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666)
건빵이랑 놀자
6. 여행수업과 교실수업의 차이 어제 저녁 8시가 넘어 찜질방에 들어왔다. 목욕탕에서 씻을 때만 해도 그렇게 사람이 많은 줄 몰랐는데 찜질방에 내려가고 나선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지금껏 찜질방을 도보여행 때(4~5월), 사람여행 때(3~4월), 남한강 도보여행 때(10월)와 같은 비수기에 찾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서를 하러 찜질방에 오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 일찍 시작하는 일정이지만, 늦장을 피우지 않았다. 찜질방은 피서지? 숙면실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놨고, 가장 큰 공간인 거실에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찼다. 단순히 누울 자리만 찾는 거면 어떻게든 찾을 수 있을 텐데, 카메라를 충전하기 위해서 콘센트가 있는 곳을 찾으려니 더 힘들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텔레비전 앞에 있는..
5. 지켜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도착 이제 전적으로 상현이와 나만 함께 달리게 됐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상현이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더라. 내가 상현이에게만 집중하면 할수록 상현이도 나도 서로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니 문제라는 말이다. 일대일 교육의 맹점 상현이는 자기를 졸졸 따라오는 내가 있기 때문에 안심하며 달리려 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를 피력하려 무지 애를 썼다. 그 말은 곧 ‘내가 힘드니, 당신이 책임져’라는 표현이기도 했다. 안전망이 있다는 건 때론 이처럼 사람을 무기력하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상현이에게만 신경 쓰게 되니, 조금 달리다 멈추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러 사람을 신경 쓰는 거라면, 오..
4. 함께 가기의 어려움 막상 달려보니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했다. ‘함께 가기’의 어려움 선두인 현세에게 주문한 건 ‘두 번째로 달리는 상현이를 봐가면서 간격을 유지하라’였다. 상현이는 한 번 뒤처지면 계속 뒤처질 수 있기에 앞에서 달리며 적당한 속도로 적당거리를 유지하며 달려서 상현이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는 것과 함께 ‘포기하면 안 돼!’라는 것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솔직히 이런 주문 자체가 자전거를 잘 타는 고수에게나 가능한 얘기긴 하다.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수준이되, 바로 손에 잡힐 정도의 목표여선 안 된다는 얘기이니 말이다. 하지만 현세는 애초부터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뒷사람이 어떻든 상관없이 자신의 최대 속도로 맹렬히 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을 ..
3. 여름방학 중 1박2일의 자전거 여행이 결정된 사연 이런 네 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영화팀이 방학 중 모임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모임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원인은 ‘작은 터럭 같은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낳는다毫釐之差 千里之繆’는 말처럼 아주 미세한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1박 2일 자전거 여행이 결정된 사연 계기는 민석 아버님이 민석이에게 비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준 데서 비롯되었다. 왕왕 대부분의 일들은 작은 사건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엄청 거대한 일이 되었을지라도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욥 8:7)’라는 말이 있다. 민석이는 비싼 자전거를 타면서 자전거에 ..
2. 우린 단재학교 영화팀이예요(현세와 상현편) 부족하다는 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오현세 현세는 영화팀 분위기 메이커다. 단재학교에서 2년 반을 함께 생활하며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 붙임성이랄지 상황을 희화화하는 능력이랄지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하지만 아직 진지한 상황을 잘 받아들이진 못한다. 모든 것을 장난식으로만 대하다 보니, 진지한 상황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난감해 한다. 아직 현실 감각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머니나 엄마가 대신 해주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런 것이다. 처음에 우릴 경악스럽게 했던 것은 컵라면을 물을 부을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쉬운 일이고, 해본 적이 없다 할지라도 주위 사람들이 ..
1. 우린 단재학교 영화팀이예요(민석과 정훈편) 영화팀은 방학 중에 하루 날을 잡고 모여 영화를 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애초에 이렇게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 정례화 되었다. 그렇게 2012년부터 작년까지 쭉 진행되었는데, 올핸 그런 룰(?)을 깨고 1박 2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가게 되었다. 어찌하여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영화팀 멤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틀이 바뀌면 꼴이 바뀌듯, 멤버가 바뀌면 상황도 바뀌니 말이다. 우리는 단재학교 영화팀이예요 영화팀은 어쩌다 보니 남학생들로만 구성되어있다. 이건 의도하지 않았는데 정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여학생이 처음부터 없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2012년 1학기엔 한 명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사..
목차 1.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작은 배움을 탐하다, 작은 틀에 갇히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길 원하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아닌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2. 삶이 배반한 자리에 희망이 어리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서 싹튼 ‘지금-여기’ 삶론 실패할지라도, 도전해보다 지금-여기를 축복하는 삶이 만든 기적 3. 어색한 만큼 금방 친해진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아기가 처음 만난 세계’를 어른이 되어 다시 느끼다 어색하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마재에서 느낀 다산의 향기 4. 정약용이 여유당이라 호를 지은 이유 마재엔 다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여유당, 그기 뭐꼬? 5. 정약용이 가르쳐준 인생담 여유당에 스민 다산의 ..
정약용은 갑자기 닥쳐온 환란으로 집안이 쑥대밭이 됐지만 그걸 운명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이 불러들인 실존의 문제로 여겼다. 바로 이런 가치관이 여유당이란 호를 짓게 된 이유였던 것이다. ▲ 다산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니, 의심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 비방이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여유당에 스민 다산의 마음 바로 다음의 문장에서 그는 드디어 ‘여유당’이란 당호를 짓게 된 경위를 말한다. 노자의 말에 “신중하도다 겨울에 냇가를 건너는 것처럼, 경계하도다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이라고 하였으니, 이 두 말이야말로 나의 병을 고칠만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반적으로 겨울에 냇가를 건너는 사람은 한기가 뼈에 아리듯하기에 심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건너지 않으며, ..
마재에 도착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통성명을 하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보면 사람은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하려 노력하는 게 보인다. 그러니 멋쩍을지라도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친해지니 말이다. 그 덕에 나도 두 명의 친구가 한 순간에 생겼고 ‘어색한 사람들과 어떻게 3박4일 동안 지내지’라는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다. ▲ 마재에서 다산을 만났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마재엔 다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마재는 다산(1762~1836)이 나서 15년 동안 자란 곳이자, 12년의 공직 생활을 끝내고 1년간 머물다가 유배 후에 돌아와 18년을 살았던 곳이다. 마재에서만 34년을 산 것이니, 다산의 시작과 끝이 오롯이 담겨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
나에게 여행이란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계획되어 있기에 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의해서 여행을 떠난 적은 있었어도, 내가 원해서 떠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내일만 보고 살아가는 놈’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살아가기보다,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단 말이다. ▲ 나에게 여행이란 이런 광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의 의지로 참가하기로 결심을 한, 실학순례는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쯤 되어서 드는 생각은 ‘왜 여태껏 내 의지대로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맘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을 ..
무엇을 하든 ‘임용에 합격한 후에 하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임용이 된 후에 할 일 목록’을 만들기도 했고, 그런 영광의 순간을 위해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 합격 이후로 모두 다 미루어놓은 삶. 그러다 보니 '지금-여기'는 늘 거부되고, 저주하게 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하지만 첫 임용시험에서 보란 듯이 떨어지고 말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등임용 시험의 경쟁률이 높으니, 첫 시험에서 떨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용을 보는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첫 시험은 예행연습 삼아서 보는 거야’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도 원체 기대도 컸고, 4년 간 최선을 다해 달렸다고 생각하니 떨어짐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삶이 언제고 맘..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지냈는지 모른다. 앞날은 불투명했지만 어찌 되었든 대학에 왔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때론 그렇게 생각 없이, 고민 없이 정해진 수순대로 살아갈 때가 있다. 하긴 ‘때론’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길만을 걷다 보면, 그게 ‘당연히 가야 할 길’로 보이고, 그 길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 인생엔 분명 무수한 갈림길이 있지만, 우린 갈림길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길만 보고 맹목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게 들어서서 가고 있는 길이라 해서, 아무런 걱정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10대엔..
2018년 제주도 자전거 일주여행 1. 갑갑증이 몰려올 땐 무작정 떠나야 한다 즉흥적인 제주 여행, 콜? 떠나면 보이는 것들 ‘파랑새는 곁에 있다’는 말의 의미 2. 무작정 제주로 떠나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 주는 선물 제주에 스민 역사, 나에게 스밀 제주 3. 우연처럼 두려움을 안고 제주행 비행기를 타다 망상에 시달리던 새해 첫 날의 풍경 발작적으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다 우연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여기며 두려움으로 시작한 제주 여행의 시작 4. 공항검색대는 언제나 날 긴장시킨다 해보면 별 것 아니지만, 해보기까지가 힘들다 검색대는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한다 비행기가 뜨면 몸이 근질근질 거려 5. 제주를 보니 열정이 샘솟는다 제주를 마주치는 순간,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하다 만남은 맛남이 될 ..
26. 제주여행이 준 선물, ‘한 평생이란 시각’ 자전거점에 자전거를 반납하니 공항까지 태워다 주신다. 역시나 방학 기간 중 주말답게 공항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씨가 말했던 것처럼 70~80년대엔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그저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하긴 나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제주에 온 것이니, 제주는 이제 더 이상 머나 먼 유배지의 땅은 아니게 된 것이다. 나만큼 이들도 이곳저곳 다니며 2018년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했겠지. ▲ 사람이 가득 찬 공항. 제주에 왔지만 집에 가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북새통을 이룬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전주 비행기는 공항을 벗어나 활주로에 진입하기 전 단계에서 멈췄다. 이곳은 하나의 활주로를 ..
