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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이인 제사 - 15. 공자, 하나의 도로 모든 걸 꿰뚫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이인 제사 - 15. 공자, 하나의 도로 모든 걸 꿰뚫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2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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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공자, 하나의 도로 모든 걸 꿰뚫다

 

 

4-1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증자의 이름)! 나의 도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
4-15.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증자는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曾子曰: “.”
 
공자께서 나가시자, 증자의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증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충() 과 서()일 뿐이다.”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이 장에 대한 나의 논의는 학이(學而)4학이(學而)10의 안()에 대강 그 윤곽이 드러나 있다. 전통적으로 이 장의 언사가 중후하게 취급되게 된 것은, 공자 생전에 사상을 그의 정통 수제자인 증자(曾子)가 공자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표현한 절세의 명언을 본 장이 담고 있는 것처럼 간주하여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 자체에 대한 비평적 시각이 없이 단지 그 공시적인의 미만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추상적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특히 주자는 집주(集註)를 하면서 이 장을 공자의 근본사상을 간파한 명언으로서 아필시키고, 그의 채용론적인 틀 속에서 충서(忠恕)를 해석하였다. ()은 지성무식(至誠無息)하는 도()의 체(), ()는 만물(萬物)각득기소(各得其所)하는 도()의 용()이다. ()은 나의 내면적 덕성(德性)을 다하는 진기(盡己)를 이름이요, ()는 사회적 관계에서 나를 미루어 생각할 줄 아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덕성이다. ()이란 천도(天道)요 서()란 인도(人道). ()이란 무망(無妄)이요, ()란 그 무망(無妄)의 충()을 실천하는 것이다. ()은 체()요 서()는 용()이다. ()은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요 서()는 천하지달도(天下之達道). ()시경』 「주소(周頌)에서 말하는 유천지명(維天之命), 오목불이(於穆不已)’의 측면이요, ()주역(周易)』 「단전(彖傳)에서 말하는 건도변화(乾道變化), 각정성명(各正性命)’의 측면이다. 다시 말해서 서()와 충()의 관계는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하는 공자 사상의 핵심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충()의 글자 모양이 중()과 심()의 합성이요, ()의 글자 모양이 여()와 심()의 합성이라는 전통적 해석에 의거하여, ()을 중심(中心)의 내면적ㆍ천명적 세계의 문제로 간주하고 서()를 여심(如心)의 외면적ㆍ사회적 세계의 문제로 간주하여 병렬되는 한 쌍의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대학으로 말하면, ()명명덕(明明德)’이요, ()는 신민(新民)이다. 주자 주해의 언어를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 ()
도지체(道之體) 도지용(道之用)
지성무식(至誠無息) 각득기소(各得其所)
만수지소이일본(萬殊之所以一本) 일본지소이만수(一本之所以萬殊)
진기(盡己) 추기(推己)
중심(中心) 여심(如心)
천도(天道) 인도(人道)
무당(無妄) 소이행호충(所以行乎忠)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 천하지달도(天下之達道)
() ()
유천지명 오목불이(維天之命 於穆不已) 건도변화 각정성명(乾道變化 各正性命)
