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797)
건빵이랑 놀자
5.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난 리영희 선생님 12옥사를 천천히 둘러봤다. 평소에 관심 있던 분들이 많았기에 하나하나 곱씹듯이 둘러본 것이다. 상위 10%를 위한 나라 그러던 중 한 사람의 인터뷰 내용이 나의 두 눈을 붙잡아 두었다. 바로 리영희 선생님의 인터뷰 글이었는데, 그건 어쩌면 지금과 같은 ‘삼포시대’, ‘청년실업 100만명 시대’에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리영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네가 실업자인 건 자유의 대가니까 혜택이야. 넌 야생마 같은 아이잖니? 스스로 항상 잉여인간이고 청년백수라고만 생각했는데 야생마가 되니 어쩐지 신이 난다.똑같이 청년 실업에 잉여인간이라는 기분으로 괴로워할 젊은이들에게 뭔가 충고해주실 말씀이 없냐고 여쭙자 계속 사양하시다가 괴테 이야기를 꺼내셨다.- 괴테도 말이야. ..
4. 서대문 형무소와 남영동 1985 차가운 건물을 안내도에 따라 걷는다. 형무소는 역사가 박제된 공간이다. 분명 그곳에서 여러 감상을 느끼는 게 정상일 테지만, 박물관 자체가 그렇듯 그냥 휙 보고서 지나치니 어떠한 감상도 어리지 않는다. ▲ 차가운 건물, 그리고 박제된 역사. 그 안에 사람의 온기를 넣지 않으면 그건 그냥 '나와 상관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서대문 형무소보단 『남영동 1985』 지하에 재현된 고문하는 광경이나 고문 도구들은 ‘아플 것 같다’는 피상적인 느낌만 주었을 뿐, 그다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건 오히려 그만큼 지금 사람들이 영상이 주는 시각(청각)적인 충격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 그러더라 영상으로 본 베이징 자금성의 위용은 어마어마한데, 막상 현장에서 ..
3. 의주로에 경성감옥이 만들어진 이유 그렇다면 일본은 형무소를 왜 한양으로 들어서는 의주로의 초입길에 만든 것일까? ▲ 서대문 형무소가 만들어질 당시의 모습. 서대문 형무소는 왜 의주로에 만들어졌나? 일본은 청나라를 향해 시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나라의 사신이 들어오던 길목에 버젓이 감옥을 만들어 놓고 “청나라 너희들 이젠 조선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마!”라고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고 있으니, 연암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 「황교문답(黃敎問答)」에서 황제가 왜 열하로 피서를 떠났는지 밝힌 대목과 정조의 능행(陵幸) 장면이 떠올랐다. 연암은 삼종형(三從兄)을 따라 황제 고희연의 축하사절단 자격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몇날 며칠을 고생한 끝에 북경에 도착했지만, 황..
2. 서대문 형무소와 독립 선언 서대문형무소는 중국 사신들이 한양으로 들어오던 길목인 의주로(義州路)에 설치된 감옥이다. 영은문(迎恩門, 황제의 은혜를 영접하는 문)이 헐리고 독립문이 세워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독립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중화세계로부터의 독립선언은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그건 일본의 의도가 숨겨있음을 알 수 있다. ▲ 의주로는 조선시대에 주요 간선 도로 중 하나였다. 특히 중국 사신이 오던 길로 그들을 맞이하는 영은문이 있었고 모화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조금은 특이한 강화도조약 제1조 조선은 1876년에 최초의 근대조약을 맺는다. 지금 각 국가와 FTA를 체결하는 것처럼 조선은 주권을 가진 나라로 다른 나라와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게..
1. 들어가는 말: 과거를 ‘오래된 미래’로 만드는 방법 서대문 형무소는 꼭 한 번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애국심 때문에도, 순국선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역사가 어떤 현재적인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그걸 우린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해야 하는지 보기 위해서다. ▲ 단재학교 학생들이 카자흐스탄에 가게 되면서 학생 한 명과 오게 됐다. 볼거리는 많지만, 억지 비감을 강요하다 이미 재작년에 서대문 형무소에 방문했으니, 이번에 방문한 것까지 하면 두 번째 방문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지난번엔 그다지 감흥은 없었는데 이번엔 훨씬 많은 것들이 느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설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하나하나 곱씹듯이 보게 되니 그와 같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관람방향을 따라..
카자흐스탄 여행기 목차 여는 글 카자흐스탄 여행과 공감능력 1주차(알마티 한국어교육원) 13.06.14(금) 경계를 넘어서다비행기를 타고 알마티로알마티의 한국어 교육원 13.06.15(토) 정신승리란?도로 인프라와 서구중심주의긴장의 미학 13.06.16(일) 카자흐스탄의 택시고려인, 존경받는 민족이 되다카자흐스탄의 음식 13.06.17(월) 6월에 함박눈을 맞다알마티의 콕토베맛있는 걸 왜 먹질 못하니 13.06.18(화) 수수하게 밋밋하게전통과의 연결점인 유르타알마티 시내 돌아보기 13.06.19(수) - 아스타나로의 기차여행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21시간을 달리는 기차 13.06.20(목) - 아스타나 둘러보기 새 수도에 그린 꿈바이테렉과 카자흐스탄의 꿈자본의 중심지로 우뚝 서다한국문화원을 둘러보다이슬람..
81. 22일간의 여행, 68일간의 기록 끝으로 이 여행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읽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 또한 68일 동안 여행기를 정리하느라 힘들었지만, 이걸 읽어준 사람들도 분량이 만만치 않아 똑같이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안다. 카자흐스탄 여행기를 마쳤다 나에게 이 여행기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특별한 의미의 도전이 아닌, 여는 글을 쓸 때 가졌던 열정을 마지막까지 이어갈 수 있느냐 하는 도전 말이다. 그래서 여행기를 쓰는 내내 엄청 부담이 되었다. 자기 만족도에 부합되는 글을 쓰려다 보니, 때론 의욕은 과한데 글은 써지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래서 솔직히 여름방학 내내 이 여행기를 신경 쓰느라 다른 것을 거의 신경 쓰지 못했다. 어쨌든 그렇게 마음의 짐이었던 이 여행기..
80. 나를 아는 모든 이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그런 사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태일의 유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전태일의 삶 자체가 극도로 ‘나’만을 중시하던 시대에 ‘우리’를 회복하고자 했으며, ‘성공신화’를 좇던 시대에 ‘실패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 평화시장에 있는 전태일상.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룩한 경제발전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후, 극도의 이기주의와 기회주의가 판을 치던 때에 노동자들도 소외당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평화시장의 봉재공장에서 일하던 시다와 미싱사 보조 등은 사회의 약자로 자기 몸을 서서히 죽여가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공장이라 봐야 몇 평 되지 않는 공간에 널빤지로 위, 아래 공간을 나누어 허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79. 모두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쁠까 개인이 피폐해지면 공동체가 불안정해지며 결국 사회 전체가 붕괴된다. 이젠 밑도 끝도 모르는 지옥으로 치닫는 이와 같은 현실을 반성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들을 되찾아야 한다. 적어도 50년 전만해도 ‘나만 잘 산다’는 말은 통용되지 않았고, 지금도 자본이 미처 이르지 못한 사회엔 그와 같은 사회 형태가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인해질 때, 내가 살고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된다 아래에 나와 있는 예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유형무형의 삶들은 여전히 볼 수 있다. 우리 또한 이러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짐짓 ‘그런 마음은 불필요하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게 아닐까.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
78. 극단적 경쟁의식이 불인한 존재로 만든다 불인한 사람이 어떻게 성공하는지는 영화 『명왕성』을 통해 볼 수 있다. ▲ 교육의 문제를 전직 교사였던 감독이 흥미진진하게 다뤘다. 교육의 이름으로 괴물을 만들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자막을 통해 나오는 자살한 초등 6학년의 편지는 공부란 미명으로 사람이 어떻게 병들어 가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못한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이 편지를 보자. 죽고 싶을 때가 많다.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 물고기가 되고 싶다. 잘 되라는 이유로 다음 세대에게 막중한 짐..
77. 진도기록판과 경쟁의식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학생들과 함께 각자의 여행기를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쓴 후기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직도 카자흐스탄에 있는 것처럼 모든 기억이 생생하고 그 때의 감흥은 그대로다. ▲ 때론 성적으로, 때론 실적으로, 떄론 재산으로 비교한다. 워드작업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등장한 진도기록판 하지만 이젠 좀 더 냉정하게 카자흐스탄 여행기의 여는 글에서 썼던 ‘자기 자신을 돌아봤나? 인한 존재가 되었나?’라는 것을 짚어볼 차례다. 아이들마다 여행을 하는 동안 틈틈이 기록을 남겼고 그걸 워드작업하고 있다. 기록한 것은 많은데, 그걸 워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워드작업을 하여 학..
76. 안녕! 카자흐스탄 오전에는 이견호 원장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셨다. 미흡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잘 끝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도와주셨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 ▲ 교육원은 우리의 홈그라운드였다. 그리고 이견호 원장님이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활동하기 편했다. 그 나라에 가선 그 나라의 시선으로 그 나라를 보라 원장님은 단재 친구들의 뽀로통한 자세에 대해 말씀하셨다. 다른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의 문화나 상황을 이해하려 해야지, 한국적인 시선으로 깎아내리거나 조롱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에 백번 동의했고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첫 날에 원장님의 「카자흐스탄 문화와 우리의 자세(가제)」라는 주제로 강의를 들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도..
