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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6. 중국의 촌구석도 잘 정비된 걸 보고 질투하는 마음이 일다 復至柵外, 望見柵內, 閭閻皆高起五樑, 苫艸覆盖, 而屋脊穹崇, 門戶整齊. 街術平直, 兩沿若引繩. 然墻垣皆甎築, 乘車及載車, 縱橫道中, 擺列器皿, 皆畵瓷, 已見其制度絶無邨野氣. 往者洪友德保, 甞言大規模細心法, 柵門天下之東盡頭, 而猶尙如此. 前道遊覽, 忽然意沮, 直欲自此徑還, 不覺腹背沸烘. 余猛省曰: “此妒心也. 余素性淡泊, 慕羡猜妒, 本絶于中. 今一涉他境, 所見不過萬分之一, 乃復浮妄若是, 何也? 此直所見者小故耳. 若以如來慧眼, 遍觀十方世界, 無非平等, 萬事平等, 自無妒羡.” 顧謂張福曰: “使汝往生中國何如?” 對曰: “中國胡也, 小人不願.” 俄有一盲人肩掛錦囊, 手彈月琴而行. 余大悟曰: “彼豈非平等眼耶.” 해석 復至柵外, 望見柵內, 다시 책문 밖에 ..
7. 이 작품집에 나는 모르고 그대들만 아는 코골이는 알려주시라 이로 볼진대 얻고 잃음은 내게 달려 있지만 기리고 헐뜯음은 남에게 있다. 비유하자면 이명耳鳴이나 코골기와 같다.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의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 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의 아이가 귀를 맞대고 귀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였다. 以是觀之, 得失在我, 毁譽在人. 譬如耳鳴而鼻鼾. 小兒嬉庭, 其耳忽鳴, 啞然而喜, 潛謂隣兒曰: “爾聽此聲. 我耳其嚶. 奏鞸吹笙, 其團如星.” 隣兒傾耳相..
6. 글의 생명은 진정성의 여부에 달렸다 이러한 가치 판단의 문제(자! 그렇다면 우리가 처해야 할 그 ‘중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 다른 시각에서 다룬 글이 바로 「공작관문고자서孔雀舘文稿自序」이다. 이글에서 연암은 다시 이명耳鳴과 코골기의 비유를 들고 나온다. 먼저 원문을 읽어 보도록 하자. 글이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일 뿐이다. 저 제목에 임해 붓을 잡기만 하면 문득 옛 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경전의 뜻을 찾아 생각을 꾸며 근엄하게 하며 글자마다 무게를 잡는 자는, 비유하자면 화공畵工을 불러 진영眞影을 그리는데 용모를 고쳐서 나가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멀뚱멀뚱 구르지 않고, 옷의 무늬는 닦은 듯 말끔하여 평상의 태도를 잃고 보면 비록 훌륭한 화공이라 해도 그 참 모습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
5. 중간에 처하겠다 애초에 우리의 관심사는 장님의 비단옷과 밤길의 비단옷 사이에 우열을 갈라 따지는 일이었으니, 그 대답은 정령위와 양웅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를 헤아려 보면 해결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그것을 청허선생은 “난 몰라! 난 몰라!”했고, 연암은 다시 청허선생에게나 가서 물어보라고 했으니,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답을 어디에서 찾을까? 다음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보이는 삽화가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법 싶다. 장자가 산 가운데로 가다가 가지와 잎새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나무 베는 사람이 그 곁에 멈추고도 베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으니, “쓸 만한 곳이 없다”고 하였다. 장자가 말하기를, “이 나무는 쓸모없음을 가지고 그 타고난 ..
4. 자네의 작품집은 여의주인가 말똥인가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을 사랑하여 여룡驪龍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도 또한 그 구슬을 가지고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자패子珮가 이를 듣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것으로 내 시집의 이름을 삼을 만하다”하며 마침내 그 시집을 이름지어 『낭환집蜋丸集』이라하고는 내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蜣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 笑彼蜋丸. 子珮聞而喜之曰: “是可以名吾詩.” 遂名其集曰蜋丸, 屬余序之. 말똥구리는 더러운 말똥을 사랑스런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정성스레 굴린다. 말똥구리에게 있어 말똥은 여룡이 물고 있는 여의주보다 더 소중하다. 여룡이 여의주와 바꾸자 한들 거들떠 볼 까닭이 없다. 말똥구리에게 여의주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여룡..
