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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밤에 누워 사화 승지를 그리며야와유회사화승지(夜臥有懷士華承旨) 박은(朴誾) 故人自致靑雲上 老我孤吟黃菊邊高蓋何堪容陋巷 酒杯終不負新篇一年秋興南山色 獨夜悲懷缺月懸旅雁似知無伴侶 數聲飛過泬㵳天 『挹翠軒遺稿』 卷三 해석故人自致靑雲上고인자치청운상친구는 스스로 청운 위에 이르렀지만【치청운상(致靑雲上): 전국 시대 위(魏)나라 수가(須賈)가 범수(范睢)에게 “나는 그대가 스스로 청운(靑雲)의 위에 오를 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한 데서 온 말로, 높은 벼슬에 스스로의 능력으로 오르는 것을 뜻한다. 『사기(史記)』 卷79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老我孤吟黃菊邊로아고음황국변늙은 나는 국화 곁에서 외로이 읊조리네. 高蓋何堪容陋巷고개하감용누항고관의 수레 어찌 누추한 마을을 용납하리오?酒杯終不負新篇주배종불부신편술잔 들고 ..
2. 이계전(耳溪傳)의 현황과 그 특징 이계(耳溪)는 민족의 고대사를 위시하여 임진ㆍ병자 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국란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역사적 업적을 남긴 수다한 애국 인물을 입전하여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을 창작한 바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자료에 실려 있는 것을 토대로 편찬한 것인데, 주로 역사서에 실린 것과 개인 문집류(文集類), 그리고 실기류(實記類)를 비롯하여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엮은 것이다. 여기서 이미 전(傳) 작가로서의 이계(耳溪)의 재능과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은 대개 전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품으로 옮겨 놓았다. 예컨대 이계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의 열전을 근거로 약간의 윤색을 가한 경우도 있고, 개인문집이나 실기류라..
6.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를 지은 이유 余今夜渡此河, 天下之至危也. 然而, 我則信馬, 馬則信蹄, 蹄則信地, 而乃收不控之效如是哉! 首譯語周主簿曰: “古有爲『危語』者, 謂盲人騎瞎馬, 夜半臨深池, 眞吾輩今夜事也.” 余曰: “此危則危矣, 非工於知危也.” 二人曰: “何爲其然也?” 余曰: “視盲者有目者也. 視盲者而自危於其心, 非盲者知危也, 盲者不見所危, 何危之有?” 相與大笑. 別有「一夜九渡河記」, 在「山莊襍記」. 인용 余今夜渡此河, 天下之至危也. 내가 오늘밤 이 황하를 건넌 것은 천하의 지극히 위험한 것이었다. 然而, 我則信馬, 馬則信蹄, 그러나 나는 말을 믿었고 말은 발굽을 믿었으며 蹄則信地, 발굽은 땅을 믿었으니, 而乃收不控之效如是哉! 고삐를 잡지 않은 공효를 거둠이 이와 같구나! 首譯語周主簿曰: “古有爲..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 말똥구리 같은 시 모음집에 써준 서문 낭환집서(蜋丸集序) 박지원(朴趾源) 비단옷 입은 봉사와 비단옷 입고 밤에 거니는 사람 子務ㆍ子惠出遊, 見瞽者衣錦. 子惠喟然歎曰: “嗟乎! 有諸己而莫之見也.” 子務曰: “夫何與衣繡而夜行者?” 遂相與辨之於聽虗先生. 先生搖手曰: “吾不知吾不知.” 이는 옷에서 생겨나나? 살에서 생겨나나? 昔黃政丞自公而歸. 其女迎謂曰: “大人知蝨乎? 蝨奚生? 生於衣歟?” 曰: “然,” 女笑曰: “我固勝矣.” 婦請曰: “蝨生於肌歟?” 曰: “是也” 婦笑曰: “舅氏是我.” 夫人怒曰: “孰謂大監智, 訟而兩是.” 政丞莞爾而笑曰: “女與婦來. 夫蝨非肌不化, 非衣不傅, 故兩言皆是也. 雖然, 衣在籠中, 亦有蝨焉; 使汝裸裎, 猶將癢焉, 汗氣蒸蒸, 糊氣蟲蟲, 不離不襯衣膚之間.” 짝짝..
과정록(過庭錄) 목차 1권 꿈에 붓을 얻다 자서 1 2 3 4 5 6연암의 성향을 걱정한 장인 이보천 7 8 9 10 11 12 13 14 15과거급제엔 전혀 관심도 없어라 16어렵게 금강산에 가다 연암이 지은 총석정시를 보고 놀란 홍상한叢石亭觀日出17 18 19 20형과 형수를 부모처럼 모시다 21 22급제시키려는 사람들과 피해 다니는 연암 23‘연암’으로 자호를 삼은 사연 24 25돈독한 친구 홍대용 손기술이 뛰어난 석치와 토론을 밤새도록 했던 무관ㆍ혜풍ㆍ재선과 제일 아낀 강산26 27음악을 좋아한 연암ㆍ담헌ㆍ효효재ㆍ풍무자「伐木」28 29 30권력자 홍국영을 거슬러 연암으로 피하다 31학문의 즐거움을 연암협에서 전수하다 32 33 34아버지의 세초된 작품들에 대한 아쉬움 35홍국영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퇴계 선생의 선비화 시가 불편한 사람들 앞선 후기에서 ‘공부란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라고 했듯이 『소화시평』 권상 88번도 다양한 측면에서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지만 퇴계의 시에서 스님의 말을 어느 부분까지 볼 것인지도 명확해진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잠시 살펴보고 가야 할 게 있다. 영주 부석사의 어느 암자 처마 아래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건 예로부터 의상대사가 좌선을 하기 위해 꽂아둔 석장이 어느새 뿌리가 내리더니 무럭무럭 자라나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나무다. 바로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흘러오는 얘기이고 그런 기이한 이야기에 감동한 퇴계는 시까지 지으며 뒷받침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퇴계야말로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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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熱河日記),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서론 초판 머리말 & 개정신판을 내며 프롤로그여행 / 편력 / 유목 1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1. 젊은 날의 초상신체적 특징태양인우울증‘마이너리그’ 『방경각외전 2. 탈주ㆍ우정ㆍ도주미스터리(mistery)분열자‘연암그룹’생의 절정 ‘백탑청연’연암이 ‘연암’으로 달아난 까닭은? 3. 우발적인 마주침 열하마침내 중원으로웬 열하?소문의 회오리 4. 그에게는 묘지명이 없다?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높고 쓸쓸하게“나는 너고, 너는 나다” 2부 1792년, 대체 무슨 일이? 1. 사건스케치서학과 명청문집문체 전향서희생자 이옥과 문체반정의 결과 2. 문체와 국가장치지식인들을 길들이는 첨단의 기제소품과 소설과 고증학 3. 대체 소품문이 ..
열하일기(熱河日記) 목차 열하일기서(熱河日記序) 1. 도강록(渡江錄)6월 24일에서 7월 9일까지. 압록강을 지나 요양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 渡江錄序六月二十四日辛未二十五日壬申二十六日癸酉二十七日甲戌二十八日乙亥二十九日丙子七月初一日丁丑初二日戊寅初三日己卯初四日庚辰初五日辛巳初六日壬午初七日癸未初八日甲申初九日乙酉舊遼東記遼東白塔記關帝廟記廣祐寺記 2. 성경잡지(盛京雜識)7월 10일에서 14일까지, 십리하(十里河)로부터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 동안의 기록 秋七月初十日丙戌十一日丁亥粟齋筆談商樓筆談十二日戊子古董錄 十三日己丑十四日庚寅盛京伽藍記山川記略 3. 일신수필(馹汛隨筆)7월 15일에서 23일까지. 신광녕(新廣寧)에서 산해관(山海關)에 이르는 9일간의 기록 馹汛隨筆序秋七月十五日辛卯北鎭廟記車制戱臺市肆店舍橋梁十六日壬辰十..
우직한 성실함으로 인정받은 우리의 친구 광문이광문자전(廣文子傳) 박지원(朴趾源) 1화: 광문, 아프던 거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다 廣文者, 丐者也. 甞行乞鍾樓市道中, 群丐兒, 推文作牌頭, 使守窠. 一日天寒雨雪, 群兒相與出丐, 一兒病不從. 旣而兒寒專纍, 欷聲甚悲. 文甚憐之, 身行丐得食, 將食病兒, 兒業已死. 群兒返乃疑文殺之, 相與搏逐文. 2화: 억울하게 도망 온 광문을 도둑으로 오해하다 文夜匍匐入里中舍, 驚舍中犬, 舍主得文縛之. 文呼曰: “吾避仇, 非敢爲盜, 如翁不信. 朝日辨於市.”辭甚樸, 舍主心知廣文非盜賊, 曉縱之. 文辭謝請弊席而去. 3화: 죽은 거지를 거적때기로 챙겨주다 舍主終已恠之, 踵其後. 望見群丐兒曳一尸, 至水標橋, 投尸橋下. 文匿橋中, 裹以弊席, 潛負去, 埋之西郊之墦間, 且哭且語. 於是舍主執詰文..
11. 윤음을 멋대로 유포하는 사람에게 충고하다 丙申冬, 先君適在鄕舍, 有鄕人士來謁曰: “有綸音行京洛, 故錄來耳.” 出諸袖中以進之, 先君覽其首語數行, 還與其人, 而誡之曰: “子是鄕人也. 儻有朝綸, 早晚自縣道頒布, 得而讀之, 可矣. 私錄公家文字, 流布鄕曲, 出入京洛, 傳說京洛音耗, 此亂民之事, 切不可爲也.” 其人憮然而去. 未幾, 有僞綸音傳布之獄, 上親鞫, 株連甚衆. 해석 丙申冬, 先君適在鄕舍, 병신(1776)년 겨울에 선군은 마침 시골집에 계셨는데 有鄕人士來謁曰: “有綸音行京洛, 故錄來耳.” 시골 선비가 뵈고서 “서울에서 배포된 윤음이 있었기 때문에 기록하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出諸袖中以進之, 先君覽其首語數行, 소매에서 꺼내 드리자 선군께선 첫 몇 줄을 보시고 還與其人, 而誡之曰: 다시 그 사람에게 ..
10. 선경지명으로 사람을 꿰뚫어 보다 先君先見之明, 往往有出人意表者. 少時, 在遺安公座, 有一姻婭人, 來拜而去. 先君曰: “噫! 某其死矣.” 公正色曰: “何其言之易也?” 後數日, 果死而訃至, 公呼先君曰: “君何以知某之死也?” 先君曰: “疇昔, 見其進止, 形與神已離矣.” 해석 先君先見之明, 往往有出人意表者. 선군께선 선견지명이 있어 이따금 사람의 의표를 벗어나는 생각이 있으셨다. 少時, 在遺安公座, 어렸을 적에 유안공 이보천의 집에 계실 적에 有一姻婭人, 來拜而去. 친척 한 사람이 와서 절을 하고 떠나갔다. 先君曰: “噫! 某其死矣.” 그러자 아버지는 “아! 아무개가 죽겠는데요.”라고 말했다. 公正色曰: “何其言之易也?” 유안공은 정색하며 “어째서 말을 쉽게 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後數日, 果死而訃至..
9. 처남 이재성에 대한 평가 先君嘗言: “芝溪之文, 沉容典則, 不露鋒穎. 少時多讀『戴記』所致, 若與吾文, 性不相契合, 而其於論文, 有隻眼, 能知古人苦心處.” 每一篇出, 必曰: “爲我評隲之.” 芝溪公嘗曰: “燕岩筆力雄强, 識致精到, 近代諸作家, 所未有也.” 半生一室, 有偲怡ㆍ塤篪之樂, 論文知心, 一人而已. 해석 先君嘗言: “芝溪之文, 선군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셨다. “지계공 이재성의 문장은 沉容典則, 不露鋒穎. 침착하고 용의주도하며 법칙이 있지만 자기의 생각은 붓끝으로 드러나질 않는다. 少時多讀『戴記』所致, 어렸을 적에 대부분 『예기』를 읽은 것이 지극했던 것이니 若與吾文, 性不相契合, 나의 문장과는 성격이 서로가 맞지가 않다. 而其於論文, 有隻眼, 그러나 문장을 논한 것에 있어선 식견이 있어 能知古人苦心..
8. 글을 쓸 때의 모습과 다 쓴 후의 모습 先君之爲文也, 每遇題締構, 輒專心致思. 苟於自己議論有未契者, 雖先儒斷論, 亦不欲阿隨苟同. 必用烏絲欄紙, 操筆淨書, 點畫不草率. 其有字句, 當塗改處, 雖篇將垂畢, 必從頭更寫, 易藁而新之. 每一篇出, 便可編入★弓+二縛. 不若此則如病在躳, 雖在忙遽中, 亦然. 해석 先君之爲文也, 每遇題締構, 선군께서 글을 지으려 매번 제목을 짓는 순간에 마주치거나 구성을 엮으려는 순간엔 輒專心致思. 갑자기 마음을 전일하게 하셨고 생각을 집중하셨다. 苟於自己議論有未契者, 만약 자기의 의견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게 있다면 雖先儒斷論, 비록 선배 유학자들의 확고한 논리가 있더라도 亦不欲阿隨苟同. 또한 아부하며 따르거나 구차하게 같아지려 하진 않으셨다. 必用烏絲欄紙, 操筆淨書, 반드시 오사..
