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 현
현가(絃歌)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는 것으로, 전하여 학문을 부지런히 하는 것을 말한다.
현가(絃歌)
현악(絃樂)에 맞추어 노래 부른다는 뜻으로, 정사를 함에 있어서 법도가 있어 백성들이 안락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노(魯) 나라 때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예악(禮樂)으로 가르쳤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모두 현가하였다고 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현가락(絃歌樂)
어려움 속에서도 예악(禮樂)을 견지하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재액(在厄)」에 “외부와 두절된 상태에서 이레나 양식이 떨어지고 채소국도 충분히 먹지 못해 종자(從者)들이 모두 괴로워했는데도 공자(孔子)만은 더욱 강개하여 강송하며 현가(絃歌)를 끊이지 않았다[外無所通, 藜羹不充, 從者皆病孔子愈慷慨, 講絃歌不衰].” 하였다.
현가무성(絃歌武城)
조그마한 고을 수령의 어진 정사를 말한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원으로 있을 때에 공자가 갔더니, 고을에 현가(絃歌)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 공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닭을 잡는 데에 어찌하여 소 잡는 칼을 쓰느냐.”고 농담을 한 고사가 있다. 학교를 설치하고 교육을 시키는 데 예와 악(禮樂)을 가르치므로 줄을 퉁기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현가지(弦歌志)
세상을 예악(禮樂)으로 다스리려는 뜻을 이른다. 일찍이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원이 되었을 때 공자(孔子)가 그곳을 가니 현가의 소리가 들렸다는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현가지호성(絃歌至虎城)
현가는 거문고나 비파 등으로 시나 노래를 읊는 것이며 호성(虎城)은 무성(武城)으로 고려 혜종(惠宗)의 이름을 휘(諱)한 것이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유(子游)가 무성의 원이 되었었는데 공자가 그 고을에 가자, 곳곳에서 현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공자는 자유가 예악(禮樂)으로 고을을 다스린다 하여 매우 기뻐한 일이 있었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현각(顯刻)
비문(碑文)을 뜻하는 말이다. / 인용: 忠州石(권필)
현감(玄鑑)
깊은 견해, 임금.
현개경(玄介卿)
거북 또는 귀갑(龜甲)을 지칭하는 말로, 장수(長壽)를 말한다.
현거(懸車)
① 현거속마(懸車束馬)의 준말로, 험난한 역정(歷程)을 말한다.
② 수레를 달아매고 다시 출세하지 않을 뜻을 보인다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에 “진식(陳寔)이 여러 번 부름을 입고도 나서지 않음과 동시에 문을 닫고 수레를 매달았다[陳寔屢徵不起閉門懸車].” 하였다.
③ 재상이 늙어 퇴직한 뒤에는 수레를 달아매 놓고 다시 출입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때 설광덕(薛廣德)이 연로(年老)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나온 뒤 천자가 하사한 안거(安車)를 매달아 놓고 자손에게 전하여 영광으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곧 치사(致仕)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서(漢書)』 卷七十一 「설광덕전(薛廣德傳)」
현검(懸劍)
춘추시대(春秋時代) 오(吳) 나라 계찰(季札)의 고사.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말한다. 계찰이 상국(上國)으로 사신가는 길에 서(徐) 나라 임금을 잠깐 찾아보았는데, 서 나라 임금이 계찰의 보검(寶劍)을 보고는 그것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차마 말을 못하였다. 그러자 계찰은 마음속으로 그 칼을 그에게 주기로 약속하고 떠났었는데, 그후 계찰이 사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곳에 들르니 서 나라 임금이 이미 죽었으므로, 계찰이 “내가 처음에 마음속으로 이미 허락한 것이니, 그 사람이 죽었다 해서 내 마음을 변할 수 없다.” 하고, 그 칼을 그의 묘수(墓樹)에 걸어두고 떠났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卷三十一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현경(玄經)
한(漢) 나라 양웅(揚雄)이 지은 『태현경(太玄經)』를 가리킨다. 양웅이 좋아하는 술도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였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중에 가끔씩 문자를 물으러 오는 자들이 주효(酒肴)를 싸 들고 왔다는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下
현경실(懸磬室)
아무것도 없는 집을 가리킨다. 『국어(國語)』 노어(魯語)에 “노(魯) 나라의 창고가 텅 비어서 마치 틀에 매달려 있는 경쇠와 같다.” 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 種菸謠(황현), 兎山村舍 錄田父語(서거정)
현경자(玄卿子)
‘먹의 이칭’이다.
현경초(玄經草)
양웅(揚雄)은 은거(隱居)하면서 『태현경(太玄經)』 초고(草稿)를 만들었다.
현경취후종조백(玄經就後從嘲白)
한(漢) 나라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를 지을 때에 벼락감투를 쓴 자들이 “완전히 검지 못하고 아직도 하얗다[玄尙白].”고 조롱들을 하였는데, 여기에 기인하여 후대에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下
현곡(玄谷)
정백창(鄭百昌)의 호이다.
현곤(玄袞)
제사를 지낼 때 입는 예복이다.
현공(玄公)
호가 현옹(玄翁)인 신흠(申欽)을 말한다.
현관(玄關)
① 불가(佛家)의 말이다. 입도(入道)의 관문을 말한다. 불문(佛門)에 귀의(歸依)하는 입구를 가리킨 말로, 곧 선사(禪寺)의 궁(宮殿)에 들어가는 문이다. 『운보색엽집(運步色葉集)』 「현관(玄關)」
② 현묘(玄妙)한 도(道)와 관문. 보등록(寶燈錄)에, “현관을 크게 열고 바른 눈을 유통케 한다(玄關大啓 正眼流通).” 하였다. 또 도를 닦는 집의 문을 지칭하기도 한다. 당시(唐詩)에, “수풀 밑에 현관(玄關)을 닫았네.” 하였는데 이는 절(寺)을 말한 것이다.
현관(賢關)
현자(賢者)의 경지에 통하는 관문이란 뜻으로, 전하여 학문과 덕행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가리켜 말한다. 또는 태학(太學)의 뜻으로도 쓰인다.
