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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어휘사전 - 280. 중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80. 중

건방진방랑자 2020. 5. 3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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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줄줄(崒崒)

산이 험한 모양, 물건이 서로 스치는 소리

 

 

인용

목차

 

281.

 

 

중간(仲幹)

변사정(邊士貞)의 자이다.

 

중경(重卿)

성임(成任)의 자. 그가 본도(本道)의 감사(監司)로 있을 적에 일찍이 영광군(靈光郡)의 기생 부춘화(富春花)와 관계를 갖고 나서 함평의 객사(客舍)에 있는 그림 병풍에 쓰기를 남쪽에 오니 세월은 물결처럼 빠른데 국사에 분주하느라 집안 생각 못하고 간 곳마다 번화한 것은 마음 두기도 어려워 한 병풍 앞에 부춘화와 서로 마주하였네[南來歲月逝如波 王事驅馳不戀家 在處繁華難着意 一屛相對富春花]”하였다.

 

중경(仲卿)

() 나라 왕장(王章)의 자()이다. 젊어서 제생(諸生)으로 장안(長安)에서 공부할 때, 가난한 생활에 병이 들어 덮을 것이 없자 덕석으로 몸을 가리고 누워 울면서 처와 영결(永訣)을 하자, 그 처가 중경이여, 현재 조정의 고관들 중에 누가 중경보다 낫다 하겠는가. 그럼에도 지금 병이 들어 조금 고달파졌다고 하여 스스로 분발하지 못한 채 그만 거꾸로 눈물을 흘리다니, 얼마나 옹졸한 짓인가.” 하고 꾸짖었던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왕장전(王章傳)

 

중경(仲景)

후한(後漢) 조양(棗陽) 사람. 장기(張機)의 자()인데 영제(靈帝) 때에 벼슬이 장사 태수(長沙太守)에 이르렀으며 의술을 장백조(張伯祖)에게 배웠고 상한론(傷寒論)을 저술하였다. 화타(華陀)는 그 논을 읽고서, 참으로 사람 살릴 글이라고 하였다. 한위(漢魏) 이래로 의술을 익히는 자는 그를 추대하여 의중(醫中)의 아성(亞聖)으로 삼았음.

 

중계약훈호(仲季若塤箎)

()과 호()는 모두 악기(樂器)의 이름인데, 시경(詩經)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백씨(伯氏)는 훈을 불고 중씨(仲氏)는 호를 분다[伯氏吹壎, 仲氏吹篪].”라는 말이 있다.

 

중곡퇴(中谷蓷)

시경(詩經)왕풍(王風) 중곡유퇴(中谷有蓷)에 가뭄을 노래하여 골짜기에 익모초가 말라간다고 하였다.

 

중과부적(衆寡不敵)

많은 무리와 적은 무리는 서로 대적하지 못한다. 적은 수효로 많은 수효를 감당하지 못한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그러하다면 작은 것은 본래 큰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적은 것은 본래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 약한 것은 본래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然則小固不可以敵大, 寡固不可以敵衆, 弱固不可以敵彊].”라는 말이 있다.

 

중관(中官)

내시(內侍)의 별칭이다. / 인용: 詰楊吏(허격)

 

중광(重光)

고갑자(古甲子)에서 중광은 신()을 말한다. 양월은 10월이다.

 

중구(中垢)

시경(詩經)의 주에, ‘()은 은암(隱暗)의 뜻이요, ()는 오예(汚穢)의 뜻이라고 하였다.

 

중구(重九)

음력 99일로 곧 중양절(重陽節)을 말한다.

 

중구난방(衆口難防)

뭇사람의 말을 이루 다 막기는 어렵다.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저마다의 소견을 펼치기만 하는 상황을 말한다.

 

중구삭금(衆口鑠金)

여러 사람이 합해 말하면 굳은 쇠도 녹인다. 참언(讒言)의 두려움을 말한다.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인용: 교육의 논리를 넘어 교사들끼리 한바탕 수다떨기 착각으로 시작된 글쓰기와 무럭무럭 커져간 바람

 

중구액(重九厄)

99일에 당하는 화라는 뜻으로, 뜻밖의 재앙을 가리키는 말이다. 선인(仙人) 비장방(費長房)이 제자 환경(桓景)에게 “99일에 너의 집에 재앙이 닥칠 것이니, 빨리 가서 사람마다 붉은 보따리에 수유(茱萸)를 담아 어깨에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국화술을 먹도록 하라. 그러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는데, 환경이 그 말대로 하고서 저녁에 내려와 보니 가축들이 사람 대신에 폭사(暴死)했더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속제해기(績齊諧記)』 「중양등고(重陽登高)

 

중구일(重九日)

99중양절(重陽節)을 말한다.

 

중권(中權)

삼군(三軍) 중에 주장(主將)이 있는 중군(中軍)을 말한다.

 

중궤(中饋)

주방(廚房)에서 음식을 맡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중규(中逵)

아홉 갈래로 통하는 길. 익주부자묘비 원문에는, “중계(中階)”라고 하였다.

 

중규조조개자기(衆竅調刁皆自己)

각종 다양한 바람 소리는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구멍의 다양한 형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원래 바람 자체가 틀려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역시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맹렬한 바람이 일단 지나가고 나면 뭇 구멍이 다시 텅 비게 되는데, 그대는 그때에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아직도 간들거리는 모습을 유독 보지 못하였느냐[厲風濟則衆竅爲虛 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하였고, 하늘의 피리 소리라고 하는 것은 바람이 불어올 때 다양하게 반응하며 소리를 내는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가 원인이 되어 스스로 자초하는 것들이니, 어떤 존재가 따로 있어 그렇게 하도록 발동시키는 것이겠는가[夫天籟者吹萬不同 而使其自己也 咸其自取 怒者其誰邪].”하였다.

