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여씨춘추(呂氏春秋)』 「효행」 편 역주
1장. 근본인 효에 힘쓸 때의 공능
『효경』의 충실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여씨춘추(呂氏春秋)』 「효행」편 전문을 여기 소개한다. 독자들 스스로의 『효경』 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1장은 다음과 같다.
대저 천하를 다스리고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반드시 먼저 근본을 힘쓴 후에 말엽을 다스리는 것이다. 근본이란 무엇인가? 소위 근본이라는 것은 밭을 갈고 김매고 파종하고 경작하는 그런 경제적 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근본이란 바로 국민 그 개개인 사람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사람을 향상시킨다 하는 것은 빈궁한 자를 부자로 만들고, 재력이 부족한 자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바탕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凡爲天下, 治國家, 必務本而後末. 所謂本者, 非耕耘種殖之謂, 務其人也. 務其人, 非貧而富之, 寡而衆之, 務其本也.
치국(治國)의 근본을 경제와 같은 물리적 지표에 두지 아니 하고 ‘인간의 향상’이라고 하는 후마니타스(humanitas: 사람의 사람으로서의 교육)에 두었다는 것이 역시 인치(人治)를 표방하는 유가의 적통을 밟고 있다.
그 본바탕을 향상시키는 데는 효처럼 좋은 것은 없다. 사람의 주인된 자(人主: 통치자)로서 효를 삶의 원칙으로 삼으면 이름이 영예롭게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아랫사람들이 그에게 진심으로 복종하고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천하가 그 덕을 찬양하리라.
務本莫貴於孝. 人主孝, 則名章榮, 下服聽, 天下譽.
신하된 자(人臣)로서 효를 삶의 원칙으로 삼으면 임금을 섬기는 데 충성스러울 수밖에 없고, 관직에 있으면서 청렴할 수밖에 없고, 국난에 임하여서는 죽음을 불사한다.
人臣孝, 則事君忠, 處官廉, 臨難死.
일반 선비와 서민들(士民)이 효를 삶의 원칙으로 삼으면 농사를 지을 때도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며, 전쟁이 일어나도 굳건하게 국토를 지키며, 패배하여 도망가는 일이 없다.
士民孝, 則耕芸疾, 守戰固, 不罷北.
『효경』」이 ‘천자(天子) - 제후(諸侯) - 경대부(卿大夫) - 사(士) - 서인(庶人)’을 말하고 있는데 비하여 ‘인주(人主) - 인신(人臣) - 사민(士民)’으로 간략화한 것은 「효행」편이 보다 현실적인 당시의 체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여기 말하는 효의 공능(功能)이란 결국 오늘날로 말하자면 컨센서스(consensus, 합의)가 이루어지고 사회협동(cooperation)이 이루어지는 어떤 정신적 바탕 같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 특기할 사실은 ‘인신효(人臣孝), 즉사군충(則事君忠)’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미 효를 정치적 맥락에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효의 충화(忠化)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후대의 충화(忠化)된 관계처럼 사친을 사군에 복속시키고 있지는 않다. 진정으로 사친의 효를 실천하면 사군도 충(忠)하게 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충’은 복종이라는 사회적 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의 맥락이라기보다는 사군의 진정성 같은 내면의 덕성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정치적인 맥락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효경』이나 「효행」 편의 ‘충’은 아직도 유교 본래의 의미맥락을 상실하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면, 『논어(論語)』 내에서 ‘충(忠)’이라는 글자는 단 한 번도 군(君)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 「팔일」 제19장의 ‘신사군이충(臣事君以忠)’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뜻이지 ‘충성’이라는 뜻은 아니다. 여기 ‘인신효(人臣孝), 즉사군충(則事君忠)’은 『효경』 「사장(士章)」의 ‘이효사군즉충(以孝事君則忠)’을 발전시킨 것인데, 『효경』의 문장 또한 ‘복종’의 충으로 해석할 수 없다.
그리고 ‘처관렴(處官廉)’은 「효경』 「응감장(感應章)」의 ‘수신신행(修身愼行), 공욕선야(恐辱先也)’와 내면적인 관련이 있다. 이렇게 『효경』텍스트와 『여씨춘추(呂氏春秋)』 「효행」 편 텍스트는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대저 효는 삼황오제(三皇五帝)【옛 성왕들의 총칭. 고유주(高誘注)에는 삼황을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여와(女媧)로, 오제를 헌원(軒轅)ㆍ전욱(顓頊)ㆍ고신(高辛)ㆍ제요(帝堯)ㆍ제순(帝舜)으로 해설하여 놓았다】의 본무(本務)이며 만사(萬事)의 기강(紀綱)이다.
