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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해제 2. 똥 누기와 중용적 삶 善讀者, 玩索而有得焉, 則終身用之, 有不能盡者矣.” 잘 읽는 사람이 완색하여 얻음이 있으면 죽을 때까지 그것을 써도 다할 수 없는 바가 있는 것이다. 중국말의 선(善)이라는 말은 누누이 얘기했듯이 서양말의 ‘굿(good)’이 아니고 ‘웰(well)’과 같은 말로 무엇을 잘한다는 뜻이고, 완색(玩索)의 완(玩)은 ‘가지고 논다’는 뜻입니다. 장난감을 완구라고 하듯이 문장도 맛이 있으니까 갖고 놀아야 됩니다. 여자의 몸처럼 요기조기 만지고 살피면서 음미하면 그 맛이 무궁무진하다는 거죠. 제대로 읽은 사람은 그렇게 리얼하게 느끼고 얻는 게 있죠. 이것이 실학입니다. 종신(終身)은 죽을 때까지라는 뜻인데, 중국 사람들은 결혼을 일컬어서 죽을 때까지 치루는 일 가운데서 가장 큰 일..
3. 네이춰(Nature)와 너춰(Nurture) 『도덕경(道德經)』을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합본이라고 한다면 『중용(中庸)』도 『중용경(中庸經)』과 『성경(誠經)』의 합본이라고 할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중용(中庸)』이라는 텍스트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이 공관4복음의 전승에 양식사학(Formsgeschichte)이라는 궁켈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비신화화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했듯이 『중용(中庸)』이라는 고전도 일차적으로 양식에 따라 분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중용(中庸)』 제1장의 특수성을 이러한 전체적 텍스트의 이해 위에서 조감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성(性)과 습(習) 지난 시간에 소개 했던 『프로이디안 프..
저자 2. 자사가 지을 수가 없다 『중용(中庸)』의 단행본화는 주희 이전에 이미 있었다 사서(四書) 이전에 『중용(中庸)』이 『예기(禮記)』에 있었다는 것과 따로 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어떠한 점이 다를까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중용(中庸)』에 대한 별도의 주석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 『예기(禮記)』에 주석을 할 적에 『중용(中庸)』에 관한 것이 예기 중의 일부분으로는 있을 수 있어도 독립적인 주석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논어(論語)』는 한나라 때부터 계속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주석이 축적되어왔지만 『중용(中庸)』은 비교적 주석이 없어요. 『중용(中庸)』은 주자가 맨 처음으로 끄집어낸 것은 아니고 이미 주자 이전에도 단독본으로 조금씩 유명해지기는 했습니다. 『수서(隋書)..
서설 9. 주희의 사서운동(四書運動) 주희, 「대학」과 「중용」을 장구화하다 그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잘못되어가는 문명을 바로잡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 문명을 만들어야겠다는 근본적인 걱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응방법으로 아주 강력한 윤리주의를 들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중용(中庸)』의 첫머리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주자가 이것저것 고민하면서 십삼경(十三經)을 들여다보다가 『예기』 31장에 있는 『중용(中庸)』의 첫머리를 보고 쇼크를 받은 거예요. 하늘(Heven)이 명령하는 것, 그것이 성(性)이라는 거예요. 이때 주자의 눈에 들어온 성(性)이란 것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moral nature)입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도덕성을 이미 부여했..
서설 8. 안타깝게 송나라를 바라보던 주희의 눈망울 송나라에서 적폐로 인식된 불교 그러나 침투한 문명 중 핵심적인 것은 불교였고 그것이 중국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교이든지 방식이 다를 뿐, 결국 그 주제는 ‘구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그 구원의 방식이 문명으로부터의 벗어남인 해탈(解脫, enlightenment)이라고 주장합니다. 불교가 말하는 해탈이라는 것은, 인간세의 모든 것이 고(苦, 一切皆苦)이고 그 고(苦)는 집착[執]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고(苦)’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세의 일에 대한 집착을 끊는[滅執]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라는 것은 윤리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버린다(transethical)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리적..
서설 3. 인간 세계를 이루는 두 축, 예(禮)와 악(樂)② ▲ 사람은 군집하여,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야 하기에, 예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여타 동물과 다른 존재로 발돋움하게 하는 악(樂) 인간은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진 동물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물은 추위가 오면 잎이 떨어져야지 안 떨어지겠다고 폼 잡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식물은 자유의지가 없어요. 자연의 변화에 대해서 그대로 반응(Reaction)을 하는 겁니다. 소나무도 독야청청(獨也靑靑)한다고 하지만 성격이 다를 뿐 변화를 그대로 다 받아요. 추우면 추운데 따라서 거기에 맞게 조절(adjust)을 합니다. 나무를 잘라보면 나이테라는 것이 있는데 추울 때 성장한 부분과 더울 때 성..