7. 남보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린 연암 先君看書甚遲, 日不過一卷書. 常曰: “吾記性甚短, 每看書, 掩卷卽忘, 胸中茫然, 若無一字. 至或臨事處宜, 或命題構思, 始也頭頭現出, 終焉森森羅布. 古人往蹟及先輩格言之襯當於目前情境者, 有左右逢原, 不可勝用之意.” 芝溪公嘗言: “燕岩看書甚遲, 我下三四板之頃, 僅下一板. 且其記誦之才, 若差損於我, 而至如上下商論, 較絜長短, 則有如酷吏斷獄, 無微不勘. 始知公之遲看, 蓋有所究竟到底者故耳.” 해석 先君看書甚遲, 日不過一卷書. 선군께선 책을 보는 속도가 매우 느려 하루에 한 권의 책도 채 읽지 못하셨다. 常曰: “吾記性甚短, 每看書, 항상 말씀하셨다. “나의 기억력은 매우 짧아 매번 책을 보다가 掩卷卽忘, 胸中茫然, 若無一字. 책을 덮으면 곧 잊어버려 머릿속에 아득히 한 글자도..
5. 「주공탑명」에 대한 여러 사람의 이현령비현령 先君少時, 著有「麈公墖銘」, 輩行金公魯永讀之曰: “此至精之文.” 遂記誦焉, 每凉宵晴朝, 輒朗咏一過. 後內從李正履爲余言: “近者更讀「麈公墖」, 得知其爲闢佛文字, 金公所云至精之文, 深得旨意也.” 不肖每聽人論此篇, 未嘗有此解. 一日示一老衲, 老衲一讀, 便憮然曰: “是乃闢佛文.” 해석 先君少時, 著有「麈公墖銘」, 선군께선 어렸을 적에 「주공탑명」을 저술한 적이 있는데 輩行金公魯永讀之曰: “此至精之文.” 일행인 김노영이 이것을 읽고 “이것은 지극히 정밀한 문장이다.”라고 말했다. 遂記誦焉, 每凉宵晴朝, 마침내 기억하고 암송하며 매일 서늘한 밤이 갠 아침에 輒朗咏一過. 갑자기 낭낭하게 한 번 지나치듯 읊조렸다. 後內從李正履爲余言: 훗날 사촌인 이정리가 나를 위해서 ..
4. 초년과 중년과 만년의 문장 차이 先君初年得力, 專在於『孟子』ㆍ『馬史』. 故氣槩之發越於文章者, 可知其根基之所在也. 至如『左』ㆍ『國』ㆍ韓ㆍ歐, 亦嘗心摹手追, 深得其神理義法. 中年以後, 脫畧世網, 隱居ㆍ遠遊, 往往寓言諧笑遊戱之作, 出入『莊』ㆍ『佛』二家者有之. 晚年最好賈陸奏議之文ㆍ朱子論事之書, 公私書牘多出於此, 此先君文章初晚之別也. 해석 先君初年得力, 專在於『孟子』ㆍ『馬史』. 선군께서는 초년에 힘을 얻음이 온전히 『맹자』와 『사기』에서 있었다. 故氣槩之發越於文章者, 그러므로 기의 뼈대가 문장에서 발산되어 초월하는 것은 可知其根基之所在也. 근본이 있는 것임을 알 만하다. 至如『左』ㆍ『國』ㆍ韓ㆍ歐, 『좌전』과 『국어』와 한유와 구양수의 경우에 이르러서 亦嘗心摹手追, 또한 일찍이 마음으로 모방하고 손으로 따라 ..
3-2. 시대적 옳음을 담아내는 글을 써라 嘗言: “惟忠武侯, 識其大者. 爲文之道, 亦貴乎識其大者.” 해석 嘗言: “惟忠武侯, 識其大者. 일찍이 선군께선 말씀하셨다. “오직 충무후 제갈량은 큰 도를 아는 사람이었으니 爲文之道, 亦貴乎識其大者.” 글을 짓는 방법이란 또한 그 큰 도를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인용 목차
3-1. 옛 사람들과 지금 사람들의 글짓는 자세 차이 嘗言: “今人學八家文, 不能得其神理, 徒習粗跡. 凡作一篇文字, 其起伏照應, 關鎖結尾, 務要歷歷, 分明模索, 可知其工者爲之, 已不足喜. 況拙者, 只得以字眼彌縫, 尤無足論矣. 古人有許大心胸, 許大學問, 發言吐辭, 只要明鬯典雅, 不是用意安排, 而自然有成章之妙. 後來批評家, 段分句析, 挑出層節, 不害爲拈示古人精神注處, 俾初學之士有所開發. 但謂古人操䉉臨紙, 胸中先具此一篇排鋪, 則不可. 學古文者, 當求自然層節. 生出在自家文字, 不宜竊古人言語去, 塡寫格子上耳. 難易之分, 於是乎在, 而眞贋之辨, 隨而定焉. 留下一副格子, 千篇萬篇, 一範榻出者, 其唯今人科體文字乎!” ▲ 김홍도의 [화첩평생도] 중 '소과응시' 부분이다. 해석 嘗言: “今人學八家文, 선군께선 일찍이 말씀..
33-2. 야만스러움을 변화시키려는 사람 時有客在松園金公座, 談胡服之說. 金公遽曰: “君曾見綰髻之胡乎?” 曰: “未也. 胡辮.” 金公又曰: “曾見衣純之胡乎?” 曰: “胡衣無純.” 金公曰: “吾聞燕岩衣玄純之衣, 印童皆令解辮綰髻. 然則, 燕岩用夏變胡者也.” 해석 時有客在松園金公座, 談胡服之說. 당시 손님 중 송원 김이도의 댁에 있던 사람은 ‘호복임민(胡服臨民)’의 이야기에 대해 말했다. 金公遽曰: “君曾見綰髻之胡乎?” 김공이 갑자기 “그대는 일찍이 관을 쓰고 상투를 튼 오랑캐를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曰: “未也. 胡辮.” 그러자 손님이 “아닙니다. 오랑캐는 변발을 하지요.”라고 대답했다. 金公又曰: “曾見衣純之胡乎?” 김공이 또한 “일찍이 옷에 가선을 두른 오랑캐를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曰: “胡衣無..
33-1. 안의에 있을 때 ‘오랑캐를 따른다’는 비난을 받다 1. 몽고의 풍속을 바로잡았지만 비난을 사다 先君嘗病吾東婦人服飾及童子辮髮專襲蒙古. 盖高麗忠宣王, 自元而歸也, 效其俗, 辮髮而出. 當時士大夫郊迎者, 皆飮泣不忍見. 其後國俗因襲不改, 流弊至今. 吾東雖嚴於尊攘, 而此等陋俗, 恬不知恥. 及宰安義, 義乃桐溪鄭先生之鄕也. 先生之斥和歸鄕也, 童子皆令解辮雙髻. 尤菴先生之居巴串也, 亦用此制, 盖深痛一世之不復識華制也. 又其鄕之賢士劉君處一, 遵林葛川ㆍ盧玉溪之所嘗被服者, 倣朱子野服, 爲素衣玄純之制, 先君愛其高雅, 荷堂竹館, 時或以燕居焉, 知印童子之辮髮者, 皆令解而丱之. 不肖亦以四袿雙丱髻, 侍側焉, 皆先君好古曠惑之意. 而鄰宰過客, 皆瞠其駭俗也. 且荷堂甎築, 亦涉刱見, 或戲問曰: “此皆胡制歟?” 先君哂鹵莽也, 而不與辨...
1. 몽고의 풍속을 바로잡았지만 비난을 사다 先君嘗病吾東婦人服飾及童子辮髮專襲蒙古. 盖高麗忠宣王, 自元而歸也, 效其俗, 辮髮而出. 當時士大夫郊迎者, 皆飮泣不忍見. 其後國俗因襲不改, 流弊至今. 吾東雖嚴於尊攘, 而此等陋俗, 恬不知恥. 及宰安義, 義乃桐溪鄭先生之鄕也. 先生之斥和歸鄕也, 童子皆令解辮雙髻. 尤菴先生之居巴串也, 亦用此制, 盖深痛一世之不復識華制也. 又其鄕之賢士劉君處一, 遵林葛川ㆍ盧玉溪之所嘗被服者, 倣朱子野服, 爲素衣玄純之制, 先君愛其高雅, 荷堂竹館, 時或以燕居焉, 知印童子之辮髮者, 皆令解而丱之. 不肖亦以四袿雙丱髻, 侍側焉, 皆先君好古曠惑之意. 而鄰宰過客, 皆瞠其駭俗也. 且荷堂甎築, 亦涉刱見, 或戲問曰: “此皆胡制歟?” 先君哂鹵莽也, 而不與辨. 해석 先君嘗病吾東婦人服飾及童子辮髮專襲蒙古. 선군께서 일찍이 ..
32-1. 박지원을 불편하게 여긴 정조 1. 순정한 글을 지어 올리라고 분부하다 時上以文風不古, 屢下嚴旨. 詞垣諸臣, 皆有訟愆之作. 一日上下敎于直閣南公轍曰: “近日文風如此, 莫非朴某之罪也. 『熱河日記』, 予旣熟覽, 焉敢欺隱? 『日記』行世後, 文體如此, 自當使結者解之. 斯速著一部純正之書, 卽爲上送, 以贖『日記』之罪, 雖南行文任, 豈有可惜者乎? 不然則當有重罪, 須以此意, 卽爲貽書.” 南公書畧曰: “此實出於我聖上敦世敎ㆍ振文向ㆍ正士趨之苦心至德, 敢不對揚其萬一? 况執事則其在訟愆贖罪之道, 尤不容暫緩”云云. ⇒해석보기 2. 주상의 분부에 답한 내용 先君答書畧曰: “天地之大, 無物不育, 日月之明, 無微不燭, 豈意兎園之遺册, 上汚龍墀之淸塵哉? 疎野一个之賤, 而恩敎無間於近密. 不惟不加以兩觀熒惑之誅, 乃反命贖其一部純正之書,..
4. 글을 지으란 하교를 어기는 이유 時在衙諸文士, 皆欣踊. 操管札攤書卷, 將以替勞草寫及攷證之事. 先君語之曰: “上之此敎, 固曠絕恩眷也. 上方以此爲罪, 其在臣分, 惟當受而爲罪, 可也. 安有荷譴之蹤, 作爲文字, 自許純正, 要掩前愆? 且况以文任二字, 開其自新之路, 若因此揚揚著作進呈, 則此希覬也. 希覬, 人臣之大罪也. 不復以著進爲計畧, 選著作若干篇, 幷南中所著幾篇, 作數卷册子, 若更有俯索之敎, 將以黽勉承膺, 粗伸臣分而已.” 해석 時在衙諸文士, 皆欣踊. 당시 안의현에 있던 선비들이 모두 기뻐하며 뛰었다. 操管札攤書卷, 將以替勞草寫及攷證之事. 붓을 잡고 책을 펼쳐 장차 대신하여 베껴 쓰거나 고증하는 일을 하려 했었다. 先君語之曰: 선군께서 말씀하셨다. “上之此敎, 固曠絕恩眷也. “주상이 이번 하교는 참으로 전에도..
3. 순정한 글을 쓰라는 편지가 쇄도하다 先是, 上進覽『武藝圖譜通志』, 指李德懋著「禦倭」諸論, 敎曰: “諸篇皆圓好.” 又敎曰: “此燕岩體也.” 是以京中諸公, 皆以爲: “此實非怒之敎, 將有格外異數. 且聖敎中, 歷數諸人之愆, 而特擧朴某爲罪魁者, 乃大聖人抑而進之, 推任文權之意. 又况擧『熱河日記』爲眞贓, 而加以熟覽字以寵之乎! 是必有一部文字趁早撰進.” 皆書勸其著作, 芝溪公書畧曰: “執事之文, 筆力高强, 而用字則不甚矜古, 何嘗是明淸小品? 特其典則之作, 人未嘗見, 而『日記』盛行一世故耳. 盖其不自珍惜, 放倒不矜重, 則有之矣, 何嘗纖靡委弱如近時諸人之爲耶? 若曰: ‘學執事而文風至此’ 則誠冤矣. 愚意則就『日記』中, 揀別其一分詼氣而去之, 則此便是純正之書”云云. 해석 先是, 上進覽『武藝圖譜通志』, 이에 앞서 주상께서 『무예도보..
2. 주상의 분부에 답한 내용 先君答書畧曰: “天地之大, 無物不育, 日月之明, 無微不燭, 豈意兎園之遺册, 上汚龍墀之淸塵哉? 疎野一个之賤, 而恩敎無間於近密. 不惟不加以兩觀熒惑之誅, 乃反命贖其一部純正之書, 蟣蝨賤臣, 何以得此? 僕中年以來, 落拓潦倒, 不自貴重, 以文爲戱, 有時窮愁無聊之發, 無非駁襍無實之語. 性又懶散, 不善收檢, 旣自誤而誤人, 或以訛而傳訛. 文風由是而不振, 士習由是而日頹, 則是固傷化之災民, 文苑之棄物也, 得兎憲章, 亦云幸矣. 究厥本情, 雖伎倆之所使, 是誠何心? 自楚撻而爲記, 敢不亟圖黥刖之補, 無復作聖世之辜民也”云云. 해석 先君答書畧曰: “天地之大, 無物不育, 선군께서 답한 편지는 대략 이렇다. “천지가 커서 사물마다 기르지 않은 게 없고 日月之明, 無微不燭, 해와 달아 밝아 미물이라도 밝히지 ..
