 지성인들은 요한과 같은 걸출한 사상가의 해석적 틀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의 족보는 이러하니라하고 출발하는 마태복음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하고 출발하는 요한복음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요한시대의 교양인들은 이미 마태복음적 이야기 전승으로는 그들의 지적ㆍ종교적ㆍ예술적ㆍ문화적 취향을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요한복음은 짙은 철학적 사색을 도배질하면서도 기실 공관복음서가 노리고 있는 모든 케리그마적 성격을 더 드라마틱하고 더 선명하고 더 실존적으로 듣는 이의 가슴에 와닿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의 위대성이다. 사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는 요한복음기독교라 해도 과히 어긋나는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회 정문에 걸려있는 대부분의 성구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 ‘진리’ ‘’ ‘생명의 모든 어구가 요한복음으로부터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의 이 대극장은 지금도 연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음향이 완벽하다.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항구로(Harbour st.)의 동편끝에 있는 이 극장은 사도 바울의 시대와 요한의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다. AD 41~117년 사이에 기존의 헬라건축을 로마인이 재건축 한 것이다. 사도 바울도 바로 이곳에서 설교를 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에베소의 수호신 아르테미스 여신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바울과 그를 따르는 크리스챤들이 출동하여 극장에서 대소동을 벌린 사건이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그 현장이 이 대극장이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도 바로 이런 극장에서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력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기독교의 지속성을 보장한 요한의 해석틀

 

 

요한복음의 해석의 지평에는 영지주의라는 우주론이 깔려있다. 이런 말을 하면 또다시 영지주의 = 이단사상이라는 편견 때문에, 요한복음의 이해를 근원적으로 그르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요한복음 해설서를 보면 모두 그 모두(冒頭)에 꼭 한마디를 한다: ‘요한복음은 반영지주의적 복음서이다.’(이영헌 역주, 요한복음서, 29~31. 참고. 물론 이 책은 훌륭한 요한복음의 연구ㆍ주석서이다). 이 말은 칼 맑스는 헤겔의 유심론체계에 반대하여 유물론체계를 수립하였다라는 말과 대동소이하다. 칼 맑스의 유물론과 헤겔의 유심론은 물론 상반될지 모르지만 그 양자에는 공통된 변증법 구조와 공통된 발전사관구조가 들어있다. 공부를 진지하게 많이 하신 신학자분들의 소신을 내가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이 반영지주의적이라는 것을 100% 수용한다 하더라도, 오늘의 발전적 연구성과에 의하면 영지주의라는 개념이 그들이 반영지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모든 속성조차도 흡수하는 사상체계라고 할 때는 반영지주의적이라는 규정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다는 말이다. 영지주의라는 개념이 기껏해야 가현설(Docetism)과 일치되는, 빛과 어둠, 하나님과 세계, 영과 육의 타협할 수 없는 이원론적 세계관이라고 하는 단순한 도식에 머물러 있기에는 영지주의 문헌의 범위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말씀의 성육신이라는 그리스도론 하나의 논리로 반영지주의를 운운키는 어렵다.

 

발전된 21세기 신학의 성과에 비추어 볼 때 너무 나이브한 언급일 뿐이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철저히 영지주의적 세계관을 이해하고 그러한 어휘로써 새로운 복음의 해석의 지평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기독교는 험난한 23세기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실 기독교를 이방세계에 전파한 사람이 바울이요, 바울이야말로 기독교를 헬라화시킨 장본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헬라세계에서 기독교의 지속성을 보장한 것은 요한의 해석의 틀이었다. 세기가 전환하는 AD 100년경 요한이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기독교는 로칼한 동방종교로 사그러질 수도 있었다. 요한의 복음서 하나가 바울의 전도여행의 몇 천 몇만 배의 사유의 여로를 열었던 것이다. 자아! 그렇다면 과연 요한 해석의 지평이란 무엇인가?

 

 

 

 

로고스 그리스도론

 

 

그 유명한 로고스 그리스도론(Logos-Christology)이야말로 요한문학의 해석적 지평의 핵심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로고스’(Logos) 말씀’(Word)이라고 하는 개념이 매우 생소한 영지주의적 우주론(Gnostic Cosmology)과의 관련 속에서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쉽게 파악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논하는 신학자들도 우리 한국인들에 낯설 수밖에 없는 개념들을 과연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풀어내지를 않고 우리에게 외래어로서 던져진 개념 그대로 논의를 축적해가기 때문에, 로고스 그리스도론은 막연한 형이상학으로서 타자화되어 있을 뿐이다.

 

더구나 서양의 신학자들조차도 로고스가 일차적으로 일상적 희랍어의 개념인 만큼, 그것의 희랍철학적 배경으로부터 연속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을 애초로부터 근절시키고, 그것이 마치 요한복음만의 매우 독특한 세계관인 것처럼 신비화시키고 특수화시키는 경향성이 농후하다. 한국에서 신학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신학을 탄생시킨 철학적 사색을 무시하거나, 서양철학사에 대한 기초적 지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는 섬짓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로고스의 신화적 모습이 그의 본 자리를 아주 특정한 세계이해, 즉 영지주의의 세계이해에 두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로고스는 우주적 - 신적 잠재력으로서 처음으로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나오고, 다음에는 스토아철학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희랍철학적 전통은 여기서 언급될 필요조차 없다. 그 전통 속에서는 로고스가 신화적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Rudolf Bultmann, The Gospel of John, 24).

