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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왕정복고
중국이 중화로 컴백할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일부 사대부(士大夫)들은 소중화(小中華)의 정신병을 버리고 실학의 학풍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더 중요한 변화는 조선의 국왕이 비로소 왕정의 의미와 필요성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탕평책으로 당쟁을 잡았다 싶은 순간 영조는 개혁의 고삐를 늦췄고, 왕당파와 친위대를 육성함으로써 왕권을 다잡았다 싶은 순간 정조는 복고로 돌아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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