25.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와 여행의 마무리 김만덕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중섭미술관에선 이중섭을 만나 가슴 뭉클했었는데 여기서도 김만덕을 직접 만나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김만덕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의 사람이고 이중섭은 50년 전의 사람이지만, 기념관과 미술관을 둘러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들 또한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팔팔 끓는 가슴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걸 알겠더라. 이래서 맹자는 “옛 시를 읊고 옛 글을 읽었는데도 그 사람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옛 사람이 살던 때를 말할 수 있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옛 사람을 벗 삼는다(尙友)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나 보다. 그들을 통해 나도 그들과 벗이 되었으..
24. 김만덕 이야기를 통해 사람평가에 대해 생각하다 김만덕이 갑인흉년에 제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줬다는 훈훈한 이야기는 굳이 소문내려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입을 타고 금세 퍼졌다.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정조는 매우 흐뭇했으리라. 그래서 그녀에게 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걸 거부한다. 어찌 보면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자신은 상을 받기 위해, 기림을 얻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했는데 상을 받게 되면 자신의 진심이 훼손될 것을 알기에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 흉년에 제주민들에게 양곡을 구입하여 그대로 나누어준다. 만덕,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인물로 기려지다 그래서 상을 주는 대신 소원을 말하라고 하니 만덕은 “달리 원하..
23. 김만덕의 파란만장한 삶과 갑인흉년에 드러난 진심 아침으론 어제 먹다 남은 것들로 간단하게 먹고 마지막 날의 일정을 시작했다. 제주박물관의 개관시간이 1시간 늦춰졌기에 그곳엔 갈 수는 없었고, 여기서 가볍게 둘러볼 수 있는 김만덕기념관에 가기로 했다. 김만덕 기념관은 제주항 부근에 있기에 자전거를 타고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하긴 김만덕이 활동하던 당시의 제주는 지금처럼 번화한 곳은 아니었다. 제주항 부근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며 김만덕은 이곳에 객주를 열어 장사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 후덕한 인상이 보기 좋다. 대모와 같은 풍모가 어린다. 김만덕기념관에 들어서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김만덕(1739~1812) 상과 그 앞에 나란히 쌓아올려 진열된 ‘김만덕 사랑의 나눔쌀’이란 포대자..
22. 몸을 맡겨 흐를 수 있길 어제 저녁에 동문시장에서 회와 김밥, 튀김, 순대, 어묵탕을 사와서 한라산 소주와 함께 먹으며 제주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6년 만에 찾아온 제주지만, 3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일주를 하고 나니 늘 있었던 곳인 양 편하게만 느껴지더라. 이래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나보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제주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사무치게 외로워진다. ▲ 한라산 한 잔에 젖어든 외로움 하나. 빈 공간을 채우려 애쓰다 살다보면 사무치게 외로운 날이 있다. 가족도 날 달래주지 못하고, 책 읽거나 영화 보기조차 귀찮은 그런 날이 있다. 이런 날이면 나는 친구를 생각한다. 술이나 한잔하자고 할까? 그러나 이내 그만두고 만다. 가슴 한쪽이 텅 빈 듯한 공허감..
21. 제주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라 성산포항에 도착했으니 이젠 목적지를 정해야 한다. 조금만 달릴 거면 김녕까지만 가면 되지만, 좀 더 욕심을 낼 거면 삼양동까지 갈 수도 있다. 물론 그러려면 그 근처에 머물 만한 모텔이 있느냐가 중요하지만 말이다. ▲ 거대한 거인처럼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다. 연거푸 이틀에 걸쳐 두 번이나 스쳐 지나간 인연 그래서 먼저 삼양동 근처의 모텔을 검색해보니 거기엔 숙소가 거의 없고 시내 외곽 부근부터 많더라. 이런 경우 고민의 여지는 없다. 어차피 내일이면 여행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에 오늘 좀 더 많이 달린다고 해도 괜찮으니 말이다. 그래서 별 다른 고민 없이 시내 근처의 모텔을 예약했다. 지금 시간은 12시 20분 정도이고 지도상으론 여기서 제주 외곽까지 2시간 40분이면 ..
20. 대야에 담긴 물 같은 나의 마음 세 가지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고 땅콩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한 후에 음식점을 나왔다. 10시 24분에 들어가 11시 30분까지 있었으니, 정말 느긋이 먹은 셈이다. ▲ 한 시간이 넘도록 음식을 느긋이 먹었던 추억의 장소. 순간에 머물 수 있던 점심 식사 시간 음식을 먹더라도, 차를 마시더라도 이처럼 여유롭게 먹고 마시고 싶었다. 일상에 치여 살면 먹는 재미, 마시는 묘미, 그 시간을 즐기는 설렘을 모두 망각하게 된다. 그런 것들은 모두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엔 ‘내가 무얼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지?’라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나도 일상에 치여, 삶에 갇혀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내 자신이란 ..
19. 처절하게 외로워져라 난 여행인데도 멋진 풍경을 볼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무작정 달릴 때 사무치게 외로움이 밀려오며 내 몸은, 나의 감정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외로워지고 싶었지만 막상 외로움이 밀려드니, 그 감정을 주체하질 못하겠다. 이래서 사람인 거겠지. ▲ 우도의 풍경에서 밖을 내다 보고 찍은 사진. 사무치게 외로움이 밀려온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이에게 주는 선물 그래도 때론 외로워질 필요도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야만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외로워져야만 좀 더 내가 처한 상황이 명확하게 보이고 내 자신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나란 사람은 참으로 누군가의 평판이나 기대에 한없이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좋은 평판을 받기 ..
18. 후회 없던 우도 소풍에서의 점심식사 한참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어들고 있으려니, 서서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우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는지 찾아봤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내내 보니 ‘땅콩아이스크림’이라 씌어 있는 간판이 자주 보이더라. 땅콩아이스크림이라면 월드콘 위에 얹어 있는 땅콩이 떠오른다. 과연 그 맛과 무엇이 다른지 한 번 먹어봐야겠다. ▲ 날씨가 확 개었다. 호기롭게 주문한 점심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거긴 해물짬뽕과 한라산 볶음밥, 전복스테이크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곳인데, 매우 맘에 드는 점은 일인분도 주문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홀로 여행족이 가장 난감할 때가 그 지역의 음식을 먹고..
17. 콧바람 쐬며 우도에 왔어요 자전거는 구석에 잘 묶어두고 객실로 올라갔다. 내 기분처럼 하늘도 서서히 개며 햇살이 서서히 비춰오더라. 제주에 자주 오는 사람들은 바로 객실로 들어가 앉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햇볕이 비친다. 그에 따라 성산일출봉도 밝아지고 있다. 여행하는 자여, 콧바람을 쐬라 이렇게 제주의 바다를 건넌다는 게 신기했고, 제주의 바닷바람을 맘껏 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간에 기대어 배가 출발하길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배를 탔던 건 남이섬에 갈 때였다. 거긴 북한강 한 가운데 있는 섬이기에 이렇게까지 물살이 세지도 바람이 세차지도 않았는데, 여긴 바다답게 물살이 심하게 일렁여 배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날카로운 바람이 옷깃 속을 파고들더라. ..
16. 섬 속의 섬, 우도에 이끌리다 어제 오후에 성산읍으로 달릴 때 하늘이 잔뜩 흐려졌고 바람까지도 심상치 않게 불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했다. 그래서 잔뜩 긴장하며 달렸는데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고 머지않아 잠이 들었다. 정말 푹 잔 느낌이다. 이곳은 그래도 호텔이란 이름에 걸맞게 깨끗하고 시설도 좋은 편이며,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아 편안한 분위기다. 6시에 일어나자마자 반사적으로 커튼을 젖히고 비가 오는지를 살폈다. 어제 발표된 일기예보엔 저녁부터 오늘 오전까지 비가 오는 걸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여전히 비가 온다면 이곳 퇴실 시간인 11시까지 뒤비져 놀다가 나가볼 작정이었다. 그래서 날씨를 확인한 건데, 다행히 하늘엔 구름만 껴 있을 뿐 비는 그쳤더라. 무작..
15. 존재가 선물이 되는 순간 표선면까지 가는 길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가득 끼더니 더욱 흐려졌고 맞바람까지 불어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2시간 정도 걸릴 거리가 그래서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 2011년 사람여행 때 포항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에 아침으로 먹은 것. 이때 맥주의 맛을 알았다지. 제주식 해장국? 점심으론 뭐를 먹을까 하다가 어제 점심엔 중화요리를 먹었기에 오늘은 다른 걸 찾기로 했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물요리(딱새우 된장찌개나 자리물회 같은 것)가 끌리긴 했는데 막상 마을에 들어섰음에도 눈에 보이는 음식점이 별로 없더라. 그때 해장국집이 보였는데 아침에도 해장국을 먹었기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배가 무척 고팠고 심하게 부는 바람에 시달려 ..
14. 지도 들고 떠날 것인가, 스마트폰 들고 떠날 것인가 이중섭에 대해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이번 제주여행에 필수 코스로 넣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 막상 이중섭미술관에 들어가 보니 그가 내게 다가와 인생담, 예술관, 그리고 가족에 대한 소회 등을 맘껏 얘기해주는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정현종 시인의 ‘사람이 온다는 건 /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시처럼 그의 무수한 얘기들이 나를 흔들었다. 2011년에 사람여행을 하며 느꼈던 사실과 같이, 그 장소가 누군가와의 추억으로 채워지면 그 장소는 뭇 장소가 아닌 ‘그 장소’로 기억된다. 거기엔 우리가 함께 나눈 숨결과 이야기들이 ..