1. 순정한 글을 지어 올리라고 분부하다 時上以文風不古, 屢下嚴旨. 詞垣諸臣, 皆有訟愆之作. 一日上下敎于直閣南公轍曰: “近日文風如此, 莫非朴某之罪也. 『熱河日記』, 予旣熟覽, 焉敢欺隱? 『日記』行世後, 文體如此, 自當使結者解之. 斯速著一部純正之書, 卽爲上送, 以贖『日記』之罪, 雖南行文任, 豈有可惜者乎? 不然則當有重罪, 須以此意, 卽爲貽書.” 南公書畧曰: “此實出於我聖上敦世敎ㆍ振文向ㆍ正士趨之苦心至德, 敢不對揚其萬一? 况執事則其在訟愆贖罪之道, 尤不容暫緩”云云. 해석 時上以文風不古, 屢下嚴旨. 당시에 주상께서 문풍이 예스럽지 못하다고 여겨 자주 엄한 교지를 내리셨다. 詞垣諸臣, 皆有訟愆之作. 한림원의 뭇 신하들은 모두 잘못을 다스려 바로잡는 글을 지어야 했다. 一日上下敎于直閣南公轍曰: 하루는 주상께서 직각 남..
2-2. 고문은 그 당시엔 금문이었다 又曰: “古人爲文, 在當時, 何嘗義奥而旨微耶? 『書』之「典」ㆍ「謨」, 『詩』之「風」ㆍ「雅」, 『易』之「彖」ㆍ「象」, 『春秋』諸傳, 卽當時之今文, 人皆曉之, 後來世彌降而義漸晦, 所以有傳箋註疏也. 今人不知此義, 必模擬依樣, 强作險澀之態, 自以爲簡古也, 可笑哉! 若使他人讀自家文, 便費自家註釋, 將焉用是文爲哉?” 해석 又曰: “古人爲文, 선군께서 또 말씀하셨다. 옛 사람이 지은 문장이 在當時, 何嘗義奥而旨微耶? 당시대에 있었지 어찌 일찍이 뜻이 심오하고 내용이 미세한 데 있었던가? 『書』之「典」ㆍ「謨」, 『詩』之「風」ㆍ「雅」, 『서경』의 「요전(堯典)」과 「대우모(大禹謨)」, 『시경』의 「풍」과 「아」와 『易』之「彖」ㆍ「象」, 『春秋』諸傳, 『주역』의 「괘사」와 「효사」, ..
2-1. 지금 사람이 지은 비지문은 너무 진부하다 先君又嘗言: “吾於文無他長, 惟紀事狀物之才, 稍勝於今人. 今人碑誌之作, 大抵多印板例套, 一篇之作, 可移用於人人. 而其人之神精典型, 從何想見? 此三淵翁所謂: ‘東人文集, 如人家哭婢聲’者, 是也. 古人所謂: ‘貌圓方寫, 貌長短寫’者, 馬傳韓碑所以可讀, 而今人不知此義. 但取累累滿紙陳談死句曰: ‘如此然後, 可謂典實.’ 吾不知此爲何許文法.” 해석 先君又嘗言: “吾於文無他長, 선군께서는 또한 일찍이 말씀하셨다. “나는 글에 대하여 다른 장점은 없지만 惟紀事狀物之才, 稍勝於今人. 오직 사태를 기술하고 사물을 형상하는 재주는 조금 지금 사람보다 낫다. 今人碑誌之作, 大抵多印板例套, 지금 사람의 묘지명 작품은 대체로 많이들 판을 찍어낸 듯 상례(常例)되어 진부하기만 해서..
36. 음악을 좋아했지만 악기를 없애버린 사연, 안의현을 음악고을로 만든 사연 家中舊有笙琴諸器, 或風舞輩來, 使之彈吹. 及哭湛軒, 遂有絃斷之悲, 不復入耳也. 後五年, 偶過湛軒宅, 歸而忽愴然, 竝散其器以與人. 是以不肖幼時, 未得見匏絃之屬. 及宰安義也曰: “山水旣絶勝, 且時屬昇平, 宜有以賁飾之.” 適有梨園老樂師流落嶠南者, 召而廩置之, 使敎習工伎歌樂數月間, 並傳京腔, 時稱此邑絲管爲一道最. 해석 家中舊有笙琴諸器, 집 안엔 오래된 생황과 거문고 등의 악기들이 있어 或風舞輩來, 使之彈吹. 간혹 풍무 김억의 무리들이 오면 그들에게 연주하게 했다. 及哭湛軒, 遂有絃斷之悲, 담헌이 돌아가시자 마침내 거문고 줄을 끊는 슬픔이 있어 不復入耳也. 다시 귀로 듣지 않으셨다. 後五年, 偶過湛軒宅, 5년이 지나 우연히 담헌의 집을..
31. 안의현에서의 치적과 연회에 관심 갖던 정조 時上嘗語閣臣某曰: “朴某平生無一畝之宅, 流離栖屑於窮鄕江干, 今白首一麾, 宜若汲汲於求田問舍, 而聞構亭鑿池, 邀致文酒之朋於千里之外, 文人事, 信是不俗, 難矣哉! 且聞其吏治極善.” 後數日, 敎朴齊家曰: “朴某之邑, 文人多往遊, 而汝獨縻公不能往, 宜有向隅之歎. 乞暇一往, 可也.” 齊家遂承命來會, 誦致前後恩敎如此. 해석 時上嘗語閣臣某曰: 이때에 임금께서 일찍이 각신 아무개에게 말씀하셨다. “朴某平生無一畝之宅, 流離栖屑於窮鄕江干, “박지원은 평생 한 넓이의 집도 없이 궁벽한 시골이나 강가에서 유리걸식하며 살다가 今白首一麾, 宜若汲汲於求田問舍, 이제 늙어서야 한 번 고을수령이 되었지만 마땅히 밭과 집에 대한 일에만 급급할 것이다. 而聞構亭鑿池, 邀致文酒之朋於千里之外,..
29. 안의현감이 되어 친구들을 초대하여 시회를 열다 邀芝溪公及金公箕懋光瑞ㆍ李甥鍾穆維肅ㆍ李甥謙秀益之, 以爲溪山文酒之遊. 及癸丑春, 倣蘭亭故事, 流觴咏詩, 一世傳誦爲盛事. 按芝溪與人書有曰: “僕到花林邑之別號, 四十日處荷風竹露之館. 主人使君, 時豐政簡, 封篆可有, 三分日晷, 輒來居客位. 琴樽古雅, 書劒整暇, 韵釋名姬, 動在左右, 酒酣縱談千古文章事, 此樂可敵百年. 不知僕他日能擁麾專城如花林之勝, 安能得客如燕岩其人乎?” 同時來者, 有李喜經聖緯ㆍ尹仁泰五一, 皆門下士也, 韓惠仲ㆍ梁元聘諸人, 皆燕峽時門生也. 時設妓樂於別館, 必撰屨先歸, 任其跌蕩. 芝溪公邀臨, 凡三度. 해석 邀芝溪公及金公箕懋光瑞ㆍ李甥鍾穆維肅ㆍ李甥謙秀益之, 선군께서는 지계공과 광서 김기무ㆍ큰 사위 유숙 이종목ㆍ작은 사위 익지 이겸수를 맞이하여 以爲溪山文酒..
37-2. 『열하일기』를 비판하는 사람들 人有囫圇說「渡江」諸編句語, 妄有評論. 不肖出「筆談」一編, 試使讀之, 不識其爲何語, 亦不能屬其句讀. 文理疎短如此, 而尙復論評人文字, 殊令人無限慚愧然, 而此猶無足道者. 至如以虜號之藁四字, 造謗而劫辱者, 大爲鹵莽. 嗚呼, 尙何足言哉! 說見下. 해석 人有囫圇說「渡江」諸編句語, 사람 중에 우물쭈물 「도강록」의 여러 편과 구어를 말하며 妄有評論. 망령되이 평론하는 사람이 있었다. 不肖出「筆談」一編, 試使讀之, 내가 「혹정필담(鵠汀筆談)」 한편을 꺼내 시험삼아 그에게 읽게 하니 不識其爲何語, 亦不能屬其句讀. 무슨 말인지도 몰랐으며 또한 구도조차 떼질 못했다. 文理疎短如此, 而尙復論評人文字, 문리가 어설프고 짧은 게 이와 같은데 오히려 다시 남의 글을 논평하여 殊令人無限慚愧然,..
37-1. 『열하일기』가 탈고하기도 전에 세상에 유행하다 先君嘗歎息言: “吾中年以來, 灰心世路, 漸有滑稽逃名之意, 而末俗滔滔, 無可與語. 每對人, 輒以寓言笑談, 爲彌縫打乖之法, 而心界常鬱鬰, 無可自樂. 及其遊燕而還也, 大方所見聞, 頗有可述, 往來山中, 筆硯隨身, 檢取槖中散草而漫書之, 以爲老年消閑之資. 裒然成幾編書, 初未嘗以傳後爲計也. 誰料脫藁未半, 人已傳寫, 遂至遍行一世, 莫可收藏. 初甚怵然自悔, 撫心長歎, 末亦無可柰何, 亦復任之而已. 至於未見其書面目, 而輒隨衆訿毀者, 吾亦如之何哉!” 해석 先君嘗歎息言: 선군께서는 일찍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吾中年以來, 灰心世路, “나는 중년 이후로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漸有滑稽逃名之意, 而末俗滔滔, 점점 골계와 이름을 숨기고자 하는 뜻이 늘어나 말세의 풍속이..
27. 음악을 좋아한 연암ㆍ담헌ㆍ효효재ㆍ풍무자 先君精於審音, 而湛軒公尤曉樂律. 一日先君在湛軒室, 見樑上掛歐羅鐵絃琴數張. 盖因燕使歲出吾東, 而時人無解彈者. 先君命侍者解下, 湛軒笑曰: “不解腔何用爲?” 先君試以小板按之曰: “君第持伽倻琴來, 逐絃對按, 驗其諧否也.” 數回撫弄, 腔調果合不差, 自是鐵琴始盛行於世. 時有琴師金檍, 號風舞子, 嘐嘐齋所命也. 爲娛新飜鐵琴, 會湛軒室, 時夜靜樂作, 嘐嘐公乘月不期而至, 聽笙琴迭作, 意甚樂, 扣案上銅盤以節之, 誦『詩』「伐木」章興勃勃也. 已而嘐嘐公起出戶, 久不入, 出視之, 不見公. 湛軒語先君, “吾輩恐有失儀, 令長者歸也.” 遂與共步月, 向嘐嘐宅, 至水標橋. 時方大雪初霽, 月益明, 見公膝橫一張琴, 岸巾坐橋上望月. 衆皆驚喜, 移設杯盤樂具, 陪遊盡歡而罷. 先君嘗語此而曰: “自嘐嘐公沒..
41. 이야기 벗 이광려 李叅奉匡呂, 文章奇偉士也. 先君之寓平谿也, 嘗與芝溪公, 聯袂過鄰衕, 見人家柴門內有小車. 制頗精工, 就視之. 主人下堂迎笑曰: “君豈非朴燕巖乎? 吾乃李匡呂也.” 遂上堂坐, 輒論文章. 先君問之曰: “君平生讀書, 識得幾個字?” 座客皆大駭, 心笑之曰: “孰不知李公文章博洽士也?” 李公點檢良久語曰: “僅識得三十餘字.” 座客又大駭, 不知其何謂也. 自是李公定爲一言知己, 頻頻來訪. 有新成詩文, 必袖以請評. 每先君過訪, 必盥手設時菓于案上曰: “此待尊賓禮也.” 談辨竟日, 未嘗一言及於黨論歧異者云. 해석 李叅奉匡呂, 文章奇偉士也. 참봉 이광려는 문장이 기이하고 위대한 선비다. 先君之寓平谿也, 嘗與芝溪公, 선군께서 평계에 사실 적에 일찍이 지계공 이재성(李在誠)과 함께 聯袂過鄰衕, 見人家柴門內有小車. 소매..
35. 홍국영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옛 친구도 모두 죽다 庚子撤還京師, 寓平谿, 卽芝溪公宅也. 時洪國榮敗, 禍色始熄, 而老成舊要, 凋謝殆盡. 風氣一變, 非復舊日者. 益濩落自放, 反喜其爲存身之訣. 然常鬱鬱, 有遐擧之想. 會先君三從兄錦城都尉, 以賀使赴燕, 要先君共行. 五月啓程, 六月渡江, 八月入燕京. 尋又轉向熱河, 是月復還燕京, 十月歸國. 及歸, 尤徜徉無韵况. 時獨入處燕峽, 或經年或半歲, 乃歸. 해석 庚子撤還京師, 寓平谿, 경자(1780)년에 서울로 철수하여 돌아와 평계에 사셨는데 卽芝溪公宅也. 곧 처남인 지계공 이재성(李在誠)의 집이었다. 時洪國榮敗, 禍色始熄, 당시 홍국영이 실각하여 재앙의 빌미가 비로소 식었지만 而老成舊要, 凋謝殆盡. 어른스럽던 옛 친구들 중 죽은 이들이 거의 다였다. 風氣一變, 非復舊日..