현관동규벽(賢關動奎壁)
문운(文運)이 열리었음을 말한다. 규성(奎星)은 문장(文章)을 주관하고, 벽성(壁星)은 문서(文書)를 주관한다고 하므로 이른 말이다.
현관폐자운(玄關閉子雲)
현관은 집의 문을 말하고, 자운(子雲)은 한(漢) 나라 양웅(揚雄)의 자이다. 그가 애제(哀帝) 때에 두문불출하고 집에 꼭 들어앉아 『태현경(太玄經)』를 초(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한서(漢書)』 卷八十七 「양웅전(揚雄傳)」
현괘(礥卦)
양기(陽氣)가 아주 약해서 뚫고 나오려고 해도 나오지 못하는 괘상. 『태현경(太玄經)』 「현(礥)」
현구(玄駒)
개미의 별칭이다. 깜깜한 땅속을 치달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구(玄龜)
『수경(水經)』 「낙수(洛水)」 주(注)에 “황제(黃帝)가 동으로 하수(河水)를 순행하여 낙수를 지나면서 단(壇)을 갖추고서 벽(璧)을 물에 넣고, 하수에서 용도(龍圖)와 낙수에서는 구서(龜筮)를 받았는데 적문(赤文) 전자(篆字)였다.” 하였다.
현국(顯國)
장신(張紳)의 자(字)이다.
현궁(玄宮)
제왕의 분묘(墳墓)를 뜻하는 말이다. 임금이나 왕후의 재궁(梓宮)을 묻는 광중(壙中)을 말한다.
현규(玄圭)
검은 옥으로 만든 규벽(圭璧). 우(禹)가 치수를 끝내고 그 성공을 순(舜)에게 고하면서 예물로 올린 규벽. 『서경(書經)』 「우공(禹貢)」 / 우 임금이 치수(治水)할 때 가지고 갔다가 돌아와 바친 검은 색 홀(圭).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우임금은 현규를 바치고 성공을 고했다[禹錫玄圭 告厥成功].” 하였다.
현기(蠉蚑)
꿈틀거리는 벌레의 모양으로 고전(古篆)의 자획(字畫)을 가리킨 것이다.
현기(玄機)
심오하고 미묘한 기틀을 말한다.
현기련(蚿夔憐)
가까이 지내며 서로 돕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현은 발이 백여개나 달린 벌레의 이름이고, 기는 발이 하나만 달린 짐승의 이름으로,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기는 현을 부러워한다[夔憐蚿].” 한 데서 온 말이다.
현녀(玄女)
전설에 나오는 천상(天上)의 선녀(仙女)로, 황제(黃帝)에게 병법(兵法)을 가르쳐 주어 치우(蚩尤)를 제압하게 했다 한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현노(賢勞)
혼자서만 나랏일에 고생한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북산(北山)」에, “대부가 균평하지 못하여서 나 혼자만 종사하게 해 홀로 어질다 하네[大夫不均 我從事獨賢].”하였다.
현노철련여(賢路輟連茹)
군자 한 사람이 조정에 있으면 천하의 현재(賢才)가 모여드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태괘(泰卦) 초구(初九)에 “띠풀의 뿌리를 뽑듯 동지들이 모여드니 길하다[拔茅茹 以其彙征 吉].”하였다.
현단(玄壇)
천단(天壇)과 같은 말로, 하늘에 제사 지내는 단(壇)을 이른다.
현단아양금(絃斷峨洋琴)
자신을 알아주던 친구가 죽었다는 뜻이다. “백아(伯牙)는 금(琴)을 잘 탔고, 종자기(鐘子期)는 소리를 잘 들었다. 백아가 금을 타면서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아아(峨峨)하기 태산(泰山)과 같구나.’ 하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양양(洋洋)하기 강하(江河)와 같구나.’ 하였다. 그 뒤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다시는 금을 타지 않았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현담(玄談)
심묘(深妙)한 이야기란 뜻으로, 즉 황로(黃老)의 도(道)를 말한다. 이백(李白)의 시에 “청론은 손뼉을 치게 하는데, 현담에 또다시 절도하누나[淸論旣抵掌 玄談又絶倒].” 하였다.
현당(玄堂)
무덤을 말하는 것으로 죽었다는 말이다. 『문선(文選)』 사조(謝眺) 제경황후애책문(齊敬皇后哀策文)에 “푸른 장막을 언덕에 폈으니 현당의 사립문이 열렸구나.” 하였다.
현대(玄臺)
황천과 같은 말이다.
현덕(玄德)
① 삼국 시대 촉한(蜀漢)을 세운 유비(劉備)의 자. 그는 제갈량(諸葛亮)을 초빙하기 위하여 세 번이나 몸소 찾아가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고사를 남겼다.
② 『서경(書經)』 순전에, “현(玄)한 덕이 요임금께 들리다(玄德升聞).” 하였다.
현덕류우환(玄德類虞鰥)
우순(虞舜)이 홀아비로 있을 때에 그윽하고 미묘한 덕(玄德)이 요(堯) 임금에게 알려져서 딸을 주고 벼슬을 주었다.
현덕실저(玄德失箸)
현덕은 삼국 시대 촉(蜀) 나라 유비(劉備)의 자이다. 조조(曹操)가 천하 영웅으로는 자신과 유비밖에 없다고 하자, 유비가 밥을 먹다가 젓가락을 떨어뜨렸는데 그때 마침 천둥이 울리자 유비가 조조에게 성인의 말을 인용하여 해명하였다고 한다. 「촉지(蜀志)」 「선왕유비전(先主劉備傳)」
현도(玄道)
노장학(老莊學)을 말한다. 『도덕경(道德經)』 1장에 “玄之又玄 衆妙之門”이라 하였다.
현도(玄度)
진(晉) 나라 때 사람으로 산택(山澤)에서 노닐기를 매우 좋아하고, 청담(淸談)을 즐겼던 동진(東晉)의 명사 허순(許詢)의 자(字)이다.