3. 짝짝이 신발 임백호林白湖가 막 말을 타려는데 하인이 나서며 말하기를,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가죽신과 나막신을 한짝씩 신으셨네요.” 하자, 백호가 꾸짖으며 말하였다. “길 오른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가죽신을 신었다 할 터이고, 길 왼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나막신을 신었다 할 터이니,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林白湖將乘馬, 僕夫進曰: “夫子醉矣. 隻履鞾鞋.” 白湖叱曰: “由道而右者, 謂我履鞾, 由道而左者, 謂我履鞋, 我何病哉!”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조선 중기의 쾌남아이다. 그가 평양 부임길에 길가에 황진이 무덤 곁을 지나게 되었다. 왕명을 받들고 가는 터였음에도 호기에 겨워 기생의 무덤에 술잔을 부어 주며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紅顔은 어데 두고 백골白骨만 누었나니. 잔..
2. 이가 사는 곳 예전 황희黃喜 정승이 공무를 파하고 돌아오니, 그 딸이 맞으며 말하였다. “아버님, 이[蝨]를 아시는지요? 이는 어디서 생기나요? 옷에서 생기나요?” “그렇지.” 딸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이겼다!” 하자 며느리가 청하여 말하기를, “이는 살에서 생기지요?” “네 말이 맞다.” 며느리가 웃으며 말하기를, “아버님은 내가 맞다시는 걸요.” 하였다. 부인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누가 대감더러 지혜롭다 하겠수. 다투고 있는데 둘 다 옳다니요?” 정승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둘 다 이리 오너라. 대저 이는 살이 아니면 알을 까지 못하고, 옷이 아니고는 붙어있질 못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옳은 것이야. 비록 그렇긴 해도 옷이 장롱 속에 있어도 또한 이는 있고, 설사 네가 ..
1. 바른 견식은 어디서 나오나? 진정지견眞正之見, 즉 참되고 바른 견식見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번에 살펴보려는 「낭환집서蜋丸集序」와 「공작관문고자서孔雀舘文稿自序」는 바로 이 진정眞正한 견식의 소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암의 글이 늘 그렇듯 이들 글 또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여러 겹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 글쓴이의 진의를 온전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나가 놀다가 장님이 비단옷 입은 것을 보았다. 자혜가 휴우 하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아! 제게 있는데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자무가 말하였다. “대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 마침내 서로 더불어 청허선생聽虛先生에게 이를 물어보았더니, 선생은 손을 내저으며 “나는 모르겠네. 나는 모르겠어.”..
4. 달사는 적고 속인만 많다 내 조카 종선宗善은 자가 계지繼之인데 시에 능하다. 한 가지 법도에만 얽매이지 아니하여 온갖 체를 두루 갖추었으니, 우뚝이 동방의 대가가 된다. 성당盛唐의 시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한위漢魏의 시가 되고 또 송명宋明의 시가 된다. 겨우 송명인가 싶어 보면 다시금 성당으로 돌아가 있다. 아아! 세상 사람들이 까마귀를 비웃고 학을 위태롭게 여김이 또한 너무 심하도다. 그러나 계지의 동산에는 까마귀가 자줏빛도 되었다가 비췻빛도 된다. 세상 사람들은 미인을 재계한 듯 빚어놓은 듯 만들고 싶어 하지만 손뼉 치며 추는 춤과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는 날로 경쾌해지고 더 아름다워 질 터이고, 틀어 올린 머리와 아픈 이빨은 모두 나름대로의 태가 있는 법이다. 그 성내고 노함이 날로 심해질 것은 ..