75.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목요일 저녁에 열기 가득했던 평가회를 마치고 카자흐스탄에서의 마지막 밤이니만큼 잘 사람은 자고 놀 사람은 놀 수 있도록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설마 이렇게 말한다고 아이들이 밤을 새겠어?’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공통된 주제나 서로의 의견이 상충되는 얘깃거리가 없으면 밤을 새며 이야기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마피아’ 같은 게임을 하며 밤새 놀 수도 있지만, 게임은 많은 사람이 함께 해야 재밌는데 피곤해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장시간동안 게임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얘기하다가 2~3시쯤 모두 자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다니 방엔 큰 창문이 있고 그 창문으론 ‘아바이Абай 도로’를 내다 볼 수 ..
74. 3주 카작 여행 평가회: 좋았던 점과 고려할 점 좋았던 점 1 – 21시간 걸려 아스타나에 간 여행 기차 여행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좋았다. 그래서 다음에도 꼭 하자!’고 외쳤다. 21시간동안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처음엔 심심하면 어쩌나, 힘들면 어쩌나 걱정하긴 했는데, 시설이 좋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재미있어서 그럴 틈이 없었다. 그런 즐거웠던 기억들이 지금과 같은 아우성을 만들었을 것이다. 다음번엔 동서횡단 열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의 서쪽으로 가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무려 72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21시간도 아닌 72시간은 어떨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 침대 칸에서 잠을 자며 아스타나로 가던 여행은 정말 최고였다. 좋았던 점 2 ..
73. 3주 카작 여행 평가회: 미비점 평가회는 곧 이야기 나눔이다 미비 ① 3주 동안 한 가정에서 생활하며 일정을 진행했으면 좋겠음 ② 러시아 & 카작어 고민(실제로 카자흐스탄에선 러시아를 주로 씀) ③ 사막여행: 가는 시간에 비해 머무는 시간이 적음(담배 피는 기사) ④ 홈스테이 학생의 자세한 상황 알려줄 것(가족관계, 성격, 개의 여부) 좋음 ① 기차여행 ② 홈스테이를 통해 사는 모습의 비슷한 점을 알게 됨. 고려 ① 봉사활동 계획(태권도, 레일아트, 한글교사) ② 이문화(농경-유목, 러시아 중심-미국 중심, 다민족-단일민족, 너른 벌판-좁은 토지)에 대한 이해 평가회 시간은 교육원에 도착하자마자 시작하였다. 당연히 마음이 가벼웠다. 원래 어떤 일이든 마무리 지을 땐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오..
72. 알마티 체험기: 삼겹살과 뜨랄레이부스 LG 거리 근처에서 쇼핑을 하고 저녁은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카자흐스탄의 삼겹살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카자흐스탄은 이슬람 국가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들을 위해 돼지고기가 유통된다), 잔뜩 기대하고 갔다. ▲ 오랜만에 다시 LG거리에 왔다. 카자흐스탄에서 먹는 삼겹살 단재학교 학생들의 식성이 오죽 좋던가. 여행 갈 때마다 우린 저녁이면 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못 먹은 귀신이라도 붙은 듯이 한 명이 1근의 고기를 먹어치우는 광경을 쉽지 않게 목격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서도 더욱이 돼지고기를 3주 만에 먹으니 적어도 20인분가량 먹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맘을 단단히 먹고 간 것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아이들은 1...
71. 알마티 체험기: 지하철 4시간을 달려 교육원에 도착했다. 익숙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도 무엇보다 3주간의 일정이 잘 끝나고 있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홈타운 알마티 입성 교육원엔 상명대 학생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자원봉사를 와서 교육원생들을 대상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한다. 2주전에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 들어가니, 각종 밑반찬들과 조리도구, 봉사 때 필요한 준비물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다. 오늘 저녁에 이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갈 때까지 우리가 교육원에서 자리를 비워줘야 했다. 애초의 계획은 오늘은 교육원에서 쉬고, 내일 학생들과 함께 쇼핑을 다닐 예정이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 쇼핑을 하고 내일 쉬기로 했다. ..
70. 나아감과 멈춤의 조화에 대해 오늘은 알마티에 가는 날이다. 알마티를 떠나서 탈디쿠르간과 우슈토베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 지 벌써 2주가 흘렀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 다시 알마티의 교육원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치 한국에 돌아가는 것 같이 기분마저 든다. 그만큼 어느새 알마티 한국교육원은 우리에게 ‘홈타운’ 같은 곳이 되었다는 얘기인 것이다. 1주일간 머물렀을 뿐인데도 정이 듬뿍 들어 언제 돌아가도 우릴 반겨줄 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겠지. 더욱이 교육원엔 여전히 교육생들이 있다. 우리가 교육원에 있을 때 교육원생들과 단재학교 여학생들이 엄청 친해졌다. 밤마다 모여 수다도 떨고 놀기도 하며 지냈기 때문이다. 그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더 빨리 알마티로 돌..
69. 단일민족설을 넘어 우슈토베에 온 지 4일째 되는 날이다. 우슈토베는 고려인들의 초기 정착지로 그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며 그들의 후손이 여전히 살고 있는 곳으로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한국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에 선조들의 아픈 역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가슴 아팠다. 하지만 우슈토베만 그러한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우슈토베가 있는 카자흐스탄, 거기서 범위를 더 넓혀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한민족韓民族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니 말이다. ▲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공통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 한민족과 바이칼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인 연관성만큼이나 중앙아시아와 한국의 역사적인 연관성도 깊다고 할 수 있다. 한민족의 시원..
68. 잃을 때, 얻는다 이런 식으로 전개될 것을 안다면, 교환이 아닌 증여의 경제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설거지는 증여에 포함된다. 더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좋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노동주체’를 되찾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당당한 주제’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증여로서의 설거지 설거지를 하면 내 마음에도 뿌듯한 마음이 생기며, 다른 사람에게도 따뜻한 기운을 퍼뜨린다. 그게 바로 증여 경제의 핵심이다. 증여는 ‘얼마의 가치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내가 유형ㆍ무형으로 준 것들은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좋은 기운을 주면 좋은 기운이 돌아오고, 나쁜 기운을 주면 나쁜 기운이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증여로서의 설거지는 나 자신이 쌓은 선업善業인 것이..
67. 손해 본다는 마음의 기저 설거지를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 학생을 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건 단순히 손해와 이익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오전에 봉사활동을 했다시피 그 순간만큼은 전체를 위해 봉사했다는 관점으로 보아도 되기 때문이다. 증여와 교환 하지만 손해라는 것이 자본주의가 남긴 상흔傷痕임을 안다면, 그 상흔을 낫게 하기 위한 노력도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다. 즉, 신분적 차별이 사라진 대신, 소유가 곧 인격이자 정체성이 되어 버린 시대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란 ‘사적 소유와 자아’가 그대로 ‘혼연일체’를 이루는 체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유의 핵심이 바로..
66. 설거지와 손해 본다는 심리 우슈토베에 온 첫 날엔 재미교포 학생들이 우리의 설거지를 도맡아 해줬다. 어제 점심을 먹고 재미교포 학생들이 간 후엔 단재학생들이 설거지를 나눠서 해야만 했다. 다섯 번 식사 때 설거지를 해야 하기에, 각 식사 당 두 명씩 설거지를 하면 됐다. 우리 그릇만 설거지 하면 되기에 많은 양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소비주체에게 설거지란? 하지만 문제는 점심 식사 시간에 일어났다. 설거지양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색종이 접기와 그림 그리기에 참여한 아이들이 점심을 먹었으며, 국까지 나왔다. 난 푸짐한 반찬과 국까지 만들어주신 정성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설거지를 해야 하는 B학생은 아이들 것까지 해야 한다며 짜증을 내고 있었고 거기다 국까지 따라주자 “국그릇까지”라며 땅바닥이 ..
65. 우슈토베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오전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어 현지 학생들과 색종이 접기와 그림 그리기를 했다. 현지 학생 이래봐야 10명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선 단재학교 학생들에게 색종이 접는 법을 연습시키고 무얼 그릴지 미리 회의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아이들끼리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좋지만, 전체 회의를 하여 무엇을 만들고 그릴지 정하고 연습시켰어야 했는데, 그 땐 그런 생각을 못했다. 아마도 ‘색종이 접기는 아이들이 다할 줄 알 테니, 각자에게 맡겨줘도 잘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는 혜린이 특기이니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다.’라는 ‘케세라세라’..
64. 치열하되 여유롭게 그렇다면 치열함이 아닌 기운을 보전하거나 양생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그게 바로 치열함의 반대면에 있는 ‘여유’였던 것이다. 그건 곧 ‘자연스런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말이기도 하다. ▲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그 부드럽지만 지속적인 힘이 관건이다. 힘과 치열함만으로 할 수 없는 것들 운동을 해본 사람은 안다. 무식하게 힘만 써서는 할 수 있다는 게 없다는 것을.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쇠공 던지기를 했었는데, 난 힘만 믿고 던졌지만 발 앞에서 쿵하고 떨어졌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나보다 힘이 약한데도 멀리까지 던진 것이다. 그땐 운동신경이 없어서 그렇다고 날 탓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건 운동신경 문제가 아니라, 흐름을 타지 않고 힘으로 흐름을 끊으려 했던 게 문..