상달(上達) 하학(下學)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나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이론의 결구 속에서 이 장의 언사를 해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장의 언어는 철저히 통시적 흐름속에서 분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장의 언사는 공자사상의 오리지날한 진면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것은 후대에 증자학계열에서 증자학파의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기존의 대화의 파편을 합성하여 날조한 순수한 픽션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본 장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이 장을 날조한 후대의 증자학파의 시대의식의 반영일 뿐이다. 브룩스는 이 파편이 학이(學而)편과 함께 15위령공뒤로 가야한다고 보고 있다. 성립연대는 공자의 7대손인 자고(子高)가 공자학단을 리드하고 있었던 시대라고 본다. 그것은 전국 말엽의 BC 294년경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성립연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핵심적 사실은 공자의 입에서 나온 말 그대로의 기록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 증자는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의하면 공자보다 46세 연하의 인물이다. 그러니까 그는 매우 어린 말년제자로서 그가 공자의 학단에 들어온 것은 공자가 죽 기 몇 년 전의 지극히 짧은 순간에 국한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공자 살아 생전에 학단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든가, 공자와 사상의 핵심을 맞상대하여 논구할 수 있는 중후한 인물로 간주된다든가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드라마가 아니다. 더구나 공자 살아 생전에 그가 ()’로 호칭될 만큼, 자신의 제자를 거느린 일가(一家)의 마스터[]의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장과 함께 공문의 막내둥이 아이였다. 선진(先進)2에서 열거하는 사과십철(四科十哲)의 명단에 그가 끼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선 그런 평가의 대상이 될 나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공자로부터 직접 적인 평가의 대상이 된 인물이 아니었다. 단지 선진(先進)17에서 삼은 좀 아둔한 아이[參也, ]’라는 가벼운 평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증자는 공자 사후 후대의 공자학단에서 자()로 불리울 만큼, 공자학단을 리드하는 중요한 인물로서 성장했다. 그가 공자 사후공자학단의 리더로서 성장한 배경은 그의 아버지 증석(曾晳)이 제자였다는 사실석에 관한 논어의 기사는 오직 한번 선진(先進)25에 나오 는데 그 증석이 증자의 아버지라는 보장도 없고, 또 그 중석은 공자의 이미지를 대상화시킨 허구적 인물일 수도 있다. 증석이 증자의 아버지로서 이미지를 굳힌 것은 맹자라는 서물 속에서였다. 증자 문인의 날조일 수 있다과 그가 무성(武城) 출신의 노나라 사람이었다는 사실그가 과연 무성 출신의 사람이었는지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다. 전목의 선진제자계년(先秦諸子繫年)에 다양한 설이 소개되어 있다 등으로 유추해볼 수도 있을 것이지만, 하여튼 후대의 맹자 계열에서 증자(曾子)를 공자학통의 적통으로 존숭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이 가장 증자의 공단 내에서의 지위를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주자는 이 () - () - () - () - () - () - 주공(周公) - 공자(孔子) - 증자(曾子) - 자사(子思) - 맹자(孟子) - 주자(朱子) - 정자(程子)’의 계보를 마치 선가(禪家) 전등(傳燈)의 계보처럼 절대시하고 맹신했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학문의 적통을 도불(道佛)의 이단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패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시각에서 본장을 바라본다면 이 장의 언어야말로 공맹의 적통성의 핵심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우주의 열쇠와도 같은 단서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침소봉대되어 주자의 의식 속에 부상했을 것이고, 그 후 신유학의 모든 논쟁은 마치 이 충서(忠恕) 두 마디의 암호를 푸는 열띤 경쟁인 양 전개되어 나갔던 것이다.