13. 이중섭미술관엔 이중섭이 살아있다 그의 작품 중 춘화라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은지화는 꼭 봐야만 하는 작품이다. ▲ '몰고기와 아이들' 작은 은지에 그린 그림이기에, 자세히 봐야만 보인다. 은지에 새겨진 가족애 우선 재료가 독특하다는 점이다. 담배를 감싸고 있던 은지를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그림을 그렸으니 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해방부터 한국전쟁까지의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미술도구를 다 갖추고 창작활동을 할 수 없던 열악한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스케치를 할 수 있는 도화지도 없고, 색칠을 할 수 있는 물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선 웬만한 창작열이 있지 않다면 대부분 창작활동은 포기하고 다른 생업을 찾아 전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12. 이중섭미술관은 한바탕 울만한 곳이다 이중섭 미술관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선 이중섭의 연대기 및 주요 은지화 작품들, 그가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들, 그리고 아내에게 주고 온 팔렛트가 전시되어 있고 2층엔 그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3층은 전망대로 제주의 남해를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다. ▲ 3층 전망대에선 제주의 남해가 시원하게 보인다. 극도의 외로움과 가족애가 만든 이중섭의 작품세계 그는 21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문화학원에 다니며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그 학교에 후배로 있던 야마모토 마사코와 사귀게 된다. 그 후 28살에 원산으로 입항하며 한국에 정착하게 되고, 30살이 되던 해에 그녀와 결혼하며 그녀에게 ‘이남덕’이란 한국식 이름을 지어준다. 그때는 1945년 5월로 해방..
11. 한문학도가 이중섭미술관을 찾은 이유 최근에 ‘알쓸신잡’이란 TV프로그램을 알게 되어서 재밌게 보고 있다. 이 프로는 단순히 여행을 하고 별 의미 없는 게임을 하는 여타 프로그램과 달리, 여행한 후에 인문학자, 건축학자, 뇌과학자, 음식전문가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느낀 점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프로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지식의 통섭’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라 할 수 있고, 그걸 통해 우린 그들이 여행한 곳의 인문, 사회, 건축, 음식 등의 다양한 지식들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 '알쓸신잡'은 통섭적 학문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했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있다. 한문학도가 바라본 여행을 담아내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학문은 잘게 쪼개어져 과학을 하는 사람은 과학만, 철학을 하는 사람은..
10. 서귀포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달리다 어젠 그래도 간간히 햇살이 비치며 기온도 높아 꽤 덥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벌써부터 구름이 한가득 끼어 있어 서늘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고, 겨울용 외투로 중무장을 했다. ▲ 가까운 곳에 해장국집이 있어서 들어왔다. 배불리 먹고 이튿날의 일정을 시작해보련다. 해장국, 넌 나에게 치욕을 안겨줬어 아침은 호텔 근처에 있는 미향해장국집에서 먹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해주는 곳인 줄은 알았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문을 열고 들어가 “해장국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얼큰한 맛과 순한 맛 중 뭐로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보통 때였으면 당연히 순한 맛을 시켰을 거다. 누군가는 매운 것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데, 난 매운맛은 질색이니..
9.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일찍 지친다 어제 밤 11시쯤에 잠이 들었나 보다. 저녁 7시까지 페달을 밟아 하루 만에 제주에서 서귀포까지 달리고보니 몸은 완전히 파김치가 됐다. 낯선 공간이라 선잠을 잘 법도 한 데도, 몸을 누이자마자 언제 잤는지도 모르게 꿀잠을 잘 수 있었다. ▲ 싱글 베드 두개가 놓인 방이라, 아무래도 좀 저렴했던 거 같다. 저녁으론 통닭을 먹으며 알쓸신잡을 봤다. 비를 맞는 여행의 묘미? 오늘 서울은 영하의 강추위가 이어진다고 하던데 이곳 제주는 어제와 똑같이 영상 4도로 포근하기만 하다. 막상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맘먹었을 때만 해도 ‘겨울이라 하이킹이 가능할까?’라는 걱정을 했는데, 그런 걱정 따위는 ‘넣어둬~ 넣어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포근하기만 했으니 정말 다행이다. 단..
8. 사람 맘은 참으로 간사하다 그런데 그때쯤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제주에 와서 늘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자전거 여행을 했었기에 이번에도 별 생각 없이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말이다. ▲ 오후가 되니 눈부신 햇살이 반겨준다. 제주에서 정말 맛있는 볶음밥을 먹다 역시 고민하지 않으면 늘 하던 방식대로 살아가고 행동하게 마련이다. 누군가 그렇게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님에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패턴화된 방식대로 행동하게 된다. 이번에도 어차피 자전거를 타고 다닐 거면 저번과는 달리 시계 방향으로 도는 방법도 있었을 거다. 그렇게 했다면 그땐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다른 방향에서 느껴지는 제주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멀리까지 갈 필요도 ..
7. 제주의 바다를 보니 일주를 하고 싶어지다 사람 맘이 참으로 간사하다. 비행기를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이번엔 절대 자전거를 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전거를 빌려서 달리고 있으니 언제 그랬냐 싶게 절로 행복해진다. 언제였더라,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거 같은데 자전거를 타고 싶어 무작정 끌고 나왔던 적이 있다. 막상 집에서 나오긴 했는데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기에 도로를 그냥 달렸다. 그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자전거는 나에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뫼베처럼 세상을 맘껏 누빌 수 있도록 해주는 둘도 없는 친구다. ▲ 자전거를 타고 제주 바다로 나간다. 기분 짱 좋다. 자전거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된 순간 여행을 할 때면 별 생각 없이 ‘도보여행’만을 생각했다. 첫 여행이 도보여행이었..
6. 1월에 자전거를 대여하다 검색해 보니 여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더라. 아마도 상호명이 같은 걸로 봐서는 이곳이 확장 이전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곳에서 다시 가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 후에 내려 자전거 대여점에 들어갔다. ▲ 좀 헤매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게 헤매고 예상치 못한 것들을 하는 게 여행의 묘미이니. 자전거 대여점에 불쑥 들어온 황당한 손님? 가게에 쭈뼛쭈뼛 들어가니, 이곳은 대여점이라기보다 판매점에 훨씬 가까운 모양새더라. 바깥에 대여해주는 자전거가 몇 대 보이긴 했지만, 안쪽에 팔기 위한 자전거가 더 많아 보였으니 말이다. 기억이 왜곡된 탓일 수도 있지만, 예전엔 대여해주는 자전거가 더 많았다고 기억에 남아 있다. 가게 안엔 사람..
5. 제주를 보니 열정이 샘솟는다 비행기는 1시간 정도를 날아 마침내 제주에 도착했다. 2011년에 제주에 처음 왔을 때의 그 설렘이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 같은, 그리고 이곳이라면 무엇이든 관념에 갇히지 않고 맘껏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말이다. ▲ 비행기는 날아갈 때보다 떠오를 때와 내려앉을 때의 기분이 좋다. 제주를 마주치는 순간, 전혀 다른 나를 발견하다 그런데 더 재밌는 점은 마침내 제주가 한 눈에 내려 보이는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분명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별 다른 계획도, 별 다른 의미도 없이 갔다가 오자고만 생각했었는데, 제주도가 보이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파고를 치며 무엇이든 ..
4. 공항검색대는 언제나 날 긴장시킨다 제주여행 중 이전 두 번의 여행은 며칠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떠난 데 반해, 이번 여행은 감정기복에 따라 순전히 우발적으로, 우연하게 떠나게 됐다. 바로 하루 전날에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그에 따라 출발하게 된 여행이니 말이다. ▲ 하루 전 날에 제주행 비행기를 끊었다. 해보면 별 것 아니지만, 해보기까지가 힘들다 집에서 김포공항까진 전철로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김포공항에 오는 건 두 번째지만 벌써 6년이나 흘렀고, 오늘처럼 혼자 오는 건 처음이니 모든 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지하철역에서부터 이정표를 따라가니 김포공항이 나오더라. 2층에선 티케팅을 할 수 있고, 3층에선 수속을 밟은 후에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 ▲ 공항역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
3. 우연처럼 두려움을 안고 제주행 비행기를 타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누군가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겠다며 동해로 서해로 종로로 또는 높은 산을 찾아 떠났겠지만, 난 내 방에 콕 틀어박힌 채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고 방안에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맘 같아선 어딘가로 홀연히 떠나고 싶기도 했지만, 그땐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렇게 있었다. ▲ 보신각을 에워싼 사람들. 산으로, 바다로, 종로로 모인 사람들. 새 기분으로 새 해를 열려는 마음이 소중하다. 망상에 시달리던 새해 첫 날의 풍경 그랬더니 스멀스멀 여러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방학이 됐는데도 왜 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 ‘늘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여행도 떠나고 하고 싶은 일도 하겠다고 하더니 뻥이었던..
2. 무작정 제주로 떠나다 제주도 여행은 2011년에 여자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3박 4일 동안 제주도를 일주했던 여행을 시작으로 2012년엔 단재학교 아이들과 4박 5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일주했던 여행이 끝이었다. ▲ 2011년엔 10월에 2012년엔 4월에 갔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 주는 선물 생활이 안정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더 많은 여행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역시나 ‘나중에 ~이 되면 그땐 맘껏 할 수 있으니, 지금은 하지 말고 나중에 해’라는 말은 매우 그럴 듯해보여도 전혀 사실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무엇이 된 이후엔 그때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인해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그러니 맘이 동할 때 재지 말고 그냥 할 수 있는 저력이 필요하..