25. 아버지의 친구들 1. 돈독한 친구 홍대용 先君天姿豪邁, 於名利戒愼若浼. 中歲旣不輒赴場屋, 而交遊亦簡, 惟洪湛軒大容ㆍ鄭石癡喆祚ㆍ李薑山書九, 時相往還, 而李懋官德懋ㆍ朴在先齊家ㆍ柳惠風得恭, 常從遊焉. 湛軒公長先君六歲, 學識精邃, 亦廢擧閑養. 與先君爲道義交, 最相親篤, 而言辭稱謂, 相敬如初交時也. 先君常病吾東士大夫, 多忽於利用厚生ㆍ經濟ㆍ名物之學, 類多因訛襲謬, 麤鹵已甚. 湛軒平日持論亦如此. 每相盍簮, 輒留連累日, 上自古今治亂興亡之故, 古人出處大節, 制度沿革, 農工利病, 貨殖糶糴, 與夫山川關防, 曆象樂律, 以至艸木鳥獸, 六書算數, 無不貫穿該括, 皆可記而誦也. ⇒해석보기 2. 손기술이 뛰어난 석치와 토론을 밤새도록 했던 무관ㆍ혜풍ㆍ재선과 제일 아낀 강산 石癡文雅, 有絕藝. 凡機轉諸器, 如引重ㆍ升高ㆍ磨轉ㆍ取水..
2. 손기술이 뛰어난 석치와 토론을 밤새도록 했던 무관ㆍ혜풍ㆍ재선과 제일 아낀 강산 石癡文雅, 有絕藝. 凡機轉諸器, 如引重ㆍ升高ㆍ磨轉ㆍ取水之類, 能心究手造. 皆欲倣古試今, 需諸世用也. 懋官ㆍ惠風ㆍ在先, 皆博學治聞之士, 每有攷據, 輒應口辨證, 於先君執禮惟謹. 每聚會談讌, 不覺焚膏以繼晷也. 薑山年最少, 而穎拔出羣, 沈靜有識量, 先君愛重之. 家中老傔僕, 亦往往說當時事, 多可聞. 해석 石癡文雅, 有絕藝. 석치 정철조는 문학에 대한 식견이 있고 예술적 수완이 뛰어났다. 凡機轉諸器, 대체로 기계가 움직이는 여러 기구들, 如引重ㆍ升高ㆍ磨轉ㆍ取水之類, 예를 들면 무거운 거 당기는 기계(引重), 높이 올리는 기계(升高), 갈며 도는 기계(磨轉), 물 끌어들이는 기계(取水) 등을 能心究手造. 마음에 연구하고서 손수 만들 ..
1. 돈독한 친구 홍대용 先君天姿豪邁, 於名利戒愼若浼. 中歲旣不輒赴場屋, 而交遊亦簡, 惟洪湛軒大容ㆍ鄭石癡喆祚ㆍ李薑山書九, 時相往還, 而李懋官德懋ㆍ朴在先齊家ㆍ柳惠風得恭, 常從遊焉. 湛軒公長先君六歲, 學識精邃, 亦廢擧閑養. 與先君爲道義交, 最相親篤, 而言辭稱謂, 相敬如初交時也. 先君常病吾東士大夫, 多忽於利用厚生ㆍ經濟ㆍ名物之學, 類多因訛襲謬, 麤鹵已甚. 湛軒平日持論亦如此. 每相盍簮, 輒留連累日, 上自古今治亂興亡之故, 古人出處大節, 制度沿革, 農工利病, 貨殖糶糴, 與夫山川關防, 曆象樂律, 以至艸木鳥獸, 六書算數, 無不貫穿該括, 皆可記而誦也. 해석 先君天姿豪邁, 선군께서는 천부적인 자질이 호탕하고 고매하여 於名利戒愼若浼. 명예와 이익에 있어 내 몸을 더립힐까 경계하고 삼가셨다. 中歲旣不輒赴場屋, 而交遊亦簡, 중년..
34. 연암가의 청렴결백 1. 선조 박상충과 박은의 청렴결백한 예화 嘗詔不肖輩曰: “爾曹, 他日雖得祿食, 毋望家計之足也! 吾家傳世淸貧, 淸貧卽本分耳.” 因歷擧家傳故事曰: “吾先祖潘南先生, 旣以斥元尊明, 爲羣兇所阸, 卒於靑郊驛. 未能返櫬, 而葬于其地, 卽國東門外耳. 其貧無以爲力, 可知也. 平度公自言: ‘孤貧且疾, 志氣猶存.’ 及際會風雲, 久秉匀軸, 猶不免脫粟飯, 幾乎狼狽. 公家在駱山下. 一日, 太宗倉卒臨門, 怒公出迎之遲也. 公曰: ‘臣適得粟飯, 恐妨奏對, 水漱然後敢出也.’ 上命取而視之, 愈怒曰: ‘無亦公孫布被耶? 安有大臣而飯荒粟者?’ 左右言: ‘大臣之宗族親友, 待而擧火者甚衆, 祿米入室, 一夕散盡.’ 上憮然曰: ‘予之過也! 予爲國君, 使布衣故人, 不厭麤糲, 予不及卿之賢, 遠矣!’ 卽席賜興仁門外鼓巖田十結. ⇒..
5. 할아버지 박필균과 할머니의 청빈 曾王父有德無年, 尹夫人辛勤敎養, 成就王父兄弟. 王父纔釋褐, 而尹夫人下世, 未享一城之奉. 王父兄弟廬墓于通津之鳯翔邨, 此地本崔簡易別業, 忠翼公嘗買而居之. 以此王父兄弟, 亦有薄田一區, 瀕海斥鹵, 歲率失稔. 從姪章翼公居留沁都, 常繼米鹽醬豉之屬, 得行饋奠. 王父位躋列卿, 而屢空如寒士. 城西弊廬樸陋逼窄, 平生不易居. 嘗有頽圮甚處, 客請修葺之, 適除外任. 王父謂: ‘作守令而修室屋, 不可也.’已之. 通津薄田, 海溢堰缺, 方築之, 適拜畿伯. 又謂: ‘作道伯而治農庄, 不可也.’ 送人停其役. 客恨之曰: ‘爲方伯守宰, 將以撥貧也, 如公家則反有害焉.’ 傳以爲笑. 其時士大夫, 亦多廉白立家, 而吾家規模, 在當時亦以太過稱之. 然而猶避名不居. 外邑例有饋問, 時方屢空, 分裂其腒鱐之屬, 以代朝饍. 或..
4. 증조부 박미와 증조모 정안옹주의 검약 國朝儉德, 固出前代, 而亦吾祖妣, 性有所安. 仁穆后喪畢, 分賜服御器物諸王子女家, 率得金銀珍玩, 貞安主獨取宣廟御畵蘭竹一屛以歸, 所尚在此, 則所不屑可以知也. 文貞公雖早貴, 而車馬僕從不能備也. 嘗有詩云: ‘八十導前卒, 蹣跚鞚馬奴. 小童且隨後, 嚴沍尙無襦. 市井嘲儀簡, 妻孥愧跡孤. 試看呼唱處, 猶使路人趨.’ ‘八十導前卒’者, 引路卒, 歷事三世, 年將八十云. 盖分窶如此, 而處之泊如也. 公之風流文采, 輝映當時, 座客常傾一代之選. 性又喜酒, 然往往不得一醉, 鎭日淸坐而罷, 猶且急人之難, 脫驂分宅, 曾無吝色. 忠翼公久謫南荒, 全家隨往, 公旣抱隱痛, 疋馬短衣, 長在道路. 又遭母夫人之喪, 長姑叔弟, 皆卒於南千里之外, 三返旅櫬. 是時貞安主獨處京舍, 摒當拮据, 辦應有無, 甁罄槖倒, 鞠..
3. 충익공의 근검절약과 부마 문정공의 청렴함 及忠翼公, 早被上知, 歷敭顯要. 而皆在國步艱難之日, 身且不得自顧, 况家事乎哉? 搶攘八年之間, 吾家多在延安ㆍ遂安ㆍ安州之地, 流轉飄泊, 飢困萬狀. 中興以來, 公亦復出鎭雄蕃, 入掌邦計. 然長於謀國, 而短於謀家, 田畝之入, 不足以支數朔, 養生之具, 十闕七八, 終身銀盃, 乃策勳日賞賜也, 餘無一酒鎗茶鼎. 酷好書畵, 嘗遇良畵師, 篋無一絹之貯, 謀之又不得, 乃漂洗朝衣以繪之. 晚處謫籍, 蔬糟屢空, 見於詩牘者亦多. 蓋冢子文貞公, 駙馬也, 而其窘乏猶如此焉. 文貞公初被儀賓之選, 賜宅於貞洞, 以其侈大而辭之, 更占太平洞第, 亦爲近於親舍, 以便覲省也. 忠翼公舊宅, 今尙在倉洞, 其外堂爲房二間板廳一間而已. 文貞公最受宣廟眷愛, 然於王子女應給田結外, 別無私賜與. 貞安主被服, 雖垢汙渝黦, 命宮..
2. 야천 선생과 다섯 아들의 청렴결백 冶川先生, 慍于羣小, 遯跡流寓, 卒於嶺表, 竟亦不能返葬. 于時, 長子贊成公十九歲, 次子潘城公九歲, 三子文貞公八歲, 四子吾七世祖都憲公五歲, 季子都正公三歲, 啼號滿室. 洪夫人左提右挈, 間關北歸. 吾在嶺邑, 屢拜先生之墓, 獨立在萬疊空山, 追念當日情事, 每思之欲哭, 患難貧窮, 一至於此. 及夫五子登朝, 皆爲名公卿賢大夫, 而贊成公屢典郡邑, 往往不得挈家, 文貞公方食卿祿, 一半分獻邱嫂. 每公退, 不脫朝衣, 往問何有何無, 躬發甁甔而視之, 有空者, 辦而充之. 然文貞公冰蘖淸操, 畏服一世, 其食貧, 固自如也. 潘城公貴爲國舅, 而一室蕭然. 大婚時, 中外助資, 故事也, 獨不受一物, 儉以成禮. 而吾先祖都憲公, 時方有新進雅望, 乃自以地近戚畹, 謙約彌甚, 杜門掃跡, 唯以書史花竹自娛, 以此平生, ..
1. 선조 박상충과 박은의 청렴결백한 예화 嘗詔不肖輩曰: “爾曹, 他日雖得祿食, 毋望家計之足也! 吾家傳世淸貧, 淸貧卽本分耳.” 因歷擧家傳故事曰: “吾先祖潘南先生, 旣以斥元尊明, 爲羣兇所阸, 卒於靑郊驛. 未能返櫬, 而葬于其地, 卽國東門外耳. 其貧無以爲力, 可知也. 平度公自言: ‘孤貧且疾, 志氣猶存.’ 及際會風雲, 久秉匀軸, 猶不免脫粟飯, 幾乎狼狽. 公家在駱山下. 一日, 太宗倉卒臨門, 怒公出迎之遲也. 公曰: ‘臣適得粟飯, 恐妨奏對, 水漱然後敢出也.’ 上命取而視之, 愈怒曰: ‘無亦公孫布被耶? 安有大臣而飯荒粟者?’ 左右言: ‘大臣之宗族親友, 待而擧火者甚衆, 祿米入室, 一夕散盡.’ 上憮然曰: ‘予之過也! 予爲國君, 使布衣故人, 不厭麤糲, 予不及卿之賢, 遠矣!’ 卽席賜興仁門外鼓巖田十結. 해석 嘗詔不肖輩曰: 일찍이 ..
47-2. 사라져버린 어머니를 애도하며 지은 시 先妣喪, 有悼亡詩二十絕句, 失稿不得承見, 嗚呼痛惜! 해석 先妣喪, 有悼亡詩二十絕句,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아버지께서 도망시 20 절구를 지으셨지만 失稿不得承見, 嗚呼痛惜! 원고를 잃어버려 받들어 볼 수 없으니, 아! 애통하고 서글프구나! 인용 목차
47-1. 두 편의 애도시와 이덕무의 비평 七月遭伯父喪, 窆于燕巖屋後子坐之兆. 戊戌伯母恭人李氏之喪, 先窆于此, 今祔焉. 先君後入燕峽也, 嘗臨流而坐, 悲摧不自勝, 有詩自悼云: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上.” 李懋官讀而揮涕曰: “情到語, 令人涙無從, 始得謂眞切. 吾於公詩, 讀而垂涙者再. 其舟送姉氏喪行云: ‘去者丁寧留後期, 猶令送者淚沾衣. 扁舟一去何時返, 送者徒然岸上歸’ 眼水自不禁潸然.” 해석 七月遭伯父喪, 窆于燕巖屋後子坐之兆. 7월에 큰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연암협 집 뒤 자좌의 자리에 하관했다. 戊戌伯母恭人李氏之喪, 先窆于此, 무술(1778)년 큰 어머니 공인 이씨께서 돌아가셔서 먼저 이곳에 하관했는데 今祔焉. 이제 합장한 것이다. 先君後入燕峽也, 嘗臨流而坐, 선군께서 ..