나의 길을 걷다가 중용의 길과 마주치다 길이 있다. 그 누구도 걸어간 적이 없는 길과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반들반들 닦여진 길. 어느 길로 가든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는 있을 것이다. 모든 길은 이어지고 통한다는 걸 아니까. 단지 시간이 많이 걸리느냐, 조금 걸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차이라는 게 근시안적으로 보면 거창한 것처럼 보일 테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닌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삶이든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말이다. 더욱이 그렇게 나만의 길을 만들며 돌아가는 것이 그 자신에게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르고,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인생의 다른 의미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 고로, 어느 길을 선택하건 그건 곧 자신의 길이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씀. 이쯤 되면, ..
단재학교 성내동에서 송파동으로 이전하다 목차 1. 강동 단재학교의 모습 강동 성내동 학교의 모습 터전 이전하다 2. 터전 이전의 의미 기회주의여선 안 된다 위기는 기회? 적극적인 고민, 그리고 행동 3. 터전 이전 일지와 사족 터전 이전 일지 이전 전날의 마음 송파동 단재학교 전경 인용 목차
3. 터전 이전 일지와 사족 터전 이전 일지 4월 21일: 학교 터전을 옮기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다. 학교 운영 위원회 위원들도 적극적으로 찬성의사를 표현했고, 주변에 괜찮은 공간이 있는지 알아봐주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다. 4월 30일: 송파동에 다녀가다. 1층과 2층이 통으로 묶여 있는 구조이며 방 또한 여러 개가 있어서 학교로 쓰기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주변이 주택가라, 학교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민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심이 들었다. ▲ 주택 밀집 지역에 위치해 있다. 당연히 일반주택이니 그럴 수밖에. 5월 23일: 학부모 임시회의에서 주요 의제로 터전 이전 문제를 다루다. 거의 모든 학부모의 동의를 얻었고, 기정사실화 되다. 5월 28일: 송파동으로의 이전이 ..
2. 터전 이전의 의미 학교 터전 이전이 주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과연 나에게는 어떠한 의미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 우물 속에 산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우물과 같은 협소한 의식 구조가 된다는 게 문제다. 기회주의여선 안 된다 군자는 그 자리에 처하여 그 자리에 합당한 행동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자리를 벗어난 환상적 그 무엇에 욕심내지 않는다.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에 합당한 대로 도를 행하며, 빈천에 처해서는 빈천에 합당한 대로 도를 행하며, 이적에 처해서는 이적에 합당한 대로 도를 행하며, 환난에 처해서는 합당한 대로 도를 행한다.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스스로 얻지 못함이 없다. -『중용』 14, 해석: 김용옥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
1. 강동 단재학교의 모습 단재학교를 알게 된 것은 2011년 8월 30일이었다. 「한겨레 신문」 광고판에 난 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냈고, 면접을 보러 오게 된 것이다. 9월 6일에 둔촌역에서 내려 성내동 학교에 도착했다. 그땐 3층에 학교가 있었고 1층엔 ‘단재카페’가 있던 때였다. 그 날의 면접은 1층에서 진행되었기에 단재학교를 볼 수는 없었다. 면접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사전 미팅을 위해 다시 단재학교를 찾은 것은 15일이었다. 3층에 올라가 상담실로 들어가며 단재학교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 신문에서 모집공고를 봤고 단재학교에 왔다. 성내동 학교엔 나의 시작이 스며있다. 강동 성내동 학교의 모습 성내동 단재학교는 두울빌딩 3층에 자리하고 있다. 3층엔 이화메디컬이라는 사무..