현도(玄菟)
사군(四郡)의 하나다. 기원전 108~107년에 한 무제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키고 그 고지(故地)에 설치한 4개의 행정구역인 낙랑(樂浪)ㆍ임둔(臨屯)ㆍ진번(眞蕃)ㆍ현도(玄菟)를 설치하고 한사군(漢四郡)이라 하였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현도(玄都)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현도관(玄都觀)
중국 협서성(峽西省) 장안현(長安縣) 숭녕방(崇寧坊)에 있던 수ㆍ당(隋唐)시대 도관(道觀)의 이름인데, 당(唐) 나라 문장가 유우석(劉禹錫)이 즐겨 놀았던 곳이라 한다. 유우석이 그곳에서 간화시(看花詩)를 읊었음. 장안지(長安志)에 “수 나라가 장안 옛 성에서 이곳으로 통도관(通道觀)을 옮기고 현도(玄都)로 이름을 고쳤다.” 하였다.
현도국(懸渡國)
나라 이름이다. 서양잡조(西陽雜俎) 경이(境異)에 “오모산(烏耗山) 서쪽에 현도국이 있는데 길이 험하여 줄을 타야만 넘어갈 수 있다.” 하였다.
현도단(玄都壇)
신선들이 수련(修鍊)하는 단(壇). 현도(玄都)에는 반고진인(盤古眞人)ㆍ원시천존(元始天尊)ㆍ태원성모(太元聖母)가 있다 한다. 「침중기(枕中記)」
현도도수(玄都桃樹)
현도(玄都)는 당(唐) 나라 때 장안(長安)에 있던 관(觀) 이름인데,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낭주 사마(朗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10년 만에 풀려 경사에 돌아와 보니, 현도관에 이전에 없던 복숭아나무를 한 도사(道士)가 새로 많이 심어 놓았으므로, 그 복숭아나무를 당시의 권신(權臣)들에 비유하여 풍자하는 뜻으로 시를 지었는바, 그 시에 “서울 거리 뿌연 먼지가 얼굴을 스치는데, 사람들이 모두 꽃구경 갔다 온다 말하네. 현도관 안에 있는 천 그루 복숭아나무는, 모두가 이 유랑이 떠난 뒤에 심은 거라오[紫陌紅塵拂面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觀裹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한 데서 온 말이다.
현도심지둔(玄度尋支遁)
현도(玄都)는 동진(東晉) 때의 명사였던 허순(許詢)의 자이고, 지둔(支遁)은 역시 동진 때 고승(高僧) 이름이다. 허순은 평소 산택(山澤)에 노닐기를 매우 좋아하였고, 특히 고승 지둔과는 서로 친근하게 종유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현도종도춘(玄都種桃春)
현도관(玄都觀)은 당(唐) 나라 때 장안(長安)에 있던 도관(道觀)의 이름이다. 현도관에는 본디 아무런 꽃도 없었는데, 유우석(劉禹錫)이 낭주 사마(朗州司馬)로 폄척되었다가 10년 만에 풀려나 돌아와 보니, 그 동안에 어느 도사(道士)가 현도관에 선도(仙桃)를 가득 심어 놓아서 꽃의 화려하기가 마치 붉은 놀(紅霞)과 같았으므로, 유우석이 꽃구경한 제군(諸君)에게 준 시에 “장안 거리 붉은 먼지가 얼굴을 스치는데, 사람마다 꽃구경하고 돌아온다 하누나. 현도관 안의 복숭아나무 일천 구루는, 모두가 유량이 떠난 뒤에 심은 거라오[紫陌紅塵拂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한 데서 온 말이다.
현동(玄同)
물아(物我)의 차이가 없음을 이른다. 『노자(老子)』 56장에 “자신의 빛을 부드럽게 하고 세속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현동이라 한다[和其光同其塵 謂之玄同].”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서로 의기가 투합함을 이른 말이다.
현동(玄童)
이른 나이에 죽은 영특한 소년을 가리킨다. 한(漢) 나라 양웅(揚雄)의 아들 동오(童烏)가 아홉 살 때에 『태현경(太玄經)』의 저술을 도울 정도로 총명했는데 그만 일찍 죽고 만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법언(法言)』 「문신(問神)」
현두자고(懸頭刺股)
머리를 노끈으로 묶어 높이 걸어 잠을 깨우고 또 허벅다리를 찔러 잠을 깨운다. 학업에 매우 힘쓰는 것을 말한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현람(玄覽)
형이상학(形而上學)적 탐구를 말한다. 『도덕경(道德經)』 10장에 “마음을 씻고 현묘하게 관찰하여 하나의 오류도 없게끔 한다[滌除玄覽 能無疵乎].”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현량(賢良)
관리를 등용하는 하나의 과목이다.
현량책(賢良策)
한 문제(漢文帝)가 조서(詔書)하여 현량(賢良)ㆍ방정(方正)ㆍ문학(文學)ㆍ재력(材力)의 4과(科)를 두고, 재주 있는 선비를 들어서 차서를 따르지 않고 등용했다.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
현려(縣黎)
① 미옥(美玉)의 이름인데, 『사기(史記)』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에 의하면 “주(周) 나라에는 지액(砥砨)이 있고, 송(宋) 나라에는 결록(結綠)이 있고, 양(梁) 나라에는 현려가 있고, 초(楚) 나라에는 화박(和朴)이 있었는데, 이 네 가지 보배는 선비가 생산했고 장인이 잃어버렸지만 천하의 명기(名器)가 되었다[宋有結綠, 梁有縣藜, 楚有和樸, 此四寶者, 土之所生, 良工之所失也, 而爲天下名器].” 하였다.
② 아름다운 옥(玉)의 이른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송(宋) 나라에는 결록이 있고, 양(梁) 나라에는 현려가 있으며, 초(楚) 나라에는 화벽(和璧)이 있으니 이 네 보물은 장인이 잃어버린 것으로 천하의 유명한 보물이 되었다[宋有結綠, 梁有懸黎, 楚有和璞, 此四寶者, 工之所失也, 而爲天下名器].” 하였다.
현령동음어여회(玄齡同音於如晦)
당태종 때에 두 사람이 같이 재상의 자리에 있어 합심하여 임금을 도왔다. 세상에서 어진 정승을 말할 때에는 방두(房杜)라 일컬었다.