夫孝, 三皇五帝之本務, 而萬事之紀也.
그리고 여기 ‘무본(務本)’의 사상은 『논어(論語)』 「학이」에 나오는 ‘군자무본(君子務本), 본립이도생(本立道生). 효제야자(孝弟也者), 기위인지본여(其爲仁之本與)!’라는 테마의 발전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논어(論語)』의 로기온은 유약(有苦)에게 속하는 것이므로 「효행」 편의 저자가 유약학파와 관련을 맺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유약학파가 전국시기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단지 그 주제를 발전시킨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학이」 편이 편집되었을 당시 이미 유약의 말이 증자학파에게 흡수되어 증자학과 내에서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장.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천자
대저 하나의 원칙을 굳게 지키면, 백 가지로 좋은 결과가 도래하며 백 가지로 나쁜 일들이 사라지며, 천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따르게 되는 상황이란 ‘효’가 그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夫執一術而百善至, 百邪去, 天下從者, 其惟孝也.
‘집일술(執一術)’의 ‘술(術)’은 요즈음의 말처럼, 기술이나 술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이나 원리, 즉 도(道)를 의미한다. 옛말에는 ‘유도(儒道)’도 ‘유술(儒術)’이라고 했다. ‘일술(一術)’은 효라는 원칙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평가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가 친부모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요, 그가 사회적 인사들을 사귀는 방식은 평가에서 뒤로 돌려야 한다. 반드시 먼저 그가 중요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을 살펴야 하고, 가벼운 관계의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나중에 살펴도 좋다.
故論人必先以所親, 而後及所疏. 必先以所重, 而後及所輕.
지금 여기에 한 사람이 있어, 육친과 중요한 사람들에게 효경(孝敬)를 다하고, 먼 친척이나 가벼운 관계의 사람들에게도 소홀히 하거나 깔봄이 없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효도를 독실하게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왕(先王)이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이다.
今有人於此, 行孝敬於親重, 而不簡慢於輕疏, 則是篤謹孝道. 此先王之所以治天下也.
이 단에서는 앞에서 말한 ‘무본(務本)’의 사상이, 친(親)에서 소(疏)로, 중(重)에서 경(輕)으로 ‘확이충지(擴而充之)’되어 나가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나에게서 가깝고 본질적인 것을 바르게 실천하여 타인에게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을 정치의 본질이라고 본 것이다. 현금의 사회과학적 방법론과는 매우 다른 것이지만, 도덕과 사회적 원리의 분리라는 서구 사회과학의 방법론 자체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효율적인 사회과학적 질서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회의 리더의 도덕성이 확보되지 않을 때는 끊임없이 비생산적 문제가 발생하며 결국 그것은 대중의 피해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부모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을 미워하지 아니 하며,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을 깔보지 아니 한다. 부모를 섬기는 데 애경(愛敬)를 다하며, 그 감화의 빛이 백성 만민에게 두루 미치며, 사방의 문화적으로 낙후한 나라들에게까지 미치는 것, 이것이 바로 천자(天子)의 효이다.
故愛其親, 不敢惡人, 敬其親, 不敢慢人. 愛敬盡於事親, 光燿加於百姓, 究於四海, 此天子之孝也.
‘고애기친(故愛其親)’에서부터 ‘차천자지효야(此天子之孝也)’까지는 『효경』 「천자장(天子章)」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愛親者不敢惡於人. 敬親者不敢慢於人. 愛敬盡於事親而德敎加於百姓刑于四海. 蓋天子之孝也.’ 『여씨춘추(呂氏春秋)』의 편찬자들의 손에 『효경』 원본이 있었다는 사실의 확증이다. 여기서는 ‘천자의 효’가 ‘선왕지소이치천하(先王之所以治天下)’와 관련되어 있다.
3장. 부모의 몸을 물려받은 자식이 실천해야할 다섯 가지
증자가 말하였다: “우리의 몸은 부모의 몸의 연장태이다. 부모의 몸의 연장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어떻게 감히 공경하지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일상의 기거(起居)에 있어서 장중하지 아니 하면 그것은 불효이다. 임금을 섬김에 충성되지 아니 하면 그것은 불효이다. 관직에 임하여 공경함이 없으면 그것은 불효이다. 붕우를 사귐에 독실하지 아니 하면 그것은 불효이다. 전장에 나아가 진을 침에 용기가 없으면 그것은 불효이다.