천리포수목원 여행 목차 1. 천리포수목원과 한 사람의 의지 이번 여행의 특이점 한 사람의 의지가 지역을 바꾼다 - 천리포 수목원 2. 왜 하는지 모르는 경험이 우릴 키운다 남의 시선이 만든 조바심, 그게 우릴 불안하게 만든다 22일의 일정과 마무리 왜 하는지 모르는 경험, 예측불가의 경험이 아이를 키운다 인용 여행
2. 왜 하는지 모르는 경험이 우릴 키운다 숙소에 들어와선 아이들은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부모님들과 교사들은 그 옆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도와줄 일은 없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만든 음식은 생각 이상으로 맛있었고 푸짐했다. 맛있게 먹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이야기꽃을 활짝 피우며 토요일의 저녁을 함께 보냈다. ▲ 우리가 묵게 된 생태 교육원 숙소. 이래저래 공간도 맘에 들고 취사시설도 맘에 들었다. 남의 시선이 만든 조바심, 그게 우릴 불안하게 만든다 새벽 2시까지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기에 그걸 다 기록하진 않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부모님들 근심의 핵심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은 어떻더라’라는 이야기를 수시로 들으..
1. 천리포수목원과 한 사람의 의지 학생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학부모와 함께 여행을 간 적은 있어도 모두 함께 여행을 간 적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에 여행을 간다며, 친구들끼리가 아닌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며 불만이 많았지만, 어느 것이든 생각으로 할 때와 막상 경험을 해보고 난 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하기도 전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들보다 무언가 끝나고 난 후의 감상이 더 중요한 법이다. 여행 안내 21일(토) 22일(일) 시간 일정 시간 일정 10:20 남부터미널 집합 7:00 밀러의 정원 산책 10:40 버스 출발 ~9:00 아침식사 및 뒷정리(교육원 주방에서 팀별 조리) 13:40 만리포 도착 ~12:00 천리포 해변에서 놀기 ~14:40 점심(해물칼국수) ~1..
목차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나에게 던진 겨울방학 숙제 미완의 숙제, 그리고 새로운 숙제 동섭쌤의 강의가 던진 숙제 2. 겨울방학에 받은 두 번째 과제, 우물 안 개구리 공교육 교사들이 던진 숙제 2016년은 지적폐활량을 키우는 해 3. 개학여행 그리고 자나 깨나 동파조심 1월 마지막 주에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동파되다 4.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는 스키여행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여행을 떠나다 백양리역에서 가방을 놓고 내린 사연 깔끔한 숙소, 하지만 비싼 음식 가격 5. 장갑사건과 스키복장에 관해 장갑이 없으시다구요? 우리에겐 양말이 있잖아요~ 스키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실력에 따른 복장이 있을 뿐 6. 도전엔..
17. 흔들리되 방향성이 있는 사람으로 이제부턴 출발하며 썼던 ‘뜨거운 물이 졸졸 흐를 수 있도록 틀어놓고 나왔다. 이 작은 행동이 큰 사건을 빚어냈으니’가 무슨 사건인지 밝히도록 하겠다. 날이 어제 오후부터 대폭 풀렸기에 포근한 기운을 느끼며 집으로 간다. ‘과연 온수는 나올까?’하는 기대를 하며 빠른 속도로 걸어서 집에 간 것이다. ▲ 2박 3일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이제 각자의 공간으로 간다. 겨울엔 자나 깨나 수도의 물조심 그런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났고 앞엔 수증기가 자욱했다. 순간 평소의 집과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 화들짝 놀랐고, 무슨 일인가 싶어 상황판단을 하려 했다. 그랬더니 해동이 되면서 온수가 나오기 시작했고 온수가 나오며 바깥과의 온도차이로 인해 수증기가 발생하..
16. 여행이 끝나갈 땐 늘 아쉽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언제나 아쉽다. 어제는 스키를 타느라 힘들어서 재밌게 놀지 못했으니, 오늘만큼은 마지막 저녁을 불살라도 된다. 준영이는 야간 스키를 타고 싶다고 말했기에, 승태쌤은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줬다. 야간 스키를 타던지, 노래방을 가던지 하는 것으로 말이다. ▲ 노래를 열창 중인 현세와 지훈이. 노래를 사랑하는 아이들이니 4시간이 금방 지나갔을 것이다. 둘째 날 저녁의 아쉬움 그러자 아이들은 한참 생각하는 듯하더니, 준영이와 기태는 야간 스키를 타는 것으로, 그 외 나머지는 노래방에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내심 민석이도 야간 스키를 탈 생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훈이가 스키를 탈 생각이 없자 마음을 접은 듯했다. 스키팀은 12시까지 타고 돌아왔고, 노래팀은..