 

중규지조조(衆竅之刁刁)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모진 바람이 그치면 모든 구멍이 텅 빈 듯하나 그대는 산들거리고 휙휙거리는 바람소리를 모르는가?[厲風濟則衆竅爲虛. 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인간만사는 모든 물체에 부딪쳐 발하는 바람 소리처럼 천태만상이 있으나, 그 본래는 고요한 데서 발단하였다는 것이다.

 

중금(重金)

금대(金帶)에 패어(佩魚)까지 차는 고관의 복식(服飾)을 말한다.

 

중금(中金)

()의 별칭으로 백금(白金)이라고도 한다.

 

중기(衆氣)

조하, 정양 항해 등 여러 천지의 기.

 

중기(重寄)

중요한 임무를 부탁하여 책임을 지게 한다는 말이다. / 인용: 李忠武公龜船歌(황현)

 

중녀괘(中女卦)

팔괘(八卦) 중의 이괘(離卦)를 말한다.

 

중농주의(重農主義)

국가의 부의 기초는 농업에 있는 경제 사상을 말한다.

 

중니(仲尼)

공자의 자()이다. 공자는 구이(九夷)에 살고 싶어했고 바다로 떠가고 싶다고도 하였는데, 구이를 우리나라로 여기기도 한다.

 

중니감려인(仲尼甘旅人)

중니(仲尼)는 공자(孔子)의 자()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나는 동서남북으로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다.”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고, 주자어류(朱子語類)59권에 공자 같은 성인께서도 …… 종신토록 쓸쓸하게 여인(旅人)의 생으로 일관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중니곤계맹(仲尼困季孟)

중니는 공자의 자이다. 계맹은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대부(大夫)였던 계손씨(季孫氏)와 맹손씨(孟孫氏)를 합칭한 말인데, 즉 공자는 성인으로서 노 나라에 벼슬할 적에 이 권신들에 의해 곤욕을 당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중니광야(仲尼曠野)

공자가 위()를 떠나 진()으로 가던 중 들녘에서 식량이 떨어지고 시종하는 자가 병이 나서 일어나지 못하는 곤란을 겪었던 일을 말한다. 이때 공자가 자로(子路)에게 시경(詩經)들소도 아니며 호랑이도 아니거늘 저 허허벌판에 따라다니게 하느냐[匪兕匪虎, 率彼曠野]’ 하였는데, 우리 도()가 그른 것인가, 우리가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詩云 匪兕匪虎 率彼曠野 吾道非邪 吾何爲於此]”라고 물었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중니욕거이(仲尼欲居夷)

구이(九夷)는 아홉 종류가 있는 동방(東方)의 오랑캐를 말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공자가 구이에 가서 살고자 하자, 혹자가 그 비루한 곳에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사는데 무슨 비루함이 있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

 

중니칭기과(仲尼稱其果)

공자가 위() 나라에 있을 때 경쇠()를 치자, 삼태기를 메고 그 문앞을 지나던 은자(隱者)마음이 있도다, 경쇠를 침이여!”하더니, 이윽고 다시 말하기를 비루하도다, 세상을 잊지 못하는 굳은 생각이여! 자신을 알아줄 이가 없거든 그만둘 뿐이니라.” 하므로, 공자는 그 말을 듣고 말하기를 세상을 잊는 데에 과감하도다. 그렇게 살려면 어려울 것이 없으리라[果哉! 末之難矣].”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중니탄서수(仲尼嘆逝水)

공자(仲尼)가 내() 위에서 흐르는 물을 보고 말하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주야로 쉬지 않으니[逝者如斯夫! 不舍晝夜].” 하였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중단(中單)

남자의 상복(喪服) 속에 입는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를 말한다. / 인용: 酒吃翁夢記(허균)

 

중달(仲達)

삼국 시대 위() 나라의 장수 사마의(司馬懿)의 자()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적수로 지략이 뛰어났다.

 

중당(中唐)

() 나라의 시체(詩體)를 초당ㆍ중당ㆍ만당(晩唐)으로 구분하는데, 중당은 대력(大曆) 때부터 태화(太和) 때까지를 일컬으며, 여기에 해당한 시인은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 등이다.

 

중대(中臺)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이다.

 

중동(重瞳)

() 임금과 항우(項羽)는 눈에 동자가 둘씩 있었다 한다. 그러므로 임금의 눈을 중동이라 한 것이다[舜目蓋重瞳子, 又聞項羽亦重瞳子].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중동(仲冬)

‘11을 말한다.

 

중동갱유중양재(仲冬更有重陽在)

119일을 말한다.

 

중랑(中郞)

문인 학사를 일컫는 말이다. () 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채옹(蔡邕)이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던 데에서 연유한 것이다. 채옹의 딸 채담(蔡琰)이 그 아버지를 이어 글을 잘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중랑녀(中郞女)

아들을 보지 못하고 문재(文才)가 뛰어난 딸 하나만 남겼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채옹(蔡邕)의 딸 문희(文姬)가 선친으로부터 4천여 권의 책을 물려받고 상란(喪亂)의 시대에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서적을 모두 망실했으나 그래도 40여 편을 암송하여 다시 복구시켰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후한서(後漢書)』 「열녀전(列女傳)

 

중랑아대(中郞阿大)