현로(賢勞)
혼자서만 나랏일에 고생한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북산(北山)」에, “대부가 균평하지 못하여서 나 혼자만 종사하게 해 홀로 어질다 하네[大夫不均 我從事獨賢].”하였다.
현로(玄老)
자가 경숙(敬叔)인 신흠(申欽)의 호가 현옹(玄翁)이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현로탄(賢勞歎)
『시경(詩經)』 소아(小雅) 「북산(北山)」에 “하늘 아래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땅이요, 그 땅 위에 사는 사람 모두 왕의 신하인데, 그 신하들 공평하게 고루 쓰지 않으시어, 나만 혼자 잘났다고 죽도록 일하누나.[溥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大夫不均 我從事獨賢]”라는 말이 있는데, 『맹자(孟子)』 「만장(萬章)」 上에는 이 시가 “막비왕사 아독현로[莫非王事 我獨賢勞]”로 인용되어 있다.
현륙(顯戮)
예전에, 죄인을 죽여 그 시체를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을 이르던 말이다. / 인용: 檄黃巢書(최치원)
현륭원(顯隆園)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안룡면(安龍面) 화산(花山)에 있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이다.
현릉(玄陵)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을 이른다. 현릉은 그의 능호(陵號)이다.
현리(玄螭)
‘검은 교룡’이란 뜻이다.
현매(俔妹)
하늘의 누이동생에 비유할 만한 성덕(聖德) 있는 여인이란 뜻으로, 주 문왕(周文王)의 비(妃) 태사(太姒)를 일러 『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대방에 자식 있으니 하늘의 누이에 비유하리로다[大邦有子 俔天之妹]” 한 데서 온 말이다.
현명(玄冥)
동신(冬神). 형살(刑殺)을 담당하는 북방(北方)의 신(神)으로 동장군(冬將軍)을 말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맹동, 중동, 계동의 달은, 그 제(帝)는 전욱(顓頊)이고 그 보좌하는 신(神)은 현명(玄冥)이다.” 하였다. 수신(水神). 우사(雨師)라고도 한다.
현명(玄明)
약의 이름이다.
현모양처(賢母良妻)
‘자식에게는 어진 어머니면서 남편에게는 착한 아내’를 말하며, 조선시대에서 생각한 이상적인 여성상이다.
현무(玄武)
별 이름이다. 현무는 북방 현무에 두(斗)ㆍ우(牛)ㆍ여(女)ㆍ허(虛)ㆍ위(危)ㆍ실(室)ㆍ벽(壁)의 일곱 별이다.
현무구진(玄武鉤陳)
현무(玄武)는 북방을 가리키고, 구진(鉤陳)은 자미궁(紫微宮) 밖의 군대를 상징하는 별자리 이름으로, 대궐의 근위병(近衛兵)을 말한다.
현무칠숙(玄武七宿)
북방의 일곱 별인 두(斗)ㆍ우(牛)ㆍ여(女)ㆍ허(虛)ㆍ위(危)ㆍ실(室)ㆍ벽(壁)의 통칭 현무(玄武)는 거북으로 나타내며 북방의 태음신(太陰神)을 상징한다.
현묵(玄黙)
한(漢) 나라 문제(文帝)가 몸소 현묵(玄黙)을 닦아서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렸다 하는데, 현묵(玄黙)이란, 현묘(玄妙)한 도(道)를 묵묵히 생각하여 법령이나 군사를 너무 떠벌리지 않고 백성을 절로 교화되게 하는 것이다.
현문(玄門)
현묘한 문(門)인데, 불가(佛家) 도가(道家)이다.
현보(縣譜)
고을을 다스리는 데 대한 전가(傳家)의 비결을 말한다. 남제(南齊) 때 부승우(傅僧祐)가 산음령(山陰令)으로 치적의 명성이 높았는데, 그의 아들인 부염(傅琰) 또한 송 무제(宋武帝) 때에 무강령(武康令)ㆍ산음령(山陰令)을 지내면서 뛰어난 치적을 올려 백성들에게 부성(傅聖)이란 칭호를 받기까지 하여 부자(父子)가 모두 치적의 명성이 높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씨(傅氏)들에게는 치현보(治縣譜)가 있는데, 자손들이 서로 전하면서 남에게는 보여 주지 않는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남사(南史)』 卷七十
현비(翾飛)
‘가볍게 나는 모양’을 형용한 말이다.
현빈(玄牝)
『노자(老子)』 6장에 “곡신은 죽지 않으니 현빈이라 이른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뿌리이다[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天地之根]”라고 하였다. 현빈(玄牝)은 ‘현묘한 母體’란 말로,, ‘養生의 道를 가리키고 만물을 기리는 본원’을 가리킨다. / 유의어: 현빈지신(玄牝之神) / 인용: 贈左蘇山人(박지원)
현산(峴山)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 남쪽 3리 지점에 있는 산이다.
현산방공(峴山龐公)
후한(後漢) 때 현산 남쪽에 은거하면서 유표(劉表)의 초청을 사절한 고사(高士) 방덕공(龐德公)을 말한다.
현상(玄霜)
신선(仙藥)이 먹는다는 불로장생의 선약. 『한무제내전(漢武帝內傳)』에 “선가(仙家)의 상약(上藥)에 현상ㆍ강설(絳雪)이 있다.” 하였다.
현상(玄裳)
학(鶴)의 이칭(異稱)인 현상호의(玄裳鎬衣)의 준말이다. 현상호의는 곧 흑색의 상(裳)과 백색의 상의(上衣)라는 뜻이다.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학이 검은 치마 흰 저고리로 배를 스쳐 지나갔다.” 하였다.
현상백(玄尙白)
현(玄)은 한(漢) 나라 양웅(揚雄)의 『태현경(太玄經)』를 가리키면서 검다는 뜻을 내포하고, 상백(尙白)은 아직도 여전히 희다는 말인데, 양웅을 조롱한 이 말이 후대에는 공명(功名)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잘못 비평할 때 종종 쓰이게 되었다.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下
현상우객(玄裳羽客)
학(鶴)의 모양을 일컫는 말이다.