1. 갑갑증이 몰려올 땐 무작정 떠나야 한다 닭의 해에 태어난 나에게 닭의 해인 2017년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해였다. 단재학교에서의 생활이야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6년차 교사가 된 만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6년 간 생활해온 민석이와 잘 마무리하는 해이자, 단재학교 학생 외에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나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기도 하는 등 도전이 가득한 해였으니 말이다. 그뿐 아니라 송파마을예술창작소에선 매달 한 번씩 지역민들과 만나 독립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도 이끌 수 있었으니, 좀 더 사람과 사람, 관계와 인연에 대해 생각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쓰는 기록은 제주도 여행기이기에 이에 관한 내용은 별도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 마을예술창작소에서 독립영화를 ..
목차 1. 대안학교의 역사와 위기상황 많아진 대안학교와 협소해진 교육철학이 위기를 부르다 대안학교는 개별성을 중시하며, 학생 맞춤형 학교다? 2. 단재학교에서 전체여행이 중요한 이유 학생 맞춤형 학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학교 단재학교에서 여행을 가고, 발표회를 하는 이유? 3. 사후적 지성으로 5월에 전체여행을 떠나다 목표에 따라 커리큘럼이 구성되어야 하나? 해본 이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5월에 전체여행을 가게 된 이유 4.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치다 특명: 왕십리역 중앙선 승차장에서 모두 모두 모여라 여유로운 아침 속에 분주한 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환상이 낳은 비극 5. 경춘선은 상봉역에서 떠나네 춘천 가는 기차는 상봉역에서 떠나네 경춘선 기차에서 보는 풍경 6. 가평..
저녁을 거의 먹어가던 그 때 아이들은 수상한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뭔가 비밀접선을 하는 눈빛이었고, 그에 따라 몇 명의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식사가 끝나고 치워야 함에도 방에 들어가 노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모두 나와서 저녁 먹은 건 치우고 놀아라’라고 말할까도 했지만, 아직 먹는 사람들이 있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 맛있게 밥을 먹던 그 때 아이들은 심상치 않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이건 그 때의 흔적들. 기획하지 않은 ‘스승의 날’ 행사 그렇게 저녁 식사가 거의 끝나가던 그 때, 규빈이는 쟁반에 초코파이와 과자를 담고, 초코파이엔 초를 꽂아 우리 쪽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 순간 ‘오늘 누구 생일인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15. 요리가 공부가 되는 현장 제이드 가든에서 걸어서 펜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가까워서 걸을 만했다. 들어와선 곧바로 저녁 준비를 했다. 이번 저녁은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여행 마지막 밤엔 고기파티’라는 일반적인 흐름을 깨고 아이들이 직접 요리를 하여 함께 먹는 것이다. ▲ 열심히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아이들. 요리와 공부의 공통점 여행 기간 중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나누어 먹게 된 시작은 12년 4월에 단재 식구들이 함께 떠났던 천리포 수목원에서였다. 그 후로 한동안 전체여행을 가서 요리를 만들어 먹은 적은 없었고 각 팀별 여행에서나 요리를 하여 먹는 정도였다. 그러다 작년 9월에 격포로 전체여행을 갔을 때, 둘째 날 아침을 팀별로 준비하여 함께 먹으며 3년 만에 부활되었다. 그때부터 여행을 갈 ..
1시간 20분 정도만 있기로 했기에, 시간이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었다. 태기와 성민이는 심드렁해졌는지, 더 이상 둘러보지 않고 그냥 내려가더라. 이에 반해 준영이는 길을 따라 쭉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함께 올라갔다. ▲ 준영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곳. 오르니 그래도 좋긴 하다.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준영이는 작년 2학기부터 함께 하며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한 영화팀의 일원이기도 했지만, 등교시간이 차츰 늦어지면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그 후로 올핸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더 거리감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땐 함께 오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니, 카페가 있더라. 거기엔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파..
남이나루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한번에 나가지 못하고 다음 배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 시간은 아침 11시 20분인데도 사람들은 가득 찼다. 들어오려는 사람부터 나가려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밀리니 그런 것이다. 남이섬에서 하룻밤을 지내지 않을 거면 차라리 이들처럼 아침 일찍 들어가 늦은 오후까지 맘껏 즐기다 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기에, 이 시간부터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일 거다. ▲ 남이섬 안녕 보고 싶을 거야. 가평터미널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선착장에서 내려 터미널로 가야 한다. 33-5번 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으니 그것을 타고 가도 되지만, 초이쌤은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한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꽤 지체될 것이니, 그럴 바에야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택시를 타고 가자는 의미..
아침에 일어나 잠시 주변을 산책했다. 우리 콘도 옆으로도 콘도들이 쫙 늘어서 있으며 2인실에서부터 다인실까지 다양한 모양의 건물이 있더라. ▲ 창문으로 아침이 들어온다. 남이섬에서 맞이한 아침 8시 30분쯤 콘도에 들어가니 아침을 준비하는 팀이 열심히 토스트와 계란 후라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고기로 배불리 먹은 터라, 간단하게 먹어야 하는 아침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토스트와 우유를 먹으며 잠시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니, 높이 설치된 창문에서 아침 햇살이 새어 나오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드디어 5월 12일, 여행 둘째 날의 시작이다. 날씨는 맑고 약간 덥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는 아니니 다시 시작될 여행이 기대가 됐다. 11시까지 퇴실이기에 우..
이번 전체여행의 컨셉을 ‘공포여행’으로 잡았다. 그것도 한 번만 하자는 게 아니라, 오늘과 내일 두 번 모두 하자는 것이다. 아이들은 지금 ‘공포’라는 것에 꽂혀 있어서 영화를 보더라도 ‘공포영화’, 게임을 하더라도 ‘공포게임’, 놀이를 하더라도 ‘공포체험’을 하려 한다. ▲ 이게 진정한 공포여행 단재학교 학생들, ‘공포’에 빠져들다 언제부터 이렇게 ‘공포’에 빠지게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 시작은 작년 1학기 여행인 ‘전주-임실 여행’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땐 교사들끼리 ‘담력훈련’을 하자며 계획을 짰었다. 전주엔 한옥마을 바로 옆에 ‘치명자산(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묻힌 산)’이란 으스스한 이름의 산이 있다. 이곳 곳곳엔 순교자들을 기리는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자연스레 공동묘지에서..
구석구석 가볼 만한 곳은 모두 달렸지만, ‘남이장군묘’엔 가보지 못했다. 이곳은 애써 찾아야만 겨우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린 외곽으로만 달렸으며 안을 세밀하게 보면서 달리진 않았기 때문에 놓친 것이다. ▲ 남이섬에 왔으면 빠름이나 효율은 버리고 그저 즐겨볼 일이다. 남이섬에선 빠름보단 느림으로, 효율보단 비효율로 진짜 남이장군의 묘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고, 이곳은 역모를 꾀한다고 유자광이 모함하여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 후에, 그 시체가 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돌무더기를 묘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가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남이섬이란 이름의 유래에 해당되는 장소이니만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느라 결국은 가보지 못하고 남이섬 자전거 여행은 끝이 났다. ..
콘도에 들어와 짐을 풀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불을 펴고 누우니, 잠이 소록소록 온다. 아이들도 저마다 자리를 펴고 누워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한다. 만약 이대로 놔뒀다면 한숨 푹 잤을 테지만, 다음 일정이 있기 때문에 30분 정도 쉬다가 일어나야 했다. ▲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아이들. 항우의 힘과 기개를 느낄 수 있던 잔디 축구 밖에 나오니 아이들은 콘도 바로 옆에서 공을 패스하며 놀고 있더라. 평소에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날엔 몸을 움직이고 싶긴 하나 보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공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승태쌤은 아예 팀을 짜서 미니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여학생들과 준영이는 쉬고 싶다며 하지 말자고 ..
남이섬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은 총 세 가지가 있다.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배를 타는 방법, 짚와이어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 모터보트(4~5인승)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 기본 가격은 일인당 만원 씩이다. 남이섬에 들어가는 갖가지 방법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인 배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은 1인당 만원의 요금이 들어간다. 만원엔 남이섬 입장료와 배를 왕복으로 이용할 수 있는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배는 세 대 정도가 번갈아가며 운행을 하기에 우리가 갔을 때는 많이 기다리지 않고 배가 올 때마다 바로 바로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주말엔 배를 탈 때까지 꽤 많은 시간과 번잡함을 감수해야 할 듯했다. ▲ 가장 많이 애용하는 배를 타고 가는 방법. 저렴하지만 대기인원에 따라 시간이 무한정 길어질 ..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남이섬가평 선착장으로 걸어간다. 선착장 주차장엔 관광버스들이 즐비하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있을지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된다. 선착장에 들어서니 한옥풍의 건물이 보이고 ‘사람떼’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역시나 유명 관광지답게 내국인부터 외국인까지, 여행객부터 수학여행을 온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 지금 시간은 평일 2시 40분인데, 사람들이 많기도 많다. 남이섬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남이섬은 겨울연가로 유명해진 곳이다. 겨울연가라는 드라마로 인해 일본에 한류 열풍이 불었다. 그 당시 일본의 중년 여성들은 배용준에게서 ‘일본 남성’에겐 느끼지 못한 부드러운 남성미와 사르르 녹는 듯한 감미로움을 느끼며 그를 추앙하여 ‘욘사마’라는 별명까지 붙..