숙부(叔父)를 가리킨 말이다. () 나라 때 사안(謝安)의 형인 혁()의 딸 도운(道韞)이 왕응지(王凝之)에게 시집을 간 처음 친정에 와서 매우 불쾌하게 여기자, 사안이 이르기를 왕랑(王郞, 왕응지)은 일소(逸少, 王羲之의 자)의 아들인데 네가 무엇을 한하느냐?”하니, 사도운이 대답하기를 우리 일문(一門)의 숙부로는 아대(阿大)와 중랑(中郞)이 있고, 뭇 종형제들로는 또 봉()ㆍ호()ㆍ갈()ㆍ말()이 있는데, 뜻밖에도 천지 사이에 왕랑 같은 자가 있었습니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아대는 곧 사안을 가리킨 말이고, 중랑은 곧 사안의 아우로서 역시 문재(文才)가 뛰어나서 간문제(簡文帝)로부터 특별히 종사중랑(從事中郞)에 발탁되었던 사만(謝萬)을 가리킨 말이다. 진서(晋書)卷九十六

 

중랑원(中郞願)

() 나라 때 중랑장(中郞將)에 임명된 채옹(蔡邕)처럼 내직(內職)에서 학사(學士)로 계속 근무하고 싶어하는 것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中郞石經後 八分蓋憔悴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22 送顧八分文學適洪吉州

 

중랑지절(中郞持節)

깃대 지닌 중랑이란 한()나라 때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가 무제(武帝) 천한(天漢) 원년에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나갔다가 선우(單于)에게 강제로 붙잡혀 19년 동안 양치기 노릇을 하면서도 사신의 징표로 가지고 간 깃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존함으로써 한 나라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서(漢書)卷五十四 소무전(蘇建傳)

 

중랑초미금(中郞焦尾琴)

중랑(中郞)은 후한(後漢) 때 중랑 벼슬을 지낸 채옹(蔡邕)을 이른다. 초미금은 곧 거문고를 가리킨 말로, 채옹이 일찍이 이웃 집에서 밥을 짓느라고 때는 오동나무가 타는 소리를 듣고는,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 줄을 알고 그 타다 남은 오동나무를 얻어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중랑해모금(中郞解摸金)

중랑(中郞)은 곧 발구중랑(發邱中郞)인데, 조조(曹操)의 명을 받고 가는 곳마다 고분(古墳)을 파헤쳐 금은보화(金銀寶貨)를 취하였다 한다.

 

중랭(中冷)

양자강(揚子江) 중랭천(中冷泉)의 물이 점다(點茶)를 하는 데 있어 천하의 으뜸이라는 고사가 있다.

 

중력황감경절물(中曆黃柑驚節物)

중력(中曆)은 궁중(宮中)의 역서(曆書)이고, 황감(黃柑; 익어서 누렇게 된 귤)은 동짓달의 절물(節物)인데, 예로부터 동짓날에는 궁중에서 근신(近臣)들에게 이 두 가지 물건을 하사하였기 때문에 한 말이다.

 

중련(仲連)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을 말한다. 당시 진()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제후(諸侯)들이 진을 천자(天子) 나라로 받들려 하므로, 반대하면서 진 나라를 천자 나라로 섬기느니 동해(東海)에 빠져 죽겠다.” 하였다. 사기(史記)卷八十三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중련지도해(仲連之蹈海)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진()이 조()를 호되게 공격하고 있을 때 위()의 신원연(新垣衍)이 조 나라로 가서, 진 나라가 군대를 철수하는 조건으로 진 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높여주도록 하자고 제의하자, 당시 조 나라에 와 있던 제() 나라 사람 노중련(魯仲連)이 그것은 안 될 일이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진 나라가 만약 방자하게 황제를 자칭한다면 이 중련은 동해로 달려가 빠져죽고 말 것이다.” 하였다. 사기(史記)卷八十三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중령군(中領軍)

관직명으로 한()나라 말에 만들어졌다. 위진(魏晉)에서 남북조(南北朝)에 이르기까지, 측근 대신들이 그 직위에 임명되었다. 중호군(中護軍)과 함께 군대를 통솔하는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중루점괴후(中壘占乖候)

중루(中壘)는 한대(漢代)에 집금오(執金吾)의 속관(屬官)인 관명(官名)으로, 유 중루는 곧 중루교위(中壘校尉)를 지낸 유향(劉向)을 가리키며 괴후(乖候)는 곧 괴이(乖異)한 징후라는 뜻으로 유향이 일찍이 상고(上古) 이래 역대에 걸쳐 부서(符瑞)와 재이(災異)에 대한 기록을 모아서 그 행사(行事)를 추적(追跡)하여 점험(占驗)을 나타냈는데 이것이 바로 홍범오행전론(洪範五行傳論)이다. 한서(漢書)卷三十六

 

중류격즙(中流擊楫)

() 조적(狙逖)이 원제(元帝)에게 청하여 군사를 통합해서 북벌(北伐)할 때 양자강을 건너며 돛대를 치면서 맹세하기를, “중원을 밝히지 못하고 다시 건너면 이 강과 같으리라.” 했다. 드디어 그가 석륵(石勒)을 격파하고 황하 이남의 땅을 회복했다.

 

중류격즙(中流擊楫)

진서(晉書)』 「조적전(祖逖傳)예주 자사(豫州刺史) 조적(祖逖)은 유사(流徙) 부곡(部曲) 백여 가호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다가 중류에서 돛대를 치며 맹세하기를 내가 중원(中原)을 깨끗이 소탕하지 못한다면 이 강을 다시 건너지 않겠다.’ 하여 기상이 장렬하니, 사람들이 모두 감탄했다.” 하였다.