현석(玄石)
천일주(千日酒)를 마시고 잠이 들어 삼년상까지 치룬 후에야 깨어났다는 사람.
현석천년환부성(玄石千年喚不醒)
중산(中山) 사람 적희(狄希)가 한 번 마시면 천 일 동안 깨지 않는 술을 만들었는데, 유현석(劉玄石)이 이 술을 마시고 취해 쓰러진 나머지 가족들에 의해 무덤 속에 매장까지 되었다가 천 일 만에 깨어났던 고사가 전한다. 『박물지(博物志)』, 『수신기(搜神記)』
현선야당부(玄蟬惹螗斧)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운 나머지 그 뒤에 올 재화(災禍)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매미는 이슬에만 정신이 팔려 사마귀가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그 사마귀 역시 황작(黃雀)이 노리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螳螂捕蟬 黃雀在後”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장자(莊子)』 「산목(山木)」ㆍ『설원(說苑)』 『정간(正諫)』
현섬호(玄纖縞)
현(玄)은 검은 비단이며, 섬(纖)은 세로는 검은 실로 가로는 흰 실로 짠 비단이며, 호(縞)는 흰 비단이다.
현성(玄成)
당 태종(唐太宗)의 명신(名臣) 위징(魏徵)의 자이다.
현성작경(玄成作鏡)
현성(玄成)은 당(唐) 나라 위징(魏徵)의 자(字)이다. 위징이 죽자 당 태종(唐太宗)이 탄식하기를 “동(銅)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衣冠)을 바룰 수 있고, 옛것으로 거울을 삼으면 흥망(興亡)을 알 수 있고,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면 득실(得失)을 밝힐 수 있다. 짐이 항상 이 세 거울을 보화로 하여 과실을 방지하였는데 지금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가 없어졌다.” 하였다. 『당서(唐書)』 「위징전(魏徵傳)」
현송(絃誦)
금슬(琴瑟)을 탄주(彈奏)하면서 낭송하는 것으로 학업의 일종이다.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봄에는 시를 외우고 여름에는 거문고를 탄다.” 하였다.
현수(絃手)
양민(良民)이나 천민(賤民)중에서 음악을 아는 여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현수(峴首)
양양(襄陽)의 별칭이다. 타루비(墮淚碑)로 유명한 진(晉) 나라 양호(羊祜)의 현산비(峴山碑)가 양양현(襄陽縣) 남쪽의 현수산(峴首山)에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수갈(峴首碣)
양양(襄陽)의 현산(峴山). 양호(羊祜)를 추모하여 세운 비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며 양호의 덕을 추모하여 눈물을 떨어뜨리므로 타루비(墮淚碑)라 불렀다.
현수공조고(峴首空弔古)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현산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다 비감에 젖어 눈물을 흘리며, “우주가 있고부터 이 산이 있었을 터이고 지금 우리처럼 이 산에 오른 이 가운데 현인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모두 인몰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니, 이를 생각함에 비감이 든다.” 하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 『형주도기(荊州圖記)』
현수교(賢首敎)
불교의 한 종파(宗派)로 화엄종을 말한다. 중국의 중 현수(643~712)에 의하여 크게 이루어진 종파이므로 이렇게 말한다.
현수금릉(玄叟金陵)
현수(玄叟)는 상촌의 별호가 현옹(玄翁)이므로 상촌을 가리키고, 금릉은 경기 김포(金浦)의 옛 이름이다. 곧 상촌이 계축옥사로 삭탈관작되어 김포의 선영 밑으로 돌아와 계부(季父) 광서(光緖)의 두 칸짜리 농가에서 하루암(何陋菴)이라 편액을 걸고 거처하였던 것을 이른다.
현수단갈(峴首短碣)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양양 태수(襄陽太守)로 있었을 때의 정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백성들이 현수산(峴首山)에 비석을 세우고 제사를 올렸는데, 그 비석을 바라보고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으므로 타루비(墮淚碑)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양호전(羊祜傳)」
현수비(峴首碑)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양양(襄陽)을 다스릴 적에 현수산에 올라가 노닐면서 “우리처럼 이곳에 와서 노닐던 걸출한 인물들이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는 생각을 하면 슬퍼지지 않을 수 없다.”고 탄식을 하며 감개를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는데, 뒤에 백성들이 양호를 사모하여 이곳에 세운 비석을 보고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으므로 타루비(墮淚碑)라는 별칭이 있게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양호전(羊祜傳)」
현수풍류(峴首風流)
지금 호북성양양현(襄陽縣) 남쪽에 있는 산인데, 진(晉) 나라 양호(羊祜)가 오(吳) 나라의 접경인 양양을 진수(鎭守)할 때 이 산에 올라 놀았는데, 그가 죽자 사람들이 그 자리에 비를 세우니 보는 자가 모두 슬프게 울어 타루비(墮淚碑)라 하였다.
현순(懸鶉)
메추리는 꼬리 부분에 유독 털이 없어 마치 옷이 짧거나 갈갈이 찢어진 것과 같으므로, 무릇 해진 옷을 말한다. / 인용: 伐木行(성현), 百結先生(김부식), 調信傳(일연), 芝峯類說(이수광)
현안(玄晏)
진(晋) 나라 때의 은사인 황보밀(皇甫謐)의 호인데, 그는 조정의 소명(召命)이 수없이 내렸으나 한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고, 일생 동안 풍비(風痺)로 시달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서음(書淫)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집이 가난하므로 항상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평생 글만 읽어 백가서(百家書)에 다 통했다고 한다. 일찍이 좌사(左思)를 위해 「삼도부(三都賦)」의 서문(序文)을 지어 주자 낙양(洛陽)의 지가(紙價)가 뛰어올랐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晋書)』 卷五十一
현안간서연유병(玄晏看書緣有病)
현안(玄晏)은 진(晉) 나라 때 은사(隱士)인 황보밀(皇甫謐)의 호인데, 그는 평생 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뒤에는 풍질(風疾)까지 얻어 신음하면서도 끝내 책 읽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진서(晉書)』 卷五十一
현안병(玄晏病)
‘남이 부탁해 오는 비평이나 시문을 써 주며 저술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현안(玄晏)은 진(晉) 나라 황보밀(皇甫謐)의 자호(自號)이다. 일찍이 좌사(左思)의 「삼도부(三都賦)」 서문을 써 주자 낙양(洛陽)의 지가(紙價)가 급등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卷51
현안선생(玄晏先生)
현안(玄晏)은 진(晉) 나라 황보밀(黃甫謐)의 호이다.