1시간 정도를 달려 가평역에서 내렸다. 당연히 가평역 앞에서 승태쌤과 준영이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준영이는 보이지 않고 승태쌤만 계시더라. ▲ 닭갈비집이 문을 닫아 헤매고 있는 아이들. 가평에서 먹은 춘천닭갈비의 맛 시간이 11시 50분이 넘었기 때문에 점심밥부터 먹기로 했다. 그래서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내렸다. 예전 가평역은 터미널 바로 뒤편에 있었기에 훨씬 접근성이 좋았지만, 지금은 조금 외곽에 있기에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뭐 먹을지 물으니, 중화요리를 먹자는 의견과 닭갈비를 먹자는 의견으로 양분됐다. 하지만 터미널 바로 근처에 닭갈비집이 보였기에, 거기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날은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점은 열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래 매주 수요..
10시까지 왕십리역 경의중앙선 승강장으로 모이기로 했다. 지훈이와 현세는 조금 늦게 왔고, 준영이는 바로 가평역으로 온다고 하더라. 오늘은 작년 1학기 마무리 여행이었던 가평 도마천 여행 이후 오랜만에 상현이도 함께 가기로 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상현이 어머니에게 “12번 출구로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전화가 오더라. 그래서 태기와 성민이와 함께 12번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거긴 선상역사로 들어오는 곳이니, 당연히 승강장 위에 있었고 우린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러니 한참을 헤맨 후에 승강장에서 위로 올라가야 12번 출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올라가 보니 개찰구 바로 앞에 상현이와 어머님이 서있더라. 상현이를 데리고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오니, 그 사이에 늦었던..
10시까지 왕십리역에서 모이기로 했다. 경춘선이 출발하는 상봉역에서 모이면 훨씬 편하지만, 아직 지하철을 타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왕십리역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 한파가 찾아온 개학여행 때 왕십리역에서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특명: 왕십리역 중앙선 승차장에서 모두 모두 모여라 그런데 왕십리역은 무려 네 개의 노선이 지나가다 보니 엄청 복잡하다. ‘청량리 방향으로 가는 중앙선 승차장’에서 모이기로 정했지만, 잘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헤매게 마련이다. 실제로 개학여행으로 강촌스키장에 갔을 때도 왕십리역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각자 오는 방법이 다르다 보니 아이들을 찾아 한참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때 경험을 해봤으니, 이번에는 그나마 좀..
단재학교는 ‘성숙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전체여행과 학습발표회를 매학기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 2011 학습발표회 ▲ 2012 1학기 학습발표회 ▲ 2012 2학기 학습발표회 ▲ 2013 학습발표회 ▲ 2014 학습발표회 ▲ 2015 1학기 작은 전시회 ▲ 2015 2학기 학습발표회 ▲ 단재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그 대신에 시험만큼 중요한 학습발표회를 한다.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글로 링크됨) 목표에 따라 커리큘럼이 구성되어야 하나? 하지만 어떤 활동이든 목표가 정해져 있다고 해서 꼭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으로만 커리큘럼이 짜여야 하는 건 아니다. 이를 테면 ‘수학 영재 육성’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과목을 수학 한 과목으로 도배하여 1교시엔 집합을 배우고, 2교시엔 사..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정말로 맞는 말처럼 들린다. 제도권 학교의 문제점 때문에 대안교육 운동이 일어났으니, 그런 문제점을 면밀히 파악하여 고치기만 해도 좋은 학교가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우린 돈을 주고 교육 상품을 산다고 생각한다. 학생 맞춤형 학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학교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와 같은 생각의 기저엔 소비자와 공급자 마인드가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비자가 원하는 교육상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건 곧 내 아이에 맞춤식 교육활동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얘기는 학교에서 학부모를 상담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말이다. 그 분들은 한결 같이 일반학교와 다른 대안학교의 특성을 ‘내 아이 개인에게 맞춰서 커리큘럼도 만들 수 있고, ..
단재학교의 1년 학사운영 중 큰 행사이면서 중요한 행사를 꼽으라면, 단연 각 학기마다 진행되는 전체여행과 학습발표회라 할 수 있다. 많아진 대안학교와 협소해진 교육철학이 위기를 부르다 대안학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안학교는 제도권 학교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텍스트 위주 교육, 성적이란 단일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교육,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교육,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아닌 정답 맞추기식의 교육에 반대하여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15년이 넘는 대안교육의 역사는 수많은 오해와 작은 기대 속에서,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들으며, 아이들의 인생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으며 첫 출발을 할 수 있었다. ▲ 2..
목차 1. 친근보담 낯섦 무계획이 곧 계획이야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하면 끝! 2. 일상을 벗어나 어린이로 돌아가다 장소, 그 까이꺼 대충 총각들의 저녁식사 족대질을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해본 사내 앎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 3. 남자 셋, 텐트 하나 이야기로 세상을 본다 ‘쾅 하는 소리’가 만든 다양한 이야기 4. 덤으로 누리는 행복 한여름 밤에 추위에 벌벌 떨며 잔 사내들 광고기획자에게 듣는 기획이야기 계획되지 않은 旅行, 그래서 餘幸(덤으로 누리는 행복) 인용 여행기
4. 덤으로 누리는 행복 텐트 안에 들어가니 아득하고 좋았다. 진규는 최근에 4년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자동차를 렌트하여 강원도 방방곡곡을 2주 동안 여행했다. 오늘 우리가 자는 이 텐트도 그 여행 때 썼던 텐트다. ▲ 정말 오랜만에 텐트에서 잠을 잔다. 혼자 잤으면 못 잤을 텐데, 같이 자니 오히려 안심이 되고 좋았다. 한여름 밤에 추위에 벌벌 떨며 잔 사내들 진규는 나의 국토종단기를 보면서 “뭔 내용들이 다 자는 곳을 구하느라 걱정을 하는 내용이더만”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잠자리를 구하는 문제로 여행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바에야, 텐트를 사서 편하게 자면서 여행을 좀 더 즐기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막상 텐트에 들어가 보니 운치도 있고, 꽤 공간도 넓어 쾌적한 느낌이더라. 친구들과..
3. 별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이해하다 12시가 넘었다. 인근 테니스장 불도 완벽히 소등되고 빛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감춰져 있던 빛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인위적인 강렬한 빛이 사라진 자리에 자연의 빛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30초 노출로 찍은 밤하늘. 아마 성능이 더 좋은 사진기가 있었으면 더욱 잘 나왔을 텐데, 아쉽다. 고기를 구울 땐, 고기가 잘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랜턴의 불을 켜고, 핸드폰의 ‘후레쉬’를 켜기도 했다. 고기를 다 굽고 먹기 시작했을 때도 랜턴을 켜놓은 상태였다. 아마도 ‘랜턴을 켜면 잘 보여 먹기 편할 것’이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랜턴을 끄니, 그제야 주변이 또렷하게 보이더라. 때론 잘 보기 위해서 불을 꺼야 한다는 사실을 알 ..
2. 일상을 벗어나 어린이로 돌아가다 3시 30분쯤 친구 집에 도착하니, 짐이 한 가득이더라. 이미 고기와 밑반찬, 텐트, 낚시대 등을 모두 챙긴 후였다. 나에겐 ‘옷만 챙겨와’라고 해놓고선 자기가 모든 짐을 다 챙긴 것이다. 장소, 그 까이꺼 대충 주승이가 오자마자 짐을 차에 싣고 출발하니, 4시 30분이 넘었다. 계획도 없이 갑작스레 추진된 여행, 그것도 아침도 아닌 저녁이 가까워서야 출발하는 여행은 난생 처음이다. 이런 상황이니 목적지라고 제대로 조사해봤을 리가 없다. 진규는 ‘양평 회현리 쪽에 낚시하기 좋은 곳이 있다’는 단서만을 듣고 ‘흑천’을 검색하여 찾아갔으나 이게 웬 걸 ‘상수원 보호구역’이란 팻말이 가드레일 곳곳에 떡하니 설치되어 있더라. 물도 맑고 낚시하기에 좋은 곳이었기에 한참 주위를..
1. 무계획이라는 계획에 대해 ‘8월의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의문의 전화, 그리고 전화로 모든 게 시작되었다.’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멘트와 관련된 일이 최근에 일어났기에 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빡빡한 스케줄과 ‘낙오는 곧 죽음’이란 압박 속에서 살아야 21세기의 한국인들에겐 여행도 계획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휴가철이 정해져 있고, 그 날에 맞춰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고 일정을 짠다. ‘모든 건 계획 하에’ 이게 바로 현대 한국인들의 모토인 셈인데, 나도 이러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일이 생기면, 긴장하고 초조해져서 거부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무계획이 곧 계획이야 ‘지금 나의 삶이 내 계획 하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지며 살아온 것일까?’ 생각해보면, 전혀 ..
목차 1. 나의 역사가 스민 부안을 교사가 되어 다시 찾다 지하철을 타고 갈까, 자전거를 타고 갈까 큰 문제는 결정이 쉽지만, 작은 문제는 오히려 결정이 어렵다 나의 아픔이 산산이 부서진 변산에 교사가 되어 가다 2. 우린 트러블메이커가 아닌 이슈메이커 문제는 일의 발생이 아닌, 해결하려는 의지 걷는 건 고생하자는 게 아닌, 삶을 오롯이 느끼자는 것 걷는다는 게 불이익이 되는 구조 ‘갤럭시 그랜드 맥스’가 그랜드(완전한)인 이유? 3. 함께 먹을 아침을 손수 만들다 손수 만든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다는 것 완벽한 여유로움 중 2 때의 추억 4. 우의를 입고 칼국수 먹으로 왔어요 자신이 뜻이 어긋난 곳에 싹트는 여행의 묘미 우의를 통해 본 옷의 원래 의미 비바람 속에서 음식점 찾아 5. 빗속여행의 낭만 채석..