 

중류공석위산하(中流空惜魏山河)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위 무후(魏武侯)가 하수(河水)에서 배를 타고 내려 가다가 중류(中流)에서 좌우의 산천을 돌아보고, “산천이 장()하구나 이것은 위국(魏國)의 보배로다.” 하니, 오기(吳起)가 대답하기를, “국가가 오래 가는 것은 덕()에 있는 것이요, 산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중맹유상(衆盲喩象)

코끼리를 불성(佛性)에 비유하고 소경을 무명(無明)의 중생에 비유하여 중맹상(衆盲象)의 지체(肢體)를 더듬어서 여러 가지를 풀이해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중묘(衆妙)

오만 가지 묘리(妙理)로서 즉 도()를 의미한 것이다.

 

중미(重味)

두 종류 이상의 맛 좋은 음식이란 말로, 밥상에 놓이는 두 종류 이상의 야채나 술안주[兩種以上菜肴]를 말한다.

 

중방제결(衆芳鶗鴂)

온갖 꽃이 시드는 처량한 시절이라는 말이다. 제결(鶗鴂)두견새로 이 새가 울면 꽃이 시든다고 한다. 초사(楚辭)』 「이소(離騷)恐鶗鴂之先鳴兮 使百草爲之不芳이라 하였고, 백거이(白居易)소식(蘇軾)의 시에도 각각 殘芳悲鶗鴂只恐先春鶗鴂鳴이라는 표현이 있다. 백락천시집(白樂天詩集)16 東南行 一百韻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8 和致仕張郞中春晝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호이다.

 

중부(仲孚)

고려 때의 문신인 정포(鄭誧)의 자이다. 정포가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로 있으면서 악정(惡政)을 상소했다가 울산(蔚山)에 유배된 적이 있었고, 그는 특히 시문(詩文)ㆍ서예(書藝)에 모두 뛰어났었다.

 

중부(重夫)

이후여(李厚輿)의 자()이다.

 

중부잠모교탈진(仲父潛謀巧奪秦)

() 나라 여불위(呂不韋)가 저의 아이를 밴 첩을 진왕(秦王)에게 바쳐서 낳은 아들이 곧 진시황(秦始皇)이란 말이 있다. 진 나라에서 여불위를 높여서 중보(仲父)라 하였다.

 

중사(中謝)

임금에게 올리는 表文 敬語를 생략하는 투식을 말한다. / 인용: 進三國史記表(김부식)

 

중사(中使)

예전에, 궁중에서 왕명을 전하는 내시를 이르던 말이다. / 인용: 麴先生傳(이규보)

 

중산(仲山)

한 고조(漢高祖)의 형 중()이 살았던 곳이다.

 

중산(中散)

() 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을 가리킨다. 한때 위() 나라에 벼슬하여 중산대부(中散大夫)가 되었으나 그만둔 뒤로는 죽림 속에서 청담(淸談)을 즐기며 벼슬하지 않았다. 그는 대장장이의 풀무질을 좋아하여 벗 향수(向秀)와 더불어 마주앉아 풀무질을 하며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

 

중산(中山)

한 잔만 마시면 1천일 동안을 취한다는 중산에서 나는 술을 가리킨 말이다. 박물지(博物志)유현석(劉玄石)이라는 사람이 중산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취해서 죽은 듯이 쓰러지자 가족들은 그가 죽은 줄만 알고 장례를 치러버렸는데, 3년 만에 그 술집에서 그 집을 찾아가 무덤을 파보니, 그제야 술이 깨었다.” 하였다.

술 이름이다. 수신기(搜神記)적희(狄希)는 중산(中山) 사람인데 천일주(千日酒)를 만들어 그것을 마시면 천 일을 취한다.” 하였다.

 

중산방만락양서(中山謗滿樂羊書)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악양(樂羊)이 중산을 쳐서 3년 만에 그를 함락시키고 돌아와 문후(文侯)에게 보고하자, 문후가 상자에 가득찬 방서(謗書)를 보이니, 악양이 재배(再拜)하면서 중산을 격파한 것은 신()의 공이 아니라 임금의 공입니다.” 하며, 그 많은 중상의 투서를 받고도 임금이 끝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였다. 사기(史記)卷七十一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중산의갈부(中山衣褐夫)

중산(中山)은 지명으로 품질 좋은 붓을 생산하던 곳이고, 의갈부란 털옷을 입었다는 뜻으로 즉 토끼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이른 말이다.

 

중산참방(中山讒謗)

터무니없이 날조하여 참소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위() 나라 악양(樂羊)이 중산(中山)을 정벌하러 나간 지 3년 만에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니, 위 문후(魏文侯)가 그동안 신하들이 그에 대해서 참소한 글 한 상자를 꺼내 보여 준 고사가 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악성(樂成)

 

중상모략(中傷謀略)

상대방의 속이 상하도록 하는 갖은 꾀와 책략. 권모술수가 상대에 대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타격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중상모략은 주로 남을 헐뜯어 명예를 손상시켜 정신적으로 충격을 입히고자 하는 것이다. / 유의어: 중상(中傷) / 인용: 麴先生傳(이규보)

 

중상지기(仲翔知己)

중상(仲翔)은 삼국 시대 오() 나라 우번(虞翻)의 자()인데, 그가 강직하게 감히 바른 소리를 하다가 조정에서 쫓겨난 뒤에 나의 골상(骨相)이 원래 아첨을 떨지 못하게 되어 있다[骨體不媚]”고 한탄하면서,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使天下一人知己者 足以不恨]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삼국지(三國志)57 吳書 우번전(虞翻傳)

 

중서(中書)

대궐의 문서와 조칙 등을 맡아본 한대(漢代)의 관직 이름으로, 승지(承旨)를 말한다.