 

 

 

 

로고스의 일반용법

 

불트만의 이러한 언급은 매우 부당하다. 물론 그의 논지의 핵심을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지나치게 요한복음을 영지주의적 세계관이라는 틀 속에서 자리매김 하고 있으며, 더욱이 영지주의라는 것을 지나치게 하나의 특수한 신화적 세계관으로 고정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매우 낡은 사고방식이다. 희랍철학이란 몇몇 철학자의 단편 속에 담긴 특수한 사유체계가 아니다. 희랍어를 사용하던 당대의 사람들의 삶과 언어에 배어있는 일반적 윤리관이나 사고의 경향성을 대변하는 문화적 가치이다. 요한복음의 저가는 희랍어를 사용하는 지식대중을 향하여 복음을 설파하기 위해서 로고스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면, 그 로고스는 이미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us, BC 540~480)로부터 스토아철학에 걸쳐 6세기 동안 전개되어온 바로 그 일반적 상식을 대상으로 설파된 것이다. 그러한 전통과 무관한 특수한 로고스는 이해될 길이 없다.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요한복음 주석을 달면서 요한복음 1의 로고스는 희랍철학의 로고스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경향성이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무지막지한 비성찰의 졸언이다. 때로 그것은 철학에 대한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철학과 신학을 그렇게 단절시키면 철학은 점점 드라이해져 어렵게만 느껴지고 신학은 점점 우리의 상식적 삶의 이해구조로부터 소외되기만 한다. 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을 펼치면 그 모두(冒頭)에 나오는 말부터 이미 요한복음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로고스의 성격과 결코 무관한 것일 수 없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 논리적 심층결구와 그것이 노리는 메시지의 내용이 상이한 것이라 해도. 그러나 지금 내가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 단편을 펼쳐서 유창하게 해설하기 시작하면 독자들이 또다시 나의 현란한 논술에 놀라 도망갈 것이다(기실 그 대강의 철학적 맥락을 나는 나의 요한복음강해67~110에서 강술하였다). 그러한 전거에 대한 지식의 전제가 없이 도대체 태초에 말씀이 계시었다는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의 일상언어에 비추어 소박하게 논의해 들어가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로고스는 아주 평범한 일상적 희랍어로서, ‘말한다라는 동사 레고’(lego: to say, to tell, to utter in words)의 명사형이다. 그러니까 ’ ‘말함의 뜻이며 말씀’(Word)이라는 번역은 매우 좋은 정확한 번역이다. 그런데 과연 말씀이라는 게 무엇인가?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말을 못한다면 어떠할까? 우리에게 말씀이라는 것이 없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있어날까? 이것은 내가 벙어리라서 말을 못한다는 뜻이 아니고, 나의 머릿속에 언어라는 장치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이 세계는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 세계는 저기 저 바위에게는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말씀은 반드시 사고를 전제로 하고, 사고는 사고작용 그러니까 흔히 우리가 정신(mind) 혹은 영혼(spirit)이라 부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우리가 저기 저 바위나 개와 다를 수 있는 것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과 세계

 

 

우리는 저 나무를 어떻게 쳐다보고 있는가? 나무는 저기 우뚝 서있는 물리적 나무이기 이전에 나무라는 말씀이다. 나무라는 말씀으로 인하여 저 나무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저 나무가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세포구조의 매우 자세한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저 나무를 우리가 평상적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매우 다르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물리학의 심오한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살게 된다. 그것은 분명 우리의 일상적 체험과는 다른 또 하나의 우주다. 다시 말해서 말씀은 우주를 창조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철자한다’ ‘말을 구성한다라는 것을 영어로는 ‘to spell’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동시에 주술을 건다는 의미가 된다. 말씀은 예로부터 창조의 주술로 인식되어왔던 것이다. 요한복음의 첫 장 첫 말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의 첫 장 첫 말과 상통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1:3)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하는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으니, 결국 이 세계를,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어진 것이 아무것도 그가 없이는 지어진 것이 없느니라. (1:3)

 

 

그리고 요한복음보다 600년이나 앞서 쓰여진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내가 아무리 말씀(Logos)에 관하여 기술을 하여도 사람들은 항상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씀을 듣기 전이나, 말씀을 들을 때조차도 똑같이 말씀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만물이 이 말씀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말씀에 관한 체험이 없다. 내가 설명하는 대로 말과 행위를 체험하고 있을 때에도, 내가 만물을 그 구성에 따라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분별시켜 주어도 사람들은 말씀에 무지한 듯하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고 있는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를 망각하는 것처럼 눈뜨고 있을 동안에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Diels-Kranz,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의 번호, Fr. 1)

 

 

다시 한번 반복해서 논구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요, 예수를 믿는다 하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예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고 나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가? 바로 예수의 말씀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과 나의 말씀은 하나로 통한다.