63.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설 수 있다 카자흐스탄 여행은 굴심쌤이 없었으면 크나큰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계획에 따라 활동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만들며 활동해야 했다. 아마도 우리들만 갔다면, 대부분의 일정에서 차질이 생겼을 것이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갈등의 골만 깊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굴심쌤은 선생님들과 일정을 잘 조율하였고 카작 현지 아이들과 단재친구들의 소통 창구 역할까지 했다. 부담이 훨씬 커질 수도 있었는데, 굴심쌤이 있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 통역을 해주고 계신 굴심쌤.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맘 같지 않기에 여행은 우릴 키운다 여기에 덧붙여 학생들도 내 맘 같지 않았다. 물론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건빵쌤도 너무 맘대로 해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62. 집중의 본래면목 우슈토베에서 마지막 일정이 있는 날이다. 내일은 아침만 먹고 알마티로 떠나기 때문에, 우슈토베에서 오롯이 하루를 보내는 마지막 날인 것이다. 카자흐스탄 여행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아쉬운 마음 저편에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고 있다. 집중이 곧 나다 우슈토베에서 이틀 동안 있었지만, 이곳은 한국의 외진 시골 같은 느낌이다. 자본이 미처 이르지 못한, 그래서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곳처럼 느껴졌다. 어제 보았던 밤하늘은 ‘늘 있지만 볼 수 없던 것들’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줬다. 앞만 보고 달려왔거나, 모든 것들을 수단으로 대하며 살아온 사람은 중요한 것들을 놓치며 살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놓친다는 건, 어찌 보면 정말 ‘놓치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덜 신경 ..
61. 조삼모사에 대한 오해 내 방에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대화에 관심을 끊은 건 아니었다. 내용을 알고 싶다기보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진 않는지 멀찍이 지켜보는 것이다. 한동안 언제 싸웠나 싶게 그 나이 또래 아이들처럼 웃고 떠드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렸다.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 그렇게 1시간 30분정도 흘렀다. 그 때부터 분위기는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는 상황에 부딪히면서 심각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A학생은 자신이 피해를 받은 만큼의 보상을 원했다. 에버랜드 자유이용권과 음식을 사주길 바란 것이다.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는 순간, 이 문제는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법적인 문제가 되어 버린다. 그러려면 무얼 얼마만큼 잘못했는지 수치화해야 하며, 그만큼 보상..
60. 대화 속에 우리들은 자란다 지순옥 할머니를 통해 고려인들이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슈토베로 강제이주하게 된 과정, 그리고 우슈토베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데엔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세계 곳곳에 이렇게 흩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고도 또 죄송하기만 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틀이 아닌, ‘우리 모두 어리숙하다’는 틀로 사건이 끊이지 않는 단재친구들. 물론 이건 비아냥이 아니다. 삶의 배경이 다르고, 욕망이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활동을 하다 보니 언제든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억압된 사회이거나 죽은 사회일 것이..
59. 고려인, 지순옥 할머니 下 할머니의 성함은 지순옥으로 연세는 92세라고 했다. 1937년에 원동遠東(머나먼 동쪽)의 쁘리모르스키끄라이Приморский край에 살고 계셨단다. 남자들은 강제이주 전에 이미 잡혀갔기 때문에, 이 당시엔 엄마와 같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으로 가라는 교사의 지시가 있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기차를 탔다고 한다. ▲ 카자흐스탄에 오기 전까지는 고려인에 대한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이곳에서 직접 만나고 나선 그 무지에 깜짝 놀랐다. 설국열차를 방불케하는 생존의 현장 기차는 화물칸으로 120명가량의 사람이 탔는데, 자신의 엄마는 열흘 정도 먹을 것을 가지고 탄 반면, 아무 것도 없이 탄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58. 고려인, 지순옥 할머니 上 오후에는 고려인 초기 정착자 중에 유일하게 살아계신 분이 있다고 해서 찾아뵈었다.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할머니를 뵐 때마다 느껴지던 감정이 지순옥 할머니를 뵈었을 때에도 느껴졌다. 가슴이 아려왔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지만, 고려인의 이야기도 우리의 아픈 과거임과 동시에 현재 진행형인 역사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더라. ▲ 1000회가 넘게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는 수요집회(출처- 경향신문) 너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하지만 나와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팩트fact라기보다 픽션fiction이며, 현재의 이야기이기보다 ‘과거에 그랬더라’라는 옛날이야기에 가까웠다. 그런 이유 때문에 어제 초기 정착지 근처의 무덤을 둘러보며, 누군..
57. 기독교인에게 배운 진정성 관계를 맺고 끊으며, 어떤 일에 열정적으로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일련의 일들이 삶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 관계를 맺고 끊을 것인지, 어떤 일에 열정적으로 하며 어떤 일에 대충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떤 경우’와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판단 기준이 있으려면, 진정성 있게 삶을 대하고 있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 재미교포 친구들의 발표회를 보러 온 아이들. 기독교는 고려인에게 힘을 주다 여긴 감리교 연합회 소속의 교회다. 종교가 때론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다. 더욱이 고려인들은 이국의 땅에서 서로 의지하며 온갖 핍박과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였다. 그래서 ..
56. 한국과는 다른 카자흐스탄 집의 특징 우슈토베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여긴 종교시설이다보니, 카자흐스탄 여행을 온 게 아니라 선교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도 들더라. 하룻밤만 묵는 곳이었고 꽤 낡은 시설이었지만 맘에 들었다. 전통 가옥까지는 아니어도 한국과는 다른 가옥형태이기에 카자흐스탄에 온 기분을 만끽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홈스테이를 했거나 카자흐스탄 집을 여러 곳 들러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집의 특징을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세 곳을 옮겨 다니며, 여러 집을 들러본 결과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었다. 그게 한국의 집과는 다른 부분이었기 때문에 더 눈에 띄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카자흐스탄 집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 전통가옥에서 그래도 포근하게 잤다. 신발을 어..
55. 너의 불행이 나에겐 안도감이 아니길 그 다음으로 간 곳은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내린 역인 우슈토베역이었다. 역주변엔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1937년 당시엔 허허벌판에 가까웠다고 했다. 우슈토베역, 너의 아픔이 나의 안도가 아니길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역이, 고려인들이 당시에 보았던 역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적인 현장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막막함과 서글픔이 밀려오더라.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이냐?’라는 울분 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들의 참상은 ‘과거의 일’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뉴스에서 이야기를 듣듯, 남의 일처럼 들렸을 지도 모른다. ‘용산참사’가 났을 때,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는 ‘남의 일’처럼 들렸고 ‘그들의 일’처럼 들려 ‘안 됐다..
54. 강제 이주와 고려인 고려인들은 러시아 연해주沿海州지방에 있는 항만도시인 블라디보스톡에 모여 살았다. 그런데 스탈린이 고려인들을 강제이주 시킨 것이다. 왜 고려인을 강제이주 시켰는지에 대해 두 가지의 의견이 있다고 한다. ▲ 바슈토베의 초기 정착지. 이곳에 남은 치열한 흔적들. 스탈린이 고려인을 강제 이주한 까닭 그 하나의 카자흐스탄 민족은 유목민으로 양을 키우며 양고기나 먹고 살던 때라, 정착민인 고려인을 보내 불모지를 초원으로 개간하기 위해 보냈다는 것이다. 이 의견이 성립되려면 소련 사람에게 ‘고려인은 농경에 능한 민족’이란 관념이 있어야 하고, 선진 농법을 전파하고 싶었다면 최소한의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보냈어야 한다. 그런데 죽던 말던 상관없다는 듯이 그냥 보내버리기에만 급급했던 ..
53. 난 조선인이요, 난 고려인이다 밥을 먹고 본격적으로 고려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떠났다. ▲ 고려인들의 초기 정착지에 가는 길. 고려인은 배신자? 아스타나에서 알마티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같이 갔던 교육원 선생님에게 전혀 뜻밖의 말을 들었다. 한 분은 기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났고, 다른 한 분은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이다. 고려인이 한국에 들어가 공부를 하려 하거나, 취업을 하려 하면 한국의 나이 드신 분들이 “배신자!”라며 공격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수난을 함께 겪어낸 동포이며 동변상련을 함께 해온 동지로 생각하여 반길 거라 짐작했는데, 반기긴 커녕 욕을 한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걸 보고 있으니, 임난 당시 인조가 병자호란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내빼고 항복한 후에 조선 땅에..
52. 총각김치와 노자 탈디쿠르간에서 1시간여를 달려 우슈토베ushtobe에 도착했다. 버스에 타고 이동할 때만 해도 우슈토베에 있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여관에 아이들과 함께 머물며 우슈토베에서 고려인 발자취를 따라가며 카자흐스탄의 마지막 1주일을 보내는 줄만 알고 있었다. ▲ 우슈토베엔 고려인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다른 장소, 새로운 인연 그런데 그곳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종교시설이었다. 감리회 소속 선교사님이 세운 교회로 우리가 도착했을 땐 재미교포 학생들이 여름성경학교에 와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교회에 마련된 숙소가 아닌,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별채에서 자야 한단다. 별채는 민가를 개조한 곳이어서 아늑한 느낌이 났다. 이런 건물을 러시아식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
51. 삶의 여정을 쏙 빼닮은 카자흐스탄 여행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절로 누그러지더라. 그래서 두 가지만 부탁했다. 첫째는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다보면 일정이 바뀌는 건 다반사니, 바뀔 때는 당연히 먼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둘째는 다음에 한국에 오게 될 학생은 카작어를 할 수 있어야 하며, 좀 더 바란다면 한국어를 하거나 한국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왔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 탈디쿠르간의 석양녘 관람차. 관건은 ‘다시 만나고 싶으냐?’ 하는 것 그랬더니 디아나 선생님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한국에 갔던 학생 외에 홈스테이를 구하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유복有福한 아이들은 한국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에 관심이 있는 경우엔 돈이 없어서 홈스테이를 신청..