46. 아내와의 일화, 그리고 어려운 살림을 책임 진 형수님 丁未正月初五日甲戌, 遭先妣淑人全州李氏喪, 遺安處士諱輔天女. 先妣與先君同年生, 自幼薰陶遺安公敎訓, 已有女士行, 十六歸先君. 時章簡公, 位躋亞卿, 而淸貧如布衣時. 家舍狹窄, 無所容庇, 故少時多在遺安翁側. 中年以來, 食貧喫苦, 流離遷徙, 殆不堪其憂, 而未嘗皺眉, 如固窮讀書之君子也. 及先君筮仕未半歲, 而先妣下世焉. 嗚呼慟哉! 先君嘗言: “吾少時, 嘗有用餘錢二千, 念淑人衣具缺用, 齎衣襆以遺之. 淑人言: ‘伯嫂中饋常艱乏, 何乃以此入私室乎?’ 吾時甚慚其言, 至今不能忘也.” 伯母性度賢淑, 養育先君. 先妣友愛篤至. 而久經貧困, 晚來病在痰火, 言語之間, 或有不能忍煩者. 先妣輒溫顏左右, 默以待之, 得降辭色然後, 始歸私次執業. 及伯母卒而無育, 吾先兄年甫十許歲, 當入..
20. 형과 형수를 부모처럼 모시다 王考喪後, 先君事伯兄及嫂氏如父母. 親戚知友間, 多擧溫公之事伯康以況之. 嫂氏李恭人, 飽經貧寒, 鞠瘁已甚, 有時躁鬱不能遣. 先君一以和顏好語慰藉之. 每有所得, 雖甚微細, 必不入私室, 敬納於嫂氏. 해석 王考喪後, 先君事伯兄及嫂氏如父母.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선군은 큰 형과 형수 섬기기를 부모 같이 했다. 親戚知友間, 多擧溫公之事伯康以況之. 친척들과 친구들은 많이들 사마온공이 백강을 섬긴 것을 들어 비유했다. 嫂氏李恭人, 飽經貧寒, 형수인 이공인은 실컷 가난함과 추위를 경험하여 鞠瘁已甚, 有時躁鬱不能遣. 몸이 야윈 게 너무 심하였고 이따금 조울증을 풀어낼 수 없었다. 先君一以和顏好語慰藉之. 선군께선 한결같이 온화한 표정과 좋은 말로 형수를 위로해드렸다. 每有所得, 雖甚微細,..
39. 홍대용과의 우정 癸卯哭洪湛軒. 先君中年交遊益鮮, 惟湛軒公終始無替, 有物外許心之契. 嘗於燕峽, 答湛軒書曰: “平生交遊, 不爲不廣, 挈德量地, 皆許以友. 然其所與者, 不無馳名涉世之嫌, 所見者, 惟名勢利而已. 今僕自逃於蓬藋之間, 山高水深, 安用名爲? 古人所謂: ‘動輒得謗, 名亦隨之’者, 殆亦虛語. 纔得寸名, 已招尺謗, 好名者老當自知. 每中夜自檢, 齒出酸㳄, 名實之際, 自削之不暇, 况復近之耶? 勢與利, 亦嘗涉此塗. 盖人皆思取諸人而有諸己, 未嘗見損諸己而益於人. 名兮本虛, 人不費價, 或易以相與, 至於實利實勢, 豈肯推以與人? 徒自近油, 點衣而已. 旣去此三友, 始乃明目求見, 所謂友者, 盖無一人焉. 俛仰今古, 安得不鬱鬱於心耶? 入山以來, 亦絕此念. 每念德操趣黍, 佳趣悠然, 沮ㆍ溺耦耕, 眞樂依依, 登山臨水, 未嘗不..
30. 권력자 홍국영의 비위를 거슬러 연암으로 피하다 戊戌避世挈家, 入燕巖峽. 兪相公彥鎬, 於先君, 知照最深. 每有事難處, 輒就咨於先君. 以先君言議峻激, 多觸忤權貴, 深戒之. 一日朝退, 忽憂愁不樂, 夜訪先君, 握手歎曰: “君何大忤洪國榮也? 啣之深毒, 禍不可測. 彼之欲修隙, 久矣, 特以非朝端人, 故姑緩之. 今睚眦幾盡, 次及君矣. 每語到君邊, 眉睫甚惡, 必不免矣. 爲之柰何? 可急離城闉.” 先君自念: ‘平日言議徑直, 名譽太盛, 所以招禍.’ 遂有斂影息跡之意. 於是挈家入燕巖峽, 結數椽艸屋而居. 兪公乃求外, 得居留松京, 卽日簡騶徒入峽, 訪先君曰: “溪山大佳, 然白石不可煮. 此去松京一舍耳, 城府中有親知可爲之周旋者否? 近郭亦多精舍可僦, 盍謀之? 我在此, 日得與源, 源亦固喜也.” 時松京人梁浩孟ㆍ崔鎭觀, 慨然有氣義, 聞先..
28. 芝溪公祭之以文曰: “維歲月日, 婦弟完山李在誠, 謹操文, 哭訣于燕岩朴公之靈曰: 嗚呼哀哉! 人固有言, 文章有定品, 人物有定評. 苟無眞知, 曷惟求定? 如彼法寶, 宏麗瓌宕, 心目所罕, 蓋難名狀. 龍文之鼎, 不便鎗鐺; 琱玉之觴, 不適瓠★康+瓦. 赤刀弘璧, 不列市坊; 天書雲篆, 不充篋箱. 神鏡炤妖, 靈珠攝忘, 續弦有膠, 還魂有香. 駭聞刱覩, 詭奇不常, 不見所施, 以爲無當. 嗚呼我公! 名一何盛, 謗一何競? 噪名者, 未必得其情; 吠謗者, 未必見其形. 嗚呼我公! 學不苟奇, 文不苟新, 切事故奇, 造境故新. 家常茶飯, 皆爲至文, 嬉笑怒罵, 亦見天眞. 流水紆遠, 烟瀾泫沄, 巖峀疊重, 乃興霞雲, 自然變態, 非故駭人. 管商功實, 學者羞稱, 賈陸詞華, 文苑不登, 敢問所安, 竊比於我, 何才之高, 何志之下. 病世爲文, 痴矜自古..
16-2. 연암이 지은 총석정시를 보고 놀란 홍상한 先君於金剛之遊, 有「叢石亭觀日出」詩一篇. 洪尚書象漢, 從子舍見之驚曰: “今世能有此筆力乎? 是不可空讀也.” 以湖筆大小共二百枝, 送門下客致之, 寄意鄭重焉. 해석 先君於金剛之遊, 有「叢石亭觀日出」詩一篇. 선군께서 금강산을 유람할 적에 「총석정에서 일출을 보며」라는 시 한 편을 지으셨다. 洪尚書象漢, 從子舍見之驚曰: 상서 홍상한이 아들 집에서 그 시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今世能有此筆力乎? 是不可空讀也.” “지금 세상에도 이러한 필력의 작품이 있는가. 이 시는 헛되이 읽을 수 없다.” 以湖筆大小共二百枝, 送門下客致之, 호주부에서 나는 크고 작은 붓 모두 200개를 문하의 객에게 보내 치하하게 했으니 寄意鄭重焉. 뜻의 정중함을 표시한 것이다. 인용 목차
16-1. 어렵게 금강산에 가다 乙酉秋, 東遊金剛. 時兪公彦鎬ㆍ申公光蘊, 方聯鑣入山, 懇先君偕行. 先君爲親在, 不敢自擅遠遊, 往謝且別而歸. 王考問: “汝何不共往? 名山有緣, 年少一遊, 好矣!” 顧無盤纏可帶. 時金公履中, 適至聞之, 歸撤買驢錢一萬以送曰: “此可以遊乎?” 顧無僮指可俱. 乃使小婢, 呼於巷中曰: “有能從吾家小郞, 襆被擔笈, 入金剛山者乎?” 應募者數人. 乃曉發, 抵樓院遇兪ㆍ申二公, 皆驚喜過素約焉. 遍踏表裏諸勝, 題名於萬瀑洞中而歸. 三日浦ㆍ四仙亭, 又有聯句縣板. 해석 乙酉秋, 東遊金剛. 을유(1756, 영조 41년으로 연암 29세)년 가을에 동쪽으로 금강산을 유람하셨다. 時兪公彦鎬ㆍ申公光蘊, 方聯鑣入山, 그때 유언호와 신광온이 금방 말을 나란히 달려 산에 들어가려 하며 懇先君偕行. 선군께 함께 가길..
6. 연암의 성향을 걱정한 장인 이보천 年十六冠, 就館於處士遺安齋李公之門. 處士謹嚴淸高, 以經禮律己. 其弟學士公亮天, 酷嗜書史, 文章甚高. 先君從處士受『孟子』, 從學士受『太史公書』, 已得其立言大致. 嘗倣『項羽本紀』, 作「李忠武傳」, 學士大加歎賞, 以爲有班ㆍ馬地步. 先君自弱冠時, 志氣高厲, 不拘拘於繩墨, 往往詼諧游戱, 而處士特愛重之, 誨責規切, 以古人事業期之. 嘗語學士曰: “某也, 見其才氣, 大非凡類, 必爲異日偉人. 但疾惡太甚, 英氣太露, 是可憂也.” 先君於處士, 平生服膺最深. 해석 年十六冠, 就館於處士遺安齋李公之門. 나이 16살에 관례를 하셨고 처사 유안재 이보천 공의 집안에 장가드셨다. 處士謹嚴淸高, 以經禮律己. 처사는 근엄하고 청렴하고 고결하여 일상적인 예법으로 자기를 구속하였다. 其弟學士公亮天, 酷..
비슷한 것은 가짜다 목차 정민 서문: 독연암필서(讀燕放筆序) 1. 이미지는 살아 있다, 코끼리의 기호학에코와 연암(象記)코끼리를 두 번 봤던 추억코끼리의 코를 찾는 사람들하늘이 만든 건 없다(『周易』 「屯卦」)코끼리에게 장난질을 한 하늘절대적 법칙은 없다 2. 까마귀의 날갯빛달사와 속인(菱洋詩集序)하나의 꼴 속에 깃든 것겉모습에만 현혹되는 사람들(張潮 - 幽夢影)달사는 적고 속인만 많다(「亡羊錄」) 3. 중간은 어디인가?바른 견식은 어디서 나오나?(蜋丸集序)이가 사는 곳짝짝이 신발여의주와 말똥중간에 처하겠다(『莊子』 「山木」 1)글의 생명은 진정성에(孔雀館文稿 自序)코골이를 듣거든 알려주시라 4. 눈 뜬 장님같은 소리도 달리 들린다(一夜九渡河記)눈에 현혹되지 말라보이지 않는 물소리가 두렵네눈과 귀에 ..
5. 시간에 따라 변하는 내 모습과 같은 연암의 글들 이제 전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연암 뒷 세대의 고문가인 홍길주洪吉周(1786-1841)가 『연암집』을 읽고 느낀 소감을 피력한 글 한편을 읽어 보기로 하자. 원제목은 「독연암집讀燕巖集」이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상투를 짜고, 이마에 건巾을 앉히고는 거울을 가져다가 비춰보아 그 기울거나 잘못된 것을 단정히 하는 것은 사람마다 꼭 같이 그렇게 하는 바이다. 내가 성인이 되어 건을 쓸 때, 눈썹 위로 손가락 두 개를 얹어, 이것으로 가늠하매 거울에 비춰 볼 필요가 없었다. 이로부터 혹 열흘이나 한달을 거울을 보지 않았으므로, 젊었을 때 내 얼굴은 이제 이미 잊고 말았다. 晨鼂起盥頮, 施髮織虎, 坐巾于額, 取鏡以炤, 端其欹邪, 人人之所同然. 余..
4. 미묘한 감정을 글과 시로 풀어내는 마술사 연암의 처남이자 벗이었던 이재성李在誠은 이 묘지명을 읽고 다음과 같은 평문을 남겼다. 마음의 정리에 따르는 것이야 말로 지극한 예라 할 것이요, 의경을 묘사함이 참 문장이 된다. 글에 어찌 정해진 법식이 있으랴! 이 작품은 옛 사람의 글로 읽으면 마땅히 다른 말이 없을 것이나, 지금 사람의 글로 읽는다면 의심이 없을 수 없으리라. 원컨대 보자기에 싸서 비밀로 간직할진저. 緣情爲至禮, 寫境爲眞文. 文何嘗有定法哉? 此篇以古人之文讀之, 則當無異辭, 而以今人之文讀之故, 不能無疑, 願秘之巾衍. 장의葬儀 절차를 성대히 함이 지극한 예가 아니다. 망자를 떠나보내는 곡진한 마음이 담길 때 그것이 지극한 예가 된다. 있지도 않았던 일을 만들어 적고, 상투적 치레로 가득한 글..
3. 묘지명의 관습을 깨어 생명력과 감동을 얻다 필자는 이 글을 강독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자위가 촉촉해 짐을 느끼곤 한다. 지난 번 강의에서는 연신 눈물을 훔치다 못해 흐느끼는 한 학생 때문에 강의실 전체가 우울해지고 말았다. 학생들에게는 반드시 감상문을 요구하였다. 다음은 그 중의 몇 대목을 추린 것이다. “오히려 절제된 문장에 누이를 잃은 슬픔이 절절히 배어있는 듯하다. 몇 백년을 뛰어넘어 글로써 지금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가히 대단한 문장가라 아니할 수 없다.” “무능한 매형에 대한 원망, 어린 조카들에 대한 연민,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이제는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음을 깨닫는 아쉬움, 이런 감정들이 너무도 진하게 문장 전체에 녹아들어 있어 누님을 애도하는 박지원의 마음을 더욱 절절하게..