현안일생장와병(玄晏一生長臥病)
현안(玄晏)은 진(晉) 나라 황보밀(皇甫謐)의 호이다. 황보밀이 풍비(風痺)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었으면서도 침식(寢食)을 잊고 독서하여 서음(書淫)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 卷51
현안자(玄晏子)
진(晉) 나라의 은자(隱者) 황보밀(皇甫謐)의 호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고상한 뜻을 지니고 학문에 종사하였는데, 무제(武帝) 때 여러 번이나 부름을 받았으나 끝내 벼슬하지 않았다. 주경야독하며 백가(百家)의 전적에 통효하였고, 침정과욕(沈靜寡欲)한 성품으로 고상한 뜻을 지녔었다 한다. 『진서(晉書)』 卷51
현안저문(玄晏著文)
현안(玄晏)은 진(晉) 나라 황보밀(皇甫謐)의 호이다. 저술에 뜻을 두어 나라에서 여러 번 불렀지만 나가지 않고 글만 지었으며, 만년에 풍병을 앓으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의 저술은 제왕세기(帝王世紀)ㆍ『열녀전(列女傳)』ㆍ『고사전(高士傳)』ㆍ갑을경(甲乙經)등이 있다. 『진서(晉書)』 卷五十一 『황보밀전(皇甫謐傳)』
현안포질(玄晏抱疾)
현안(玄晏)은 진(晉) 나라 조나(朝那) 사람인 황보밀(皇甫謐)의 호이다. 그는 벼슬살이를 하지 않고 평생 동안 저술에만 종사하여 제왕세기(帝王世紀)ㆍ『열녀전(列女傳)』ㆍ『고사전(高士傳)』ㆍ갑을경(甲乙經) 등을 지었는데, 만년에 풍병을 앓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한다. 『진서(晉書)』 卷五十一 『황보밀전(皇甫謐傳)』
현애석(懸艾夕)
5월 5일 밤. 옛날 초(楚) 나라 풍속에 5월 5일이 되면 모두 어울려 백초(白草)를 밟고 쑥을 캐서 사람처럼 만들어 문 위에다 매달고는 그것으로 독기(毒氣)가 침범 못하도록 액막이를 삼았음.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현어(懸魚)
생선을 달아매는 것, 곧 청백한 관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양속(羊續)이 태수(太守)로 있을 때 어떤 이가 생선을 바쳤는데, 양속이 이를 먹지 않고 달아 두면서 관리들을 경계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문자이다. 『후한서(後漢書)』 『양속전(羊續傳)』
현언(玄言)
현묘한 말이란 뜻으로 노자(老子)ㆍ장자(莊子)의 말을 말한다.
현연(泫然)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양’을 말한다. / 인용: 龍山吏(정약용)
현영(玄英)
겨울의 별칭이다.
현영(顯榮)
입신하여 번영함, 이름을 날리다.
현옹(玄翁)
① 신흠(申欽)의 호이다.
②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이다. 영조 때의 문신으로 그림에도 능한 조선 후기 문인화(文人畵)의 대표자이다.
현요(炫曜)
밝게 비침. 빛나다.
현운(玄雲)
검은 구름.
현원(玄元)
현원황제(玄元皇帝)의 준말로, 당(唐) 나라 때에 노자(老子)에게 올린 존호(尊號)로서 즉 노자를 가리킨다. 구당서(舊唐書) 「예의지(禮儀志)」에, “開元二十年正月己丑 詔兩京及諸州各置玄元皇帝廟一所…… 天寶二年正月丙辰 加玄元皇帝 尊號大聖祖三字”라고 보인다.
현원궁(玄元宮)
당대(唐代)에 도교(道敎)를 중히 여긴 나머지 노자(老子)를 현원황제(玄元皇帝)로 받들고 각처에 사당을 세웠는데, 서울의 사당은 현원궁(玄元宮)이라 하고 각 지방의 사당은 자극궁이라고 불렀다.
현원성조(玄元聖祖)
당(唐) 나라는 노자(老子)를 숭봉(崇奉)하여 시조(始祖)로 삼고 높여서 현원황제라 하였다.
현원태상군(玄元太上君)
노자(老子)를 높인 말이다.
현위(弦韋)
현은 활시위이고 위는 다룬 가죽인데 활시위는 팽팽하고 다룬 가죽은 느슨한 것이므로,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 나라 서문표(西門豹)는 본디 성미가 급한 때문에 느슨한 가죽을 몸에 찼고,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 나라 동안우(董安于)는 본디 성미가 느슨한 때문에 팽팽한 활시위를 몸에 차고서 각각 자신을 반성했던 데서 온 말이다. 『한비자(韓非子)』 「관행(觀行)」
현의(玄衣)
제사를 지낼 때 입는 검은색 옷인데, 여기서는 검은 학을 말한다.
현익돈장(玄黓敦牂)
고갑자(古甲子)에 현익은 임(壬), 돈장은 오(午)에 해당되어 임오년을 말한다.
현인(眩人)
요술쟁이이다.
현인주(賢人酒)
맑은 술을 ‘성인(聖人)’이라 하고 탁한 술을 ‘현인(賢人)’이라 하는데, 위(魏) 나라 때에 금주령이 내려 주객(酒客)들이 쓴 은어(隱語)이다.
현재(玄宰)
① 시문(詩文)에 능하고 글씨와 그림의 대가였던 명(明)의 동기창(董其昌)의 자(字)이다.
② 진재(眞宰眞宰)와 같은 말로 우주 만물의 주재자(主宰者)로서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드는 참 주인을 말한다. 하늘은 만물의 주재(主宰)이기 때문에 진재라고 한 것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필시 진재가 있을 터인데 다만 그 단서를 얻지 못하였을 뿐이다[若有眞宰, 而特不得其眹].” 하였다.