 

하나님의 말씀
III
예수님의 말씀
III
내 마음의 말씀

 

 

그런데 요한복음이 쓰여질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미 예수라는 역사적 지평은 사라지고 없었다. 갈릴리 마차길의 풍진 속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아래, 골고다의 언덕 위에 십자가에 못박혀 목말라 하던 예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았는가? 요한시대의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뿐이었다.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로고스의 화신으로서의 아인슈타인

 

 

우리가 잘 아는 물리학의 천재로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발견한 상대성이론(theory of relativity)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모든 물리적 법칙의 기초가 되는 새로운 시공론이며 소립자물리학의 새역사를 알리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완성은 못했다고 하지만 전자기장과 중력장을 통합하는 그의 통일장론 구상은 하나의 제일적이고 결정론적인 새로운 우주에 관한 통찰로서 지금도 계속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우주의 원리를 범인이 도저히 범접하기 어려운 영감과 수리적 사유로 구성해내었다.

 

그의 수리적 사유도 물론 그의 말씀 즉 그의 로고스다. 우리에게 이미 프린스턴대학 교정을 걷고있던 역사적 인물로서의 아인슈타인은 별 의미가 없다. 역사적으로 한 인간이 태어나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수리적 사유를 깊게 해서 상대성이론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의 천재성을 극단적으로 추상화시켜 이렇게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수리적 사유의 세계는 본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우주의 법칙을 꿰뚫을 수 있는 특별한 암호와도 같은 로고스였다. 그러니까 그 로고스가 아인슈타인이라는 역사적 인물로서 육화(肉化)되어 나타났다. 그의 정신세계는 이 하나님의 우주에 관한 수리적 비밀로 가득찬 로고스였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청ㆍ장년기를 거치면서 오로지 그 로고스만을 말했다. 그리고 그 상대성이론이라는 말씀을 인간세상에 남겨놓고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버렸다.

 

 

 

 

로고스의 성육신

 

 

요한은 복음서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유행화된 예수님 말씀 = 하나님 말씀의 도식에서 말씀만을 추상화시켜서 마치 그것이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는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표현했다. 따라서 예수라는 역사적 지평은 평범한 인간의 족적이 아니라, 그 말씀, 그 로고스가 인간의 육신의 옷을 입고(Incarnation) 나타난 존재라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14)

 

 

그런데 그 말씀은 태초에 있었다.’ ‘태초라는 것은 물론 시간에로의 진입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태초에 있었다시간과 더불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대교적인 창조론의 발상을 전제로 할 때는 말씀은 시간과 더불어 있었지만 동시에 시간 너머, 시간이 있기 이전에, 우리의 시간인식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었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은 인간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요한문학(Johannine Literature)의 한 작품이라고 불리는 요한1서를 잠깐 보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4:12)

 

 

요한은 말한다. ‘여태까지 이 지구상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No man has ever seen God. RSV),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신도들을 등쳐먹는 대규모의 사교종단만 해도 37개나 된다고 한다. 어떻게 이름 석자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일 수가 있는가? 하물며 하나님을 본 사람도 있을 수 없거늘. 하나님을 본다고 하는 것,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시간ㆍ공간 내에서,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내의 사물을 만지고 보듯이 감각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시간ㆍ공간을 초월해 있다. 시공을 초월한 존재에 대하여 우리는 일상적 인식을 가질 수 없다. 우리의 일상적 인식은 시공내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시공이 단절되는 절대적 타자

 

 

그런데 전통적으로 구약의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歷史) 속에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이다. 만약 하나님이 시공을 초월한 존재로서만 머문다면 그런 하나님이 과연 우리 삶에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아론의 지팡이를 보내어 애굽의 압박자들을 정죄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 항아리로써 먹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해주시고, 계명을 주시어 살게 해주시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적 지평 위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기 때문에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적 지평 위에서 역사하는 동시에, 역사ㆍ세계라는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라는데 그 아이러니칼한 성격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공이 단절되는 절대적 타자(the Absolute Other)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공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어떻게 드러내는가? ‘말씀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도올 김용옥의 말씀을 듣듯이 이비에스(EBS), 케이비에스(KBS), 엠비씨(MBC) 방송국 녹화장에서처럼 들을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듣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임의적으로 듣고 싶다고 해서 들을 수 있는 라디오웨이브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일방적인 말씀으로 나타난다. 이 나타남을 계시(Revelation)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계시는 아무에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권능을 지닌 선택된 자에게만 나타난다.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다윗에게, 사무엘에게,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사상은 애초로부터 계시의 사상에 의해 규정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곧 계시를 말하는 것이고, 계시를 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이 묘사하는 예수는 그러한 이전의 선지자나 예언자나 메시아적 왕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나타난 것이다. 지상의 인간 속에 한 빛줄기가 계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인간으로 육화(肉化)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그 자체의 화신(化身)일 수도 있다. 아니 그 로고스가 바로 하나님일 수도 있다. 나의 말씀이 곧바로 나인 것처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1:1, 요한복음강해68).

 

 

존재론과 구속론의 갈등이 노출되고 있는 이러한 문장의 상세한 해설은 나의 책 요한복음강해1장 해설에서 다시 전개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로고스 그리스도론의 위험성은 예수라는 존재가 시공 밖에 그 존재의 실재적(實在的)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지평 위에서 육화(肉化)된 예수 그리스도는 가현적(假顯的) 허상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러한 가현론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한다. 요한은 예수에게 완전한 인성(full humanity)과 완전한 신성(full divinity)을 동시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해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써 모든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나타난다. 그러나 인간의 편에 서있는 예수는 한없이 인간적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에 비해서 매우 신비적이고 추상적이고 영적일 것만 같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섬세함이 가장 극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 신성과 인성의 콘트라스트, 그 긴장감이 요한복음서를 듣거나 읽는 자에게 가없는 감동을 자아낸다.