曾子曰: “身者, 父母之遺體也. 行父母之遺體, 敢不敬乎? 居處不莊, 非孝也. 事君不忠, 非孝也. 莅官不敬, 非孝也. 朋友不篤, 非孝也. 戰陳無勇, 非孝也.
이 다섯 가지 행동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아니 하면 그 재앙이 부모에게 미칠 수 있으니, 어찌 감히 공경하지 아니 할 수 있겠는가?”
五行不遂, 災及乎親, 敢不敬乎?”
『효경』에는 공자가 증자에게 한 말로서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불감훼상(不敢毁傷)”이라고 한 것이 여기에서는 증자 자신이 한 말로서 나타나고 있다. ‘내 몸이 곧 부모의 유체(遺體)’라고 하는 말로써 보다 간략하고 강렬하게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여기 ‘유체(遺體)’란 ‘남긴 몸’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생명의 연장태, 즉 나의 몸은 부모의 몸의 익스텐션(extension)이라는 뜻이다. 나의 몸이 나의 소유가 아니라 부모의 몸의 연장으로서 이해될 때, 당연히 ‘불감훼상(不敢毁傷)’하게 될 것이다.
4장. 어떤 죄보다도 큰 죄
『상서(商書)』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형벌에 삼백 가지가 있어도 그 죄가 불효보다 중한 것은 없다.”
商書曰: “刑三百, 罪莫重於不孝.”
마지막의 ‘상서(商書)’의 말로써 인용된 것은 지금 우리가 ‘상서(尙書)’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일 텐데 현존하는 금ㆍ고문 『상서』속의 ‘상서(商書, 상商나라의 문서)’에는 전하지 않는다. 본시 ‘상서(尙書)’의 ‘상(尙)’은 ‘상대(上代)’라는 의미이다. ‘서(書)’는 ‘문서로서 기록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상서(尙書)’는 ‘고대의 공문서’라는 뜻인데, 그 속에 ‘상서(商書)’가 포함된다. 현행 『상서』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 인용문들을 위조로서 보는 경향이 강했는데, 최근 청화간(淸華簡)의 상황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서』의 범위를 벗어나는 ‘상서(尙書)’는 많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 『상서(商書)』의 인용문과 거의 같은 내용이 『효경』 「오형장(五刑章)」에는 공자의 말로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단의 증자의 말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예기』 「제의(祭儀)」 편에 나온다. 「제의」에는 ‘부독(不篤)’이 ‘불신(不信)’으로, ‘오행(五行)’이 ‘오자(五者)’로 되어 있다.
5장. 선왕이 천하를 다스린 근본 다섯 가지
증자가 말하였다: “선왕(先王)께서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이 되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었다. 덕이 있는 자를 귀하게 여기고[貴德], 본시 존귀한 자를 귀하게 여기고[貴貴], 오래 산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貴老], 손위의 사람들을 공경하고[敬長], 손아래 사람들을 자애롭게 대하는 것[慈幼], 이 다섯 가지였다. 이 다섯 가지야말로 선왕께서 천하를 안정되게 만드는 요체였다.
曾子曰: “先王之所以治天下者五, 貴德, 貴貴, 貴老, 敬長, 慈幼. 此五者, 先王之所以定天下也.
덕이 있는 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그가 성스러움에 가깝게 가기 때문이다. 존귀한 자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그가 임금을 보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산 사람들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그들이 나의 부친과도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손위의 사람들을 공경한다는 것은 그들이 나의 형과도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손아래 사람들을 자애롭게 대한다는 것은 그들이 나의 동생과도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所謂貴德, 爲其近於聖也. 所謂貴貴, 爲其近於君也. 所謂貴老, 爲其近於親也. 所謂敬長, 爲其近於兄也. 所謂慈幼, 爲其近於弟也.”
아가페의 실천이 가까운 나의 느낌으로부터 확충되어 나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와는 아주 다른 방식이다. 신앙을 통한 결단(바울적 테제)과 도덕을 통한 점진적 수양과 확충(효의 테제), 그 어느 것이 더 실제적으로 인간세의 선(善)을 구현할지는 독자들 스스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 단의 내용도 거의 같은 모습으로 『예기』 「제의(祭儀)」 편에 나온다. 「제의」 편에는 ‘귀덕(貴德)’이 ‘귀유덕(貴有德)’으로 되어 있고, 마지막의 ‘제(弟)’가 ‘자(子)’로 되어 있으며, 문장 스타일에 약간의 출입이 있다.
