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달타가 깨달은 것
나는 일찌기 말했다. 붓다는 엉터리로 안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안 사람이다. 무얼 어떻게 알았나? 붓다의 깨달음, 붓다의 얇은 삼법인(三法印)으로도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붓다의 얇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던가? 나는 이 어려운 질문에 또 다시 매우 단순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가 깨달은 것은 연기였다.
나는 근본불교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으로 실존한 X가 있었고, 그 X가 싯달타였으며, 그가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밑에서 명상 끝에 득도하였다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면, 즉 역사적 붓다(the historical Buddha)의 실존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 역사적 붓다의 사유과정을 추론하는 데 있어서 이 ‘연기’라는 한마디처럼 유용한 실마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추론을 정당화하는 것은 『마하박가』를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첫 칸드하카(Khandhaka)의 깨달음의 순간이다【최봉수 옮김, 『마하박가』 Ⅰ, pp 40.】.
어느 때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마을의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계셨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신 세존께서는, 다리를 맺고 앉은 채 7일동안 오로지 한 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다. 그러던 중 밤이 시작될 무렵에 연기(pațiccasamuppāda)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시었다.
At that time the blessed Buddha dwelt at Uruvelā, on the bank of the river Nerañgarā, at the foot of the Bodhi tree (tree of wisdom), just after he had become Sambuddha. And the blessed Buddha sat cross-legged at the foot of the Bodhi tree uninterruptedly during seven days, enjoying the bliss of emancipation.
Then the Blessed One (at the end of these seven days) during the first watch of the night fixed his mind upon the Chain of Causation, in direct and in reverse order.
Sacred Books of the East, Vol. XIII, pp.73~5.
나는 이러한 마하박가의 구절을 읽을 때, 뭉클 내 가슴의 심연을 치고 솟아올라오는 감동, 영롱하게 반짝이는 나의 눈물 맺힌 두 눈동자, 이러한 것들을 고백치 않을 수 없다. 6년간의 치열한 고행(苦行) 끝에 얻은 한 인간의 깨달음! 그 깨달음, 그 앞의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최초의 언사는, 다름아닌 이 연기’라는 한마디였던 것이다. 그것은 삼법인(三法印)도 아니요, 사성제(四聖諦, Four Noble Truth)도 아니요, 삼보도 아니요 진여도 아니요, 해탈(解脫, mokṣa)도 아니요 열반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연기, 이 한마디였던 것이다.
그가 보리수밑에 명상을 통해 얻은 앎, ‘일체를 알았다’고 표현한 그 앎의 내용은 국부적인 하나의 앎이 아니라, 최소한 그의 45년간의 기나긴 설법의 전체내용을 포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붓다가 되었다. 친구들이여! 이제 나를 싯달타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여래요, 세존이요, 아라한이요, 정등각자이다’라고 서슴없이 외쳐대는 한 인간의 절대적 지적 자신감, 그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연기’ 이 한마디로써 그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 연기는 불교의 알파요 오메가다. 연기는 붓다의 처음이요 끝이다. 연기는 두 밀레니엄 이상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끊임없는 지혜를 제공한 샘물이다. 연기는 45년간의 불타의 설법의 모든 구절에 배어있다. 불타의 모든 언어는 결국 연기 이 하나의 깨달음의 다양한 표현일 뿐인 것이다. 연기를 빼놓고는 한 치도 불타를 말할 수 없다. 팔만대장경이 연기, 이 한 글자인 것이다.
▲ 간지스 강변 창공을 훨훨 나르는 새들의 제행도 예외없이 연기 속에 있다.
12연기설이 만든 혼란
그렇다면 과연 이 연기(緣起, pațiccasamuppāda)란 무엇인가? 불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연기하면 곧 12지연기론(十二支緣起論)이니, 12지연기설이니, 12인연이니 하여 12개의 고리를 좌악 늘어놓는 것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① 노사(老死, jarā-maraṇa) → ② 생(生, jāti) → ③ 유(有, bhava) → ④ 취(取, upādāna) → ⑤ 애(愛, taṇhā)→ ⑥ 수(受, vedharā) ⑦ 촉(觸, phassa) → ⑧ 육처(六處, saḷāyatana) → ⑨명색(名色, nāma-rūpa) → ⑩ 식(識, viññāṇa) → ⑪ 행(行, saṅkhāra) → ⑫ 무명(無明, avijjā) 운운…. 그리고 삼세양중(三世兩重)의 인과(因果)니, 태생학설(胎生學說)이니 운운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12지연기론이야말로 근본불교의 요체며, 모든 상이 일어나는 원리요 도리요 이법이다 운운!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을 들으면 당장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지고, 도무지 불교는 알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말아지는 것이다. 연기론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원리적인 실체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이쿠 두야!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붓다의 말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팔리장경 『중니까야』(中尼柯耶) 제28, 「상적유대경」(象跡喩大經)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 있다【『南傳大藏經』 9-340. 그리고 같은 말이 한역장경 「中阿含經」 卷第七, 「象跡喻經」 第十에는 ‘若見緣起, 便見法; 若見法, 便見緣起.’라는 구절로 되어 있다. 「大正」 1-467.】.
연기를 보는 자는 곧 법을 보는 것이요, 법을 보는 자는 곧 연기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말했다【若比丘見緣起爲見法, 正見法爲見我. 『了本生死經』, 見十二因緣, 卽見法. 即是見佛. 『稻芉經』】.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곧 나 부처를 본다.
이러한 말들은 우리에게 연기가 얼마나 부처의 사상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설파해주고 있지만, 이러한 말 때문에 또 연기가 곧 지고한 법, 무상의 원리라는 생각을 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여기서 법(dhamma)이라고 하는 것은 도(道, Tao)와도 같은 지고한 원리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유위ㆍ무위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체의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것이요, 법을 보는 자는 부처를 보는 것이라고 한 말은, 연기 그 자체가 지고의 법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의 방식으로 사물을 볼 줄 알아야만 곧 깨달음에 도달케 된다는 매우 단순한 뜻이다.
12연기를 내가 지금 여기 설파한다 해도, 독자들은 결코 연기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대학교시절 때 ‘12연기설’을 배운 이래,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12연기설을 바르게 이해했다는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 12연기설에 대한 논란은, 해석의 방식이 너무도 다양하고 갈래가 많아 그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왜 노병사(老病死) 다음에 꼭 생(生)이 와야만 하며, 생 다음에 꼭 유(有)가 와야만 하며, 유 다음에 꼭 취(取)가 와야만 하며, 취(取) 다음에 꼭 갈애(渴愛)가 와야만 하는지 그 ‘꼭’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싯달타의 머리 속에서는 그 ‘꼭’이 꼭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도무지 내 머리 속에서는 그것이 꼭이 될 길이 없었다. 그 인과관계가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할 하등의 필연성이 확보되질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올 김용옥은 영원히 싯달타를 이해 못하는 천치 바보로서 이 한많은 생애를 마감하고 말 것인가?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 추계 창상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철학(Philosaphie)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그대들에게 철학하는 것(philosophieren)을 가르질 뿐이다.
나는 불행하게도 불교교설에 관한 한 다음과 같이 나에게 말해주시는 스승님을 만나질 못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12지연기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그대들에게 연기적으로 생각하는 법만을 가르칠 뿐이다.”
▲ 인도에서 인간과 더불어 사는 것은 소뿐만이 아니다. 돼지고 개고 염소고 모든 가축이 문명 속에서 방목된 채로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멧돼지를 몰고 다니는 목동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연기론이 아닌 연기적 사유로
감히 일갈하건대 12연기설은 개똥이다. 아니 소똥이다. 아니 개똥도 소똥도 아니다.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장자(莊子)의 말대로 싯달타의 생각 그 자체가 아니요, 싯달타의 생각의 족적이요 조백(糟魄)일 뿐이다. 그것은 고인의 똥찌꺼기 불과한 것이다(『莊子』「天道」)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려고 애를 쓰는데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만나봐야 밥먹고 똥싸는 천지간의 미물일 뿐이요 범인의 자태와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는 볼품없는 혈혈단신이다. 나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있다면 나를 만날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 붓다를 추구한다고 하는 것은 또 다시 싯달타라는 어느 역사적 인물의 실체를 만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실체로서 가정되는 존재의 사유로 직입하려는 것이다. 연기론이야말로 불타의 연기적 사유로 직입하는 최대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비록 후대 대승경전이긴 하지만 『능가경』에는 죽음에 직면한 붓다가 숨을 거두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수록되어 있다【대혜(大慧)보살과 세존(世尊)사이의 대담 중에서 나오는 말이다.】.
나는 최상의 바른 깨달음을 얻어 열반(涅槃, nirvāṇa)에 들기까지 그 사이에 단 한 글자의 말도 하지 않았다.
我從謀夜得最正覺, 乃至謀夜入般涅槃. 於其中間, 不說一字. 『楞伽阿跋多羅寶經』 卷第三, 「一切佛語心品之三」, 『大正』 16-499
12지연기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분명 보리수나무 밑에 앉아 있었던 싯달타가 가부좌 명상 속에서 사유한 과정을 표현한 어떤 도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보다 나무 아래의 싯달타의 명상의 내용은 분명 이 우주와 인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통찰이었으며, 그것은 무수한 그의 사유과정이었을 것이다. 그 무수한 갈래의 사유를 도식적으로 요약해놓은 것이 바로 12지연기이기 때문에 12지연기의 내용은 그 배경에 있는 무한한 생각들과의 관련 속에서 추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12지연기의 모든 항목을 자세히 뜯어보면 35세의 싯달타가 얼마나 해박하고 고도의 개념적 지식을 소유한 인물이었는지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카필라성의 왕자였다는 전기적 사실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는 분명 부유한 환경속에서 엄청난 학문적 디시플린을 축적했던 어떤 사람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기존의 모든 인도경전에 달통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숫다니파타』(Suttanipāta)에는 고타마 싯달타는 ‘진정한 브라흐만(Brahman)’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한 해박한 사유의 기초 위에서 고행(苦行)의 체득과정을 거친 이후에 12지연기론이라고 하는 엄청난 학설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12지연기의 모든 항목 속에는 유식을 포함하는 후기 모든 논설들의 가능성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 12지연기에 대한 도식적 이해로써는 도저히 싯달타의 사유의 과정에 계합할 수가 없다. 붓다의 말대로 붓다 자신은 한 글자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연기론 아닌 연기적 사유로 직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연기론 아닌 연기적 사유란 무엇인가?
연기란 무엇인가?
연기(緣起)란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이 반드시 연(緣)하여 기(起)한다는 것이다. ‘연(緣)한다’는 것은 ‘원인으로 한다’는 뜻이요, ‘기(起)한다’는 것은 ‘생겨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연기란, ‘A로 연하여 B가 기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A를 원인으로 하여 B라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뜻이다. 요새 말로 하며는 ‘연기’란 원인과 결과를 뜻하는 것이며 그것을 축약하여 인과(因果, causation) 또는 인과관계(causational relation)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연(緣)은 원인이요, 기(起)는 결과라 말해도 대차가 없다. 보통 인연(因緣)이라 말할때, 그것은 인(因)과 연(緣)의 합성어인데, 보통 인(hetu)은 직접적 원인을 지칭하고 연(pratyaya)은 그 직접적 원인을 형성하는 주변의 조건들이나, 보조적인 간접원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초기불전에 있어서 대부분 인과 연의 그러한 엄격한 구분은 존재치 않는다. 결국 인과 연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연기라는 것은 요새말로 인과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과란 무엇인가? 그것은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을 것이요, 결과가 없으면 원인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과를 원시경전은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다. 『잡아함경』 권12에 다음과 같이 일렀다.
나는 그대들에게 인연법을 말하겠다. 무엇을 인연법이라 하는가? 그것은 곧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爾時世尊, 告諸比丘. 我今當說因緣法及緣生法. 云何爲因緣法? 謂此有故彼有. 謂緣無明行, 緣行識, 乃至如是如是純大苦聚集. 『雜阿含經』 卷第十二, 296, 『大正』 2-84.