 

여기 우선 증자(曾子)’라 표현한 것은, 이미 이 파편 전체가 증삼(會參)을 자()로서 떠받드는 증삼(曾參)의 제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자출(子出), 문인문왈(門人問曰)’이라 할 때의 문인(門人)’은 공자의 직전제자들이 아니요, 증삼(會參)을 자(, Master)로 모시는 손제자(孫弟子)들인 것이다. 즉 공자의 제자의 제자들인 것이다. 문인(門人)을 증 삼의 제자들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황간(皇侃)의 소()나 형병(邢昺)의 소()가 모두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자와 증자의 대화가 이루어진 현장은 당연히, 증자가 어느 학단을 형성하고 있는 별도의 장소가 될 것이며, 이 사건은 공자가 일부러 증자의 처소를 방문했을 때 일어난 사건이 되는 것이다. ‘자출(子出)’이란, 공자가 증자와 대화를 나눈 후 증자의 처소를 떠났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공자가 떠난 후에 증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증자 사이에 있었던 대화 내용에 관해 되물은 것이다[하위야(何謂也)?]. 이에 대하여 증자가 증자의 제자들을 향해 부자지도(夫子之道), 충서이이의(忠恕而已矣)’라고 자기 선생의 도를 해설한 것이다.

 

이것은 썩 멋있게 구성된 드라마임이 분명하다. 공자가 수레를 타고 가다가 사랑하던 제자가 손제자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곳에 들러 자신의 사상의 핵심을 암시만 하고 홀연히 떠나 버린다. 그 말을 미소 짓는 가섭처럼, 증자 혼자만 알아들었다. 증자 주변의 제자들은 궁금하기만 했다: “도대체 뭔 얘기가 오간 것이옵니까?” 이때 증자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입을 연다: “나의 선생님의 길은 충과 서일 뿐이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은 후대의 증자학단의 현황만을 생각했지, 과연 그 증자학단의 종주인 증자 자신이 공자와 어떤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그 나이와 서열, 그리고 그러한 드라마가 벌어진 현실적ㆍ역사적 상황의 추론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드라마 작가는 드라마의 구성만을 생각했을 뿐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공자(孔子)와 공자의 애제자 자공(子貢)과의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두 장면의 파편을 드라마틱하게 합성한 것이다. 이 합성자들은 자공(子貢)을 증자(曾子)로 바꾸었다. 위령공2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대화가 공자와 자공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다. 공자와 자공이 유랑의 길을 헤매고 있던 적적하고도 한가로운 때였을 것이다. 그때 공자는 갑자기 옆에 있던 자공에게 묻는다.

 

사야! 너는 내가 뭘 많이 배워서 많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이러한 공자의 갑작스러운 자기 확인의 질문에 자공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황망히 자공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선생님처럼 많이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암 그렇구말구요. 그렇지 않단 말입니까[. 非與]?”

 

여기 ()’이라는 대답과 비여(非與)’라는 반문은 매우 아름다운 표현이다. 공자 당대의 구어적 진실함이 유감없이 표출된 아름다운 표현인 것이다. 이때 공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공의 열띤 모습을 자애롭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 16:16)라고 확신에 찬 대답을 던지는 베드로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는 예수처럼베드로의 대답은 이미 기독론적으로 윤색되었다, 공자는 자공을 따스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공자는 말한다:

 

! 그렇지 않다! 나의 도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단다[非也. 予一以貫之].”

 

여기 이인(里仁)15의 첫 도입 부문은 위령공2의 파편을 도용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도용과정에서 명백한 의미의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령공2의 대화가 훨씬 더 오리지날한 공자의 사유의 측면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위령공2에서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주장이 성립한 맥락은 ()’의 내용을 몇 마디의 개념으로써 규정하기 위한 목적을 내포하고 있지를 않다. 그것은 단지 사람들이 자신의 학문의 세계를 박학다식으로 오해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디펜스일 뿐이다. 공자가 박학다식한 사람이라구? 공자는 말한다. 나의 도는 박학다식한 지식의 현학적 나열에 있지 아니하다. 나의 생명력은 그 박학다식한 듯이 보이는 잡다한 현상을 하나로 꿰뚫어버리는 어떤 우주적 통찰력(cosmic inspiration)에 있다. 그 통찰력이 결여된 박학다식은 철학의 자격이 없다. 공자가 말하고 있는 ()’이란 한 개의 단어나 한 개의 개념이 아니요, 그의 사상 전체를 전관하고 일관하는 인테그리티(integrity), 즉 통합성의 문제이다.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공자의 디펜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최종적 주장이며, 이인(里仁)15에서처럼 다시 해설을 요하는 암시적 언어가 아니다. 이인(里仁)15일이관지(一以貫之)’()’의 요약적 측면만을 강조한 수량적 개념이다. 그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다음, 위령공23에는 자공과 공자 사이에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생생한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자공은 공자에게서 수많은 가르침을 배웠다. 그러나 무엇인가 한마디로써 그 많은 가르침을 요약할 수 있는 금언을 가슴에 새기고 싶은 어떤 충동을 갑자기 느꼈던 모양이다. 자공은 공자님께 여쭌다.

 

선생님! 제가 단 한마디로써 종신토록 그것을 실천에 옮기며 살 수 있는 그런 것이 있겠습니까[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공자는 한참 숙고하더니 말문을 연다.