 

 

 

 

나사로를 살리는 장면의 디테일

 

 

예를 들면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그 유명한 이적의 장면을 한번 보자! 그 기술방식이 너무도 사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예수께서는 본래 마르다와 그 여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고 계셨다.’(11:5). 이것은 평소부터 너무도 마르다, 마리아 두 자매와 그의 오빠 나사로를 잘 알고 있었고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애정의 표시이다.

 

그 두 자매가 애통해하고 있는 장면에까지 예수가 가는 과정도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있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는 마중을 나간다. 그동안 마리아는 집안에 있었다. 마르다는 예수께 이렇게 말한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귓속말로 말한다. “선생님께서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달려간다. 마리아는 동네어귀에 서 계신 예수님께 달려간다. 그 앞에 엎드려 엉엉 통곡한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대인들까지도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말한다. “저것 좀 보시오. 나사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

 

예수께서는 다시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가셨다. 그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었다: “돌을 치워라.” 누이 마르다가 주님, 그가 죽은 뒤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하고 말씀드렸다. ……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11:44)

 

이상은 내가 공동번역을 간추려 요한의 표현대로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리얼하게 더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로고스로서의 가현체가 이적을 행하고 있는 장면이 아니다. 예수는 한 인간으로서 정말 슬픈 것이다. ‘비통한 마음이 북바쳐 오르며애통해하는 자들과 더불어 눈물을 죽죽 흘린다.’ 그리고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간다.’ 그리고 타 복음서 같으면 그냥 일어나라’ ‘나오너라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매우 리얼한 상황묘사가 있다. 돌무덤 속에 갇혀 있는 시체는 이미 나흘이나 되었다. 썩은 내음새가 펄펄 나는 것이다. 아니 정말 요한의 문장 그 자체로부터 썩은 내음새가 펄펄 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도 그 모습은 염을 해서 삼베와 수건으로 감겨있는 채로 걷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한인 나사로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예수의 이적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하고 당혹한 심사를 금치 못할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가? 과연 가능할까?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무의미하다.

 

요한복음서는 이미 예수를 로고스로 규정하였다. 그는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의 구현체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이적 앞에서는 우리 인간의 일상적 언어나 사유의 범주가 적용되지 않는다. 바로 인간의 일상적 사유의 범주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표징(Sign)이나 상징(Symbol)으로서 요한은 이적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요한복음에 있어서의 이적은 이론적으로도 아귀가 들어맞는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로고스로서 규정되었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그 말씀이 인간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깊은 의미를 전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죽은 자가, 썩은 내음새가 펄펄 나는 송장이 벌떡 일어나 걸어가는 이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죽어 썩어문드러져 냄새가 펄펄 나는 영혼의 깨어남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죽은 송장과 같은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1937910일 연해주지역에서 평화스럽게 살던 한인들에게 스탈린의 명령이 떨어졌다. 블라디보스톡 역전으로 나와라! 멋도 모르고 얼떨결에 옷가지도 변변히 챙기지 못하고 가방 하나 들고 애기 업고 솥단지 하나 이고 나타난 한인들! 외양간 같은 3단 화물칸에 닭장에 닭을 구겨쳐넣듯, 꼬깃꼬깃 시루떡 앉히듯 사람을 쳐넣었다. 덜커덩 기적 소리가 울리고 열차는 그 추운 시베리아벌판을 몇날 며칠이 아닌 몇달을 갔다. 어린아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갔고 아기가 죽었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엄마들은 송장 썩은 내가 풀풀 나는 아기들을 껴안은 채 같이 죽어갔다. 얌전한 조선의 여인들이 소변을 참다참다 요독이 올라 죽기도 했다 하고…… 그들의 참상을 직접 현지에서 수집해보니, 나오는 것은 눈물과 한숨이요 느껴지는 것은 우리민족의 수난의 애통한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지역으로 20만의 한인이 소개(疏開)되었던 것이다. 어린 자식의 썩은 송장이라도 다시 벌떡 일어나기를 원하는 가냘픈 여인의 심정이 우리 인간의 마음에 남아있는 한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나사로의 이적은 우리에게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기적을 사실로 강요하는 목사에게 송사도 가능한 현대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조선땅에는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는 천여 만의 그리스도교 신도들이 있다. 그 중에는 성서의 축자무오류(逐字無誤謬)를 신봉하는 매우 보수적인 목사님도 계실 것이고 그 교설을 따르는 매우 우직한 신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목사님은 설교하실 것이다. 예수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린 것은 사실이며 우리 삶의 역사의 지평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사실로 믿고 따르는 신도들! 그래서 감명을 받고 교회에 재산을 반이나 바쳤다. 그런데 그 신도의 사랑하던 외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런데 과연 그 아들의 시체를 교회로 가져와서 이렇게 외치는 자가 있을까?

 

 

목사님이시여! 당신은 하느님의 권능을 부여받은 주님의 사도라 말했고, 당신은 당신 입으로 분명 송장이 일어나는 것은 거짓말 아닌 사실이라 말했소.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 믿음으로 인하여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송장도 다시 살아나는 이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래서 나는 성경을 믿었고 나의 재산도 바쳤나이다. 어서 내 아들을 살려내시오! 어서 내 아들을 불러일으키시오!