15. 그래 우리 한 걸음씩만 나가보자 현세의 “저는 앞으로 살면서 몸 쓰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요”라는 발언은 어찌 보면 ‘못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 또한 청소년 시절엔 몸치라고 생각해서 웬만하면 운동을 하지 않으려 했다. ‘운동엔 잼병’이라 나 자신을 규정해 놓으니, 무얼 하든 빠지기 쉬웠고 그에 따라 별로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 저녁은 제육덮밥이었다. 보드와 씨름을 한 바탕 하고 먹는 것이라, 완전 꿀맛이더라. 부족하기 때문에 안 하면, 영영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나 자신을 틀지어 놓으니, 그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안주하게 되더라. 어찌 보면 사람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한계를 넘어서면 더 높은 시좌를 얻게 되기도 하는데 그런 걸 모두 거부했..
14. 현세의 도전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민석이에겐 책임감과 함께 인내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오전 회의시간에 보인 반응은 오히려 ‘이기적이더구만’이라 오해할 만한 구석도 있었다. ▲ 오전 회의 시간의 반응은 어찌 보면 그 자리에 멈추지 말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봉사활동에 대한 반응으로 민석이를 보다 2016학년도 단재학교의 일정을 공유하며 매달 두 번씩 봉사활동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민석이가 대번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너무 자주 한다는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 민석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처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처럼 민석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으면 그..
13. 민석이의 도전 보드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라질라치면 몸이 먼저 긴장하여 알아서 넘어질 준비를 한다. 아무 준비가 없이 넘어지는 것보다 넘어질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한 후 넘어지는 게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특히 토엣지는 뒤돌아 있는 상태이기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절로 겁이 난다. 그땐 오히려 넘어질 것을 대비하여 몸이 한껏 긴장되다보니, 맘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때론 과감히 몸을 움직여 기술을 쓸 수 있어야 ‘아 이런 식으로 하니깐 훨씬 쉽다’고 깨달을 수 있을 텐데, 미리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럴 기회가 없다. 나는 지금 용기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다. 나의 씨름과 별개로 초보코스에서는 두 명의 사내가 각자의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분명히 둘은 함께 스키를 ..
12. 두 번째 보드 도전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강습을 받으러 온 학생들을 본다. 먼저 강사가 시범을 보이면 그것에 따라 아이들은 하나씩 연습을 하며 내려가는 것이다. 강사는 아주 느린 속도로 양팔을 벌려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다가, 서서히 팔을 90도 가량 돌리며 보드의 방향을 전환하며 내려온다. ▲ 보드를 배우러 앉아 있는 사람들. 배우려는 마음이 예쁘다. 바보는 빠름을 추구하고, 실력자는 완급조절을 추구한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초급코스라 해도 경사가 꽤 되었기에 천천히 내려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강사는 꼭 슬로우비디오를 찍듯 아주 느린 속도로 자연스럽게 턴을 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주 느린 속도’라는 거였다. 어떻게 저 경사에서 저런 속도를 낼 수..
11. 두 번째로 보드를 타는 이의 각오 2시간이 넘도록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허기가 몰려온다. 점심은 떡만두라면이다. 물론 어제 저녁이었던 카레와, 아침이었던 볶음밥이 남아 있으니 배부르지 않는 사람은 그걸 먹어도 된다. 밥을 먹는 동안 눈은 거의 그쳤다. 스키장에서 눈을 본다는 건 또 다른 흥취를 불러 일으켰다. 참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들이다. ▲ 떡만두라면을 먹는 아이들. 두 번째 하면 어찌 되었든 첫 번째보다는 익숙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키를 타러 가면 된다. 어제 아주 기초적인 부분을 익히고 나니, 본격적으로 어떻게 타야 하는지 궁금해지더라. 그래서 기태와 함께 보드 타는 동영상을 찾아봤다. 거기엔 이미 많은 영상들이 있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보고 올 것을’하는 후회도 들..
10. 치열한 토론의 순간, 우린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그런데 결과는 어차피 ‘실패’이기에 보통 ‘역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맡기면 그건 실패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더욱 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실패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라고 결론 내리기 십상이다. ▲ 2월 3일에 열심히 회의를 하고 잠시 쉬는 모습.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만들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자유를 누려봐야 누릴 줄 안다 실패의 경험보다 계속된 성공의 경험을 통해 아이가 자신감을 얻고 더 나은 조건에서 자신의 꿈을 찾도록 하자는 논의가 바로 이런 생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처럼 ‘돼지엄마’가 극성을 부리고, ‘엄마=학습 매니저’가 각광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를 부모의 욕망을 대리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
9. 4년 만에 다시 시작된 교사 없는 학교 오전엔 2016학년도 학사일정, 2월 한 달 동안 진행될 ‘교사 없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엔 스키를 타러 간다. 이런 상황이니 한껏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8시에 일어나기로 했기에 7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준비를 했다. 기태가 덥다며 창문을 열어놓고 자서, 찬바람이 그대로 얼굴을 닿아 설잠을 자야 했다. 아침밥은 볶음밥과 미역국이다. 아이들이 8시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초이쌤은 일찍 일어나셔서 준비를 해줬다. 아침을 먹고 아이들이 씻을 동안 잠시 쉰 다음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 하는 현세. 2016년 학사일정, 예술과목에서의 선택 올해 변화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다양한 예술 활동을 ..