권15에 또 말했다【詣菩提樹下, 敷草爲座, 結跏趺坐. 端坐正念, 一坐七日, 於十二緣起, 逆順觀察, 所請此有故使有, 此起故彼起. 緣無明行, 乃至緣生有老死, 及純大苦聚集, 純大苦聚滅. 『華阿含經』 卷第十五, 369, 『大正』2-101. 『雜阿經』 卷第十二, 297, 『大正』 2-84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한글로 읽고자하는 사람은 고익진 선생이 편한 『한글 아함경』(서울 : 동국대출판부, 2000) 중 ‘십이연기설’을 보라. 그리고 이러한 표현의 팔리어장경 경문으로서 대표적인 것은 『상응니까야』 인연편의 「인연상응」, 37번을 들 수 있다. imasmiṁ sati idaṁ hoti, imassuppādā idam uppajjati, imasmim assati idaṁ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ṁ nirujjhati.(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기 때문에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도 멸한다.) 『南傳』13-96.】.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자 이는 저것이 일어난다.
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아니, 결국 연기라는 게 이렇게 시시한 것인가? 우리가 어떤 사태를 말할 때,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 이따위 정도의 말이 싯달타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 그 무시무시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전부란 말인가? 그렇다! 미안하지만 그렇다! 바로 그게 싯달타의 교설(巧舌)의 전부요, 불교(佛敎는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의 전부다. 불교는 이 한마디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다! 이 한마디를 벗어나면 그것은 불교가 아니요, 사기요 이단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의 논리를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 놓치지 않고 따라온 많은 독자들의 실망감을 생각하면 나는 이 붓을 옮기기가 어렵다. 그러나 격려하고 싶다. 몇 호흡만 늦추고 이제부터 내가 말하는 것을 차분하게 생각해주기 바란다고. 모든 지극한 지식이나 깨달음은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체험 속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상식적이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다.
세간에 도통했다 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엄청난 진리를 발견했다고 외치는 자들이, 전혀 새로운 비의적 진리를 깨우쳤다고 자신하는 자들이, 새벽별이 뜰 때 홀연히 정각을 얻었다고 선포하는 자들이, 새로운 종교를 펼칠려고 하고, 보살심으로 중생을 교화하겠다고 발심한다. 나는 그들에게 무릎꿇고 애원하고 싶다. 우리 인류에게 이미 종교는 만원이다. 제발 새로운 종교를 개창하려 하지 말라! 남이 다 해먹는다고 나도 또 해먹겠다고 덤비지 말라! 늠름한 총각들을, 아리따운 소녀들을 정욕의 번뇌로부터 구원해주겠다 하고 승가의 울타리에 가두는 그러한 가혹하고도 어리석은 짓들은 더 이상 범하지 말라!
▲ 싯달타가 고행한 시타림 주변의 광경. 매우 척박한 곳이었다. 맨발로 엄마 뒤를 졸랑졸랑 따라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설법하지 않기로 작심하다
싯달타가 보리수 아래서 증득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의 내용은 내가 확언하는 바대로 ‘연기’이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며 매우 상식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홀로 증득한 것이다. 그래서 싯달타는 ‘스스로 깨달았으니 그 누구를 따르리오?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고 외쳤던 것이다. 스승이 없다고 외치는 인간이라면, 사실 그 정직한 논리에 따라 자신 또한 제자를 두면 안 된다. 홀로 증득한 것은 홀로 거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자각의 내용은 특별히 말할 것이 없는 매우 상식적인 것이며 남에게 특별히 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싯달타는 대각 후에 설법하지 않기로 작심하였던 것이다【최봉수, 『마하박가』 1, pp.47~8. 『南傳』 3-8~9. 양자를 절충하여 번역하였다.】.
이때에 세존께서는 한가롭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묵히 앉아있는 가운데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깊고 깊어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고요하고 미묘하다. 일상적 사색의 경지를 벗어나 지극히 미세한 곳을 깨달을 수 있는 슬기로운 자들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탐착하기 좋아하여, 아예 탐착을 즐긴다. 그런 사람들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도리와 연기의 도리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일체의 행(行)이 고요해진 경지, 윤회의 모든 근원이 사라진 경지, 갈애가 다한 경지, 탐착을 떠난 경지, 그리고 열반의 도리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가 비록 법을 설한다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연히 나만 피곤할 뿐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게송을 떠올리셨다.
‘나는 어렵게 깨달음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내 지금 무엇을 말하리!
탐착에 물든 자들이 어떻게 이 법을 보겠는가?
어둠의 뿌리로 뒤덮인 자들이여.’
이와 같이 깊이 사색한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지 않기로 하셨다.
여기에 많은 미사여구가 들어있지만 인간 싯달타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는 매우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법을 설하지 않으리!’ 이것은 많은 불교도들이 간과하고 있는 인간 싯달타의 청순한 영혼의 양심이요, 위대한 각자의 최후적 양심이다. 싯달타는 우리나라의 신흥종교를 개창하는 자들처럼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건방진 일념으로 득도의 삶을 추구했던 그런 종교적 인간이 아니었다.
이때 사함파티(Sahampati)라는 범천(=브라흐만)이 자신의 마음으로 세존의 마음속을 알고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아! 세상은 멸망하는구나! 아아! 세상은 소멸하고 마는구나! 여래ㆍ응공ㆍ정등각자가 마음속에만 묵묵히 담고 있고 그 법을 설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세존 앞에 현신하여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세존을 향해 합장하며 간청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선서(善逝)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삶에 먼지가 적은 중생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법을 다면 알 수 있을 것이오나,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조지 할 것입니다.’
세존은 사함파티의 간곡한 청을 계속 들으시면서도 개속 반복하여 말씀하시었다.
‘나는 어렵게 도달하였다...
어떻게 이 법을 보겠는가?
어둠의 뿌리로 뒤덮인 자들이,
범천아! 이런 깊은 사색 끝에
나는 법을 설하지 않기로 하였던 것이다.’
신흥종교를 개창하려는 모든 자들에게 나는 권고한다. 이 싯달타의 순결한 영혼의 독백에 단 한번이라도 그대의 남은 양심을 기울여달라고.
▲ 꾸틉 미나르 곁, 인도 땅에 세워진 최초의 이슬람 사원, 꾸와트 울 이슬람 마스지드(Quwwat-ul-Islam Masjid). 이 아름다운 폐허의 문은 사원의 이름이 뜻하는 바 파우어 어브 이슬람(the Power of Islam)을 상징하고 있다. 1193년 노예왕조의 창시자 꾸틉 웃 딘은 이슬람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이 사원을 짓기 시작했던 것이다.
과학적 연기와 종교적 사실
연기ㆍ인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 매우 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연기(인과)라는 말이 우리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의 대각의 케리그마로 들리지 않고 진부한 속언처럼 시시하게 들리는 데는 크나큰 원인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연기적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금 말하는 ‘우리’는 역사적 우리다. 그 우리는 항상 시간성 속에 있는 우리다. 그것은 연기된 우리인 것이다. 이 역사적 우리를 특징지우는 것은 근대적 시민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근대적 시민으로서의 우리에게는 암암리 교육을 통해서 받은 공통된 세계관이 있다. 그 세계관이란 우리 주변의 사물을 인식하는 인식방법에 관한 것이다. 그 인식방법을 우리는 과학(Science)이라고 부른다. 과학은 스키엔티아(scientia)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지식(Knowledge)이란 뜻이다. 즉 과학이란 이 세계, 이 우주, 이 인간에 대한 앎,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앎의 방식이다. 과학은 지식이요, 지식은 앎이요, 앎은 깨달음이다. 이 과학이라는 깨달음이 보편화된 사회를 우리는 근대 사회라고 부르고 있고 그 근대사회에 사는 사람을 근대시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근대시민들이 교육을 통하여 공통적으로 형성한 과학적 세계관의 특징이란 바로 인과적으로 사물을 파악한다는 데 있다. 과학은 사물을 아무렇게나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모든 현상의 운동ㆍ활동체계가 반드시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연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결정지우는 보편적 법칙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보편적 법칙을 우리는 과학적 법칙(scientific law)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법칙을 떠난 이 세계 이해방식을 미신이라든가, 초험적인 것으로 괄호에 넣거나 배척하거나 한다.
어떤 사람이 죽었다. 어떻게 죽었나? 그는 자기의 신념 때문에 박해를 받아 로마의 재판을 받고 십자가형에 처해져서 죽었다. 어떻게 죽었나? 양 손바닥과 발목에 큰 못이 박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출혈이라는 현상이 생겼다. 그래서 순환계의 장애가 초래되고 심장의 박동이 멈추었다. 그리고 몸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패한 사체를 까마귀가 쪼아먹기 시작했다, 운운… 그런데 이러한 사태를 연하여 다시 살아난다는 결과는 초래되지 않는다. 우리가 과학적 인과관계 즉 과학적 연기를 받아들이는 한에 있어서는 이러한 종교적 사실은 연기의 사실로서 인정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과 종교는 충돌을 일으켰다. 그것이 우리가 목격한 르네쌍스시대의 개화백경(開化百景) 아닌 부흥백경(復興百景)이었다.
▲ 이 사원은 이슬람 마스지드(모스크)인데도 불구하고 힌두 모티프의 석주들로 가득차있다. 27개의 힌두사원을 파괴하고 그 석재를 이슬람 사원의 건자재로 그냥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양대 종교의 충돌과 융합의 현장이랄까?
싯달타의 합리적인 사유과정
그런데 싯달타의 사유체계에 있어서는 전혀 이와 같은 과학과 종교의 충돌은 있을 수가 없다. 싯달타의 명상은 바로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세계관, 그 합리적 법칙체계를 앞지른 선구적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그냥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적 세계관은 인류역사를 통해 싯달타와 같은 수없는 붓다들, 이 우주와 인간에 대하여 남다른 통찰을 한, 수 없는 각자들이 발견한 연기적 법칙들의 축적에 의하여 형성되어온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과학자를 붓다라 아니 부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20세기의 붓다(각자)였다. 아인슈타인이라는 독일의 한 청년이 골방에 쑤셔박혀 명상한 연기법칙의 내용으로 인류를 수억겁년 동안 지배해온 공간과 시간의 개념 그 자체가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한다면, 그러한 변화의 폭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간세에 등장한 어떠한 종교가 일으킨 변화의 폭보다도 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실제로 이 세계를 해석하는 이해의 방식을 근원적으로 변화 시켰을 뿐 아니라, 그러한 새로운 이해의 방식은 물리적인 현실 입증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E = mc²’은 연기의 법칙일 뿐이니라, 원자폭탄이라는 구체적인 물리적 현상이기도 했던 것. 그러나 이러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었을 때, 죄없은 수많은 생령들이 고통과 신음 속에 쓰러져 가야만 했고, 그것은 일본의 가혹한 제국주의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기에 앞서 인간세의 무력적 대결을 한 차원 더 높은 극악한 상황으로 조장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미소냉전체제의 출발이자 미제국주의의 오만의 시발이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연기의 법칙은 인간세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향에서만 작동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바로 인간 싯달타가 고뇌하는 연기적 실상의 총체적 문제가 내재하는 것이다.
과학적 연기법칙의 대상은 주로 물리적 현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싯달타의 연기적 직관이 정신적 현상에 국한된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싯달타에게는 물리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을 구분짓는 심신이원론적 사고가 전제되어 있질 않다. 흔히 내연기(內緣起: 정신적 현상의 분석), 외연기(外緣起: 물리적 현상의 분석)라고 부르는 그러한 분별적 의식이 싯달타의 명상에는 전제되어 있질 않았다. 그러나 청년 싯달타의 일차적 관심은 분명 인간의 노(老)ㆍ병(病)ㆍ사(死)라고 하는 고통스러운 인간세의 윤리적 과제 상황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인류사상 최초로 과학과 종교와 윤리를 통합하는 대 통일장론의 연기체계를 수립하려고 시도한 대사상가였고 대각자였다.
인간은 왜 고통스럽게 늙어가고 또 죽어야 하는가? 왜? 왜? 그 왜를 나에게 말해달라! 인간의 노사는 인간이 태어났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즉 노사(老死)는 태어남[生]을 연(緣)으로 하여 기(起)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왜 태어남이 있는가? 태어남은 또 무엇에 연(緣)하여 기(起)하는가? 그것은 사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물에 존재성[業有]이 있기 때문이다. 사물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태어남이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존재성 그 자체는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가? 그것은 많은 존재의 가능성 중에서 어떠한 존재를 취사선택하는 취함[取]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또 그 취함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무 연하여 기한 것인가? 그것은 갈망하는 사랑[渴愛, taṇhā]이 있기 문에 생겨난 것이다. 사랑이라는 집착이 없으면 분별적 선택, 취함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했기 때문에 취한 것이다. 그를 국면 그 사랑은 또 왜 생겨난 것인가? 무엇에 연하여 기한 것인가? 사랑이란 감수성(受, vedharā)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희로애락을 감수할 수 있는 그러한 센시티비티가 있기 때문에 감수성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감수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 이렇게 이렇게 끊임없이 싯달타의 사고는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개방적이고 사실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사유추리 과정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물의 법칙이다. 老死 ← 生 ← 有 ← 取 ← 愛 ← 受……
▲ 인간의 갈애를 관조하는 티벹 스님. 마하보디 템플 경내.