9. 안녕 변산, 안녕 변산 현세가 단재학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올해 6월까진 승빈이와 여러 번 충돌했다. 난 지금껏 현세가 승빈이를 편하게 생각했기에 그런 줄만 알았는데,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혀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 새벽 산책을 하다보니 평소엔 말하지 않던 걸 말하게 된다. 이게 새벽 산책의 즐거움. 시간의 더께만큼 돈독해진다 “그 땐 다른 뜻은 없었고 건호 형과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어떤 사람과 친해지려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분명 사람 관계에 있어서 나를 남에게 맞추거나, 남을 나에게 맞추는 방법들이 있다. 아마도 그 절충점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일 것이다. 현세는 이때 상대방에게 100% 맞춰주는 것을 ..
8. 새벽에 변산을 산책하며 뿌듯함을 느끼다 아이들은 옆방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놀고 나는 이불을 펴고 누워 여행기를 쓴다. 이런 식으로 함께 여행을 하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나름 좋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은 남학생들의 방이기에 완벽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피곤하다고 편하게 잘 수도 없다. 아이들이 수시로 들락날락거리고 떠드는 소리가 밤 깊도록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 일인지, 밤새도록 놀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더라. 시간이 조금 지나니 함께 게임하는 분위기는 깨졌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학생 몇몇은 핸드폰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몇몇은 밖으로 나갔다. 교사로서는 차라리 아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 노는 것이 속편하고, 뿔뿔이 흩어져 개인..
7. 함께 해서 행복한 사람들 펜션에 돌아와서 저녁엔 통닭을 시켜서 먹고 아이들은 일찍부터 놀 채비를 했다. 오늘은 노는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밤새도록 놀 수 있다. 그러니 나는 다른 방으로 와서 여행기도 정리하며 개인 시간을 보냈다. 그때 승빈이도 조금 놀다가 감기 기운 때문에 일찍 자야겠다며 방에 들어와 눕더라. 그래서 자연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 음식은 사람을 모은다. 그래서 식구라는 말도 있다. 단재 식구들. 하지만 좋은 하는 부분이 같으니 먹을 때 싸우기도 한다. 나를 빗대어 너에게 말하다 그때 나눈 이야기는 ‘직면하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좀 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는데, 그걸 막는 게 ‘유리멘탈’이라 이야기 했다. 어떤 말에 쉽게 ..
6. 걷는 여행의 의미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도 40분 정도를 걸어야 하는 길이다. 바람도 심하게 불고 무언가를 보고 난 다음에 걷는 것이라 힘이 제법 들었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구름도 서서히 걷혀 가고 있다. ▲ 비는 그치고 서서히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민이와 태기와 함께 걸어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걸을 땐 하나가 되고, 편함을 추구할 땐 혼자가 된다 이때 규빈이는 “학교 여행이 끝나자마자 연습을 하러 가야 하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이쯤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어때요?”라고 제안해 온다. 규빈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내일 집에 가면 바로 쉴 수 있지만, 규빈이는 예외였기에 충분히 이해되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몇 명의 아이들만 택시를 타고 갈 경우 다른..
5. 빗속여행의 낭만 밖에는 여전히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도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 아이들은 그냥 돌아가자고 하더라.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아이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 돌아가도 괜찮겠지’라고 정리하고 있었는데, 송라가 “채석강엔 꼭 가야 해요”라고 말했고, 초이쌤도 채석강은 5분 거리로 가까우니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우의를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어차피 오늘은 비바람 속에서 여행할 각오로 나온 것이니 “채석강까지만 갔다 오자”고 했다. ▲ 바람에 모자가 자꾸 벗겨지기에 나름 안 벗겨지게 돌돌 말았는데 아이들이 보기에 웃겼나 보다. 왠지 구도자처럼 나왔다. 채석강은 돌 캐는 곳? 채석강彩石江은 지구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 그 단초를 볼 수 있다. 켜켜이 쌓인..
4. 우의를 입고 칼국수 먹으러 왔어요 우의를 모두에게 주며 나간다고 하니,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더욱이 국민안전처에서 ‘서해안 폭풍해일주의보 발표, 해안가 접근자제’라는 문자가 각자의 폰으로 온 후라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 커졌다. 아이들의 웅성거림을 들어보자. ▲ 세월호 사건 이후로 국민안전처가 신설되었다. 그곳에서 보내온 문자는 단재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물론 나도~ 자신이 뜻이 어긋난 곳에 싹트는 여행의 묘미 “이런 날에 나갔다가 문제 생기는 거 아니 예요?” / “이런 날엔 그냥 안에 있어요.” / “비도 오고 바람도 장난 아닌데 뭐 하러 나가요?” / “전 비 오는 날엔 절대 나가지 않아요.” / “(여행 와서 비까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돈 내고 와서 이게 뭐..
3. 함께 먹을 아침을 손수 만들다 오늘은 7시 30분에 기상했다. 계획을 세울 때 아침에 세 명으로 팀을 정해 아침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A조는 준영, 규빈, 현세가 한 팀으로 볶음밥을, B팀은 승빈, 민석, 송라가 한 팀으로 계란말이와 김치찌개를, C팀은 지훈, 지민, 태기가 한 팀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만들더라. ▲ 아침의 바닷가 풍경. 하늘이 잔뜩 흐려 있다. 비도 한 방울씩 내리고 있다. 손수 만든 음식을 남에게 대접한다는 것 8시부터 본격적으로 요리하기 시작했다. A팀은 재료를 모두 먹기에 편한 정도로 잘라야 했고 그걸 밥과 함께 볶아야 하니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규빈이가 진두지휘를 하고 야채를 칼로 잘랐으며 준영이와 현세는 가위로 야채를 자르고서 함께 볶..
2. 우린 트러블메이커가 아닌 이슈메이커 서울에서 격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버스를 타고 부안 터미널에 와서 다시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격포로 가야 한다. 예전의 격포란 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다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의 격포는 서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모항母港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이라고 시에 쓰기도 했을 정도다. 9시 20분 차를 타고 부안에 도착하니 12시 20분 정도 되었다. 3시간 만에 도착한 셈이다. 그곳에서 조금 걸어서 밥을 먹고 바로 격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40분 정도 달리니 격포 터미널에 도착하더라. 거기 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펜션에서 픽업을 온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 부안에서 내..
1. 나의 역사가 스민 부안을 교사가 되어 다시 찾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2학기부터 새롭게 합류한 학생은 두 명이다. 준영이와 태기가 바로 그들인데, 준영이는 단재학교에서 첫 번째 여행을 하는 셈이고 태기는 1학기 마무리 여행인 가평 여행을 함께 했기에 두 번째 여행을 하는 셈이다. 이번 여행엔 아쉽게도 이향이가 대입 수시 준비로 빠졌고, 상현이는 개인 사정으로 빠져 9명의 학생과 3명의 교사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 고속터미널에서 출발한다. 1975년에 건설되었으니 40년이 흘렀다. 그 땐 어마어마한 규모였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하철을 타고 갈까, 자전거를 타고 갈까 8시 50분까지 고속터미널역 7번 출구 쪽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훈이와 지민이는 아직 지하철 타는 것이..
목차 1. 여는 글: 반복이 만든 여행, 반복이 만들 이야기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릴까? 그림을 그리려 하지만 막막하다 막막하지만 반복해서 선이라도 그어봐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은 선이라도 긋고자 하는 마음이다 2. 스펙터클한 시작과 기대 여러 도전에 성공했다고, 새로운 도전이 긴장되지 않는 건 아니다 걱정은 불안이 만든 신기루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과 애초 지킬 필요가 없는 무심함 늦는 이들이 항상 늦는 이유? 3. 시작부터 삐걱거리다 현세가 감쪽같이 사라지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제일 무섭다 4. 가까스로 달성군으로 출발하다 어그러진 상황이야말로 싱그러운 삶의 축복 특명: 자전거를 버스 짐칸에 실어라 5. 자전거 여행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가 발생하다 현풍터미널이 종점이 아닌게벼 준영이 ..
53. 닫는 글: 반복의 힘을 아는 그대, 사라지지 말아요 그런데 재밌는 점은 마음이 정해졌다 해도 무언가를 하기에 겁이 날 수도 있고, 버거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공부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모르겠어요’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다. 우린 그 때문에 낙동강에서 출발하여 서울까지 달리는 자전거 여행을 하게 되었다. 페달을 밟은 단순한 행위를 통해 ‘작은 행위를 반복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니 말이다. ▲ 패달을 밟는 작은 행위가 대구에서 서울까지 달리게 만들었다. 반복적으로 페달을 굴려 완성한 여행으로, 삶을 살아내다 하지만 한 번..
52. 닫는 글: 반복할 수 있는 조건 2015년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6박 7일간의 일정으로 떠났던 자전거 여행, 그리고 2015년 10월 24일에 쓰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론 2016년 1월 3일부터 2월 18일까지 한 달 보름동안 썼던 자전거 여행기는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 애셔의 작품 [그림 그리는 손], 애셔의 작품은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기하학적인 순환인데, 이게 바로 반복의 느낌과 비슷하다. 반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과연 낙동강을 따라 남한강까지 간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앞섰고,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만 해도 ‘그 때의 기억을 어떻게 남길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자전거 여행도..
51. 개선장군처럼, 삶을 누린 사람처럼 살라 ▲ 양평 → 올림픽공원 세계평화의 문 / 35.27km 드디어 마지막 날 자전거 여행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부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축하 팡파레를 들으며 우리의 최종목적지를 향해 신나게 달리면 된다. ▲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바람도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달려 간다. 고맙고도 듬직한 아이들! 빗 속 여행에 빠져들 각오가 되어 있나? 비든 눈이든, 제대로 즐길 각오로 떠나지 않으면 그런 것들은 방해물이 될 뿐이다. 어떻게 하면 비를 적게 맞을까, 어떻게 하면 바람을 피할까만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정작 보아야 할 것 보지 못하고, 느껴야 할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국토종단을 할 때 목포에서 무안까지 걸어가며 비를 쫄딱 맞고 갔는데, 오히려..