 

그래? ()일 꺼야! 서라는 것은, 자기가 원치 아니하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아니하는 것이란다[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여기 위령공23에서 우리는 증자가 이인(里仁)15에서 부자지도(夫子之道), 충서이이의(忠恕而已矣)’라고 언표한 내용의 프로토타잎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공이 원래 질문을 던진 본래적 맥락은 공자의 전체사상의 하나()로 된 요약이 아니라, 자기 삶의 행동지침을 요약적으로 표현한 요청이었다. 그것은 즉 개념적 축약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의 일관된 준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공자는 서()를 제시했다. 그리고 공자는 서()를 개념적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행동의 준칙으로서 제시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준칙을 명료하게 언표했다. 그 언표의 포뮬레이션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기가 원치 아니하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이것은 안연2, 공야장(公冶長)11에도 같은 맥락에서 언급되고 있는 공자사상의 핵심이다. 그것을 긍정적으로 뒤집어 표현하면 옹야28에 나오는 내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내가 달하 고자 하면 남도 달하게 한다[기욕립이립인(己欲立而立人), 기욕달이달인(己欲達而達人)]’이 된다. 내가 나에게 베풀 수 없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이것은 양심의 절대적 명령이요, 선의지의 정언적 명령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네 의지의 격률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Handle so, daß die Maxime deines Willens jederzeit zugleich als Prinzip einer allgemeinen Gesetzgebung gelten könne. 실천이성비판54).” 공자는 이러한 정언명령을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이라 표현했다. ‘이라는 것은 가언적 명령이 아니요 정언적 명령임을 나타낸다. ()와 인()의 대비는 나를 포함한 인간 누구에든지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법칙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지는 ()’의 자율적 입법의 원리에 속하는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공자는 임마누엘 칸트가 정언명령으로서 입법화한 양심의 명령을 단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것은 ()’! 위령공23의 표현은 생동감이 있다. 그러나 이인(里仁)15의 표현은 그러한 생동감을 개념화시키고 그 생명력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서()를 충()에 종속시켜버렸다. 그래서 다산(茶山)은 이 장을 해석함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서()가 충()에 앞서는 것이며 충()은 서()를 실현할 수 있는 소이(所以)로서의 나의 존재의 근원일 뿐이라고 역설했다.

 

 

자기의 내면적 가능성을 다 발휘하는 것이 충이요, 자기를 미루어 타인에게로 확충해나가는 것이 서다. 그러나 충과 서는 결코 대립적인 두 사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서가 그 근본이 되는 것이요, 서를 행하게 하는 까닭이 충인 것이다. 사람으로써 사람을 섬긴 후에야 충의 이름이 있게 되는 것이 지나 홀로로써는 도무지 충이라는 것이 성립하지 않는다. 비록 나 스스로 먼저 내 본질을 다 발휘하려고 해도 어디로부터 착수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요새 사람들이 모두 오도(吾道: 공자의 도)에 있어서는 충이 먼저고 서가 나중에 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바야흐로 충을 실현했을 때에는 이미 서는 오래 전부터 실천해왔기 때문에만 가능한 것이다.

盡己之謂忠, 推己之謂恕也. 然忠恕非對待之物, 恕爲之本, 而所以行之 者忠也. 以人事人而後有忠之名, 獨我無忠. 雖欲先自盡己, 無以着手. 今人皆認吾道爲先忠而後恕, 失之遠矣. 方其忠時, 恕已久矣.

 

 

다산의 이러한 주장은 서()의 실천적 측면이 공자의 사상의 핵심을 이해하는데 보다 본질적이라고 하는 강력한 아폴로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자의 체용(體用)적 도식을 파괴하는 원의(原義)적 맥락에 접근하고 있지만, 다산의 맹점은 역시 이 증자의 말을 텍스트 비평이 없이 전적으로 역사적 사실로서 긍정하고 출발한다는 데에 있다. 다산(茶山)은 충()은 중심(中心)을 다하는 것이며[, 謂盡中心也] ()란 자기를 헤아려 사물을 헤아리는 것[, 謂忖己度物也]이라는 형병의 소를 경문의 본지를 얻은 바꿀 수 없는 정설이라고 못 박는다[, 此疏正得本旨, 不可易也].