고통과 번뇌의 근원인 무명
그런데 우리는 반드시 싯달타가 연기를 추적한 방식으로 꼭 연기를 추적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싯달타라는 한 개인의 추리방식이요, 사물의 연결고리의 이해방식이다. 나는 왜 늙고 죽어 가는가? 그것은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그것은 나의 아버지의 정자와 나의 어머니의 난자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의 정자와 나의 어머니의 난자는 왜 결합하게 되었는가? 나의 아버지의 성기와 나의 어머니의 성기가 교합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의 성기와 나의 어머니의 성기는 왜 교합되었는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왜 결혼을 하게 되었는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서로 사랑을 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왜 사랑을 하게 되었는가? …… 노사(老死) ← 생(生) ← 정ㆍ난자 랑데뷰 ← 성기교합 ← 결혼 ← 사랑……
이러한 연기추론이 ‘일인일과’(一因一果)라고 하는 시간상의 인과관계를 고수하는 한에 있어서 그것은 선택된 추론일 수밖에 없다. 추론자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무한히 다양한 연기고리가 성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는 그리 자신의 연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싯달타의 연기론을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진리체계로서 이 이는 한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이 사실이 있다. 최소한 이러한 모든 연기고리의 종착역은 반드시 무명(無明, 팔리어 avijjā, 산스크리트어 avidyā)으로 귀결되지 않을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고통과 번뇌의 근원은 바로 이 무명(無明)이었다는 데 싯달타라는 대 사상가의 궁극적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다.
‘무명’이라는 한역술어는 『초사(楚辭)』에 그 용례가 있지만, 그것은 분명 ‘명’(밝음)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앎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설정된 무지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윤리적 과제 상황은 ‘무지’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인생이나 사물의 진상에 관하여 밝은 앎을 지니지 못한 상태에 모든 인간의 고뇌상황의 근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후기불교의 발전은 이 12지연기설을 금과옥조로 삼다보니까 그 연기고리의 종착역인 ‘무명’에다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근본무명’(根本無明), ‘원품무명’(元品無明) 운운하면서 또 다시 무명 그 자체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어리석은 짓들을 일삼았다. 무명은 결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불피동의 사동자’(Unmoved Mover)가 아닌 것이다.
▲ 평화롭게 세발 자전거를 몰로가는 신체부자유자 형제. 부처님 탄생지 네팔 룸비니로 가는 길.
부록 4. 힌두이즘과 이슬람의 대결
힌두이즘(Hinduisin)을 일본학자들은 인도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도인의 종교를 총칭하는 것으로 특정한 제도종교라고 부르기 어려운 인도인의 생활관습에 대한 일반명사인 것이다. 힌두이즘이 하나의 종교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불교의 영향이 크다.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브라흐마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성립하자 그 불교의 승가집단에 대하여 힌두이즘이라는 새로운 반동이 생겨났던 것이다.
불교가 쇠퇴한 후 인도의 역사는 힌두이즘과 이슬람의 대결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인도에 있어서 이슬람의 역사는 정복왕조의 역사와 일치한다. 이슬람 정복왕조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서북쪽의 터키ㆍ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이야기 해야 한다. 가즈니의 마흐무드(Mahmud of Ghazni)는 아프가니스탄지역에 강력한 이슬람왕국을 세웠다. 이 왕국은 셀쥬크왕조를 거쳐 결국 구르왕조의 손에 떨어졌다. 구르왕조의 무하마드(Mohammed of Ghur)는 1191년 펀잡을 넘어 북인도를 침범한다. 그의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으나 다음 해 1192년 그의 노예였던 명장 꾸듭 웃딘(Qutb-ud-din)이 델리를 점령한다. 무하마드는 가즈니로 돌아가면서 꾸틉 웃딘을 델리의 총독으로 임명한다. 무하마드의 사후 꾸틉 웃딘은 델리의 술탄이 되었고 이로써 인도에 최초의 이슬람왕조가 성립하였다(1206년).
이 최초의 이슬람왕조를 그 개조가 노예 출신이었기에 우리는 노예왕조(Slave Dynasty)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 델리 남쪽에 있는 이 꾸틉 미나르(Qutb Minar)는 1193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노예왕조의 전승기념탑이다. 이것은 20세기 간디의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인도 역사의 비극의 출발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오늘의 인도의 모습을 탄생시킨 인도의 운명이기도 했다.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를 무색케 만드는 아름다운 탑이었다. 사암과 대리석의 조화로 이루어진 5층의 원탑인데 각층의 경계마다 발코니가 둘러쳐져 있다. 지면의 직경은 15m, 꼭대기 직경은 2.5m, 높이는 73m에 이르고 있다.
순관
무명(無明)이란 무엇인가? 무명이란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궁극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연기의 실상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말하는 것이다. 무명조차도 끊임없는 연기의 고리 속에 있는 것이지, 그것이 인과 밖에 있는 어떤 실재는 아닌 것이다. 다시 한번 『마하박가』에서 싯달타의 최초의 깨달음의 순간을 전달하는 문구를 되씹어보자!
그러던 중 밤이 시작될 무렵에 연기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시었다.
여기 ‘발생하는 대로’라는 것은 흔히 순관(順觀)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A에 연하여 B가 생한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싯달타의 사유의 출발은 늙음[老]ㆍ죽음[死]ㆍ슬픔[愁]ㆍ눈물[悲]ㆍ괴로움[苦]ㆍ근심[憂]ㆍ갈등[惱]이었다. 싯달타는 물론 최초에는 이 노사(老死)의 현실로부터 그 원인을 추적해 올라갔을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무명으로부터 다시 생기하는 과정을 따라 내려왔을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두 방향성은 근원적으로 동시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괴로운 현실이 생성되는 과정을 사유한 것을 순관(順觀)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최후항목인 무명으로부터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무명(無明)에 연(緣)하여 행(行)이 생(生)하고
행(行)에 연하여 식(識)이 생하고
식(識)에 연하여 명색(名色)이 생하고
명색(名色)에 연하여 육처(六處)가 생하고
육처(六處)에 연하여 촉(觸)이 생하고
촉(觸)에 연하여 수(受)가 생하고
수(受)에 연하여 애(愛)가 생하고
애(愛)에 연하여 취(取)가 생하고
취(取)에 연하여 유(有)가 생하고
유(有)에 연하여 생(生)이 생하고
생(生)에 연하여 노사(老死)가 생한다.
이렇게 하여 괴로움의 씨앗들(苦蘊, dukkhakkhandha)이 함께 모여 일어나는 것(集起, samudaya)이다.
▲ 불교에서는 붓다의 설법을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전법륜, 轉法輪)라고 한다. 따라서 그의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이라 한다. 이 초전법륜의 모습은 반드시 전법륜 수인(다르마차크라무드라, dharmacakramudrā)이라는 양식으로 표현된다. 엄지와 검지를 말아 바퀴모양을 만들고 한 손은 바닥이 보이게 하고 한 손은 등이 보이게 하여 대는데 여러 변양이 있다. 연좌대아래 바퀴가 있고 주변에 설법을 듣는 최초의 제자가 있다. 때로는 그 자리에 사슴이 있기도 하다. 아잔타석굴의 불상은 대체로 초전법륜상이다.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의 내면의 초전법륜상은 굽타시대 는 16 사이로 추정). 높이 160cm
역관
그런데 이러한 순관은 순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역관과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시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역관(逆觀)이란 ‘A에 연하여 B가 생한다’는 순관의 명제에 대하여, 동시에 ‘A가 멸하면 B가 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관이란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시었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싯달타의 인과성의 통찰이 근대자연과학의 인과성 통찰과 다른 어떤 차원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학의 인과적 통찰은 하나의 사태에 대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또 한 원인이 있으면 미래에 어떠한 사태가 결과되리라는 것을 예측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에 있어서나 싯달타에게 있어서나 인과는 동시(同時)일 수 없다. 인(因)과 과(果)는 반드시 시간상의 전후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싯달타의 인과(연기)의 특징은 반드시 생성의 인과와 소멸의 인과를 동시에 관(觀)한다는 것이다. 여기 12지연기의 추론에 있어서의 각 항목, 즉 각 지(支)를 법(法)이라고 부른다. 제법(諸法)이라 말할 때의 그 법인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연기상의 법들은 연(緣, paccaya)에 의하여 생기(生起, samudaya)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언젠가는 지멸(止滅, nirodha)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삶의 성의 인과를 추구하는 이유는 생성의 인과에 대한 객관적 지지를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요, 그 생성의 인과를 파악함으로써 소멸의 인과를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몸의 병(고통)을 캐는 이유는 바로 그 원인을 소멸시킴으로써 병이라는 현상을 제거하자는데 그 궁극적 목표, 윤리적 지향이 있는 것이다. 불교용어로, 순관 즉 생성의 인과는 유전연기(流轉緣起)라 부르고, 역관 즉 소멸의 인과는 환멸연기(還滅緣起)라 부른다. 환멸연기를 설한 『마하박가』의 대목은 다음과 같다.
무명(無明)이 남김없이 멸하면 행(行)이 멸한다.
행(行)이 멸하면 식(識)이 멸한다.
식(識)이 멸하면 명색(名色)이 멸한다.
명색(名色)이 멸하면 육처(六處)가 멸한다.
육처(六處)가 멸하면 촉(觸)이 멸한다.
촉(觸)이 멸하면 수(受)가 멸한다.
수(受)가 멸하면 애(愛)가 멸한다.
애(愛)가 멸하면 취(取)가 멸한다.
취(取)가 멸하면 유(有)가 멸한다.
유(有)가 멸하면 생(生)이 멸한다.
생(生)이 멸하면 노사(老死)가 멸한다.
이렇게 하여 괴로움의 씨앗들(苦蘊)이 모두 멸진(滅盡, nirodha)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감흥을 읊으셨다.
“고요히 명상에 잠긴 수행자(바라문)에게
진실로 법칙이 드러났다.
그 순간 모든 의심이 사라졌으니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낸 까닭이요,
원인의 소멸을 알아낸 까닭이다.”
괴로움의 원인과 원인의 소멸, 즉 유전연기와 환멸연기를 동시에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싯달타의 연기는 완성된 것이다. 이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順觀 | 逆觀 |
A에 緣하여 B가 起한다 | A가 滅하면 B가 滅한다 |
생성의 인과 | 소멸의 인과 |
流轉緣起 | 還滅緣起 |
부록 5.1. 순관과 역관의 왜곡
여기 논의되고 있는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에 관하여서는 불교학계의 상이한 이해방식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전제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정확하게 ‘순관(順觀)ㆍ역관(逆觀)’이라고 독립술어로서 규정되고 있는 개념은 한역(漢譯)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며 원시불교경전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원시불교경전에는 순(順)ㆍ역(逆)이라는 말이 형용사나 부사적 용법으로서 맥락적으로 주어지고는 있을지언정, 순관(順觀)ㆍ역관(逆觀)이라고 하는 술어가 명사적 독립개념으로서 잇슈화 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선 순관(順觀)ㆍ역관(逆觀)의 문제를 싯달타가 12지연기를 추론해 들어간 사고의 방향성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논의들이 있다. 『대승의장(大乘義章)』 제사(第四)에 ‘인연법(因緣法) 가운데는 두 개의 차제(次第)가 있다. 그 하나는 순(順)이요 그 하나는 역(逆)이다. 시(始)로부터 종(終)에 이르는 것을 순(順)의 차제(次第)라 하고, 종(終)으로부터 시(始)에 이르는 것을 역(逆)의 차제(次第)라 한다. 관법(觀法)은 다도(多途)하여 일정(一定)할 수 없다’라 했는데 이것은 바로 순관(順觀)ㆍ역관(逆觀)을 사고추리과정의 방향성으로 규정한 좋은 예이다. 그렇게 되면, 무명(無明)에서 순차적(順次的)으로 노사(老死)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을 순관(順觀)이라 규정케 되고, 노사(老死)에서 무명(無明)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역관(逆觀)이라 규정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에서 중요한 사실은 순(順)ㆍ역관(逆觀)의 문제는 유전연기(流轉緣起, 생성연기) ㆍ환멸연기(還滅緣起, 소멸연기)의 문제와는 별도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따르게 되면 유전연기에도 순관ㆍ역관이 성립하며, 소멸연기에도 순관ㆍ역관이 또한 성립하게 될 것이다.