붓의 이칭(異稱)이다. 한유(韓愈)모영전(毛穎傳), “모영이 여러 차례 중서령(中書令)에 제수되어 상()과 더욱 친하게 지내자, 상이 일찍이 중서군(中書君)이라고 불렀다.” 하였다.

 

중서군(中書君)

()의 별칭인데, 특히 토끼털로 만든 붓을 말한다.

 

중서삼책(仲舒三策)

한 무제(漢武帝) 때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현량으로 올린 대책(對策)을 말한다. 무제 초기에 현량과(賢良科)의 대책(對策)을 왕명에 의해 연거푸 세 번 올리고 바로 강도상(江都相)에 임명되었다. 그 대책이 3조항으로 되었기 때문에 3책이라 한다. 한서(漢書)卷五十六 동중서전(董仲舒傳)

 

중석(重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 대빙(戴憑)이 경학(經學)에 아주 밝았었다. 한번은 정조조하(正朝朝賀)차 백관(百官)이 모두 모였을 적에 임금이 군신(群臣)에게 명하여, ()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경의(經義)를 묻게 하되, 만일 뜻이 잘 통하지 못한 곳이 있을 경우에는 문득 그 사람의 자리()를 빼앗아서 뜻이 잘 통하게 설명한 사람에게 보태어 주도록 하였다. 그러자 대빙이 경의에 제일 능통하여 50여 석()을 거듭 빼앗아 앉게 되었다는 고사이다. 후한서(後漢書)卷七十九 대빙전(戴憑傳)

 

중석몰촉(中石沒鏃)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사기(史記)卷一百九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중선(仲宣)

동한(東漢) 말기의 문장가 왕찬(王粲)의 자()이다. 난리를 피해 장안(長安)을 떠나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탁하였을 때, 실의에 잠겨 타향을 떠돌면서 고향을 생각하는 절절한 심경을 담아, 그 유명한 등루부(登樓賦)를 지었다. 그 부(), “강산이 아름다우나, 내 고향이 아니로세.”라는 구절이 있다.

 

중선금(仲宣襟)

중선(仲宣)은 삼국 시대 위() 나라 왕찬(王粲)의 자인데, 그가 일찍이 동탁(董卓)의 난리를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의탁해 있으면서 늘 고향에 돌아갈 것을 생각했던 데서 온 말이다.

 

중선등루(仲宣登樓)

삼국(三國) 시대 위() 나라 왕찬(王粲)은 자가 중선(仲宣)으로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데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 의지해 있으면서 뜻을 펴지 못하여 당양성(當陽城)의 누대에 올라 등루부(登樓賦)를 읊었다 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왕찬전(王粲傳)

 

중선루(仲宣樓)

중선(仲宣)은 삼국 시대 위() 나라 왕찬(王粲)의 자. 왕찬이 동탁(董卓)의 난()에 형주(荊州)로 피란하여 유표(劉表)에게 의지해 있을 때 강릉(江陵)의 성루(城樓)에 올라가 고향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서 진퇴위구(進退危懼)의 정을 서술하여 등루부(登樓賦)를 지은 데서 온 말이다. 문선(文選)卷十一

 

중성(中星)

이십 팔수(二十八宿)를 사방으로 분배하여 방() 마다 칠수(七宿) 씩이 되는데, 그 칠수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별을 가리킨다.

 

중성(中聖)

중주(中酒)와 같은 말인데 술의 청()은 성()이고 탁()은 현()이라 칭한다. 두보(杜甫)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含杯樂聖稱避賢의 글귀가 있는데 그 주에 보인다. 삼국 시대 위() 나라 사람 서막(徐邈)이 상서랑(尙書郞)으로 있을 때 금주령(禁酒令)이 있었는데, 막이 술을 마음껏 마시고 취하여 중성(中聖)이다.” 했다. 조조(曹操)가 듣고 성을 내자, 선우보(鮮于輔)취객들이 술이 맑은 것을 성인(聖人)이라 하고 술이 탁한 것을 현인이라 한다.” 했다는 고사가 있다.

 

중소운망서(重霄霣望舒)

망서(望舒)는 달을 모는 사람인데 보통 달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시에 霜風侵梧桐 衆葉著樹乾 空堦一片下 琤若摧琅玕 謂是夜氣滅 望舒霣其團 靑冥無依倚 飛轍危難安라는 구절이 있는데, 구슬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오동잎에 가려져 어두워진 달빛을 보며 혹시 잘못해서 달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창려집(韓昌藜集)1 秋懷詩 第九首

 

중수(中壽)

70. 회남자(淮南子)원도(原道)보통사람의 중수는 70세이다[凡人中壽七十歲].” 하였다.

 

중수(中手)

손에 잡히다. 손에 들어오다.

 

중순(仲醇)

명 나라 진계유(陳繼儒)의 자이다.

 

중승(中丞)

어사대(御史臺) 즉 사헌부 관원의 별칭이다.

 

중신(重身)

임신했다는 뜻이다.

 

중심(仲深)

명대(明代)의 문신이며 대학자인 구준(丘濬)의 자()이다.

 

중심동소락(衆心同所樂)

맹자(孟子)』 「양헤왕(梁惠王), “혼자 즐거움을 즐김이 뭇 사람과 즐거움을 즐김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임금은 뭇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같이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씨(仲氏)

남의 둘째 형의 높임말이다. 중형(仲兄; 자기의 둘째 형)

 

중아시(中阿詩)

어진 사람이 언덕에서 은둔해 있음을 읊은 것으로 시경(詩經)위풍(衛風) 고반(考槃)은둔할 집을 이룬 것이 언덕에 있으니 훌륭한 분이 편히 쉬는 곳이네, 홀로 자고 깨어 노래하지만 영원히 이대로 할 것을 맹세하네[考槃在阿 碩人之薖 獨寐寤歌 永矢弗過].”라고 하였다.