8. 처음 보드를 타며 速成의 문제점을 간파하다 보드를 슈즈에 연결하니 몸은 더욱 더 굳어져 간다. 두 발이 족쇄에 묶여 자유라도 박탈당한 마냥 힘겹게만 느껴지니 말이다. ▲ 보면 어렵게 생겼는데, 두 개의 끈만 꽉 조이면 된다. 생각보다 쉽고 편하게 되어 있다. 보드에서 일어서기 부츠를 보드에 연결할 땐 두 끈을 바짝 조이면 된다. 앵글버클과 토우버클을 당기면 꽉 조여지고, 그 안의 작은 버튼을 누르면 풀리는 형식이다. 물론 이건 빌린 부츠이기에 간혹 고장 난 것들도 있어 쉽게 풀어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번 보드에 연결했다 풀었다를 반복해보니,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알겠더라. 역시 모든 건 시행착오를 겪으며 몸으로 익혀야 한다. 이제 보드도 연결이 되었겠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기만 하면 ..
7. 몸이란 타자와 소통하기 이제 본격적으로 보드 타기에 도전해야 한다. 스키를 타는 아이들은 초급코스로 갔고 보드를 타는 아이들(기태, 현세, 나)은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해야 했기에 연습코스로 왔다. 아주 완만한 언덕을 보드를 들고 올라간다. 보드슈즈를 보드에 묶고 푸는 방법도, 보드에서 일어서는 방법도 하나도 모르는 생초보 둘을 이끌고 기태가 앞장서서 간다. ▲ 식당에서 바라보이는 스키장의 모습. 저긴 급경사여서 그런지 탈 수 있는 곳은 아니더라. 육체는 타자이기에 지배하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몸이야말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연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연물을 대할 때 지성이 비로소 발동되는 것이죠”라는 우치다쌤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까진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
6. 도전엔 늘 불안이 따른다 5년 전엔 모두 스키를 타는 분위기였기에 당연히 스키를 탔다. 그리고 스키를 타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보드는 좀 더 실력이 쌓여야 탈 수 있다고 한다. 스키는 두 발이 자유롭기 때문에 오히려 컨트롤하기 쉽지만, 보드는 두 발을 동시에 붙여야 하기 때문에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서기도 힘들고 이동도 힘들다는 것이다. 겨우 스키장에 두 번 와봤기 때문에 보드를 탄다는 건 언감생심이라 생각했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는 꼴’이라고만 생각해서 이때도 스키를 타려 했다. 두 번째 스키장 방문에 보드를 타게 된 사연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여러 사람에게 똑같은 얘기를 들으면 갈등하게 마련이다. 한 사람에게 듣는 거야 ‘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나 보다’ 정도로 생각..
5. 장갑사건과 스키복장에 관해 여는 글에서 밝혔다시피 겨울방학 동안에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받으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개학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온 것이다. 아이들에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이 날엔 처음으로 보드를 타기에 두렵기도 기대되기도 하는 등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 숙소에서 잠시 쉬며 티비를 보는 아이들. 장갑이 없으시다구요? 우리에겐 양말이 있잖아요~ 점심을 먹고 다시 숙소에 올라와 스키 탈 준비를 했다. 스키복을 가져온 아이들이 있기에 스키복을 입고 모이기로 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 생소하다 보니,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민석이는 스키복을 챙겨서 입기 시작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빌릴 ..