고익진선생은 순관(順觀)ㆍ역관(逆觀)을 이러한 사고의 방향성으로 이해하고 원시불교의 이해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보았다. 즉 싯달타의 사고의 엄밀성과 과학성은 구체적인 노사(老死)의 현실로부터 역관(逆觀)으로 거슬러 추론해가면서, 나중에 무명에서부터 순관(順觀)으로 설명해 내려온 데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무명에서 연역적으로 추론해 내려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순관으로만 추론한다면 그것은 너무 독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붓다의 순관은 깨달음에 입각해서 생사의 발생과정을 밝혀주는 설명적 교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교양교재 편찬위원회, 『佛敎學槪論』(서울 : 동국대학교출판부, 1986), p.74. 이중표 교수는 이러한 논의에 입각하여 고제와 집제를 유전문의 역관과 순관으로 규정하고, 멸제와 도제를 환멸문의 역관과 순관으로 규정한다. 이중표, 『근본불교』 (서울 : 민족사, 2002), pp.256~7.
그런데 고익진선생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잡아함경』 卷12, 卷15, 그리고 『증일아함경』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곳에는 순관과 역관의 용어는 전무하며 그러한 문제의식조차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순관과 역관을 싯달타의 사고추리의 방향성으로 해석한 것은 단지 후대 교설의 한역술어에서 잘못 유추된 의미상의 와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때 순관(順觀)은 ‘따라 본다’의 의미가 될 것이고 역관(逆觀)은 ‘거슬러 본다’의 의미가 될 것이다.
부록 5.2. 순관과 아누로마, 역관과 파티로마
그러나 원시불교의 연구가들, 특히 팔리어장경의 원전에 입각하여 사고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순(順)ㆍ역관(逆觀)의 문제를 싯달타의 사고의 방향성의 문제로 이해하고 있지를 않다. 사실 인간의 사유추리과정에 있어서의 방향성이란 그렇게 근원적인 문제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순(順)ㆍ역(逆)의 문제는 그러한 부차적인 사고의 방향성의 의미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어떤 사고의 내용성과 관계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12지연기설의 가장 프로토타입으로 꼽는 『마하박가』 초송품(初誦品) 첫머리에서 순(順)ㆍ역(逆)의 문제는 ‘연기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시었다’라는 구절 속에서만 규정될 수 있는 문제로 귀결된다. 여기 인용된 최봉수의 번역에 해당되는 일역 『남전』의 구문은 ‘緣起を順逆に作意したへり’라고 되어 있다. 여기 ‘발생하는 대로’(順に)와 ‘소멸하는 대로(逆に)에 해당되는 팔리어는 아누로마(anuloma)와 파티로마(paṭiloma)라는, 형용사가 부사적으로 어미변화를 일으킨 형태이다.
그러니까 순관(順觀)ㆍ역관(逆觀)의 문제는 ‘아누로마’와 ‘파티로마’의 해석의 문제,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아누로마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무명으로부터 노사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생하는 12연기가 기술되어 있고, 파티로마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무명으로부터 노사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멸하는 12연기가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소부(小部)니까야의 세 번째 경전(『法句經』 다음에 오고 있다)인 ‘우다나’(Udāna, 優陀那)라는 이름의 『자설경(自說經)』(붓다 자신이 감흥에 따라 발한 게송이라는 뜻)의 제일품(第一品) 보리품(菩提品)에 아누로마는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에 해당되는 유전연기로서 명료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대각칠일후야(大覺七日後夜) 초분(初分)의 사고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티로마는 야중분(夜中分)의 사고였으며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에 해당되는 환멸연기가 그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누로마(順次)는 유전연기, 파티로마(逆次)는 환멸연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명료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각기 대각칠일후야(大覺七日後夜) 초분(初分)과 중분(中分)의 사고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나뉘어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아누로마의 ‘아누’(anu)는 ‘따라서’의 의미이며 ‘로마’(loma)는 ‘순서,’ ‘틀’ 등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파티로마의 ‘파티’(paṭi)는 ‘거슬러,’ ‘대하여’의 의미가 있다. 즉 아누와 파티에는 ‘for’와 ‘against’의 대칭적 의미가 있다. 따라서 아누로마와 파티로마는 순차(順次)와 역차(逆次)로 번역되는데 큰 무리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확대해석하여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으로 개념화하면 마치 어떠한 순서의 방향의 순(順)ㆍ역(逆)을 의미하는 것처럼 해석될 소지가 항상 있다.
부록 5.3. 연기는 시간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아누로마의 원래 의미는 그러한 사고의 방향성을 말한다기보다는 12지연기의 성격을 규정하는 말로서 해석되는 것이다. 즉 아누로마는 생하는 것을 따르는 순서라는 의미일 뿐이며, 파티로마는 그러한 아누로마의 생성의 순서에 대하여 역으로 소멸하는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역이라는 의미는 사고의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의 순서에 대한 소멸의 순서라는 역전(逆轉)의 논리를 내포하는 것이다. 즉 A가 B를 생성시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역으로 A가 소멸되면 B도 또한 소멸될 수 있다고 하는 소멸의 역전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의 역(逆)은 역설의 역이다. 아누로마의 아누는 오직 팟차야(paccayā, 연하여, 기대어)의 맥락에서, 파티로마의 파티는 오직 니로다(nirodha, 사라지므로, 소멸하므로)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三枝充悳, 『佛敎入門』(東京 : 岩派新書, 1999), pp.108~9. 전재성은 아예 아누로마의 아누를 인간의 욕망을 ‘따라서’로 파티로마의 파티를 인간의 욕망에 ‘거슬리어’로 해석하여, 아누는 생성의 연기를 파티는 소멸의 연기를 나타낸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아누로마는 집제(集諦)를, 파티로마는 도제(道諦)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전재성은 집제(集諦)를 약생차즉생피(若生此卽生彼)의 원리로, 도제를 약멸차즉멸피(若滅此卽滅彼)의 원리로 규정하는 맥락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이하쿠쥬(宇井伯壽)선생이 말하는 바대로, 12지연기를 말할 때는 순관(順觀)은 곧 유전연기(流轉緣起)를, 역관(逆觀)은 곧 환멸연기(還滅緣起)를 말하는 것으로 등식화 되며, 또 순관(順觀)은 고제(苦諦)와 집제(集諦)를, 역관(逆觀)은 멸제(滅諦)와 도제(道諦)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간주되는 것이다【宇井伯壽, 『佛敎汎論』(東京 : 岩派書店, 1962), pp.1064~5.】. 나는 이러한 가장 일반적인 논리에 따라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의 의미를 평이하게 서술하였다.
그리고 또 연기를 말하는 데 있어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이 항상 짝지어 나오기 때문에 ‘有ㆍ無’는 존재(Being)의 세계를, ‘起(生)ㆍ滅’은 생성(生成, Becoming)의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분별하여 세밀한 논의를 일삼는 학설이 많지만 나는 그러한 논의에 크나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싯달타의 12연기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까르마(업)에 관한 추론이며 그것은 구체적인 행위의 국소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생성의 시간선상에서 분명한 전후의 인과개념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대전제를 무시하고 인과에 대한 모든 형이상학적 담론까지를 포괄해서 과학철학의 제문제를 논의하듯이 논의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면, 김동화(金東華)는 ‘有ㆍ無의 논의’(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는 일체사물(一切事物)의 동시병존적(同時竝存的) 연관성(聯關性)을 도파(道破)한 것이요, ‘起ㆍ滅의 논의’(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는 일체사물(一切事物)의 이시계기적(異時繼起的) 연관성(聯關性)을 표시(表示)한 것으로 보아, 전자를 공간적ㆍ실상론적ㆍ제법무아(諸法無我)적 논의로, 후자를 시간적ㆍ연기론적ㆍ제행무상(諸行無常)적 논의로 규정한다【金東華, 『佛敎學槪論』(서울 :白映社, 1967), pp.104~5.】.
그리고 전재성은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는 고제(苦諦)를,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는 집제(集諦)를,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는 멸제(滅諦)를,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은 도제(道諦)를 나타낸 것으로 각기 배속하여 정교한 논의를 편다【전재성, 『初期佛敎의 緣起思想』, 서울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1999.】.
김동화의 논의는 너무 도식적인 이원론에 빠져있고, 전재성의 논의는 너무 인과의 개념을 확대해석하고 있다. 인과의 개념에는 반드시 시간적 선ㆍ후 관계가 전제될 수밖에 없으며(상대성이론에서조차도), 동시적 인과개념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가 없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넌로칼(non-local)한 동시적 영향 같은 것은 얽힘(entanglement)이지 인과(causation)가 아니다. ‘때문에’라는 접속사로 연결되는 모든 관계가 인과인 것처럼 전제하고 펼치는 논의는, 12연기설에 관한 한, 별 의미가 없다. 삼파(三把)의 속로(束蘆)가 호상의지(互相依持)하는 것은 결구상의 상호의존관계이지 그것을 인과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과라는 것은 로칼한 두 사태 사이에서 정보의 전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차유고피유 차기고피기(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라 했을 때, 구태여 전자를 무시간적 시각에서 후자를 유시간적 시각에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전자는 인간의 행위의 체계로서 서로 의존적 관계에 있는 어떤 내재적 실상을 말한 것이라면 후자는 실제 행위체계로서의 시간적 선후의 증장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양자가 모두 궁극적으로 시간적 연기의 관계항목을 설하고 있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전자를 ‘의존하고 있음’으로, 후자를 ‘함께 나타남’으로 보아 ‘이것이 있는 곳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나타날 때 저것이 나타난다’라고 해석하는 이중표의 논의는 일고의 가치가 있다【이중표, 『근본불교』(서울 : 민족사, 2002), pp.260~1.】.
연기에 있어서 무시간적 차원은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의 사유 그 자체가 이미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공간적 관계도 연기에 관한 한 시간을 매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기론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위의 소박한 윤리적 차원을 떠날 수는 없다. 그것은 사물의 우주론적ㆍ존재론적 해명은 아닌 것이다.
생한 것은 멸한다
a『마하박가』의 초전법륜 장면, 그러니까 부처의 최초의 설법의 장면에는, 부처의 말씀을 듣고 법안(法眼, dhamma-cakkhu)을 얻은 자들의 깨달음의 내용을 설명하는 말로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정형구로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콘단냐(Koṇḍañña) 장로가 깨달았을 때, 밥파(Vappa)장로와 밧디야(Bhaddiya)장로가 깨달았을 때, 마하나마(Mahānāma)장로와 앗사지(Assaji)장로가 깨달았을 때, 그리고 야사(Yasa)라는 젊은이가 법안을 얻었을 때를 마하박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생하는 법은 어느 것이나 모두 멸하는 법이다’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yaṁ kiñci samudaya-dhammaṁ sabbaṁ taṁ nirodha-dhammaṁ
‘생하는 법은 곧 멸하는 법이다.’ 이 한마디를 깨닫는 것을 곧 법안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법안이란 곧 유전연기와 환멸연기를 동시에 전관(全觀)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12지연기의 각 항목은 모두 법(法)이다. 그런데 이 법은 생(生)하는 법인 동시에 멸(滅)하는 법이다. A가 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곧 멸할 수밖에 없다는 뜻은, A는 자기 동일성을 영원히 유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는 생과 멸의 연기선상에서만 있을 수 있는 가합(假合)적 존재라는 뜻이다. 붓다가 A라는 법(法)을 유전과 환멸의 양측면에서 동시에 관찰해야 한다고 설한 뜻은 어떠한 경우에도 A는 자기동일성을 항구하게 지속시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다. A라는 법에 자기동일성이 확보될 수 없다는 것은, A라는 법에는 아(我) 즉 아트만(ātman)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것을 우리는 ‘무아’라고 부르는 것이다. 12지연기의 한 항목의 법(法)이 무아(無我)라고 한다면, 12지연기의 열두 항목 모두가 무아(無我)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우리가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부르는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제법무아니 하는 모든 말들이 바로 이 연기의 순관과 역관의 조합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말들이다. 따라서 붓다는 연기를 알면 법을 보고, 법을 보면 나를 안다고 말했던 것이다. 삼법인(三法印)이 모두 연기에서 도출된 것이다.
