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와 사에 대한 주희의 강조
‘천자(天子) - 제후(諸侯) - 경대부(卿大夫) - 사(士) - 서인(庶人)’의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에서 제후ㆍ경대부ㆍ서인이 빠져버리고 천자와 사만 전(傳)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주희의 의식세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천자 - 제후 - 경대부 - 사 - 서인’이라는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는 주대의 봉건질서를 전제로 한 것이며 송대의 정치제도나 사회조직에는 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왕조의 유자들은 주희가 막연하게 복고적인 사상가인 것처럼 떠받들었을지 모르지만 주희는 과거지향적 인물이 아니라 철저히 현재지향적 인물이었다. 주희는 정강지변(靖康之變, 1127년) 이후 굴욕적으로 여진족의 금나라와 대치하고 있었던 남송(南宋) 당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씨름하고 산 사람이었다. 조선 왕조의 보수주의적 유자들이 주자를 교조주의적으로 떠받들게 된 근원에는 주희의 정통론(Zhuxiistic theory of Orthodoxy)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희에 대한 복고주의적 인상은 공맹(孔孟) 정통론에서 비롯되지만, 주희의 정통론 그 자체도 결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배불론적(排佛論的) 입장이나 남송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그의 강렬한 현재적 관심의 이론적 근거로서 그는 정통론을 말했을 뿐이다.
주희에게 문제된 권력의 센터는 황제(천자)와 사(士)일 뿐이었다. 주자 시대의 사대부는 이미 식읍(食邑)을 소유한 경대부(卿大夫)가 아니며, 단순한 행정관료였다. 출신여하를 막론하고 과거(科擧)라는 시험제도를 통하여 일거에 인민을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의 자리를 부여받는 특별한 존재였다. 요즈음과 같이 고등고시를 패스하면 고위관리가 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으나, 가장 큰 차이는 순수하게 봉급(salary)에 의존하여 사는 공무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관리의 주요임무는 조세의 징수와 재판이지만 결국 이러한 지방행정의 실제적 담당자는 서리(胥吏, 書吏)였다. 서리는 공식적으로 봉급이 없었다. 그들은 관청에 기생하는 사무하청업자로서 사무를 수행할 때 민중에게서 수수료를 징수하여 생활한다. 이들은 세습적인 지연과 혈연관계 속에서 지위는 낮지만 강력한 지방 공동체조직을 형성한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의 삶이란 결국 이들과의 결탁을 떠나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제도적인 부패가능성이 항존한다. 그리고 관리들의 조세수취의 자의성을 체크할 수 있는 하등의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그리고 지방관의 성적은 무엇보다도 조세징수의 실적에 의하여 평가되었다. 이러한 특성이 송대의 관료제도가 매우 합리적인 객관기준을 지닐 수도 있는 조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스 베버(Max Weber)가 말하는 근대적 관료제도(modern bureaucracy)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이다. 이 결핍을 주희는 도학(道學)의 도덕주의로써 메꾸려고 했다. 더구나 송대의 사대부를 형성하는 지식인들은, 과거의 천거방식에 의한 인재등용이 특정한 귀족 써클 내에서 이루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개 문벌이 없는 서민 출신의 신흥계층이었다. 짜고치는 고스톱과도 같은 천거에 의하여 선발되는 관리는 멍청한 놈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귀족문벌의 소양은 일정하게 확보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과거에 의하여 선발되는 관리는 그러한 도덕기반을 어려서부터 체질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채 권좌에 앉게 되는 생뚱맞은 인물일 경우가 많다. 주희는 이들 신흥관료를 어떻게 도덕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송대에는 천자의 중앙집권적 결정권이 극대화되었다. 과거제도도 ‘전시(展試)’화 되면서 관리들은 모두 ‘천자의 문하생’이 되고 만다. 결국 관리들은 황제에 대한 절대적 복종의식만을 키우게 되고 대민(對民)의 보편의식을 상실케 될 수가 있다.
사대부의 존재의의가 단순히 독재적 황제 권력의 유지를 위한 관료제의 한 부속품적 기능에 머물고 말 때, 국가는 위태롭게 되고 민생은 외면당하고 만다. 황제가 이상적인 철인왕(Philosopher-King)의 가치를 구현하는 인물이라면 모르되,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사대부가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규정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바로 주희가 『효경』에서 천자와 사만을 전(傳)의 주축으로 설정한 이유가 드러난다.