 

중앙(重陽)

하늘을 말한다.

 

중앙정색(中央正色)

황색(黃色)을 말한다. 오행(五行) 가운데 토()는 중앙에 속하며 그 색깔은 바로 황색이다.

 

중양(重陽)

99일을 말한다. 9의 숫자는 양()에 속하기 때문에 양이 중복되었다는 뜻으로 중양이라고 한 것이다.

 

중양절(重陽節)

음력 99일이다. 오행에서 9의 수를 양수(陽數)로 보는데 9월에다 9일이 겹쳤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중언부언(重言復言)

거듭한 말을 또 말한다. 똑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 한다.

 

중언축록(中原逐鹿)

중원(中原)은 중국 또는 천하를 말하며 축록은 서로 경쟁한다는 말이다. 영웅들이 다투어 천하는 얻고자 함을 뜻함

 

중역(重譯)

여러 번 통역을 거침. 지역이 워낙 멀면 여러 지방의 통역을 거쳐야만 의사가 소통되기 때문이다. 문선(文選)사마상여(司馬相如) 유파촉격(喩巴蜀檄), “강거(康居)ㆍ서역(西域)이 중역(重譯)을 거쳐서 조회를 청했다.” 하였다.

 

중연(仲淵)

박미(朴瀰)의 자()이다.

 

중연(重淵)

아주 깊은 곳을 이른다. 심연(深淵)과 같은 말이다. 땅 밑에 구연(九淵)이 있다 해서 중연이라 칭한다.

 

중영(重英)

시경(詩經)정풍(鄭風) 청인(淸人)은 군사가 국경(國境)에서 오래 돌아오지 못한 것을 읊은 시인데, 그 시에 이모중영(二矛重英)’이란 구절이 있다.

 

중오(重五)

음력 55일 즉 단오(端午)를 말한다. 중오(重午)라고도 하는데, 중은 겹친다는 뜻이다.

 

중오일(重午日)

55단오절(端午節)을 말한다.

 

중왈(重曰)

한이 다하지 못해 진술하는 경우에 쓰이는 악절의 이른다.

 

중용(中庸)

주자(朱子; 朱熹)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어지지도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일이 없는 것을 이르고, ‘평상(平常; 항상 변하지 않고 일정한 항구성)’을 말로[中者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庸平常也.], ,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고 항구성을 지니고 변함이 없는 성인(聖人)의 도가 곧 중용이라는 것이다. 중용의 은 무조건 중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이건 그때그때 누구에게나 가장 알맞고 모든 일에 가장 적절한 도리. 그것이 곧 이다. ‘은 언제 어디에나 있고 영원 불변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용은 순간적인 진리인 듯하면서도 우주의 근본이 되는 영원무궁한 진리인 것이다. 중용의 도는 가장 쉬운 길인 듯하면서도 상당한 덕()의 수양이 없이는 근처에도 가기 힘든 도인 것이다.

 

중용(中庸)

중은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이고 용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유가에서 최고의 도덕 표준으로 여김. 논어(論語)』 「옹야(雍也)중용의 도덕은 바로 가장 높은 것이다[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하였다.

 

중용(仲容)

() 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함(院咸)의 자인데, 완적(院籍)의 조카로 재주가 뛰어나고 호쾌하여 완씨 집안의 중심 인물로 칭송받았다.

 

중용수구(中庸首句)

중용(中庸)1의 첫 구절인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중용지도(中庸之道)

마땅하고 떳떳한 도리.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평범한다.

 

중울거(仲蔚居)

사람 키를 넘을 정도로 쑥대가 우거져 있으리라는 말이다. 후한(後漢) 장중울(張仲蔚)이 쑥대가 우거진 집에 몸을 숨기고 가난하게 살면서 수양했던 고사가 있다. 고사전(高士傳)장중울(張仲蔚)

 

중원(中元)

백중절(百中節)인 음력 715일을 가리킨다.

 

중원(中原)

충주(忠州)의 옛 이름이다.

 

중원록(中原鹿)

()나라 간신(姦臣) 조고(趙高)가 임금에게 사슴을 몰고 와서 말()이라 속였다. 그 뒤에 변사(辯士) 괴철(蒯徹), “진나라가 사슴을 놓쳤으매 여러 사람들이 쫓는데 발이 날랜 자가 먼저 얻는다.” 하였다. 이것은 조고(趙高)의 사슴에 관한 이야기를 인용하여 진나라가 나라를 잃은 데에 비유하였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중원축록(中原逐鹿)

중원(中原)은 중국(中國) 또는 천하(天下)를 말하며 축록(逐鹿)은 한 마리 사슴을 잡으려고 서로 경쟁한다는 말로 영웅들이 서로 다투어 제왕의 자리나 어떤 지위를 얻고자 함을 말한다.

 

중유(仲由)

중유(仲由)의 자는 자로(子路)인데 공자의 제자이다. 중유는 경솔한 한편 충직하였다.

 

중유재(仲由材)

중유는 공자의 제자로 자()는 자로(子路)이다, 취재는 취할 만한 재질을 말한다. 공자는 내가 뗏목을 타고 바다로 가려고 하는데 나를 따를 자는 중유일 것이다[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 하였다. 자로(子路)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자, 공자는 중유는 용맹을 좋아하는 것은 나보다 낫지만 취재할 것이 없다[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하였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중윤(仲胤)

김기종(金起宗)의 자()이다.