▲ 델리에서 안개 때문에 비행기가 안 떠 부득불 자동차로 아그라(Agra)까지 가야 했다. 오줌이 마려워 변소 있는 주차장을 찾다가 우연히 도착한 곳이 이 거대한 성문 앞이었다. 우연하게 목도한 이 거대한 폐성의 웅장함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 올드델리의 레드 포트(랄 낄라)의 조형을 나는 여기서 발견했다. 이것은 세번째 정복 왕조인 뚜글라크 왕조의 개조 터키계 기야스웃딘 뚜글라크(Ghyasuddin Tughlaq)가 지은 것이다. 1221년 인도의 서북 쪽을 강타한 징기스칸의 공포때문에 이런 어마어마한 성을 지었다고 한다. 델리에서 10km 동남쪽, 13개의 성문이 있다. 14세기초에 건립.
성안의 도시는 동네사람들이 눗고간 마른 똥으로 가득 찬 폐허였으나 왕년의 화려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여기 내 카메라가 잡은 돔의 굴은 요즘말로 하면 쇼핑 몰에 해당되는 곳이다. 양 옆으로 작은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기야스웃딘은 당대의 이슬람 성자 니잠웃딘(Nizan-ud-din)의 저주를 받고, 그의 아들에게 암살되었다. 그의 아들 무하마드 뚜글라크는 천하의 폭군인데 데칸고원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우리는 그를 ‘또라이’라고 별명지었다. 붓다는 말한다. “지어진 것은 반드시 스러지게 마련이다.” 나는 말한다: “폐하는 아름답다.”
사성제와 팔정도
붓다는 처음에 이 십이지연기를 무식한 일반대중에게 설하는 데 무서운 당혹감을 느꼈다. 자신의 내면적 사유과정을 타인이 깊게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고안해 낸 것이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사성제(四聖諦, Four Noble Truth)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성제는 연기설을 일반대중이 알아듣기 쉽게 변모시킨 것이다. 사성제 중에서 고성제와 집성제는 유전연기(流轉緣起)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멸성제와 도성제는 환멸연기를 말한 것이다. 집(集)이 인(因)이라면 고(苦)는 과(果)다. 도(道)가 인(因)이라면 멸(滅)은 과(果)다.
유전연기(流轉緣起) | 환멸연기(還滅緣起) | ||
고제(苦諦) | 과(果) | 멸제(滅諦) | 과(果) |
집제(集諦) | 인(因) | 도제(道諦) | 인(因) |
연기설이 사뭇 이론적이라고 한다면, 사제설은 퍽 실천적이다. 연기설은 싯달타 자신의 깨달음을 위한 법문이요, 사제설은 타인의 깨달음을 유도하기 위한 연기설의 법문이다. 따라서 붓다는 초전법륜에서 최초의 제자가 된 다섯 비구들에게 연기설을 말하지 않고 사제설을 말했던 것이다. 이러한 실천적 이유때문에 사제설의 중점은 어디까지나 고ㆍ집 보다는 멸ㆍ도에 놓여 있다. 유전연기(流轉緣起)보다는 환멸연기를 보다 상세히 설한 것이다. 환멸연기 중에서도 멸(滅) 보다는 멸을 이룩하는 방법론인 도(道)를 상세히 말한 것이다. 여기서 도라는 것은 방법 즉 길(道跡, method)의 의미다.
아함경에서 보통 고멸도적성제(苦滅道跡聖諦: 괴로움의 멸함에 이르는 길의 진리)라 표현한 이 마지막 도제(道諦)를 우리가 보통 팔정도(八正道: 여덟 가지 바른 길)라고 하는 것인데, 이 팔정도야말로 원시불교의 실천강령이라고 할 것이다.
정견 | 正見 | sammā-diṭṭhi | 慧 |
정사유 | 正思惟 | sammā-sarikappa | |
정어 | 正語 | sammā-vācā | 戒 |
정업 | 正業 | sammā-kammanta | |
정명 | 正命 | sammā-ājīva | |
정정 | 正定 | sammā-samādhi | 定 |
정념 | 正念 | sammā-sati | |
정정진 | 正精進 | sammā-vāyāma |
후기 대승불교의 공사상의 치우친 해석으로 인하여 불교를 초윤리적(trans-ethical)인 종교로 간주하기 쉬우나, 싯달타가 구상한 근본불교는 어디까지나 윤리적 관심에서 시작하여 윤리적 실천으로 끝나는 종교라 해야 할 것이다.
바른 소견[正見], 바른 생각[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업[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기억[正念], 바른 집중[正定]은 얼핏 듣기에 시시콜콜한 시어머니 잔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불교도이기 전에, 시공에 국한됨이 없는 모든 인간들, 그 모든 인간들이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한에 있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삶의 바른 자세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인격자세의 핵심을 말한 것이다.
팔정도 중에서 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의 3도는 계(戒, sīla)에 속하는 것이다. 정념(正念)ㆍ정정(正定)의 2도는 정(定, samādhi)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의 2도는 혜(慧, pañña)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정진(正精進)은 계(戒)ㆍ정(定)ㆍ혜(慧) 삼자에 공통된 미덕이다. 이 지상에서 부처님이 남긴 마지막 말씀, 『대반열반경』에 수록된, 이 지상에서 제자들에게 남긴 그 간곡한 마지막 유훈은 무엇이었던가【팔리어장경 長니까야 16번째 경전인, 『大般涅槃經』의 말과 그에 해당되는 『長阿含經』 「遊行經」에 나오는 말을 절충하여 번역하였다. 전자는 『南傳』 7-144, 후자는 『大正』1-26】?
“그럼 비구들이여! 이제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고하노라! 만들어진 것은 모두 변해가는 법이니라. 게으름 피우지 말라. 나는 오직 게으르지 않음으로써만 홀로 바른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방일치 말고 정진(精進)하여라.”
是故比丘, 無爲放逸. 我以不放逸故, 自致正覺. 無量衆善, 亦由不放逸得. 一切萬物無常存者. 此是如來末後所說.
이것이 여래의 최후의 말이었다.
이 계(戒), 정(定)ㆍ혜(慧)를 삼학(三學)이라 하는 것으로서 소승ㆍ대승을 불문하고 모든 불교에 공통된 수행방법의 요체를 이루는 것이다. 삼학(三學)을 떠나서 불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대선사요 대사상가인 보조 지눌(普照 知訥, 1158~1210)이 교종과 선종의 대립을 극복하고 바른 불교의 원형을 삼학(三學)으로 정립한 주장 속에도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 우리나라 불보사찰의 원종제일대가람(源宗第一大伽藍)인 통도사(通度寺), 자장(慈藏) 율사의 영정을 모신 개산조당(開山祖堂) 앞에 고졸한 돌 받침이 하나 서 있다. 이 팔각형의 돌받침에는 팔정도의 문자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이나마 정도의 삶을 생각해 주었으면 ……
계와 정과 삼매에 대해
계(戒, sīla)란 무엇인가? 계는 계율을 말하는 것이다. 계율이란 무엇인가? 계율이란 번쇄한 타부가 아니요, 우리 몸의 디시플린(discipline)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계가 없이는 건강할 수가 없다. 부처님처럼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계율을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불건강과 타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정(定, samādhi)이라 하면 우리는 선정(禪定)이나, 좌선, 혹은 요가수행이나, 갖가지 명상법 등을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러한 말들이 정과 결코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 모든 것은 정의 방편이지 정 그 자체가 아니다. 선(禪)이란 본시 다나(dhyāna, 禪那)의 음사로 생겨난 말인데, 그것은 정려(靜慮)라고 의역되는 것이다. 즉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이란 앉아서도 할 수 있는 것이요[坐禪], 누워서도 할 수 있는 것이요[臥禪], 걸어가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요[行禪], 생활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處處禪].
그렇다면 정(定)이란 무엇인가? 그 말의 음사가 삼매(三昧, samādhi, 三摩地)인데, ‘독서삼매’하는 우리말의 뜻이 전하여 주듯이 그것은 ‘어텐션’(attention)이라 번역하는 것이 제일 타당하다. 그것은 주목이요 집중이요 통일이다. 그것은 단지 육체와 분리된 정신의 통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온몸으로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수행자들이 정을 육체와 분리된 정신의 통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이해방식이다. ‘독서삼매’란 독서하는 그 행위에 열중하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능력이다. 집중능력이 없으면 모든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매사에 철저히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는 실제로 좌선을 따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선정이란 곧 생활 속의 집중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신유학에서 경(敬)이라 말하는 것이 이것이다. 주일무적(主一無適: 하나에 집중하여 산란함이 없다)하여 매사에 진지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을 우리가 경(敬)이라 부르는 것이다. 헛되이 겸손한 체하고 공손한 체 하는 것을 경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생활에서 이 경이나 정이 없으면 그 인간은 저질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은 너무도 뻔하다.
수능시험장에 가는 한 천재소년의 이야기를 실례로 들어보자!
그는 학급에서도 줄곧 일등만 해왔고, 모의고사 성적도 전국 일위는 항상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는 막강한 영수실력의 소유자이며, 누구든지 그는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그는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태연할 수가 없었고 줄곧 긴장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뿌옇게 느껴졌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당황해서 아무 것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그가 평소 아무리 대단한 지식의 소유자이며 지혜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필요한 당장에서 냉정하게 집중할 능력이 없다면 그 지혜와 지식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모의고사 전국1등자라 할지라도, 막상 수능시험장에서 답안지에 번호 매기는 것을 한 칸씩 내려 칠하는 실수를 범해도 12년 형설지공(螢雪之功)이 하루 아침에 나무아미 도로타불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선정(禪定), 즉 삼매란 이러한 인간의 냉철한 정신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집중력이 뛰어나도, 지혜가 없고 지식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삼학(三學)의 최후 항목이 바로 혜(慧)라는 것이다.
▲ 뚜글라크왕조의 이 폐성을 보통 뚜글라카바드(Tughlaqabad)라고 부른다. 기야스웃딘의 아들 무하마드 뚜글라크는 이 성이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데칸의 다울라타바드(Daulatabad)로 수도를 옮겼다. 이때 그는 델리의 모든 신민을 데리고 1,100km의 행군을 강행했다. 신민들은 파리떼처럼 죽어갔다.
당대의 현장기록을 남긴, 이슬람 문명권의 마르코 폴로라 할 수 있는 이븐 바투타(Ibn Baṭṭūṭah)는 말한다: “델리에는 개나 고양 이 한마리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인민의 아우성조차 스러진 폐허는 아름답다. 공(空) 또한 실상(實相)이기 때문이다.
혜와 반야에 대해
혜(慧, pañña)란 무엇인가? 혜는 반야(般若)라고 하는 것이다. 반야란 무엇인가? 그것은 앎이다. 이 세계와 이 우주, 그리고 인간의 모든 것에 관한 바른 통찰이다. 이미 지식과 지혜가 이분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내 이미 설진(說盡)하였다. 나는 참으로 아는 자치고 지혜롭지 못한 자를 보지 못했다. 알면서 지혜롭지 못한 자는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앎을 통하지 않는 지혜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체험도 앎이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앎이 아니요, 혀로 아는 것도 앎이요, 귀로 아는 것도 앎이요, 코로 아는 것도 앎이요, 피부의 느낌으로 아는 것도 앎이요, 눈으로 직접 보는 것도 앎이다. 그런데 어찌 앎을 통하지 않고서 지혜롭다함이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아는 것인가? 바로 연기의 실상을 아는 것이다. 싯달타가 말하는 반야란 바로 연기의 실상을 아는 지혜를 말한 것이다.
학교에 가서 수학을 배우고, 화학을 배우고, 물리를 배우고, 생물을 배우고, 철학을 배우고, 예술을 배우고, 역사를 배우는…… 이 모든 것이 연기를 알아 지혜를 얻고자 함이다. 이런 것들에서 생활의 예지를 얻지 못한다면 어찌 이것이 학문으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겠는가? 학승과 선승이 따로 있는 이 개탄스러운 우리나라 승가의 풍토에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식이라 하는 것은 모두 사이언스요, 사이언스란 그노시스요, 지혜인 것이다. 사이언스는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세계의 인과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 뚜글라카바드의 주인, 기야스웃딘의 묘로 가는 길, 이 서기어린 길은 뚜글라카바드와 직접 통한다. 그 밑은 거대한 호수였다고 한다. 이 묘는 그 또라이 아들 무하마드 뚜글라크가 지었는데, 향후 이슬람 묘의 조형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후대 무굴제국의 화려한 묘들보다 이 기야스웃딘의 묘의 단아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발 밑에는 죄수들을 죽음으로 빠뜨리는 구멍이 있었다. 인간의 심미적 감성과 잔혹한 야성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건물의 돔이 소박한 반구(半球) 형태인데 이것이 후대에 가면서 전기다마 처럼 생긴 전구(全球) 형태로 바뀌어 간다.