 

 

심지어 오늘날과 같이 송사가 자유로운 세상에서는 목사님을 사기죄로 고발하거나, 혹은 목사님의 사실성의 주장을 빌미로 변호사를 동원하여 연보환수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송사를 지방법원에 접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기독교가 제아무리 펀더멘탈리즘(fundamentalism)의 극치를 치달린다 해도 이러한 송사나 항변에 관한 보도를 접한 적이 없다. 방송국을 점령하고 무법적 행동을 자행하는 소수 교도들의 광포한 신앙상식에 비추어 논의하자면 이런 보도가 없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웬일인가? 우리는 무지한 듯이 보이는 일반신도들의 신앙체험의 깊이를 너무도 이해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나사로를 살리는 예수의 이적을 믿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그 나름대로 이미 불트만이 말하는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의 과정을 순간순간 체험 속에서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불트만의 신학보다는 그들의 믿음이 궁극적으로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불트만의 심오한 신학언어보다 더 심오한 실존적 의미를 그들은 막연하지만 신화적 기술로부터 체득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론이 아닌 본능이며, 사실여부와 무관한 언어적 동물의 상징적 기능이다.

 

 

 

7개의 매트릭스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 AD 26~36 재직) 아래에서 일어난 확실한 예수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사건의 기술이 요한의 관심이 아니다. 그 역사적 지평의 배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로고스적인 신비로운 사역(使役), 그것을 예수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순간에서 드러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과연 이 우주라는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프로젝트 속에 던져진 우리의 삶의 의미를 전폭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이러한 의미의 징표로서만 기적을 제시했기 때문에 단 7개의 사건만을 기술했다. 시간(5:1~9), 공간(4:46~54), (6:1~14), (2:1~11), 생사(11:1~46), 인간의 숙명(9:1~12), 자연의 인과(6:16~21), 이러한 문제와 관련된 7개의 상징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 실존에 던져지는 의미의 매트릭스(matrix of existential meaning)(요한복음강해180).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기술방식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예수의 동선(動線)이다. 예수의 사역의 공간적 시간적 배치에 관한 것이다. 우선 공관복음의 원형인 마가복음은 예수를 갈릴리사역을 중심으로 그렸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텃밭이 갈릴리 향촌인 것이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여, 천국의 선포, 갈릴리 향촌에서의 기적적 권능의 예시, 예루살렘 제사장 이스태블리쉬먼트(establishment, 질서)를 대변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저주, 비유로써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말하는 첫 번째 긴 설교, 서서 말하고 움직이면서 말하고, 바다를 건너고, 마귀를 내쫓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고,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계속 논쟁하고, 눈먼 자를 눈뜨게 하고, 정치적 메시아사상을 거부하고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견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군중의 호산나의 환호성 속에서 메시아적으로 입성, 예루살렘 성전의 잡상들을 뒤엎어버림, 예루살렘 제사장 이스태블리쉬먼트와의 대결, 성전파괴와 재난을 예언하는 두 번째 긴 설교, 최후의 만찬, 가롯 유다의 배반, 체포, 반역ㆍ불경죄로 고발됨, 빌라도 총독의 사형판결, 십자가, 빈 무덤에서 벌벌 떨면서 나오는 여인들, . 이 모든 동선이 갈릴리의 너른 들판으로부터, 예루살렘의 수난ㆍ죽음이라는 최후의 일회적 사건을 향에 직선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공생애의 사건이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내에서 일어나 버린다. 공관복음서는 마가의 원형으로부터 하나도 이탈하지 않는다.

 

 

 

 

국제도시 예루살렘과 성전정화사건

 

 

그러나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사역을 과감하게 갈릴리중심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버렸다. 이왕 예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헬라세계 사람들에게는, 강원도 양양 해변에서 활동한 사람이라는 것보다는 역시 서울(首爾)특별시를 무대로 활동한 사람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세 번의 유월절을 보낸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공생애를 보통 3(AD 28~30)이라는 시간 길이로 설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첫째번 유월절 언급은 2:13. 둘째번 언급은 6:4에 있으나 이것은 전후 맥락으로 보면 갈릴리 가버나움 부근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이 유월절은 5:1유대인 명절과 관련하여 같은 시점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언급은 11:55.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무수히 여행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요한복음에는 2:13, 5:1, 7:10, 12:12의 네 차례 예루살렘 여행이 명시되어 있으나 요한은 예수의 행보의 시ㆍ공적 배열을 근원적으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네 차례라는 직선적 시간배열이 무의미하다.

 

텍스트비평하는 사람들은 가퉁(Gattung)이라고 하는 작은 양식적 단위에만 관심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복음서라고 하는 전체의 유기적 특성을 망각한다. 요한복음은 일차적으로 요한복음의 저자 자신의 시각과 의도, 가치관과 인식체계 속에서 분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는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왕래한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뒤엎음이라는 최종적 사태를 향한 직선적 시간배열은 요한에게는 근원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다. 예수는 더 이상 갈릴리 촌놈이 아니다. 요한의 시간은 평면적 직선이 아니라 입체적 복선이다.