50. 헤어지는 날에 볼멘소리를 하다 8시까지 학교에 가야했기에 6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했다. 이제 이곳과도 영영 안녕이다. 저번 주 토요일에 알마티에서 이곳으로 왔으니 10일 동안 지내고 떠나는 날인 것이다. 7시 30분에 로비에서 굴심쌤과 이향이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준비하고 나갔는데 이향이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더라. 20분 정도 기다렸다가 학교에 가니, 디아나 선생님과 아이노르 선생님이 계셔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 저번 주에 와서 일주일동안 잘 지내다가 가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학교 전경. 핑계로 가득한 일정 변경에 대한 답변 일정이 수시로 바뀌는데도 아무런 상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과 발렌티나와 알마트가 집을 비우는데도 아무런 얘기와 대책도 없었다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려 했다. ..
49. 나는 얼마큼 적으냐 수영장에선 왜 꼭 상의를 탈의해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의문이다. 작년 망원수영장에서도 그러더니,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상의를 입고 놀고 있으면 안내요원이 와서 상의를 벗으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맨몸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니, 눈을 피해가며 상의를 입은 채 놀 수밖에. ▲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노는 동안 나도 셀카질^^ 우리의 분노는 약한 고리를 향한다 그런데 그 때 안전요원은 아니고, 의사 까운 비슷한 옷을 입은 중년의 러시아 여성분이 오시더니 한 학생에게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아마도 ‘상의를 입은 채 놀면 안 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정중하게 대답했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그 학생은 눈을 붉히며 아니꼽다는 투로 받아쳤다. 어차피 서로의 언어가 통하지..
48. 놀다 보면 누구나 다 친구가 된다 모든 학생이 모였기에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향이는 주사를 맞고 와서 물에 들어갈 순 없었지만 공짜티켓으로 입장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들어갈 거냐고 물었는데 처음엔 들어갈 것처럼 표를 받더니, 조금 지나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굴심쌤과 씨티플러스에 가서 구경도 하고 쉴 수 있도록 했다. 국적 불문, 우린 친구 아이가~ 여긴 특이하게 ‘상의를 탈의하지 않으면 수영장에서 놀 수 없다’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은 상의를 탈의하길 싫어한다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상의를 탈의하지 않은 채 놀다가 안전요원에게 여러 번 주의를 받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원이와 혜린이는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주원이는 아예 수영복으로 갈아입지 않았으며, ..
47. 탈디쿠르간 마지막 일정, 우린 사람이기에 좌충우돌한다 탈디쿠르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일정은 아쿠아 파크에 가서 수영만 하면 된다.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렇지만 디아나 선생님에게 상의도 없이 일정을 바꾸는 것에 대해, 발렌티나와 알마트가 떠났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더욱이 오늘만 해도 디아나 선생님과 아이노르 선생님과 10시에 만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10시가 되도록 아무 연락이 없다가, 기어코 약속이 취소되었으며 1시에 아쿠아파크 입구로 오면 된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공동의 합의나 이해가 아닌, 자기 멋대로 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꼭 이 문제를 얘기하여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46. 카자흐스탄, 사막여행: 노래하는 사막 바르한 남자 아이들은 뛰어서 사구를 올랐다. 찌는 듯한 더위, 그리고 그 열기를 머금은 모래의 뜨거움, 거기다가 다리가 푹푹 빠져 오르기 쉽지 않은 현실까지 바르한은 ‘돈키호테의 풍차’ 같은 느낌이었다. ▲ 민석이의 나를 따르라. 그래 너를 따라 올라볼까. 느린 빠름 나도 맹렬하게 돌진했다. 최선을 다해 손까지 사용해서 올랐지만 1/6도 채 오르지 못하고 진이 빠지고 말았다. 사구를 오르는 게 이렇게 힘이 많이 드는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가 제대로 큰 코 다쳤다. 그러니 ‘여기서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오를 것인가?’라는 고민이 따를 수밖에. 조금 올라갔다 싶으면, 모래가 밀려서 다시 조금 내려오고, 그래서 오르려고 조금 움직이면 다시 밀려 내려와 처..
45. 카자흐스탄, 사막여행: 멀리서만 봐선 안 되는 이유 대자연의 위용에 한껏 압도됐다. 인간의 손길이 닿을 수 없어 ‘국립공원’이란 이름으로 유지되고 방치되는 곳,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진심으론 인간 외의 생물들에겐 낙원 같은 곳이었고 태초의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었다. 에게. 겨우 이거야 국립공원 입구에서 바르한이라는 사막까지 한 시간정도만 달리면 나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조금만 더 달리면 고비사막이나 사하라사막 같은 장엄하고도 절로 압도하게 되는 비주얼을 직접 목도하게 될 거란 기대를 잔뜩 하며 유심히 지켜보게 됐다. 그런데 한 시간이 넘게 달렸는데도 천연자연이 풍경만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 모래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더라. 아마 우리가 산에 오를 때마다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이예..
44. 그대여, 자연과 감응할 수 있나? 신고를 마친 후엔 관리인 한 명이 우리 차에 동승했다. 우리를 안내함과 동시에 감시하기 위해서다. 조금 더 달리면, 쇠줄로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놨다.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나와 우리의 신원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쇠줄을 풀어준다. 바로 거기서부터 알틴에멜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 광활하다. 지평선이 저 멀리. 자연을 위한 공원 ‘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건 꼭 뭔가 엄청난 것이 있어서 이렇게 관리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비포장 길을 달리고 또 달린다. 차는 수시로 덜커덩거리며 광활한 벌판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의 광경은 절대 그곳이 아니면 볼 수 없..
43. 카자흐스탄의 사막 찾아가는 길 오늘은 새벽부터 바빴다. 원랜 1박 2일로 예정되었던 여행이 당일치기로 바뀌면서 시간이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벽 5시 45분에 모이기로 했다. 나는 4시 30분에 일어나, 아침밥 대용으로 군대에서 먹었던 뽀글이 라면을 먹었다. 연중이가 진라면을 줬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 라면으로 뽀글이를 해먹고 있으니, 꼭 한국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른 아침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처럼 달콤했다. 카자흐스탄에 올 때만해도 세 번의 캠프(알마티에서 1번, 탈디쿠르간에서 2번)가 계획되어 있었다. 그래서 캠프를 대비할 겸, 모기약을 많이 사온 것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계획이 변경되어 한 번도 하지 않게 되..
42. 카자흐스탄 발표회, 찝찝함에서 짜릿함으로 연극 연습을 2번 마쳤을 때, 다시 연습을 한다고 했기에 모두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무용 선생님이 오더니, 전통옷이 왔다며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 발표회를 위해 전통복장으로 갈아 입었는데 내가 입은 건 귀족풍의 옷이다. 리허설 없는 발표회 전통옷으로 갈아입고선 학생들과 삼삼오오 모여 한참이나 사진을 찍었다. 카자흐스탄 전통옷을 입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이걸 입고 보니 정말 카자흐스탄에 왔다는 게 실감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강당으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그 땐 ‘드디어 리허설을 하려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고, 시간이 11시 50분 정도가 되어, ‘곧 있음 점심시간인데 좀 급하긴 하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강당..
41. 카자흐스탄 발표회, 기대에서 찝찝함으로 오늘은 아기다리고 고기다리던(?) 발표회를 하는 날이다. 발표회가 앞당겨진 데다 연습해야 할 양은 늘었기에 죽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오후 4시에 발표회를 하니 그 때까지 맹렬히 연습한다면, 흡족하진 않아도 불만은 없는 발표회가 될 것이다. ▲ 발표회를 위해 카자흐스탄 전통복장으로 입은 우리들. 들쭉날쭉하는 일정 저번 주 토요일에 탈디쿠르간에 도착하여 일정을 진행할 때부터 계획표와 다르게 가고 있었다. 토요일부터 tekeli에서 캠핑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하루짜리 여행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아이노르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며 일정 조율을 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계획을 세워 놓은 것은 가안假案이어서 실제로 진행하다보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0. 카자흐스탄 밤거리에서 외면했던 나를 만나다 노래하는 시간이 끝나고 이향, 승빈, 혜린, 연중, 민석과 대통령 학교 친구들과 볼링장에 갔다. 카자흐스탄 볼링장에 가다 나머지 친구들은 노래를 부를 때 집에 갔기 때문에 같이 갈 수 없었다. 미리 일정을 알려줬으면 다 함께 볼링장에 갈 수 있었을 텐데, 닥쳐서야 볼링장에 간다고 하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볼링장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이곳에도 볼링장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욱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단재친구들이 볼링을 처음 쳐본다고 하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골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역시 운동이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고 감이 잡히는 맛이 있다. 민석이도 서서히 감을 잡으며 스트레이트를 칠 때도 있었다. ▲ 처음 볼링을 쳐보는..