우리 삶 속의 삼학(三學)
결국 이 계(戒, sīla)ㆍ정(定, samādhi)ㆍ혜(慧, pañña)라는 삼학(三學)은 저 시타림에서 나이란쟈나강을 건너 저 핍팔라나무 밑에 이르기까지의 인간 싯달타의 삶의 과정을 요약해놓은 언사인 것이다. 싯달타가 고행(苦行)을 했다는 것도 일종의 계요, 그가 고행을 중단하고 수자타에게 유미죽을 얻어먹고 32호상을 회복했다고 하는 것도 계(戒, sīla)다. 진정한 선정(禪定)이란 건강한 신체(정신을 포괄)를 전제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무지 몸이 불건강한 상태에서는 집중력이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싯달타가 유미죽을 먹으면서 정갈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32상을 회복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좌도밀교의 수행을 한답시고 우루벨라 마을에 쑤셔 박혀 수자타와 쎅스나 하고 지냈다면 보리수 밑의 싯달타는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계(戒, sīla)는 정(定, samādhi)을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이러한 계를 지킨 싯달타는 핍팔라나무 밑에서 정(定, samādhi)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마라(魔王)의 유혹 정도는 간단히 물리친다. 그리고 12지연기의 지혜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를 증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싯달타의 ‘계(戒, sīla) → 정(定, samādhi) → 혜(慧, pañña)’의 과정은 곧 삼장(三藏)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싯달타의 계를 담은 것이 율장이요, 싯달타의 정을 담아 놓은 것이 경장이요, 싯달타의 혜를 담아 놓은 것이 논장이라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戒, sīla)ㆍ정(定, samādhi)ㆍ혜는 반드시 일자가 일방적으로 타자를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요, 시간선상의 전ㆍ후 분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것이요, 호상투철(互相透徹)하는 것이다. 계(戒, sīla)는 정(定, samādhi)과 혜(慧, pañña)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 몸의 디시플린을 지킨다는 것은 집중력과 지혜(지식)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즉 계 속에는 정과 혜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정(定, samādhi)은 계(戒, sīla)와 혜(慧, pañña)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선정(禪定)을 잘함으로써 계율을 더 잘 지킬 수 있게 되고 더욱 더 큰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정(定, samādhi) 속에는 계(戒, sīla)와 혜(慧, pañña)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혜(慧, pañña)는 계(戒, sīla)와 정(定, samādhi)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알고 지혜로 와짐으로써 계율을 더 잘 지킬 수 있게 되고 선정의 집중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혜(慧, pañña) 속에는 계(戒, sīla)와 정(定, samādhi)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계율도 그 계율을 왜 지켜야 하는지를 모르고 지키면 그것은 괴로운 타율적 인생일 수밖에 없다. 계율을 지켜야 하는 소이연을 알면 알수록 계율을 더 바르게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식과 지혜의 폭이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선정의 집중력은 도수(강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고승의 도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계(戒, sīla) 속에 정(定, samādhi)ㆍ혜(慧, pañña)가 있고, 정(定, samādhi) 속에 계(戒, sīla)ㆍ혜(慧, pañña)가 있고, 혜(慧, pañña) 속에 계(戒, sīla)ㆍ정(定, samādhi)이 있는 이러한 상즉상입의 일체감을 우리가 ‘인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인격의 완성은 불교 교리라고 하는 좁은 울타리를 떠나 모든 인간이 행복하고 자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배움의 과정이다. 그래서 계(戒, sīla)ㆍ정(定, samādhi)ㆍ혜(慧, pañña)를 삼학(三學)이라고 한 것이다. 즉 인격의 완성을 위한 분리될 수 없는 영원한 세 가지 배움이라는 뜻이다. 원시불교나 대승불교를 막론하고 이 삼학의 정신은 불교의 핵심이다. 지눌이 성적등지(惺寂等持)를 말하고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말하는 것이 모두 이 삼학의 상즉상입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돈오점수(頓悟漸修)론도 결국 이 삼학의 일체감을 전제로 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지눌의 정신을 이해하려면 그의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를 한번 일별함이 좋다. 지눌의 사상을 잘 해설한 것으로 볼만한 책은, 김형효ㆍ길희성ㆍ허우성ㆍ한형조ㆍ최병헌이 지은 『知訥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서울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단언컨대 싯달타는 불교라는 종교를 개창하기 위하여 산 사람이 아니다. 그의 승가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가 이 계(戒, sīla)ㆍ정(定, samādhi)ㆍ혜(慧, pañña)의 프레임웍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승가를 지도하였다는 그 사실이 그를 오늘의 위대한 스승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삼학은 승가의 디프 스트럭쳐(Deep structure)였다. 그것은 인류사의 획기적인 창안이었다. 그것은 바로 싯달타라는 한 역사적 인간의 실천적 삶의 모습이었다. 그 삼학이라는 실천적 삶의 모습의 족적이 오늘의 불교라고 하는 이 거대한 인류사의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 아잔타 제6 석굴의 벽화. 위대한 스승 세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헌화하는 비크슈, 오른손에는 향로를 들고 왼손에는 세개의 연꽃을 들고 있다. 이것은 불법ㆍ승의 삼보를 상징한다. 이런 마음들이 합쳐져서 초기불교의 승가는 형성되어 갔다
싯달타가 살았던 시대
싯달타가 살았던 시대는 격변과 격동의 시기였다. 간지스강 중류 지역의, 혈연유대관계를 중심으로 지극히 사적이고 토착적인 에토스를 유지해오던 소규모의 종족사회(=씨족공동체)가 아리안계 종족들의 침공을 받으면서 점점 붕괴되어 갔다. 씨족공동체는 노예제를 전제로 하지 않은 목가적인 평등사회였으나 본시 유목민족이었던 아리안계 종족들은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영토 국가를 건설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아리안계와 비아리안계의 이름 대립으로 다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종족시회와 국가가 대립적 개념으로 설정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싯달타는 태어났던 것이다.
붓다의 시대에는 이미 간지스강 중류지역의 크고 작은 많은 도시들을 중심으로 국가가 성립하여 있었다. 이 국가들을 인도 역사학에서는 도시국가(Polis=City State)라 부른다. 싯달타의 불교가 출현할 수 있었던 시대배경으로 우리는 이러한 도시국가의 출현, 그리고 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공업의 발달, 화폐의 유통, 그리고 종족적 유대관계를 상실한 구속을 싫어하는 도시상공인들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향락주의, 그에 따른 도덕적 해이, 그리고 전통적 바라문교의 약화, 그리고 바라문계급의 절대적 권위의 상대적 하락, 등등의 사회적ㆍ정치적 혼란과 변혁의 정황들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종족사회의 폐허 위에 도시국가들이 건설되었고, 이 도시국가들은 공화제ㆍ군주제 등 다양한 과도기적 정치체제를 유지하였으나, 점점 강력한 전제군주국가로 통합되어 가는 추세에 있었다. 싯달타가 속해 있었던 샤캬종족의 카필라바스투는 종족사회의 한 원형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 카필라성이 코살라국에 의하여 멸망되고, 코살라국이 다시 대국 마가다에 의하여 정복되는 과정의 일부를 우리는 이미 싯달타의 삶의 여로에서 접하게 되는 것이다.
싯달타가 처한 이러한 시대배경은 절묘하게도 서양의 장원제 봉건국가들이 멸망하고 절대왕정이 출현하는 그러한 시대배경과 그 구체적 정황이나 실내용은 매우 다른 것이지만 공통된 디프 스트럭쳐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싯달타가 카스트적인 계급을 부인하고 인간의 평등과 진정한 자유, 그리고 보편적 자비의 사상을 부르짖게 되는 역사적 정황에는 근대 부르죠아 시민계급의 에토스 형성과 유사한 어떤 디프 스트럭쳐가 숨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부록 6. 붓다가 사랑한 도시 바이샬리
싯달타의 시대는 종족사회와 국가가 대립하고 있었다. 이 종족사회의 이념을 살려 공화제 국가를 성립시킨 최초의 종족이 릿챠비종족(Licchavi)이며, 그 수도가 바이샬리(Vaiśāli or Vesāli)이다. 바이샬리는 붓다 시대에 가장 화려했고 부유했던 미도였으며 교통ㆍ문화ㆍ경제의 중심지였다. 6세기 공화정을 성립시켰으며 마가다. 굽타 제국시대에까지 천여년간 그 아이덴티티를 지속시켰다. 고대 로마와 상통한다. 싯달타가 속한 샤캬족도 릿챠비족의 지배영역에 속해 있었다. 인도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공화국이었다. 지금도 인도 공화국 중앙 정부의 국회가 개원할 때는 이곳 카라우나 포카르(Kharauna Pokhar) 연못의 물을 성수로 사용하여 의식을 집행하고 있다.
붓다는 바이샬리를 무척 사랑했다. 바이샬리라는 도시문화의 개방성을 사랑했다. 500명의 여성 수행자들의 출가를 허락한 곳도 이곳이요, 그가 열반(涅槃, nirvāṇa)을 향해 쿠시나가르로 떠나기전 최후의 하안거를 보낸 곳도 이곳이었다. ‘여래가 이 아름다운 베살리 마을을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라고 슬픈 여운을 남겼다. 그의 사후 제2차결집이 이루어진 곳도 이곳이요, 대승불교운동의 단서가 마련된 곳도 이곳이었다. 역사적 싯달타는 독재적 군주제보다는 민주적 공화제를 선호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내가 바이샬리 한 마을을 찾아갔을 때 동네장로들이 짜이를 마시며 담론하고 있는 모습은 고대 공화제의 실상을 연상시켰다. 불알 내놓고 앉어있는 아동 곁에 깔려있는 동네 마당의 멍석들은 우리나라의 평화로운 옛 부촌의 정취를 상기시켰다.
사문과 소피스트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당시에는 자유로운 사상가들이 난립하였다. 팔리장경 장부니까야(Dīgha-Nikāya)에 속하는 『사문과경(沙門果經, Sāmaññaphala-sutta)에는 소위 6사외도(六師外道)라고 불리우는 당시의 자유로운 사상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불교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 자체의 사상을 아는 데 충분한 자료라 할 수는 없다.
여기 사문(沙門, śrāmaṇa, samaṇa)이라 하는 것은 종래의 전통적 바라문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일정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촌락이나 도시를 전전하면서, 걸식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고,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 지도자, 출가자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들은 대개 박식한 인물들이었으며 자유로운 사유의 소유자들이었으며, 강력한 시대의식과 비판의식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베다의 권위나 제사를 거부했다. 이들은 이단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새롭게 형성된 자유로운 상공계급의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는 자연히 그들의 교설을 따르고 실천하는 무리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승가(僧伽, saṁgha)라는 생활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들 공동체들은 사회적 계급적 신분의 차별이 없이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성격을 띤 집단이었다. 이러한 승가의 유지를 위하여 사문들은 보다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 이론들을 창출해내야만 했다.
우리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라고 외쳤던 아테네의 소피스트(sophist),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485~410 BC)를 기억한다. 기원전 6세기말에서 기원전 5세기까지는 희랍의 도시국가들, 폴리스의 격동기였다. 페르샤전쟁의 승리는 아테네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각 방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마라톤의 승리는 주로 농민보병에 의한 것이었으며, 사라미스의 해전은 수공업노동자들에 의한 승리였다. 이들은 마침내 귀족의 특권을 빼앗아 민주제(democratia)를 확립하였고, 민중의 위대한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cles, 495~429 BC)의 출현은 고대 민주주의의 황금시대를 가져왔다. 전쟁 후 델로스동맹의 맹주로서 그레시아의 패권을 잡은 아테네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 인도여행에서 나의 가슴에 감동을 새겨 놓은 것은 학교의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수업이 야외 마당에서 이루어진다. 학생들을 수용할 건물이 부족하기도 하겠지만 실내가 너무 답답한 것이다. 그리고 외부인들에 대한 거부반응이 전혀 없었다. 이들 중에서 사문이나 소피스트가 배출될 것일까? 시인 타고르의 고뇌를 나는 생각해 보았다. 바이샬리에서.
인과성을 철저히 긍정하다
이 때에 등장한 것이 소피스트(sophist)다. 우리가 보통 소피스트를 궤변론자라고 부르지만, 그러한 인상은 대체로 이들이 기존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인간의 세계인식의 극단적 상대성을 조장하고, 인간의 감각이나 이성적 논리가 모두 궁극적으로 실재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모든 종교적 독단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인 판단 유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성향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피스트들은 모두가 박학다식한 사람들이었으며 대부분이 심오한 경지의 석학들이었다. 그들은 무엇에나 의문을 품었으며 종교나 정치상의 모든 핫잇슈들을 거침없이 이성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폴리스의 유지기반이었던 노예제도를 거부했다.