 

요한복음에서 공관복음서와 다른 가장 충격적인 기술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뒤엎음이라는 성전정화(The Cleaning of the Temple)라는 사건을 복음서의 막장이 아닌 초장에 배열했다는 사실이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성전정화야말로 메시아비밀의 결정적 드러남이라는 대사건으로 설정하고 그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예수의 수난의 계기가 주어졌다고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텍스트비평가들이 요한복음에서 성전정화사건이 막장이 아닌 초장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곤혹감을 느끼고 편집비평의 메스를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참으로 가소로운 지성의 유희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한은 3복음서를 다 보았다

 

 

요한복음의 저자의 책상머리에는 분명히 마가, 마태, 누가복음, 3복음서가 놓여있었다는 것이 현재 성서신학자들의 일치된 결론이다. 과거에는 요한복음은 전혀 공관복음서를 참고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은 3복음서를 다 보았다. 요한은 체질적으로 마태복음은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친 유대교적 성향 때문에 보편론자인 요한에게는 매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마태를 참고하였다. 요한은 누가의 국제적 감각을 좋아했지만 가장 그가 존중한 것은 마가였다. 역시 그 마가복음의 소박한 진실성이 그가 복음서를 바라본 기준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이 공관복음서의 사건들을 자기 나름대로 생략하고, 덧붙이고, 자세하게 부연하고, 자유롭게 배열하고, 심오한 논술을 첨가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지상에서의 예수의 사역은 오로지 로고스의 권능과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동원되는 싸인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미 초대 교회에 있어서 사도성의 오리지날리티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다 죽어버린 상태였다.

 

 

 

 

재림의 재해석

 

 

그리고 요한 시대의 그리스도 공동체를 괴롭힌 가장 큰 문제는 파루시아(Parousia) 즉 재림의 지연이었다. 곧 온다고 믿었던 예수의 재림은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바울부터 ’ ‘하던 그 이 벌써 반세기가 지나가버린 것이다. 재림의 지연에 대하여 조금만 더 기다려라! 기다려라!’하던 초기교회 지도자들의 간증도 이제 맥이 풀리기 시작했다. 막연히 ’ ‘하면서 기다리는 데 이제 신도들은 지쳐버린 것이다.

 

따라서 요한에게는 이러한 재림대망 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했다. 요한은 암암리 로고스 기독론을 통해 예수의 지상에서의 사역(ministry) 그 자체가 이미 재림이고 재림의 의미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한의 관심 속에서는 중요한 것은 예수의 역사가 아니라 예수의 역사에 대한 해석의 지평이었다. 그 해석의 지평에 펼쳐진 예수의 생애, 그 역사는 전혀 공관복음의 직선적 구도를 따를 의무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요한이 성전정화라는 사건을 초장의 한 에피소드로서 제시한 것은 전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뒤엎음이 예수의 반역의 결정적 죄목이 될 수도 없었고 또 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예수의 지상에서의 존재 그 자체가 이미 반역이었고 불화였고 혁명이었다. 그는 세상(코스모스)이라는 어둠으로 던져진 빛이었다. 빛은 어둠과 상극이다. 빛이 어둠을 비친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이미 어둠의 파괴를 의미하는 사건이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가 자신의 땅으로 왔으나, 그곳 자신의 사람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1:10~11)

 

마가, 마태, 누가가 모두 예수가 성전 안으로 들어가’(Jesus entered the temple. 11:15, 21:12, 19:45) 돈 바꾸는 자들의 탁자와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예수는 성전 안으로들어갈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제사장 클라스가 아니기 때문에 성전에는 범접할 수 없는 갈릴리 촌사람일 뿐이다.

 

 

 

 

예수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예수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이란 헤롯이 지은 것으로 제3의 성전(Third Temple)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가장 화려했고 가장 규모가 컸다. 1의 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것이고 제2의 성전은 바빌론유치에서 돌아와 BC 520~515 사이에 지은 것인데 희랍인들의 정벌(BC 325)과 로마인들의 정벌(BC 63) 때 다 망가졌다. 예수시대의 성전은 헤롯대왕이 재건한 것인데 AD 70년까지 존속한 것이다. 이 제3의 성전은 성전 본 건물이 있고 그 밖에 뜰이 있고 그것을 에워싸는 담이 있고, 그 밖에 또다시 큰 이방인의 뜰이 있고 그것을 로마식 건축물인 거대한 솔로몬의 행각(行閣)이라는 더블 콜로네이드(double colonnade: 두 열의 긴 돌기둥 회랑)가 둘러싸고 있었다. 잡상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감람산 쪽으로 향한 동쪽 성벽 위의 행각채였다. 따라서 예수가 뒤엎었다는 것은 전혀 성전내의 사건이 아니고 최외곽의 행각채에서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성전은 나 오스’(naos)인데, 예수는 나오스에는 들어갈 수 없다. 이 기사에서 쓰인 이름은 히에론’(hieron)인데 히에론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성전언덕’(temple mount) 정도의 표현이 된다. 아마도 성전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주변의 사건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복음서저자 요한은 성전에 올라가다가 주변의 잡상들을 보고 화가 치밀어올라 이놈들이 나의 아버지의 집, 만인이 기도하는 거룩하고 조용한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구나 하고 분노를 폭발하며 다 뒤엎어 버리는 예수의 혁명가적 기질을 잘 나타내는 극적 장면을 아예 초장에 배열함으로써 예수의 이 지상에서의 사역의 성격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자료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것을 꼭 수난의 결정적 동기로 활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소위 메시아 비밀’(Messianic Secret: 독일 신학자 빌헤름 브레데W. Wrede가 처음 명명, 1901)이라고 부르는 공관복음서의 공통된 성향이 없다. 다시 말해서 공관복음서 속의 예수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말을 해도 비유로 말하고 이적을 행하여도 그러한 것을 타인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예수는 자신의 메시아성을 깊숙이 감추고, 부활의 때까지는 그것을 비밀로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브레데의 이러한 관점은 타가와 켄조오에 의하여 매우 정확히 비판되었다. 원시 그리스도교연구309~325.)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 담론