 

내가 생각키에 이인(里仁)15는 원래 위령공편의 말미에 붙어 있었던 것이었다. 위령공2 - 23 - 이인(里仁)15는 한 세트를 이루는 편집체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인15의 내용이 위령공편에 있으면 너무 완연하게 앞의 두 장을 합성한 드라마적 성격이 드러나 버리므로 논어전체의 편집자가 그 마지막장을 분리시켜 이인(里仁)편으로 삽입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 서() 앞에 충()을 가미한 것은 충()과 서()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체용(體用)이나 천인(天人)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를 충()에 종속시키려고 하는 후대의 효경적 발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인(里仁)15의 편집자의 의도는 충()중심(中心)’이라고 하는 내면적 시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이효사군(以孝事君)’의 충()으로 적나라하게 본 것이다. 즉 통일 제국의 출현을 향해 가는 유교의 대세를 반영한 것이다. 공자의 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인가? 그것은 사()가 임금에게 충성하고 동료나 일반백성들에게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베풀지 않는 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일 뿐이다! 증자학파의 공자 이해는 이러한 식의 협애한 효론(孝論)에 너무 구애되어 있다. 한대(漢代)의 주석가나 송대(宋代)의 주석가가 모두 이러한 적나라한 증자학파의 충서(忠恕)’의 이해를 추상화시키고 이념화시키고 형이상학적 허구로 만들어 버렸다. 공자의 사상에 있어서 충서(忠恕)’는 전혀 중심테마가 될 수가 없는 증자학파계열의 소론(小論)일 뿐이다. 공자사상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인()이며, ()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있다. 증자학파의 소론인 충 서가 침소봉대되어 공자사상을 관통(貫通)하는 전일(全一)한 사상인 것처럼 오해되고 왜곡되고 확대해석되는 것은 단지 텍스트 비평의 시각이 결여된 데서 유래된 양천 년의 운예(雲翳)일 뿐이다.

 

()’그렇습니다라는 긍정의 공손한 말이다. 노자20에는 유지여아(唯之與阿), 상거기하(相去幾何)?’라는 말이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이 있으나, ()는 공손한 대답이요, ()는 거친 무례한 대답을 나타낸다. 그것은 모두 발음상의 느낌에서 유래되는 어떤 가치를 나타내는 말들이다. 노자는 ()라 말한들, ()라 말한들, 뭐 그리 큰 차이가 있겠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예기』 「곡례상에는 선생소무낙(先生召無諾), 유이기(唯而起)’라는 말이 있다. “선생이 부르실 때에는 []’하고 미적미적 대답해서는 아니 된다. 반드시 공손하게 예[]하고 말하고 즉시 일어난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는 공손한 긍정의 답변임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으로 발음하는 것이 통례이다. ‘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주장은 온당치 못하다. 사서율곡언해궁본사서언해(宮本四書諺解)가 모두 ᄉᆞᆷ으로 읽고 있다. 중국어로도 증삼(曾參)‘Zeng-shen’으로 읽는다. 주희는 소금(所金) , 으로 읽었다. 물론 반절의 우리말 발음이 주희 당대의 발음을 정확히 반영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은 소금(所金) 반이다. ‘()’는 상성이다. 삼호(參乎)’라는 것은 증자를 이름[]으로 부르고 그에게 고유하시는 것이다. ‘()’이란 통한다[]는 뜻이다. ‘()’라는 것은 대답을 즉시하는 것이며 어떤 의심의 톤이 배어있지 않은 것이다. 성인의 마음은 혼연히 하나의 리()로 되어 있어, 넓게 대응하며 세밀하게 정곡을 찌르니, 그 용(: 나타나는 기능)이 각기 상황에 따라 다르다. 증자는 그 용()에 있어서는 이미 상황에 따라 세밀하게 관찰하고 힘써 실천하는 경지에는 이르렀으나 아직 그 체()의 하나됨[一理]은 알지 못하였다. 부자께서는 증자가 참된 것을 축적하여 왔고 힘써 행하는 것이 오래되어 마침내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셔서 이름을 불러 고유해주신 것이다. 그러자 증자는 과연 묵묵히 그 뜻을 알아차리고 빨리 응하였고 의심이 없었다.

, 所金反. , 上聲. 參乎者, 呼曾子之名而告之. , 通也. 唯者, 應之速而無疑者也. 聖人之心, 渾然一理, 而泛應曲當, 用各不同. 曾子於其用處, 蓋已隨事精察而力行之, 但未知其體之一爾. 夫子知其眞積力久, 將有所得, 是以呼而告之. 曾子果能黙契其指, 卽應之速而無疑也.