2. 누이 시집가던 날의 추억과 아련히 겹치는 현재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잖을 빼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으로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오리ㆍ금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내게 뇌물로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었다. 지금에 스물 여덟 해 전의 일이다. 嗟乎! 姊氏新嫁曉粧, 如昨日. 余時方八歲. 嬌臥馬𩥇, 效婿語, 口吃鄭重, 姊氏羞, 墮梳觸額. 余怒啼, 以墨和粉, 以唾漫鏡. 姊氏出玉鴨金蜂, 賂我止啼. 至今二十八年矣. 그런데도 연암은 그 비통함을 말하는 대신, 전혀 엉뚱하게도 누..
1. 16살에 시집간 누이가 고생만 하다 43살에 죽다 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 여섯에 덕수德水 이택모李宅模 백규伯揆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이 있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 셋이었다. 지아비의 선산이 아곡鵝谷인지라, 장차 서향의 언덕에 장사 지내려 한다. 孺人諱某, 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之曰 : 孺人十六歸德水李宅模伯揆,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夫之先山曰鵝谷, 將葬于庚坐之兆. 죽은 누님을 그리며 지은 묘지명이다. 번역만으로는 원문의 곡진한 느낌을 십분 전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애잔하고 가슴 뭉클한 한편의 명문이다. 연암과 죽은 누님과는 여덟 살의 터울이 있었..
5. 글이 써지지 않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다 하루는 비가 오는데 마루를 배회하시다가 갑자기 쌍륙을 끌어당겨 왼손 오른손으로 주사위를 던져 갑ㆍ을 양편으로 삼아 대국을 하셨다. 그때 손님이 곁에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놀이를 하셨다. 이윽고 웃으며 일어나셔서 붓을 당겨 남의 편지에 답장을 쓰시기를, “사흘 주야로 비가 내려 사랑스러운 한창 핀 살구꽃이 녹아서 붉은 진흙으로 되었습니다. 긴긴 날 애를 태우며 앉아서 혼자 쌍륙을 가지고 논답니다. 오른손은 갑이 되고 왼손은 을이 되지요. ‘다섯이야!’ ‘여섯이야!’ 부르짖다 보니 오히려 상대편과 나라는 사이가 생겨나서, 승부에 마음이 쓰여 적수가 뒤집어지더군요. 나는 저를 모르겠답니다. 꼭같은 내 양손에 대해서도 사사롭게 여기는 바가 있는 것일까요? 저 ..
4. 가짜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진짜로 살아가는 법 “여보게, 연암! 자네 한 번 생각해 보게. 무엇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던가? 『시경』에 실려 있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이야기야 무에 대수로울 게 있겠나? 그러나 그 한편 한편의 행간에 담긴 마음을 읽을 때, 내 마음에 문득 느껴 감발感發되는 것이 있고, 저래서는 안 되지 하며 징창懲創되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그저 『시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고, 그 많은 주석을 줄줄 꿴다고 해서 『시경』을 제대로 읽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보네. 그 마음을 읽어야지. 그것이 내 삶과 관련지어질 수 있어야지. 그저 지식으로만 읽는 『시경』에서 어찌 ‘사무사思無邪’의 보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단지 이 물건이 얼마나 오래되었고, 그래서 ..
3. 골동품 감식안은 완물상지가 아니다 봄 가을 한가한 날에는 마당에 물을 뿌려 쓸고는 향을 살라놓고 차를 끓여 감상하였으나, 늘 집이 가난하여 수장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또 세속에서 이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 댈까 염려하여 답답해하며 내게 말하였다. “나를 완물상지玩物喪志로 비웃는 자들이야 어찌 참으로 나를 아는 것이겠는가? 대저 감상이란 것은 『시경』의 가르침일세. 곡부曲阜의 신발을 보고서 어찌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 자가 있겠으며, 점대漸臺의 북두성을 보고서 어찌 경계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내가 이에 그를 위로하여 말했다. “감상이라는 것은 구품중정九品中正, 즉 품계 매김을 바르고 공정하게 하는 학문일세. 옛날에 허소許劭가 착하고 간특함을 판별함이 몹시 분명하였다고 하나, 당시 세상에서 능..
2. 감식안을 가진 자에겐 才思가 필요하다 신라의 선비는 당나라로 가서 국학에 입학하였고, 고려 사람은 원나라에 유학하여 제과制科에 급제하였으니, 안목을 열고 흉금을 틔울 수가 있었다. 그 감상의 배움에 있어서도 대개 또한 당시 세상에서 환하게 빛났었다. 조선 이래로 3,4백년 동안 풍속이 날로 비루해져서 비록 해마다 연경과 교통한다고는 해도 썩어버린 한약재나 거칠고 성근 비단 따위뿐이다. 하우夏虞ㆍ은주殷周 적의 고기古器나 종요鍾繇ㆍ왕희지王羲之ㆍ고개지顧愷之ㆍ오도자吳道子의 진적이 어찌 일찍이 단 한 번이라도 압록강을 건너 왔겠는가? 新羅之士, 朝唐而入國學; 高麗之人, 遊元而登制科, 能拓眼而開胸. 其於鑑賞之學, 蓋亦彬彬於當世矣. 國朝以來, 三四百年, 俗益鄙野, 雖歲通于燕, 而乃腐敗之藥料, 麤疏之絲絹耳. 虞夏..
1. 좋은 골동품도 몰라보는 세대 옛날에 고기古器를 팔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팔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 바탕은 딱딱한 것이 돌이었는데, 술잔으로나마 쓰려 해도 밖은 낮고 안이 말려있는데다, 기름 때가 그 빛을 가리고 있었다. 나라 안을 두루 다녀 보아도 거들떠 보는 자가 있지 않자, 다시금 부귀한 집을 돌았지만 값은 갈수록 더 떨어져 수백전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는 그것을 가지고 서여오徐汝五에게 보여준 사람이 있었다. 여오가, “이것은 붓씻개이다. 돌은 복주福州 수산壽山의 오화석갱五花石坑에서 나온 것으로 옥 다음으로 쳐주니 민옥珉玉과 같은 것이다” 하고는 값의 고하를 묻지 않고 그 자리에서 8천을 주었다. 그 때를 벗겨내자 앞서 딱딱하던 것은 바로 돌의 무늬결이었고, 쑥색을 띤 초록빛이었다. 형상..
7. 한 인물에 대한 극단적 평가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충문공忠文公은 연암의 문장을 몹시 싫어 하였다. 일찍이 내각에 있을 때, 풍석楓石과 더불어 의론이 맞지 않자, 풍고가 불끈하여 말하기를, “박 아무개는 『맹자』 한 장을 읽게 하면 반드시 구절도 떼지 못할걸세.” 하였다. 그러자 풍석 또한 기운을 돋워 대답하기를, “박 어른은 반드시 『맹자』 한 장을 지을 수도 있을겝니다.” 하였다. 풍고가 “그대가 문장을 모르는 것이 이 지경이냐고 말하지는 않겠네. 내가 있는 동안에 그대는 문원文苑의 관직은 바라지도 말게.” 하자, 풍석은 “내 진실로 문원의 직책은 바라지도 않을 뿐이요.” 하였다. 이때 정승을 지낸 심두실沈斗室 공이 호남지방에 있었는데, 태학사 이극원李屐園이 편지를 보내 두 사람이 논쟁한 일을 고..
6. 한 끼 때우려던 바람이 벼락에 사라지다 풍석楓石 서유구徐有矩 봉조하奉朝賀가 연암의 문장을 몹시 좋아 하였다. 일찍이 스스로 말하기를, 그 젊을 적에 자주 더불어 왕래하였는데 글을 지으면 반드시 연암에게 보여 그 허가함을 얻은 뒤에야 썼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이 어른이 말솜씨가 뛰어나 이따금 글보다도 나았지. 한 번은 내가 가서 여쭈었네. ‘공께서 자꾸 남들의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을 받는 것은 무슨 까닭이라도 있나요?’ 연암은 웃으며 말하였지. ‘자네가 그걸 알고 싶은가? 내가 일찍이 여름 장마 때 여러 날을 먹지를 못했었네. 하루는 비가 조금 그치길래 베개를 고이고 하늘가의 무지개와 노을을 보고 있었겠지. 붉은 빛이 비치며 쏟아지는데, 희미하게 번갯불이 그 가운데 있더군. 배가 몹시 고프다..
5. 기백이 시들어 뜻마저 재처럼 식다 이때 내가 과연 사흘 아침을 굶고 있었다. 행랑채의 아랫것이 남을 위해 지붕을 얹어주고 품삯을 받아다가 밤에야 비로소 밥을 지었다. 어린 것이 밥투정을 해 울며 먹으려 들지 않자, 행랑채의 천예賤隸가 화가 나서 밥주발을 엎어 개에게 던져주며 나쁜 말로 나가 뒈지라고 욕을 해댔다. 이때 나는 막 식사를 마치고 곤하여 누웠다가, 장괴애張乖崖가 촉蜀 땅을 다스릴 때 어린아이를 목벤 일을 들어 비유하며 일깨워 주고, 또 “평소에 가르치지 않고 도리어 욕만 하면 자라서 더욱 은공을 저버리게 되네”라고 타일러 주었다. 時余果不食三朝. 廊隸爲人蓋屋, 得雇直, 始夜炊. 小兒妬飯, 啼不肯食, 廊隸怒覆盂與狗, 惡言詈死. 時不侫纔飯, 旣困臥, 爲擧張乖崖守蜀時斬小兒事, 以譬曉之, 且曰:..
4. 연암의 호기로움 새끼 까치가 다리 하나가 부러져 절룩거리는 것이 우스웠다. 밥알을 던져주어 더욱 길이 들자 날마다 찾아와서 서로 친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 놈과 더불어 장난하며 말하기를, “맹상군孟嘗君은 완전히 하나도 없고, 오로지 평원군平原君의 식객만 있네.”라 하였다. 우리나라 시속時俗에 돈을 ‘문’이라 말하므로 맹상군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자다가 깨면 책을 보고, 책을 보다간 또 잠을 잤다. 아무도 깨우는 이가 없고 보니,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쿨쿨 잠자기도 하고, 때로 간혹 글을 지어 뜻을 보이기도 했다. 새로 철현금鐵絃琴을 배워, 지루할 때는 몇 곡조 뜯기도 하였다. 혹 술을 보내주는 벗이라도 있으면 문득 기쁘게 따라 마셨다. 有雛鵲折一脚, 蹣跚可笑. 投飯粒益馴, 日來相親. 遂與之戱曰: “..
3. 연암협에 살던 연암이 서울로 온 이유 이 글을 읽은 뒤 박지원도 여기에 답장하는 글을 지었다. 이 글의 제목은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이다. 읽기에 따라 씁쓸하기도 했을 제자의 글을 받아본 뒤 막상 연암은 머쓱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똑같은 형식으로 답장을 했다. 오늘의 눈에는 무의미한 장난 글로 비치겠으나, 그 글 한 줄 한 줄에 살가운 정이 담겨 있고, 인생을 살아가는 멋이 깃든 줄을 알겠다. 6월 어느 날, 낙서洛瑞 이서구李書九가 밤중에 나를 찾아왔다가 돌아가 기문記文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연암 어른을 찾아가니 어른은 사흘이나 굶고 계셨다. 탕건도 벗고 맨발로 방 창턱에 발을 걸치고 누워 행랑채의 아랫것과 서로 문답하고 계셨다.” 소위 연암燕巖이라는 것은 바로..
2. 켜진 촛불 속 희망과 꺼진 촛불 속 절망 그때 밤은 하마 삼경으로 내려왔다. 우러러 창 밖을 보았다. 하늘빛이 갑자기 열릴 듯 모여들어 은하수가 환해지는가 싶더니만 더욱 멀리로 날리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가 놀라 말하였다. “저건 어찌된 건가요?” 어른께서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자네 그 옆을 좀 살펴보게.” 대개 등촉불이 막 꺼지려하여 불꽃이 더 크게 흔들린 것이었다. 그제서야 좀 전에 보았던 것이 이것과 서로 비치어서 그런 것임을 알았다. 時夜已下三更. 仰見窓外, 天光焂開焂翕, 輕河亙白, 益悠揚不自定. 余驚曰: “彼曷爲而然?” 丈人笑曰: “子試觀其側.” 蓋燭火將滅, 焰動搖益大. 乃知向之所見者, 與此相映徹而然也. 이윽고 밤은 깊어 자정 무렵이 되었다. 창밖으로는 은하수가 길게 꼬리를 늘이며 중천..
1. 사흘을 굶고 머슴과 친해진 연암 윗글은 제자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연암 댁을 방문했던 일을 적은 「하야방연암장인기夏夜訪燕巖丈人記」란 소품 산문이다. 여기에는 연암이 사흘 굶던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가난이 선비의 다반사라지만, 그 높은 뜻에 안쓰런 궁핍이 읽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5월 그믐에 서편 이웃으로부터 걸어 연암 어른 댁을 찾았다. 때마침 희미한 구름은 하늘에 걸렸고, 숲속에 걸린 달은 푸르스름하였다. 종소리가 울렸다. 처음엔 은은하더니 나중엔 둥둥 점차 커지는 것이 마치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 어른이 댁에 계실까 생각하면서 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먼저 그 집 들창을 살펴보았다. 등불이 비치고 있었다. 季夏之弦, 步自西隣, 訪燕巖丈人. 時微雲在天,..