39. 안 함과 못함 오후엔 노래하는 시간이 있었다. 노래방 기기로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유투브의 가라오케 모드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때 대통령 학교 학생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이런 식으로 노래 부르는 것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음을 얼핏 봤을 땐 부끄러움이 많은 학생 같았는데, 실컷 노래를 부르고 방방 뛰면서 제대로 놀 줄 아는 아이더라. 단재친구들 중에 연중과 혜린, 그리고 승빈이만 아이들과 함께 노래 불렀다. 노래 울렁증인가, 같이 하고 싶지 않음인가? 노래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남학생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합의가 끝났는지 부리나케 자리를 피했다. 강당의 맨 뒷좌석에 가서 앉은 것이다. 그나마 아예 강당을 빠져 나가지 않았..
38. 한바탕 웃게 만들려 글을 베끼듯 발표회 하루 전이다. 특히 전통춤 공연 연습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어깨만 덩실거리고 발목을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리듬을 탄다는 게 말이나 쉽지,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 연습하는 것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하더라도 같이 하여 어색하고 뻣뻣한 몸동작을 함께 보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번 무용 선생님은 나에게 같이 할 것을 권유했지만, 연습은 같이 하되 발표회 땐 사진을 찍기 위해 빠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자신의 파트너로 내가 춰야한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덕에 내가 무대 전면에 서야만 했다. ▲ 카자흐스탄 정통 춤을 나도 함께 추게 되었다. 그것도..
37. 주위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벽이 있다 어느덧 카자흐스탄 일정이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올 때만해도 ‘3주란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막상 이곳에서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중반이 지나고 있다. 무언가 나날이 할 게 있기 때문에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 이 날 저녁은 대관람차가 보이는 운치 좋은 곳에서 양꼬치를 먹었다. 정말 맛있더라. 외국어의 필요성 해외에 나간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외국어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느낀단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한국에 들어오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니 문제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카작인들은 러시아어와 카작어를 함께 쓰며 이야기를 한다. 솔직히 어떤 말이 카작어인지, 어떤 말이 러시아어인..
36. 땀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금요일에 있을 발표회 때 할 것들을 연습했다. 전통춤의 동작을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했고 카자흐스탄어로 된 연극 대본을 리딩했으며, 새로운 카자흐스탄 노래도 배웠다. 원래 계획상으론 다음 주 월요일 오후 4시에 발표회를 하고 우슈토베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여유 있게 연습한 것이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에 출발하는 걸로 바뀌면서 발표회 일정도 금요일 오후 4시로 앞당겨졌다. 무려 3일이나 앞당겨지다 보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우리들도 상황에 떠밀리듯 정신없이 연습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과연 이 짧은 시간에 춤, 연극, 노래를 모두 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시간은 한참이나 부족한데, 너무..
35. 춤을 찾아와야 하는 이유 옛적부터 내려오던 ‘춤=저속’, ‘춤추는 사람=쌍 것’이라는 편견이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고 그로 인해 춤을 춰볼 생각도, 리듬을 타며 온 몸에 흐르는 열정을 발산할 생각도 여태껏 해보지 못했다. ▲ 카자흐스탄 전통춤을 배우는 아이들. 가진 것을 빼앗겨도 무감각한 사회 왜 이런 현실을 지금까지 잘도 수긍해왔으면서 갑자기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걸까? 인간은 세상을 향해 표현하고 표출하는 존재다. 태어나자마자 아이가 ‘울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이때의 울음은 기혈이 열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과 소통을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표현은 현실 세계에 던져진 존재인 이상, 당연히 해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가..
34. 몸치는 춤이 고프다 어젠 학교 탐방을 하고 탈디쿠르간을 알아보는 일정이었다면, 오늘은 정식적인 대통령 학교를 체험하는 일정이다. 카자흐스탄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대통령학교에서 보내온 일정표는 다양한 내용들로 꽉 차 있었다. 테니스와 농구 등의 스포츠도 하고, 연극도 하며, 전통춤과 카작어도 배우며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하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알마티에서와는 달리, 여기선 내가 신경 쓸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담당자가 있기에 난 한 발짝 물러서서 아이들이 잘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아침에 편안한 마음으로 일어났다. 아 참! 어제 저녁 11시에 A 아버님에게 전화가 왔다. A가 광견병 주사를 ..
33. 대통령 학교엔 한국어 교실이 있다 대통령학교 시설 학교 시설은 한국의 최근에 지어진 학교시설처럼 좋았다. 각 교실에 컴퓨터가 설치되어 e-learning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과학ㆍ수학 영재학교답게 과학실엔 다양한 과학실험을 할 수 있는 장비들이 있었으며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한 체육시설과 두 군데의 수영장이 완비되어 있었다. 그뿐인가? 이 학교의 양호실은 병원을 방불케 했다. 한국의 양호실이 치료가 목적이 아닌 응급처치를 하거나 쉴 수 있는 곳이라 한다면, 이 곳 양호실은 치료도 하고 예방도 하는 그런 곳이라 할 수 있다. 각 과별로 나누어져 있어 세부적인 진료가 가능했으며, 치과에는 전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장비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대통령 학교 학생들은 적어도 아픈 것에 대..
32. 나자르바예프 대통령학교를 방문하다 저번 여행기에서도 밝혔다시피 책 속에만 갇혀선 안 되면 다채로운 삶 속에 몸을 맡긴 채 삶의 현장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 ▲ 대통령 영재학교의 로고다. 여기서는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여행이란 경험의 장 속에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잡색의 삶’ 속에 들어가 보는 기회이다. 이런 기회를 통해 공동의 경험을 함으로 아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책을 통해 여태껏 쌓은 앎의 단서들을 현실 세계에서 풀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경험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백색의 앎’이 ‘잡색의 삶’과 공명하며 책이 곧 나이며, 내가 곧 책書自我 我自書인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은 성장하지 않는다..
31. 책을 떠나 세상을 살고, 사람을 만나다 탈디쿠르간에서의 정식적인 첫 날이다. 어젠 공휴일이고 야외 활동을 한 것이니, 워밍업을 한 셈이다. 워밍업치고 좀 빡센 워밍업이었지만, 그 때문에 대통령학교 학생들과 친해졌고 단재친구들의 색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빡센 일정이었기에, 그런 속내를 볼 수 있었던 것이리라. ▲ 어제의 광활한 대지를 걸었던 체험은 정말 많은 걸 느끼게 해줬다. 백색의 앎이 아닌 잡색의 삶으로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나는 야외활동을 좋아한다. 아무리 책상에 앉아서 세상을 파헤친 글을 읽고, 이상을 그리며 삶을 비판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과 행동이 따로 놀 수밖에 없다. 아아, 골방에 갇혀 천하를 꿈꾼들 무슨 소용 있으랴. 현실..
30. 왜 하는지 모르는 일을 묵묵히 하는 아이들 날은 뜨거운 편인데, 습도가 높지 않아 땀은 나지 않더라. 조금 오르니, 탈디쿠르간의 전경이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만년설도 있다. ▲ 자연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숙하게. 중턱의 제방과 정상에서의 전설 그 근처에 제방이 눈에 띄었다. ‘왜 산 중턱에 이런 제방을 설치했을까?’ 의아스러웠는데, 예전에 산에 있는 호수가 범람하여 이 일대가 물에 잠긴 적이 있다는 얘길 해주시더라. 그래서 그 때 이런 제방을 만든 거란다. ▲ 산 중턱에 설치된 제방. 정상에 오르니 알마라산 부럽지 않은 광경이 펼쳐지더라. 여긴 자연이 만들어놓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좋다. 그루터기에 앉아 교수님이 전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흔히 알고 있는 ‘콩쥐팥쥐류의 설화담’..
29.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학교의 첫 일정이 진행되는 날이다. 오늘은 테킬리tekeli라는 곳에 가기로 되어 있다. 원랜 1박 2일의 야영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일정이 바뀌어 어제는 홈스테이에서 적응할 겸 푹 쉬고, 오늘 산을 오르게 된 것이다. 학교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이야기꽃이 만발했더라. 누군 인터넷을 맘껏 쓸 수 있게 해줬다면서 오랜만에 컴퓨터를 하는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누군 말이 하나도 안 통해 죽는 줄 알았는데 사촌 누나가 와서 영어로라도 대화가 되어 다행이라고 이야기하고, 누군 저녁 식사를 성대히 차려줘서 엄청 호강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니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이향이는 어제 발렌티나 집에서 개에 물렸다고..
28. 카자흐스탄의 결혼식과 한국의 결혼식 무려 6시간 이상 진행되는 예식에 누구 할 것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다.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며 축하의 말을 건네며 마음을 전하고 함께 춤을 추며 기쁨을 배가시킨다. 카자흐스탄 결혼식은 한 마디로 ‘축제’다. 불을 켜놓고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춤추고 놀던 고대의 풍습이 이런 식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 결혼식장 측에서 마련한 가족들을 위한 쇼타임. 카자흐스탄 결혼식의 장과 단 우리나라의 경우, 만월滿月을 숭배하던 옛 풍습에 따라 추석에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강강수월래를 하고 줄다리기와 씨름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이건 카작인이건 공통되는 민족적인 흥興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한국인은 흥을 잃어가고 공동의 추억을 상실해간 반..
27. 카자흐스탄 결혼식은 저녁 내내 한다 6시에 굴심쌤과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방에서 나왔다. 근처엔 저녁을 먹을 만한 곳이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음식점이든 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대통령학교에서 저녁비용을 지원해주는데, 그러기 위해선 영수증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물어봤던 것이다(결국 이후부턴 상황을 얘기해서 영수증 없이도 저녁 식사비를 받도록 했지만^^). ▲ 결혼식 장 옆에는 음식점과 영화관이 있었다. 그럼에도 음식점을 찾아서 다녔다. 영수증 찾아 결혼식장으로^^ 그러다가 바로 근처에 있는 결혼식장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굴심쌤은 “저 결혼식장에 한 번 가볼..