현재(玄齋)
영조(英祖) 때의 화가(畫家)인 화가인 심사정(沈師正)을 가리킨다.
현전추옥급(玄筌抽玉笈)
도가의 서적을 읽는다는 것이다. 현전은 현묘한 말을 적은 책으로 도가서를 말하고, 옥급은 옥으로 장식한 책상자로 진기한 책을 담아 놓은 상자에 대한 미칭이다.
현절릉(顯節陵)
후한 명제(後漢明帝)의 능호이다.
현절사(顯節祠)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한 홍익한(洪翼漢)ㆍ오달제(吳達濟)ㆍ윤집(尹集) 등 삼학사(三學士)를 제향하는 사우이다. 광주(廣州)에 있다.
현정(懸旌)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심신(心神)이 안정되지 못하는 것을 현정(懸旌)이라 한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현정(玄亭)
① 초현정(草玄亭)의 준말로 한(漢) 나라 양웅(揚雄)이 칩거하며 『태현경(太玄經)』를 저술한 곳이다. 양웅이 술을 좋아하면서도 집이 가난하여 마시지를 못했는데, 가끔 호사자(好事者)들이 술과 안주를 들고 와서 글자를 묻곤 하였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한서(漢書)』 卷87下 「양웅전(揚雄傳)」
② 호가 현헌(玄軒)인 신흠(申欽)을 가리킨다.
현제(玄帝)
북방(北方)의 신으로, 동신(冬神)인 현명(玄冥)을 말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맹동(孟冬), 중동(仲冬), 계동(季冬)의 달은, 그 제(帝)는 전욱(顓頊)이고 그 신(神)은 현명(玄冥)이다.” 하였다.
현제우의(玄帝羽儀)
겨울 귀신의 위엄스러운 덕(德)을 말한다. 현제(玄帝)는 북방을 주관하는 귀신으로 전욱(顓頊)을 가리킨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전욱이 도를 얻어 현궁(玄宮)에 거처하고 있다.” 하였다.
현종(玄蹤)
심오한 자취를 이른다.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 “이로(二老)의 현종을 밟아오르도다[躡二老之玄蹤].” 한 데서 온 말이다.
현주(玄珠)
검은 구슬이란 뜻으로, 즉 도(道)의 본체(本體)를 일컫는 말인데, 옛날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의 북쪽에서 유람하다가 현주를 잃어 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천지(天地)」
현주(玄酒)
① 고대(古代) 제사에 사용하던 청수(淸水)를 말한다. 『예기(禮記)』 「예운(禮運)」의 “현주는 실에 있고 예잔은 호에 있다[玄酒在室 醴醆在戶].”는 대목에 대한 공영달(孔潁達)의 소(疏)에 “현주(玄酒)는 물이다. 빛이 검기 때문에 현(玄)이라 하는데, 태곳적에는 술이 없어 물로 술을 대신하였기 때문에 현주라 한다.” 하였다.
② 소옹(邵雍)의 동지시(冬至詩)에 “……현주는 맛이 바야흐로 담담하고 대음은 소리가 정히 드물어라……[玄酒味方淡 大音聲正希]” 한 데서 보이는데 현주는 곧 찬물(冷水)을 말한다.
현주(玄洲)
① 북해(北海) 가운데 있다는 섬 이름인데, 여기에는 신선이 살고 금지옥초(金芝玉草)가 많이 있다고 한다.
② 조찬한(趙纘韓)의 호이다.
현진(玄津)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苦海)의 바다’를 말한다.
현진자(玄眞子)
당(唐) 나라 장지화(張志和)가 남포위(南浦尉)로 좌천되어 있다가 다시 소환되었으나 다시는 벼슬하지 않고 강호에서 낚시와 술을 즐기면서 자칭 연파주도(煙波酒徒)라 하는 한편, 현진자(玄眞子)라는 책을 짓고 자호를 이에 따라 현진자라 하였다. 「청약립녹사의(靑蒻笠綠簑衣)」라는 사(詞)를 지었다.
현책(玄冊)
성균관(成均館)의 정록청(正錄廳)에 당직(當直)한 관원이 당시의 정사(政事) 중에서 중요한 사항을 기록하여 두는 책.
현천장(玄川丈)
현천(玄川)은 원중거(元重擧)의 호이며 장(丈)은 높임말이다.
현철(弦轍)
현(弦)은 현(絃)과 같으므로 곡조(曲調)를 뜻하며, 철(轍)은 수레바퀴이지만 여기서는 궤도(軌道)를 말한다. 현철(弦轍)은 ‘지금까지 통행되어온 규범’이란 뜻이다. / 인용: 豪民論(허균)
현철유차액사신(賢哲猶嗟厄巳辰)
후한(後漢) 정현(鄭玄)의 꿈속에 공자(孔子)가 나타나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올해는 진년(辰年)이요, 내년은 사년(巳年)이다.”라고 알려 주었는데, 정현이 꿈을 깨고 나서 “진(辰)은 용(龍)이요 사(巳)는 뱀(蛇)이니, 용사(龍蛇)의 해에는 현인이 탄식한다고 하였다.” 하고는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그해 6월에 죽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卷35 「정현전(鄭玄傳)」
현초(玄草)
한(漢) 나라 학자 양웅(揚雄)의 『태현경(太玄經)』를 초(草)한 것을 말한다.
현친(顯親)
『효경(孝經)』에,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를 드러나게 하라.” 하였다.
현탑(懸榻)
한(漢) 나라 진번(陳蕃)이 예장 태수(豫章太守)로 있을 때에 객(客)을 접하지 않고 한 탑(榻)을 만들어서 오직 높은 선비인 서치(徐穉)가 오면 그 탑을 내리어 앉게 하였다가 서치가 돌아가고 나면 다시 그 탑을 달아 두었다 한다. 『후한서(後漢書)』 「서리전(徐摛傳)」
현택(玄宅)
묘지의 별칭이다.
현토(玄兎)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였던 현도군(玄兎郡)을 말한다.