6장. 종묘를 지키듯 몸을 지켜야 하는 이유
증자가 말하였다: “부모님께서 낳아주신 이 몸, 자식된 자로서 어찌 감히 그 생명을 잃게 할 수 있으랴! 부모님께서 내가 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해주신 이 몸, 자식된 자로서 어찌 감히 폐(廢)하리오! 부모님께서 온전한 생명체로서 부여하여 주신 이 몸, 자식된 자로서 어찌 감히 결손케 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강을 건널 때도 배를 타고 건널지언정 함부로 헤엄쳐 건너지 아니 하고, 길을 갈 때에도 샛길로 다니지 아니하고 당당히 대로를 걷는다. 내 몸의 지체를 마치 종묘와 같은 성전을 지키는 것처럼 온전하게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효인 것이다.”
曾子曰: “父母生之, 子弗敢殺. 父母置之, 子弗敢廢. 父母全之, 子弗敢闕. 故舟而不游, 道而不徑, 能全支體, 以守宗廟, 可謂孝矣.”
『효경』의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불감훼상(不敢毁傷)”의 논리를 아주 극대화시켜 아름다운 레토릭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효의 철학(The Philosophy of Xiao)’은 ‘몸의 철학(The Philosophy of Mom)’이라는 것이다. 몸의 온전함이 곧 효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사상은 생명의 고귀함을 가르쳐주는 위대한 철학이다.
그러나 이 ‘불감훼상(不敢毁傷)’의 논리를 체제순응의 정언명령으로 해석하면 인간을 편협한 이데올로기의 질곡으로 빠뜨리는 족쇄일 수도 있다. 내 몸을 종묘(宗廟)와 같은 성전으로 생각하고 지키라는 표현은 참으로 함축적이고 강렬하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내 몸’이야말로 교회가 될 것이요, 유대교도들에게는 ‘내 몸’이야말로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종묘라는 의미에는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적통의 의식과 역사의식이 배어있다. 내 몸이야말로 혈통과 역사의 원천이다. 그래서 온전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평생 자기 몸을 종묘처럼 지켜온 증자가 임종을 지켜보는 제자들에게 “이제야 온전한 몸을 지키는 근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노라[而今而後, 吾知免夫]”고 말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논어』 「태백」에 실려있다.
‘주이불유 도이불경(舟而不游, 道而不徑)’은 『예기』 「제의」 편에 있는 ‘是故道而不徑, 舟而不游, 不敢以先父母之遺體行殆’라는 표현 속에도 나오고 있다. 「제의」 편에는 이 말이 뒤에 나오는 악정자춘(樂正子春) 고사의 후미에 붙어있다.
7장. 부모를 봉양하는 방법 다섯 가지
부모님을 잘 봉양하는 데는 다음의 다섯 가지 길(五道)이 있다.
養有五道.
① 사시는 집을 잘 수리하고, 주무시는 침대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음식을 적절하게 제공하는 것은 부모님의 신체를 봉양하는 길[養體之道]이다.
修宮室, 安牀笫, 節飮食, 養體之道也.
② 사시는 집을 오색(五色)으로 단장하고, 입으시는 옷을 오채(五采)로 무늬 놓고, 생활공간을 아름다운 문양으로 꾸미는 것은 부모님의 눈을 봉양하는 길[養目之道]이다.
樹五色, 施五采, 列文章, 養目之道也.
③ 육률(六律)【황종(黃種)ㆍ태주(太蔟)ㆍ고선(姑洗)ㆍ유빈(蕤賓), 이칙(夷則)ㆍ무역(無射)】을 바르게 하고, 오성(五聲)【궁(宮)ㆍ상(商)ㆍ각(角)ㆍ치(徵)ㆍ우(羽)】을 조화롭게 하며 팔음(八音)【악기의 여덟 가지 소재로서 음색(tonality)과 관계된다】을 골고루 섞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드리는 것은 부모님의 귀를 봉양하는 길[養耳之道]이다.
正六律, 龢五聲, 雜八音, 養耳之道也.
④ 오곡(五穀)을 잘 익혀 밥 짓고, 육축(六畜)【소ㆍ말ㆍ양ㆍ닭ㆍ개ㆍ돼지】을 잘 삶아 요리하고, 볶아 조미를 잘하여 맛있게 드시도록 하는 것은 부모님의 입을 봉양하는 길[養口之道]이다.