26. 알마티에서 탈디쿠르간으로 알마티에서 1주일동안 있었다. 낯설던 곳이 익숙해지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알마티의 알 수 없는 언어들과 멀찍이 보이는 만년설이 늘 보아오고 들어오던 일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 일주일이란 시간은 짧지만 강렬했다. 하지만 이젠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는 또 다른 인연이 있고 다른 환경이 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기대와 걱정을 하며 아침에 눈을 떴다. 알마티에서 탈디쿠르간까지는 무려 266㎞라 된다. 서울에서 광주까지의 거리와 엇비슷하다. 하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으니 4~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대장정이 될 것임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침 7시에 출발해야 하기에 6시에 일어나 부산을..
25. 카자흐스탄 가정집 저녁식사에 초대되다 다음 장소는 굴심쌤 언니네 집이다. 저녁식사에 우리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저번에 LG거리에 있는 음식점에서 카자흐스탄 전통음식을 먹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상업화된 음식의 체험이었고 이번에 제대로 카자흐스탄의 가정식을 맛보게 되고, 일반 가정집은 어떤 지도 체험해볼 수 있다. ▲ 굴심쌤 언니네 집으로 가는 길. 가슴 따뜻한 저녁 식사 언니네는 아파트에 살았다. 건물은 꽤 낡아보였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카펫이 여기저기 깔려 있고 넓은 집이 인상적이었다. 가족이 어찌나 많은지 대가족을 연상케 했다. 언니네는 아들 부부와 함께 살며 굴심쌤 자식들뿐만 아니라, 조카들도 방학을 맞아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 인원만 12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좁지나 않..
24. 아스타나에 피라미드가 있다 피라미드는 2009년 9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우린 곁에서 보고 돌아섰지만, 이곳은 단순히 피라미드 모형으로 지어진 곳이 아니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이상을 아주 극대화한 곳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궁과 일직선상에 구조물 두 개가 있다. 정면엔 바이테렉이, 후면엔 피라미드가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구조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일까? ▲ 대통령궁 바로 뒤로 이심강을 건너면 일직선 상에 피라미드가 자리하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극단점 피라미드는 흔히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곳이며, 태양신을 숭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필 대통령은 왜 그런 의미를 지닌 고대 건축물을 대통령궁 바로 후면에, 더욱이 모스크 바로 옆에 건설하려 했던 것일까? 그 의미를 파헤치는 일은 ..
23. 처음으로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다 한때 기독교에 심취했던 나에게 이슬람은 ‘이단’이었고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할 종교’였다. 이미 기독교계에서 그렇게 규정한 이상, 내가 아무리 ‘왜 이단인가요?’라고 의문제기를 할지라도 쓸데없는 얘기였을 뿐이다. ▲ ① 한샤뜨르(종합쇼핑몰) ② 카즈무나이가스 ③ 카작오일 ④ 위: 바이테렉, 아래: 국방부 ⑤ 대통령궁 ⑥ 모스크 ⑦ 피라미드 종교적인 위안 하지만 기독교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니, ‘이단’이라 생각했던 모든 종교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던. 처음엔 불교가, 그리고 그 후엔 제칠일 안식교나 이슬람교 같은 기독교의 다른 분파의 종교들이 말이다. 그런 종교들이 지금껏 뿌리 내리고 유지될 수 있던 데엔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대..
22. 아스타나에서 국방부와 한국문화원을 둘러보다 국방부 청사의 건물도 화려하기는 매한가지다. 위에서 살펴봤다시피, 카자흐스탄은 카스피해의 석유 발굴로 원하든 원치 않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사태와 같이 그 나라 자체의 잠재적인 성장요인은 있지만, 자국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으면 열국의 각축장角逐場이 될 수 있다는 사례도 볼 수 있다. ▲ ① 한샤뜨르(종합쇼핑몰) ② 카즈무나이가스 ③ 카작오일 ④ 위: 바이테렉, 아래: 국방부 ⑤ 대통령궁 ⑥ 모스크 ⑦ 피라미드 국방부, 안전하다는 부적 중국은 자국의 힘을 바탕으로 옆 동네인 카자흐스탄을 호시탐탐 노리고, 러시아는 구 소비에트 연합의 동맹국들이 여전히 자신의 힘 안에 있기를 바라며, 미국은 ..
21. 아스타나의 권력과 자본의 중심지로 우뚝 서다 바이테렉을 중심으로 오른쪽엔 아파트들과 대통령궁, 그리고 이심강 너머엔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정원 한복판에 놓인 피라미드가 있고, 왼쪽엔 카자흐스탄이 이처럼 부강해질 수 있었던 원천인 원유와 관련된 일을 하는 카작오일과 카즈무나이가스라는 공기업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너머엔 한샤뜨르라는 전통가옥인 유르타 모양을 본뜬 쇼핑몰이 자리하고 있다. 우린 대통령궁 쪽으로 걸었다. ▲ ① 한샤뜨르(종합쇼핑몰) ② 카즈무나이가스 ③ 카작오일 ④ 위: 바이테렉, 아래: 국방부 ⑤ 대통령궁 ⑥ 모스크 ⑦ 피라미드 대통령궁, 권력을 가시화한 곳 조선엔 육조六曹거리라는 대로가 있었다. 육조거리는 이吏, 호戶, 예禮, 병兵, 형刑, 공조工曹의 여섯 개 중앙관청 뿐 아니라, 서울..
20. 바이테렉에 담은 카자흐스탄의 꿈 신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말 그대로 ‘신세계’가 펼쳐졌다. 유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고딕양식의 건물들과 높디높은 빌딩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강남이 ‘한국 속의 뉴욕’을 꿈꾸며 건설된 곳이라면, 아스타나의 신도시는 ‘카자흐스탄 속의 유럽’을 꿈꾸며 건설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무리 화려한 건물이 들어선다 해도 내용을 갖추지 않으면 상징성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야말로 사람이건 사물이건 가장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화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카자흐스탄만의 이상을 어떻게 담을지 그게 관건이다. ▲ 아스타나는 신 수도다. 에실강(이심강)이 흐르는 소도시에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수도로. 이상과 종교, 그리고 신비를..
19. 새 수도 아스타나에 그린 꿈 화보에 나오는 아스타나Астана는 엄청나게 번화하고 높은 건물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래서 97년에 수도를 이전하며 건설된 신도시답게 역 부근도 신도시의 위용이 드러나리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역 근방에 다다랐음에도 허름한 공장만 보일 뿐, 높은 빌딩과 신도시의 깔끔한 모습은 어디에도 볼 수 없더라.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 ▲ 현재 시간 아침 8시 5분, 어제 11시 20분에 알마티에서 출발한 기차가 21시간에 아스타나에 도착했다. 첫 인상 하지만 이런 첫인상조차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나의 소치였을 뿐이었다. 아스타나는 수도 이전부터 이미 있던 도시였으니 말이다. 아스타나는 알마티 북쪽으로 1318㎞ 떨어져 있으며, 이심강Ishim River(시베리아 벌판에서부터 아..
18. 21시간 달리는 기차에선 뭐하나요? 우린 12명이었기 때문에 3개의 방을 배정받았다. 첫 번째 방엔 근호, 주원, 규혁, 민석이가, 두 번째 방엔 굴심쌤, 혜린, 연중, 이향이가, 세 번째 방엔 교육원 선생님 둘과 나, 승빈이가 들어갔다. 들어가고 나선 한참이나 이것저것 만져가며 시설물을 둘러봤고 다들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남학생들은 각각 침대를 펴고 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여학생들은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다. ▲ 각자 방을 잡았다. 마음 맞는 사람과 여행을 한다는 건 축복. 4인실 정말 좋은 구성이다. 언어꾸러미가 만드는 세상 그에 비해 우리 방엔 분위기가 좀 냉랭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사람과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교육원 선생님은 둘 다 고려인으로 한 분은 카자흐스탄, 또 한 분은 키르기스스탄..
17.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21시간이 걸리는 기차를 타고 가다 알마티에서 기차를 타고 아스타나로 가는 날이다. 오전 11시 45분 기차를 타고 떠나 내일 오전 8시 10분경에 도착하여 아스타나를 둘러보고 저녁 8시 20분 기차를 타고 모레 오후 4시경에 도착하는 무박 3일(?)의 강행군이다. 이런 여행 자체가 처음이었고 여행 중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기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과연 불편한 침대칸에서 자야 하는 3일간의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을까? ▲ KTX같은 기차는 12시간이면 아스타나에 도착하지만, 우린 21시간 걸리는 기차를 탔다. 결과적으로 대만족~ 신분증을 가지러 다시 교육원으로 원랜 12시간 걸리는 기차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현지사정으로 인해 21시간 기차를 타고 가는 것으로 바..
16. 28공원과 젠코바 성당, 그리고 질료니 바자르 유르타에서 놀다 보니 이미 시간은 3시 가까이 되었다. 시간이 어중간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바로 교육원으로 가서 헤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원장님은 질료늬 시장에 가자고 하시더라. 아마도 내일부터 3일간은 카자흐스탄의 새로운 수도인 아스타나 여행을 가야 하기에 알마티를 떠나야 하고 아스타나를 다녀와선 그 다음 날엔 바로 탈디쿠르간으로 가야하기에 어찌 보면 오늘이 알마티에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란 그런 것이리라. 그러니 원장님은 알마티에서 볼 수 있는 곳을 모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 ▲ 유르타에서 처음으로 마셔본 말젖 발효유 끄무즈. 28공원과 젠코브이 성당 질료니 시장Zelyony Bazar 바로 옆엔 28공원(판필로프 공원Pan..