 

중은(中隱)

대은(大隱)은 도회지에 숨고 중은은 한산한 관직 속에 숨고 소은(小隱)은 산속에 숨는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하급 관직에 있는 것을 말한다. 장경집(長慶集)卷五十二 중은시(中隱詩)/ 인용: 은자의 세 가지 유형

 

소은(小隱)

중은(中隱)

대은(大隱)

산수(山水)

리은(吏隱)

성시(盛市)

 

 

중인(中人)

권세 있는 귀행자(貴幸者)를 말한다. 진서(晉書)이밀전(李密傳)이밀(李密)이 조정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마침내 한중태수(漢中太守)로 좌천되어 동당(東堂)에서 전별연(餞別宴)을 벌였는데, 무제(武帝)가 부()를 짓게 하였다. 그 부의 끝부분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연줄이 있어야 한다. ()에 잘 아는 귀행자(中人)가 없으면 초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하나, 훌륭한 임금이 위에 있으니 이 말이 어찌 사실이랴하였다.” 했다.

 

중인환시(衆人環視)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본다는 말이다.

 

중일(中日)

사흘 중의 가운데 날의 뜻이다. 간지(干支)에 인()ㆍ신()ㆍ사()ㆍ해()가 드는 날을 초일(初日)이라 하고 자()ㆍ오()ㆍ묘()ㆍ유()가 드는 날을 중일이라 하고 진()ㆍ술()ㆍ축()ㆍ미()가 드는 날을 종일(終日)이라 하며, 군문(軍門)에서 초일에는 연습하고 중일에는 시사(試射)한다는 등 규례를 둔다. , 중일시사(中日試射) 등에서 입격(入格)한 자에게는 직부전시(直赴殿試) 등 상주는 규례가 있다.

 

중임석(重任石)

큰 돌을 지다라는 말이다.

 

중자아(仲子鵝)

중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의 청렴하기로 이름난 진중자(陳仲子)인데 그의 형님 집에서 거위 고기를 먹다가 그것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예물로 받은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가 토해 버렸다 한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중장원(仲長園)

후한(後漢)의 명사(名士) 중장통(仲長統)의 원림(園林)으로, 오준(吳竣)의 정원을 가리킨다. 중장통이 자기의 원림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심경을 읊은 낙지론(樂志論)’이라는 짧은 글이 유명하다. 벼슬로 부를 때마다 병을 핑계대곤 하였는데, 일찍이 그의 뜻을 밝히기를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시내를 굽어보는 곳, 도랑을 파 주위를 두르고 대숲이 에워싼 그곳이면 사체(四體)를 편히 쉬면서 우주 밖으로 나가 노닐 수가 있으니, 어찌 제왕의 문에 들어가는 것을 부러워하랴.”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중장통전(仲長統傳)

 

중정인의공(中正仁義功)

()은 도리에 알맞게 하는 것으로 예()를 바꾸어 쓴 것이며, ()은 바르게 하는 것으로 지()를 바꾸어 쓴 것이며, 사람의 극()은 인간의 도리에 가장 알맞은 법칙으로 지선(至善)과 같은 뜻이라 한다.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태극도(太極圖)성인은 중정과 인의로 정하되 정 공부(靜工夫)를 주장하여 사람의 극을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하였으므로 이 글을 인용한 것이다.

 

중조(仲詔)

명 나라 미만종(米萬鍾)의 자. 돌을 몹시 좋아하여 별호(別號)를 우석(友石)이라 하였다.

 

중주(中州)

물속에 있는 작은 섬이라고도 함

송 나라를 가리킨다.

 

중주(中酒)

술이 반쯤 취한다. 사기(史記)』 「번역등관열전(樊酈滕灌列傳), “項羽旣饗軍士 中酒 亞父謀欲殺沛公이라고 한 데 보인다.

 

중지완재목(中坻宛在目)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시경(詩經)진풍(秦風) 겸가(蒹葭)……저기 저 사람이 물가에 분명 있도다. 물길 따라 좇아가려 하나 모래톱에 완연히 보이네[所謂伊人 在水之湄 遡游從之 宛在水中坻].” 한 데서 온 말이다.

 

중채현주록(衆綵絢朱綠)

() 나라 때 4, 5품의 벼슬아치는 주색(朱色)의 관복을, 6품 이하는 녹색의 관복을 입은 데서 연유한 것으로 벼슬아치를 말한다.

 

중천(重泉)

지명으로, ‘걸이 탕왕을 잡아둔 곳이다.

 

중천뢰(中天籟)

천둥소리는 크게 깨우침을 말한다.

 

중천액(中天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과 같은 전성기(全盛期)를 지나면 일단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필연적인 운명.

 

중초탁고계(衆草擢孤桂)

() 나라 극선(郤詵)이 천하 제일의 대책문으로 과거에 급제한 뒤 계수나무 숲 속의 가지 하나요, 곤륜산의 한 조각 옥돌이다[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라고 자칭한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52 극선열전(郤詵列傳)

 

중추(中樞)

중추원을 말한다. 중추원은 고려 때 왕명(王命)의 출납과 숙위(宿衛)ㆍ군기(軍機) 등의 일을 맡던 관아. 밀직사(密直司) 혹은 추밀원(樞密院)으로 고친 때도 있었다.

 

중춘(仲春)

음력 2

 

중충좌(重虫坐)

충사(虫絲)가 겹겹이 쌓인 누추한 자리를 말한다. () 나라 유장경(劉長卿)의 숙쌍봉사시(宿雙峯寺詩)적막한 선송의 자리엔 방 가득히 충사가 얽혀 있네[寥寥禪誦處 滿室虫絲結].”하였고, 유신(庾信)의 시에는 충사가 정히 몇 겹이던고[虫絲定幾重]”하였다.