50. 후회하지 않기 위해 빗길 자전거 여행을 떠나다 ▲ 양평 → 올림픽공원 세계평화의 문 / 35.27km 쥐 죽은 듯 조용히 잠만 잤다. 오늘은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 짓는 역사적인 날이지만, 어제 저녁의 일로 기쁨보단 깊은 어색한 침묵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새벽 5시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서 가장 먼저 날씨가 어떤지가 궁금했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벌써 내리고 있는지, 라이딩 도중에 올 것인지, 그도 아니면 모두 끝난 다음에 올 것인지 그 순간만큼은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마지막 라이딩을 준비하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확인해 보니, 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기만 할 뿐 아직 비는 내리지 않더라. 그러니 ‘서둘러 출발한다면, 비가 내리기 전에 도착할 지도 모..
49. 감정이 팔팔 끓기에 사람이다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한참 달리다 보니 작년 도보여행 때 ‘남한강 홍보영상’을 찍었던 이포보를 지나서 달린다. 이미 시간은 3시가 넘었지만 아직 점심은 먹지 않았다. 그쯤 되니 아이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진다. 점심을 먹고 가자니 펜션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펜션에 일찍 가서 저녁을 거하게 먹자니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다. 그래서 결국 양평에서 점심을 먹고 가는 것으로 정했다. ▲ 도보여행의 추억이 있는 이포보를 지나서 달린다. 재욱이와 현세가 감정으로 엉키다 양평읍내로 들어가 식당을 찾아 헤맸다. 조금 헤매니 김밥천국처럼 많은 메뉴를 시킬 수 있는 음식점이 보여 그리로 들어갔다. 이미 시간은 4시 30분이 되었다. 점심치고는 늦은 점심이지만..
48. 사람이 꽃이 되는 순간과 저주가 되는 순간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날씨가 정말 좋다. 청명한 가을 날씨는 왠지 나들이를 가고 싶게 하는데, 오늘이 정말 그랬다. 이런 날 맘껏 달릴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 완연한 가을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토요일 서울 하늘은 아침부터 흐림 그런데 여행 기간 중에 안 좋은 소식이 들렸다. 분명히 여행을 떠나기 전날에 날씨를 확인할 때만 해도 비 예보는 없었다. 그래서 안도하며 기뻐했던 것이다. 일기예보를 계속 확인한 이유는 비가 올 경우 무엇보다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이었고, 하루 동안 달려야 할 계획에도 차질이 생겨 전체 일정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준규쌤이 계시는 지지학교는 8월에 자전거 여행을 갔었는데 태풍 고니로 많은 ..
47. 신륵사와 역사교육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신륵사는 남한강변에 만들어진 고찰이다. 강 바로 옆에 있어서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사찰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 절이 바로 남한강 옆에 있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절의 탑과 초고층 빌딩은 같다? 삼국시대에 들어오기 시작한 불교는 국교로 채택되어 백성들을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찰하면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과 같이 높이 솟은 탑이 떠오른다. 탑stupa은 부처님의 사리를 넣은 무덤으로 사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탑은 사람이 살기 위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하여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자 하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시대엔 이러한 탑의 의미가 더 클 수..
46. 선으로 이어지는 여행을 해야 한다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이제 6일째 자전거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아침도 맛있게 먹었겠다, 재욱이 자전거도 고쳤겠다, 펑크패치용 본드도 샀겠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완벽한 출발이다. 여기에 날씨까지 화창하여 하늘이 더욱 높게 느껴지는 맑디맑은 가을날씨다. 예전에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드높아진 하늘을 보며 ‘언젠가 나도 가을을 만끽하며 즐길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도서관에 있어야만 하는 나를 위로했었는데,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 꿈은 현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 신륵사를 향해 여주 한복판을 달린다. ‘점과 점의 여행’과 ‘선의 여행’, 그 중에 ‘선의 여행’으로 여행을 할 때 목적지에 빨리 가기 위해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
45. 언어엔 정신이 담겨 있다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오늘은 익숙한 길을 달리기도 하고 아무리 천천히 가도 5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라 여유 있게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겐 9시 30분까지 나오라고 했다. 어제 아침에 재욱이가 건의했던 것처럼 오늘부턴 선착순으로 점수를 주지 않고, 시간대별로 점수를 주기로 했다. 시간대별로 체크하니 민석이, 재욱이, 현세는 30분이 되기 전에 내려와서 출발할 준비를 하는데 준영이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더라. 준영이는 20분 늦게 9시 50분이 되어서야 내려왔다. ▲ 준영이가 내려올 때까지 시간이 있어서 각자의 일을 하다가, 용돈기입장을 쓰기 시작했다. 용돈 미션, 잘 하는 사람은 여전히 잘하고 정작 해야 할 사람은 하지 않는다 자전거 ..
44. 사람이 자랄 때 필요한 것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우리가 자라면서 ‘나는 비록 이렇게 살지만, 자식에게만은 그런 환경을 물러주지 말아야지’라는 바람을 갖게 마련이다. 그게 권위주의적인 가정환경일 수도 있고, 원하는 걸 맘껏 못하는 가난한 환경일 수도 있으며, 부부싸움이 연일 일어나는 전쟁터 같은 환경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현실적인 문제라고 느껴지면 그걸 가슴 속에 담아뒀다가 그와 같은 환경을 자식에겐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이가 자랄 때 필요한 건, 넉넉함이 아닌 적당함이다 우리집도 예전엔 정말 가난해서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는 없었다. 그러니 무언가를 욕망할 수도 없었으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엔 ‘내가 원하는 게 뭐지?’라며 헛갈릴 정도였다. 그런 환경을 ..
43.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 ▲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6박7일 일정으로 떠난 여행이 어느덧 6일차에 접어들었다. 내일이면 목적지인 올림픽공원에 도착하고 때론 걱정으로, 때론 즐거움으로 달렸던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은 끝이 난다. ▲ 어제 뜻하지 않게 야간 라이딩을 해야 했다. 이게 바로 여행의 묘미다. 여행이 일상이 된 시대에 여행을 떠나야 한다 흔히 여행은 배부른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한다. 물론 예전처럼 한 마을에서 나서 거기서 쭉 자라다 옆 마을 처녀와 결혼하여 자식 낳고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치는 세상이 아닌, 공부를 위해서건 취직을 위해서건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나 타지로 나가야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여행에 대한 이미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
42.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의 속뜻 ▲ 충주 → 여주 / 64.69km 민석이가 옆에서 바람을 넣어주며 달리니 그래도 꽤 오래 버틸 줄 알았다. 여러 군데 펑크가 나긴 했지만, 패치를 붙이긴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달리지 않아 멈추더라. 그러자 민석이가 바로 펌프를 꺼내 바람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는데 갈수록 바람 빠지는 시간이 단축되고 있었다. 처음엔 100m 정도 달렸는데, 80m, 50m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바람이 아예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 되더라. ▲ 민석이가 바람을 넣어주며 가지만, 결국 들어가지 않더라. 정말 난감하다. 마지막 방법까지 해보았으나 실패!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월요일 저녁에 갈았던 튜브가 생각나더라. 아무래도 지금 튜브는 여기저기 펑..
41. 위험이 닥칠 때 우린 하나가 된다 ▲ 충주 → 여주 / 64.69km 재욱이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 깊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바로 떠오른 대로 반창고를 붙이며 때우려 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듯이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부론면에만 가면 금방 해결될 거라 생각했기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 펑크를 본드가 아닌 반창고로 때우고 있다. 이건 개그인가요? 현실인가요? 동병상련이란 따뜻한 마음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바보 같은 대처법이었다. 반창고를 붙인다는 게 바보 같다는 게 아니라, 자전거 도로 한 가운데서 본드가 없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게 바보 같다는 얘기다. 한강자전거길처럼 많은 사람들이 라이딩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기도 틈틈이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을 볼 ..
40. 섰다 생각할 때 넘어질까 두려워하라 ▲ 충주 → 여주 / 64.69km 부론면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익숙한 길이다. 여긴 남한강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보여행 땐 아침 안개까지 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우린 꿈 속 세계를 탐험하는 듯 걸었기에 기억에 많이 남았다. ▲ 같은 길을 다닌다. 비포장도로에서 로드 자전거를 끌고 간 사내와 타고 간 사내의 이야기 작년엔 도로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어서 지나가지 못하는 곳이 많았는데, 그새 공사가 완료되었더라. 그래서 우리는 포장까지 완벽하게 된 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하지만 끝부분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건 당연하고 심지어 콘크리트를 잘게 쪼갠 돌까지 쌓여 있었다. 준영이와 나는 바퀴가 ..
39. 추억이 현실이 되는 순간 ▲ 충주 → 여주 / 64.69km 도보여행 때 편지미션을 했던 곳에서 잠시 쉬었다. 시간이 넉넉하니 서둘러야 할 이유도, 마음을 조급하게 먹어야 할 이유도 없어서 좋다. 자전거 여행 중 처음으로 완벽한 여유로움을 누려본다. ▲ 자전거 여행 촬영은 이렇게 캠코더를 연결하고 진행했다. 짐받이의 안부를 묻다.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했던 거니?” 그때 민석이가 짐받이가 많이 풀어졌다며, 수리공구를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수리공구를 줬더니 아무리 조여도 조여지지 않는다며, 나를 찾는다. 가서 보니, 짐받이가 이상할 정도로 밑으로 많이 쏠려 있는 상태였다. 아래로 쏠린 상태에서 계속 달렸기 때문인지, 볼트가 조여지는 구멍의 홈들이 패여서 더 이상 조여지지 않더라..