현포(懸匏)
움직이지 않고 매달려 있는 뒤웅박을 말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내가 어찌 박이더냐. 어찌 한 곳에 매달려 있어 음식도 먹지 못하겠느냐[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현포(懸圃)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다는 신선의 거소(居所)이다.
현포(玄圃)
곤륜산(崑崙山) 정상의 신선이 사는 곳으로, 다섯 군데의 금대(金臺)와 12개의 옥루(玉樓)가 있는데,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해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현포원(玄圃園)
곤륜산에 있다는 선경(仙境)을 말하는데, 태자의 처소를 말하기도 한다.
현풍(玄風)
심원(深遠)한 도(道). 도가의 청허사상(淸虛思想)을 말한다.
현하(懸河)
말이나 문장을 잘하는 것을 말한다. 현하는 하수(河水)를 달아 놓았다는 뜻으로 입에서 말이 줄줄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진(晉)의 왕연(王衍)은 매양 말하기를 “곽상(郭象)의 말을 들으면 하수를 달아 놓고 물을 쏟듯하여 끊기지 않는다.” 하였다. 『진서(晉書)』 卷五十 『곽상전(郭象傳)』
현하구변(懸河口辯)
흐르는 물과 같이 거침없이 술술 나오는 말이다. 현하웅변(懸河雄辯)
현하지변(懸河之辨)
‘강물이 쏟아져 흐르는 듯 한 말솜씨’라는 말로, 거침없는 입담을 말한다.
현학(玄鶴)
진(晉)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 조수(鳥獸)에 “학이 1천 년 지나면 푸른 색이 되고 2천 년 지나면 검은 색으로 바뀌는데, 이것이 이른바 현학(玄鶴)이다.” 하였다.
현학략주회(玄鶴掠舟回)
소식(蘇軾)의 「후적벽부(後赤壁賦)」에, “마침 외로운 학이 강을 가로질러 동으로 오는데, 날개는 수레바퀴 같고 검은 치마에 흰 비단 옷차림으로 길게 울며 내 배를 스쳐 서쪽으로 날아가네.” 하였다.
현행(顯行)
밝게 떠가다. 운행하다.
현헌(玄軒)
신흠(申欽)의 호이다.
현헌자(玄軒子)
현헌(玄軒)은 상촌 신흠(申欽)의 당호(堂號)로 상촌을 말한다.
현현(泫泫)
눈물이 흐르는 모양, 이슬이 맺히는 모양
현현(俔俔)
두려워하는 모양
현현(嬛嬛)
정숙한 모양.
현현(懸懸)
‘마음에 걸린다’는 뜻이다. / 인용: 與人(박지원)
현현형우거(鞙鞙珩瑀琚)
『시경(詩經)』 위풍(衛風) 「모과(木瓜)」에 “값싼 모과를 나에게 주기에 값진 태옥으로 보답하노라[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 한 데서 온 말인데, 즉 서로의 우호(友好)를 나타낸 말이다.
현호(懸弧)
생일을 말한다. 옛날에 무(武)를 숭상하여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대문 왼쪽에 활을 매달아 놓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현호사방심(懸弧四方心)
호는 뽕나무로 만든 활인데, 옛날 사내아이를 낳으면 뽕나무 활 여섯과 쑥대 화살 여섯으로 천지 사방에 하나씩을 쏘아서, 그 아이가 장래에 천지 사방에 공업(功業)을 세우기를 기원했던 데서 온 말이다. 또 활을 문 위에 걸어놓는 것은 아이가 장래에 반드시 활을 쓸 일이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현호수적(懸瓠樹績)
당 헌종(唐憲宗) 때 이소(李愬)가 눈 오는 밤에 오원제(吳元濟)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당서(唐書)』 卷154
현호일(懸弧日)
남자의 생일을 말한다. 고대의 풍속에 집안에 남자가 태어나면 문 왼편에 활 하나를 걸어두었다 한다.
현화(玄花)
① 대부(大夫)가 허리에 띠는 잡대(雜帶)의 이름이다.
② 눈(目)을 말한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정관음시(貞觀吟詩)에 “화살에 눈이 빠질 줄 어떻게 뜻했으랴[那知玄花落白羽]” 하였는데, 이것은 당 태종(唐太宗)이 고구려를 칠 때 안시성(安市城) 싸움에서 백우전(白羽箭)을 맞고 눈이 빠진 것을 말한다. 『동인시화(東人詩話)』 하권 17번
현화낙백우(玄花落白羽)
당 태종이 친히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쳐들어와 안시성(安市城) 싸움에서 패하여 돌아갔는데, 『당서(唐書)』엔 숨겨 기록이 없으나, 우리 나라에서 전하는 말로는, “안시성주 양만춘((梁)楊萬春)이 쏜 화살이 태종의 눈을 맞혔다.” 하였는데, 현화(玄花)는 눈이고, 흰 깃(白羽)은 백우전(白羽箭) 곧 살(矢)이다.
현화백우(玄花白羽)
화살에 맞아 눈이 빠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정관음시(貞觀吟詩)」에 ‘주머니 속에 한 물건 뿐이라 하니, 눈이 화살에 떨어진 줄을 어찌 알겠나?[自謂囊中一物耳 那知玄花落白羽].’라고 하였다.
현화사(玄化寺)
황해도 우봉현(牛峰縣(靈鷲山))에 있다.
현황(玄黃)
채색 비단 등의 예물을 가리킨다. 『서경(書經)』 「무성(武成)」
현효(玄枵)
『이아(爾雅)』 「석천(釋天)」에, “玄枵虛也”라 한 그 주에, ‘정북방에 있는 별의 이름이다.’고 했다. 즉 허성(虛星)의 별칭이다.
현훤(懸貆)
『시경(詩經)』 위풍(衛風) 「벌단(伐檀)」에 “애써 뛰고 달려 사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네 집 뜰에 오소리가 매어 달릴꼬[不狩不獵 胡瞻爾庭有懸貆兮].”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저자 자신이 사냥을 않고도 돈을 주고 고기를 사 먹을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현휘(玄暉)
남제(南齊)의 시인 사조(謝脁)의 자(字)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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