3. 겉모습에만 현혹되는 사람들 미인을 보면 시를 알 수가 있다. 그녀가 고개를 숙임은 부끄러운 것이다. 턱을 괸 것은 한스러움을 나타낸다. 홀로 서 있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찌푸림은 근심스러운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림이 있을 때에는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바라는 바가 있을 때는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만약 그 서 있는 모습이 재계齋戒한 것 같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빚어놓은 것 같지 않다고 나무란다면, 이것은 양귀비가 이빨이 아파 찌푸림을 나무라는 격이요, 번희樊姬가 쪽진 머리를 감싸 쥠을 못하게 하는 격이며,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의 아름다움을 야단하고, 손뼉 치며 추는 춤의 경쾌하고 빠름을 꾸짖는 격이라 하겠다. 觀乎美人, 可以知詩矣. 彼低頭, ..
2. 하나의 꼴 속에 수없이 많은 태가 깃들어 있다 아! 저 까마귀를 보면 깃털이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다. 그러나 홀연 유금乳金 빛으로 무리지고, 다시 석록石綠 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비치면 자줏빛이 떠오르고, 눈이 어른어른하더니 비췻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또한 괜찮을 것이다. 저가 본디 정해진 빛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린다. 어찌 그 눈으로 정하는 것뿐이리오. 보지 않고도 그 마음으로 미리 정해 버린다. 噫! 瞻彼烏矣, 莫黑其羽. 忽暈乳金, 復耀石綠, 日映之而騰紫, 目閃閃而轉翠. 然則吾雖謂之蒼烏, 可也, 復謂之赤烏, 亦可也. 彼旣本無定色, 而我乃以目先定. 奚特定於其目? 不覩而先定於其心. 까마귀의 날갯빛은 정말 검을까..
2. 까마귀의 날갯빛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1. 달사와 속인 達士無所恠, 俗人多所疑. 所謂少所見, 多所恠也. 夫豈達士者, 逐物而目覩哉? 聞一則形十於目, 見十則設百於心, 千恠萬奇, 還寄於物而己無與焉. 故心閒有餘, 應酬無窮. 所見少者, 以鷺嗤烏, 以鳧危鶴. 物自無恠己, 廼生嗔一事不同, 都誣萬物. ⇒ 해설 보기 噫! 瞻彼烏矣, 莫黑其羽. 忽暈乳金, 復耀石綠. 日映之而騰紫, 目閃閃而轉翠. 然則吾雖謂之蒼烏可也, 復謂之赤烏, 亦可也. 彼旣本無定色, 而我乃以目先定. 奚特定於其目, 不覩而先定於其心. 噫! 錮烏於黑足矣, 廼復以烏錮天下之衆色. 烏果黑矣, 誰復知所謂蒼赤乃色中之光耶? 謂黑爲闇者, 非但不識烏, 並黑而不知也. 何則? 水玄故能照, 漆黑故能鑑. 是故有色者, 莫不有光, 有形者莫不有態. ⇒ 해설 보기 觀乎美人, 可以知..
6. 만물은 제각기 살아 숨 쉴 뿐, 절대적 법칙은 없다 이것은 마음으로 헤아림이 미치는 바가 오직 소나 말, 닭이나 개에만 있지, 용이나 봉황, 거북이나 기린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범을 만나면 코로 쳐서 이를 죽이고 마니 그 코는 천하에 무적이다. 그러나 쥐를 만나면 코를 둘 곳이 없어 하늘을 우러르며 서 있는다. 그렇다고 해서 장차 쥐가 범보다 무섭다고 말한다면 앞서 말한 바의 이치는 아닐 것이다. 是情量所及, 惟在乎馬牛鷄犬, 而不及於龍鳳龜麟也. 象遇虎, 則鼻擊而斃之, 其鼻也, 天下無敵也. 遇鼠, 則置鼻無地, 仰天而立. 將謂鼠嚴於虎, 則非向所謂理也.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내 눈으로 보아 아는 세계의 하찮은 지식을 가지고 세상의 온갖 진리를 꿰뚫으려 하는 노력은 코끼리 앞에 서면 ..