38. 자전거 여행 중에 생명존중사상을 발휘하다 ▲ 충주 → 여주 / 64.69km 조금만 달리면 익숙한 길이 나올 거라 기대하며 달리는데 꽤 달렸음에도 낯선 길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사마귀 한 마리에 멈춰선 네 명의 인간들 그제야 생각해보니, 작년 도보여행 땐 충주에 들어선 이후엔 남한강을 따라 걸어간 것이 아니라, 찜질방에 가기 위해 산척면으로 빠졌으며 거기서 충주댐까지는 531번 지방도를 타고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달리는 남한강 길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긴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평지를 달리는 기분으로 편하게 달리면 된다. 2시간 30분 동안 달렸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달리다가 사마귀를 밟을 뻔해서 멈춘..
37. 두 가지 앎에 대해 ▲ 충주 → 여주 / 64.69km 아무래도 처음 하는 일은 어설프게 마련이다. 현세가 리더이기에 호기롭게 스마트폰을 빼서 지도 검색을 하고 지시해준 경로를 따라 간다. 그런데 일반적인 자전거 도로와는 다르게 충북선 기찻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처음 지도를 보는 것이라도 해도 시작부터 헤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를 찾지 못했고, 급기야 다른 사람의 농장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현세도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팀원들도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이미 리더를 해보며 누군가를 이끈다는 어려움을 경험했던 지라, 팀원 누구 하나 섣불리 화를 내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진 않았다. 이에 현세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지도를 보..
36. 리더가 되어보면 자신이 보인다 ▲ 충주 → 여주 / 64.69km 이제 리더 미션도 마지막 대상만을 남겨두고 있다. 영화팀의 장시간 막내인 오현세가 오늘 리더 미션을 수행한다. 리더 오현세, 자신이 직접 일을 하며 현실감각을 되찾다 현세는 단재학교에 들어온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화팀에선 막내로 남아 있다. 물론 중간에 상현이가 들어오면서 막내 딱지를 떼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세가 형 노릇을 한 것은 아니었다. 현세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바로 위로 민석이와 재욱이 같은 든든한 형들이 있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되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번 여행엔 상현이가 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막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현세는 어찌 보면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어린이..
35. 리더의 자질과 역지사지 ▲ 충주 → 여주 / 64.69km 이제 5일째 여행을 시작한다. 리더라는 과중한 임무를 아이들에게 부여함으로 어떤 부분이 나아졌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민석이를 시작으로, 재욱이를 거쳐 어젠 준영이가 리더역할을 맡아 아이들을 데리고 이화령과 소조령을 넘으며 충주까지 무사히 왔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오늘은 현세가 리더를 맡게 된다. 양준영의 리더십, 이끄는 능력은 충분 준영이는 단재학교에 온지 2달 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1년 이상을 함께 하여 이미 친한 상태이니, 새로 온 사람은 아무래도 끼기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특유의 붙임성과 친구들이 말하면 잘 웃는 성격으로 금방 친해졌으며 자전거 여행 예행연습을 할 때도 굳은 일..
34. 경쟁을 비판하면서도 경쟁을 부추기다 ▲ 충주 → 여주 / 64.69km 기상미션은 9시까지 하기로 했다. 오늘 달려야 할 거리도 그렇게 많지 않고, 더욱이 작년에 왔던 길을 달리는지라 걱정보단 반가운 마음이 앞서기에 여유 있게 출발하기로 했다. 그래서 기상미션 시간을 최대한 뒤로 미뤘고 8시 30분부터 체크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거실에서 눈을 떠 보니 7시쯤 되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7시 20분에 우르르 일어나더니 목욕탕으로 가더라. 평소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찜질방은 아무래도 푹 잘 수 있는 환경은 아니기에 그랬을 거다. 그래서 나도 목욕탕에 가서 살짝 샤워를 하고 출발할 준비를 마친 후 입구 쪽에서 기다렸다.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긴 시간동안 목욕..
33. 찜질방과 여행 ▲ 충주 → 여주 / 64.69km 어느덧 자전거 여행을 떠난 지 4일이 지나고 5일째에 접어들었다. 6박7일의 계획으로 여행을 떠났으니,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오늘부터는 작년 도보여행 때 걸었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익숙한 길을 간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길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그 설렘은 여차하는 순간 두려움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아는 길은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그건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여행은 어떤 설렘으로 시작하여 점차 익숙해져 가는 과정으로,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안정감으로 변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찜질방의 두 가지 형태 충주의 찜질방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찜질방이다. 빌딩의 한 층은 목욕..
32. 작년 도보여행의 종착지인 충주에 도착하다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소조령에 오른 지 20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화령처럼 정상에 휴게실이 있고 전망대가 있진 않지만, 정상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이자 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이렇게 순식간에 어려운 고비들이 끝나니 기분이 좋았다. 지금 시간은 12시 53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젠 거의 평지만 달리면 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페달을 밟아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화령의 내리막길을 달릴 때 캠코더로 찍고 싶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거 같아 찍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찍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다운힐의 짜릿한 순간을 남기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캠코더를 끈으로 동여 매 바람 저..
31. 교육이란 자기를 표현하도록 하는 것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소조령은 이화령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 할만하다. 이화령을 넘으며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은데’라는 것을 느꼈으니, 소조령을 오를 땐 마음이 가벼웠다. 보통은 한강을 따라 낙동강까지 달리는 코스를 많이 가니, 소조령을 먼저 넘고 이화령을 넘게 된다. 소조령을 넘으며 ‘역시 힘들구나’라는 것을 느낀 후에 더 높은 이화령을 올라야 하니 절로 기운이 팽길 테지만, 우린 반대 코스로 소조령을 가는 것이니 기운이 샘솟았다. 이때는 아이들도 이화령을 넘을 때와 다르게 한결 여유로워진 듯 하더라. 이화령을 오를 때 민석이와 준영이는 잘 달리는 편이었지만, 재욱이와 현세는 많이 힘들어 했다. 하지만 소조령을 넘을 땐 재욱이의 장..
30. 이화령에서 붙인 ‘부모님께 쓰는 영상편지’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나에게 만약 이런 미션이 주어졌다면, 카메라 구도는 어떻게 할지, 어떤 말을 할지 고민을 할 것이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해도 되는 이야기도 어떻게든 생각을 다듬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바로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 영상은 한결 긴장되고 무거운 영상이 될 것은 뻔하다. 그건 그냥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나의 심리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꾸미지 않음에, 과장되지 않음에, 진실이 담겨진 영상편지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놀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진지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걸 그대로 보..
29. 미션명: 부모님께 영상편지 쓰기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이화령 정상에서 미션을 하고 싶었다. 이화령은 한민족의 대줄기인 백두대간 중 한 곳이기 때문에, 그 영험한 기운을 받아 할 수 있는 미션을 구상하고 있었다. ▲ 미션을 하기 위해 표지석에 모였다. ‘교통의 요지=소통=편지’의 연쇄작용 문경새재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주요 길목으로 영남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선 이 고개를 넘어야 했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 도로가 발달할 때 그나마 낮은 산이었던 이화령에 길을 만들어 문경새재보다 더 사람들이 자주 다니게 되었다고 하더라. 그런 내용을 알고 보니, 소통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머님들에게 “이번 여행 중 아이들이 했으면 하..
28. 불안을 투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드디어 남한강으로 건너가는 날이다. 민족의 젓줄인 낙동강을 지나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남한강으로 들어서는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런데 남한강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두대간 중 하나인 이화령을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단디 먹고 출발했다. 문경온천, 낮과 밤의 분위기가 180도 다른 곳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이화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제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연출했던 문경온천 부근을 지나가야 한다. 어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환한 불빛이 비춰서 별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아침에 그곳을 지나니 전혀 다른 곳인 줄 알았다. 화려한 무대의 앞과 어둡고 초라한 뒤의 차이처럼 쇠락한 마을의 분위기가 물씬..
27. 리더십에도 성실함이 필요하다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리더미션은 선배와 통화하며 갑자기 하게 되었는데, 이 미션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개인에게 전체를 이끌어야 할 임무를 주면서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미션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미션이지만, 이 미션만큼은 철저히 한 개인에게 책임이 집중되기에 당사자도 긴장할 수밖에 없고, 팀원들도 노력할 수밖에 없다. ▲ 저 앞에 문경새재가 보인다. 황금들녘을 지나 산으로 간다. 리더 재욱이의 리더십, 생색내지 않는 자연스러움 어제의 리더는 재욱이였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리더를 해본 것이기에 완벽할 수도, 만족스러울 수도 없다. 그런 활동들이 계기가 되어 점차 리더로서의..
26. ‘없음’으로써 ‘쓰임’으로 삼는 지혜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일요일에 낙동강 자전거 길에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규칙을 정했다. 사용할 수 있는 건 음악을 듣거나, 지도를 찾는 것뿐이며 한 명이라도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스마트폰을 압수하겠다고 한 것이다. 원래는 여행 시작부터 스마트폰을 압수할 생각이었는데, 민석이가 “지도도 봐야 하고, 쓸 데가 많은데 그건 너무한 거 같아요”라고 이의제기를 해서 그와 같이 규칙을 정한 것이다. ▲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보면 문경새재가 보인다. 스마트폰이 끊임없이 눈과 의식을 지배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전화도 하고, 인터넷도 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게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