6. 밤거릴 헤매야만 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다시 수표교에 이르러 늘어 앉았자니, 다리 위 달은 바야흐로 서편에 기울어 덩달아 한창 붉고, 별빛은 더욱 흔들려 둥글고 큰 것이 얼굴 위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슬은 무거워 옷과 갓이 죄 젖었다. 흰 구름이 동편에서 일어나 가로로 끄을며 둥실둥실 북쪽으로 떠가자, 성 동편은 짙푸른 빛이 더욱 짙게 보였다. 개구리 소리는 마치도 멍청한 원님에게 어지러운 백성들이 몰려들어 송사하는 것만 같고, 매미 울음은 흡사 공부가 엄한 서당에서 강송講誦하는 날짜가 닥친듯 하며, 닭 울음 소리는 마치 한 선비가 똑바로 서서 간쟁함을 제 임무로 삼는 것만 같았다. 又至水標橋列坐, 橋上月方西, 隨正紅, 星光益搖搖, 圓大當面欲滴. 露重衣笠盡濕. 白雲東起, 橫曳冉冉北去, 城東蒼翠益重..
5. 호백이 같은 친구들아 무관懋官이 술에 취해 ‘호백豪伯’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잠시 후 있는 곳을 잃게 되자, 무관은 구슬프게 동쪽을 향해 서서 마치 친구라도 되는 듯이 ‘호백아!’하고 이름을 부른 것이 세 차례였다.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고 떠들자, 거리의 뭇개들이 어지러이 내달리며 더욱 짖어댔다. 마침내 현현玄玄의 집에 들러 문을 두드려 더욱 마셔 크게 취하고는 운종교를 밟고서 다리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 하였다. 懋官醉而字之曰豪伯. 須臾失其所在, 懋官悵然, 東向立, 字呼豪伯如知舊者三. 衆皆大笑鬨, 街群狗亂走益吠. 遂歷叩玄玄, 益飮大醉, 踏雲從橋, 倚闌干語. 술 취한 이덕무가 ‘호백胡白이’를 ‘호백豪伯이’라 부르며 어둠 속 왔던 곳으로 사라진 호백이를 반복해서 부르는 장면은 그래서 듣기에 더 슬..
4. 취기에 밤거릴 헤매다 만난 호백이 조금 술이 취하자 인하여 운종가雲從街로 나와 달빛을 밟으며 종각鍾閣 아래를 거닐었다. 이때 밤은 이미 삼경하고도 사점을 지났으되 달빛은 더욱 환하였다. 사람 그림자의 길이가 모두 열 길이나 되고 보니, 자기가 돌아보아도 흠칫하여 무서워 할 만하였다. 거리 위에선 뭇개들이 어지러이 짖어대고 있었다. 오견獒犬이 동쪽으로부터 왔는데 흰빛에다 비쩍 말라있었다. 여럿이 둘러싸 쓰다듬자, 좋아서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숙이고서 한참을 서 있었다. 少醉, 因出雲從衢, 步月鍾閣下. 時夜鼓已下三更四點, 月益明. 人影長皆十丈, 自顧凜然可怖. 街上群狗亂嘷. 有獒東來, 白色而瘦. 衆環而撫之, 喜搖其尾, 俛首久立. 목마르던 끝에 급하게 마셔댄 술에 취기가 조금 오르자, 그들은 달빛을 밟으며..
3. 연암을 애타게 기다리던 친구들 7월 13일 밤, 성언聖彦 박제도朴齊道가 성위聖緯 이희경李喜經과, 아우 성흠聖欽 이희명李喜明, 약허若虛 원유진元有鎭, 여생과 정생, 그리고 동자 견룡이와 더불어 무관 이덕무에게 들러 그를 데리고 왔다. 그때 마침 참판 원덕元德 서유린徐有麟이 먼저 와서 자리에 있었다. 성언은 책상다리를 한채 팔꿈치를 기대고 앉아, 자주 밤이 깊었는가를 보면서 입으로는 가겠노라고 말하면서도 부러 오래 앉아 있었다. 좌우를 돌아봐도 선뜻 먼저 일어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원덕도 또한 애초에 갈 뜻이 없는지라, 성언은 마침내 여러 사람을 이끌고 함께 가버리고 말았다. 孟秋十三日夜, 朴聖彦與李聖緯弟聖欽元若虛呂生鄭生童子見龍, 歷携李懋官至. 時徐參判元德, 先至在座. 聖彦盤足橫肱坐, 數視夜, 口言辭去..
2. 거미줄 이야기에서 거문고 이야기로 매탕梅宕 이덕무李德懋가 한번은 처마 사이에서 늙은 거미가 거미줄 치는 것을 보다가 기뻐하며 내게 말하였다. “묘하구나! 때로 머뭇머뭇 할 때는 생각에 잠긴 것만 같고, 잽싸게 빨리 움직일 때는 득의함이 있는 듯하다. 발뒤꿈치로 질끈 밟아 보리 모종하는 것도 같고, 거문고 줄을 고르는 손가락 같기도 하구나.” 이제 담헌과 풍무가 서로 화답함을 보며 나도 거미가 거미줄 치던 느낌을 얻게 되었다. 梅宕嘗見簷間, 老蛛布網, 喜而謂余曰: “妙哉! 有時遲疑, 若其思也; 有時揮霍, 若有得也; 如蒔麥之踵, 如按琴之指.” 今湛軒與風舞相和也, 吾得老蛛之解矣. 그리고는 둘째 단락에 가서 이야기가 돌연 이덕무의 늙은 거미 이야기로 건너뛴다. 어떤 때 거미는 꼼짝도 않고서 마치 무슨 망설..
1. 무더운 여름밤 연주하고 춤추던 친구들 이번에 읽을 두 편 글은 연암과 그 벗들이 격의 없이 만나 예술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들이다. 암울한 시대를 건너기가 답답해 가슴 터지기야 그들이 우리보다 덜하지 않았겠지만, 이런 풍류와 여유가 있었기에 그들은 발광發狂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윗글의 제목은 「하야연기夏夜讌記」이다. 22일, 국옹麯翁과 함께 걸어서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에게 갔다. 풍무風舞 김억金檍은 밤에야 도착하였다. 담헌이 슬瑟을 타자, 풍무는 금琴으로 화답하고, 국옹麯翁은 갓을 벗고 노래한다. 밤 깊어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더운 기운이 잠시 가시고, 현絃의 소리는 더욱 맑아진다. 좌우에 있는 사람은 모두 고요히 묵묵하다. 마치 내단內丹 수련 하는 이가 내관장신內觀臟神..
87. 혼자서 쌍륙놀이를 하다 先君於博奕諸器, 皆知其法, 特未嘗接手, 不肖惟見與人對棊者再. 一日雨中, 徘徊軒堂, 忽引雙陸, 以左右手擲骰, 爲甲乙對局. 時非無客子在傍, 而獨自撫弄. 已而, 笑而起, 援筆答人書牘曰: “雨雨三晝, 可憐繁杏, 銷作紅泥. 永日悄坐, 獨弄雙陸, 右手爲甲, 左手爲乙, 呼五呼六之際, 猶有物我之間, 勝負關心, 翻成對頭. 吾未知, 吾於吾兩手, 亦有所私歟. 彼兩手者, 旣分彼此, 則可以謂物, 而吾於彼, 亦可謂造物, 猶不勝私, 扶抑如此. 昨日之雨, 杏雖衰落, 桃則夭好. 吾又未知, 彼造物者, 扶桃抑杏, 亦有所私者歟.” 客笑曰: “我固知先生意, 不在雙陸, 乃爲拈出一段文思.” 해석 先君於博奕諸器, 皆知其法, 선군께서는 장기와 바둑의 여러 놀이 기구에 대해 모두 방법을 아셨지만 特未嘗接手, 다만 일찍이..
5. 친구의 궁핍함을 알면서도 마음엔 갈등이 생기네 청나라 김성탄金聖嘆(1608-1661)의 「쾌설快說」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가난한 선비가 돈을 꾸러 와서는 좀체 입을 열지 못하고서 묻는 말에 예예 대꾸하며 딴 소리만 한다. 내가 가만히 그 난처한 뜻을 헤아리고는 사람 없는 곳으로 데려가 얼마나 필요한지 묻고 급히 내실로 들어가 필요하다는대로 주었다. 그런 뒤에 그 일이 반드시 지금 당장 속히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인가? 혹 조금 더 머물면서 함께 술이나 마실 수는 없는가? 하고 물었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寒士來借銀, 謂不可啓齒, 于是唯唯, 亦說他事. 我窺見其苦意, 拉向無人處, 問所需多少; 急趨入內, 如數給與. 然後問其必當速歸料理是事耶? 爲尙得少留共飮酒耶? 不亦快哉! 그러자 황균재黃鈞宰..
4. 나의 모든 걸 다 털어놓게 만드는 친구 그런데 기린협으로 떠나가는 백영숙을 글로써 전송한 사람은 연암만이 아니었다. 박제가朴齊家의 문집에서도 「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란 같은 제목의 글과 만날 수 있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우리네 삶에서 우정의 참 의미를 되새기자는데 이 글의 주된 뜻을 두었으므로 좀 길지만 함께 읽어보기로 한다. 천하에서 가장 지극한 우정은 궁할 때의 사귐이라 하고, 벗의 도리에 대한 지극한 말로는 가난을 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아! 청운靑雲의 선비가 혹 굽히어 초가집에 수레타고 찾아오기도 하고, 포의布衣의 선비가 혹 권세가의 붉은 대문에 소매자락을 끌기도 하니, 어이하여 서로 간절히 구하는데도 서로 마음맞기가 이다지 어렵단 말인가? 天下之至友曰窮交, 友道之至言曰論貧. 嗚..
3. 백동수는 참된 야뇌인이구나 한때 그는 버려진 야인野人의 삶과 굶주리는 가난을 자조하며 자신의 당호堂號를 아예 ‘야뇌당野餒堂’이라 짓기도 하였다. 이덕무는 그를 위해 「야뇌당기野餒堂記」를 지어주었는데, 이제 그 일부를 읽어보기로 하자. 야뇌野餒는 누구의 호인가? 내 친구 백영숙의 자호自號이다. 내가 영숙을 보건데는 기위奇偉한 선비인데,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그 낮고 더러운 곳에 처한단 말인가? 나는 이를 알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세속을 벗어나 무리와 어울리지 않는 선비를 보면 반드시 이를 조소하고 비웃어 말하기를, “저 사람은 생김새가 고박古樸하고 의복이 세속을 따르지 않으니 야인野人이로구나. 말이 실질이 있고 행동거지가 시속時俗을 좇지 않으니 뇌인餒人이로다.” 라고 하며 마침내 더불어 어울리지 않..
2. 서얼금고법으로 뜻을 펴지 못한 채 이제 영숙은 기린협에서 살겠다고 한다. 송아지를 지고 들어가 키워서 밭을 갈게 하겠다고 한다. 소금도 된장도 없는지라 산아가위와 돌배로 장을 담그리라고 한다. 그 험하고 가로막혀 궁벽한 품이 연암협보다도 훨씬 심하니, 어찌 견주어 같이 볼 수 있겠는가? 今永叔將居麒麟也, 負犢而入, 長而耕之. 食無鹽豉, 沈樝梨而爲醬, 其險阻僻, 遠於燕巖, 豈可比而同之哉. 한때 그에게도 젊음의 야망에 불타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장한 기개를 품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야망, 그 기개를 다 접어두고 세상을 등져 자취를 감추겠다고 한다. 날더러 이런 궁벽한 곳에서 어찌 살려 하느냐고, 답답하지도 않느냐고 안타까워하던 그가, 나 살던 연암협보다 더 궁벽한 두메 ..
1.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그대를 장하게 여기리 현실에 좌절하고 가난을 못이겨 식솔들을 이끌고 강원도 두메 산골로 들어가는 벗 백영숙白永叔을 전송하며 써준 글이다. 친구를 전송하면서도 글을 써주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예전에는 그랬다. 그의 이름은 백동수白東修(1743-1816)이니 영숙永叔은 그의 자이다. 호는 인재靭齋 또는 야뇌당野餒堂이라 하였고 점재漸齋라고도 했다. 영숙永叔은 장수 집안의 자손이다. 그 선대에 충성으로 나라를 위해 죽은 이가 있으니, 지금까지 사대부들이 이를 슬퍼한다. 영숙은 전서와 예서에 능하고 장고掌故에 밝다. 젊어서 말 타기와 활 쏘기에 뛰어나 무과에 뽑히었다. 비록 벼슬은 시명時命에 매인 바 되었으나,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뜻만은 선조의 공덕을 잇기에 족함이..