 

자기의 내면을 다하는 것을 ()’이라 이르고, 자기를 미루어 생각하는 것을 ()’라 이른다. ‘이이의(而已矣)’란 다 말하여 더 말할 것이 없다는 표현이다. 부자의 일리혼연(一理渾然)과 범응곡당(泛應曲當)의 경지는 비유하면 천지가 지성무식(至誠無息)하여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음과 같은 것이다. 이외로는 더 남은 법()이 없고, 또한 더 미루어 생각할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증자는 이러한 경지를 보았으나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들이 진기(盡己)’하고 추기(推己)’해야 하는 명목을 빌어 이 경지를 명료하게 드러내었으니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려고 한 것이다. 지성무식(至誠無息)이란 도의 체(), 만수()의 하나된 근본이다. 만물이 각득기소(各得其所)하는 것은 도의 용()이요, 하나의 근본이 만 갈래의 개물로 나뉘어가는 까닭이다. 이로써 보면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실내용을 깨달을 수 있다. 혹자는 중심(中心)()’이요, 여심(如心)()’라고 하는데 그 뜻을 보면 통하는 바가 있다.

盡己之謂忠, 推己之謂恕. 而已矣者, 竭盡而無餘之辭也. 夫子之一理渾然而泛應曲當, 譬則天地之至誠無息, 而萬物各得其所也. 自此之外, 固無餘法, 而亦無待於推矣. 曾子有見於此而難言之, 故借學者盡己推己之目以著明之, 欲人之易曉也. 蓋至誠無息者, 道之體也, 萬殊之所以一本也; 萬物各得其所者, 道之用也, 一本之所以萬殊也. 以此觀之, 一以貫之之實可見矣. 或曰: “中心爲忠, 如心爲恕.” 於義亦通.

 

정명도가 말하였다: “자기로써 직접 물()에 미치는 것은 인()이고, 자기를 미루어서 물()에 미치는 것은 서()이다. 중용(中庸)13()과 서()는 도와 거리가 멀지 않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충서는 하나를 가지고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 충은 천도(天道)이며, 서는 인도(人道)이다. 충은 무망(無妄)이며, 서는 충을 행하는 까닭이다. 충은 체()이며, 서는 용()이니, 충은 천하의 대본(大本: 큰뿌리)이며 서는 천하의 달도(達道: 달성해야 할 도)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이 중용에서 말하는 위도불원(違道不遠)’과 조금 다른 점은 하늘로써 움직인다는 것이다보다 그랜드한 우주론적 함의가 있다는 맥락 일 것이다.”

程子曰: “以己及物, 仁也; 推己及物, 恕也, 違道不遠是也. 忠恕一以貫之: 忠者天道, 恕者人道; 忠者無妄, 恕者所以行乎忠也; 忠者體, 恕者用, 大本達道也. 此與違道不遠異者, 動以天爾.”

 

정이천이 또 말하였다. “시경에서 말하는 유천지명(維天之命), 오목불이(於穆不已)’는 충이다.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건도변화(乾道變化), 각정성명(各正性命)’은 서이다.”

又曰: “‘維天之命, 於穆不已’, 忠也; ‘乾道變化, 各正性命’, 恕也.”

 

정이천은 또 말하였다: “성인께서 사람을 가르치실 때 각기 그 사람의 재질을 따라서 하시니,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라 하신 것은 오직 증자가 이러한 경지를 통달할 수 있기 때문에 공자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신 것이다. 증자가 다시 자기의 문인(門人)들에게 고할 때에 부자지도(夫子之道), 충서이이의(忠恕而已矣)’라고 말한 것을 부자께서 증자에게 말씀해주신 것과 같은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중용(中庸)에 이른바 충서위도불원(忠恕道不遠)’은 바로 현실적인 세계에서 배워서[下學] 고매한 천리의 세계에 이른다[上達]는 뜻이다.”

又曰: “聖人敎人各因其才, 吾道一以貫之, 惟曾子爲能達此, 孔子所以告之也. 曾子告門人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亦猶夫子之告曾子也. 中庸所謂 忠恕違道不遠’, 斯乃下學上達之義.”

 

 

너무 유명한 구절들이라서 세부적으로 풀이하지 않았다. 출전이 통째 로 이해되어야 오히려 문맥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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