5. 하늘은 왜 코끼리에게 장난을 쳤는가? 그런데도 말하는 자들은 “뿔이 있는 놈에게는 윗니를 주지 않는다”고 하여 마치 사물을 만듦에 모자란 것이라도 있는 듯이 하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감히 묻는다. “이빨을 준 것은 누구인가?” 사람들은 장차 말하리라. “하늘이 주었다.” 다시 묻는다. “하늘이 이빨을 준 것은 장차 이것으로 무엇을 하게 하려한 것인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하늘이 하여금 물건을 씹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묻는다. “이로 하여금 왜 물건을 씹게 하는가?” 그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은 대저 이치이다. 새나 짐승은 손이 없으므로, 반드시 부리나 주둥이로 숙여서 땅에 닿게 하여 먹을 것을 구한다. 때문에 학의 다리가 높고 보니 목이 길지 않을 수 없는데, 그래도..
4. 하늘이 만든 건 아무 것도 없다 아아! 세간의 사물 가운데 겨우 털끝같이 미세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늘을 일컫지 않음이 없으나,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일일이 이름을 지었겠는가? 형체를 가지고 ‘천天’이라 하고, 성정을 가지고는 ‘건乾’이라 하며, 주재함을 가지고는 ‘제帝’라 하고, 묘용妙用을 가지고서는 ‘신神’이라 하여, 그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가지이고 일컬어 말하는 것도 몹시 제멋대로이다. 이에 이기理氣로써 화로와 풀무로 삼고, 펼쳐 베품을 가지고 조물造物로 여기니, 이것은 하늘 보기를 교묘한 장인匠人으로 보아 망치질하고 끌질하며, 도끼질과 자귀질하기를 잠시도 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噫! 世間事物之微, 僅若毫末, 莫非稱天, 天何嘗一一命之哉. 以形軆謂之天, 以性情謂之乾, 以主宰謂之帝, 以妙用謂..
3. 코끼리를 눈으로 보고도 코를 찾는 사람들 그 생김새가 몸뚱이는 소인데 꼬리는 나귀 같고, 낙타 무릎에다 범의 발굽을 하고 있다. 털은 짧고 회색으로, 모습은 어질게 생겼고 소리는 구슬프다. 귀는 마치 구름을 드리운 듯 하고, 눈은 초승달처럼 생겼다. 양쪽의 어금니는 크기가 두 아람이나 되고, 길이는 한 자 남짓이다. 코가 어금니보다 더 길어서 구부리고 펴는 것은 자벌레만 같고, 두르르 말고 굽히는 것은 굼벵이 같다. 그 끝은 누에 꽁무니처럼 생겼는데, 마치 족집게처럼 물건을 끼워가지고는 말아서 입에다 넣는다. 其爲物也, 牛身驢尾, 駝膝虎蹄. 淺毛灰色, 仁形悲聲. 耳若垂雲, 眼如初月. 兩牙之大二圍, 其長丈餘. 鼻長於牙, 屈伸如蠖, 卷曲如蠐. 其端如蠶尾, 挾物如鑷, 卷而納之口. 그 다음 단락은 코끼리의..
1. 이미지는 살아 있다, 코끼리의 기호학 상기(象記) 1. 에코와 연암 몇 해 전 일이다. 강의 시간에 연암의 글을 강독하고서 평설을 써오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다. 한 학생이 과제 끝에 쓴 ‘장미는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존재해 왔으나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락(零落)한 이름뿐’이라는 구절이 내 시선을 끌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인용한 대목이었다. 에코의 이 책에는 연암의 코끼리 이야기와 아주 비슷한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듣거라, 아드소. 수수께끼 풀이는, 만물의 근본 되는 제 1원인으로부터 추론해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수한 자료를 꾸역꾸역 모아들이고 여기에서 일반 법칙을 도출하면 저절로 풀리는 것도 아니다. …… 뿔이 있는 짐승의 예를 들어보자. 왜 짐승에..
2. 이전에 코끼리를 두 번 봤던 기억 장차 괴상하고 진기하고 대단하고 어마어마한 것을 보려거든 먼저 선무문宣武門 안으로 가서 코끼리 우리를 살피면 될 것이다. 내가 황성皇城에서 코끼리 16마리를 보았으나, 모두 쇠로 만든 족쇄로 발을 묶어 두어 그 움직이는 것은 보지 못하였었다. 이제 열하熱河 행궁行宮의 서편에서 코끼리 두 마리를 보매, 온몸을 꿈틀대며 움직이는데 마치 비바람이 지나가는 듯하였다. 將爲怪特譎詭恢奇鉅偉之觀, 先之宣武門內, 觀于象房可也. 余於皇城, 見象十六, 而皆鐵鎖繫足, 未見其行動. 今見兩象於熱河行宮西, 一身蠕動, 行如風雨. 이제 연암의 글을 따라가며 읽어 보기로 한다. 소나 말, 닭이나 개만 보며 평생을 살아온 시골 사람이 코끼리를 난생 처음 보았다면 그 느낌은 어떠했을까? 사진으로도 ..