熟五穀, 烹六畜, 龢煎調, 養口之道也.
⑤ 부모님 앞에서 안색을 평화롭게 지니고 기뻐하실 말들을 고분고분 하며 나아가고 물러남을 공경하게 하는 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봉양하는 길[養志之道]이다.
龢顔色, 說言語, 敬進退, 養志之道也.
이 다섯 가지를 번갈아 향유케 하시는데 후덕하게 사용하면 참으로 효자다웁게 잘 봉양한다고 일컬을 만하다.
此五者, 代進而厚用之, 可謂善養矣.
이것은 단지 좁은 의미에서의 ‘부모님의 봉양’이라는 개념을 떠나 인간의 삶이 문화생활의 영위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부모님의 봉양은 곧 나 자신의 봉양이며, 곧 사회의 봉양이며, 문화의 성숙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오도(五道)라는 개념이, 인도 - 유러피안 어군에 공통된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의 오관(五官, Five Senses) 개념이 아니라, 체(體)ㆍ목(目)ㆍ이(耳)ㆍ구(口)ㆍ지(志)라는 것도 특기할 사항이다. 그리고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음악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존중이 있다는 것도 특기할 사항이다.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에 의하여 황종으로부터 중려에 이르는 12율이 순차적으로 생성되는 음정의 법칙을 논한 최초의 문헌이 바로 『여씨춘추(呂氏春秋)』이다. 그리고 12율을 12기(紀)에 대응시키고 있다. 묵가의 비악론(非樂論)에 대한 강력한 아폴로지(apology, 변호)로서, 음악 문화의 중요성을 총체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8장. 발을 다치자 근심스런 낯빛이 어린 악정자춘
악정자춘(樂正子春)이 당(堂)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다쳤다. 다 나았는데도 수개월 동안 외출을 하지 않았고, 또한 근심어린 낯빛이 있었다.
樂正子春, 下堂而傷足, 瘳而數月不出, 猶有憂色.
악정자춘의 문인(門人)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선생님께서는 당에서 내려오시다가 발을 다치셨는데, 다 나았는데도 수개월 동안 외출도 안 하시고, 또한 근심어린 얼굴빛이시온대, 감히 그 까닭을 여쭈어도 되겠나이까?”
門人問之曰: “夫子下堂而傷足, 瘳而數月不出, 猶有憂色. 敢問其故?”
악정자춘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훌륭하도다, 그대가 이런 것을 질문하다니! 나는 일찌기 증자에게서 들었고, 증자께서는 중니 어른께 들으셨나니라. 그 말인즉 다음과 같다: ‘부모께서 온전하게 나를 낳아주셨으니 자식인 나 또한 온전하게 내 몸을 되돌려야 한다. 그 몸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고, 그 형체를 이그러뜨리지 말아야 가히 효라 일컬을 수 있나니라.’ 그러니 군자는 한두 걸음 사이에서도 이러한 효를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나는 효를 잊어버리고 몸을 다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근심하고 근신하고 있는 것이다.”
樂正子春曰: “善乎而問之. 吾聞之曾子, 曾子聞之仲尼: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不虧其身, 不損其形, 可謂孝矣.’ 君子無行咫步而忘之. 余忘孝道, 是以憂.”
그러므로 말한다. 나의 몸이라는 것은 결코 내가 사유(私有)하는 것이 아니다. 엄친(嚴親: 존엄한 부모)의 몸의 연장태인 것이다.
故曰: 身者非其私有也, 嚴親之遺躬也.
‘신체의 온전함의 보존’이라는 몸의 테마가 계속 강조되고 있다. 우선 악정자춘(樂正子春)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는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악정자춘 자신의 말로써 살펴볼 때, 그는 증자의 직전제자인 것처럼 기술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공자의 손제자(孫弟子)가 되며, 자사와 비슷한 시기가 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가능성은 희박하다. 증자의 문인이며 효로써, 혹은 효에 관한 이론가로서 이름이 높았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증자의 직전제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훨씬 후대에 이름이 난 인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하여튼 여기서는 증자의 직전 제자로서 기술되고 있다.