15. 유르타 체험을 통해, 전통과의 연결점을 생각하다 알마라산Alma-arasan에 올라가는 곳곳에선 파이프를 볼 수 있었다. 이 파이프는 호수에서 시작되어 알마티 시내까지 연결되어 알마티 시민들의 식수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잊힌 풍경 속으로 호수는 사진에서만 보던 백두산의 천지를 보는 느낌과 비슷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눈 덮힌 산과 유유히 요동치는 물결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어떤 화보집 사진에 꿀릴 것이 없었다.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알지 못했구나, 몸이 그림 속에 있었다는 것을.不知身在畵圖中’이라고나 할까. 호수를 둘러보고 조금 더 올라가니, 군인이 보인다. 여기는 키리기스스탄과 국경지대라고 한다. 이 산만 넘어가면 바로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섬’처럼 고립된 ..
14. 화려함보다 수수하게, 현란함보다 밋밋하게 ▲ 알마라산, 한 여름에 보는 눈. 아침 일찍 일어났다. 어제 쓰지 못한 기록도 남기고 여유롭게 준비하기 위해서다. 기록은 특별한 경험이며 가능성을 향한 걸음이다 무언가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고 가능성을 향한 성실한 발걸음이다. 기록의 중요함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머릿속의 기억은 수많은 상황 중 무의식중에 선택된 것이다. 그걸 다시 기록으로 남기려면 또 다시 선별해야만 한다. 두 번이나(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음) 골라진 기억의 조각이기에 완벽하게 현실을 그려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기억의 불명확성이나 기록의 부정확성을 질타하며 말하지도 기록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진리가 아닐 바에야 침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
13. 맛있는 걸 줬는데 왜 먹질 못하니 저녁은 원장님과 한국식당에 갔다. 난 육개장을 시켰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그 때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카작여행 4일차라 아직 한국음식이 그립진 않지만, 원장님이 사주신다기에 냉큼 달려왔다^^ 자신만의 방식이 낳는 오해 집으로 흩어진 아이들은 한국 집에 안부전화를 했다. A가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B가 바꿔달라고 하더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나 보다. 요지는 A가 잠도 부족하고 신경이 꽤 날카로워져서 많이 힘들어 한다는 거였다. A의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어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고, 나 또한 그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여 B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B는 “A가 잠도 부족하고 일정..
12. 알마티의 남산타워 콕토베 차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 서울의 남산타워에 비견되는 콕토베(녹색 언덕이란 뜻)에 도착했다. 일전에 승태쌤에게 카자흐스탄에선 화장실에 가도 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기가 그러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공공시설이니만치 무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콕토베에 있는 케이블. 콕토베 화장실의 두 가지 에피소드 주원이와 민석이가 화장실에 간다기에, 나도 같이 따라갔다. 화장실문을 여니 세면대가 있고 좌식용 변기가 있다. 농담을 조금 보태서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곳이었데, 하나의 좌식용 변기만 있으니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이렇게 깨끗하고 넓은 화장실이 뭔가 이상하다?’고 눈치 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볼 일을 보고 나가려던 찰나, 옆에서 문이 빼꼼히 ..
11. 6월에 함박눈을 맞다 어제 저녁에 모래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박물관에 가고 LG거리를 다닐 때만 해도 전혀 바람이 불지 않았는데 저녁이 되니 금세 어둑어둑 해지며 세차게 불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중동의 모래바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람과 많이 달랐다. 풍속이 엄청나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중심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게 비가 오기 전의 증조라고 한다. 한국에선 비가 오기 전에 달무리가 나타나고 기온이 올라가는데 반해, 여긴 불지 않던 바람이 분다. ▲ 어제 저녁에 먹을거리를 사러 갔을 때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카자흐스탄은 중동의 광활한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여름엔 건기이고 겨울엔 우기라고 한다. 여름엔 비를 보기 어렵지만 겨울엔 많은 눈이 내려 그 눈이 녹은 물을 식수로 사..
10. 카자흐스탄의 음식을 처음으로 먹다 박물관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백화점에 들어갔다. 남학생들은 피자를 먹고, 여학생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 여기가 바로 알마티의 중심거리. 엘지거리다. 풍요가 사람을 넉넉하고 배포 있는 사람으로 만들진 않는다 재래시장에 갈 생각이었지만, 거의 저녁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으러 LG거리(아르바트거리)로 이동했다. 카자흐스탄에 왔는데 어제부터 오늘까지 전통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찾아온 것이다. 분위기는 한국의 여느 레스토랑 분위기와 흡사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이곳에선 모든 반찬에 가격이 붙는다는 것이고, 그건 물이라고 해서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목이 마르다고 했는데, 물이 나오지 않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
9. 고려인, 카자흐스탄에서 존경받는 민족이 되다 박물관은 어마어마했다. 이 도시의 상징성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곳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규모에 비해 볼만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카자흐스탄 전체 지도와 상징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거기서 사진을 찍으려면 200텡게를 내야 한단다. ▲ 바로 이곳이 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메인홀이다. 알마티 국립박물관 지하실엔 선사유적지, 1층엔 기획전시실, 3층엔 대통령 업적실, 다민족(터키인, 카작인, 고려인 등) 소개실, 오일대국 소개실 등이 있었다. 특히 고려인들을 소개하는 부스가 다른 민족을 소개하는 부스보다 넓으며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서 놀랐다. 그건 그만큼 이곳에서 고려인들의 위상이 높다는 이야기이리라. ▲ 알..
8. 카자흐스탄의 택시는 특이하다 날씨는 맑디맑다. 오늘 일정은 박물관과 질료늬 바자르란 재래식 시장에 가는 것이다. 홈스테이하러 간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서로 착오가 있었는지 한 시간이나 늦어지고 말았다. 원랜 아이들과 2시에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어제 저녁에 일정조율을 위해 원장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카작 친구들에게 10시 30분까지 교육원으로 오라고 했다고 하시는 거다. 당연히 카작 친구들이 한국 친구들에게 말해줄 것이기에 그 시간에 맞춰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10시 30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라. 원장님의 말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단재 친구들은 2시까지 가면 되는 줄 알고 있었기에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부랴부랴 연락하고 다 모..
7. 긴장의 미학 서바이벌 게임장에서 보는 천산산맥은 과히 일품이었다. 만년설이 그대로 보여 한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와는 대조되기에 어떤 상상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광경을 배경삼아 서바이벌 게임을 하니 느낌이 색다르다. ▲ 룰을 설명해주고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되던 순간. 서바이벌 게임 러시아인이 게임 설명을 해줬고 모든 카작인들은 알아들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카작어와 러시아어를 동시에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아는 민족이다. 우리나라에선 bilingual(두 언어를 구사하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취급하는데, 여긴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욱이 카작어의 어순은 한국어와 같으며 러시어의 어순은 영어와 같으니, 완전히 다른 언어를..
6. 카자흐스탄 도로 인프라로 본 서구중심주의 어젠 혜린이가 아팠던 것이 큰 문제였다. 하지만 아침을 먹으며 보니, 걱정과는 달리 혜린이는 미소를 되찾았다. 더 이상 아픈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아져서 정말 다행이다. ▲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엔 타자의 시선이 들어 있다. 그래서 함부로 난도질을 한다. 순조로운 하루 오늘은 교육원에서 여름 캠프를 하고 있는 학생들과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교육원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각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이들 중 고려인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일정에 단재 친구들도 함께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사모님은 우리를 위해 밥과 된장찌개를 준비해주셨다. 아침밥을 정성껏 차려주셔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밥이..
5. 정신승리란 무엇인가? 아침에 일어났지만 시차 때문에 피곤했다. 아직도 한국 시간에 맞춰 내 몸이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제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에 잤고 아침 7시쯤에 일어났으니, 겨우 4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은 것이다. 그래봐야 여기 시간으론 아직 새벽 4시밖에 되지 않았다(한국시간과 –3시간 차이). ▲ 교육원 창문에서 본 바깥 풍경. 만년설이 있는 천산산맥과 아파트가 보인다. 정신 승리란 없다 7시 30분에 기상하기로 했으니, 한참이나 더 잘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머리를 써가며 시차를 계산하다보니(핸드폰 시계가 한국 시간에 맞춰져 있음), 정신은 말짱해져 있었다. 몸은 피곤한데도 정신의 힘으로 피곤하지 않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정신승리’라고 할 수 있으며, 홀로 괴..
4. 카자흐스탄 구수도 알마티에 설치된 한국어 교육원 공항을 나가니 이견호 원장님이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바로 차를 타고 교육원으로 이동하는데 대략 30~40분이 걸렸다. 알마티 시내는 차가 많이 다녔으며 어둡긴 했지만 거리의 풍경은 한국의 80~90년대를 연상케 했다. ▲ 격자형으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진 계획 도시 알마티. 구수도, 알마티 알마티는 무려 해발 700미터에 건설된 도시라고 한다. 고지대에 건설된 도시답게 습하지 않아 여름엔 살기 좋은 편이지만 겨울엔 높은 산(천산산맥)이 바람을 막아 자동차들이 내품는 매연, 각 가정에서 떼는 나무 연기 등이 빠져나지 못해 공기오염이 심하단다. 그래서 외지 사람들이 4~5년을 살면 기관지 질환, 알레르기성 비염은 하나씩 달고 산다고. 알마티는 1929~1..