 

 

그러한 데 비한다면 예수는 공생애의 시작부터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드러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문이다’(10:9),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참포도나무다’(15:1)를 공공연히 외치는 예수에게 메시아 비밀이라고는 있을 수 없다.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에도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는 그의 언어 속에는 지상에서의 사역에 대한 완벽한 자신감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으로도 그의 메시아됨은 처음부터 공공연하게 고백되었던 것이다(1:41,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요한복음에는 기실 예수의 메시아성은 감추어져 있는 동시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으나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드러나 있는 것이다. 예수의 공공연한 고백을 둘러싼 인간의 무지와 신앙 사이의 텐션이 요한복음을 이끌고 가는 가장 강렬한 테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요한자료의 독자성과 역사성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이 공관복음서 자료를 자유롭게 취사선택하고 편집하는 요한의 태도에 비추어, 공관복음서 자료 이외의 담론이 모두 요한의 과감한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이 아닐까하고 의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자체의 담론을 구성하는 1)표징자료 2)계시담론 3)수난설화 모두에 요한의 독자적인 자료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한은 공관복음서를 능가하는 풍요로운 초기전승자료, 어쩌면 예수 당대의 직전구전자료들까지도 풍부하게 구비하고 있었다고 사료되는 것이다. 그의 생동감 넘치는 자세한 묘사가 단순한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주요한 사화(事話)들의 기술방식이(예를 들면, 6의 오천 명 먹이신 기적, 12의 베다니에서의 기름부으심을 받음 등)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이라고 불러야 할 상황적 디테일을 보존하고 있다.

 

둘째, 쿰란문서의 발견으로 요한이 해석의 지평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요개념들이 요한 자신의 특수한 조어가 아니라 이미 요한 이전부터 당대에 일반적으로 쓰이던 개념들로서 역사성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셋째, 요한이 쓰고 있는 지명들, 52베데스다’(Bethzatha)라든가 1913가바다’(Gabbatha)와 같은 예루살렘 지역의 특정한 이름들이 이전에는 전혀 역사문헌에 나타나질 않아 요한의 발명인 줄로 알았는데, 요즈음의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로 이러한 지역명이 정확한 현실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됨으로써 요한의 기술의 역사성이 입증되었다.

 

 

 

 

초기 기독교를 형성한 세 사람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하며 우리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초기전승과 맥이 닿아있는 노인이라고 상정하기 쉬운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희랍철학과 당대의 모든 이방철학을 마스터하고 유대적 사유에 정통한 젊은이로서 초기전승을 체득하고 있는 노인에게서 모든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새로운 비젼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전성시기와 동년배의 35세 전후의 정예로운 젊은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초기기독교의 새로운 기원을 이룩할 수 있는 과감하고 참신하고 유연하고 깊이있는 사색을 할 수가 있었을까? 나 도올은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그런 싱싱한 젊음을 느낀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초기기독교를 형성한 세 사람의 이름을!

 

 

초기 기독교를 형성한 세 사람
예수(Jesus) 바울(Paul) 요한(John)
1단계 2단계 3단계의 완성
4단계의 시작

 

 

요한복음에 관해서는 내가 요한복음강해에서 따로 해설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하겠다. 이제 우리는 4복음서의 성립과정과 그 상이한 성격에 관해서 어느 정도 대강의 윤곽을 갖게 되었으므로 총체적으로 다시 한번 점검해보는 것이 유익할 것 같다. 1단계에 관한 직접자료는 우리에게 전무하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분명히 실존하지만 역사적 예수를 직접 인지할 방법은 없다. 결국 역사적 예수 자체가 끊임없이 그것을 규명하려는 사람의 의식 속의 해석의 지평 속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해석자의 현대사적 관심의 다양한 물음과 학문방법에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역사적 예수는 영원한 현대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1단계 거기에 있는 예수(Jesus-then)는 오늘 여기에 있는 그리스도(Christ-now)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오늘은 바울에게도 존재한 오늘이었고, 요한에게도 존재한 오늘이었고, 오늘 우리에게 존재하는 오늘인 것이다.