68. 백동수와 연암의 인연 白博川東脩, 與先君同庚. 膂力絕倫, 精悍有瞻. 畧事先君執禮, 如褊裨之事主帥, 夷險燥濕, 少無憚勞. 一日從他醉歸, 使酒於前. 先君曰: “君無禮, 可受杖.” 以剪紙板, 打其臀十, 戒其粗率. 白君初以爲戱, 後乃知其誨責也. 自是不復敢被酒入謁曰: “吾嘗被燕岩公責矣!” 해석 白博川東脩, 與先君同庚. 박천군수를 지낸 백동수는 선군과 동갑이다. 膂力絕倫, 精悍有瞻. 팔 힘이 매우 뛰어났고 정신은 예리하고도 담력이 있었다. 畧事先君執禮, 如褊裨之事主帥, 대략 선군을 섬김에 예를 갖췄으니 마치 부하장수가 장군을 섬기는 듯하여 夷險燥濕, 少無憚勞. 평탄하거나 험하거나 마르거나 습할 때 어느 때라도 조금도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았다. 一日從他醉歸, 使酒於前. 하루는 다른 데서 고주망태로 취해 돌아와..
8. 한 명의 나를 알아주는 지기를 만난다면 앞서 세상을 떴다던 이덕무는 일찍이 한 사람의 지기, 단 한 사람의 ‘제2의 나’를 그려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을 남겼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을 이룬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 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若得一知己, 我當十年種桑, 一年飼蠶,..
7. 백아가 종자기를 잃고 나서의 심정처럼 종자기가 죽으매, 백아가 석 자의 마른 거문고를 끌어안고 장차 누구를 향해 연주하며 장차 누구더러 들으라 했겠는가? 그 기세가 부득불 찼던 칼을 뽑아들고 단칼에 다섯줄을 끊어 버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 소리가 투두둑 하더니, 급기야 자르고, 끊고, 집어던지고, 부수고, 깨뜨리고, 짓밟고, 죄다 아궁이에 쓸어 넣어 단번에 그것을 불살라버린 후에야 겨우 성에 찼으리라. 그리고는 스스로 제 자신에게 물었을 테지. “너는 통쾌하냐?” “나는 통쾌하다.” “너는 울고 싶지?” “그래, 울고 싶다.” 소리는 천지를 가득 메워 마치 금석金石이 울리는 것 같고, 눈물은 솟아나 앞섶에 뚝뚝 떨어져 옥구슬이 구르는 것만 같았겠지. 눈물을 떨구다가 눈을 들어 보면 텅 빈 산엔..
6. 지음을 잃고 보니 나는 천하의 궁한 백성이네 아아! 슬프다. 나는 일찍이 벗 잃은 슬픔이 아내 잃은 아픔보다 심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내를 잃은 자는 오히려 두 번, 세 번 장가들어 아내의 성씨를 몇 가지로 하더라도 안 될 바가 없다. 이는 마치 옷이 터지고 찢어지면 깁거나 꿰매고, 그릇과 세간이 깨지거나 부서지면 새것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 혹 뒤에 얻은 아내가 앞서의 아내보다 나은 경우도 있고, 혹 나는 비록 늙었어도 저는 어려, 그 편안한 즐거움은 새 사람과 옛 사람 사이의 차이가 없다. 嗚呼痛哉! 吾嘗論, 絶絃之悲, 甚於叩盆. 叩盆者, 猶得再娶三娶, 卜姓數四, 無所不可, 如衣裳之綻裂而補綴, 如器什之破缺而更換. 或後妻勝於前配, 或吾雖皤, 而彼則艾, 其宴爾之樂, 無間於新舊. 박제가가 사랑하던..
5. 친구들아 다들 잘 지내고 있니 「여인與人」, 즉 벗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편지에 나오는 성흠聖欽은 이희명李喜明(1749-?)의 자이고, 중존仲存은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李在誠(1751-1809)이다. 백선伯善은 누구의 자인지 분명치 않다. 성위聖緯는 이희명李喜明의 형인 이희경李喜經(1745-?)이고, 재선在先은 박제가朴齊家(1750-1805), 무관懋官은 이덕무李德懋(1741-1793)를 말한다. 젊은 시절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던 벗들이자 제자들이다. 한참 무더운 중에 그간 두루 편안하신가? 성흠聖欽은 근래 어찌 지내고 있는가? 늘 마음에 걸려 더욱 잊을 수가 없네. 중존仲存과는 이따금 서로 만나 술잔을 나누겠지만, 백선伯善은 청파교靑坡橋를 떠나고 성위聖緯도 운니동雲泥洞에 없다 하니, ..
4. 진정한 벗 찾기의 어려움 봉규씨의 시詩는 훌륭하다. 그 대편大篇은 소호韶頀의 음악을 펴는 듯하고, 단장短章은 옥구슬이 쟁그랑 울리는 것만 같다. 그 음전하고 온아함은 마치 낙수洛水의 놀란 기러기를 보는 것 같고, 드넓고도 소슬함은 마치 동정호에 떨어지는 낙엽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나는 또 알지 못하겠구나. 이를 지은 자가 양자운인지, 아니면 이를 읽는 자가 양자운인지를. 아아! 말은 비록 달라도 글의 법도는 같으니, 다만 그 기뻐 웃고 슬퍼 우는 것은 번역하지 않고도 통한다. 왜 그런가? 정情이란 겉꾸미지 못하고, 소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장차 봉규씨와 더불어 한편으로 후세의 양자운을 기다림을 비웃고, 한편으로는 천고를 벗 삼는다는 말을 조문하련다. 封圭之詩盛矣哉. ..
3. 중국인의 문집을 읽고서 만나고 싶어지다 아아! 내가 『회성원집繪聲園集』을 읽고는, 나도 모르게 심골心骨이 끓어올라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말하였다. “내가 봉규씨封圭氏와 더불어 태어남이 이미 이 세상에 나란하니, 이른바 나이도 서로 같고 도道도 서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홀로 서로 벗하지 않을 수 있으랴? 진실로 장차 벗 삼으려 할진대, 어찌 서로 만나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땅이 서로 떨어짐이 만리라 한들 그 땅을 멀다 하겠는가?” 그런 것이 아니다. 아아, 슬프다! 이미 서로 봄을 얻을 수 없다면 진실로 벗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봉규씨의 신장이 몇 자나 되고 수염이나 눈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알 수 없다면 내가 같은 세상의 사람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리오. 그렇다면 내가 장차..
2. 벗을 찾겠다고 하면서 후대를 기다리다 양자운揚子雲이 당시 세상에서 지기知己를 얻지 못하자, 개연히 천세千歲 뒤의 자운子雲을 기다리고자 하였다. 우리나라의 조보여趙寶汝가 이를 비웃어 말하기를, “내가 나의 『태현경太玄經』을 읽어, 눈으로 이를 보면 눈이 양자운이 되고, 귀를 기울이면 귀가 양자운이 되며,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것이 각각 하나의 양자운이거늘, 어찌 반드시 천세의 멂을 기다린단 말인가?”라 하였다. 揚子雲旣不得當世之知己, 則慨然欲俟千歲之子雲. 吾邦之趙寶汝嗤之曰: “吾讀吾玄, 而目視之, 目爲子雲, 耳聆之, 耳爲子雲, 手舞足蹈, 各一子雲, 何必待千歲之遠哉?”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지을 때, 곁에서 그 어려운 책을 누가 읽겠느냐고 퉁을 주자, ‘나는 천년 뒤의 양자운을 기다릴 뿐일세..
1. 벗을 찾겠다고 하면서 상우천고를 외치다 옛날에 벗을 말하는 자는 벗을 두고 혹 ‘제이오第二吾’라 하기도 하고, ‘주선인周旋人’이라고도 하였다. 이런 까닭에 글자를 만든 자가 ‘우羽’자에서 빌려와 ‘붕朋’자를 만들고, ‘수手’자와 ‘우又’자로 ‘우友’자를 만들었으니,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이 양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古之言朋友者, 或稱第二吾, 或稱周旋人. 是故造字者, 羽借爲朋, 手又爲友. 言若鳥之兩翼, 而人之有兩手也. 벗은 ‘제 2의 나’이다. 나를 위해 온갖 일을 다 나서서 ‘주선해 주는 사람’이다. ‘붕朋’이란 글자는 ‘우羽’자의 모양을 본떴고, ‘우友’자는 ‘수手’자에 ‘우又’자를 포개 놓은 모양이다. 진정한 벗이란 새의 양 날개나, 사람의 두 손과 같이 어느 하나가 없어서..
7. 존재의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어라 이덕무는 일찍이 그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이렇게 적은 바 있다. 진정眞情을 펼쳐냄은 마치 고철古鐵이 못에서 활발히 뛰고, 봄날 죽순이 성난 듯 땅을 내밀고 나오는 것과 같다. 거짓 정을 꾸미는 것은 먹을 반반하고 매끄러운 돌에 바르고, 기름이 맑은 물에 뜬 것과 같다. 칠정 가운데서도 슬픔은 더더욱 곧장 발로되어 속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슬픔이 심하여 곡하기에 이르면 그 지극한 정성을 막을 수가 없다. 이런 까닭에 진정에서 나오는 울음은 뼛속으로 스며들고, 거짓 울음은 터럭 위로 떠다니게 되니, 온갖 일의 참과 거짓을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眞情之發, 如古鐵活躍池, 春筍怒出土; 假情之飾, 如墨塗平滑石, 油泛淸徹水. 七情之中, 哀尤直發難欺者也..
6. 사해동포지만 무엇이 우릴 나누나 중간에 인용된 이덕무의 글은 「서해여언西海旅言」이란 기행문에서 따온 것이다. 전문은 너무 길어 실을 수가 없고, 일부분만 읽어 보기로 한다. 사봉沙峰의 꼭대기에 우뚝 서서 서쪽으로 큰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 뒷 편은 아마득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는데, 용과 악어가 파도를 뿜어 하늘과 맞닿은 곳을 알지 못하겠다. 한 뜨락 가운데다 울타리로 경계를 지어, 울타리 가에서 서로 바라보는 것을 이웃이라 부른다. 이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이편 언덕에 서 있고, 중국 등주登州와 내주萊州의 사람은 저편 언덕에 서 있으니, 서로 바라보아 말을 할 수도 있으되, 하나의 바다가 넘실거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니, 이웃 사람의 얼굴을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귀로 듣지 못하고 눈으..
5. 너른 바다를 보며 하찮은 자신을 깨닫다 한편 연암은 글의 마지막에서 이 밖에 조선 땅에서 한 바탕 울음을 울만한 곳을 두 군데 소개한다. 하나는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볼 때이고, 다른 하나는 황해도 장연長淵 바닷가 금사산金沙山이 그것이다.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를 바라볼 때의 흥취는 역시 요동벌과 마주 선 것 이상의 감격을 부르기에 충분하겠으되, 장연 금사산의 경우는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따로 읽어야 할 한 편의 글이 있다. 매탕梅宕 이덕무李德懋가 필시 미친 병이 난 듯한데 그대는 이를 아는가? 그가 황해도 장연長淵에 있을 적에 일찍이 금사산金沙山에 올랐더라네. 한 바다가 하늘을 치매, 스스로 너무나 미소微小한 것을 깨닫고는 아마득히 근심에 젖어 탄식하며 말했더라지..
4. 울고 싶어라 아이가 태속에 있을 때는 캄캄하고 막힌 데다 에워싸여 답답하다가, 하루아침에 넓은 곳으로 빠져 나와 손과 발을 주욱 펼 수 있고 마음이 시원스레 환하게 되니 어찌 참된 소리로 정을 다해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런 까닭에 마땅히 어린아이를 본받아야만 소리에 거짓으로 짓는 것이 없게 될 것일세.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는 것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고,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사산金沙山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오. 이제 요동벌에 임하매,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일천 이백 리 길에 사방에는 모두 한 점의 산도 없어 하늘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아 해묵은 비와 지금 구름이 다만 창창할 뿐이니 한 바탕 울만한..
3. 한바탕 울만한 곳 사람의 정이란 것이 일찍이 이러한 지극한 경지는 겪어보지 못하고서,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안배하였다네. 그래서 죽어 초상을 치를 때나 비로소 억지로 목청을 쥐어짜 ‘아이고’ 등의 말을 부르짖곤 하지. 그러나 진정으로 칠정이 느끼는 바 지극하고 참된 소리는 참고 눌러 하늘과 땅 사이에 쌓이고 막혀서 감히 펼치지 못하게 되네. 저 가생賈生이란 자는 그 울 곳을 얻지 못해 참고 참다 견디지 못해 갑자기 선실宣室을 향하여 큰 소리로 길게 외치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 괴이히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소.” 人生情會, 未嘗經此極至之處, 而巧排七情, 配哀以哭. 由是死喪之際, 始乃勉强叫喚喉苦等字. 而眞個七情所感, 至聲眞音, 按住忍抑, 蘊鬱於天地之間, 而莫之敢宣也. 彼賈生者, 未得..
2. 슬퍼야만 눈물 나나?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서 말하였다. “좋은 울음터로다. 울만 하구나.” 정진사가 말했다. “이런 하늘과 땅 사이의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갑자기 다시금 울기를 생각함은 어찌된 것이요?” 내가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오. 천고에 영웅은 울기를 잘하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하나, 몇 줄 소리 없는 눈물이 옷 소매로 굴러 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네.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 마치 금석金石에서 나오는 것 같은 울음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네. 사람들은 단지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퍼야 울음이 나오는 줄 알 뿐 칠정이 모두 울게 할 수 있는 줄은 모르거든. 立馬四顧, 不覺擧手加額曰: “好哭場! 可以哭矣.” 鄭進士曰: “遇此天地間大眼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