3. 비행기를 타고 알마티로 “기내식 맛있다” 또는 “기내식 별로던데”라는 말이 나에겐 어떤 특권층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 말은 곧 해외까지 나갈 정도로 잘 산다, 출세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이젠 내가 하려하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비행기는 순식간에 만피트에 다다랐다. 안정궤도에 들어서니 흔들리지도 않고 좋다. 고도 10000피트에서 맛보다 6시 40분쯤 이륙한 비행기가 안정 궤도에 들어가자, 승무원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바로 땅콩, 과자가 함께 든 간식과 음료를 제공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식을 줬으니 말이다. 적어도 간식을 주고 1~2시간이 지난 후에 기내식을 줄줄 알았다. 알마티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시간..
2. 경계를 넘어서다 첫 해외여행이다.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는 여행이지만, 그 의미 외에도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군대는 타의에 의해 가며 정해진 대로 행동하면 된다. 내가 기획하고 움직일 여지가 그다지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도보여행은 주체적인 결정이었고 여행 내내 나의 의지가 나를 이끌었다. 삼중고? NO! 삼중락? YES! 그런데 이번 여행은 나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는 여행이되, 나의 의지가 절대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며, 전체 계획에 대해서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야 한다. 첫 여행이라는 핸디캡,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부담감, 학생들을 인솔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이러하기에 삼중고三重苦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조차 생각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전면에 ..
1. 여는 글: 카자흐스탄 여행과 공감능력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는 전날이다. 어젠 자면서 수능 보러 갈 때, 군대에 갈 때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건 ‘여기서의 이 밤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이 불안하다기보다 처음 하는 일에 대한 걱정이 그렇게 느껴지게 만든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게 나에겐 아직도 힘든 일이다. 스마트폰이 문제? 오늘 교사회의 시간엔 카작여행의 일정 논의와 초이쌤의 연극팀 여행기 중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습 시간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느라 자신이 하는 역할 외에 상대방의 역할, 극의 흐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보면 스마트폰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지적한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다른 데에 있었다. “휴대폰을 ..
목차 1. 갑작스럽게 떠난 가평여행, 그리고 우리네 사는 이야기 갑작스런 여행의 이유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상봉역으로 펜션 픽업용 버스엔 비밀이 숨겨 있다 2. 수상 펜션이란 낯섦, 그리고 물놀이 수상 펜션, 용수목 펜션 비 오는 도마천에서 물놀이 하실래예~ 3. 여행의 세 가지 묘미 여행의 진미, 삼겹살 파티 여행의 묘미, 산책 호모루덴스들의 밤 나기 4. 좋은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버스 소동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전철로 갈 것이냐, 버스로 갈 것이냐 소동 목차 여행 사진
4. 좋은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버스 소동 자는 시간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기상 시간은 8시로 정해져 있었다. 10시 20분에 펜션 앞에 나와 있어야 픽업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8시가 약간 넘었을 때 아이들을 깨웠다. 아침으론 카레밥을 먹었고 가져온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짐을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니 10시 가까이 되었다. 아이들이 모두 거실에 모였다. 짧은 여행이지만 한 학기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떠난 여행이라, 이번 여행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 새벽까지 노느라 동이 텄음에도 잠을 자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아이들의 평은 대체로 좋았다. 뭔가 빡빡한 일정이 없다는 것에 대해, 자는 시간을 정해두..
3. 여행의 세 가지 묘미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아이들이 모두 들어왔고, 곧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상현이는 거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남학생 방에서 둥 떨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거실에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의 진미, 삼겹살 파티 고기를 굽고 나서 고기를 밥 상 위에 놨음에도 아이들은 바로 먹지 않고 한참이나 놀고 나서야 먹기 시작했다. 계곡에서 신나게 놀아서 배가 고플 만도 한데, 고기를 보고도 먹지 않고 놀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럴 땐 참 신기하기만 하다. 배가 고플 땐 아무리 재밌는 놀이를 해도 벌떼처럼 달려들어 고기를 먹을 만도 한데, 고기를 먹는 것보다 놀이를 하는 게 아이들에겐 더 신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젓가락을 손에 들고 먹기 ..
2. 수상 펜션이란 낯섦, 그리고 물놀이 펜션에 도착하여 짐을 내려놓았다. 펜션은 가운데 여러 명이 함께 놀 수 있는 거실이 있고, 양 끝엔 방이 있는 구조다. 2개의 방엔 욕실과 함께 주방도 딸려 있다. 초이쌤은 화장실이 두 개인 게 맘에 들어서 이곳에 예약한 거라 말씀하셨다. 수상 펜션, 용수목 펜션 하지만 지금껏 왔던 펜션에 비하면 좀 좁게 느껴졌고 여러 시설들이 미비한 느낌이었다. 수건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거나 청소 상태가 별로였던 점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대규모 펜션 단지란 점이 맘에 들지 않았다. 지금껏 가본 펜션들은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펜션이기에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해주려,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려 했었기 때문이다. 지리산 여행을 마치고 머물렀던 펜션에서 느꼈던 인간미가..
1. 갑작스럽게 떠난 가평여행, 그리고 우리네 사는 이야기 1학기가 끝나간다. 원래 단재학교는 한 학기에 한 번씩만 전체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학기가 시작할 때 전체여행을 가서 파이팅을 다지고 한 학기를 잘 준비해보자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갑작스런 여행의 이유 그런데 여행에 있어서 열려 있는 학교 분위기이다 보니, 학기를 계획할 때는 없던 여행을 간혹 가게 될 때도 있다. 무언가 여행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전체여행에 대한 바람이 있을 때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2013년에 떠났던 망상캠핑장으로의 여행이 그런 류의 여행이었고, 이번에 떠난 가평여행도 마찬가지다. 이런 여행의 목적은 한 학기를 마무리 지음과 동시에 한 학기를 보내느라 수고한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여..
목차 1. 애써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 기억의 속성은 망각이다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 가까운 사람이 삶의 나침반이 되다 2. 1038회 수요집회에 참가하다 달은 차면 기운다 경찰은 일본대사관을 지키고, 우린 ‘위안부’ 할머니를 지킨다 ‘위안부’ 문제의 시작과 수요 집회 화냥년이란 국가의 무능을 개인에게 덮어씌우는 말 수요 집회에 참석한 특별 손님 3. 우리 모두의 문제인, ‘위안부’ 문제 요시미 문건과 고노담화 ‘위안부’ 문제, 과연 일본만의 문제인가? 그렇기에 우린 똘똘 뭉쳐 소릴 외친다 인용 여행기 한반도의 현대사, 그리고 ‘위안부’ 문제 최치원과 황상, 그리고 류석춘
3. 우리의 모두 문제인 ‘위안부’ 문제 ‘위안부’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는 ‘과거에 발목이 잡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며 언급하기를 꺼려하고, ‘위안부’는 ‘돈을 받고 성을 판 사람들이다’는 망언을 하기도 한다.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요시미 문건과 고노담화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 왔는데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되었으므로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에 나아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서 위안소가 설치되고,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2. 1038회 수요집회에 참가하다 12시부터 집회 시작인데, 우린 카자흐스탄어 공부를 하고 오느라 학교에서 10시 50분쯤 나올 수 있었고,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어젠 비가 왔는데 비가 갠 후의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약간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하늘은 높고 파랗게 보이니 말이다. 흔히 하는 말로 ‘나들이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 친구들이 직접 만든 피켓엔 센스가 묻어난다. 달은 차면 기운다(月滿卽虧) 2012년 여름은 연일 계속 되는 불볕더위로 ‘이 여름이 언제나 지나가려나?’ 원망 아닌 원망까지 했었는데, 거짓말처럼 이렇게 순식간에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달이 차면 기울 듯, 불볕더위도 맹렬하면 힘을 잃게 마련이다. 이렇게 축복받은 날에 단재학생들은 수요 집회에 참석한다. ▲ 많은 ..
1. 애써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는 애써 기억하지 않으면 묻히고 만다. 더욱이 나와 상관없는 역사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기억의 속성은 망각이다 생각의 속성이 고집이라면, 기억의 속성은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이상) 망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위안부’ 문제는 현재진행형인 이야기이기보다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어렴풋이 아는 이야기였을 뿐이다. 그런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 특별게스트 '거노'와 영화팀은 역사의 현장으로 향한다.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 서울에서 살게 되면서 장밋빛 전망을 꿈꾸었다. 여기서 장밋빛 전망이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 아니라, ..
19. 위기에서 빛난 리더십과 한계 ▲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밥을 먹고 나서 못 찾았다고 속였던 캠코더를 갑자기 들이밀며, 한바탕 깜짝쇼를 했다. 자전거도 잘 고쳐졌겠다, 캠코더도 고장 난 데 없겠다 산뜻한 기분이 절로 든다. 이제 겨우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지 이틀이 지나 삼일 째가 되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시즌 2를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그건 아무래도 어제 저녁을 계기로 맘도 한결 여유로워졌기 때문이리라. ▲ 둘째날 리더로 우리팀을 이끈 민석이 리더 김민석이의 리더십, 긍정론 어제의 리더는 김민석이었다. 영화팀 막내로 시작하여 조금씩 리더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자전거 여행 중엔 처음으로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