 

중취군혼(衆醉群昏)

중취군혼은 세상이 온통 술에 취한 듯 혼탁하기 그지없다는 말로, 세상을 굳이 탓할 게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 나라 굴원(屈原)어부사(漁父辭), “혼탁한 세상 속에서 나 홀로 깨끗하고 취한 세상 사람 속에서 나 홀로 깨어 있기 때문에 쫓겨났다.”는 굴원의 말에 대해, “세상이 모두 혼탁하면 왜 진흙탕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고,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으면 왜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를 마시려 하지 않는 것인가.” 하고 어부(漁父)가 힐책하고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되리.”라는 노래를 뱃전을 치고 부르면서 떠나갔다는 내용이 전한다.

 

중취독성(衆醉獨醒)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고 있지만 혼자 깨끗한 삶을 산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중표(中表)

내외종(內外從) 사촌을 말한다.

 

중행(重行)

자꾸 가다.

 

중향성(衆香城)

유마힐경(維摩詰經) () 향적불품(香積佛品) 10이름이 중향이란 나라가 있는데 불호(佛號)는 향적(香積)이라 한다.”에서 나온 것으로 흔히 온갖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곳을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그 뜻이 자세치 않다.

 

중현(重玄)

()의 차원을 말한다. 도덕경(道德經)1도는 현묘한 중에서도 더욱 현묘하여 만물이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玄之又玄 衆妙之門]”라고 하였다. 이것을 중현(重玄)이라 한다. 현묘(玄妙)한 이치란 말이다.

 

중형(仲兄)

자기의 둘째 형. 중씨(仲氏; 남의 둘째 형)

 

중화(中和)

중은 희로애락이 발동하지 않은 것이고, 화는 그것이 발동하여 모두 절조에 맞는 것이다. 중용(中庸)首章

성정(性情)의 덕()으로, 마음이 정()했을 때 존양(存養) 공부를 잘하는 것을 중(), 마음이 동()했을 때 성찰(省察) 공부를 잘하는 것을 화()라 한다. 중용(中庸)중화를 극진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있고 만물이 생육된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주자(朱子)내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발라지고 내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도 순해진다.” 하였다.

성정(性情)의 덕()으로, () 공부를 잘하여 마음을 미발(未發) 상태로 유지해서 성()의 덕을 함양(涵養)하는 것을 중(), 마음이 발하여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고 하며, 위육(位育)천지위언 만물육언(天地位焉 萬物育焉)’의 준말로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게 되고 만물이 화육된다.’는 뜻인데 이것은 곧 중화를 어김없이 잘 해나간 데서 오는 공효이다.

천지 만물이 각자 제 살 곳을 얻어 서로 화합하는 경지를 말한다.

 

중화(重華)

() 임금의 이름인데, 전하여 성왕(聖王)의 뜻으로 쓴다.

 

중화계방훈(重華繼放勳)

중화는 순() 임금의 이름이고, 방훈(放勳)은 요() 임금을 일컫는 말이다. 순 임금이 요 임금을 이어 천자가 되어서,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어진이들을 항상 들어오게 하고, 사방으로 눈을 밝혀 견식을 넓혔다는 고사이다. 서경(書經)』 「요전(舜典)

 

중화대지(重華大智)

맹자(孟子), “()은 큰 지혜(大智)이다.” 하였다. 서경(書經)

 

중화송(中和頌)

중화(中和)는 정치가 화평하게 됨을 뜻한 것이고, 왕포(王褒)가 일찍이 중화송을 지었다.

 

중화악(中和樂)

() 나라 때 소의군 절도사(昭義軍節度使) 왕건휴(王虔休)가 지은 악곡(樂曲)이다.

 

중화오현(重華五絃)

중화(重華)는 순 임금의 이름이고 오현금은 다섯 줄짜리 거문고이다. 순 임금이 오현금을 타며 남풍의 시를 노래하니 천하가 다스려졌다고 한다. 사략(史略)1 제순유우씨(帝舜有虞氏)

 

중화요제여(重華堯帝如)

() 임금의 훌륭한 덕이 요와 같았으므로 요의 선위(禪位)를 받아 천자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서경(書經)순전(舜傳)옛 제순(帝舜)을 상고해 보니 중화(重華)가 요 임금에 합하시니, 깊고 지혜로우며 문채롭고 밝으시며 온순하고 공손하며 미덥고 독실하여 그윽한 덕이 위에 있는 요 임금에게 들리자, 이에 천자의 지위를 명하셨다[曰若稽古帝舜 曰重華協于帝 濬哲文明 溫恭允塞 玄德升聞 乃命以位].”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중화절(中和節)

1월 그믐날이었는데 당 덕종(唐德宗)때 재상 이필(李泌)의 건의에 따라 2월 초하루로 정해졌으며, 이날 민간에서는 푸른 주머니에 오곡백과의 종자를 담아 서로 주고받았고 농촌에서는 의춘주(宜春酒)를 빚어 구망신(句芒神)에 제사를 지내 풍년을 기원하였으며 백관은 천자에게 농서(農書)를 바쳤다고 한다.

 

중화척(中和尺)

중국 조정에서 중화절인 음력 2월 초하룻날 천자가 대신과 외척들에게 내려주었던 잣대이다.

 

중훼(仲虺)

상서(商書)에 중훼지고(仲虺之誥)란 편()이 있다.

 

중흥사(中興寺)

서울 삼각산 노적봉 남쪽에 있던 절인데, 본디 중흥사(重興寺)라 표기한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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