4. 한파가 찾아온 날 떠나는 스키여행 9시 30분에 왕십리역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민이는 같이 가자고 카톡을 보내왔지만, 정훈이는 이번엔 혼자 가고 싶은지 아무런 반응도 없더라. ▲ 꽁꽁 얼어붙은 북한강의 모습. 이런 모습 처음이야. 올겨울 최악의 한파가 찾아온 날 여행을 떠나다 9시 15분쯤 왕십리역에 도착했지만 모이는 장소가 ‘1번 출구 지하’로 명시되어 있기에 중앙선 환승통로로 가지 못하고 1번 출구 앞에서 서성 거려야 했다. 혹시나 빨리 와서 개찰구를 빠져나가 기다리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민이는 “왜 2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이렇게 기다려야 해요?”라며 불멘소리를 하지만, 서로 동선이 엉켜서 시간이 지체되는 것보단 나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늦지 않고 제 시간에 ..
3. 개학여행 그리고 자나 깨나 동파조심 올해엔 특별하게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원래는 단재학교도 제도권 학교와 같이 3월에 개학했지만, 한 달 정도 워밍업을 하자는 의미로 2013년부터는 2월에 개학하고 있다. ▲ 이번 여행의 모든 계획은 승태쌤이 짰고, 초이쌤이 식단을 짰다. 1월 마지막 주에 개학과 동시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 그런데 올핸 2월도 아니고 1월 마지막 주에 개학하는 것이니, ‘그러다 아예 방학 자체가 없어지는 거 아니야?’라고 의아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개학이 앞당겨지게 된 데엔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 설날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올해의 경우 설이 2월 둘째 주에 있기에 2월에 개학하여 조금 학교생활이 적응될 만하면, 다시 쉬게 되어 어중간한 느낌이 있기 때문..
2. 겨울방학에 받은 두 번째 과제, 우물 안 개구리 한 때는 공교육 교사를 꿈꾸다가 그게 좌절되자, 출판사 편집자가 되기 위해 준비했었다. 그러다 운 좋게 대안학교인 단재학교에 교사로 오게 되면서 다시 교육자의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이다. ▲ 학교에 들어와서 있으니 여러 교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공교육 교사들이 던진 숙제 ‘군자는 그 자리에 처하여 그 자리에 합당한 행동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자리를 벗어난 환상적 그 무엇에 욕심내지 않는다(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중용』 14장’라는 인용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생각도 달라지고 고정된다. 지금은 교사이기에 교육에 대해, 배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2016년 1월 25일은 단재학교의 겨울방학이 끝나고 2016학년도 1학기가 시작되던 날이다. 한 달여의 아쉬운 겨울방학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 올겨울은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고, 남부지방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그 기간동안 난 뭘 했지? 나에게 던진 겨울방학 숙제 방학이 시작 될 때만 해도,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생각은 많았지만 막상 시작되면 별 것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어렸을 때 방학계획표를 짤 때의 모습도 딱 이랬다. 계획표를 짠다고 거의 하루를 다 보내곤 했었는데, 야심차게 24시간을 시간대별로 나누어 배치했다. 그 중 단연 ‘공부’에 제일 많은 시간을 할당했고 자는 시간은 11시, 일어나는 시간은 6시로 정할 정도로 ‘..
1. 나의 역사가 스민 부안을 교사가 되어 다시 찾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2학기부터 새롭게 합류한 학생은 두 명이다. 준영이와 태기가 바로 그들인데, 준영이는 단재학교에서 첫 번째 여행을 하는 셈이고 태기는 1학기 마무리 여행인 가평 여행을 함께 했기에 두 번째 여행을 하는 셈이다. 이번 여행엔 아쉽게도 이향이가 대입 수시 준비로 빠졌고, 상현이는 개인 사정으로 빠져 9명의 학생과 3명의 교사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 고속터미널에서 출발한다. 1975년에 건설되었으니 40년이 흘렀다. 그 땐 어마어마한 규모였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하철을 타고 갈까, 자전거를 타고 갈까 8시 50분까지 고속터미널역 7번 출구 쪽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훈이와 지민이는 아직 지하철 타는 것이..
8. 살아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공부다 ‘독립출판’이란 생소한 개념어를 듣고 막무가내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마지막 강의만을 남겨두게 됐다. 7월의 땡볕 더위 속에 시작된 강의는 7월의 마지막과 함께 마지막을 고한 것이다. 역시 뭐든지 시작하고 보면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며, 그 시간만큼 배우게 된다. ▲ 학교에서 센터로 가는 길. 7월은 덥고 습했지만, 그만큼 가슴은 뜨거웠고 열정은 타올랐다. 신나게 한바탕 잘 공부했다 이때 배우는 게 단순히 강사가 전해준 지식적인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배운다는 건 단순히 모르던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강의를 듣는 시간은 소통하는 시간이자, 인연이 엮이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고, 그건 곧 공부하는 시간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