천자(天子) | |
사(士) |
『대학(大學)』의 경문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케 하는 결정적인 한마디가 있었다. ‘천자로부터 보통사람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주희에게 이 말은 천자와 사의 관계가 수직적인 일방하달관계가 아니라 ‘수신(修身)’을 매개로 하여 수평적인 관계로 전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천자이든, 사이든, 서인이든, 모든 인간존재가 수신이라는 내면적 덕성의 함양에 있어서는 평등의 관계에 놓여있다. 그것은 인간존재의 근원적 조건으로서 어디까지나 자내적(自內的) 사태이며, 자외적(自外的)ㆍ향외적(向外的) 사태가 아니다. 주자는 바로 이 ‘수신(修身)’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송대 지식사회의 보편적 패러다임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천자와 서인의 차등 위에 설 때는 보편주의(universalism)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다. 수신이라는 명제는 동방사회의 근대적 패러다임의 확고한 보편주의적 측면이다. 천자도 끊임없이 수신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매진할 때만이 평천하라는 결과를 획득하는 것이다. 수신도, 평천하도 결국은 동시적 프로세스(Process)이다.
이러한 『대학(大學)』의 패러다임에 비하면 『효경』은 천자의 권위를 배천(配天)의 존재로서 신비화시키고 있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주희는 천자 한 사람의 효(孝)의 실천이 만인의 도덕적 교화의 규범이 되며 그것으로써 사해(四海)가 다스려질 수 있다는 『효경』의 논리를 신비주의적 망상 정도로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천자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통하여 절대적 권위를 확보할 것이 아니라, 인사(人事)의 상황성 속에서 부단히 도덕적 단련을 해야만 하는 수신(修身)의 존재일 뿐이다.
주희가 말년에 (1194) 영종(寧宗)의 시강(侍講)으로서 『대학(大學)』을 진강(進講)할 때 즈음 그가 주상(奏上)한 상서(上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조정의 기강은 특별히 엄격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위로는 천자로부터, 아래로는 실무를 담당하는 백관에 이르기까지 각기 맡은 고유의 직분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 아니 됩니다.
朝廷紀綱, 尤所當嚴. 上自人主, 下至百執, 各有職業, 不可相侵.
현재 재상(宰相, 宰執)의 진퇴문제나 대간(臺諫: 감찰하거나 간언하는 관직)을 갈아버리는 문제가 모두 폐하한 사람의 독단(獨斷)에 의하여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대신이 그 모의과정에 더불어 참여할 수도 없고, 급사(給舍)【급사중(給事中)과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일컫는데 이들은 임금의 조칙정령(詔勅政令)의 내용이 과연 정당한가를 따지는 직책의 사람들이다】가 폐하의 결정이 정당한지 그 시비를 평의(評議)하는 일도 없습니다. 폐하께서 독단으로 판결하는 일들이 설사 모두 사리에 합당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올바른 정치를 하는 본체가 아니올시다.
今進退宰執, 移易臺諫, 皆出陛下之獨斷, 大臣不與謀, 給舍不及議. 正使其事悉當於理, 亦非爲治之體.
하물며 조정 내ㆍ외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폐하의 주변에 가까이 있는 자들이 폐하의 위광(威光)을 도둑질하여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모두 말하고 있으니,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또한 공의(公議)에 다 합당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況中外傳聞, 皆謂左右或竊其柄, 而其所行, 又未能盡允於公議乎.
이러한 폐단이 개혁되지 않는다면, 제가 우려하옵는 것은 명목상으로 그러한 결단이 폐하 한 사람의 결단이라고 규정하여도, 실제로는 폐하의 권위가 신하의 수중으로 하락하는 결과를 모면키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바른 정치를 희구하여도 오히려 난세를 초래하는 결과를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면재勉齋의 『주자행장朱子行狀』에서 인용).
此弊不革, 臣恐, 名爲獨斷, 而主威未免下移, 欲以求治, 而反不免於致亂.
이러한 주희의 직언에서도 명료하게 그 의식이 드러나 있듯이 천자와 사(士)의 관계는 쌍방적이야 하며, 서로 침범할 수 없는[不可相侵] 고유의 직분 영역이 있다[各有職業], 어떠한 경우에도 천자의 독단(獨斷)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자의 어휘 속에서 천자와 사의 관계는 서로 더불어 공도(公道)를 모의(謀議)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주자의 틀에서 본다면 『효경』은 효(孝)의 충화(忠化)를 중심테마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의 도학적 틀에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주희의 틀에서 본다면 천자나 사(士)나 모두 개인 내면의 존양성찰을 통하여 치인(治人)의 보편적 규범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나 『효경』은 효(孝)라는 보편적 규범을 먼저 내세움으로써 개인을 순화(淳化) 시키려고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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