우리는 보통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를 구분해서 말하지만, 소크라테스 역시 소피스트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 붓다시대의 슈라마나 즉 사문(沙門) 또한 소피스트가 등장하는 헬라스의 시대배경, 사회분위기, 그리고 사상적 성향과 일치하는 맥락 속에서 규정되는 사람들이다. 사문들도 대체적으로 현실주의적 인간관, 유물론적 우주관,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으며, 모든 도덕주의적 명제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우파니샤드(Upanisad)에서 말하는 아트만(ātman)이나 브라흐만(Brahman)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을 대체적으로 물질의 집적(ārambha-vāda)으로써 설명했으며, 업이나 윤회 같은 것마저도 부정했다. 챠르바카(Cārvāka)는 인간의 추론의 확실성을 인정치 않으며, 귀납적 추리와 인과법칙의 타당성을 거부했다.
그리고 신의 존재, 영혼의 존재, 생전이나 사후의 존재를 부정했다. 따라서 업의 도덕성이 전적으로 부정되는 것이다. 이따위 것들은 모두 브라흐만 사제계급들이 무지한 대중들을 속여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낸 이론들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이유는 쾌락(kāma)의 추구에 있을 뿐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챠르바카의 이론은 비판이나 옹호의 대상이기에 앞서, 오늘날 현대를 사는 인간이 제기할 수 있는 모든 극단적ㆍ합리적 사유를 이미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소중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향후의 모든 철학은 이러한 도전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상황을 껴안게 되는 것이다.
기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sophist)의 한 사람이었듯이, 역사적인 붓다 또한 이러한 슈라마나(사문) 중의 한 사람이었다. 헬라스의 폴리스의 소피스트들이나, 간지스강 중류지역 도시국가들의 슈라마나들이나,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을 방황하는 유세객들인 사(士)나 기실 야스퍼스가 지적한 바 아흐센차이트(Achsenzeit, 인류의 주축문명시대)의 동일한 시대정신에서 배출된 사상가들이었다.
싯달타는 결코 이러한 래디칼리즘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모든 래디칼리즘은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자극적인 도전을 제기할 수는 있으나, 근원적인 문제해결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당시 파쿠다 카차야나(Pakudha Kaccāyana)라는 육사외도의 한 사문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인간은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고(苦)ㆍ락(樂)ㆍ생명(生命)의 일곱 요소의 집적태일 뿐이며 행위의 주체가 되는 존재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 요소 그 자체는 불변이며 창조되지도 않았고, 서로를 생성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집적태인 한 인간을 어떤 사람이 예리한 칼로 배때기를 콱 쑤셨다고 하자! 그래도 그것은 전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칼은 단지 일곱 요소 사이의 간격을 좀 벌려놓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칼을 쑤신 주체도 존재하지 않고 칼 쑤심을 당한 주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와 사건을 철저히 비인격적인 과정으로 설명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인 것이다. 자아! 여기에 대하여 독자들은 어떠한 답변을 내릴 것인가?
나는 일찍이 말했다. 싯달타의 사유의 알파와 오메가는 연기 그 하나라고, 연기란 인과성의 철저한 긍정이다.
▲ 개방적인 바이샬리의 여인, 순다르헤. 저녁반찬으로 바나나를 딴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일행을 자기집으로 초대했다. 위 사진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바나나의 꽃
진단과 치료
나 도올은 매일 클리닉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 현직 의사다. 환자란 몸에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고통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특히 신체의 어떤 부위에서 강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고 있다. 그들에게는 고통의 구체적 현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의사인 나 도올을 찾아오는 목적은 그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나를 찾아온 환자들에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은 그 고통을 그들로 하여금 기술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에 따라 나 의사인 도올은 진단이라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환자들은 대뜸, 정확한 증상을 말하지 않고 병명을 말하거나, 또 나에게 병명을 알으켜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기실 병명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병명은 X래도 좋고 Y래도 좋은 것이다. 문제는 먼저 정확한 고통의 상태가 기술되어야 하고, 그 고통이 과연 어떠한 인과관계에 의하여 발생한 것인가를 추적해야 한다. 물론 그 추적의 목적은 그 고통에 대한 원인을 앎으로써 그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고통 그 자체는 무상한 것이다(諸行無常), 환자의 고통이 무엇에 연(緣)하여 기(起)한 것인가? 그 연기를 아는 것이 우리 의사의 의무요 임무다. 그 고통의 인과관계를 추적해 들어가는 작업을 진단이라고 하는데, 이 진단은 순관이요 유전연기(流轉緣起)다. 그리고 그 인과관계에 따라 원인을 제거하는 작업을 치료라 하는데 그 치료는 역관이요 환멸연기다. A로 인하여 B가 있다. 그러므로 A가 멸하면 B가 멸한다. 전자는 유전연기요 진단이다. 후자는 환멸연기요 치료다.
진 단 | 치 료 |
유전연기 | 환멸연기 |
순 관 | 역 관 |
자아! 이렇게 간단한 도식으로만 떨어지면 문제는 간단하다. 나는 하루 아침에 명의가 될 것이요, 금방 의사로서 성세를 떨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의사들이 이러한 단순한 신념 속의 오만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는 이 카주라호의 조각은 가장 출현빈도수가 높은 모티프에 속한다. 보통 샤르둘(shardul)이라고 부르는 이 짐승은 사자와 말의 혼합형태이다. 이 샤르둘상은 보통 카주라호사원들을 창조해낸 찬델라 왕조(Chandella Dynasty)의 건국신화와 관련된 것으로 풀이 되고 있다. 헤마바티(Hemavati)라는 16세의 꽃다운 브라흐만(Brahman) 가문의 과부가 어느날 용담에서 목욕을 하는데 그 황홀한 미모에 반한 달의 신, 찬드라(Chandra)가 하강하여 그녀를 범한다. 정조를 빼앗긴 과부가 달의 신을 저주하자, 달의 신은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무적의 크샤트리야가 되어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예언대로 태어난 그 아이는 16세때 이미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지팡이 하나로 사자를 제압했다 운운, 찬델라 왕조를 세운 이 소년 찬드라바르만(Chandrarvaman)의 무용을 찬양하는 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러한 투쟁적인 무용담의 상으로 풀이되기는 어려웠다. 해석의 여하와 관계없이 그 역동적 힘의 표출이 걸작이다.
인간문제는 복잡한 연기 속에 있다
우선 환자의 고통 그 자체의 기술이 명료하게 이루어질 수 없을 때가 많다. 환자 자신이 그냥 지끈지끈 아프다든가, 아리아리 하다든가, 우리우리 하다든가 하는 말로써 표현할 때는 그것이 과연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인지를 기술하기가 난감한 것이다. 기술이 불가능하면 추적도 불가능해진다. 엑스레이를 찍고, 씨티를 찍고, 엠알아이를 찍어도 아무런 물리적 증거를 포착할 수가 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언제부터 어떻게 아프셨습니까? 왜 그런 증상이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벌받아서 그래요’라든가,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래요’라든가, ‘그것은 운명이었어요’라든가 하는 식으로 황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환자 자신이 참으로 자신의 고통이 무엇으로부터 연기된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때로는 알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을 싯달타는 무명(無明)이라고 불렀다. 환자들이 자신의 긴박한 고통의 연기의 실상을 모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무명인 것이다.
유전연기(流轉緣起)에 대한 치료는 환멸연기다. 그런데 유전연기를 알아도 환멸연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예를 들면, 환자들이 의원이나 병원에 오면 으레 의사가 약을 주는 것으로 안다. 약만 먹으면 자기 고통의 원인이 제거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대한 사실은 의사들 자신이 환자의 증상을 알고, 병명을 알고, 병명에 대응하는 처방약을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데에 있다.
어느 날 나에게 환자가 왔다. 젊은 엄마가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자기 아들의 증상을 얘기하는 것이다. 아들이 매일 피곤에 지쳐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단 같은 곳을 몇 발자국만 짚고 올라가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털썩 주저앉고 만다는 것이다. 눈밑이 검어지고 눈꺼풀이 후들후들 떨리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도 골치가 띵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약을 멕이면 꼭 좋을 병인 것 같아서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이때 의사는 이 부모님 말씀만 듣고, 옳다, 비싸고 좋은 보약을 팔아먹을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진맥을 하고, ‘신허’(腎虛), ‘기허’(氣虛) 운운…… 인삼ㆍ녹용에 사인ㆍ사향, 해구신에 육종용, 당귀ㆍ천궁…… 마구 집어넣어서 오ㆍ케이! 하고는 명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잠깐 그 엄마를 나가 있으라 하고 고교생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나는 갑자기 물었다.
“너 하루에 몇 번이나 플레이치냐?”
그 학생은 얼굴이 갑자기 폭 고꾸라졌다. 컴퓨타의 음란사이트에 중독이 되어 몇 년 동안 하루도 안 빼놓고 매일 플레이를 쳤다는 것이다. 항우와 같은 천하장사라도 매일 사정하고서야 다리가 후들후들 안 떨리는 놈이 있을손가?
이 학생의 증상은 결코 십전대보탕이 아니라 할애비대보탕 백제를 써도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이 학생이 자위를 하는 행위를 단절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연기의 실상을 은폐한 채, 계속 보약만 타다 먹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린들 해결될 길은 없는 것이다. 더욱 더 난감한 사실은, 비록 이 학생이 순수한 무지로부터 그러한 쾌감의 행위를 지속시켰고, 나의 친절한 설명을 듣는 것을 계기로 대오를 하여 그러한 나쁜 습성을 고쳤다면 좋겠지만, 나의 간곡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음란사이트 중독증세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면 그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뻗칠 수 없다는 데 있다.
나의 클리닠에 같은 시기에 비슷한 증세와 원인의 두 학생이 환자로 찾아왔다. 한 학생은 내 말을 잘 듣고 크게 깨닫고 뉘우쳐 한두 달 안에 온전한 건강을 회복했다. 그런데 한 학생은 내내 못 고치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더니 결국 정신병자가 되었고 학교도 졸업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왕 나온 김에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전자의 학생의 경우는 가정이 화목했고, 엄마가 훌륭한 인품의 여인이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가정이 몹시 불화했고 엄마가 매우 부족한 인품의 여자였다. 나를 대하는 태도도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속으로 비양거리기만 했다. 정신병자가 되는 학생들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그 엄마가 정신병 성향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
참으로 인간의 문제는 이와 같이 복잡한 연기 속에 있는 것이다. 싯달타의 12지연기설은 일인일과(一因一果)의 시간성을 추적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항목들은 결국 상징적 체계일 뿐이다. 의사마다 환자의 연기를 추구하는 인식방법이 다른 것이다. 인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물리적 현상까지도 하나의 사태에 대한 연기는 하나의 항목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없는 항목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때가 많다.
다인일과(多因一果), 아니 일인다과(一因多果), 아니 다인다과(多因多果)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통 일인일과라고 하는 것은 다인다과의 현실로부터 방편적으로 일인일과를 추출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중에 대승의 화엄사상에 가면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니 하는 말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식의 논의를 확대해 들어가면 모든 것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되어버리므로 연기는 의미없는 것이 되고 만다.
▲ 사원 입구에 서있는 샤르둘과 소년상의 다른 모습.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AD 950~105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85개가 지어졌는데 무슬림 왕조들의 파괴로 현재 22개만 남아있다.