『춘추공양전』 소공(昭公) 19년 하휴(何休)의 주(注)에 ‘악정자춘은 증자의 제자이며 효로써 이름을 날렸다[樂正子春, 曾子弟子, 以孝名聞].’라고 되어 있고, 『한비자』 「현학(顯學)」편에 공자가 죽고나서 공자의 학풍이 8파로 나뉘었다고 했는데, 그 8파 중에 ‘악정씨지유(樂正氏之儒)’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효에 관하여 증자의 학풍을 이어 일가를 이룩한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그리고 「설림하(說林下)」편에는 제나라가 노나라를 정벌하여 노나라의 보물인 참정(讒鼎: 거대한 세발솥)을 요구했으나 노나라의 군주가 가짜 참정을 내놓자, 제나라 사람이 그럼 악정자춘에게 감정을 의뢰하자고 한다. 그의 말이라면 믿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맥락에서 보면 악정자춘은 노나라 사람일 것이다. 당대의 제후들에게 신망이 높았던 인물로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孟子)』라는 서물 속에서는 악정자(樂正子)는 맹자의 제자로서 이름이 극(克)인 인물로서 나온다.
「효행」 편이 악정자춘 학파의 사람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진기유陳奇猷), 그것은 너무 안이한 비약일 것이다. 악정자춘도 「효행」의 한 전형적 모델로서 그 캐릭터만 빌려온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효행」 편의 악정자춘 이야기가 『예기』 「제의」 편에 나오며, 또 『대대례기』 「증자대효(曾子大孝)」편에도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의」와 「증자대효」는 거의 비슷한 양식으로 기술되고 있는데, 「효행」과는 양식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문장양식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제의」와 「증자대효」는 「효행」의 기사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효행」 편의 기술이 더 간략하며 오리지날한 형태임이 틀림이 없다. 대체적으로 『효경』 「효행」 「제의」 「증자대효」는 동일한 시대의 패러다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시기적으로 보자면 『효경』(전국말기) → 「효행」(진제국형성시기) → 「증자대효」(한초 대덕戴德 편찬) → 「제의」(한초 대성戴聖 편찬)의 순서로 배열될 수 있다.
『효경』 | → | 「효행」 | → | 「증자대효」 | → | 「제의」 |
전국말기 | 진제국형성시기 | 한초 戴德 편찬 | 한초 戴聖 편찬 |
9장. 근본이 되는 가르침인 효를 논하다
백성에게 가장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효(孝)라고 말하며, 그 효를 실천하는 것을 봉양[養]이라고 말한다.
民之本敎曰孝, 其行孝曰養.
봉양하기는 그래도 쉬운 것이나, 공경[敬]하기는 어렵다. 공경하기는 그래도 쉬운 것이나,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安]은 어렵다.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은 그래도 쉬우나,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까지 효도를 완수하는 것[卒]은 어렵다.
養可能也, 敬爲難. 敬可能也, 安爲難. 安可能也, 卒爲難.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그 몸을 공경히 행하여 부모에게 오명을 남기는 일이 없다면 비로소 효도를 완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효)을 인(仁: 어질게 감지하는 것)하게 하는 것이며, 예(禮)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밟은 것(履: 바르게 실천함)이며, 의(義)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마땅하게 하는 것이며, 신(信)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신험있게 만드는 것이며, 강(疆: 강함)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강하게 하는 것(疆: 부지런히 노력함)이다.
父母旣沒, 敬行其身, 無遺父母惡名, 可謂能終矣. 仁者仁此者也, 禮者履此者也, 義者宜此者也, 信者信此者也, 彊者彊此者也.
인생의 즐거움(樂)이란 바로 이것에 순응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요, 형벌(刑)이란 바로 이것에 역행함으로써 지어지는 것이다.
樂自順此生也, 刑自逆此作也.
‘효행(孝行)’이란 편명대로 효의 구체적 행동이나 실천에 관한 테마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하면 『효경』은 효의 추상적 원리와 사회적 준칙으로서의 전체 체제적 논의에 중점을 두고 있다. “봉양하기는 쉬워도 공경하기는 어렵다”는 주제는 『논어』 「위정」에 나오고, 또 효의 완수라는 개념은 『효경』 「기효행장」과 관련있다. 그리고 이 단의 논의도 『예기』 「제의」 편과 『대대례기』 「증자대효」 두 곳에 나오고 있다.
그 양식에 관한 분석은 앞 단의 논의와 대차가 없다. 같은 자료가 다양한 문헌에서 조금씩 문장양식을 달리하여 나타나는 문제에 관하여 양식사학(Foringeschichte)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이러한 문제는 향후 동방고전학의 과제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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