5. 거침없이 박동섭을 관통하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우치다쌤이 글에서 밝힌 ‘맑시스트Marxist’와 ‘맑시안marxian’을 구분한 글을 인용했다. 맑시스트와 맑시안의 차이 맑시스트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자신의 사상적 입장으로 해서 그 개념, 술어를 분석의 기본적인 도구로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에 맑시안은 마르크스의 지견을 이해하고 그 뜻에 경의를 품지만 그 술어와 개념을 분석을 위한 주요한 도구로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맑시스트와 맑시안은 어떻게 다른가?」, 우치다 타츠루, 박동섭 역 ‘맑시스트’란 맑스의 사상을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여 그걸 그대로 추구하려는 사람을 말하며, ‘맑시안’은 맑스의 사상과 정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사상..
2. 자신을 개방하는 자만이 배울 수 있다 경제적 관념이 대학평가에도 도입되면 교육은 사라지는 현상이 똑같이 재현된다. 지금의 문부과학성은 각 대학에 16살짜리 학생이면 다 알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라고 독촉한다. ▲ 15년 2월 1일에 개풍관에서 들은 강연이다. 함께 하진 못했지만, 사진만으로도 그 때의 뜨거움이 보인다. 대학평가가 오히려 대학을 병들게 하다 어느 대학이건 강의계획서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어서, 아이들이 강의계획서를 보면 ‘이 과목을 배우면 최종적으로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학교수가 연구를 신청할 때에도 몇 개월 후엔 무엇이 연구되고 3년 후엔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만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나 또한 2006년에 6년의..
목차 1.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작은 배움을 탐하다, 작은 틀에 갇히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길 원하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아닌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2. 삶이 배반한 자리에 희망이 어리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서 싹튼 ‘지금-여기’ 삶론 실패할지라도, 도전해보다 지금-여기를 축복하는 삶이 만든 기적 3. 어색한 만큼 금방 친해진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아기가 처음 만난 세계’를 어른이 되어 다시 느끼다 어색하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마재에서 느낀 다산의 향기 4. 정약용이 여유당이라 호를 지은 이유 마재엔 다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여유당, 그기 뭐꼬? 5. 정약용이 가르쳐준 인생담 여유당에 스민 다산의 ..
나에게 여행이란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계획되어 있기에 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의해서 여행을 떠난 적은 있었어도, 내가 원해서 떠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내일만 보고 살아가는 놈’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살아가기보다,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단 말이다. ▲ 나에게 여행이란 이런 광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의 의지로 참가하기로 결심을 한, 실학순례는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쯤 되어서 드는 생각은 ‘왜 여태껏 내 의지대로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맘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을 ..
카자흐스탄 여행기 목차 여는 글 카자흐스탄 여행과 공감능력 1주차(알마티 한국어교육원) 13.06.14(금) 경계를 넘어서다비행기를 타고 알마티로알마티의 한국어 교육원 13.06.15(토) 정신승리란?도로 인프라와 서구중심주의긴장의 미학 13.06.16(일) 카자흐스탄의 택시고려인, 존경받는 민족이 되다카자흐스탄의 음식 13.06.17(월) 6월에 함박눈을 맞다알마티의 콕토베맛있는 걸 왜 먹질 못하니 13.06.18(화) 수수하게 밋밋하게전통과의 연결점인 유르타알마티 시내 돌아보기 13.06.19(수) - 아스타나로의 기차여행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21시간을 달리는 기차 13.06.20(목) - 아스타나 둘러보기 새 수도에 그린 꿈바이테렉과 카자흐스탄의 꿈자본의 중심지로 우뚝 서다한국문화원을 둘러보다이슬람..