 

 

 

 

바울과 요한의 기독교

 

바울의 오늘의 지평 속에서 예수는 매우 추상적이었다. 그는 근원적으로 역사적 예수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부활한 예수의 의미에 관심이 있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마가는 구체적 예수를 말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공관복음서의 홍류를 이루었다. 바울이 예수를 부활의 지평 위에 올려놓았다면 공관복음서는 예수를 역사의 지평 위에 올려놓았다. 요한복음서는 바로 바울()과 공관복음()을 지양(止揚, Aufheben)한 합(), 신테시스(synthesis)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요한은 바울의 추상성과 공관복음의 구체성, 바울의 성령성과 공관복음의 역사성의 양면을 종합하려 했다. 바울의 논술성과 공관복음의 이야기성을 종합했고, 바울의 의미성과 공관복음의 설화성을 종합했다. 그래서 바울과 요한 사이에는 영지주의라는 세계관의 공통분모가 그 배경에 깔려있는 것이다.

 

    <>    
  요한복음  
  추상ㆍ구체적  
  성령ㆍ역사적  
논술ㆍ이야기적
  의미성ㆍ설화성  
<>       <>
바울 서한       공관복음
추상적   지양(止揚)   구체적
성령적     역사적
논술적       이야기적
의미성       설화성

 

 

종교개혁이란 뜻의 영어단어는 리포메이션(Reformation)이다. 그것은 다시() 형성한다(포메이션)는 뜻이다. 종교는 끊임없이 다시,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다. 축자무오류를 말하고 교황무오류를 말하고 성직자무오류를 말한다면 이미 그러한 종교는 쇠락과 죽음일 뿐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자체가 끊임없이 다시 형성되어온 것이며, 특히 초기기독교 1세기 역사만 해도 그것은 너무도 격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요소를 끊임없이 흡수한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의 인지만이 혁명

 

 

우리는 새삼 종교개혁이나 종교혁명을 운운할 필요가 없다. 초기 기독교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사실만 인지하는 것으로도 히로시마 원폭보다 몇 억만 배의 위력을 갖는 혁명적 사고의 전환이 가능한 것이다. 마태ㆍ마가ㆍ누가의 공관복음서가 바울의 서한보다 더 늦게 형성된 것이며, 또 그보다 요한복음이 더 뒤늦게 형성된 것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 너무도 모든 정통신학계의 경건한 신학자들, 목사님들, 신부님들이 다 알고계신 의심할 바 없는 일치된 견해, 성서 자체의 권위 속에서 입증되는 사실만으로도 기독교에 대한 혁명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신도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이다. 신학교에서는 다 배우고 있고, 서가에 꽂혀있는 모든 신학사전에 다 쓰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단순한 사실들이 우리나라의 일반신도들의 99%에게는 무지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목사님들은 과연 설교시간에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일까? 이제 한번쯤은 도올의 절규에 바늘구멍만큼이라도 고막 통로를 열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약관의 나이에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나를 둘러싼 언어들이 너무도 지독하게 폐쇄된 장벽들이라고 처절하게 느끼었다. 내가 다닌 한국신학대학만 해도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학풍의 요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저히 나의 연약한 힘으로는 그것을 뚫고 나갈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새로운 소명의 길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학대학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지금 꼭 40년만에 다시 그 단순한 사실들에 대한 붓을 들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증오가 아니다

 

 

종교는 항상 설명되는 순간 왜곡되고, 왜곡되는 순간 결국 야만으로 타락하고 만다. 그러나 어차피 종교는 야만 속에서 성장한다. 유럽의 지성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야만으로부터 구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종교는 계시와 신앙과 은총의 대상으로만 규정되어야 하며, 일상적 체험과 이성과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정밀한 신학체계를 수립하려는 끊임없는 이성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새카만 옛날에 이미 지중해연안의 한 불건전한 미신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종교는 궁극적으로 문명통합의 기초(the common basis for the unity of civilization)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적 아이디어들은 서로 배우고 서로 빌려야 하며,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종교는 증오(Hatred)로 남아서는 아니 된다. 오늘 한국기독교의 배타성은 증오, 그 이상을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도 기독교 신학의 임무는 이 세계가 단순히 덧없는 사실 이상의 것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데 있는 것 같다. 요한은 그래서 그노시스를 말했고 빛을 말하고 영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결국 소멸해가는 우리 인생 속의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한 영원성의 확보만이 우리의 삶이 단순한 희노애락을 넘어서는 깊은 만족을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이러한 방식의 영원성의 확보가 과연 우리 삶의 의미의 유일한 방식인지에 관해서는 많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지금 여기서는 그러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세계를 대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부록: 정교하고 찬란한 고대자료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Old Babylonian Period)의 설형문자(쐐기문자점토석주, 우르 제3왕조(the Third Dynasty of Ur, BC 2097~1989)의 왕들의 이름과 치세가 쓰여져 있다. 이 석주는 BC 1740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은 원래 대홍수이래 갈대아 우르에 정착한 사람이었다. 이 석주도 대강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것이다.

 

 

고대사 자료는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BC 2000년 전후의 문명의 수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놀랍게 정교하고 찬란하다. 이러한 인류문명의 지혜의 축적으로 오늘 우리가 이기와 복지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성서의 세계도 이러한 인류문명과 더불어 성장해온 것이다.

 

나는 이 전시물을 20035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보았다. ‘인류 최초 도시들의 예술’(Art of the First Cities)라는 제목의 전시였는데 구약성서 배경사에 관하여 많은 통찰을 던져주었다. 부시 대통령이 이 인류문명의 요람지역을 아무 명분없이 하게 무차별 폭격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인용

목차

성경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