연기를 부정하는 다섯가지 생각
싯달타의 연기에 대한 신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매우 리얼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고통은 반드시 합리적인 원인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고통에 대한 약물의 처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산출하고 있는 원인 그 자체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 궁극적 원인은 인간의 무명(無明)이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무지에서 해방시켜야만 하는 고독한 혁명이다. 약물의 처방은 대체적으로 의원성질병(醫原性疾病, iatrogenic disease)을 산출시킨다. 우리나라의 질병의 절반 이상이 병원이나 치료, 의사와의 만남 그 자체에서 생기는 것이다. 의사나 병원으로부터 생기는 병을 우리는 의원성 질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싯달타 이전의 대부분의 인간의 고통이 이 의원성 질병이었던 것이다. 아트만(ātman)에서 생기고, 브라흐만(Brahman) 신에서 생기고, 브라흐만 계급에서 생기고, 모든 훌륭한 잡신에 대한 제사로부터 생겼던 것이다. 싯달타 자신이 당대 사람들의 연기의 부정, 인과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정리해놓고 있다【『中阿含經』, 業相應品, 「尼乾經」 第九, 『大正』 1-442∼5. 팔리어장경 『중니까야』 101, 「天臂經」(Devadaha-sutta), 『남전』 11上-279~297. 이 부분에 관하여 水野弘元, 『原始佛敎』 pp.62~5를 참고하였다.】. 연기의 부정은 곧 업보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1) 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 issara-nimmāṇa-hetu-vāda)
이것은 신의설(神意說)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계와 인간의 운명이 브라흐만이나 마헤슈바라(Maheśvara, 大自在天)와 같은 최고신의 창조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이 신의 의지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나의 의지나 노력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대로 작동할 뿐이다. 따라서 이런 작인설을 믿는 사람은 자기의 인격완성을 위해 스스로 정진노력할 실제적 근거가 없어진다. 선악의 행위에 대한 행위자의 책임의식도 희박해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보수적 신앙인, 교회만 열심히 나가면 만사가 형통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는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암암리 범하고 있는 인과부정론이다.
2) 숙작인설(宿作因說, pubbe-kata-hetu-vāda)
우리가 이 현세에서 얻는 행ㆍ불행의 운명은 모두가 우리의 전생에서 행한 선ㆍ악업의 결과일 뿐이며, 따라서 인간의 일생의 운명은 전생의 업의 결과로서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이 생애에서의 모든 노력은 내세(來世)의 운명을 결정할 수는 있을지언정 현세의 운명에는 하등의 영향이 없다고 믿는 일종의 숙명론이다. 성명철학관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암암리 범하고 있는 인과부정사상이다.
3) 결합인설(結合因說, saiigati-bhāva-hetu-vāda)
우리 인생은 모두가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 등의 요소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결합이 잘되었냐 못되었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고락길흉(苦樂吉凶)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 결합상태는 태어날 때 이미 확정된 것이며,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일정불변하게 지속된다. 따라서 우리의 노력에 따라 우리의 운명을 개변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이것은 많은 유물론자ㆍ결정론자들이 범하는 숙명론의 오류이다.
4) 계급인설(階級因說, abhijāti-hetu-vāda)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흑(黑)ㆍ청(靑)ㆍ적(赤)ㆍ황(黃)ㆍ백(白)ㆍ순백(純白)의 여섯 개의 계급으로 구별되어 있으며, 그 계급에 따라 인간의 성격ㆍ지혜ㆍ처지ㆍ가문 등이 다 결정되는 것이며, 후천적인 인간의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마칼리 고살라(Makkhali Gosāla) 같은 사명파(邪命派: Ājīvika)의 주장이기도 했다. 많은 계급론자들, 그리고 많은 부유층의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오류이다.
5) 우연기회인설(偶然機會因說, diṭṭhadhamma-upakkama-hetu-vāda)
무인무연설(無因無緣說, adhicca-samuppāda-vāda)이라고도 불린다. 인생의 운명은 인과응보의 법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신의 은총이나 징벌에 의한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착한 일만 하고 살아도 불행해지기만 하는 사람이 있으며, 악한 일만 하고 사는데도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이 있으므로, 인간의 화복(禍福)이란 일정한 원인이나 이유가 있어 생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우연한 기회로 생겨나는 제멋대로의 것에 불과하다. 많은 회의주의자나 기회주의자들, 불확정성만을 믿는 우연론자들이 범하는 인과부정의 생각이다.
연기가 말해주는 이 세계의 실상은 무아라는 이 한마디로 귀착된다. 무아란 모든 존재의 실체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에 대한 기술방식 그 자체를 변혁시키는 작업이었다. ‘이 세계에 대한 기술방식’이라는 말에서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모두 실체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계에 대한 기술방식의 변혁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 그 자체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서구에서는 20세기에서나 와서 비로소 언어에 더한 반성이 일기 시작한,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과 같은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이미 불타시대에 모두 제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부차적인 문제로서 제기된 것이 아니라 불교적 세계관의 메인 스트림으로서 제기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에 대한 반성은 서구근세철학에서 제기한 ‘인식론적 반성’(epistemological reflection)의 제문제를 수반한다. 즉 언어의 반성은, 우리의 인식(사물을 아는 방법)의 반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아와 연기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은 큰 창문을 마주보고 있고, 그 창문 밖에는 4각의 담으로 둘러싸인, 장독대가 한구석에 있는 자그맣고 어여쁜 잔디밭이 있다. 우리는 이 잔디밭을 항상 ‘잔디밭’이라고 부른다. ‘나의 책상 앞에는 잔디밭이 있다’라는 명제는 항상 불변적으로 우리집을 기술하는 말로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잔디밭은 그 실상을 들어가 보면, 그것은 흙과 여러 가지 풀의 종류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체들의 군집으로 형성되어 있다. 개미ㆍ지렁이ㆍ지네ㆍ모기ㆍ파리ㆍ나비ㆍ진드기ㆍ딱정벌레ㆍ풀강아지ㆍ바퀴벌레ㆍ송장벌레ㆍ톡토기ㆍ짚신벌레ㆍ개미살이ㆍ노래기ㆍ솔진드기ㆍ풍뎅이ㆍ애벌레ㆍ매미 애벌레……
이러한 식물과 동물의 군집형태를 우리가 막연히 ‘잔디밭’이라 부르는 이유는, 우리의 잔디밭이라고 하는 추상개념에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자기동일적 모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잔디밭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요소들의 집적태에 불과하다.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잔디라고 부르는 풀의 종을 주종으로 유지하면서 타 종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또 잔디의 형태를 이ㆍ삼부가리 머리깎은 것처럼 계속 유지하지 않는다면, 즉 그러한 자기동일성을 유지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버린다면 잔디밭은 금방 잔디밭이 아닌 그 무엇으로 변해버린다. 잔디밭이 아닌 잡초밭이 되거나, 수목이 우거진 수풀이 되거나, 또는 시인 두보(杜甫)가 읊은 황무지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잔디밭이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고 하는 생각을 우리는 ‘아트만(ātman)’이라고 부른다. 잔디밭에 잔디밭이라고 하는 아(我)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잔디밭은 없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요소들의 집적태일 뿐이며 잔디밭은 하시고 잔디밭이 아닌 그 무엇의 상태로 변할 수 있으므로 잔디밭은 항구적인 자기동일성(identity)은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곧 ‘무아론’이 되는 것이다. 즉 무아란 단순히 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끊임없이 변하는 요소들 간의 연기로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즉 무아는 연기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잔디밭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 ‘내가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즉 이것은 내가 있어서 그 내가 살아 있고, 내가 있어서 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나’는 무엇인가? 알고 보면 그 나는 약 6×10¹³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포는 각자 수없이 다양한 특정한 목적이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나’는 적어도 5만여 종 이상의 단백질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생화학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동일성(아트만)은 나에게 특유한 핵산과 단백질의 집합으로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생물학 시간에 배우는 인체구조, 해부학 (형태론)이나 생리학 (기능론)에서 배우는 모든 인체에 관한 지식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그 자체로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요소들의 연기관계를 아는 지혜인 것이다. 사실 ‘나’는 그 요소들의 연기관계 속에 있을 뿐이지, ‘내’가 있어서 그 요소들의 연기관계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물시간에 배우고 있는 정보는 곧 무아론적인 연기의 지혜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해부학에서 말하는 형태나, 생리학에서 말하는 기능이 해체되어 버리면, 즉 일부라도 전체에 영향을 주는 손상이나 급격한 변화가 오게 되면 나는 순식간에 해체되어 버리고 말 것이며, 내가 아트만이라고 믿어온 나의 동일성은 온데간데 없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연기론에 기반을 둔 무아론은 모든 실체의 존립근거를 무너뜨리고, 따라서 모든 형이상학의 존립근거를 무너뜨린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는 근본불교로부터 오늘날의 대승이나 선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반형이상학적 입장에서 성장ㆍ발전하여 왔다. 형이상학(metaphysics)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신이라든가, 영혼이라든가, 변치않는 우주의 근원이라든가, 인간의 의지가 표상하는 여러 가지 개념들, 이러한 것들을 시공간 속에서 유전하는 현상계를 초월하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본체계의 존재들로서 상정하여 연구하는 것이다. 20세기 이전까지 모든 서양철학사의 주류는 바로 이러한 형이상학에 의하여 지배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시공간을 초월한 어떠한 실체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인정하면 그것은 곧 불교가 아니다. 싯달타라는 인도의 청년에게, 동종의 육신을 보유한 한 인간으로서 나 도올이 존경의 염을 갖는 이유는, 그의 사상의 결백성과 철저성이다. 싯달타는 연기를 깨닫는 순간부터 모든 종교와 철학을 지배해온 형이상학을 거부했던 것이다. 우리의 경험을 초월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본체계라는 것은 싯달타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모든 종교가 말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 자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싯달타에게는 이 세계에 궁극적으로 불변하는 어떤 물질의 단위가 존재한다는 신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고뇌를 인식하고 발버둥치고 수양을 쌓아 그것을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이 시공간내에서 즉 철저히 현상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교는 현상론(phenomenalism: 훗설이 말하는 현상론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다)이다. 불교의 본체론이란 연기론일 뿐이다. 연기론이 곧 실상론이요, 실상론이 곧 본체론이요, 본체론은 곧 현상론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실상과 본체가 연기일 뿐이요 현상일 뿐이다. 이것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두 밀레니엄동안 서양철학이 본질적으로 불교를 이해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불교는 헤겔의 형이상학의 붕괴가 일어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초에 이르러 겨우 이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기나긴 불교의 동면이었다.
무기와 안티노미
싯달타는 기존의 형이상학(metaphysics)적 명제들을 요약하여 십무기(十無記)라고 불렀다. 십무기는 열 가지의 무기(無記)라는 뜻이다. 무기(avyākata)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술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형이상학적 실체라고 상정하는 것들은 시공간의 현상계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거나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그것에 관하여 옳다 그르다 라는 시비의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것들을 열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水野弘元, 『原始佛敎』, pp.85~102를 참고하였다.】.
A) 자아 및 세계는 시간적으로 | 1. 무한하다. 2. 유한하다. 3. 무한하면서 또 유한하다. 4. 무한하지도 유한하지도 않다. |
B) 세계는 공간적으로 | 5. 무한하다. 6. 유한하다. |
C) 영혼과 육체는 | 7. 동일하다. 8. 별개의 것이다. |
D) 여래(깨달은 자)는 사후에 | 9. 생존한다. 10. 생존하지 않는다. |
이것은 칸트가 안티노미(antinomy, 이율배반)라고 부른 것과 동일한 성격의 것이다. 즉 하나의 사태에 대하여 상반되는 두개의 판단이 동시에 성립할 때 그것은 우리의 지식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안티노미는 칸트철학이 순수이성비판에서 실천이성비판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을 이루는 것이다. 싯달타 또한 이러한 안티노미를 해결하는 것을 자신의 철학적 과제로 삼지 않았던 것이다.
싯달타가 형이상학(metaphysics)적 문제를 배척한 이유로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의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이러한 형이상학의 문제는, 우리의 인식이나 경험을 넘어서는 문제이므로,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해결이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 과연 시작이 있는가? 과연 종말이 있는가? 우리가 가장 최신의 물리학설로서 비그뱅(Big Bang)이론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다시 비그뱅 이전의 우주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는 수축하고 있는가 팽창하고 있는가? 과연 종말이 올 것인가? 종말이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우주의 공간모형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호킹박사의 모형은 어디까지 타당한가? 과연 지대(至大)는 무외(無外)인가? 무한이란 어떤 의미인가? 이 모든 것에 절대적 해답을 내릴 수는 없다. 아무리 위대한 물리학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질문은 궁극적으로 감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추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론적인 가설을 세우는 이유는 그것이 언젠가 경험적으로 입증될 수도 있고, 또 경험적으로 반드시 입증되지 않더라도 가설 그 자체만으로도 유용한 새로운 진리를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싯달타에게 이러한 형이상학적 추론은 극히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가 제기한 문제들은 우주의 물리적 실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윤리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번째로 그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그렇다면 일보 양보하여 이러한 형이상학적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해결은 우리 삶의 고뇌의 해탈(解脫, mokṣa)에 별로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탈해야 할 것은 궁극적으로 현상계의 문제였을 뿐 아니라, 그 해결도 현상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연기론의 철저성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러니칼하게도 싯달타가 당면한 종교적 문제는 형이상학적인 종교로써는 해결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종교는 종교적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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