79. 모두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쁠까 개인이 피폐해지면 공동체가 불안정해지며 결국 사회 전체가 붕괴된다. 이젠 밑도 끝도 모르는 지옥으로 치닫는 이와 같은 현실을 반성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들을 되찾아야 한다. 적어도 50년 전만해도 ‘나만 잘 산다’는 말은 통용되지 않았고, 지금도 자본이 미처 이르지 못한 사회엔 그와 같은 사회 형태가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인해질 때, 내가 살고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된다 아래에 나와 있는 예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유형무형의 삶들은 여전히 볼 수 있다. 우리 또한 이러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짐짓 ‘그런 마음은 불필요하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게 아닐까.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
38. 한바탕 웃게 만들려 글을 베끼듯 발표회 하루 전이다. 특히 전통춤 공연 연습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어깨만 덩실거리고 발목을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리듬을 탄다는 게 말이나 쉽지,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 연습하는 것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하더라도 같이 하여 어색하고 뻣뻣한 몸동작을 함께 보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번 무용 선생님은 나에게 같이 할 것을 권유했지만, 연습은 같이 하되 발표회 땐 사진을 찍기 위해 빠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자신의 파트너로 내가 춰야한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덕에 내가 무대 전면에 서야만 했다. ▲ 카자흐스탄 정통 춤을 나도 함께 추게 되었다. 그것도..
2. 경계를 넘어서다 첫 해외여행이다.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는 여행이지만, 그 의미 외에도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군대는 타의에 의해 가며 정해진 대로 행동하면 된다. 내가 기획하고 움직일 여지가 그다지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도보여행은 주체적인 결정이었고 여행 내내 나의 의지가 나를 이끌었다. 삼중고? NO! 삼중락? YES! 그런데 이번 여행은 나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는 여행이되, 나의 의지가 절대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며, 전체 계획에 대해서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야 한다. 첫 여행이라는 핸디캡,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부담감, 학생들을 인솔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이러하기에 삼중고三重苦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조차 생각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전면에 ..
34. 아버지의 세초된 작품들에 대한 아쉬움 연암에 대한 세간의 평과 실질적인 모습 先君自少時, 頗有文酒跌蕩之事. 人或以喜繁華厭拘檢目之. 然天稟實澹泊於物, 最喜閑居靜坐, 究觀理致. 관조를 즐겨 수많은 작품을 남기다 其在燕峽也, 終日不下堂, 或遇物注目, 瞪默不言者移時. 嘗言: “雖物之至微, 如艸卉禽蟲, 皆有至境, 可見造物自然之玅.” 毎臨溪坐石, 微吟緩步, 忽嗒然若忘也. 時有玅契, 必援筆箚記, 細書片紙, 充溢篋箱. 遂藏之溪堂, 曰: “他日更加攷檢, 有條貫然後可以成書.” 그 많던 작품들이 세초된 내역 後棄官入峽, 出而視之, 眼昏已甚, 不能察細字. 乃悵然發歎曰: “惜乎! 宦遊十數年, 便失一部佳書.” 已而又曰: “終歸無用, 徒亂人意.” 遂令洗草溪下. 嗟乎! 不肖輩, 時未侍側, 遂失檢拾焉. 해석 연암에 대한 세간의..
목차 1. 수단으로서의 글 읽기와 본질로서의 글 읽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글 읽기’ 맛난 마주침을 위한 ‘본질로서 글 읽기’ 2. 연암의 글에 반하다 잘 안다고 착각했다 문이재도론, 조선시대의 미디어법 연암의 글 속엔 연암이 살아 있다 3. 작품 탄생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작가의 천부적 재능으로 작품은 탄생한다 여러 웅성거림이 작품을 짓도록 한다 4. 글은 불협화음 속에서 움튼다 불협화음 속에 문학은 생기를 얻고, 철학은 생명을 얻는다 힘든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 좋은 작품을 만든다 5. 나의 길을 간다. 그 길에서 나의 글을 쓴다 나의 길을 간다 6. 좋은 글의 첫 조건, 호기심 자기 성찰의 기본 요소, 호기심 호기심은 유머와 만나 더욱 빛난다 7. 좋은 글의 둘째 조건, 고정관념 넘어서기..
연암의 문학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주제로 세 번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왜 연암의 글을 소개하는 이 글에서 연암의 글은 살펴보지는 않고 뜬금없이 작품 탄생론으로 들어가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법하지만, 실상 어떤 식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지 고민해본 만큼 작품의 해석도 달라지기 때문에 짚고 가야 한다.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 또는 철학적 관점이 만들어지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에선 단순화하여 두 가지 관점의 차이만 살펴보고 그 관점에 따라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 연암의 작품을 들여다 보려면 작품이란 어떻게 지어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천부적 재능으로 작품은 탄생한다 작품이나 ..
준규쌤은 단재학교를 2013년에 떠나 지지학교를 열었다. 단재학교에 있을 때 영향을 많이 주었던 분이고, 여전히 여러 생각을 한 아름 안겨주는 분이기에 한 번씩 만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젠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기에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올해가 시작되며 맘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 준규쌤의 말을 듣고 어떤 단서라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최근에 준규쌤은 지지학교 연말 발표회를 함으로 7명의 학생들을 떠나보내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계획이 있는지도 듣고도 싶었다. ▲ 지지학교 발표회의 하이라이트, 난타공연. 지민이는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했다. 알아, 교보문고의 탁자? 5시에 교보문고에서 만나니, “여기에 5만 년이 된 나무 탁자가 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봤는데, ..
김신선전(金神仙傳) 박지원(朴趾源) 金神仙名弘基 年十六娶妻 一歡而生子 遂不復近 辟糓面壁坐 坐數歲 身忽輕 遍遊國內名山 常行數百里 方視日早晏 五歲一易屨 遇險則步益捷 甞曰 褰而涉 方而越 故遲我行也 不食故人不厭其來客 冬不絮 夏不扇 遂以神仙名 余甞有幽憂之疾 盖聞神仙方技 或有奇效 益欲得之 使尹生申生陰求之 訪漢陽中 十日不得 尹生言甞聞弘基家西學洞 今非也 乃其從昆弟家 寓其妻子 問其子 言父一歲中率四三來 父友在體府洞 其人好酒而善歌 金奉事云 樓閣洞金僉知好碁 後家李萬戶好琴 三淸洞李萬戶好客 美垣洞徐哨官 毛橋張僉使 司僕川邊池丞 俱好客而喜飮 里門內趙奉事 亦父友也 家蒔名花 桂洞劉判官 有奇書古釖 父常遊居其間 君欲見 訪此數家 遂行歷問之 皆不在 暮至一家 主人琴 有二客皆靜默 頭白而不冠 於是自意得金弘基 立久之 曲終而進曰 敢問誰爲金丈人 主人捨琴..
종로 한복판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났을 땐 약간 다른 것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크루즈 선원이나 다른 게 아닌,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앵두나무 밑엔 민들레가 피어오른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는 것과 코이카에 지원하여 해외자원봉사를 2년 정도 하는 것,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 대학원 3년에, 코이카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 5년이란 시간이 후딱 흐르게 된다. 함부로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이야말로 자기 좋아하는 것을 따라 잘도 다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 순간 왠지 모를 한파 때문인지, 인생의 서글픔 때문인지, 막막함 때문인지 비애감에 젖어 있던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하는 약간은 신선..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 13)~1805(순조 5) 조선 후기의 실학자ㆍ문인.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ㆍ열상외사(洌上外史). 1737년 서울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출생. 장인 이보천(李輔天)의 아우인 이양천(李亮天)에게서 『사기(史記)』를 시작으로 역사서적을 통해 문장 쓰는 법을 습득함. 1752년 16세 전주 이씨 보천(輔天)의 딸과 결혼. 1754년 18세 10대 후반에 우울증에 시달려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18세 무렵에 「광문자전(廣文子傳)」을 지었다. 지음. 1757년 21세 「민옹전(閔翁傳)」 지음. 1759년 23세 모친 함평 이씨 별세. 1760년 24세 조부 박필균(朴弼均) 별세로 생활이 곤궁해짐. 1765년 29세 시 「총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